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다정해지기로 했습니다 - 잠들기 전,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디아 지음 / 카시오페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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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불혹이 되었다. 불혹不惑.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한다. 이 단어 때문은 아니지만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뀔 땐 정말이지 아무 생각 없는 천둥벌거숭이에 가까웠는데 4자를 마주하니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인생의 무게감이 달라진 것이다. 세상 일에 그만 정신을 빼앗겨야지. 내 욕망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요즘의 난 내 욕망의 민낯을 제대로 바라보려 한껏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때에 이 책의 서평단에 선정된 것은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까. 이번 서평단 모집은 '블라인드 서평단'이었기 때문에 명상, 마음 챙김, 마음공부와 관련된 내용인 줄 전혀 몰랐었는데 꼭 필요한 때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마음공부와 명상-요가를 통해 먼저 겪고 발견하고 깨달은 경험을 나눠온 디아 작가의 새 책 #나에게다정해지기로했습니다 를 읽었다. 적당히 말랑한 내용의 책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었어서 침대에 누워 읽다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아 마음의 힐링보단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내 아픈 마음만 자꾸 되뇌며 거기에 반응하고 살아온 습관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픈 기억을 자주 꺼내면 아픔의 크기가 실제보다 몇 배로 커집니다. 심리 상담을 잘못 받으면 이해받고 위로받는데 그칩니다. 이때 어느 정도 위안을 느끼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그동안 내 마음을 어떻게 써 왔는지,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써야 좋은지 너무 모르고 살아온 나의 무지를 바라봐야 합니다. 위로만으로 끝나면 마음이 성장하지 못하거든요. 이런 과정을 천천히 거치면 비틀린 기억이 '바르게'펴져요. 그러면 비틀렸다고 느낀 삶의 어느 부분도 점점 바르게 펴집니다. 마음 챙김의 원래 뜻은 바른 기억이라고 했죠? 그러니까 마음 챙김 하는 연습은 바르게 기억하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 문장을 읽고 생각했다. 작가님이 말하는 나에게의 다정함은 무작정 친절하기만 한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그 다정함은 곧고 바른 마음이라는 것을. 나에게 다정해지는 것은, 삐뚤어져있는 마음을 다독여 다시 옳은 곳으로 '데리고 오는 힘'을 가진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회피성으로 떠나는 밖으로의 여행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보자며 작가님은 먼저 떠난 오지 탐험대원으로써 뒤따르는 여행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흔들리는 우리들의 마음의 연못을 더럽히는 세 가지 오염원(탐냄, 성냄, 어리석음) 중 탐냄과 성냄에 대해 깊게 탐구해 보는 책 읽기였다.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이야 인간이라면 응당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을 얻은 뒤에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하는 그 '더, 더'하는 마음이 바로 탐냄이며, 이 탐냄은 자연스럽게 성냄과 연결된다고 한다. 탐냄은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없다. 탐내는 만큼 실망하고, 그 실망은 성냄으로 이어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냄'의 범주 안에 '자기 연민'까지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최근 내 마음에 귀 기울이며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덜어내기 위해 애쓰며 얻어낸 두 가지 키워드는 욕망 다스리기, 비대한 자아 바람빼기였는데 이게 탐냄과 성냄을 다스리는 내용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마음공부의 필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명상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책날개에 적힌 작가님의 전작 <1일 1명상 1평온>에 관심이 간다. 직접적인 명상의 방법론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것 같으니, 얼른 찾아 읽어보아야지. 꼭 필요한 때에,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책을 만나 좋았다. 하루의 일과에 명상의 시간을 넣어보도록 시간을 내 보아야지. #별숲밑줄 #2022별숲책일기 #카시오페아 #디아작가 #명상 #마음공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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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계절 - 차와 함께하는 일 년 24절기 티 클래스
정다형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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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다듬어나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고 성급하게 취한 취향에서는 설익은 향이 난다. 제대로 익지 않은 취향에 대해 말할 때면, 제 몸에 착, 붙지 않아 요란스럽게 덜그럭대는 빈 수레같이 시끄럽기만 해서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이다. 차를 즐기기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그에 대해 쉽게 뭐라 말하기 꺼려지는 것은. 좀 더 잘 익히고 싶고 깊게 들여다보고 싶은 일. 아직은 공부가 더 필요한 일. 내가 너무 어렵고 까다롭게 다가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 바로 '차의 세계'였다. 그런 나의 바람을 조금쯤은 이루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책, #차의계절 을 만났다. 세상의 모든 차 산지와 차밭을 여행하며 찻잎을 고르고 이야기를 파는 사람. 영국과 인도, 그리고 일본에서 차를 공부하고 차와 관련된 다양한 경력을 쌓아왔고, 현재 티 전문 브랜드 '티에리스'의 대표 티 디렉터로 활동 중인 정다형님이 쓴 책이다.

