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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의 멘토, 라고 까지 거창하게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뭐랄까,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참 닮고 싶고 뭐든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몇 명의 사람이 있다. 유희열, 이동진. 그리고 임경선. 일명 '라천 사단'. 2011년 11월에 종영한 라디오 프로그램 <라디오 천국>. 2008년 4월부터 3년 6개월여를 매일 밤 12시,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하며 나는 나의 '취향'을, 그것을 넘어서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를 배웠었다. 고작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에 오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진행자인 희열님을 통해서는 음악을 찾아듣는 방법,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공감하는 방법, 인생의 여유를 찾는 태도를 배웠고, 동진님에겐 영화를 보는 방법,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기분 좋게' 전달하는 태도를 배웠다. 경선님에게는 3년 6개월간 매주 한 번씩 누군가의 고민 상담을 통해 정말 수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있었다. 라디오는 이미 종영되었지만 그 후로도 꾸준히, 그들의 삶을 뒤따라가며 그들의 방송을, 활동을,  책들을 찾아 듣고 보고 읽으며 여전히, 나는 세 사람의 멘토를 따라 열심히 배우고 있다. 라천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고작 라디오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8할 정도는 바로 그 '고작 라디오 프로그램'인 것이다.


<태도에 관하여>는 이미 예약구매를 해 놓은 상태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의 작업물이라면 일단 사야하는 거니까.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읽어치웠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내내 정신이 가출한 상태로 글이 영 써지지 않아서 리뷰를 이제서야 남긴다. 흑흑) 라디오천국에서 느끼고 생각해왔던 많은 것들이 여기에 담겨져 있었다. 작가님의 다른 책들이 라디오에서 언급했던 일부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던 반면 이 책에는 그간의 이야기, 그러니까 작가님의 인생을 만들어온 대부분의 것들이 모두 담겨져 있는 느낌이었다. 3년 6개월간의 매주 1회.  대략 170회 정도의 상담을 모두 다시 꺼내어 듣기엔 부담스러운데, 이 책 한권 읽는 것으로 어느 정도 작가님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삶의 다섯 가지 태도. 커리어우먼으로서, 작가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그런 모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사람 임경선으로서 그녀가 살아온 삶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는 이야기이기에 진심이 느껴지는 인생 선배의 조언들이었다. 그간 작가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 (2008년부터이니 이미 7년이다.) 읽고, 들어왔기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러나-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고는 있었지만 지키기는 어려웠던 가치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만드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다. 특히나 나를 뜨끔, 하게 만든 것은 "현실에서는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을 하면서 '생각'이 따라서 정리되었다.(P.17)", "생각하는 것에만 너무 중점을 두다보면 자칫 행동하지 않을, 움직이지 않을 부정적인 이유를 만드는데 생각이 더 쓰인다.(P.18)"이라는 두 문장이었다. 그렇다. 책의 첫 꼭지에서부터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이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 당장에 바꿀 순 없겠지만 생각만 하고 있기보단 뭐라도,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려 노력해가다보면 언젠가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나는 그 '행동'이란 것을 하려고 하는 노력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경선님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언제나 나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발전한 내가 되고 싶다는 것. 그것이 어떠한 성과일수도 있고 아니면 보이지 않는 작은 생각의 변화일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어제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나'가 된다면 좋겠다는 것.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예전엔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불만이 많았다. 쟨 왜 저러지. 아 짜증나. 하고 생각할 때가 정말 많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생각이나 행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무관심'은 아니다. 언제나 나의 주변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왜 저래'라고 생각하거나 '부럽다'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타인에게 불만을 가진다고 해서 타인이 변화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부러움을 가진다고해서 내 인생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저,  '아아, 너는 그렇게 너의 삶을 즐기고 있구나. 나는 말이야...' 하고. 당신의 삶과 나의 삶을 구분할 줄 알게 되고, 나의 삶을 더 살갑게 돌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이러한 내가 좋다. 물론 나에게 불만도 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불만은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불만이니까. 그러나 나 스스로에 대한 불만을 항상 품고 있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가고 있다. 이건 내 힘으로 풀 수 있는 불만이니까. 단점을,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불만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정말 좋아한다. 아마도, 이 불만들을 진짜로 극복하고 난 뒤엔 나 스스로를 좀 더 좋아할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된다면 분명, 다른 사람들도 나를 좋아해줄 거라고 믿는다. 모든 마음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임경선 작가님의 말과 글을 통해 그런 것을 배워온 것 같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납득은 한다. 자부심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은 하지 않는다. 

