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 가는 어느 여름 늦은 저녁 매미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쓰고 있는 슈코쿠는 무사로 자신의 주군의 첩과 내통 했다는 누명을 쓰고 산골에 유폐된 채 주군 가문의 족보를 완성하고 십 년 후 할복 하라는 명을 받았다.

  남편이 간통이라는 죄로 유폐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무사 슈코쿠의  부인은 남편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추궁하지 않고 자식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유배지를 따라간다. 

유배지에서도 매일 저녁 일기를 쓰고 있는 슈코쿠, 그의 근황을 밀착 감시하라는 명을 받은 동료 무사 쇼자부로가 찾아 간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유배지에 처박힌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쇼자부로는 슈코쿠가 느긋하게 '일기'를 쓰고 있는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다.

유배자가 쓴 일기 내용이 궁금한 쇼자부로는 혹시라도 슈코쿠가 칠 년 전 측실과의 밀통에 관해 어떤 식으로 기재했는지 보고하라는 헤이에몬의 명이 생각나 그 일에 관해 상세하게 적혀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펼쳐 본다.

그러나 슈코쿠의 <저녁 매미>일기에는 유배지에 처하게 된 처참한 자신의 상황이나 심경은 어디에도 없고 그날의 날씨와 필사 한 자료의 종류, 분량과 함께 주군 가문 가보에 기재할 내용만 쓰여 있었다.

무사 슈코쿠는 어떤 각오로 매일 저녁 매미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유배지에서 일기를 쓰고 있었던 것일까?

“여름이 오면 이 부근에서 저녁매미가 많이 웁니다. 특히 가을 기운이 완연해지면 여름이 끝나는 것을 슬퍼하는 울음소리로 들리지요. 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몸으로 ‘하루살이’의 뜻(일본에서는 ‘저녁매미’를 ‘하루살이’를 뜻하는 ‘히구라시’라고 함)을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무로 민의 <저녁 매미 일기> 중에서

앞으로 몇 년 후면 할복 자살을 해야 하는 슈코쿠는 매 순간 두려워하거나 불안 해 하는 기색이 터럭 만큼도 없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하는 자신을 감시하러 온 젊은 무사 단노 쇼자부로에게 슈코쿠는 이렇게 말한다.

 '단노 공,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는 했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도 겁나지 않는다고 호언하는 것은 무사의 허세일 뿐. 나도 목숨이 아까워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합니다. 오십 년 뒤, 백 년 뒤에는 수명이 다하지요. 나는 그 기한이 삼 년 뒤로 정해진 것일 뿐. 하면 남은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단노 쇼자부로'는 죽을 날을 남겨두고 주군의 가문 족보를 써 내려가는 슈코쿠를 이해하지 못하고 혹시 그가 누명을 쓴 게 아닌지 의문을 품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한다.

  '여름 한 철 치열하게 살다 가는 저녁 매미처럼 구원을 호소하지도, 헛된 희망을 갖지도, 그렇다고 회피하거나 포기하지도 않겠다.' 라는 '저녁 매미 일기'를 한자 한자 적어나가는 슈코쿠는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일까 ?

 '무사로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무장한 무사라고 해도 죽음이 기다리는 서슬퍼런 시간 앞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 일까?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스스로 죽게 된다는 운명은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무사 슈코쿠는 칼을 쥐는 운명과 함께 스스로의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사람은 언젠가 죽어야 하는데. 그것이 두렵지 않나.’

무사 정신으로 죽음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주군의 명에 따라 할복을 할 각오를 한다 해도 막상 자신의 칼로 목숨 줄을 끊어 버리는 순간 만큼은 두려울 것이다. 


매미의 수명은 7일에서 8일 정도로 최장 7년에 달하는 유충 때의 수명에 비해 성충으로 탈피하고 난 후의 수명은 굉장히 짧다.

매미는 유충 시기에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고 자라다가  번데기 과정이 없이 탈피 과정을 거쳐 어른 벌레가 된다.

이상태를 곤충계에서는 불완전변태 과정이라 명명하는데 매미가  성충이 된 후에도 나무 줄기에서 수액을 빨아 먹는다. 

