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금액 이상 구입 하면 받을 수 있는  사은품과   관광지,미술관, 각종 전시회 굿즈로 가장 판매 되고 있는 에코백과 텀블러는 외출 할 때 필수템이다.

 

 

커피를 담았던 텀블러에 생수를 부으면 커피 맛이 우러 나오고 녹차를 담았던 텀블러에 홍차를 부으면 홍차의 향이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커피 마실 때 들고 다니는 텀블러와 차 종류에 따라서 들고 다니는 텀블러 기타 다른 종류의 음료를 담을 텀블러가 필요 하니 눈에 들어 오는 데로 필요에 따라 공짜로 주는 데로 텀블러 갯수는 줄어 들지 않고 쌓여 가고 있다.

보온 기능이나 환경 호르몬이 검출 되지 않는 안전한 제품인지를 따져 보면서 구매한 것 부터 각종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것, 사은품으로 굴러 들어 온 것 까지 전부 모아 놓으면 일반 컵 갯수와 맞먹을 정도로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온다.

세기 전, 현대인들의 각 가정마다 쌓여 있는 텀블러 갯수와 맞먹는 커피잔과 세트를 소장하고 있었던 철학자가 있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저녁 식사를 마치면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셨는데 너무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어서 6년 동안 그의 비서로 일했던 이스라엘 레빈이 기록으로 남겼다.

'키르케고르님이 저녁 식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저는 50세트의 잔과 받침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치시면 커피를 가져다 주기 전에 그날 제가 왜 이 잔과 받침을 준비했는지 합리적 이유를 주인님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비서 이스라엘 레빈,1884-1850

후대에 키르케고르의 전기 집필을 시작한 전기 작가 요아킴 가르프는  오랫 동안 철학자 곁에서 집안일을 했던 하녀가 남긴 기록과 증언에서 그가 커피에 대해 기이한 집착과 습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키르케고르님은 무척 특이한 방식으로 커피를 마셨다. 

주인님은 커피가 담긴 잔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설탕 봉지를 잡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짙은 블랙커피 액체 위에 설탕가루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일 때까지 수북이 들이 붓고 커피에 서서히 녹는 과정을 관찰 하셨다.

설탕이 녹는 동안 시럽처럼 끈적한 액체가 커피 잔에서 흘러 넘쳤는데 이런 과정은 주인님이 병환으로 몸져 눕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병환으로 위독 하실 때는 주인님의 지시를 받고 커피에 설탕을 들이 부었다.

주인님은 설탕이 녹는 과정을 미소를 지으시며 지켜 보시고는 설탕이 왕창 들어가 끈적이는 커피 잔을  손가락을 덜덜 떠시면서 움켜 잡으셨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의 중심 화두는 인간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눴다. 

가장 먼저 1단계에서는 쾌락 만을 쫓는데 이것 만으로 인간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권태’ 때문이다. 따라서 남을 생각하며 가치와 윤리에 따르는 두 번째 ‘윤리적 단계’로 넘어가지만 이 역시 삶의 유한성 때문에 근본적인 ‘생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철학이 주장하는 완전한 삶의 세 번째 단계는 ‘종교적 단계’로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적 결심’에 따라 진정 신을 믿고 따를 때 삶에 대한 무력감과 허망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윤리 문제로 사회에 불평등과 불안이 증폭되었던 시대에 살았던  키르케고르는 신을 향한 숭배와 믿음을  무조건 추종하거나 따르지 말고  신과 인간의 관계와 인간 내면의 본질에 천착해, 신을 보는 관점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려야 권태에서 벗어나 생의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완성을 위해 불안과 절망은 필수 요소지만 인간이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의지와 힘은 절대화 시킨 신과 종교의  힘이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결단’에 따른 것이니 매 순간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노력하는 인간이라면 ‘불안과 절망’에 삶의 운명이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철학과 논리를 펼쳤던 키르케고르는 요즘 시대에 살았다면 텀블러를 커피 종류에 맞춰 수집해 놓고 설탕 대신 노슈거 제품인 알룰고스 내리고당 시럽을 가득 가득 넘치게 들이 붓고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현대인이 겪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해독제는 커피, 커피, 커피 

-쇠렌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1813-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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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2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설탕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다니 키에르케고르가 일찍 죽은 건 분명 설탕 때문이겠네요.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절망하지 않는 게 커피 때문인 건 맞는 듯 해요. ㅎㅎ
 

여름철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는 세 가지가 있다.