차의 종류와 차 도구, 차 보관법, 우리는 방법 등의 기본 지식과 함께 1년 24절기에 어울리는 차를 추천하며 세계의 차 산지를 소개하고, 차와 관련된 문화 이야기를 함께 엮어내어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차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정말 좋았다. 중국, 일본, 대만, 인도를 넘어 스리랑카와 네팔의 차에 대해서까지 알 수 있어 내 차 세계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밀크티, 아이스티, 과일 티, 리큐르 티 등 더욱 다채로운 방식으로 차를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해 주어 더욱 즐거웠다. 특히 리큐르 티 말이지 후후후. 아, 그리고 티 테이스팅 용어 리스트도 있어서 앞으로 차를 마신 뒤 기록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찻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JTBC예능, '효리네 민박' 때문이었다. (아직도 일상의 BGM으로 틀어놓곤 하는 예능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물을 끓이고, 퇴수기 위에 다구를 늘어놓고 보이차를 마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어찌나 근사해 보이던지. 이후로 찻자리를 자주 찾아다녔다. 집에서도 즐기고 싶어 몇몇 다구를 구매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돈이 많이 들기도 했고. 올해는 이 책을 곁에 두고 조금 더 부지런히 차와 대면해 보아야겠다. 몇 해 전에 구매했었던 절기를 소개해 주는 책 <시간의 서>와 이 책을 함께 곁에 두고 24절기를 담뿍 음미하는 한 해를 보내보려고 다이어리에 24절기를 표기해두었다. 이제 4일 뒤면 입춘이다.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계절의 시작을 추천해 주신 차와 함께 하고 싶으니 연휴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닐기리 티를 주문해 보아야겠다.


올해엔 마음에 꼭 드는 자사호 혹은 티포트를 하나 꼭 마련하고 싶다. 지난해에 도자유희전 갔을 때 마음에 들어 구매했던 저 물방울 찻잔과 세트인 티포트도 자꾸 생각나고... 아무튼 성급하게 고르지 말고 천천히 오래 공부하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가을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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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밀란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요리하는 셰프의 정통 파스타 레시피 김밀란 레시피
김밀란 지음 / 다산라이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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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 토마토소스에 면만 넣어 만드는 파스타도, 왜 내가 하면 맛이 없을까? 파스타, 라면 끓이기만큼 쉽다!라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뭐가 문제일까. 파스타뿐이랴. 실은 라면도 그다지 맛있게 끓이지 못한다. 먹는 건 기똥차게 잘 먹는데, 만드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 다산북스에서 #김밀란파스타 서평단 모집 글을 보았다. '그 어떤 요리보다 쉽고 간편하게'라는 문구에 홀려 서평단 신청을 하였고, 서평단에 선정이 되었고, 그렇게 받아 쥔 책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를 절망시켰다. 결코 쉽고 간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상정한 독자는 적어도 시판 파스타 소스로도 맛없는 국수 요리를 (... 그렇다. 그것은 파스타라고 할 수 없는 요리이다! 아니 요리라고도 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만드는 나는 아니었던 것이다. 책을 받고 소개된 파스타를 집에서 한 번 만들어 먹어볼까, 했으나 조리도구 파트에 이미 기가 질려버려서 선뜻 뭐 하나 시도해 보지 못했다. 결국 한 해의 마지막 날, 퇴근을 한 뒤 집에 있는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알리오 올리오에 도전해 보았다.