좀 더 훌륭한, 좀 더 심오한 것을 할 수 있을 터다 하는 감촉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시간이나 체력 같은 제약과 싸우며 이겨내겠다는 결의가 있다.

-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中


하루키와 오자와세이지씨의 대담집에서 읽은 글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엄청난 것을 이루어낸 두 사람조차,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시간이나 체력의 제약과 싸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물며 나같은 미생은, 갈 길이 참 멀기도 하다. 하지만 비교는 금물. 나는 나의 삶을, 나의 시간과 나의 속도대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 이니까. '몇 살이 되었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수 있다면(P.7)' 나는 나를 더욱 좋아할 수 있게 될 터다. 작가님도 '그러니까 자발성이라는 측면의 첫 단추, 처음으로 껍데기를 깨고 걸어 나가는 것 까지는 무조건 내가 해야 된다는 거죠. 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갈 수도 있고 뛰어갈 수도 있지만요. 그 스피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껍데기를 깨는 거는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거. 가장 중요한 진실이죠.(P.254)'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나만의 속도가 중요하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 될 테니. 


자기 내면이 단단해지려면 디테일에서도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를 다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자잘하게 썰어서 하나하나 곱씹어볼 수 있는

어떤 치밀함. 집요함. 그리고 신중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기억해놓고 싶은 문구 또 하나. 디테일에 강한 사람. 디테일에 강한 사람은 어떤 일에도 금세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작은 일에서도, 어떤 일에서도 재미를. 배울 점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영화를 보면서 큰 줄거리에만 집중하는 것과 그와 함께 영화 속에 숨어있는 깨알 같은 레퍼런스들을 찾아내며 보는것은 분명히 다른 경험이다. 디테일에 강한 사람은, 똑같은 시간을 쓰면서도 다른 속도와 다른 밀도로 시간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님은 이 책에서 자신이 말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본인의 가치, 본인의 태도'를 찾아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의 삶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매일 매일 어제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나'라는 태도. 그것인 것 같다. 그래서 침대에 콩벌레 처럼 누워 하루를 보내거나 이런 저런 것을 해야지 생각만 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엔 더 없는 자기비하의 감정에 빠지는 거겠지. 매일 매일 뭐라도, '행동'해서 변화하기를. 지금의 나에겐 이것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키워드는 디테일. 나는 내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매일을 즐기는 '진짜'방법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초반엔 무척이나 조급해했고 나보다 앞선 사람들에 대해 조바심을 내며 서둘러 뒤따라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매일 매일 더- 좋아지고 있다고. 늦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조급하게 서두르느라 '디테일'을 놓치며 어찌 보면 또 다른 의미로 '허송세월'을 하기 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더디더라도 '디테일'있는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그럼으로써 매일매일 조금씩 느리게라도, 발전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이렇게 묻고싶어졌다.



"당신은, 어떤 태도로 매일을 마주하고 있나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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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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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 쥐었던 순간, 그래 이 책과 비슷한 두께의 책이 집에도 한 권 있지. 있어. 라고 생각했다. 베개로 사용 했었거나, 베게로 이용 했었거나, 베개로 활용했었던... 그러니까 베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이제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책장 어둑한 곳에 꽂혀져있는 바로 그 책 <구약성서>.  모태신앙이란 그런 법이다. 종교의 의미도, 종교의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부모로부터 강요당해 물려받은 신앙이란 성서를 베개로 사용하게 만들만큼 불경스럽고 얄팍하기 짝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 


