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종교에서 인간은  오랫동안  바라고 원했던 것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집착과 욕망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설파 하고 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인간은 배가 고프면 눈을 부릅뜨고 먹을 것을 찾아  배를 채우듯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에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도대체 위대한 사상이란 무엇입니까?'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한다는 것, 바로 그거야말로 위대한 사상 아니겠니?

'가장 위대한 것입니까? 정말 가장 위대한 길을 말씀하신 겁니까? 그것이 가장 위대한 것입니까?'

'매우 위대한 것이지. 그래, 대단히 위대한 거야. 그러나 가장  위대한 것은 아니다. 위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2차적인 것이며, 바로 이 순간에만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지. 사람이란 배가 부르게 되면 지난날의 일은 회상하지 않는다. 회상은 커녕 바로 그 자리에서 ,자, 이제는 배가 부릅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요? 하는 법이다. 그러니 문제는 영원히 미해결로 남게 되는 거지.'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 중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 <미성년>의 주인공 아르카디와는 소년의 친부 벨르실로프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본질인 욕망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기에 단순히 물질적인 충족 만으로 해결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일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원하고 욕망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삶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제도가 그 사회에 소속된 모든 인간들의 삶을 보장 해주지 못한다.

하루에 한 번 글로벌 커피체인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 편의점의 아메리카노를 먹는 것 그리고 봉지 커피를 털어 마시는 것의 행복의 무게는 카드로 지불한 금액의 크기와 상관 없다. 

재벌도 요플레 뚜껑을 햝아 먹는다고 대답 했듯이. 이것 저것의 가격의 크기에 행복의 크기가 좌우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의 경우는 다르다. 고통은 조건과 상관 없이 우리가 수용하고 지불하는 비용의 크기가 부에 비례하기에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힘겨운 고통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내가 겪는 수준만큼 고통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지.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야. 게다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정하는 데 아주 인색하거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중에서 

모든 고통은 절대적이고 상대적이다. 타인이 내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동체 사회에서 인간은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그 슬픔의 무게는 오로지 개개인만이 짊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진자처럼 왔다 갔다는 운명인 것이다.

인생은 빠르게 변한다. 인생은 한 순간에 변한다. 

당신이 앉은 저녁 식탁에서 인생은 끝나기도 한다.

Life changes fast. Life changes in the instant. 

You sit down to dinner and life as you know it ends.  

조앤 디디온(1934-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둑의 시작은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에서 유래 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 하며 별의 움직임에 따라 한 해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고대 중국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돌들은 기원전 2300년 경 중국의 요왕이 아둔하고 게으른 아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인 바둑을 시작했다.

한반도에 바둑이 전해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삼국사기'에 고구려 승려 도림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도구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 였던 바둑은  17세기  일본에서  막부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게임의 룰이 생겼고 오로지 바둑만 두고 사는 직업군인 기사제도와 본인방 같은 가문 대대로 바둑 기사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 가문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지역별 종파별 바둑 가문 대결이 시작되면서 전 열도의 대전으로 게임의 룰이 정비 되었다.

바둑의 룰은 간단하다.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이다.

한국은 20세기 초까지 흑과 백의 돌을 미리 바둑 판에 배치 하고 시작하는 순장 바둑을 두었지만 해방 후 일본에서 바둑 공부를 하고 돌아 온 조남철 9단이 일본 바둑 룰을 한국에 보급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바둑은 단 한 번에 게임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흑의 수로 중단 되는 것이 오래 전부터 지속된 게임의 룰이지만 일본 바둑은 여기에 상수(上手)에 대한 예외를 두고 일단 상대의 수를 봐 두고 다음 수를 다시 바둑이 재계 되는 시기까지 천천히 고심해서 대국이 중단될 때까지 마지막 수를 봉할 수 있는 규칙으로 변형 되어 왔다.