요리는 물론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숫자로 정확히 제시되지 않은 모든 부분에서 아마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몇 초 후 바로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김밀란 선생님이 생마늘인 채로 불을 끄라고 하시진 않았을 텐데 내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 속의 마늘 알알이 그렇게 아삭아삭할 수가 없었고, 면수를 조금씩,이라고 했다고 정말로 조금씩 넣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소스가 끈적하고 되직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았을 테고. 요리 못하는 애들이 그렇더라고. 조금씩 조금씩 하라는 데로 안 해서 결국 모든 것이 잘못되고 마는 것이지...


그렇다고 이 책이 요리 무지렁이에게 전혀 필요 없는 책이었냐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글로 읽는 '요리 경험'은 요리를 먹는데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건 파스타와 생 파스타는 어떻게 다른지, 생 파스타와 뇨끼는 어떻게 만드는지, 파스타 브랜드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덴떼는 뭔지, 만테까레는 뭔지.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을 글로 만나본 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먹는 파스타와 뇨끼 요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알고 나니 좀 더 식사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평소 요리, 파스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즐겁게 볼 수 있었을 책, 그러나 나같은 무지렁이도 음식과 관련된 지식과 에피소드를 즐겁게 읽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먹는 즐거움을 아는 자는, 결국엔 만들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장함) 이 책에 소개된 요리 중 관심 가는 요리가 많았다. 특히 감자를 좋아해서 감자 뇨끼, 감자 디딸리니가 무척 먹어보고 싶었다. 라구로 속을 채운 리가토니 그라탕은 사진 속 음식이 정말 먹음직해 보여서 꼭 해 먹어 보아야지,라고 다짐했다. 또 된장이나 고추장을 사용한 K-파스타도 소개되어 있어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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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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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님의 '루나파크' 웹툰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더라. 대학교 졸업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같아서 더 공감을 하며 사랑했던 웹툰이었다. 광고 회사에 다니다 퇴사를 하고 영국으로 떠났다가, 갑자기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한 작가님의 지난 십여 년을 함께 지켜보아오다 보니 괜히 막 친구 같고, (틀려) 정이 갔다. 시인이 된 루나, 홍인혜님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시인이 된 카피라이터가 '고르고, 고른 말'에 대한 이야기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창비 스위치에서 서평단 모집하는 것을 보고 냉큼 신청해 보았는데, 나의 오랜 팬심을 눈치 채주셨던 걸까, 운 좋게 서평단에 뽑혀 책을 배송받았다.

마음의 풍경을 포착한 말, 영혼의 각도를 바꾼 말,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할 때 서로에게 건네는 말, 카피라이터로서 '일'하며 건져올린 말, 그리고 꽉 닫힌 세상에 똑똑, 노크하여 문을 열게 만드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나는 특히 2부의 <우리가 말을 섞을 때>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온기가 가득 담긴 다정한 말, 사랑이 가득 담긴 다정한 말. 서로를 무너지지 않게 다독여주고, 버티게 만들어 주는 말들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꼭지는 <우리는 모두 입체다>. 항상 자주,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함부로 단정 짓고 싶어질 때 안돼, 그러지 마! 하고 브레이크를 잡으며 머릿속에 휘몰아치던 생각들을 작가님의 정돈된 문장으로 만나니 그래, 맞아, 이거야. 하며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을 인식할 때는 어떤가.

나를 대할 때의 풍부한 사유와 도량은 남 앞에서 인색해진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납작하고 또 납작하다.

인간이라는 다층적인 존재는 '나'라는 필터를 거쳐 삽시간에 밋밋해진다.

표정이 어두운 친구는 그저 툭하면 우울한 애가 되고,

종종 지각하는 동료는 마냥 게으른 사람이 되고,

늘 즐거워 보이는 동창은 생각 없이 밝은 녀석으로 일축된다.

나를 설명할 때는 많은 서사를 끌고 들어와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타인은 게으르게 헤아린다. 현상만 보고 가볍게 판단하고, 손쉽게 재단한다.


