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에게 - 엄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엄마 탐구 일지
리니 지음 / 터닝페이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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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모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몇 해 전 어머니의 환갑을 기념해 함께 프라하와 드레스덴, 부다페스트와 비엔나를 자유여행으로 10일간 여행했던 적이 있다. 대체로 온화한 날들이었고 다만 드레스덴에서 격한 말싸움 한차례를 하는 것으로 좋은 마무리를 하였던 여정에서 나는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참 많이 발견했었다. 엄마가 소시지 킬러라는 점, 가이드 투어를 할 때 가이드분이 질문을 하시면 아는 것이든 모르는 것이든 가장 크게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점, 미술관보다는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 강가의 사람만 한 백조를 쓰다듬어볼 정도로 겁이 없다는 점 등등.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그 여행이 나에게 남겨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엄마의 삶을, 엄마라는 한 인간을 '잘 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다 알아야 할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애써 알려 하지 않고 여행지에서 '발견'하듯, 그 정도로만 알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흘렀고, 문득 생각해 보니 어쩌면 엄마를 '알아갈'시간이 내 생각보다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도 나이가 마흔을 넘어서고 나니 더욱더.

부모님을 이해하고,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어떻게 탐색의 물꼬를 터야 할지조차 모르는 불효 자식들이 많을 것이다. (나부터...) 이 책 <사랑하는 엄마에게>는 그런 우리를 위한 부모님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들로 빼곡하다. 사실 너무 많은 질문에 부담이 앞설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저자 리니님은 "모든 칸을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엄마를 (부모님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시간 그 자체"라고 우리 불효 자식들의(흐흐) 등을 토닥여주고 떠밀어 준다.


엄마의 이름의 뜻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엄마가 태어난 곳, 졸업한 학교가 어디인지 궁금해 본 적 있는지, 엄마가 좋아하는 계절은? 좋아하는 노래는? 이십 대의 엄마는 어떤 직업을 가졌었는지? 아빠는 어떻게 만났는지, 나를 키우면서 행복했던 때는? 힘들었을 때는? 미안했을 때는 언제인지... 그런 질문들 끝에 '이제는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할게' 챕터까지 갔을 땐 정말 불효녀는 울고요.... 반성을 많이 하며 엊그제도 엄마가 홈쇼핑 앱 설치하는 데 뭘 자꾸 틀리셔서 바락!! 화를 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엄마에게 해 주고 싶은 요리, 엄마와 가고 싶은 여행지, 엄마가 배웠으면 하는 것, 엄마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에는 되도록 가까운 미래에 실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들을 채워보았다.

당장 내일이 어버이날이다. 엄마가 몇 달 전부터 바꾸고 싶다 노래 부르시던 대용량 에어프라이어를 주문해놓았고, 출근길엔 카카오뱅크로 귀여운 카드 이미지에 감사 인사를 써서 용돈을 부쳐드리는 정도로만 이벤트를 준비했다. 내년 어버이날엔 이 책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득 채워 엄마에게 선물해 보아야겠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조금씩 조금씩 사랑하는 엄마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지.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나서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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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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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2023년 첫 전시 <조선, 병풍의 나라2>를 무척 재미있게 관람하고 돌아왔던 어느 날, 블랙피쉬 출판사에서 반가운 연락을 주셨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도 일했던 경력을 가진 고미술 해설가 탁현규님이 쓴 '조선미술관'의 서평 문의였다. 탁현규님의 책 <그림 소담>을 아주 즐겁게 읽었던 기억도 있고 아모레퍼시픽 전시로 한국 풍속화와 궁중화에 푹 빠져있던 시기라서 냉큼 책을 받아보았고 너무나도 즐겁게 일독했다. 사실 어지간하면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일 경우엔 솔직하게 서평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거나 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친구들에게도 추천했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책은 크게 궁궐 밖의 풍경을 담은 풍속화와 궁궐 안의 모습을 담은 궁중기록화로 나누어져 있다. 김홍도, 정선, 신윤복과 같이 잘 알려진 화가들과 조영석, 김득신, 김희겸 등의 화가들의 그림까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문화 전반에서 갖추기 시작한 17~18세기 그림을 통해 문화 절정기 조선의 모습을 담은 30점 남짓한 그림의 구석구석을 방대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톺아보는 작가님의 글솜씨가 정말 대단했다. 항상 한국의 옛 그림들을 볼 때 그림 속의 작은 조상님들의 모습을 찾으며 즐거워하는 것에서 끝났었는데 그 조상님들의 모습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떠한 의미였는지, 깊게 생각하고 공부해 볼 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앞으로 한국 옛 그림들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나는 1부의 풍속화보다 2부의 궁중기록화 쪽이 조금 더 재미있었는데 그림 속의 자그마한 사람들 하나하나 허투루 그리지 않은, 작은 도자기 하나에까지 꼼꼼하게 무늬를 그려낸 조상님들의 섬세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문화 절정기 시절 숙종과 영조 임금이 연이어 기로소에 들어가는 경사가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때 일어났던 중요 모임을 시간순으로 정확히 그림으로 남겨놓은 숙종 임금의 <기해기사첩>과 영조 임금의 <기해경회첩>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가마 탄 조상님들, 구경하는 조상님들, 춤추는 조상님들, 음식 차리는 조상님들, 행사 참여한 조상님들,... 수많은 자그마한 조상님들의 모습이 어떤 행사를 진행 중인 건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어서 정말 즐겁게 들여다보았다.