조지프앤턴은 커녕,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었다. 책을 좋아해서 열심히 읽기 시작한지 몇 해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한국 근대문학의 언저리에만 머물러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외국의 작가들의 이름이나 작품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자서전'을 성서의 두께만큼 써내려가는 건가 싶어서 책을 펴기도 전에 표지속의 루슈디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눈을 왜 그렇게 떠?" 아, 아니 이게 아니고. 그냥 이렇게 묻고 싶을 뿐이었다. 이 책을 보낸 사람에게. "알라딘, 저 맘에 안 들죠?" 아, 아니 아니. 이것도 아니고. 엣헴.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책의 볼륨에 압도당해서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다. 서평 마감일이 코앞에 닥치고 나서야 어디 한번 읽어 볼까 하고 시작한 것이 지난 일요일 오전. 그리고 월, 화요일 내내 쉴 새 없이 다음페이지, 다음페이지를 허겁지겁 읽어 삼켰다. 재미있었다.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평범하지 않은, 재미있는 삶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그의 그 13년의 시간이 멀고 먼 작가의 고향보다 더 먼 동쪽나라의 한 사람에게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혀지게 되어서, 그런 '흥미로운 옛날이야기'가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하고 마음속으로 살만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가 했던 말이나 썼던 글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작품과 사회적 위치에 만족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미움 받는 일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중략) 이런 싸움에서 이기려면 적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교훈도 얻었다. 적을 알기는 쉽다. 그는 사상 때문에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사고방식과 싸우는 중이었다. 어떤 종교든 간에, 남의 생각을 제한하려 드는 태도와 싸우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분명히 알아야 했다. 표현의 자유, 상상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유서 깊은 예술, 그리고 무신론. 불경, 불신, 풍자, 희극, 불손한 농담. 그런 것들을 지켜야 할 때 다시는 움츠리지 않으리라.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네가 지키려 하는 것들이 정말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가? 그는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다.


글, 이라는 것이 가진 힘을 믿는다. 글이 세상을 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책 속에서 등장한 수많은 유명인사들 중에 유독 반가웠던 인물이 바로 '바츨라프 하벨' 체코 전 대통령이었다. 프라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 책 저 책 읽다가 알게 된 체코 반체제 인사들의 풍자와 농담, 해학의 힘으로 이루어낸, (물론 그 속에 수많은 피와 땀이 숨겨져 있겠지만) 체코의 벨벳혁명. 그 너무나도 멋진 역사의 한 페이지의 제일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바츨라프 하벨의 생애에 감복하여 블타바 강변에 있는 하벨 대통령의 생가라고 알려진 건물 앞을 서성인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바츨라프 하벨이라는 인물에게 빠져든 것도 다 '글' 때문이었다. '글'이 가진 힘을 믿기에, '글'이 가진 힘을 믿고 전력을 다해 앞을 향해 달려 나간, 혹은 있는 힘껏 자리를 버티어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벨이 그러했고, 살만 루슈디가 그러했다. 자기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반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설과 관련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 위협을 당하고, 진짜로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는 현실 앞에서도 살만 루슈디는 자신의 글을 믿고, 싸워내었다.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걸을 자유, 아무렇지 않게 친구를 만날 자유,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자유, 아무렇지 않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자유. 13년간 그 당연한 자유를 빼앗기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진 800페이지. 처음에 두껍다고만 욕해서 미안해. 너는 의미 있는 조-흔 800페이지였어.



그러나 루슈디는 묻고 싶었다. 어떤 종교이든 간에 종교를 싫어하는 것이 언제부터 불합리한 일이 되었나? 누군가는 맹렬히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제부터 이성이 부조리로 탈바꿈했나? 언제부터 미신과 전설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가 금지되었나? 종교는 인종의 경우와 다르다. 종교는 사상이다. 비판을 이겨낼 만큼 강한 사상은 흥하기 마련이고 약한 사상은 망하기 마련이다. 비판을 금지하면서 애지중지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강한 사상은 오히려 반론을 반긴다.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적과 싸우는 동안 체력을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한다. 적이 우리를 돕는다." 반대파를 외면하거나 욕하거나 해치려는 자는 나약한 자들과 독재자들 뿐이다.



<악마의 시>를 읽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를 죽음의 압박으로 몰아넣었다는 그 작품들이 종교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설령 그의 글이 정말로 하나의 종교를, 그리고 그 종교를 믿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모욕했다 하더라고 그것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글에는 글로, 정당하게 대응하면 될 일이었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은 없다. 철저히 개인의 자유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천주교 신자로 교적에 올라있지만 일년에 두어 번 가는 것이 고작이고,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그로인해 평온함을, 만족을,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뭐든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일 때, 종교의 유무나 종교의 종류같은건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강요'를 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천주교 신자임에도 천주교로인해 나의 '자유'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자유와 보편적인 권리를 종교로부터 침해당한다면 그것을 거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업악의 도구일수 없다고. 그것이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런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과연 그것이, 종교일수 있을까?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행되어온 수많은 대학살의 역사를 떠올려본다. 신의 이름으로, 신을 위하여, 신이 바랐기 때문에? 아니. 신이라는 존재가 그러한 대학살을 바랐을 리가 없다. 모든 종교전쟁은 종교라는 그럴싸한 방패를 앞세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인간들이 저지른 범죄이지 않을까. 반대파를 외면하거나 욕하거나 해치려는 자는 나약한 자들과 독재자들 뿐(P.449)이지 않은가.



