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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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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사랑한다. 섬세하고, 날카롭지만 다정한. 냉정하지만, 뜨거운. 세상의 부당한 일들을 눈 감고 넘어갈 수 없어 결국 디스크와 불면에 시달리며 책상 앞에 앉아 단단한 글을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소설 속에서 동시대의 폭력, 부당함, 부도덕함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황정은 작가님의 첫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파주로 이사했고,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삼가고 있으며, 타인의 애쓰는 삶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경의중앙선을 바라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애쓰고'있음을 생각하는 사람. 나의 '무사'에서 누군가의 '분투'에까지 선을 이어낼 수 있는 부지런하고 다정한 사람. 우리에게 '건강하시기를', 하고 인사해 주는 사람. 원래도 좋아했지만, 에세이를 통해, 그리고 최근에 시작하신 책읽아웃을 통해 조금 더 현실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와 주신 작가님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님의 글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더 크게 응원하고 싶어졌다.

특히 작가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어떤 '게으름'에 대해 생각한다. 여태 해 온 대로, 자기가 가진 것만큼만 헤아리는 게으른 태도로 내뱉는 어떤 '상투적이라서 해로운 말''에 대해 생각한다. '혐오라는 태도를 선택한 온갖 형태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차별받았다는 것에 분노할 줄은 알지만 차별한다는 자각은 없는 삶에 대하여. 기어코, 모르겠다는 의지에 대하여. 나는 타인의 삶이 현재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헤아릴 줄 모르는 무지와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차별을 차별로 치유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깨어있고 싶고, 깨어있었다 말하고 싶지만 나 역시 아주 자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차별을 하고, 혐오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P.134

나는 정치적이고 싶다. 가능한 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편이고 싶다. 고민하는 사람이고 싶다. 기어코 모르겠다는 태도보다는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 게으르게 혐오하기보단 부지런하게 이해하고 싶다. 꽤 멍청하고 꽤 게으른 나에게는 섬세하고 눈 밝은 소설가분들의 글이 꼭 필요하다. 황정은 작가님의 글은, 그래서 나에게, 필요했고,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내 삶은 그 일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내 삶에 있었고 나는 삶과 읽기와 쓰기를 통해 조금씩 학습하면서

본의든 아니든 조금씩 변해왔다.

그 일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

P.179-180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가족에게, 친구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상처받고 있을 사람들에게 '그 일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라는 단단한 말은 위로가 될 수도, 용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할 수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읽고, 쓰고, 보고, 생각한 것들을 통해 변화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내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아무튼, 계속해 볼 일이다. 황정은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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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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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 불러보는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권근영 기자의 <완전한 이름>이다. 도서관에서 <여자의 도서관>을 빌려온 다음날, <완전한 이름>의 발간에 맞추어 서평단 모집을 하는 게시글을 만난 것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서둘러 서평단을 신청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고, 운 좋게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비비드 한 컬러를 자랑하는 <여자의 도서관>과 이번에 읽은 책, <완전한 이름>을 함께 놓고 사진을 찍어본다. 단단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두 여성의 눈빛이 마음에 든다.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엘리자베스 키스, 노은님, 정직성, 베르트 모리조, 파울라 모더존베커, 버네사 벨, 천경자, 박영숙, 유딧 레이스터르, 힐마 아프 클린트, 나혜석, 아델라이드 라비유귀아르, 아르테시미아 젠틸레스키. 14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이 불려졌다.

첫 이야기부터 강렬했다.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는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남편을 따라 아우슈비츠행을 자청, 도착 직후 가스실에서 살해당했는데 그날 테레진에서 아우슈비츠로 간 1550중 살아남은 112명에 그 남편이 들어있었다는 삶의 아이러니에 말문이 막혔다. 홀로코스트라는 지옥의 시대에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며 희망을 부여잡았다는 프리들이 보여준 미술이 가진 치유의 힘, 그리고 바우하우스라는 진보적 교육기관에서조차 여성을 배제했던 남성 위주 사회의 한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이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 속에 스며든 한국 여성의 삶에의 애정, 최근 가나아트센터에서 작품을 만나본 적 있는 노은님 작가님의 작품에 스며있는 생명의 기운, 추상도 대단히 정치적일 수 있다고, 추상을 정치에서 분리한 것은 1980년대 민중미술과 단색화가 대립하며 생긴 오해라고 말하며 한국적 조형적 질서를 화폭에 풀어내는 정직성 작가님의 작품들, 버니지아 울프의 언니 버네사 벨의 노년의 자화상 속의 당당한 눈빛, 유닛 레이스터르의 당당하고 쾌활해 보이는 자화상, 아델라이드 라비유귀아르의 여성 작가들과의 연대, 아르테시미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머리와 마음에 잘 갈무리해두어야 할 빛나는 가치들이 가득 담겨있는 책.

