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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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보세요. 공작, 제노바도 루카도 보나파르트 일가의 여지, 영지나 다름없이 되어 버렸잖아요. 미리 말씀드려두지만, 그래도 전쟁 같은 건 없다고 하시거나 반그리스도의(정말 저는 그자가 반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어요)추악하고 무서운 소행을 변화라도 하실 생각이라면 저는 당장 당신과 절교하겠어요. 앙신은 더이상 제 친구도 당신이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제 충실한 노예도 아녜요.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제가 당신을 놀라게 해드린 것 같군요. 자, 앉아서 말씀을 들려주세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중에서 

1805년 7월 ,마리야 페오도로브나 황태후를 가까이 모시면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여관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는 자기 집 야회에 맨 먼저 도착한 위세있는 고관 바실리 공작을  세련된 프랑스어로 맞아 들이면서 19세기 초 러시아 상류 사회 사교계들의 모습들이 눈 앞에 펼쳐 진다.

형형색색으로 수 놓은 궁중복을 입은 이들 별 모양의 훈장을 한 쪽 가슴에 주렁 주렁 달고 나타난 이들 온갖 향수 냄새로 진동하는 연회장 한 가운데서 안나 파블로브나는 느긋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초대 손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아아, 오스트리아 얘기 따윈 그만하세요.!제가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지만 오스트리아는 결코 전쟁을 원한 적이 없고, 지금도 원하지 않아요. 그 나라는 우리를 배신하고 있는 거예요. 오직 러시아만이 유럽의 구세주가 되어야 해요. 우리 폐하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사명을 알고 계시고 그 사명에 충실하실 겁니다. 제가 믿는 건 이것뿐이에요.......

우리 러시아인만의 힘으로 의인들이 흘린 피를 반드시 씻어주어야 합니다. 어디 한번 말씀해보세요.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희망을 걸어야 합니까?....폐하께서 반드시 유럽을 구하실 겁니다.!'


1805년과 1807년, 그리고 1812년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 했다가 후퇴하는 시기를 담은 이 작품 속 중심인물들은 유산을 위해 싸우고 영적 성취를 갈망하는 백작의 사생아인 피에르 베즈호프 백작,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가족을 뒤로 하고 싸우는 안드레이 볼콘스키, 그리고 귀족의 아름다운 어린 딸이 등장한다.

 두 남자 모두를 유혹하는 나타샤 로스토프의 삶을 통해 전쟁을 겪으면서  소작농과 귀족, 민간인과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시대, 역사, 문화에 따른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제1편에서는 화려한 러시아  사교계를 중심에 두고 곧  닥쳐올 전쟁의 위기를 주요 등장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보나파르트가 지휘하는 10만 프랑스군의 추격을 받고 가는 곳마다 주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이제 더는 연합군도 믿을 수 없고 식량이 떨어지고 전쟁의 예기치 않은 조건 아래서 행동할 것을 강요당하던 3만 오천의 러시아군은 쿠투조프의 지휘 아래 도나우 강 하루 쪽으로 서둘러 퇴각했고 적군에게 추격을 당하면 멈춰서 중포 따위를 잃기 않고 후퇴할 수 있을 만큼만 후위전으로 응전하면서 나아갔다. 적군도 인정 할 만큼 러시아군은 용감하고 완강히 싸웠지만 이러한 전투는 결국 후퇴만 더 재촉할 뿐이었다.]


톨스토이가 36세이던 1864년이었다. 톨스토이는 같은 해 1월 20일자 편지에서 누이동생에게 “1812년부터 취재한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이 작품을 탄생케 한 직접적인 동기는 1856년 유형지에서 귀환이 허용된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1825년 12월 26일에 무장봉기를 일으킨 러시아 혁명가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들의 활동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들의 혁명운동을 중심으로 한 소설을 쓰고자 했고, 스스로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데카브리스트의 성격과 세계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어떻든 그보다 한 시대 이전의 러시아 국가가 당면했던 역사적 대사건이며, 당시 청년층에 커다란 영향을 준 나폴레옹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는  한 시대 이전의 러시아 국가가 당면했던 역사적 대사건이였던 나폴레옹 침공이 현세대와 미래 청년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전쟁과 평화>작품의 시작을 1805년으로 정해 놓고 개개인의 회상과 편지를 통해 당시 사회 정세 속에 여러 인물들의 삶이 어떤 변화와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상세하게 묘사했다.

『전쟁과 평화』는 인생, 역사, 가족,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전쟁의 공포와 삶의 공허함에 대한 질문 즉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어떤 삶을 선택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인간이 알 수 없다. 