이야기에 대한 통제권은 누가 가져야 옳은가? (중략) 그 권리는 만인의 것이며 마땅히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거대서사를 비판하고 논쟁하고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거개서사도 변화하기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서사에 대해 말하는 방식도 자유로워야 한다. 경건하든 불경스럽든, 열광적이든 냉소적이든, 그것은 열린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권리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되풀이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거대서사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논쟁 그 자체가 중요하다. 논쟁이 곧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닫힌 사회에서는 정치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런 논쟁을 막으려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는 우리 몫이다. 설명도 우리 몫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다른 이야기는 일절 금지한다.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든다면 너는 국가의 적이거나 신앙을 저버린 자다. 그러므로 아무 권리도 없다. 각오해라! 기필코 너를 찾아 감히 우리를 거역한 대가를 치르게 하리니. 

자유를 수호하려면 우선 담론의 장을 수호해야 한다. 논쟁의 해결이 아니라 논쟁 그 자체가 자유다. 남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신념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야 참된 자유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회는 평온하지 않고 항상 소란스럽다. 진실로 자유로운 사회는 온갖 의견이 충돌하는 저잣거리 같은 곳이다.


실은, 20년 전 한 작가와 한 종교의 싸움의 과정을 읽는 동안 이상하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자꾸만 겹쳐졌다. 논쟁을 허하지 않는 사회. 일방적인 메세지만 전달하는 사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무엇보다, '아무도 진실을 기억하지 않는, 거듭 부인하면 과거의 진실을 지우고 새로운 진실을 확립할 수 있는(P.567)'사회. 바로 2015년 대한민국이라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짐한다. 그러니까, 잊지 말자고. 옳다고 믿는 모든 것을 위해 논쟁의 장으로 나서자고. '워낙에 참을성 없는 시대, 급격한 변화의 시대, 그래서 어떤 화제도 오래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P.442)'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말자고 말이다. 여기, 이렇게. 13년에 걸쳐 기억하고, 믿고, 논쟁의 장에 뛰어들어 결국 승리를 거머쥔 증인이 있으니까 말이다. 


'글'의 힘을 믿는다고 했었던가. 그와 동시에 나는 '유머'의 힘도 믿는다. '암담한 상황에서도 희극적 요소를 찾아야 하는 시절(P.267)'이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 '유머'야 말로 지지부진한 긴 싸움을, 지치지 않게 해 주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줄테니 우리는 아무리 암울한 상황일지라도 유머를 잃어서는 안 된다. '유머'가 힘이 되어주는 증거는 이 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800페이지의 길고 긴 이야기 곳곳에 담겨져 있는 영국식 유머의 향연이, 이 긴 (800페이지와의) 싸움에 지지 않도록 도와주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말이다. 루슈디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컬럼비아 대학으로 연설을 하기 위해 뉴저지 티터보로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아홉 대의 차량과 선도를 위한 모터사이클 행렬이 흰색 방탄 스트레치 리무진을 에워싸고 사이렌과 경광등, 많은 경찰관의 호위를 받게 되었을 때, 밥 경위에게 이건 너무 거창하지 않나 하고 묻는 장면에서 "선생님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이 길 전체를 봉쇄하고 건물 지붕마다 저격수를 배치했겠죠. 오늘은 그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라던가, (이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트 표시까지 했다.) 세계문화학회 모임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만난 움베르토 에코가 루슈디가 쓴 <푸코의 진자>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루슈디! 얼간이 에코가 여기 있소!"하며 다가와서 친해졌다는 장면 같은. 이런 유머야말로 경직된 관계를 말랑하게 해 주는 힘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너무 진중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머'의 힘을 믿자. 그리고 확신이 담긴 '글'의 힘도. 그것은, 언제나 옳을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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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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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툭, 하고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누구를 향해 뱉어낸 말인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말도 안 돼요,'라고 나라도 대신 누군가에게 이건 부당하다고 이건 너무하다고 항변해야했다. 그렇게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같은 크기의 불행과 같은 크기의 행복을 나누어 주셨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떤 불행도 감내할 수 있었고 어떤 행복엔 감사할 수 있었는데. 이건 나의 그 믿음을 깨트려버리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감내하기엔 너무 무거운, 슬픔이었다.