하루살이-모기-파리

하루살이들은 집안 곳곳에서 스물 스물 눈 앞에서 아른 거린다.

이들은 주로 물기가 있는 주방 씽크대와 욕실 세면대, 욕조 주변과 재활용 쓰레기들을 모아 놓은 곳 까지 광범위한 곳에 퍼져 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거의 창문을 열지 않고 에어컨을 켜는 날이 많으니 파리는 그나마 눈에 띄지 않지만 절대로 안심해서는 안된다.

한 마리가 날아 들어 오면 곧바로 어디선가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발견 즉시 살충제를 뿌려야 한다.

여름철 가장 큰 빌런 곤충은 바로 모기로 이들의 서식처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엘레베이터로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체취가 나는 방향을 따라 붙어버린다. 


잠깐 현관문을 열었을 뿐인데도 슬쩍 들어 온 모기 한 마리가 밤 새 집안 식구 중 누군가의 피를 먹고 통통하게 무거운 몸으로 낮게 날아 다닐 때 '철썩' 손바닥에 짓눌러 버리기도 하지만 한 번 인간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는 힘이 넘쳐 모기향을 맡아도 웬만해서 날개를 꺾지 않는다.

뜨거운 불 가마 속 같았던 지난 몇 주의 동안의 열기를  태풍의 북상으로 뜨거운 열돔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매미 소리는 서서히 줄어 들것이고 곳곳에 잠자리들이 날아 다닐 것이다.

모기의 수명은 수컷의 경우는 10일 정도, 암컷의 경우는 42~56일 정도 살 수 있고 이들은 유독 따뜻하고 뜨거운 열기에 더 강력한 에너지를 품으며 끈질기게 살아 남아 더 강력한 핀셋 주둥이로 흡착력도 우수하게 진화하고 있다.


나무의 송진(수액)이 굳어서 100만 년 정도 지나면 호박이 되는데 인류의 조상이 생기기 전부터 생성된 호박 안에 모기의 생생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태로 발견 되기도 하니 모기의 생명력은 엄청나다.

겨울의 따스한 온기 속에서도 모기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기후 변화로  찬 바람이 불어 입이 돌아 가도 모기들은 1년 내내 어디선가 나타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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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본 지바현에 1시간 동안 115mm의 쏟아진 전례 없는 폭우로 10명이 숨지고, 1,500여 채의 주택이 침수 된 지 나흘 뒤 경남 거제에 시간당 124.5mm의 극한 호우가 내렸다.

거제에 하루 동안  내린 비의 양은 654mm로 산을 붕괴 시켰고 아파트를 균열 시킬 만큼의 무시 무시한 양이 쏟아 졌다.

그동안  한반도 지형 특성상  여름 동안 비가 많이 내리고 태풍이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였지만  통상적인 소나기, 장맛비와는 다른 ‘이상기후’ 현상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고 예측 불가 할 수준을 넘어 섰다.

지구 과학 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해수면 온도가 증가하면, 비구름의 재료인 수증기가 늘고 한 번 쏟아질 때 강우량도 증가하기 때문에 매년 기록적인 고온으로 인해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이 배로 증가 해서 단 시간 만에 1년 치 비가 한 번에 쏟아지고 있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따라서 앞으로 닥쳐올  '극한 기상' 현상은 언제든 더 자주 일어날 수 있고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기후 재난 시대를 맞이 하게 된 것이다.

