오! 수다 - 나를 서재 밖으로 꺼내주시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진원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로 연이어 내 맘을 빼앗은 오쿠다 히데오. 그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일본작가 중 호감 1순위이기에 그의 이름만 들어도 바로 시선고정이다. 그런 오쿠다 히데오가 여행 에세이집을 냈다. 이제껏 그의 소설만 읽었기에(사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소설 뿐이지만;) 에세이집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특히 그게 여행 에세이여서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요즘 여행책에 흠뻑 빠져있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오쿠다 히데오'라는 이름이 박혀있다는 이유만으로 <오! 수다>는 어느새 내 손에 들려 있다. 

책표지에 '오쿠다 히데오 부산 전격 방문'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고도 진하게 적혀있길래 처음엔 이 책이 그의 부산 여행기인 줄 알았다. 그가 우리나라 부산을 방문해 그 감상을 책으로 엮었다는 감격에 살짝 들떴으나 곧 그건 나의 오해임이 밝혀졌다. 부산은 그의 6가지 여행 테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왠지 조금 낚인 느낌. 그래도 일본의 다섯 항구도시를 그의 안내를 받으며 함께 여행할 생각에 가슴 설레며 책을 펼쳐 들었다.


어느날 오쿠다 히데오에게 여행 잡지사 편집장의 전화가 온다. 항구도시를 여행하고 그에 관한 기행 원고에 대한 의뢰 전화였는데, 그 여행의 교통수단은 '배'여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책을 읽는내내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 안에 해결될 거리를 왜 굳이 16시간에서 22시간까지 걸리는 배로 이동하는지 그 이유가 끝내 언급되지 않아 무척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방금 생각났다. 바로 탐방할 도시가 '항구도시'이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단순한 이유를. orz 늦게라도 생각나서 다행이다.) 어쨌든 그는 그 제안에 호기심을 보였고, 편집장은 그걸 수락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의 항구도시 기행은 시작되었다.

여행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시작되고 끝난다. 매번 기본 10시간은 넘는 시간을 배에서 보낸 후 항구도시에 도착하면 바로 맛거리, 볼거리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의 잡담들로 채워진다. 배를 탈 때마다 작가에게 1인실의 배려를 보이지 않는 잡지사를 향한 반어법으로 치장된 칭찬들과, 음식 취재라는 목적에 부합한 푸짐한 음식들을 세 끼 꼬박 챙겨 먹다보니 매번 여행할 때마다 배가 부르고 살이 찐다는 투정 아닌 투정들이 주를 이룬다.

오쿠다 히데오의 계속되는 선상 1인실에 대한 투정을 읽고 있노라니 문득 그의 소설 <공중그네>의 단편 『여류작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인기 작가인 주인공은 잡지사가 여행 원고를 요청하자 아주 까다롭게 최고급 대우를 요구하는 장면이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속물 작가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그의 투덜거림을 듣고 있자니 점점 그 소설의 주인공과 겹쳐지기 시작한다. -_-; 또한 그의 일행들은 여행지에서 맞는 밤엔 '스낵바'라는 곳을 잊지 않고 방문하는데, '스낵바'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가씨'나 '호스티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걸 보면 대략 우리나라의 단란주점(?)과 비슷한 곳인 듯 하다(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그런 주점을 들락거리는 내용이 매번 아무 거리낌없이 등장한다는 게 조금은 놀라웠다. 문화의 다름이기도 하고, 어쩌면 '스낵바'를 내가 오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내 관심을 끈 건 그의 부산 기행이었는데, 시끄러운 아이들부터 때밀이 목욕 등의 내용을 보아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나 보다. 물론 마지막엔 예의상 훈훈한 내용을 몇 줄 붙여두긴 했지만 왠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접대멘트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에서 맛본 음식 중 2만 5천원 짜리 비빔밥이 아주 훌륭했다고 칭찬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걸 읽으며 그 정도 가격의 비빔밥을 먹었는데 안 훌륭하면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불쑥; ^ ^;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인지라 부산에 대해 툴툴거리는 그가 그리 예뻐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 것을. 부디 그가 기념품으로 사간 도자기 분수대를 보며 부산을 좋은 곳으로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다. 