특히 이 아이돌 뺨치게 각 맞춰 춤추고 있는 처용무인들의 모습, 이 책 속 그림 중 나의 최애 그림이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이렇게 이 책은 옛 그림을 보는 일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작품 사진을 잔뜩 찍어두었는데 이 책에서 배운 대로 그림을 샅샅이 들여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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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사상고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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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어린 시절엔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어머니와 유럽의 곳곳을 두루 여행하였는데 어머니의 여행 일기에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색다른 문화, 낭만적인 장면들로 가득 차 있었던 반면, 쇼펜하우어의 일기에는 구걸하는 프랑스 빈민들, 채찍으로 맞는 병사들, 강제 노동을 당하는 흑인 노예와 같은 사회의 어두운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새싹부터 염세주의자의 그것이 아닐 수 없다. 17세 때 이미 이 세상은 선한 존재자의 작품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20대 초반에는 삶은 어렵고 불쾌한 것이며 그 세계 안에 존재하는 고통과 악을 보는 데서 철학의 근원을 삼은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가 행복을 논하는 것이 언뜻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맹목적인 욕망과 욕구로 인해 세상의 어둠이 태어나기 때문에 "개체 보존 욕구, 종족 번식 욕구, 이기심으로 나타나는 삶에의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그것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가 진정한 자유이며 그러한 상태는 소박한 식사, 청결, 청빈의 형태로 나타나며 고통의 긍정, 동정, 금욕을 강조하여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에의 맹목적인 의지를 극복하여 행복해질 수 있다는 (p.576)"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그동안 우리에게 비관주의자, 염세주의자, 자살 옹호자 등으로 꽤나 오해받아왔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내면의 부가 충분해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 없거나 전혀 필요 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p.37)", "자신의 힘을 이용해 정신적 감수성과 관련된 향유를 즐기는 사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생각, 작업에 몰두하기를 원해, 고독을 환영하고 자유로운 여가를 최고의 재산으로 여기며, 다른 모든 것은 없어도 되고 있으면 오히려 때로 부담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무게 중심이 완전히 자신의 내부에 있는 사람(p.44)"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의 홍수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무게중심을 내 안에 둘 줄 아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몇 해 전부터 내가 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의식하는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은 내가 아닌 그저 타인의 내면의 모습이기 때문에 (p.58)"결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문장이 이어지는 두 페이지는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결코 온전한 내가 아니다,라는 말은 흔히 들어왔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의 확장이 뭔가 눈앞의 비늘이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고통의 근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삶의 행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즐길수밖에 없다. 나의 고통을 긍정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욕심을 다스리며 말이다. 


#을유사상고전시리즈 #쇼펜하우어의행복론과인생론 #을유문화사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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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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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과 다음 순간 사이, 과거와 미래 사이, 그 틈새의 하얀 모호함. 원을 그리며 도는 시계의 분 표시 사이에 있는 공간처럼 비어 있는 것. 조용히 죽은 채로 드러나는 삶의 본질, 한 조각의 영원. 어쩌면 삶의 한 시기를 다른 시기와 가르는 건 고요한 찰나일지도 모른다. (p.250)"

