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카페 테일 하프카프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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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를 열면 고소한 아모든 향이 올라오고 첫 브루윙을 하고 나면 카카오 향이 올라오고 110리터 물을 붓고 나서 마시면 혀끝이 시럽의 단맛이 올라오지만 5봉지 다 마셔도 메이플 향과 맛은 나지 않은 신기한 하프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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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2-01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0리터 너무 많아요. 110밀리리터만 ㅋㅋㅋㅋㅋㅋ

scott 2024-02-02 00:11   좋아요 1 | URL
110개 드립백으로 줬으면 ㅋㅋㅋ
 
드립백 콜롬비아 나리뇨 산 로렌조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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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를 열면 가장 먼저 산미 향이 올라오지만 자몽의 향은 아닌 110리터 물을 붓고 마시면 첫 맛은 단맛이 느껴지지만 갈색 설탕 맛은 아닌 5봉지 다 마셔도 적포주 같은 바디감은 못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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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2-01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여태 팔아주시니 대단 ㅋㅋㅋ 저는 여기 드립백이 이상하게 물이 너무 안 내려서 못 먹겠더라구요. 여기도 110밀리리터만 ㅋㅋㅋㅋㅋㅋ

2024-02-02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립백 브라질 산토스 NY2 디카페인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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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드립백 디카페인 중에서 브라질 산토스 NY2의 맛과 향은 최고 입니다.
마신 날에도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디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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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홍합 2024-02-01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 좋아하시는 듯^^
저도 커피 참 좋아했었는데 한의원에서 커피를 계속 더 자주 마시면 손과 발이 지금보다 더 얼음장이 될거라는 말에 제가 직접 만들어 마시는 건 하지 않으려 해요ㅜ

2024-02-01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2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속도는 기분을 좋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도에 빠지는 건 그게 좋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온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느끼고, 어느 주제에 관해 무엇이든 알아내고 배울 수 있다고 느끼게 되니까요.]

                                                   -요한 하리의 <도둑 맞은 집중력> 중에서


연수를 마치고 첫 발령을 받아 짐을 싸는 동안 노트북을 켜 놓은 채 실시간 흘러나오는 스트리밍 영상 뉴스를 틀어 놓고 또 다른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는 시리즈물 영상을 띄워 놓았다.

한 가득 채워 넣은 짐 가방 뚜껑을 닫고 나서 노트북에서 뉴스 화면을 종료 시켜 버리고 메일을 화면에 띄워 놓고 pdf파일을 클릭하고 다음날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시리즈 물을 정주행 하고 나서 음악 스트리밍을 켜 놓고 보내야 할 메일의 답장을 쓰는 동안 채팅 창을 띄워 놓은 채 동료들과 업무에 관한 것들 기타 등등에 관한 것들을 주고 받았다.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저글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 침대에 눕자 마자 다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주일 후에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작업을 시작했다.

두 세 시간 쯤 눈을 붙이고 나서 공항 가는 버스에 올라 타서 잠깐 눈을 붙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것들을 떠올렸다.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나서 출국장 대기실에 앉아서는 앞으로 내가 근무 하게 될 부서가 맡은 업무에 관한 것을 숙지 하느라 하마터면 비행 시간을 놓칠 뻔 했다.

첫 근무지에 도착하자 마자 짐 가방을 열기도 전에 노트북부터 충전을 시켜 놓고 급히 휴대폰으로 메일 답장을 쓰느라 정신없이 손으로 화면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짐 가방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물품들과 출근 할 때 입을 옷가지들만 꺼내 놓았다.

도착한 다음날 부터 출근을 시작한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업무에 적응 하기 위해 하루 20시간 동안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야 했다.

매 분기 바뀌는 법령을 완벽하게 숙지 해야 했고 변론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바람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부피의 법전은 일일이 찾아 보지 않아도 머릿 속에서 자동으로 떠올릴 정도로 통째로 집어 삼켜 버렸다.

이렇게 업무에 숙달하는데도 24시간이 모자를 지경인데 나의 상사들은 매일 여러 나라에서 발행 되는 주요 신문과 일간지들을 샅샅이 읽었고 주기적으로 콘서트와 각종 전시회를 돌아 다니며 수시로 출장을 떠나면서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갈고 닦은 악기나 그림, 노래, 춤등의 재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의미 있는 자리에서 펼쳐 보였다.

업무 회기가 끝나는 주에는 인근 나라까지 자전거를 타는 일주 여행을 떠나거나 알프스 산행으로 피로를 풀었다.


호반의 도시 제네바에서 첫 달을 보내는 동안 무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 해 볼 여유조차 없이 업무 이외에 어떤 것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마치 짐 가방에서 물건들을 전부 꺼내지 못한 상태처럼 나는 그날 그날 주어진 업무를 따라 가는데 급급했고 눈 앞에 떨어진 업무를 처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렸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눈을 감고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지 석 달의 시간이 흘러 섬머 타임이 시작 되는 달부터 더 이상 허둥지둥, 허겁지겁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나의 상사들은 맡은 업무를 하는 동안 엄청난 사건이 터지지 않은 이상 여러 개의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깊게 사색 했고 깊게 몰입해서 절도 있게 행동했고 간결하게 말했고 유려 하면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 일의 선봉장에서 움직였다.

학교를 갓 졸업한 내 눈엔 이들의 모습들이 게임 시뮬레이션처럼 정교하게 짜여진 알고리즘 프로그랭밍화 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첫 근무지에서 살아 남아야 했기에 어느 누구와도 눈이 마주쳐도 인사하고 말을 걸며 사방 팔방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재빨리 알아차려서 대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갔고 어디를 간다면 따라갔다.