이렇게 자잘한 규칙과 예외, 만일에 대비한 비책까지 바둑의 현대 룰을 확립한 바둑 기사는 일본의 명인이라 불리는 혼인보 슈사이다.

일본의 메이지와 다이쇼, 쇼와 시대에 걸쳐 50년 동안 불패의 기록을 세운 바둑 명인 혼인보 슈사이는 상대 바둑 기사를 선발 하는 데만 일 년 반이 걸릴 정도로 만만치 않은 상대와의 게임에서 궁극의 승자가 되는 바둑을 즐겼다.

대국 조건도 각자 제한 시간 40시간에 각 대국 간격이 나흘 일정에 대국 중에는 줄곧 숙소에 머무르면서 승부가 날 때까지 바둑을 지속했던 명인은 결국 마지막 바둑 경기를 앞두고 숨을 거둔다.

제 21대 혼인보 슈사이(本因坊 秀哉 )명인은 1940년 1월 18일 아침, 아타미에 있는 우로코야 여관에서 죽었다. 세는 나이로 예순 일곱살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1938년 6월26일부터 12월4일까지 장장 6개월에 걸쳐 세기의 바둑 대전이 벌어졌다.

 14회나 계속된 이 경기는 65세의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대국 경기로 그는  경기 중반에 병으로 쓰러져서  11월 중순까지 석 달 동안 경기가 중단 되었다가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자 마자 겨우 제개 되었다.

하지만 50년 간 이어온 '불패의 명인'이라는 기록이 30세의 젊은 신성에게 깨지고 결국 대국이 끝나고 나서 1년 후 1940년 명인은 원래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을 쓰지 않는 날이면 항상 바둑판을 펼쳐 놓고 바둑알을 만지작 거리며 바둑판에 흑색과 흰색 기보를 두고 읽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8년 6월부터 12월까지 약 반년 동안 치러진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마지막 대국을 직접 참관하는 동안 신문에 총 64회의 관전기를 연재하며 일본 열도를 바둑의 열풍으로 몰고 갔을 정도로 바둑 애호가 였다.

일본의 바둑 역사는 약 300여년으로 [명인 名人]이라는 호칭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엔 모든 걸 다 차지할 수 있는 직위일 정도로 바둑 판에서 승자의 자리에 올라가면 막강한 세력을 과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나서 부터 바둑계의 승자인 명인들이 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명예뿐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에 실존 명인 혼인보 슈사인는    1914년 마지막으로 명인 名人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명인의 하얀 부채가 얼음물을 얹은 검은색 칠(漆) 쟁반에 비치어 움직이는 고즈넉함. 관전은 나 혼자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50년 동안 바둑의 명인이였던 혼인보 슈사이는 삼십 년 동안 흑을 쥔 적이 없었다.

그는 이인자가 없는 일인자였고 살아 생전 후진 가운데 8단도 없었다.

동시대 활동 했던 바둑 기사들 중에서 그의 지위에 견줄 자가 없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십 년 동안은 일본 바둑계에서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승부를 넘어선 기사도 나타나지 않았고 계승자도 없었다.

흑과 돌의 집짓는 게임을 '도道'의 예술로 끌어 올려 기와 예절을 갈고 닦는 명인 바둑 기사를 탄생 시킨 곳은 일본이였지만 일본의 바둑의 기예를 누른 상대는 한국의 바둑 기사들이였다.

한국 바둑의 명인 계보는 한국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9단이 터를 닦기 시작해서 김인 9단-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그리고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거둔 이세돌에서 현재 2000년생 신지서 9단으로 이어진다.


2019년 1월부터 2026년  현재 까지  세계 1위인 신진서는 14억 중국의 최고 기사(棋士)들을 줄줄이 무너뜨린 무서운 20대 신진서 9단은 엄청난 인해 전술 전략을 펼치며 만리 장성 같은 바둑 게임 판을 키우고 있는 중국 바둑 기사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대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바둑 기사 다섯 명이 신진서 9단에게 달려 들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한 해 동안 82국을 소화하는 신진서 9단은 상대가 강할 수록 묘수가 떠오르고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날 수록 정신이 집중 되어 강자들을 꺾을 때 마다 자신감이 붙어 마지막 승자 자리에 올라가는 바둑 인간  알파고다.