기후 재난 시대를 맞이 하게 된 지금 문득 우리는 누구일까?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을 펼치면 첫 번째로 등장하는 시 <일찍이 나는>의 첫 문장은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고 시작해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로 끝을 맺는다.

내가 나를 바라 보는 일은 하루 중에 거울을 볼 때와 타인의 비춰진 모습을 통해서 일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거울에 반사된 '한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 하거나 지명 할 때야 비로소 타인을 통해 '나'를 인식하게 된다.

그건 마치 녹음 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 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어쩌면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일찌감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 모른다.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 먹고

아무데서나 하염 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 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일찍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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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gyuny 2026-08-2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것도 아닌 분이시군요
 


뉴욕에 살고 있는  애나는 사랑했던 남편 션이 10년 전 조깅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한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슬픔을 잊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

그녀는 모두가 선망하는 멋진 커리어에 지적인 외모로 숱한 남자들을 사로잡고 대단한 부를 가진 새로운 사랑 조셉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애나는 어머니 생일 날 애인 조셉을 자연스럽게 소개 시켜 주기 위해 가족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던 날 한 소년이 그녀의 집에 들어 온다.

어머니 생일 축하 파티가 한창 일 때 애나는 소년을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여기 누구와 함께 왔는지, 아니면 우연히 오게 되었는지 묻자, 소년은 자신은 10년전에 조깅을 하다 죽은 당신의 남편 션이 환생한 몸으로 조셉과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 찾아 왔다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애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애인 조셉은 소년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묻자, 소년은 이 건물  윗층에 아버지가 계신다는 모호한 대답을 한다.

애인 조셉은 애나에게  소년의 아버지가 윗층에 살고 있다며 관리실을 통해 아들이  이 집에 있으니 데려가라는 말을 한다.

잠시 후, 아버지가 애나의 집에 찾아와서 사과를 하며 아들에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며 애나에게 사과 하라고 말하자  고집을 피우던 아들이 갑자기 쓰러진다.


애나는 소년이 남편 션의 환생이라는 걸 믿지 않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시시각각 남편과의 추억이 떠오르는 망상에 시달리던 중 소년이 전화로 10년 전 남편 션이 조깅을 하다 쓰러진 곳에 가보라는 말을 하고 끊어 버린다.

그 곳에 가보니 소년이 있었다.

동생 애나가 혼란스러워 하자 언니 로라는 남편 밥에게 소년을 집으로 초대해서 진짜 션이 환생 한 것인지 테스트를 해보자는 제의를 한다.

애나의 언니 집에 간 소년은 션이 아니라면 대답 할 수 없는 질문에 모두 다 대답하고 이 대화를 녹음 한 것을 들은 애나는 마침내 소년이 남편 션이 환생 했다고 믿게 된다.

애나는 소년과 점점 가까워지고 함께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그리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며 서로 묘한 감정을 주고 받는다.

애나가 소년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애인 조셉은 소년이 발로 의자를 툭툭 차는 순간 폭발해서 느닷없이 소년의 엉덩이를 때리고 이에 놀란 소년이 집을 뛰쳐 나가자 애나가 뒤쫓아가서 소년의 입에 입을 맞춘다.

애나는 10살이 된 소년에게 함께 도망쳐서 성인이 된 후에 결혼하자는 말을 한다.

'결혼'이라는 말에 갑자기 돌변한 소년은 애나에게 자신은 션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사라져 버린다.
다음날 소년의 집에 션의  친형의 아내 클라라가 찾아와 소년에게 자신이 션이 진짜 사랑했던 여자 였다며  그 증거로 편지 뭉치가 묻혀 있는 곳을 알려준다.

그 편지 뭉치는 션이 아내 애나에게 받았던 연애 편지들로 그는 모두 열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형수인 클라라에게  준 것이였다.