매 분기 주요 의제가 끝나는 주에는 점심 식사 후에 갖는 티타임 시간에 각자 읽고 있는 책을 가져와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에 끼어들기 위해 집에서 가장 두툼한 책을 덥석 가져 왔다.


이 책을 들고 간 날 함께 모인 사람들과 티타임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열띤 토론에 불이 붙었고 그 다음날 티타임 부터 각자 읽은 페이지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업무에 치여도 이렇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티타임 시간이 있는 주에는 온 몸에 에너지가 솟았고 매일 잠들기 전에 노트북을 켜지 않고 책을 펼쳤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문장에서 출발한 토론이 그 날 저녁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고 누군가 연극표를 구해 와서 단체로 관람까지 하게 되었다.

그날 극장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국장은 나에게 

'스무 살 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하고 나서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지. 이전까진 어떤 책을 읽어도 그런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없었거든 전에는 감히 시도해보지 못했던 존재 마치 저 멀리 있었던 그 무엇에 다가간 것처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거야. 내 인생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기 전과 후로 나눠져.'라는 말을 했다.


나는 스무 살 이전인 중학생 때 읽고 이해를 하지 못해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두 번째로 집어 들었다. 그 때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해서 이제서야 읽는다는 말을 하니 그 국장은

'세 번째 읽고 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 꺼야'


마침 제네바의 한 미술관에 러시아 회화전이 열렸는데 카탈로그에 크람스코이 그림이 있어서 시간을 내서 전시장에 찾아갔다.

크람스코이 <관조자> 1876



[화가 크람스코이의 그림 중에 관조자라는 제목의 훌륭한 그림이 한 점 있다. 겨울의 숲이 묘사되어 있고, 숲 속 길에 다 헤진 카프탄을 입고 짚신을 신은 한 농부가 길을 잃은 채 아주 깊은 고독에 잠겨 홀로 서 있는데, 꼭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관조‘ 하고 있는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이 그림 앞에 서는 순간, 현재의 내 모습이 보였다.

매일 출근 할 때 마다 짐 가방에서 하나 씩 옷을 헤집어 꺼내 입었고 업무에서 해방되는 순간엔 눈부신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숫가 주변을 걷는 동안에도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시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책을 펼쳤다.



[그 즉시 정신을 차리긴 해도 그에게 이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분명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하지만 그 대신, 분명히 관조 하는 동안 받은 인상은 자기의 내부에 감춰 둘 것이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인상들이어서, 분명히 의식도 하지 못하면서 살금살금 인상들을 축적하고 있는 것인데─무엇을 위해서, 왜 그러는지도 물론 알지 못하며서 말이다. 어쩌면 수많은 세우러 동안 인상들을 축적한 뒤 갑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고서 편력 생활과 수도 생활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갑자기 고향 마을에 불을 질러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짐 가방은 전부 비워 버리고 옷가지들과 물건들을 옷장과 서랍에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는 라디오 앱을 켜 놓았고 영상물은 집 앞 길 건너 극장에서 보았다.

잠들기 전에 두툼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부터 신기하게 차츰 시간이 남기 시작했고 인근 도시로 하이킹을 가거나 전시장을 찾아 다녔고 요리 클래스에 등록해서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 차려 먹게 되었다.


'세상은 어리석음 위에 세워져 있고, 

그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하는 동안 1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는 동안에도 그 책을 항상 가방 속에 넣고 생각 날 때 마다 수시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었다.

어느 해 봄 런던으로 출장을 떠난 주에 팀장이 찾아왔다.

그 팀장도 출장 차 런던에 왔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 굳이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숙소가 있는 피카딜리 나이트 브리지 역에서 만났다.

팀장은 서둘러서 헤롯 백화점에서 가족들에게 선물할   물건을 구입하고 지인들과 노팅힐에서 식사를 한다며 서둘러 나와 작별 인사를 하자마자 정신없이 누군가 통화하기 위해 휴대폰과 태블릿을 양 손에 쥐고 사라졌다.

나는 그 팀장과 헤어지고 난 후 다른 층에서 행사 중인 제품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날 저녁,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팀장은 그날 헤롯 백화점 앞 길을 건너다 이층 버스에 부딪쳐서 큰 부상을 당해 인근 병원에 입원 중이였다.

그가 수술실에 있는 동안 나는 그 팀장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경찰 말에 의하면 신호불을 그 팀장이 바뀐지 모르고 뛰어가다 사고를 당했다며 필요한 신상 정보를 적어갔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이 일 저 일을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해요. 뇌가 그 사실을 가려서, 의식에서는 아주 매끄러운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작업 사이를 오가면서 순간 순간 뇌를 재 설정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고요.]


중환자 회복실에서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 팀장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현재 내 삶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언제 어떤 대가를 치루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보통 우리는 쉬운 길로 가고 싶어 해요. 

하지만 우리가 행복할 때는 약간 어려운 일을 할 때거든요.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늘 중요한 것보다는

 쉬운 것을 제안하는 물건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 거예요.


뉴욕 지사에 도착 한 달에 아이패드 신형이 출시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대기 하고 있어서 감히 신형을 구입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찰나에 우연히 **출판사가 홈페이지와 앱을 새롭게 단장 하면서 자사 SNS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 달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그 이벤트 1등 상품이 신형 아이패드 여서 노트북 화면을 켤 때 마다 그 이벤트가 눈에 아른 거렸다.

이벤트 날짜를 확인하고 회원 가입을 하고나서 이런 저런 책을 골라 담고 가입 비용을 내고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지어 놓고 장황하게 이름에 얽힌 사연을 적어 구글 폼에 채워 전송했다.

몇 주 후 믿을 수 없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벤트에 당첨 되어  **출판사 로고가 뙁 찍힌 신형 아이패드를 손에 넣었다.