생각지 않게 화가 나는 부분도 있었는데, 바로 그의 고토 기행기였다. 고토의 달리는 차 안에서 튼 라디오 방송에 뜻밖에 한국 방송국의 프로그램이 나오자 그는 고토가 한반도와 아주 가깝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하지만 이곳은 일본 땅이므로 영토권 주장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하는 것 아닌가! 잠시 어이상실. 갑자기 '독도'에 대해 억지주장을 하는 일본 정부가 떠오르면서 확~ 열이 올랐다. 엉터리 영토권 주장을 하는 게 누군데!! -0-!! 과민반응일 수도 있지만, 어찌 들으면 마치 우리나라가 엉뚱한 주장이라도 하고 있다는 말투로 들린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므로 영토권 주장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ㅡ.,ㅡ;;


오쿠다 히데오의 팬으로서 무척이나 큰 기대를 품고 접한 그의 여행기 <오! 수다>. 그러나 그는 나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 통쾌한 웃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공허하고 의미없는 수다만 남아있다. 끝없이 주절거리는 그는 마지막에 '하하하'하고 웃어버리지만 나는 그의 수다스러움에 슬슬 질린다. 그렇게 한바탕 그의 수다는 끝이 났다. 책을 덮으며 앞으로는 그의 작품은 '소설'만 읽으리라 다짐해 본다. (어쩜 안 읽을수도 있지만;;)


* 참고로.. 여행 에세이라고 하나 사진은 전혀~ 없다는 거!!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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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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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라부가 돌아왔다! <공중그네>에서 온 몸으로 나를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고 능글능글 웃으며 툭~ 뱉어내는 한 마디 말로 순식간에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던, 영원한 우리의 호프~ 그 이라부가 컴백했다. 이라부가 돌아왔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한가! 망설임없이, 거침없이 예약구매 버튼을 클릭해주는 센스! 며칠간의 기다림 끝에 앙증맞은, 너무 앙증맞아 읽기에는 눈이 조금 아프지만 무쟈게 귀여운 미니북과 함께 이라부 시리즈 3탄 <면장선거>가 내 손에 무사히 안착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대표작이자 가장 사랑스런 이라부가 등장하는 <공중그네>에서는 정신병원 의사 이라부의 기상천외한 엽기행각이 가장 큰 재미다. 매 환자들마다 온 몸을 날려, 그러나 상식을 뛰어넘어 황당하기 그지없는 치료법으로 개인별 맞춤치료를 감행하는 이라부. 그런 이라부를 보며 독자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다. 열성적인(?) 의사 덕분에 그의 병원에선 언제나 치료율 100%. 병이 났던 환자도, 웃을 일 없었던 독자도 모두 이라부를 만난 후 병을 고치고 웃음을 얻는다. 책 속과 책 밖에서 모두 이라부의 치료를 받은 셈이다. 뒤집어질 듯한 웃음 뒤엔 날카로운 핵심을 가볍게 던져주는 센스까지.. 이라부의 치료는 언제나 완벽하다. 이 법칙은 <면장선거>까지 이어진다.


<면장선거> 역시 이라부 정신 병원을 찾는 환자를 둘러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단편들을 엮은 연작소설로, 총 4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좀 더 정확히 말자면 '면장선거'는 중편에 가깝다). 앞의 세 편에는 전작들처럼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전문직 종사자 - 스포츠 구단주, 벤처기업가, 여배우가 환자로 등장하고, 그리고 마지막 중편 '면장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도쿄를 벗어난 이라부와 마유미가 섬마을의 면장선거에 휩쓸리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평생 동안 쌓아왔던 권력으로부터 멀어져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패닉상태'에 빠진 유명 신문사 대표이자 스포츠 구단주인 미쓰오(구단주), 매사에 극단적으로 지나친 효율성을 추구하다 어느날 '히라가나'를 잊어버리고 '청년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성공한 젊은 벤처기업가인 '안퐁맨' 다카아키(안퐁맨), 40대답지 않은 젊음과 외모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젊어보여야 한다는 안티에이징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여배우 시로키(카리스마 직업) 등이 등장하는 세 편의 단편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성공을 향한 집착을 놓치 못하고 각가지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치료과정을 통해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전혀 다른 종류의 기쁨이 삶에 찾아온다고 이야기한다.