여태 나는 토끼 베니, 구작가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책을 받았을 땐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러스트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었는데 중간 즈음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야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따스한 색감의 일러스트가 오히려 더 아팠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시력을 잃어간다는 것은, 그 절망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걸까. 나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무게 앞에 허투루 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기에 차일피일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미뤄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그 절망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웠고 하찮았다. 세상의 어떤 문제에는 그저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이 가장 큰 위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깜빡이는 커서만 한참 바라보다 결국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다시금 책을 손에 쥐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 페이지를 넘겨가며 다시, 아픈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다시, 예쁜 그림을 눈에 담다보니 퍼뜩, 비록 구작가님에게 닥친 일은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구작가님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나 역시 구작가님과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구작가님은 하나하나 그 버킷리스트를 '이루어내는 사람'인 반면, 나는 그 버킷리스트를 '바라만 보는'사람이지 않은가. '이루어냄'의 행복수치로 따지자면 오히려 불행한 쪽은 나였다. 가만히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쪽은 바로 나인데. 나와 구작가님 사이에 가로놓인 커다란 벽만 바라본 채, 그 벽 뒤에서 놓인 구작가님의 예쁜 꽃밭을 보지 못했구나. 그래, 구작가님은, '괜찮'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은, 슬픔의 무게에 짓눌린 침묵이 아니라 이뤄냄이라는 행복을 위한 응원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무언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계속 행복할 것 같아요.


언제나 그렇다. 차고 넘치는 사람은 본인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풍족함 속에 안주한다. 그런 삶은 빈곤하다. 어쩌면, 조금 덜 가진 사람. 조금 부족한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방법을 찾아내고, 직접 실행하는 진짜 풍족한 사람이 아닐까.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구작가님의 삶을 살아가는 강한 모습이 참 예뻤다. 상실에 분노하고 아파하기보다는 이뤄냄에 만족하고 아직도 이루어낼 것을 발견해냄에 기뻐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행복하기를. 매일 매일이, 괜찮은 하루이기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예쁜 사람의 이야기.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꽤 오랫동안 묵직하게 가슴속에 남아 게으른 나에게 오늘에 안주하는 나에게 말을 걸어줄 것 같다. 찾으라고, 그리고. 이뤄내라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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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옹동스1

스노우캣의 세번째 책, 옹동스.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통해 너무나도 익숙해진 스노우캣의 세 번째 이야기. 

아기자기한 스노우캣의 그림과 고양이 집사로서 살아가는 소소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02.나답게 사는건 가능합니까

책의 제목을 보고 문득, '나답다'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던져야했다.

이십년지기 친구들이 서로의 흔들리는 시간을 보아오며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함께 역사를 만들어 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와 나의 친구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고싶다.


#03.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책 만큼,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전주 국제영화제 출품작인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끝내 보지 못한 채로 지금이 되었지만, 책으로라도 비비안마이어라는 수수께끼의 사진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고싶다.

공개하려 찍은 것이 아닌 사진에 담겨진 자유로운 시선을 만나보고싶다.


#04.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 생텍쥐페리 잠언집

언제나 모든 문제는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서로를 길들여'가는 관계를 쌓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이 속도전의 시대에

생텍쥐베리의 잠언집은 조금씩, 천천히, 익숙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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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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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벌써 1년이다. 처음 사고가 났던 날을 떠올려본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업무 때문에 켜 놓았던 네이트온 속보로 사고 소식을 접했고 잠시 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소름이 끼치는 오보인 '전원 구조' 뉴스까지가 그 날 밤 12시가 되기 전에 내가 접했던 세월호 소식의 전부였다. '전원 구조'오보를 마지막으로, 아 잘 해결 되었구나 하고 관심을 접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업무를 마치고, 저녁을 먹었고, 영화를 보았고,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그리고 잠자리에 눕기 전에 잠시 TV를 틀었다. 그런데 이미 12시간 전에 '잘' 마무리 되었다고 알고있었던 오전의 그 사고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왜? 왜? 전원 구조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나는, 우리는. 국가의 무능으로인해 꽃같은 생명들이 물 속에 가라앉아 사그러져가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주는 폐색감. 내 생애, 처음으로 강렬하게 느껴본 폐색감이었다. 그리고 그 폐색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갑갑하게 내 목을 죄어왔다.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언론의 무책임하고 예의없는 포인트가 어긋난 보도는 계속되고, 정부의 무능과 정부의 몰염치함은 점자 우리들을 지치게 했다. 너무나도 강력한 폐색감이 주는 피로. 나는 그 피로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세월호를 외면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몇 서명운동에 이름 한자 보태는 것으로 외면하고있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면죄부를 주려 했었던 것 같다.