장마 비가 그치자 마자 울어 대는 매미는 수컷으로  배 아래쪽 윗부분에 특수한 발성 기관을 가지고 있어 소리를 내는데, 매미의 종류별로 발성 기관의 구조와 소리가 다르다. 암컷은 발성 기관이 없어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급격한 지구 기후 변화로 어느 해 보다 뜨겁고 무더운 여름, 7일 만에 죽은 매미보다도 8일째 까지  살아남은 매미가 더 불쌍 할지 모른다.

사흘 후면 달력의 종이가 팔월로 넘어간다.

단 7일, 8일을 살아도 열심히 뜨거운 태양 아래 수액을 먹으며 힘껏 울어 대는 매미처럼 오늘도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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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한 표암 강세황 자화상(2026.05)

일흔 살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표암 강세황의 ‘자화상’미간 사이 주름, 움푹 패인 눈가 주변, 광대 주변부터 관자놀이 부근에 노화 징후로 보이는 검버섯 그리고 희긋한 털자국이 보이는 눈썹, 새하얀 수염의 털 한올 한올까지 세밀한 묘사로 그려진 표암 강세황의 ‘자화상’

  검은 관모에 옷은 옥색 빛이 은은한 도포 차림입니다.

자세히 자화상을 살펴 보면 자화상 속 표암 강세황은 관료들이 쓰는 검은 관모에 맞는 의복을 갖춰 입지 않고 선비들이 일상적으로 입는 도포를 입고 있습니다.

자화상을 그렸을 때 표암 강세황의 나이는 70세, 지위는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현재의 서울)의 행정과 사법 업무를 총괄하던 최고 행정책임자인 종 2품 관직에 있었습니다.

현 시대  서울특별시장이자 장관급 고위직에 해당 하는 종 2품 관직 자리는  최고위직인 정1품(삼정승)의 바로 아래 단계 계층(1~2품)에 속하는 고위 관료직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드라마에서 흔히 듣는 ‘대감(大監)’ 즉,정1품부터 정2품까지이고 종2품과 정3품 당상관은 ‘영감(令監)’이라는 높은 존칭으로 불렸습니다.

‘영감(令監)’이라는 높은 존칭으로 불렸던 강세황이 스스로 그린 자화상  복장의 의미를  현 시대와 비교해 보면 야구 모자를 쓰고 양복을 입고 셀카를 찍은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표암 강세황은 자신을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Artistway-official 채널 영상에서 표암 강세황의 자화상에 담긴 의미를 확인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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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뉴욕 지하철과 거리 벽면에 마치 원시시대의 그림과 같이 다소 거칠고 공격적인 드로잉에  밝은 원색과 파스텔 색이 난무한 가운데 블랙으로 그림의 무게를 잡고  사회의 어둠을 낙서처럼 휘갈긴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는 1983년에 휘트니 비엔날레에 최연소 화가로 참가하고, 1984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앤디 워홀(Andy Warhol),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와 공동으로 전시를 열며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일명 검은 피카소로 불리며 세계 미술사에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갱신해 나갔던 바스키아는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약에 중독되어 생을 일찍 마감했다.

바스키아와 동시대 활동했던 키스 해링(Keith Haring)은 1980년 뉴욕의 지하철역에 있는  검정 광고판에 흰색 분필로 만화적인 인물들과 형상을, 그리고 역동적인 패턴들로 가득 찬 독특한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서 경찰에 연행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키스 해링은 하트, 아기, 개 , 사람 형상의 피큐어등의 다양한 실루엣의 조합을 구상화 시켜서 자신만의 구상적인 언어 기호로 피부색이나 성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10대 때 그래피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카우스(예명)는 새벽마다 공중전화 부스와 도로의 광고판을 뜯어 안에 있던 포스터를 꺼내 작업실로 가져가 밤새 그 위에 그림을 그린 뒤 몰래 제자리에 되돌려놨다. 

정교하면서도 뛰어난 그림 솜씨에  사람들은  광고판 브랜드가 유명 작가와 협업해 만들었다고  착각했다. 