형수 클라라는 자신과 내연 관계였던 션이 애나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강한 질투심을 갖고 있었고 그녀의 삶을 망쳐 버리고 싶어서 션의 불륜상대가 자신임을 밝히고  조셉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걸 저주 했다.

소년은 션이 모아둔 애나의 연애편지를 가져가 버리고 더 이상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넌 그때 죽지 않거나 좀 더 일찍 왔어야 했어.지금의 넌 션이 아니야

10년 전 애나의 남편 션은 눈으로 뒤덮인 공원 길을 달리고 있었다.

유명 대학 병원에 소속된 의과 대학 교수 였던 션은 갑작스런 심장 마비를 일으켜서 쓰려졌고 10년 ㅜ  그는 진짜로 소년으로 환생 한 것이였을까?

소년은 형수 클라라의 지시를 받고 애나에게 복수 하기 위해 환생한 션으로 연기를 했던 것일까?

애나의 형부 밥은 션이 살아 있었던 당시에 병원 원장이였지만 션이 죽고 나서 일반 의사로  전락하고 생전에 션이 살던 집에 눌러 살 정도로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애나의 형부 밥이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명의인 션을 고의적으로 살해 했던 것일까?

 남편이 죽고 나서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명성과 부를 갖고 있는 약혼자 조셉에게 굴욕적일 정도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애나는 그에게 오랫동안 구애를 해왔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일 날 딸 애나의 미래를 위해서 부유한 조셉과의 결혼을 반대 하지 않지만 죽은 사위 션이 환생 했다고 말하는 소년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소년의 존재를 서서히 잊어버린 애나가  애인 조셉과 결혼식을 올리던 날 소년에게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에 애나의 안부를 물은 소년은 현재 자신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다음 생에 만나자는 말을 남긴다.

애나의 남편 션은 영화 첫 시작에 오른쪽 신발 끈이 풀려 있는 상태에서 달리기 시작한다.

10년 후 애나가 남편 션이 환생 했다고 주장하는 소년이 다니는 학교에 갔을 때 소년의 오른쪽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소년은 형수와의 불륜관계를 맺었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애나의 행복을 빌어 주었던 것일까?

마지막 애나에게 보낸 편지 끝에 소년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당신의 션(sean)으로 부터


애나는 소년이 남편 션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라고 현실을 부정하지만 남편 션을 처음 만났던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혼란한 심정을 정리 하지 못한다.

결국 조셉은 애나를 진정 시켜주고 다독이며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인 시켜준다.

영화 <탄생>은 남편을 잃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여자와 환생 했다고 주장하는 어느 소년 그리고 이들과 연결된 가족들과의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이야기 속에 부와 권력, 사랑과 결혼, 그리고 불륜과 거짓말이 뒤 엉킨 인간의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모습을 펼쳐 보인다.


  한 인간의 <탄생 Birth>은  이전의 삶에서 이어진 또 다른 환생일까?

결국 살아가고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사랑> 보다 <돈>의 크기에 의해 행복도 불행도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돈은 모든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든다.

 -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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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  스코틀랜드에서 온 23세의 한 남자가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런던 시내를 배회 하며 지나쳤던 한 건물에 신경질환 전문 치료소 라는 간판을 발견한다.

숙소로 돌아간 남자는 자신이 19살부터 원인을 모르는 우울증에 시달려 왔는데 점점 증세가 심해져서 학업 마저 중도 포기 하게 되었다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나 교외 지역의 어느 상인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쓴다.

그는 이 편지를  신경 질환 전문 치료소로 보내고 전전 긍긍하며 답신을 기다린다.

'이 병의 증세가 사라질 때까지 저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전 세계를 돌아 다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데이비드 흄 

이 편지를 쓴 청년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인  데이비드 흄(1711-1776)이다.

데이비드 흄은  18세기 애덤 스미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기 전 청년 시절 극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우울증을 떨쳐 버리기 위해 오전 부터 늦은 저녁까지 말을 타고 벌판 위를 달렸다.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인해 대학에서 법학 공부도 중도 포기 했고 책 조차 읽지 못했다.