매일 쓰다듬고 만지고 터치하며 이런 저런 앱을 깔아 놓고 아이패드에 필요한 부속 기기를 구입하며 이북 라이브러리에서 읽고 들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몸에 착붙템이 되었다.

아이패드로 주문하고 예약하고 전송하고 보고 듣는 동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아이패드 화면에서 보았던 것 위주로 찾아 보며 내 인생의 모든 시작과 출발이 이 기기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디자인과 눈부신 기능으로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나는 아이패드 충성 고객으로 날로 거듭났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종이 위의 단어를 향해

 관심을 바깥으로 돌립니다.

 동시에 그 내용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내면을 향해 엄청난 주의를 쏟습니다.˝


오랫 만에 찾아간 대학원에 학생들이 <안나 카레니나> 책을 전부 손에 들고 있었다.

조교수가 된 친구가 전공은 아니지만 함께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어보자라는 제의를 하자 다수의 학생들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싶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인생에 대해서 순진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 어린애는 그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그들의 도피의 정도를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 책을 이미 러시아어로도 완독 했다는 말을 흘리듯 내뱉자 그 친구는 가방에서 두툼한 안나 카레니나 책을 꺼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았다.

곧바로 다음 날 부터  학생들과 함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 나는 그동안 항상 안나가 기차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장면에서 책을 덮어 버리고 나머지 가족의 삶인 레빈과 키친이 나오는 끝 부분은 설렁 설렁 읽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온 것인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살아갈 수도 없다.

무한한 시간, 무한한 물질,

무한한 공간 속에 물거품과 같은 하나의 유기체가 창조 된다.

그리고 물거품은 잠시 동안 견디다가 이윽고 터져버린다.

그 물거품이 바로 나인 것이다.


1년 동안 <안나 카레니나>를 함께 읽는 학생들과 나, 그리고  내 친구까지 각자의 사연들이 있었다.

세상을 떠난 엄마가 가장 사랑했던 책, 영화로만 봐서 원작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할머니에게 물려 받은 책, 모스크바 여행을 기념해서 사온 책, 오프라 윈프리가 지정한 책, 내전 발발로 임시 난민처에 사는 동안 만난 유일한 책....


이렇게 각자의 사연을 품고 1년의 시간 동안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 한 이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는 더 이상 신형 아이패드가 나와도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행동을 바꾸게 되니 사고가 바뀌었고 수시로 화면을 응시하지 않게 되니 생각이 많아졌다.












“헛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칼 같은 아이들은 너처럼 강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강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 말이야. 나는 이 일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요즘 같은 세상에 기댈 곳을 잃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무언가 하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니?”

                                                                         -제이디 스미스의 <온 뷰티> 중에서


신간이 나올 때 마다 항상 구매 해서 읽는 작가들 중 한 명인 제이디 스미스 

그녀는 캠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부터 문학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며 첫 소설 <하얀 이빨>을 출간 하자마자  수 개국어로 번역 출간 되면서 단번에 문학 천재의 자리에 올라갔다.


눈부신 찬사에 뒤이어 발표한 두번째 작품 <온 뷰티>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양 극단에 위치한 두 중산층 지식인 가정의 모습을 통해 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모순적 상황을 지적이고 꿰뚫는 듯한 필체로 쓴 작품이다.

1975년생 제이디 스미스는 15살에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고 세상이 두 동강이 나버릴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어떤 신사들은 자신의 위대한 영혼이 실수로 빠져든 우주라는 따분한 덫에 대해 전반적인 불만을 표현함으로써 문학계에서 놀라운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자아와 하찮은 세계를 의식한다면 그 나름의 위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드게이트의 불만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은 사고와 효과적인 행동에서 위대한 존재가 자기 주위에 있는 반면 자신의 자아는 점점 협소해지면서 비참하게 고립된 이기적인 두려움에 빠져들고 그런 두려움을 줄여 줄 사건을 천박하게도 노심초사하며 바라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중에서


영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Middlemarch)』는 가상의 소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각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등장 시켜 결혼, 종교, 선거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같은 주제들을 둘러싼 풍부한 담론과 극적 사건들을 촘촘하게 엮어서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욕망, 나아가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 본성의 명암을 포괄적으로 고찰한 대 서사시이자 최고의 사회경제 교양서다.

문학 천재 제이디 스미스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 <하얀 이빨>에서 흑인, 갈색인, 여호와의 증인, 이슬람교도, 레즈비언, 동물보호주의자들을 총 출동 시켜서 인종,종교,젠더 갈등,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갈등, 이민 2세대의 정체성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현재 영국의 모습과 무자비하면서 광범위하게 개척하고 짓밟아버린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종횡무진하며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21세기 현 시대로 재현 시켜 놓았다.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디 스미스의 인생은 엄청난 양의 책을 탐독 하고 나서 형제들과 쓰는 말과 행동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미들마치>를 읽고 나서는 가족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미들마치>를 여러 번 읽는 동안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옥죄 였던 정치와 종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회를 변혁 시키고 자유를 쟁취하려고 노력했던 조지 엘리엇처럼 생각하고 말을 했고 글을 썼다.



'기회란 말이죠.”

몬티가 자만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권리입니다……. 선물이 아니죠.

권리는 노력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는 반드시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가치가 떨어집니다.”

-제이디 스미스의 <온 뷰티> 중에서


연달아 출간한 소설의 성공으로 제이디 스미스의 책은 출판 시장에서 흥행 보증 수표가 되었다.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 선  그녀는 현재 미국 뉴욕에 정착해서 뉴욕 대학 문예창작과 종신 교수가 되어 영국의 주요 일간지에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여전히 <미들마치> 책을 읽고 있다.



150주년 출간 기념으로 나온 특별판에 서문을 쓴 제이디 스미스는 이러 글을 서문에 남겼다.