전쟁은 숱한 인간 의지가 응집한 힘의 파급으로 특정 원인이나 한 사람의 주도적인 영향만으론 절대 터지지 않는  수많은 우연이 켜켜히 쌓여 일어나는 필연이다.

인류는 전쟁의 한 단면만  볼 뿐 전체를 파악하는 시각을 갖지 못한 채 애국심에 불타 올라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일 뿐이다.

톨스토이가 애국심에 불탄 러시아 민중이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전쟁과 평화에서  생생하게 펼쳐 보였듯이 전쟁이 터지면 인간은 미쳐간다. 

전쟁에서 승리도 그리고 완전한 평화도 없다. 

 한쪽의 추가 기울어지지 않게 팽팽하게 당겨야 하는 평화라는 힘의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 하고 있을 뿐  세상 곳곳의 화약고는 터지고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 

그는 과거를 지배 한다.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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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16번째 장편소설 『夏帆─The Tale of KAHO─』가 출간 될 예정입니다.

2024년 3월 와세다 대학 국제문학관에서 열린 낭독회 때 마치 작품 예고편을 살짝 맛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하루키는 두 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을 행사에서 직접 낭독했습니다. 

2024년 6월 월간 문예지 《신초(新潮)》에 연재를 시작했고 7월 미국 뉴요커의 여름 소설 특집편에 영어 번역본이 실렸습니다.

 2024년 6월호부터 2026년 3월호까지 '여름(夏帆)' 시리즈로 나뉘어 총 4회에 걸쳐 발표했고 이후 수정을 거듭 하는 동안 하루키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서 약 20kg의 체중이 줄어들 정도로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 부터   세계 마라톤 대회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된 하루키는 매일 한 시간씩 집 주변을 달리며 체력을 다졌음에도 투병 후  달리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기력이 떨어졌지만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썼고 마침내 원고지 650매를 채운  352 페이지 분량의 장편 소설을 완성 했습니다.




 2023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발표한지 3년 만에 나온 하루키의 16번째 장편소설은 7월 3일 일본  전국 출간 당일 대형 서점을 중심으로 자정 발매 카운트다운과 심야 독서 행사(読泊会)가 열립니다.

77세에 접어든 하루키  앞으로 몇 편의 작품을 더 집필하게 될지 모르고 달리는 건 멈췄지만  현재 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 하며 쉼 없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하루키의  夏帆가 연재 된 미국 뉴요커와 일본 문예지를 전부 구입해서 읽은 저는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출간에 앞서 그가 여러 매체와 나눈 인터뷰를 연재 할 예정입니다.

2024년 7월 미국 뉴요커의 여름 소설 특집편에 KAHO가 공개 되었을 때 문학 편집자 데보라 트리즈먼(Deborah Treisman)가 나눈 인터뷰 전문을 직접 번역 했습니다.


하루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기묘한 사건들을 여성 주인공의 시선으로 전개 되는  夏帆─The Tale of KAHO─ 의 이야기 궁금 하지 않으신가요?

https://tobe.aladin.co.kr/n/63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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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여 년 동안 1,000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포르말린에 담긴 상어, 화려한 점묘화, 수천 마리의 나비가 박제된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종교와 과학,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질문들을 현대적 스펙터클로 펼쳐 보이는 데미언 허스트는 찬사와 논란을 몰고 다니지만  관람객들에게  '무엇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을 갖게 만드는 예술가 입니다.


1991년 첫 개인전에서, 데미언 허스트는  16세 때  우연히 방문한 시체안치실에서 익살스럽게 잘려진 머리만 있는 시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작품으로 제작하면서 자신의 예술이 죽음에 대한 집착과 공포에 기원한다는 사실을 암시했습니다.


생생하게 박제 되어 금방이라도 덮칠 듯한 상어는 거대한 수조 안에 가득 채워진  포르말린 속에서 영생의 꿈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수조는 수조대로 운반하고, 상어는 상어대로 운반하여 먼저 처리를 한 후, 입수식을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해야 하는 작품이여서  1991년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최초의 전시를 한 후 뉴욕의 소장가에게 판매되었고  2004년 메트로폴리탄에서 몇 년 간의 대여 전시를 하고 나서  2012년 런던 테이트의 회고전에서 전시 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현재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관람객들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 작업실에 틀어박혀 붓질하는데 몰두하던 데미언 허스트는 짧은 기간 화려하게 피웠다가 지고 마는 벚꽃의  짧은 생과 허망한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연작을 발표 했습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처럼 예술을 상품처럼 찍어내고 생산하는 작업을 즐기는 데미언 허스트는  젊은 시절 지독할 정도로 술에 탐닉해서 1995년 영국 현대미술의 최고 영예인 터너상을 수상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도 완전히 취해 수상 소감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할 지경이였습니다.