말을 고른다는 것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태도를 결정하는 일이다. 어떠한 언어로 나의 입장을 표명하고 나의 태도를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할지 정성스럽게 고르고 골라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지 않은 관성적인 언어, 내 불온한 태도를 비추는 혐오적인 언어로 자신의 매일을 꾸려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까 좀 더 정성스럽게 말을 고르고,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준 책,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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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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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시인님에 이어 김현 시인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앞서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이야기'를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시인의 에세이는 뭐랄까, '반짝이는 이야기'보다는 '단어의 날'을 발견하는 글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자주 쓰이고, 평범하게 쓰이는 단어들을 시인의 감성과 시선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익숙한 의미 위에 새로운 의미를 쌓아 더욱 풍성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각을 갈고닦아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시인이 쓴 에세이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일렁이다는 물에 떠서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동사.

마음은 동사,라고 어느 글에 쓴 적 있고. 덧붙이자면 일렁이다는 여름 동사의 일종.

겨울 동사는 속삭이다. 봄의 동사는 어른거리다. 가을의 동사는 흘러가다.

어른거리고 일렁이고 흘러가 속삭이는 마음의 사계절.

동사를 활용해 마음의 사계절을 그려보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을 설명하는 일

p.26


나는 어떤 동사로 나의 사계절을 표현해 볼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동사로 계절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참 어려웠다. 비록 그럴싸한 동사의 사계절을 그려내진 못했지만 잠시라도 우리말 단어들을 이것저것 떠올리며 계절과 어울리는 동사를 찾아보려고 애썼던 그 시간이 참 즐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얼마나 건성으로 단어들을 대했는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란 결국 나를 세우는 마음이며 그 마음만이

어쩌면, 하고 한 사람의 삶을 대신하여 살 수 있는 용기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의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는 것을 깨치는 연쇄작용이었다.

P127


이 책에선 이렇게 시인다운 이야기들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생활인으로서의 김현, 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자꾸만 특정 동네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는 이야기가 요즘 나와 너무 똑같아서 한참 웃다가, 사회가 정해놓은 길 밖에 서 있기 때문에 사회가 내어준 기회에 손조차 뻗어볼 수 없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문득, 깨닫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작가님의 사정과는 사뭇 다른 '비혼 가구'로서의 입장이지만) 생활 동반자 법과 차별 금지법의 필요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하는 너무 현실의 싸한 쇠의 맛이 느껴졌더랬다. 그러면서도 차별과 혐오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지지 않기 위해 끝내 다정해지겠다는 마음이 나에게 와닿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삶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죽음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모든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소란스럽게 앓고자 하는 이를 더는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살아 있다는 이유로 고요히 소멸해가는 이와 이제 더욱 가까이 지낸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고 싶다는 이들의 침묵에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고 수의 대신 입고 싶은 옷을 골라 놓거나

장례식장에서 계속해서 틀어놓고 싶은 음악을 미리 귀띔해 주는 사람을 벗으로 두고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P.142


현실이라는 바닥에 두 발을 착, 붙인 글이라서 좋았던 김현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특히 자주 눈에 들어온 단어는 '죽음'이었다. 올해 4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전 처음으로 '죽음'이 현실로 느껴졌었다. 십 년 전 친한 친구가 떠났을 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장례의 '주체'가 아니었다 보니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이 할머니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안 계셔서 손주인 오빠와 내가 장례의 주체가 되어보니, 갑작스레 몰려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습관처럼 '내 꿈은 단명'이라고 외치던 것을 멈추었다. 죽음을 가볍게 여기던 태도를 고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난 단어의 무게를 가벼이 느껴온 것만큼 삶의 무게 또한 가벼이 여겨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일 인분의 그릇을 내 힘으로 채워 왔는가,라는 물음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요즘. 죽음에 잘 이르기 위해 그릇 안에 무엇을 채워나갈지를 잘 생각해 보아 할 때다.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다정하기 싫지만 다정한 시인, 김현 작가님의 문장에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고 싶다'라는 이들의 '침묵'을 배웠다. '타인의 얼굴에서 시간을, 시간에 힘입어온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p.149)'이 어른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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