앞의 세 편도 재미있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쿠다 히데오가 가장 무게를 두고자 했던 이야기는 바로 '면장선거'가 아닐까 싶다. 면장선거가 열리면 섬 주민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사활을 걸고 선거운동을 하는 섬마을의 모습은 선거 때마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아웅다웅대는 우리의 선거 풍토와 딱히 다르지 않다. 그래서 만나기만 으르렁거리는 선거원들의 모습에서 지금 대선을 앞둔 정치판의 모습이 겹쳐져 조금 씁쓸하다.

도쿄를 떠난 섬으로 건너간 이라부와 마유미 콤비는 섬에서도 큰 활약을 한다. 그게 환자를 고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몸이 달아있는 양 후보들에게 생각없이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라부의 활약은 전혀 뜻밖의 곳에서 펼쳐진다. 끝모르고 이어지던 후보간의 갈등이 이라부의 한 마디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읽다보니 우리 정치판에도 이라부 같은 존재가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라부는 어디서든 해결사다.


<인더풀>, <공중그네>에 이은 이라부 시리즈 3탄 <면장선거>. 오쿠다 히데오의 솜씨는 죽지 않았고, 이라부는 여전히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이라부의 활약이 최절정에 다다라 많은 이들을 웃기고 가슴 뜨끔하게 만들었던 <공중그네>의 내공을 뛰어넘기엔 <면장선거>는 좀 부족하다. 환자들의 치료에 이라부가 몸을 사리니 웃음도 감동도 교훈도 비판도 모두 조금은 약해졌다. 반복되는 패턴을 가진 시리즈물의 한계이겠지만 웃음 핵폭탄 이라부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아쉬움이 짙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면장선거>는 그 자체만으로는 여전히 재미있다. 한껏 가볍고 배가 아플 정도로 웃기지만, 그 이면엔 현대 사회의 그늘을 꼬집어내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바람나는 글솜씨가 여전히 춤을 춘다. 그런 까닭에 오쿠다 히데오의 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또한 <면장선거>는 이전의 이라부 시리즈와 '면장선거'를 제외한 3편의 단편이 모두 실제 모델을 갖고 있단다.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소개로 알게 된 사실인데, 실제 인물들을 알고 있는 일본 독자들에겐 이 책에서 한층 신랄한 풍자의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공중그네>의 그늘이 짙은 앞의 세 편에 비해 마지막 '면장선거'에서는 살짝 <남쪽으로 튀어!>의 향기가 느껴진 점이 재미있었다. 


끊이지 않고 환자가 찾아오는 이라부의 정신 병원을 떠올려 볼 때 (작가의 의지만 있다면) '이라부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만약 환자 공급으로 소재가 딸린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걸림돌이 되랴. '면장선거'처럼 이라부가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펼쳐보일 테니 말이다. 다음 시리즈에선 또 어떤 이야기를 안은 환자가 등장해 이라부의 엽기 행각을 감당할 지, 이라부는 또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감행할 지, 이 책에 이르러 자신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 간호사 마유미는 어떤 액션을 취할 지,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는 얼마나 풍성한 웃음과 날카로운 비판으로 독자를 즐겁게 해 줄 지.. 벌써부터 기대 가득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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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림 바이탈리치 샴푸 - 500ml
아모레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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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머리가 원래 건조한 데다 퍼머의 영향으로 부석거리기까지 해서 고민하고 있을 쯤..
한방샴푸가 좋다는 입소문을 들렸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망설일 수 밖에;;
그러다 어머니가 지루성 비듬으로 인한 탈모로 힘들어하셨는데
미용실에서 한방샴푸 좋다는 말씀을 듣고 오셨다고..
그래서 작년쯤부터 그 유명한 댕기머리 명품 샴푸를 쓰고 있는데
역시.. 비싼 만큼 제 값을 한다고 머리가 훨씬 좋아졌다..
뜬금없이 웬 타사 샴푸를 언급하냐고? ^ ^;