술에 코카인을 섞어 마셨던 방탕한 애주가였지만 1997년부터 6년 동안 런던 노팅힐에 약국을 차려 놓고 중독자를 상대하며 약의 남용과 중독에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노출 되는지 몸소 체험한 끝에 중독에서 탈출 했습니다.


폐업한 약국에서 사용했던 집기들을 모두   전시장에 통째로 내놓아서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나서 경매를 통해 큰 수익을 챙기는 수완을 발휘한 데미언 허스트는 수족관 포르말린에 갇혀있는 상어를 앱솔루트 병에 담아 캔버스 밖 예술을 술병에 박제 하며 상품에 예술 라벨을 부착해서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재치 있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데미언 허스트의 어머니는 아들의 새로운 작품 계획을 들을 때마다 종종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For the love of God), 다음엔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니?"

40여 년에 걸친 작품 50여 점을 시기별로 보여주는 아시아에서는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데미언 허스트 전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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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어느 날 밤, 파리 폴리베르제르의 바에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가  손님을 응대 하고 있는 여급 쉬종(suzon)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 ‘폴리 베르제르 바(A Bar at the Folies-Bergere)’(1882)는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과 다소 뻣뻣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에 이 그림이 포착하고 있는 공간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쉬종의 시선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거울의 반사가 현실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폴리 베르제르 바’ 작품 정 중앙에 기념비적으로 우뚝 선 여성과 거울을 통해 뒷모습을 보이는 여성, 그리고  왼쪽 상단에 발만 잘린 채 재현된 써커스 곡예사의 다리, 화면 왼쪽에서 피라밋 구조를 형성하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 하는 이 그림이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1881년 제6회 파리 인상주의 전시에서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가 등장 했을 때 평론가들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조각상을 향해 “원숭이가 있어야 할 곳은 (전시장이 아닌)동물원이지 않은가.” 라며 드가를 향해 신랄한 악평을 쏟아 부었습니다.

쏟아지는 악평과 비난에 드가는 작업실 구석 옷장 문을 열고, 조각상을 깊숙이 밀어 넣고는 두 번 다시 세상에 공개 하지 않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발레단에서 보잘 것 없고 빈약하고, 하찮은 존재‘작은 쥐’(Petites Rats) 무리들로 불렸던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수가 되었습니다.2015년 미국 뉴욕 미술 시장 경매에 등장한  ‘누워 있는 나부’(Nu Couché)'의 낙찰 가격은  1억7040만달러(약 2585억원).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상 전체 작품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운 모딜리아니는 세상에서 작품 값이 비싼 화가 대열에 끼여 있지만 그는 예술사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 라는 말을 남긴 모딜리아니 

 술과 마약에 빠져 스스로 파멸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방탕하게 살다 갔지만 그가 남긴 인물들이 품고 있는 예술의 가치는 불멸이 되었습니다.

영상 도입부 부터 펼쳐지는  전경 부터   갤러리 내부 모습과 화가들의 작품 모두 제가 직접 답사 방문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영상을 제작 했습니다.

실사 사진과 촬영해온 영상 그리고 직접 제가 쓴 에세이를 토대로 영상 시퀀스를 기획하고 스크립트를 작성해서 마지막 사운드와 음성 자막을 삽입해서 완성 했습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의 선호도에 맞춰서 영상의 기본 언어 영어와 한국어를 비롯해서  다른 국가의 언어-[ 일본어/러시아어/폴란드어/ 독일어/스페인어/브라질 포르투갈어/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자막 번역 모두  수동 작업으로 했습니다.

모국어 수준으로 능통한 언어들은 제가 직접 번역을 해서 다듬었고 초보 수준의   언어는  다국어 천재 제미나이에게 맡겼습니다.

3분에서 4분을 조금 넘기는  영상이지만 촬영과 자료 수집 그리고 관련 전시와 도록을 읽고 영상을 제작 하기 까지 수 개월이 걸렸고 작업 시작부터 편집까지  영상 한 편 당 한 달이 걸려 완성 했습니다.다.

무엇이든 빨리 감기로 보는 세상에 3-4분의 시간 동안 제가 제작한 영상을 끝까지 시청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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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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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뉴욕 미술 시장 경매에 등장한  ‘누워 있는 나부’(Nu Couché)'의 낙찰 가격은  1억7040만달러(약 2585억원).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상 전체 작품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운 모딜리아니는 세상에서 작품 값이 비싼 화가대열에 끼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의문이 든다.