<여자의 미술관>과 힐마 아프 클린트라는 예술가가 겹치는데, 두 작가님들의 힐마 아프 클린트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너무 시대를 앞서가 인정받지 못하고 외롭게 세상을 떠난 힐마 아프 클린트를 향해 우호적이고 애정어린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사후 20년 동안 작품들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남긴 힐마의 선택을 한쪽은 '두고 봐라, 그때 내 그림은 분명 인정받을 것이다'라는 자기 신뢰로, 한쪽은 '소심해져'있는 상태로 읽어낸다. (어느 책이 어떻게 읽어냈는지는 비밀!) 나는 전자의 해석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소심해져 있었다면 아마도 작품을 '폐기'해달라고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연달아 읽으니, 이런 부분을 발견해낼 수 있어 더욱 즐거운 책 읽기였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쓴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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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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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온 전시를 잘 기록하고 싶어 미술 관련 책을 읽고 있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한겨레출판 인스타그램에서 이 책의 서평단 모집 글을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서둘러 저요! 저요! 요즘 보고 온 전시를 잘 기록하고 싶어서 미술 책에 푹 빠진 저야말로 서평단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 이렇게까지 적진 않았다.)라고 서평단 신청 접수를 했고, 지난 목요일 책을 배송받았다.


철학과 미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유하게 만드는 데 그 아름다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

미술을 대하면서, 혹은 삶을 살아가면서 즐거운 철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끄러움을 다소 덜어내고 이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 사회는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매여 있습니다.

정해진 답을 기를 쓰고 찾기보다는 스스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로,

또 답이 될 수 있는 선택지를  획기적으로 늘려내는 철학자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들어가는 말 중


책의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철학,이라는 단어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졌던 책이 한결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느낌대로 너무 먼 곳을 바라보기보단 바로 지금 우리의 삶과 그림, 그리고 철학을 연결 짓는 작가님의 탁월한 솜씨가 매우 돋보이는 책이었다. 자신의 전공과 그림을 연결 지어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는 작가분들이 계셔서 정말 행복하다.


첫 챕터부터 그림 자체는 익숙하지만 단 한 번도 손을 클로즈업해 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그림 '천지창조'를 통해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던 니체를 그림 앞으로 불러오고, 영원회귀하는 우리 인생을 영원히 반복되어도 만족스러울만한 아름다운 삶으로 한 차원 고양시키자고,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드높이는 삶을 살자고 말하는 작가님의 글 솜씨에 감탄하며 책에 빠져들었다. 책가도를 바라보며 '가치 다원주의'를 이끌어내고 어린아이가 사과를 따고 있는 톰 시에라크의 작품 '빨간 모자'에서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까지 이어지며 정치 국가의 사회계약설을 훑어낸다. 파울 클레 Paul Klee의 <상대의 지위가 더 높다고 믿는 두 사람의 만남, 1903>으로 루소의 자연 상태를 풀어내는데, 그 괴이하고 코믹한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최근 다른 책에서 <앙겔루스 노부스>라는 그림으로 만난 적이 있었던 '파울 클레'가 좋아져 버리고 말았다. 파울 클레는 특히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서, 이 책에서 많은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앙겔루스 노부스>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스쳐 지나가는 화가 중 하나일 뻔했던 파울 클레가 이 책을 통해 이름을 단단히 기억하는 화가가 되었다.




Paul Klee | Two Men Meet, Each Believing the Other to Be of Higher Rank, 1903

이미지 출처 :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62643



작가님은 위의 그림, <상대의 지위가 더 높다고 믿는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루소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교와 허영의 문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 비교가 단지 비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리 두기며 혐오로 번지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p.107)'는 문장의 서늘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뒤에서 정의의 여신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 이야기를 좀 더 심화시키는데, 아파트 브랜드나 타는 차, 가지고 있는 가방이나 옷차림 등으로 '전혀 필요 없는 곳에까지 구석구석 눈가리개를 치워놓고는 타인을 훔쳐보고 재단하려는 (...) 감아야 할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날카롭게 쳐다보아야 할 곳에서 눈을 감는(p.186)'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곱씹어 생각하게 만든다.