댕기머리로 눈을 뜬 후 다른 한방샴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샴푸 - 모림이다.
탈모방지 샴푸라고 해서 눈이 번쩍 뜨였는데
지금은 많이 나으셨지만 어머니는 늘상 탈모의 위협을 받고 계시고
나 또한 탈모는 아니지만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 늘상 걱정하던 터였다.


한방샴푸라곤 댕기머리 명품 샴푸 밖에 안 써봤지만
그것과 비교하자면 이 제품도 못지 않게 괜찮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내용물은 한방샴푸답게 한약냄새가 난다. 그리 역한 것은 아니고..
투명한 갈색인데 비교적 거품도 잘 난다.
샴푸후 헹구면 머리도 부드럽고 두피도 시원하다.
댕기머리 못지 않은 듯..


다만.. 탈모효과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여전히 많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기 때문..
이건 댕기머리도 마찬가지다;;
다만 머리가 훨씬 부드러워졌고 푸석거림도 덜하다.
찰랑찰랑 지성두피는 또 다를 지도 모르겠지만;;


샴푸인 만큼 한참을 써본 후에 리뷰를 쓰려고 거의 한 달 정도를 사용했는데
비교적 만족스럽다.
다만.. 한방샴푸의 부드러움과 상쾌함을 원하신다면 괜찮겠지만
탈모 효과를 기대하고 쓰시려는 분이라면 조금 더 생각해 보시길..
물론 탈모가 하루 아침에 효과를 보이는 아니며,
탈모를 방지하기 위해선 두피가 건강해야 하니 그게 그거지만.. ^ ^;;


가격대비 괜찮은 상품인 듯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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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주룩주룩
요시다 노리코.요시다 다카오 지음, 홍성민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 경고 ※

이 글엔 약간의 내용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걸 스포일러라고 부르기까진 좀 민망한 수준이지만 말이죠; ^ ^;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일본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주연한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이 얼마전 개봉했다. 영화는 보지 않은채 원작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뭐랄까.. 책의 무게에 비례하는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반양장 페이퍼백인 만큼 정말 가벼운 이 책은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멜로다. 제목만 보고 혹시 버스에서 읽다가 눈물을 쏟아내어 난감한 상황에 처하진 않을까 내심 불안했는데 웬 걸! 그건 기우였다. 책 제목은 <눈물이 주룩주룩>인데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서 눈물을 흘려야 할 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조금 슬퍼지려나, 이제 좀 울게 되려나~ 생각하니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너무나도 허술하게..

이 책의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자면 '일본판 가을동화'다. 이복 남매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연인은 될 수 없는 상황 설정과 어느 쪽으로든 마무리가 쉽지 않았던지 마지막엔 불치병으로 마무리해주는 센스~!까지 어찌도 그리 똑같은지. 할 말이 없다, 그 상투성에(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표절이라든지 그런 얘기가 아니다. 설정이 너무 식상하다는 이야기다. 오해마시라!). <가을동화>랑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의 재혼으로 형성된 남매인 까닭에 처음부터 진짜 남매가 아닌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숨겨왔던 서로의 감정을 쌍방향으로 확인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 채 애매한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는 점이다.


요타로는 갑작스런 엄마의 재혼으로 가오루라는 여동생이 생긴다. 그리고 네 가족의 짧지만 단란한 생활이 이어진다. 그러나 곧 무책임한 자유주의자 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두 남매를 위해 뼈빠지게 일하던 엄마는 어느날 눈을 감는다. 둘만 남겨진 남매는 외할머니를 찾아 작은 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나름 행복한 유년생활을 보낸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본섬으로 나온 요타로는 학교를 중퇴하고 자신의 가게를 내겠다는 꿈을 향해 열심히 일하고 그 와중에 연상의 의대생 애인도 생긴다. 세월이 흘러 가오루도 고등학교를 본섬으로 진학하면서 요타로와 함께 지내게 되고 일련의 사건들이 지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당혹스러워한다.