가늘고 긴 얼굴에  동공이 없는 텅 빈 눈 갸우뚱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짖고 있는 모딜리아니 그림에 대체 어떤 특별한 마력이 있는 걸까?

왜 이런 그림이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되짚어봐야 한다.

188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항구 도시 리보르노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모딜리아니 저택에 집행관들이 들이 닥친다.

때마침  모딜리아니 어머니는 진통이 시작되고 하인들은 분주하게 산모가 출산하는 방 침대 머리 맡에 온갖 귀중품들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임산부나 산모의 침대 그리고 침대에 있는 것들은 압류 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덕분에  모딜리아니가 태어나던 그날 재산의 일부를 지킬 수 있었다.

비극적이고 모순적이 상황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에게 모두들 입을 모아 천사처럼 잘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축복받은 외모와 달리 태생적으로 병약했던 모딜리아니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 열 네살 고열에 시달리던 중 미술관이 눈 앞에 나오는 환각 증세에 시달린다.

아들이 16살이 되던 해 결핵 진단을 받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눈에 보였던 미술관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로마와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의 유명 미술관을 데리고 다녔다.

 르네상스 시대를 포함한 이탈리아 고전 미술의 정수를 온 몸으로 흡수한 모딜리아니는  1906년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갔다.

당시 파리 화단은 1905년 야수파가 등장한 이후 야수주의와 입체파로 나눠져서 서로 유사한 그림을 전시장에 쏟아내며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밀고 나가는 젊은 화가들 집단인 파리파가 등장한다.

당시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국적인 아프리카의 미술과 조각품, 프랑스 식민지령에서 쏟아져 들어 오는 아시아 불교 미술과, 북아프리카 조각들 그리고 골동품 상들이 들여 온 선사시대와 아르카익기의 그리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파리에서 미래주의 전시를 준비하는 이탈리아 작가들 그룹에 합류 하지 않았던 모딜리아니는 홀로 고립되어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 시켜 나갔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에 매료 되었던 모딜리아니는 목을 비롯한 신체를 의도적으로 늘려서 인물의 우아함을 연출하고 베네치아 동방 정교회 성화(聖畵)의 기울어진 고개의 인물 구도를 정립해 나갔다.

여기에 더해  고귀한 대상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에 인류 미(美)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 모딜리아니는 

아프리카 가면의 단순하면서 간결한 선과, 캄보디아의 크메르 부처 석상에서는 부드러운 면(面)의 미학을 합쳐 길쭉한 얼굴, 한 줄로 떨어지는 코, 평면 위에 펼쳐진 인물.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던 모딜리아니만의 화풍을 완성시킨다.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한 1914년 유렵 전역에 몰아닥친 전쟁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파괴 했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그릴 수록 영원에 대한 갈구가 깊어졌고 삶의 덧없음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갔다.

결핵을 숨기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모딜리아니는 돈이 생기는 데로 술을 마셨고 술을 사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은 작업실에  모델을 밀어 넣고 술과 마약을 던져 주었다.

가난, 폐병, 마약과 술, 여자에 탐닉하며 스스로를 파멸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 넣었던  모딜리아니가 그린 작품은 놀랍게도  선이 분명한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에 모두 눈동자가 없지만 텅 비어 있지 않다. 

대체 그 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딜리아니는 절친했던 친구이자 화가 카임 수틴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고대의 아름다운 조각처럼 세잔의 인물들은 시선을 지니고 있지 않다네. 하지만 나의 인물들은 시선이 있지. 비록 내가 동공을 그려 넣지는 않았어도 내 인물들은 세상을 볼 수 있다네. 그렇지만 내 인물들의 시선도 세잔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무언의 긍정을 표할 뿐 다른 의미는 없네."

모딜리아니의 작품 모두 모델의 이름이 없다. 

신분도 사연도 식별할 수 없고, 옷차림으로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초상화 모델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걸 중시했던 이전의 서양 초상화 양식과는 전혀 다르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눈으로 마주 하고 있는 인물들의 동공을 그려 넣지 않았지만  우수에 젖어 있는 얼굴을 가까이 바라보면 그들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신비로움을 채워 넣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20년까지 모딜리아니는 현재 우리가 아는 작품들을 모두 쏟아 냈고 혼수 상태로 발견되어 사망 한 후 이튿날 그의 약혼녀 잔 에뷔테른은  뱃속의 아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 모딜리아니 

살아생전 술과 마약에 빠져 자멸한 방탕한 인간일지라도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으로 그려낸  얼굴들은 그 누구의 얼굴도 아닌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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