[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동안 어떤 남성 교수도 어떤 여성 교수도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 나는 조지 엘리엇 처럼 혼자서 모든 걸 찾아 다녔고 도움이 되는 친구들로 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조지 엘리엇이 스펜서와 교류 하며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를 번역하듯 나는 나의 남편이 아일랜드 고유어로 시를 쓴 것을 현대 영어로 번역했고 그리고 영국 땅을 떠날 때 유일하게 가져 온 책은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였다.]

-제이디 스미스


나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스무 살에 읽고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서 여기저기서 자신의 인생 책이라는 소리를 듣고 설렁 설렁 읽다가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보고 스스로 완독 했다고 생각했다.

2022년부터 몇 장 씩 읽다가 2023년 1월 부터 완독을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완독 읽기 차트를 만들어 하루 읽은 페이지를 적어 나가며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완독은 17일 만에 끝났고 이후 10일에 걸쳐 두 번째 완독 하고 이후 부터는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페이지를 넘겼다.


2023년 6월 9일 첫 창작물 웹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를 투비에 연재 하기 시작해서 7월 26일까지 5주에 걸쳐 총 10편으로 완결 했다.

https://tobe.aladin.co.kr/s/5871


누적 조회수 4.6만을 기록해서 2023년 투비의 1년을 빛나게 해준 인기 작 12편 작품에 나의 첫 창작 웹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 작품이 들어갔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지 않았다면 아니 앞서 읽은 1년의 시간 동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생애 첫 창작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찾아간 극단에서 먹고 자며 단원 연습 생활을 했던 작가 유미리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무작정 필사 했다.

그녀는 <죄와벌>을 필사 하고 난 후 마음 속 어딘가에 글쓰는 근육이 생겨 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노트에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모조리 적기 시작했다.

가족의 이야기로 희곡상과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27살의 작가의 타이틀을 얻은 유미리가 만일 아이패드를 24시간 끼고 살았다면 창작물을 써서 상을 탈 수 있었을까?


https://tobe.aladin.co.kr/t/scott


나는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투비에 글을 하루에 두 편씩 올리면서 전보다 더 많이 읽고 있다.

수 많은 작가들, 예술가들,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창조적 영감이 내면의 뮤즈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들이 말하는 내면의 뮤즈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체험, 학습에서 이루어진 결정체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도 청년 시절 교구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앞선 선배 음악가들이  작곡한 작품들을 매일 필사 했고 천재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활을 쥐기 시작했던 4살 부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크 시대 작품 악보를 필사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씩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푸바오가 노는 모습을 잠깐 스쳐 지나가듯 보다가 푸바오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다음 영상으로 푸바오의 쌍둥이 여동생까지 찾아 본다.


그렇게 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어느 덧 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고 두 눈과 머릿 속은 온통 푸바오를 부르는 사육사 할부지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글을 쓰기 전엔 어떤 단어도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내 몸은 노트북 앞에 있지만 머릿속은 시 공간을 넘나들며 마치 그동안 잊혀졌던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둔 기억의 서랍장을 열어 젖히듯 전에는 쓰지 못했던 문장을 쓰게 되고 마침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우리 안의 각자의 뮤즈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일상적인 일과 생각으로 분주하게 어지럽혀 져 있어도 불굴의 뮤즈는 우리가 다시 찾아 올 때까지 마음 한 구석에 동면을 하고 있다.

무언가 읽고 부지런히 쓰는 동안 내 안의 뮤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한계는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인생의 단편이 아무리 전형적이더라도 일정한 거미집의 표본은 아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 있고, 

열성적인 시도가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잠재 된 힘이 오래 기다려 온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과거의 과오가 원대한 복구를 촉구할 수도 있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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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1-11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부임지가 제네바였다니...너무 낭만적이네요. 투비 소설 선정도 축하드립니다. 미들마치 원서로 읽어보려고 다운 받았었다 바로 접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 출간과 함께 다시 재도전해보려 합니다. 기대되네요. ‘도둑맞은 집중력‘ 상태라 저는 정신 좀 차려야 할 것 같아요. ^^;;

scott 2024-01-11 15:52   좋아요 2 | URL
사회라는 정글의 조직 생활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도시의 이름만으로 낭만을 떠올리신 블랑카님이 로맨티스트 성향이 ㅋㅋㅋ

blanca 2024-01-11 16:44   좋아요 1 | URL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scott 2024-01-12 11:04   좋아요 1 | URL
^ㅎ^

희선 2024-01-12 0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이디 스미스 모르지만, 열다섯살에 《미들마치》를 읽었군요 그리고 지금도 읽는다니... 그런 책이 하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님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중학생 때 처음 읽고 나중에 또 보기도 하셨군요 톨스토이도...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민음사에서 나왔군요


희선

2024-01-12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4-01-1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으로 안나카레니나 읽은 저는 하루 대부분을 아이패드에 띄운 pdf문제들 보며 책은 한 줄도 못 읽고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이것도 일시적인 삶의 형태겠지만요 ㅋㅋㅋ 스콧님 제 몫만큼 더 즐겁게 실컷 읽는 나날 계속 보내시길 빕니다.
 
[세트] 패신저 + 스텔라 마리스 - 전2권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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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응급 가방에서 꺼낸 회색 구조용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 주위에서 거무스름한 바다가 찰싹였다.

백 야드 떨어진 곳에 멈춘 해안 경비대 보트가 항해등을 켠 채 큰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고 그 너머 북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곳에는 둑길을 따라 움직이는 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코맥 매카시의 <패신저> 중에서


1980년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 출신 인양 잠수부로 살아가는 서른 일곱 살 보비 웨스턴

그는 돈만 받으면 바닷 속으로 뛰어들어 '무엇이든'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새벽 , 멕시코만 수중에 추락한 비행기를 탐색해 달라는 급한 의뢰를 받은 ‘인양 잠수부’ 보비 웨스턴은 친구 오일리와 함께 수색하는 작업에 뛰어든다.