<눈물이 주룩주룩>의 작가는 너무 친절하다.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대사나 상황을 통해 표현하기 보다 직접 독자들에게 알려주길 즐긴다. 그래서 대사보다 지문이 더 많다. 그러나 너무 친절한 작가는 재미없다. 또한 전체적 구성이 무척 단순하고 사건의 전개가 단조롭다. 사회적 신분의 차이로 갈등하는 연인의 모습이나 어느 순간 불치병으로 갑자기 끝을 내어버리는 수법은 상투적이다. 무엇보다 그 죽음엔 합당한 이유도 없다. 그냥 불치병인 것이다. 갑자기 죽어버려도 더이상 토를 달 수가 없는 그런 병. 주로 우리나라 드라마가 애용하는 설정이다. 어린날 절벽에서의 새벽과 크리스마스날 밤에 위급한 상황에 처한 가오루를 찾아내 흑기사가 되어주는 요타로의 풀리지 않는 신비한(?) 능력처럼 그냥 인정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문체 또한 단순해서 작가만의 어떤 매력을 찾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주룩주룩>은 <태양의 노래>나 <천국의 책방>처럼 책보단 차라리 영화를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순애보를 사랑하는 일본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상투적이고 단순하며 신파적인 소설에 열광하는 까닭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세 작품 모두 별로였던 터라 영화화된 원작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앞으론 일본 영화로 만들어진 원작은 안 읽을까 보다. -_-;; (그러나~ 펑펑~ 울면서 읽었던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나 실실 쪼개며 책장을 넘겼던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는 영화로 만들어졌으나 원작 또한 꽤 재미있었다!)

아름다운 영상이나 배우들을 빼곤 상투적 신파멜로의 절정을 달렸던 드라마 <가을동화>와 이 책 <눈물이 주룩주룩>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을동화>를 선택하련다. 고백도 못해보고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사랑의 도피 행각이라도 저질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그 사람의 품에서 죽는 편이 백배는 낫지 않겠는가. 간만에 눈물이나 실컷 흘리려고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아쉬움만 한가득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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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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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날 눈도 살짝 내려주는 저녁, 언니들과 함께 간 영화관에서 (혹자는 '시애틀의 불면증'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ㅋㅋ)>을 봤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 청취자 사연을 통한 편지왕래와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엠파이어스테이츠 빌딩에서 아슬아슬하게 만난 사랑을 속삭이는 그들의 달콤한 로맨스는, 90년대의 아날로그적 향기를 한껏 담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로맨스의 환상을 품게 만들었으며,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푹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의 감독 노라 애프런의 수필집이 나왔다. 앞서 말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강한 향수에 이끌려 그녀의 책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영화의 시나리오와 감독을 했다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일본소설풍의 표지 일러스트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귀재 노라 애프런의 인생 이야기는 과연 어떠할까 하는 궁금증에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대로 잔뜩 부풀어 넘긴 책의 첫글은 솔직히 시큰둥했다. 목의 주름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고, 목주름에 모든 것을 건 것처럼 흥분해서 떠드는 그 마음을 내 기준으론 이해하기 힘들었다. 마치 외모에 집착하는 부유한 중년의 푸념같다. 그래도 책장을 계속 넘긴다. 목주름으로도 모자른지 헤어, 제모, 손톱손질, 염색 등등 끝없는 외모 이야기가 이어진다. 내가 이상한 건가. 여전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 부유한 그녀, 핸드백같은 소품에 큰 돈 쓰기는 아까워하나보다. 시장표 핸드백을 자랑스레 얘기한다. 음. 소탈한 면도 있는데. 그러다 방 8개 달린 뉴욕의 아파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헉; 방 8개라.. 도무지 감정이입이 안된다; OTL