지난달 을유 서포터즈 모임에 갔을 때, 편집자님, 그리고 마케터님 세 분 모두가 '쉽지 않은 책'이라고 하셔서였을까, 시작부터 조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었다. 이미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상태여서 더욱 책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상황을, 그 상황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상징들을 글자로 쏟아내는 주아나의 날것 그대로의 문장들이 낯설고, 때로는 두려웠고, 때로는 슬펐고 애처로웠다. 줄거리를 묻는다면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법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은, 줄거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었다. 우리의 하루를 생각해 보자. 집에서 나와 출근 후에 이런저런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 이 간단한 '줄거리' 속에서 우리의 머릿속에선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싹을 틔우고, 피어나고, 지고, 시들었다, 폭발하고, 부수어지는지를. 이 책엔 그렇게 매 분 매 초 본능적으로 야성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이 모조리 문자화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녀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녀의 생각의 흐름 그 자체에 온 마음을 내맡겨 버리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렇게 그 날것의 문장들 사이를 헤매다가, 더없이 예리한 문장에 베일 때의, 그 아찔한 희열의 순간.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어쩌면 이 책은 326페이지짜리 산문시였을지도 모르겠다. 미묘한 불쾌와 미묘한 희열이 뒤섞여 정말 묘한 느낌을 주는 이 불온하게 아름다운 붉은색의 책을 오래전 읽었던 마찬가지로 불온하게 아름다웠던 배수아 작가님의 <뱀과 물>옆에 놓아둔다. 흑과 적, 참으로 불온하게 잘 어울린다. 두 작가님의 책을 딱 한 권씩밖에 읽지 않았음에도 감히, 닮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짧은 식견으로 무모하게 내려버린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별숲밑줄 #2022별숲책일기 #을유서포서즈 #클라리시리스펙토르 #암실문고 #을유문화사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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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을유세계문학전집 123
막심 고리키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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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혁명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던 1906년. 순수하게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했을 막심 고리키의 작품, <어머니>를 읽었다. 자본가, 권력자들의 착취에 고통받는 러시아 인민들의 삶을 구원할 혁명을 꿈꾸던 그가 삶의 끝부분에는 결국 소비에트 문학계의 권력가로 군림하다 죽었다는 사실은 조금 김빠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사람들 앞에서 겁 없이 말하지 마라! 사람들을 조심해야 해. 다들 서로 미워하니까.

욕심과 질투심으로만 살아가거든. 악한 일을 하는 걸 다들 기뻐해.

네가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판단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널 미워할 거고 결국엔 널 망칠 거다!


"악한 일을 하는 걸 다들 기뻐해." 파벨의 어머니의 이 말을 읽으며 나는 소란스럽고 천박한 말을 쏟아내는 유튜버들을 떠올렸다.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가짜 언론사들을 떠올렸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어떤 종교인을 떠올렸다. 돈 앞에 더욱더 천박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안타까운 죽음에 제대로 애도할 시간조차 갖지 않고 지원금에 대한 얘기부터 지껄이는 천박한 정치인들과 뻔뻔스러운 태도로 교묘하게 죄를 빠져나가는 한 장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무뢰한 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악한 일을 하는 걸 기뻐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600페이지 남짓 되는 이 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100여 년 전의 러시아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지 않은가, 하고 자주 탄식했다. 

사실 '러시아 혁명',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에픽 속의 차갑고 서늘한 모습, 혹은 전함 포템킨의 그 소리 없는 절규의 모습뿐이라서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책을 읽었고 그래서 유난히 더 러시아의 시대 상황이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이미지의 힘은 참으로 강력하기도 하지... 아무튼,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들과 그의 동료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아들의 석방을 위해서 동참했을 뿐이다. 하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며 "짐승처럼 살면서 자기들이 잘 산다고 거들먹거리는( p.161)"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모든 것이 이상하게 평온하고 불쾌하게 단순한(p.178)"상황을 깨달아 간다. 어머니가 만나는 수많은 '파벨의 동료'들은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제각각 다른 시선과 의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혁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어머니의 '모성'을 통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권력, 그 권력 앞에 무너지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권의 본질을 향한 메시지. 이 소설이 오랜 시간 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삶이 있고, 아이들을 위해서 세상이 있는 거예요.....!(p.296)"라는 어머니의 말은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 우리가 두려워하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내일의 아이들에게만큼은 이 고단한 시대를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더 좋은 세상을 더 정당한 세상은. 더 이상적인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그 순수하고 숭고한, 단순한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소설을 읽으며 했다. 그리고 몇 해 전 겨울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던 마음과 지금 이 순간에도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소설 속 어머니의 마음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로 이어졌다. 

'사회주의 소설'이라는 단어로 이 소설을 가두기엔 너무 아까운 문장들이 많았다. 어떤 '-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돈과 권력과 욕망의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이 소설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어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세상에 얼마나 놀라운 것들이 많이 살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지, 그리고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p.375)"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좀 더 오래 감동할 수 있는, 미래로 이어갈 수 있는 가치를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선 나부터.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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