정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서 허공에 물체를 매달아 놓고 온 힘을 다해 주먹질을 했고 해상 무역 상사 점원으로 취직해서  마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각 지역마다 퍼져 있는 상점에 물건을 배달하는 일에도 매달려 보았다.

편지를 보낸 후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신을 고용한 해운 상사 고용주가 서류상 실수를 했다며 해고 통보를 받게 되어 신경 질환 치료소 앞으로 보내는 편지에 서명도 날짜 적지 못한 채 급히 숙소에서 떠날 채비를 해야만 했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청년 데이비드는 가족과 친지들이 보내 준 생활비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가 철학자 데카르트가 다녔던 예수회 학교 소속의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머무는 루아르 계곡물이 흐르는 수도원  숙소 창 밖 너머  드넓은 정원이 펼쳐 져 있었다.

청년 데이비드 흄은 평온한 대 자연 속에서 4년 동안 머물며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집필했다.

자연은 당신의 정열을 학문 하는 데 쏟아 부으라고 한다. 그러나 당신의 학문을 인간적인 것, 그리고 행동으로 사회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되게끔 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난해 한 사고와 지나치게 파고드는 탐색들을 금지하고 호되게 꾸짖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당신을 구슬픈 침울함 속으로, 그리고 끝도 없는 불확실성으로 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의 거짓 된 발견물들이 세상에 전해질 때 당신이 부딪치게 될 가혹한 평판 때문이다.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당신의 모든 철학 한가운데에서 계속 한 인간으로 존재하라.

-데이비드 흄 

'죽음과 빈곤, 수치와 고통을 비롯한 삶의 모든 시련'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 청년 데이비드 흄은 유럽의 인구 반을 쓸어 버린 페스트와 전쟁, 가난, 질병으로 고통 받았던 참혹했던 현실, 시대의 고통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을 뒤 흔들었던 이 책을 집필했을 때 데이비드 흄의 나이는 26세로 유럽 평균 남자의 수명이 45세이던 시대였다.

데이비드 흄이 좌절의 청춘을 보냈던 그 시대는 오십세를 넘겨서 까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행운아라 불렀다.

 인생의 분기점에 다다랐을 때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아'가 무엇인지 '개인의 정체성'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스스로 자문했다.

그가 탐구 했던 '자아'는 언젠가 사라져서 한 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無의 상태가 된다며 서양의 이성을 떠받치고 있었던 3개의 기둥인 인과관계-정체성-영혼은 한 낮의 허구 일 뿐이라는 견해를 제시 했다.

자신의 철학 사상이 세상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워하며 사회에 가장 중추적인 지식인들인 형이상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들의 증오의 대상이 될지 근심했던 26살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존재는 어떤 원인으로부터 유래하는가?

-나는 어떤 조건으로 돌아갈 것인가?

인간의 삶이 반 세기를 넘기기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고민 하고 탐구 했던 위의 세가지 질문은 2026년 현시대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부터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다.

부모의 등골이 휘어지도록 교육 지원을 받아 졸업장을 쥐고 사회로 나온 흙수저 출신들이 금융 대출 빚을 갚는 동안 부자는 자식에게 부를 대물림 해주고 가난은 가난의 대물림이 되어서  아무리 일해도 내집 마련의 희망은 이번 생에 영영 이루지 못할 좌절의 꿈이 되어 버렸다.

기업의 일자리는 점점 AI기기들이 차지 하게 될 것이고 정규 교육을 마치고서도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수준에 이르게 될 미래 세상에 우리 인간은   21세기 인류의 유산이 남긴 조산아들이 될 것이다.

'눈 먼 자연, 생기를 깨우는 어떤 거대한 원칙에 따라서 잉태되어, 

분별력이나 부모의 보살핌도 없이, 자연의 허벅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구의 조산아들'

-데이비드 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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