그러나 이젠 안다. 부유하지만 소탈하고 치밀하지만 덜렁대는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소재가 목주름과 헤어손질과 핸드백과 방 8개짜리 아파트였을 뿐이라는 것을. 두번 이혼하고 세번 결혼한 자신의 개인사까지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유한 중년 여성의 자랑과 과시가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내어 들려준다는 것을. 그녀가 방 8개의 호화로운 뉴욕 아파트를 떠나면서 나의 지루함도 함께 사라졌다. 노라 애프런의 유머가 쏟아져 나오는 '나와 JFK : 이제는 말할 수 있다'부터는 그녀의 글들은 하나같이 재밌고 즐겁다. 


자신의 심란했던 뽀글뽀글 파마머리 때문에 케네디가 유일하게 추파를 던지지 않은 사람이 자신일 거라는 농담을 통해 케네디의 추문을 얘기하고, 클린턴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는 듯하면서 그의 과거 스캔들과 더 나아가 부시의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은연중에 곁들인다. 그런가 하면 어린 날 즐겨 먹었던 향수어린 음식을 찾기 위해, 또한 새로운 요리법을 배우기 위해 걸어온 파란만장한 여정길 같은 소소하지만 공감할 만한 이야기도 있다. 결혼과 육아 과정 속에서 여자와 엄마 사이의 갈등을 유쾌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그중 책에 대한 노라의 사랑이 듬뿍 표현된 '내 인생은 판타지'는 특히 좋았다. 

돋보기 없이 불편해지는 나이 덕분에 지도나 약병에 적힌 글자를 읽기는 거의 포기했으며 집안 곳곳에 돋보기를 뿌려놔도 불편함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노라 애프런. 그러나 그녀는 나이 먹는 것의 서글픔과 아쉬움을 토론하면서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먹고 마시고 도박을 즐기며 60세 생일을 보낼 만큼 씩씩하게 노년을 즐기고 있다. 이제 슬슬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야 할 시점에 이른 노라. 그녀는 칙칙해지지 말자고, 크게 웃으며 순간에 충실하자고 외친다. 죽음 앞에서 아무리 고민한들 무엇하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 충실하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 "내가 죽다니, 믿을 수 있어?" 그녀가 말했다. 아니. 난 믿을 수 없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칙칙해지지 말자.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자. 크게 소리 내어 웃어보자. 먹고, 마시고, 흥겨워해라. 순간에 충실해라. 삶은 계속된다.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말을 되뇌어라. '그렇다고 별 수 있나?' 여기,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다. 뭘 해야 하는 걸까? (198쪽)


유쾌하게 나이들기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무겁거나 칙칙하지 않다. 오히려 밝고 경쾌하다. 노라 애프런의 에세이집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는 이렇게 고상한'척'이나 우아한'척' 하지 않고 자신의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가식없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들엔 적절하고 상큼한 유머가 섞여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처럼 유쾌하다. 그리고 마냥 가벼운 듯 하면서도 그 안에 인생의 보편적인 이야기와 자기 성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시작은 시큰둥했지만 마지막엔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육십을 넘긴 노라 애프런의 솔직함과 엉뚱함과 유쾌함이 마냥 사랑스러워진다.







해리) 당신 인생에 대해 얘기해 볼래요?
샐리) 내 인생이요?
해리)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18시간이나 남았잖아요.
샐리) 내 이야기는 시카고도 못 가서 끝나버릴 걸요. 별거 없어요. 그래서 뉴욕에 가는 거니까.
해리) 뉴욕에 가면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나요?
샐리) 그렇죠.
해리) 예를 들면?
샐리) 신문방송학을 전공해서 기자가 될 거예요.
해리)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쓰시겠다?
샐리)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겠죠.
해리) 그럼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겠네? 죽을 때까지 거기에 살았는데 별 거 없으면. 아무도 못 사귀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어버렸는데, 복도에 썩은 내가 진동할 때까지 2주가 넘도록 아무도 모르면? 뉴욕에선 그런다던데.

-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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