[웨스턴은 장갑을 꼈다. 조사등의 하얀 빛줄기가 물 위를 내달리다 돌아오더니 이윽고 깜깜해졌다. 그는 벨트를 두르고 고리를 걸고 나서 조절기를 입에 넣고 마스크를 내린 다음 물로 걸어 들어갔다.

밑에서 이따금 확 타오르는 토치 불빛을 향해 어둠을 뚫고 천천히 내려갔다.

묵주 같은 리벳들, 토치가 다시 불을 밝혔다. 동체의 형태는 터널처럼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졌다. 그는 발 장구를 쳐 터보팬 엔진들을 담고 있는 거대한 엔진실들을 지난 다음 동체 옆면을 따라 내려가 빛의 웅덩이 안으로 들어섰다.]


인양 잠수부 웨스턴은 부서진 비행기 운전석에서 여전히 좌석에 벨트를 맨 채 거대한 꼭두각시처럼 사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머리 위 천장에 등을 붙인 채 심해 속을 둥둥 유영하고 있는 부조종사와 조종사 시신을 발견한다.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걸 확인한 웨스턴은 탑승객 일곱 명의 시신을 차례 차례 물 밖으로 끌어 올리고 마지막 수색작업을 펼치던 중 비행기 내부엔 수상하게도 조종사의 운항 가방과 블랙박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사히 인양 작업을 마친 웨스턴과 친구 오일리는 뉴스 어디에서도 비행기 추락 사고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하고 그 날 밤 비행기가 바닷 속으로 추락했던 시기에 어부 몇 명을 제외하고 물 밖에서 목격한 이들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색 당일 저녁. 보비 웨스턴 집에 선교사 같은 정장을 입은 형사 두 명이 찾아와 그에게 블랙박스 행방과 승객 한 명의 실종에 대해 캐묻지만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보비는 모호한 답변으로 이들의 심문을 넘어간다.

보비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몇 주에 걸쳐 집안 곳곳에 누군가가 몰래 침입해서 수색한 사실을 알고 부터 그는 이 비행기 추락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걸 직감한다.

며칠 뒤 함께 비행기를 수색 작업을 했던 친구 오일러가 베네수엘라로 일하러 갔다가 의문의 사망을 하면서 사건에 대한 의혹은 커져 만 간다.

그리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을 봤다는 그 어부들의 행방도 묘연 해지고 시신을 찾는 가족도 없고, 아무도 이들의 죽음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던 승객 아홉 명(조종사 부조종사를 포함해서)들은 이미 사망했었던 것일까?

실체 없는 죽음을 목격한 웨스턴은 인양 잠수부 일을 사뭇 주저 하면서도 어둠의 바닷 속, 심연 깊숙이 자리 잡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비 웨스턴, 한 때는 전도 유망한 물리학도였던 그에겐 조현병을 앓다 10년 전 스무 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여동생 얼리샤가 있었다.

여동생 얼리샤는 십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가 스무살에 시카고 대학원에 입학한 천재로 웨스턴 남매의 아버지는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원자폭탄 개발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자로 핵심 멤버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았다.

종전 후 남매의 아버지는 수소폭탄 개발을 주도한 텔러와 함께 숱한 비난과 공격을 받았고 원폭으로 희생된 무고한 생명에 대한 죄책감으로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다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곳은 그녀 삶의 마지막 해 겨울의 시카고일 것이다.

일주일 뒤면 그녀는 스텔라 마리스로 돌아가

거기에서 정처 없이 걷다가 황량한 위스콘신 숲으로 들어간다.


10대 때부터 편집성 조현병을 앓아온 얼리샤는 증세가 심각해 질 무렵부터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키드’라 불리는 난쟁이와 쉼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키드'는 콧구멍의 털과 귓구멍 안 생김새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생생한 모습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 허상의 존재다.

명망 있는 화학자 였던 할아버지, 원자 폭탄 개발에 참여 해서 2차 대전 종전을 앞당기는 데 일조한 수학자 아버지를 두었던 얼리샤에게 이 세상은 인간이 의식하고 있는 것들 모든 것이 실재 하지 않는다.

열 두 살 때부터 환각을 경험한 얼리샤를 진단한 담당의사는조현병이라 진단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난쟁이 '키드'에게 오빠 보비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연작 형식의 소설 1권 ‘패신저’는 현 시점의 보비 웨스턴의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서술 되어 있고 2권 ‘스텔라 마리스’는 자살하기 전 여동생 얼리샤의 어제와 오늘의 시간 동안 담당 의사와 면담 형식을 기록한 보고서로 구성되어 있다.


1권 <패신저>의 주인공 보비 웨스턴은 마치 사방으로 충돌하는 원자의 입자처럼, 카페에서, 모텔 카운터에서, 연고 없는 마을의 작은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다 만난 사람들과 묻고 답하며 과거의 시간을 회상한다.

이 작품을 처음 읽게 되면 1권 패신저의 추락한 비행기와 그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 속에서 웨스턴 남매의 지나가 버린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진다.


하지만 두 번째로 1권과 2권의 책을 나란히 펼쳐 놓고 번갈아 읽는 동안 이들이 선문답 처럼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신과 종교.인간, 죽음, 우주의 시간이 20세기 현대 역사와 촘촘하게 맞물려 진행 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시간은 선형적이게 흘러가지 않고 점진적이게 중추적인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1972년 위스콘신주의 정신과 치료시설 '스텔라 마리스'를 제 발로 찾아간 얼리샤가 정신과 의사 닥터 코언과 7차례 나눈 상담 녹취록으로 구성된 제 2권 <스텔라 마리스>에서 얼리샤는 오빠 보비와 외부인들에게 절대로 들켜서는 안되는 금지된 사랑을 털어 놓는다.