책을 받은지 한참이 지나고도 차마 책장을 열지 못하다가 서평단 서평 마감일이 가까워와사여 겨우 지하철에서 처음, 책을 펼쳐보았다. 몇 장 넘기지 않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책을 덮었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 된 것이 없는데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니. 이 시간의 벽에 나는 또, 갑갑해졌다. 이 폐색감이 과연 해소되는 날이 올까 싶다. 지나간 시간에 '만약'이라는 말이 얼마나 덧없는 단어인지 안다. 하지만, '만약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건. 이 책을 읽고 유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고는 절대 쓸 수 없다.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고로, 그것도 전대미문의 사고로 피붙이같은 자식을 잃고, 그리고 그 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언행으로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존재해야하는 이유,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엄마 아플 때 죽이라도 끓여주고 싶어 요리사가 되고싶다던 건우, 의사가 되어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고싶다던 미지, 장학금으로 부모님 결혼 20주년 여행을 보내주었던 선생님이 꿈이었던 승희, 아버지와 둘만의 생활이었지만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 아버지와 이곳 저곳에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소연이. 책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해서 국어선생님이 꿈이었던 호성이, 친구들과 게임, 여행을 좋아했던 창현이, 스튜어디스가 되고싶어했던 예쁜 지성이, 음악을 좋아하던 잘 웃던 아이 수현이, 예쁘게 돋보이는 걸 좋아했던 연예인이 되고싶었던 채원이. 공부도 잘하고 똑부러지게 미래계획도 세우던 준우, 조향사가 되고싶어했던 세희, 어른스럽게 어려운 집안에 중심역할을 해 주었던 다영이, 어린 동생들을 잘 돌봐주던 다정다감했던 제훈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다른 모든 희생자들에게 담겨져있을 삶, 그리고 이야기. 이 이야기를 읽고난다음엔 절대로 그 누구도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피곤하다, 지겹다'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아직 '그만'해서는 안 되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며, '피곤하고 지겨워'서는 안 되는 우리의 삶 바로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이다. 



엄마들이 먼저 깨어 있어야지. 내 자식 내가 그렇게 키워야지.

'내 자식만 잘살면 돼'라는 마음으로 아이들 키워서는 진상규명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고 봐요. 지금부터 그렇게 키우면 

오래 걸리겠지만, 어쩌면 내가 죽기 전에 그런 모습을 못 보게 돼도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이야기

누구는 진실을 밝히는 게 뭐 중요하냐. 앞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라고 하는데,

썩은 데가 있으면 그곳을 파내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해야 하는데 그냥 두고 새 살이 돋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돼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못하고 의문만 남기는 법이라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어요.

그때가서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냐고.

안전에 대해서도 자기들 일이라고 생각을 못하는 거야. 내 자식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 못 해.

간담회 가면, 내가 우리 자식 물에 빠져 죽지 않게 하려고 수영 가르쳤다고 그런 얘길 해요.

한게 그게 개인이 노력해서 수영 잘해서 될 게 아니잖아.

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말하는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일이라고 생각 안해요.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

- 2학년 9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 이야기


김혜리 기자님께서 영화 <한공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서로의 아이를 지켜줘야 하거든요. 내 아이만 지켜서는 다 못지켜요. 아이들의 그 긴 인생동안.",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이죠."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씨 이야기,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김혜리 기자님의 그 단호한 목소리가 함께 떠올랐다. 우리가 진상규명을 반드시 해야하는 이유. 그것은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서도,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 하나의 이유.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위해서도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월호를. 지겨워 해서도, 피곤해 해서도 안되는 것이 아닐까. 본인의 일이 아닌 어떤 이야기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슬프고, 눈물이 나는 일이 조금은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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