그 착각은 현실이 되었고 카우스는 유명 브랜드들이 앞다퉈 협업하고 싶어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트레이드마크인 X자 눈에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숙이며 수줍음 등을 표현하는 카우스의 작품들은 

총감독(Director)'의 역할을 맡고 있는 카우스가 아이디어를 짜고,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면  그의 스튜디오에 숙련된 화가와 기술자들로 구성된 조수팀이 원화 프린팅 작품과 대형 조형상을 완성하고 있다.
조수팀의  손으로 만들기 힘든 거대 조각이나 플라스틱 아트 토이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하이테크 제조 공장 및 파트너사에 외주를 주어 제작하고 있다.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 국립예술학회(NGV)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는 그를 "동시대 불안을 단순하고 직접적인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는 카우스는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끌어 올린 바스키아, 키스 해링이 이룩한 업적과 비교 할 수 없는 아티스트다.

그는  미술학적이나 기술적인 측면(유화 기법, 정교한 드로잉 솜씨)보다는, 기존의 대중적 캐릭터를 차용한 직관적인 시각 언어와 글로벌 기업 및 패션 브랜드와의 영리한 광고 협업을 통해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여서 미술품은 소수의 특권층만 향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피규어, 의류, 포스터 등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통해 대중이 쉽게 예술을 소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거리의 붕어빵도 국민 과일 바나나도 예술가와 협업 하면 세상이 평가하는 가치의 무게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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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향귀주도(水鄕歸舟圖),나옹(懶翁) 이정(李禎 1578-1607)


강물의 수위가 커다란 바위 중턱까지 차 오를 정도로  불었고 키가 작은 수풀은 물에 잠겨서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좁다란 나룻배 한 척 위에 도롱이라는 비옷을 입은 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비가 더 내려서 강물이 범람하기 전에 어서 강을 건너 마을로 돌아 가야 한다.

조선 중기 화원(畵院) 화가 나옹 이정(李楨)이 그린 <수향귀주>는 여름 장마철에 내린 비로 무섭게 강물 수위가 올라갔던 한강에서 아슬아슬하게 나룻배를 저어 가는 사공의 모습이 담겨있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다섯 살 나이에 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간 나옹 이정은 10살 때부터   산수·인물·불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1589년 13살 나이에 장안사(長安寺) 사찰 벽화(壁畫)를 보수 할 때  산수화와  천왕상(天王像)을 그렸을 정도로 천재로 인정 받았다. 

나옹 이정이 사찰의 불화를 그렸던  시기인  1592년    조선반도에 왜구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해서 전국토가  약탈 당하며 엄청난 화마에 휩쓸렸다.

1592년 부터 시작된 전쟁은  1598년까지 7년 동안 이어져서 조선인들 모두 왜구 세력에 맞서 싸웠다.

조선 반도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은 10여 명에서부터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에 차이가 있었지만,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서  왜군에 대항했고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에 의해 보급로가 끊기고 1598년 노량 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 간의 전쟁이  끝이 났다.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다음해인  1599년 화가 나옹 이정은  도솔원(兜率院) 미타전(彌陀殿)에 <백의대사도(白衣大士圖)>를 그렸다.

 

화가 이정의 어머니는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금빛의 광채를 내뿜는 나한의 나타나 '너희 집안은 3대가 계속해서 불화를 수천 폭이나 그렸다. 그 공덕으로 아들 하나를 내려 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조상들의 공덕으로 태어났지만 일찍이 부모를 여윈 이정은 10살 때 부터 금강산과 설악산을 누비며 숱한 산수화와 불화를 그렸다.

그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문장가인 최립에게 시와 서예를 배웠고 허균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이정의 뛰어난 그림 솜씨에 반한 고관대작과 중국 사신들이 그림 한 점을 얻기 위해 그의 집에 소를 끌고 갔고 금화가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갔지만 강직한 성품에 의롭지 않은 돈과 뇌물을 멀리 했던 이정은 술을 잔뜩 마시고 비단이 가득 실려 있는 수레에 고꾸라져서 잠을 잘 정도로 권세 높은 이들을 위해 붓을 들지 않았다.

이정 <한강조주도(寒江釣舟圖)> 

유유히 흘러가는 강 위에 배를 띄우고 낚시질에 열중하고 있는 선비의 뒤로  고목 나무 가지에 잎사귀가 몇 개 매달려 있다.

 저 멀리 강 건너 산능성이를 따라 드문드문 들어선 마을이 보인다.

화폭의 절반만 채운 여백 속에 등장하는 물과 고목 나무 그리고 나룻배 위에서 여유롭게 낚시에 열중하는 선비의 모습이 서서히 시간과 공간 속을 유영하듯 번지듯 스며드는 붓질에 생동감이 느껴진다.