오빠 보비는 여동생과의 사랑에서 벗어나려고 심해 잠수부 인양 작업을 하며 포물러 원 경주 선수로 살다 자동차 사고 이후 혼수 상태에 빠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오빠 보비의 숨을 거둘 권한은 여동생 얼리샤에게 있다.

한편, ‘스텔라 마리스’ 병원에 있는 얼리샤는 “오빠 없이 살아 있는 것보다 오빠와 함께 죽는 게 낫다”는 말을 하지만 보비의 뇌사판정이 얼리샤의 환각 증세로 인한 망상인지 작가 코맥 매카시는 소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다만,오빠와 금지된 사랑의 중압감에 시달렸던 얼리샤가 겨울 숲을 홀로 찾아가 스스로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한 건 수식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사랑하며 일찌감치 방정식들이 생명이 유지되는 어떤 형식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눈앞에 실재하고 있다는 걸 이해 했기 때문이다.

정신적 문제를 겪으면서 세상의 절대적 진리를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은 수학에서 구원을 얻고자 했던 얼리샤가 어떤 방정식으로도 진리에 결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다.


“하나의 공허 뒤에 또 하나의 공허이고 그게 본질이야.

 그냥 하나가 아니야. 좋은 책에서 말하는 것 하고는 달라. 

너는 공허가 그냥 공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계속돼.”


얼리샤의 환각 증세를 분석하는 담당의사 코언은 환자 얼리샤에게 절대적이였던 것이었다가 절망을 안겨준 수학과 사랑하는 친오빠 보비 그리고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는 핵폭탄 개발에 참여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서 마침내 그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떠나려는 오빠 보비를 발견하게 된다.


“슬픔은 삶의 재료야. 슬픔이 없는 삶은 아예 삶이 아니지. 하지만 후회는 감옥이야. 네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너의 일부가 더는 찾을 수도 그렇다고 절대 잊을 수도 없는 어떤 교차로에 영원히 꽂혀 있는 거야.”

미국 현대소설의 거장 코맥 매카시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 작품에 대해 뉴욕 타임즈의 한 서평 기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향후 150년간 전도서처럼 작가들이 훔쳐 자기 책의 서문으로 쓸, 웃기고 이상하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2022년 나는 이 두 작품이 한 번에 출간 되자마자 읽었다.


1권 '패신저'를 꾸역 꾸역 읽고 나서 2권 '스텔라 마리스'를 완독하고 다시 1권으로 돌아 갔다.

1권에서 주인공 보비가 여러 인물들과 주고 받는 대화들의 주요 핵심 단어들을 체크 하고 나서 성경 책을 꺼내 놓고 오펜하이머 자서전,오펜하이머 연설문집, 편지 모음집, 기타 맨해튼 원자 폭탄 프로그램에 참여 했던 핵심 맴버들에 관한 책과 그들의 삶을 다룬 자서전과 미국 현대사(1960년대 이후/케네디 형제의 죽음을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케네디 형제를 살해한 배우 세력에 관한 책들 ) 전부 찾아 읽었다.


1년의 시간 동안 곁 가지로 뻗어나간 책과 지식을 쌓고 나서 2023년 12월, 마침내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 책을 처음 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물 위에 둥둥 뜬 코르크, 유릿 조각, 유목,

작은 곶 너머로 대리석 조각 같은 돌들이 해변을 따라 달그락 거리고

파도가 길게 부글 거리며 물러나고 있다.

오랜 세월 지칠 줄 모르고 해협 건너 간신히 보이는 베드라의 바위 요새,

빗속에 시커먼 돌, 첨탑들..



1933년생인 코맥 매카시는 89세로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에 유작처럼 출간한 이 두 작품을 지난 15년의 시간에 걸쳐서 완성했다.

미국에서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단 3명의 작가의 작품만 편집자들의 수정이나 조언을 거치지 않는다.

돈 드릴로, 폴 오스터 그리고 코맥 매카시 이 세 명의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원고를 넘겨주는 즉시,오탈자만 검열하고 편집 작업에 들어간다.

코맥 매카시의 마지막 출판을 담당했던 편집자들은 그가 몇 달에 걸쳐서 원고 뭉치를 건네며 반드시 비밀을 유지 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말을 했다.

코맥은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원자 폭탄 개발이 이루워 졌던 뉴멕시코 주의 로스 앨러모스에 장기간 거주 하며 미국 현대사의 비극이 일어났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철저한 자료 조사를 했다.

케네디 가문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잊혀진 첫째 달 로즈 마리 케네디가 입원했던 <스텔라 마리스> 병원까지 조사했던 코맥 매카시는 대학에서 잠시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했던 물리학도이자 공학도로 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걸 격렬하게 반대했던 아버지를 벗어나 무일푼으로 미국 전역을 떠돌며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


매카시는 실제로 잠수부 인양 작업부일도 했었고 석유 시추 회사에 고용되어 조사원으로도 일 했었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일도 하며 극빈의 삶까지 경험했다.

성공한 변호사를 둔 부유한 집안이였음에도 미래가 전혀 보장 되지 않는 글쟁이 길을 갔던 코맥 매카시에게 글쓰기란 영혼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인간의 심연 속 그 무엇을 문장으로 끌어 올려 내는 것이였다.