5일 동안  이어지는 결승 대국이 시작될 때는 신진서 9단은 혼자 다섯 명의 중국 바둑 대표들을 상대 할 때는 게임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40분 부터 저녁 6시간 까지 경기에 임하고 중간 휴식 시간에 식사와 주변 산책을 하며 마지막까지 온전히 바둑판과 혼연 일체가 된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복기를 하고 복기가 끝나면 새로운 상대인 인공지능 바둑을 연구 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청파로 한국경제TV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2국에서 현존 최고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카타고(KataGo)를 상대로 290수 만에 한국의 천재 바둑 기사 신진서 9단이 흑 4집반승을 거뒀다.

세계 최정상급 기사라도  알파고(2016년) 등장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한 인공지능을 상대로  두 점을 깔고 이기리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0년 생이 혼자 중국과 일본의 바둑 기사들을 제압하고 인공지능 카타고를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건 지속적이면서 일률적인 습관 덕분이였다.

신진서 9단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9시 기상

-식사 전 기보, 두 개 

-오전 11시 전 까지 아침 겸 점심 식사

-인터넷 바둑 공부

-오후 시간 동안 기보/기보/기보

- 오후 3시 쯤 간식과 휴식

-인터넷 바둑(이길 때 까지 게임을 지속한다.)

-저녁 6시 까지 기보/휴식/기보

-늦은 밤 이기면 산책을 나가고 지면 이길 때 까지 기보/기보/기보

박진감 넘치고 실감 나는 3D게임이 넘쳐 나는 시대에 흑과 돌을 만지작 거리며 몇 시간에 걸쳐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올려 놓은 게임은 과거 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지만 이 바둑판을 현실 세계에 옮겨 놓는다면 야생 정글과 같은 조직 사회 이고 그리고 죽음을 무릎 쓰고 영토를 지켜 내야 하는 전쟁터가 된다.

전쟁터에서 무장을 한 인간은 기계와 1대 1로 붙으면 죽을 확률이 99.9 퍼센트다. 따라서 맞서 싸워서 파리 목숨이 될 바에 최대한 시간을 끌어 저항해서 공략 틈새를 노리거나 적당한 시기에 타협을 해야 한다.

전투냐, 타협이냐’를 놓고 가장 오랜 시간 장고에 들어 간 신진서 기사는 순응하지 않고 저항을 하면서   바둑판 중앙의 천원 바로 위에서 상대의 돌을 끊는 강공을 시도하다  승률이 흔들려 97% 밑으로 떨어졌고 집 차이도 4집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신진서는 카타고와 수 싸움에서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고, 마무리까지 충분하게 남은 시간을 활용하면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치열했던 중앙 전투 전에서 신진서는 카타고의 수에 반발하고 공격하고 싶었던 순간이 수없이 많았지만 참고 인내하다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중앙으로 나와 끊어버리는 강공을 선택했다.

평생 동안 바둑판만 응시한 채 1년 365일 손에서 바둑 알을 쥐고 사는  명인은 바둑판을 벗어난 세상의 온갖 협작과 질투,교묘한 술책이나 속임수, 눈속임에 크게 개의치 않아야 하고  그런 시선과 모함에 휘둘릴 시간도 없을 것이다.

명인의 하루 일과는 바둑 알을 쥐고 바둑판을 바라보며 시작되고 하루의 마지막도 바둑 알을 손에서 내려 놓아야 끝이 나고 한 번 승부가 펼쳐 지면 끝장 날 때까지 승부를 보는 근성으로 인생의 모든 걸 바둑에 건다.

바둑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게 명인의 삶은 이해 불가다.