클림트가 작업한 오스트리아 빈 대학 강당의 천장 <철학>, <의학>, <법학>을 모호한 개념의 반대되는 이미지를 통해 더 강렬하게 본질을 드러낸다고 설명하며 철학자 '주디스 슈클라'의 사상을 소개하고,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파울 쿨레의 그림들을 여럿 소개하며 '관념을 눈에 보이게 하는 작품들.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띄우고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들(p.196)'의 매력을 엿보았다. 나는 실은 지독한 허무주의자이면서 냉소주의자인데,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내내 거기에서 머무르지 말라고, 한 차원 더 나아가 만물을 유쾌하고 성스럽게 긍정하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다시 나아가라고 말해준다.



인간은 비어있는 존재다. 

어느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불행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불행한 순간이 나를 지나갈 뿐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 아니라 악한 마음이 잠시 나를 스쳐갈 뿐이다.

나는 명예로운 인간이 아니라 명예가 잠시 나에게 와서 머물 뿐이다.

우리가 비어있다는 점, 딱딱한 돌이나 껍데기처럼 굳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존재로 말랑하게 변신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점은 

우리 삶을 한층 다양하고 즐겁게 한다.

비어 있는 구멍을 좋은 것으로 채우려고 노력하고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

이것이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P.208


어제까지는 냉소주의자였을수도 있다. 불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우리는,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자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가슴속에 응어리져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변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변할 수 있다... 그림을 보는 일, 책을 읽는 일, 좋은 음악을 듣는 일, 그런 일들이 결코 무용한 일이 아닌 이유는 그것에 있지 않을까. 마주하고, 읽고, 듣고 거기에서 얻은 감동, 기쁨, 혹은 불쾌함, 충격. 그런 것들로 내 비어있는 구멍을 채우려 노력하며 좋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제대로 된 질문을 통해 더 아름다운 내일로 걸어나가고 싶은 허기진 사람들이 이진민 작가님이 풍성하게 차려낸 식탁 앞으로 더 많이 초대받았으면 좋겠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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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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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하나인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가 방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명확한 숫자를 제시하며 현 상황의 위기를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조목조목 설명해 줌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확히 일치하는 기후 위기에 관한 책, #시간과물에대하여 를 읽었다.

마그나손 작가는 빙하 곁에서 태어나 빙하가 사망선고를 받기까지의 긴 시간을 지켜보아온 조부모와의 삶,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준비하다 북유럽 신화와 힌두교와의 연관성을 발견하며 깨닫게 된 신화 속의 연결고리, 어린 시절 본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짐했던 대로 악어의 보호를 위해 연구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외삼촌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을 보따리에서 풀어낸다. 전혀 연결점이 없는 것 같은 이야기들의 종착점은, 한 곳이었다. "이제 우리는 전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연장과 모든 장비와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상과 후손을 둘 다 실망시킬 것이다.(P.296)" 더 늦기 전에, '오래된 근시안의 신, '탐욕'(p.254)'에의 믿음을 거두고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는 외침이 한가운데 말이다.

마그나손은 1809년 아이슬란드에 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싶었던 예르겐의 '빈자가 부자와 똑같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일반 사람들의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생각, 상상할 수 없는 낯선 개념이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아이슬란드의 완전한 독립은 그로부터 140여 년이 지난 후인 1944년에야 달성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갑자기요? 갑자기 역사 이야기를요?라고 어리둥절해 있을 때, '자유'나 '평등'과 같은 단어와 같이, '해수산성화', '지구 온난화', '환경위기'라는 단어 역시 그때의 '자유'와 '평등'처럼 지금 우리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슬쩍 샛길에서 빠져나온다.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걸린 100여 년과 '환경위기'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는데 걸릴 100여 년의 시간의 무게가 과연 같을까. 더 좋은 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희망의 시간과 완전히 나쁜 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절망의 시간이 같을 리 없다. 게다가 1800년대의 100년 동안의 변화의 속도와 2000년대의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얼음이 물이 되는 -1도와 0도, 그 사이. 물이 수증기가 되는 99도와 100도, 그 사이. 무언가 전혀 다른 것 변해버리는 급변점은 그 한순간이겠지만, 실은 우리는 차근차근 단계를 밝아 변화의 순간을 맞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한순간의 티핑포인트를 향해 돌진하는 중인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구가, 급변하는 급변점이 어디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때라는 것만큼은 안다. 우리는 그 급변점을, 영원히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단어는 우리의 감정과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단어로 인해 우리는 존재의 상태를 파악하고 우리의 가슴에 잠들어 있는 것을 묘사할 수 있다.