따라서 그의 일련의 작품은 메시아적인 시점으로 선문선답을 주고 받는 대화체들이 마치 누군가의 녹취를 풀어 놓듯 선형적인 구조로 층층이 쌓여져 있다.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에 나오는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인 주유소 직원도, 사장도, 술집 종업원도, 모델과 배우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오펜하이머, 케네디 형제, 재클린 오나시스 그리고 저격수 오스월드, 수 십년 동안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FBI국장 에드거 후버 그리고 여러 명의 범죄자들 모두 세상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원자 폭탄이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졌을 때 2차 대전의 전쟁은 종전이라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지만 뒤이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고 연이어 중동의 화약고가 폭발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류는 일초 즉발의 핵 위기까지 인류 문명의 눈부신 기술과 과학 혁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어떤 평화와 전쟁, 폭력을 가져다 주었는지 90년의 세월을 살다간 코맥 매카시는 모든 것이었다가 절망을 안겨준 문명의 혜택이 갈급한 욕망에 사로 잡혀 결국엔 우리 모두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다는 것을 마지막 두 권의 유작을 통해 펼쳐 보인다.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만드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레오 실라르드는 훗날 개발 당시에 자신이 느꼈던 심정을 이렇게 토로 했다.


“1943년과 1944년의 몇 달 동안 우리의 가장 큰 염려는 연합군이 유럽으로 진격하기 전에 독일이 원자폭탄을 완성 하지 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독일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염려가 사라진 1945년에는 우리는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들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6일, 아인슈타인과 프랑크, 실라르드, 라비노비치는 원자폭탄 사용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어쨌든 8월 15일 나가사키에 폭탄이 떨어졌고 한국은 해방이 되었다.

만일 일본 , 독일이 먼저 핵 개발에 성공 했다면 20세기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을 것이다.

1945년 8월 12일 일본은 이미 한국 동해안의 작은 섬에서 소형 원자폭탄을 실험했다.

미국이 7월 16일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한 것보다 불과 3주 뒤로 이 핵실험 성공을 미국측이 알고 있었는지 현재까지 어디에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1942년 4월 18일 미국이 일본 본토에 첫 공습을 시작하고 1944년부터 전략 폭격으로 확대해 나가자 일본은 원폭 프로그램을 한국의 흥남으로 옮겨 버렸고, 흥남지역에서 일본군이 원자탄 연구를 계속 수행 하는 동안 소련 잠수함이 흥남항 주변까지 내려 왔다.

만일 1945년 8월 15일 나가사키에 B-29 폭격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먼저 미국 본토에 핵폭탄을 떨어뜨려서 미국을 평화협상에 강제로 끌어 당겨 놓고 영원히 한반도와 동아사이 전체를 집어 삼켰을 것이다.

핵폭탄 성공 후 익명의 플루토늄 폭탄 개발 관계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더 ‘나은’ 이 폭탄을 사용하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용되지 않길 바랐고, 그것이 초래할 파괴를 생각하며 몸서리쳤습니다. 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 종류의 폭탄 역시 예상한 대로 작동하는지, 다시 말해서 그 복잡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몹시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끔찍한 생각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소련 간첩 혐의를 의심 받은 과학자들은 정식 재판에 회부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정부로 부터 밀착 감시를 받으며 죽을 때까지 조국을 배신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아버지가 원자 폭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의 자식들은 이웃들로부터 불신과 기피 대상이 되었고 학계에 유배 되거나 학계에서 밀려난 채 거의 추방 선고 형을 받은 삶을 살았다.

자살하거나 병들거나 아니면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고 온 비극이였지만 극단의 폭력으로 동아시아는 물론 인류 전체를 전쟁의 광풍으로 휩쓸어 넣어 버렸던 일본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원자 폭탄 뿐 이였다.

일본에 몇 몇 도시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 마침내 전범 국가에게 짓밟혔던 국가의 국민들이 겪었던 끔찍하고 참담했던  고통은 끝이 나버렸지만 원자 물리학의 모순적인 테이터 통계로도  극단의 상황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 이 세상은 마음만 먹으면 핵을 가진 국가는 버튼을 누를 수 있고 그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가 존재 했던 세상은 무너져 버린다.

20세기 중반 현대 물리학이 바꾸어 놓은 세상의 질서가 모든 인류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 넣었다.


보비 웨스턴은 10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이 문득 생각 나서 그녀의 사진을 찾지만 찾지 못한다.

아니 도저히 먼지가 쌓인 앨범에 있는 앳된 모습의 여동생 얼리샤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한다.

어둠에 쌓여 있는 바닷 속을 하염없이 유영하는 보비 웨스턴

마침내 자신의 두 손을 오므려서 마지막 순간을 밝혀주는 불을 스스로 꺼버린다.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며 옷과 먹을 것을 주는 건 사람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인간 뿐 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들이 여러 명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이들 중 누군가는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고 있을 것이고 슬픔에 사로잡히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이들도 있다.

집단적 슬픔, 집단적 폭력, 집단적 적개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고 '우리'라는 집단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는 '영원한 화해'도 '영원한 용서'도 없다.

20세기 초에 이르자 마침내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모든 것을 수학으로 계산 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단지 우주가 완전한 어둠과 정적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진화 하는 동안 진행된 방식이 인류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소리 없이 폭발하는 별들, 혜성들, 지나가는 유성들 모두 인간의 문명으로 설명하고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우주라는 공간은 끝도 없이 펼쳐지며 어떤 생명체가 목격하거나 실재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했다.

작가 코맥 매카시도 마지막 두 권의 책에서 불확실한 세상을 문학적 언어로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자의 명령을 믿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나요?