기껏해야 바둑이고 이기고 지는 승부의 게임이지만 바둑 판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서로 집을 지으려 다 보면 경계선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이렇게 흑과 백이 맞붙는 과정에서 흑과 돌의 대결은 마치 온갖 처세술이 난무 하는 세상의 축소판 처럼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바둑 판 위에서 펼쳐지는 오묘한 게임이다.

대륙 굴기로 최첨단 기술과 풍부한 인적자원 그리고 천연 자원으로 자력 강생하고 있는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아 나가듯이 중국 전역에 인공지능 칩을 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치 사회 경제 모두 혼돈의 도가니로 펄펄 끌어 오르고 있다.

지난 세기 중국이 만리장성을 쌓아서 세계에서 자신들이 최고라 여기고 있을 때  한반도의 엘리트들은 기득권과 당파 싸움에 몰두 해서 세계 정세에 뒤쳐지는지도 몰랐다.조선의 기득권층과 달리 일반 백성들은 뛰어난 지능과 손재주로 당대 세계 최고의 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의궤를 제작했다. 서구보다 앞선 인쇄와 세공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들 끼리 정쟁하며 국민의 삶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책 결정자들은 자신들 배만 불리는데 골몰하고 있다.

각자 도생의 시대다.

 인공지능과 공생 공존 하는  시대에 인간은 더이상 학교 선생도 전문가들의 조언도 백퍼센트 신뢰 하지 않게 되었다. 학습하고 기획하고 추진하고 해결하는데 인공지능은 손 안에 폰처럼 언제 어디서든지 호출 할 수 있다. 집을 구하고 계약을 하고 무언가를 찾아 헤맬 때도 인공지능은 내 안의 비서이고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의 심장을 부착 할 수 없듯이 인간의 뇌에 칩을 심더라도 인간은 기계처럼 사고하고 움직일 수 없다.

어떤 선택과 전략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겼다고 믿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잡념은 교활하다. 이겼다고 생각해 방심하는 순간이 자신이 파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임을 알고 있다. 목표가 눈앞이라면 그때야말로 조심해야 한다. 그때가 가장 큰 위기일 수 있다.

-신진서 9단의 <대국>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2019

어디서든 구입 할 수 있는 은색 테이프로  전시장 벽에 붙여둔 바나나 한 개

이 작품의 제목이 <코미디언>이라는 걸 확인한 관람객들이 대체 이 바나나가 무슨 의미일까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이에  20대 대학생이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며 테이프에 붙여진 바나나를 먹어 치웠습니다.

관람객이 먹어 치워 버려서 더 유명 해진 이 작품은 어떤 예술적 철학이나 진지함도 없이 오로지 미디어적인 소란과 관심을 유도한 코미디 같은 작품으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현재 이 작품은 동시대 예술 작품과 나란히  전시장 벽에 붙어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고 교과서를 비롯해 각종 미디어나 광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생각하는 사람 형상을 조각한 사람이 로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미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예술가로 앤디 워홀이 미국 슈퍼 마켓 어디에서나 팔고 있던  캠벨 수프 깡통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 법 한 예술품, 흔히들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 중에서 대체 이 작품이 전시장에 왜? 라며 의문을 갖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전시장을 찾을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나 그림이나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생소한 작품이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작품 ,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그려진 작품들과 마주 할 때면 "이 정도라면 나도 만들 수 있어. 그릴 수 있어"라든가 "이것도 예술이라고?"라는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소수의 내부 관계자들에 의해 선별 된 작품들이  예술 시장에서 살아 남는 건 극히 드문 일이고 저평가 되었던 작품이 어느 날 걸작으로 평가 받아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로 낙찰 받는 경우가 비일 비재 합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포름알데히드로 채워진 수족관에 갇힌 상어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른 오브제와 재료로 완성한 두 작품 모두 현재 유명 미술관에 영구 전시된 작품입니다.