서른 살 나이에 요절한 화가 이정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정유재란·병자호란 등의 전화와 가뭄·장마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고난의 시기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외세의 침략과 약탈에 죽거나 볼모로 끌려갔고 경작할 땅 조차 없어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7월 장마 전선의 영향으로 빗줄기가  주중 내내  쏟아지고 있다.

습한 열기로 인한 불쾌지수는 최고조로 상승하고 있고 전 세계 불어 닥친 기후 재앙과 전쟁, 그리고 원화 가치 하락까지 겹쳐서 실물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졌는데, 생활물가는 '살인적'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위험 수위에 차 올라 민심이 들끓어 오르고 있지만 국민의 혈세로 먹고 사는 권력자들은 포퓰리즘 정책만 남발하며 침수되고 범람해가는 앞 날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겠다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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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변명은 최고의 예술
사이하테 타히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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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내내 장마 비가 내리고 있다.

집안 가득 습한 공기로 가득차니  침구류들을 교체하고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재활용 함에 넣고 옷장과 서랍마다  제습제를 교체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마지막 신발장을 정리하고 나면 하루 반 나절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정리하는 동안 지난 밤에 주문한 물건들이 차례 차례 도착을 하고 배송된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상자들과 포장팩, 뽁뽁이들이 한 가득 나온다.

식품을 꺼내서 각각 냉장고에마다 분류해서  정리하고 나면 플라스틱 류 포장재와 케이스가 한 가득 나온다.

 버려야 할 것들,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면 마치 낙타 등에 봇짐을 탑처럼 쌓아 올리듯 천장 높이 만큼 올라간다.

송필,기억저장소,Steel, Bronze, Wood_100x100x265cm, 2017

생이 이어지고 존립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주의 양이 이 정도 라면 먹고 마시고 버리고 배설하는 양은 이보다 더 많은 양일 것이다.

치우고 버리고 정리하고 나면 또 다른 물건을 채우게 만드는 욕망, 소비의 욕망에 불씨를 지피게 만드는   고도의 자본 소비 지향 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숙명으로만 받아 들여야 할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대략 78세에서 83세 사이라고 할 때 평생 동안 웃는 시간은 하루에 단 90초 뿐으로 이를 생애 마지막 까지 계산 해본다면 고작 한 달을 채 넘지 않는다.

반면, 걱정하고 근심하고 분노하는 시간은 하루에 3-4시간 정도로 만일 80세까지 살게 된다면 걱정과 불안과 근심을 10년이나 하며 살게 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아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 할 때부터 무한 경쟁의 세계로 떠밀려 들어간다.

이런 경쟁에 아무리 익숙해진다 해도 학교와 사회에서 부딪치고 겪게 되는 여러 부류의 인간관계의 어려움들이 때로는 세상을 순탄하게 살아가기 힘들게 만든다.

공부와 시험의 압박, 업무의 과중함, 일과 승진에서 받는 스트레스 이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리기 위해 영상물에 심취하고 게임에 빠지거나 여행을 나서도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타인이 대신 짊어질 수 없듯이 모든 고통과 번뇌,열망과 갈망 모두 나에서 출발해서 내 안에 머문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서로 다른 소망과 욕구의 접촉 범위가 점점 커질 때마다 떠안는 스트레스의 크기도 엄청나다.

 가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한다 해도 죽는 것 조차 그리 간단하지 않고 만일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이라는  한탄을 해도 그나마 건강하게 살아서 존재하는 일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내가 안고 있는 걱정과 근심, 불안과 고통의 양은 얼마 만큼이나 될까.

봇짐 하나,

봇짐 둘,

봇짐 셋,

(c)KIMSOOJA / 2007. Bottari truck – Migrateurs

일상 어딘가에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너의 진정한 유언이다.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라는 존재도 훌륭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네가 소중히 여기는 샴푸통이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큰 은행나무가,

죽은 너의 영혼을 감싸고,

그렇게 조개처럼 딱딱하게 닫힌다.

영원이 시작된다.

네가 눈을 깜박이듯, 매일 한순간 사랑했던 것들과 함께. 

-사이하테 타이의 「진주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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