1962년 4월 케네디 대통령은 오펜하이머를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하는 백악관 만찬 행사에 초청에 비공식 청문회로 실추된 그의 명예와 자존심을 세워 주고 다음 해 봄 공직에서 국가에게 공헌한 이들에게 주는 엔리코 페르미상을 수여 하고 5만 달러의 상금을 준다.(1963년 11월 22일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링컨 컨티넨탈 차를 타고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행사를 하던 중 오후 12시 30분, 딜리 플라자를 지나던 케네디 대통령의 차량에 보관 창고 건물 6층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가 총 3발이 케네디 대통령의 목을 관통하였고 목을 잡고 고통을 호소하다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해서 당시 부통령이였던 린든이 대통령직에 올라가자마자 오펜하이머에게 상을 수여했다. 몇 주 후 재클린 케네디가 개인 면담을 통해 생전 남편이 오펜하이머를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다는 말을 전달했다.)

오펜하이머는 당시 이 시상식 자리에서 이런 연설을 남겼다.


“과학을 하는 사람과 예술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항상 불가사의에 둘러싸인 채 그 가장자리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두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척도로서, 항상 새로운 것을 익숙한 것과 조화 시키고, 새로운 것과 종합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전체적인 혼란 속에서 부분적인 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과 인생에서 스스로를 돕고, 서로를 돕고,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술과 과학의 마을들을 서로와 전체 세계와 연결하는 길을 만들어 진정한 세계적인 공동체의 많고 다양하고 소중한 유대들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열려 있고 심오한 상태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미적 감각과 그것을 만드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가끔 멀고 이상하고 낯선 장소에서 그것을 보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거대하고 열려 있으며 바람이 세게 몰아치는 세계에서 이것들이 번창하도록 유지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



맨해튼 원자 폭탄 개발에 참여 했던 모든 과학자들도 세상을 떠났고 오펜하이머의 명예를 살려주며 상을 수여한 케네디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고 미국 현대 문학의 거대한 산맥의 봉우리였던 작가 코맥 매카시도 세상을 떠났다.

첫 번째 책 패신저의 첫 문단으로 돌아가면 노란 장화 한 짝이 벗겨진 상태로 눈 밭에 서있는 엘리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패신저의 마지막 문단에 다다르면 어둠 속에서 죽은 여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짚자리에 누워 자그만한 소리로 오빠 보비 웨스턴이 미지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작가 코맥 매카시는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범 우주적인 세계관 속에 현실과 환각의 세상을 교차 시키며 삶과 죽음에 관해 자신의 언어로  지상에 마지막 두 권의 이야기를 남겼다.


[여기 이야기가 있다. 주위가 어두워지는 동안 우주에 홀로 서 있는 모든 인간 가운데 마지막 인간, 하나의 슬픔으로 모든 것을 슬퍼하는 인간, 한 때 그의 영혼이었던 것이 소진되고 남은 애처로운 찌꺼기에서는 이 마지막 날들을 안내해줄 신 비슷한 존재라도 만들 재료는 전혀 찾지 못할 것이다.]

                                                                                -코맥 매카시(193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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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1-08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님. 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원서로 나오자 마자 읽으시고 배후 지식까지 1년간 쌓으신 후 다시 독파하시다니@_@;;; 번역본도 자신이 없어서 아직 주문 못 하고 있는데@_@; 부끄럽고 존경합니다^^

scott 2024-01-08 14:25   좋아요 1 | URL
이 책 읽을 만한 (시간을 두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폴 오스터의 4321
코맥 매카시의 <패신저>는 21세기 현대 문학 명작에 반열에 올라가 있습니다.
꼭 읽어 보세요 ^^

망고 2024-01-08 14: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오펜하이머 자서전 번역서 벽돌 두께에 기가질려서 언제나 읽게될까 하고 있는데 스콧님은 무려 원서로ㅜㅜ 이 소설을 제대로 잘 읽으려고 곁가지로 저렇게나 많은 방대한 자료들을 함께 읽으셨군요👏👏👏저는 근데 이때까지 이 작가님 소설이 취향인적이 없는데 오펜하이머 자서전 다 읽으면 도전해 봐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2024-01-08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냥장판 2024-01-08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오스터의 4321 은 어떤 삶이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헷갈렸는데
이책 스텔라마리스는 대화형식이라 읽혔지만
와 패신저는 당췌 헤상에 침몰한 배에 들어간 인양부에서 뭐가 일이 일어나나 싶으면 이상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번역이 문제인지
제 이해력이 날이 갈수록 딸리는건가 다시 읽어 보려던 차에 리뷰 글에 이해가 가네요
그놈의 오 하느님에 ㅜ 머리 쥐어 뜯을뻔 했다니까요 ㅋ

2024-01-1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4-01-09 0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한번 실망했던 코맥 매카시인데 스콧님 리뷰 읽어보니 이 책들 두권 완전 흥미진진하네요~!!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명작이라니 안읽을수가 없겠네요~!!

scott 2024-01-11 11:58   좋아요 1 | URL
실망은 아니고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어서
현대사와 과학 철학을 학습 하고 나서 다시 읽었습니다
명작 중에 명작입니다

유명인들이 추천을 안한 이유가
두꺼워서 일지도 ㅋㅋㅋ

demianee 2024-01-10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오랜만이에요! 기억에 남을만한 인용구가 있는 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

scott 2024-01-11 11:59   좋아요 0 | URL
장문의 댓글이 짧아졌어요 ㅋㅋㅋ

저는 매일 투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데미님 시험은 잘 보셨겠죠(너무 오래전 이지만)
건강하게 행복한 새해, 갑진년 한해 행운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희선 2024-01-12 0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맥 매카시 책 한번도 못 봤군요 이름만 아는 작가... 이 책이 나왔을 때 원서로 보시고 다른 책을 죽 찾아서 보시다니 대단합니다 그런 걸 보고 다시 봤을 때 더 잘 알았을 것 같네요 과학자가 연구하는 걸, 제대로 쓰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것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희선

2024-01-12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