 예술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었을까요? 아니면 세상이 예술을 바꾸었을까요?

@Scott-MoveableFeast 채널 영상에서 확인해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읻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버스 운전기사가 있다.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市)의 23번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은 월요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알람 소리 없이 일어나 아내에게 ‘굿모닝 키스’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친 패터슨은 아내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갖고 자신의 일터인 23번 버스에 올라 탄다.

버스에 시동을 걸기 전에 그는 수첩을 꺼내 시를 끄적인다.

또 다른 하나

네가 어렸을 때

너는 세 개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높이, 너비 그리고 깊이

마치 신발 상자처럼.

그러다 나중에 너는

네 번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

흠.

그러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차원...

나는 일을 해치우고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내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는  버스 백미러에 비친 이들이 자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거나  푸념할 때도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해진 정거장을 따라 운행 시간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 온 패터슨을 자신을 반기는  애완견 마빈을 쓰다듬고는  아내의 하루를 묻는다.

지난 밤 자신의 꿈 이야기를 늘어 놓던 아내는  매일  수첩에 시를 끄적이는 남편에게 시를 출판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흘려 듣고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산책 중에 그는 잠시 들리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이

나를 흔들어 그리하라 하네.


까무잡잡한 여인들,

일당 노동자들—

나이 들어 경험 많은—

푸르딩딩 늙은 떡갈나무 같은

얼굴을 하고선

옷을 벗어던지며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사과」,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그 다음날도 패터슨의 일상은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건 오늘의 날씨와 차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가 운전 하는 23번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만 바뀔 뿐이다.

패터슨은  매일 운행되는  버스 노선 시간표에 맞춰 살아가면서도 마치 찰나의 순간에 수면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꽃잎의 모습을 포착 하듯 버스 시동을 켜기 전  시를 쓰고 있다.

꽃잎 가장자리에서 하나의 선이 시작된다

하염없이 가늘고 하염없이

단단한 그 강철의 존재가

은하수를

뚫고 들어간다

접촉도 없이—거기에서

올라간다—매달리지도 않고

밀지도 않고—

멍 들지 않은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그 장미」,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버스 기사 패터슨은 대단한 기대나 거대한 야망을 품고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패터슨은 한번 쯤은 늦게 일어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고, 버스가 고장 나 일정이 변경되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처를 주거나 배신을 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지루할 정도로 무미 건조한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반복 속의 적지 않은 충돌과 갈등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무수히 내뱉는 말은 매일 바뀌는 날씨처럼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상흔을 남겨서 하루에도 여러 번 요동치는 감정들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움직인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매 순간이 연을 이루는 행과도 같아  일주일의 삶은  7연으로 쓰인 시(詩)일 것이다.

 시를 쓰며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도, 컵케이크를 굽고 기타를 치는 그의 아내 로라도, 패터슨의 단골 바에서 매일 밤 패터슨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주인장도, 이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도  각자의 일상을 시어로 빚어내는 예술가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80년대 뉴욕,  도심 곳곳마다 공권력과 시민들이 서로  뜨거운 불꽃을 내뿜으며 충돌했던 그 열기는  2018년 런던으로 이어져서 얼굴 없는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가  바스키아 풍의 인물과 개가 경찰들에게 불심검문(Stop and Search)을 당하는 대형 회화 작품 'Banksquiat'을 슬그머니 그려 놓았습니다.

강아지 스콧과 레트로 아날로그 기기를 장착한 로봇 제프와 함께 시공간의 통로를 뚫고 1982년 뉴욕 뜨거운 열기로 가득찬  맨해튼 뒷골목의 시간으로 돌아가 장 미셸 바스키아가 거리 곳곳마다 흩뿌린  불꽃의 탄생을 목격하게 됩니다.



1980년 뉴욕 거리 예술의 과거의 시간과 21세기  현재의 시대가 하나가 되는 여정을 @Scott-MoveableFeast 채널에서 시청하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