단어는 보이지 않던 행동들을 엮어 얼개를 짠다.

(p.82)'.

어떤 식으로든 자연의 '이용 가치’를 논하는 경제학에 속해있는 권력으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들, 다국적 제조 기업에 값싼 에너지를 팔기 위해 물길에 막히거나, 수장될 위기를 맞은 자연들. 권력을 쥔, '어떤 사태가 와도 무사한 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결코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늘 굶주림과 공포를 부추겨 더 많은 계곡을, 더 많은 폭포를 기꺼이 희생하도록 조종하여(p.71)' 망가져버린 자연들... 티베트고원의 빙하 680곳을 조사한 결과 95%가 후퇴했고 알래스카에서는 98%의 빙하가 급속히 감소했음에도, 13곳의 빙하가 (국지 강수량이 증가한 덕에) 더 커졌기 때문에, 그것을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증거로 내세우는 권력의 말(p.206)'들이 우리의 감정과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행동을 엮는다. '전 세계 석유 이익이 하루 약 6000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서 산유국들은 우리의 어휘와 세계관을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주물렀다.(p.239)'는 문구가 머리를 꽝! 하고 내리쳤다. '현실을 창조하기 때문에 말을 소유하고 말을 배포할 수단을 소유해버린 (p.237)'권력의 말에 현혹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새삼 그 권력의 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후학자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 여러 책을 통해 깨닫는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 책의 앞과 뒤에서 반복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답이 되어줄 것이다.

"증조할머니가 1924년에 태어나셨으면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지?"

"아흔넷"

"넌 언제 아흔넷이 될까?"

"2102년 아냐?"

"맞아. 그때 너도 지금 할머니처럼 활기차길.

어쩌면 바로 이 집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네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처럼 2102년에도 너의 열 살배기 증손녀가 찾아와

이 부엌에 함께 앉아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어쩌면."

"계산 한 번 더. 네 증손녀는 언제 아흔넷이 될까?"

"2092에 94를 더하면...2186년!"

"그래. 상상할 수 있겠어? 2008년에 태어난 네가 2186년에도 살아 있을 아이를 알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그럼 1924년에서 2186년까지 전부 몇 년일까?"

"262년?"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p.28)

"250년 넘게 말이지.

그건 너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야.

너희의 시간은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

너희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자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시간, 너희가 빚는 시간이란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너희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단다."

(p.354)

내가 지금 기후 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그 무엇보다도 '우리 다음 세대의 삶'을 '지금의 우리'가 망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위의 문장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누군가의 할머니, 누군가의 아들딸, 손주, 손녀가 아니라- 당장 나의 증조할머니에서 나의 증손녀에게까지 이어진 가까운 사람들의 시간을 내 손으로, 극심한 가뭄과 극심한 폭우가 반복되고 해수면 상승으로 번영의 흔적이 모조리 사라진 세계로 빚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락한 삶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희생시킨 대가(p.229)'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낙원을 물려받아 망쳐버린, 이기주의와 탐욕의 노예(p.295)'로써 후손들에게 '수치'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후손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나를 위해서'. 우리는, 나는. 멈춰야 한다고- 책을 읽으며 수없이 STOP 경고등이 번쩍였던 것이다.

마그나손의 조부모님의 이야기에서, 배워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마음과, 자연에의 경외와, 사랑의 마음을. 그리고 그렇게 배워 일구어낸 것들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떳떳한 마음으로 전달해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수치스러운 조상이 되겠는가? 당당한 조상이 되겠는가. 우리는 지능이 있으므로, 옳은 선택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를 다 읽고, 달라이라마의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 새겨보았다.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탐욕에 눈이 멀지 않기를. 그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것이다.

저의 믿음이나 경험,

저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건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롭거나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자신의 삶이 쓸모가 있게 되는 거니까요.

(...)

부자들이 사치를 누려도

만족은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바라기 때문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으면,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면-

그런 삶은 의미를 잃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경이로운 지능이 있습니다.

이 지능을 활용해 세상의 행복을 늘리고

평화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공감을 사회에 선사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이바지하는 것 말입니다.

(p.123)

*본 리뷰는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은 책을 읽고 남기는 리뷰입니다.

두렵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책을 보내주신 #북하우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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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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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선하고 사려깊은 문장을 계속 써 주세요. 삶과 세상과 우리를 계속 다정하게 사랑해주세요, 하고 작가님을 응원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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