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NHK 일일 아침드라마 1920년대 일본 사회가 배경인 ‘호랑이에게 날개(虎に翼)’의 87화 에피소드에  조선인 남성이 피고인이 된 방화 사건 재판이야기가 등장한다.

간토 대지진 발생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일본인들은 손에 총과 칼을 들고  눈에 보이는 데로 조선인들을 잔혹하게 찔러 죽였다.

잔혹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들에게 누명을 쓰고 방화 혐의를 받은 조선인을  재판장에 세운  검사는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며 판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이 나지 않으면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검사의 말을 들은  판사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 당했던 일을 재판장에서 언급 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적한다.

'차별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끝내버릴 건가, 연기를 피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낼 것인가? 헛소문을 믿고 무고한 사람을 잡으면 안 된다.'

일본 방송 텔레비전 역사상 자신들의 손으로 조선인을 잔혹하게 죽인 '1924년 간토 대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2024년에 방영된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虎に翼)’가 최초다.

2024년 드라마 방영 당시 방송 게시판은 두 개의 의견으로 강하게 충돌했다.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이 드라마를 보라”며 응원하는 글과 “NHK는 좌파다” “왜 일부러 (조선인 차별 문제를) 다루는가” 라는 글들이 게시판에 줄을 잊자 제작진은 이 드라마의 제작 의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1920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에서 간토대지진 발생으로 일본 사회가 그 시절에 어떤 상황이였는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시대 드라마는 판타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따라서  간토대지진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유언비어로 살해 당했다는 걸 이 작품에 분명히 보여 줘야 하고 당시 일본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 역사적 사실입니다.'


2024년  4월 방영되었던 일본  NHK 일일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는 1938년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미부치 요시코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로 일본 법조계에서 남녀 성 차별의 문제 부터 일본이 전 세계로 군사력을 펼치며 한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던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 상황이 일본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밀도 있게 펼쳐 보였다.  

1923년 9월 1일, 도쿄·요코하마를 비롯한 일본 간토 지방을 진도 7.9 대지진이 발생했다.

단 몇 분만에  사망자 10만명, 이재민이 34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일본 열도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였다.

지진이 발생했던  동시간 대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 조선인들로 넘쳐났다. 

지진 발생 직후 괴이한 유언비어가 떠돌기 시작했다.

‘조선인이 폭탄을 던져 화재가 계속되고 있다’ ‘우물에 독을 탔다’ 등의 괴소문이 급속도로 퍼지자 가장 먼저  일본 군인과 경찰이  총·칼·죽창을 들고 조선인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이에 동참한 일본 민간인들은 조선인들의 사지를 찢어서  산채로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일본인 손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의 수가 6661명에 달한다. 

당시 상황을 취재 했던 미국 뉴욕트리뷴,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 등 외신 기사는 인종청소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일본의 잔혹함을 강하게 규탄했다.

도쿄 스미다구의 조용한 주택가 지역을 돌아 요코아미초 공원에 들어서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돌비석 같은 것이 세워진 곳이 있다.

 그 돌비석에 새겨진 문구에는 주어 없이 이런 비문이 적혀 있다.

 ‘추모’

이 역사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일 조선인과 굳게 손을 잡고 일조친선, 아시아의 평화를 세우겠다.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 사람의 가죽을 벗겨 먹었던 일본 군인들과 경찰들은 국가의 명령을 받아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고다.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 하기 위해 일본은 '메스암페타민' 이라는 피로와 졸음을 없애는 마약 성분의 각성제까지 먹여서 반 미치광이 상태로 만들어 살인기계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핏물로 물들였다.

‘1923 간토대학살’에 대해 우리는 학교에서도 상세하게 배운 적이 없다. 

뉴스나 신문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는 정도 였지만 최근에 개봉된 영화 '1923 간토 대학살'을 촬영한 감독은 제작에 앞서 사전 조사를 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는 자료 열람신청부터 허가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막상 찾아보니 당시 군대 관련 증거 기록이 적지 않았다.

방위연구소에 보관된 군대보고서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계엄군 15연대가 조선인을 총살한 기록을 확인했다. 또 도쿄공문서관서 발견한 ‘관동계엄사령부 상보 제5권’을 통해선 일본 정부의 의도적 기록 삭제 정황이 의심될 정도로 증거가 남아 있었다. 한때 기밀 문서였던 이 자료는 1923년 당시 무기사용 기록 중 제11장 목차와 내용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이 문서와 보고서에  군대·경찰에 의해 살해된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고  1923년 11월 22일 뉴욕타임스가 요코하마 부두 부감독인 미국인 헤드스트롬의 증인을 기사에  인용했는데 그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가능한 많은 조선인을 죽이라는 공식 명령이 내려졌다” 

영화 '1923년 간토 대학살'에 증언과 기록 문서에 의하면 1923년 9월 1일 지진이 발생한지 하루가 지난 2일 동안 총 250명의 조선인이 5명씩 묶인 채 산채로 불태워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 자체를 당시 내무성이 유포했다'는 사실을 직접 출연해서 밝히고 있다.

일본은  3·1운동 당시 조선에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지배층의 위기감이 커졌고 간토대지진을 계기로 잔혹함을 보여주어 한국인들의 손과 발을 묶어 버리는데 성공했다.

 이듬해 일본은 군국주의화로 치닫더니 대륙 중국으로 넘어가 세기의 살육전 난징 대학살을 자행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 사설 <천성인어>에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 되었던 <간토 대학살> 발생 당시 역사적 사실을 언급 하며  일본 정부와 도쿄 도지사를 향해 따금한 비판을 날렸다.

 “유언비어를 믿은 시민과 군·경찰에 의해 많은 한반도 출신의 사람이 살해된 것은 당시 보고서나 체험자 수기 등에서 분명하다. 학살과 재해는 다르다”며 “고이케 지사 태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묵살하는 학살 부정론과 통한다”

일본에 남아 있는 상당량의 증거와 증언에 의하면 학살 배경에는 조선인에 대한 경계심과 잠재적 차별 감정이 있었다.

역대 한국 정부의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일본에 대해 항상 저 자세로 굴었고 국민들 앞에서나 일본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반사판처럼 내지르기만 하고 있다.

정확한 희생자 숫자도 모른 채 일본은 103년 째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며 사과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간토 계엄사령부 상보’, ‘도쿄 백년사’ 등 학살 기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마치 눈 먼 장님이 우물 속에서 바늘을 찾듯이 학살에 대해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만 103년 째 반복하고 있다.

202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재일조선인 학자이자 미술사와 디아스포라 연구에 매진한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간토 대지진 때처럼 조선인을 죽이자고 이 강의실에 누가 들어왔을 때 이 방에 있는 학생 중 누군가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도 조선인을 죽이자는 무리에 들어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발생한 최악의 지진과 쓰나미로 목숨을 잃은 일본인 사망자 수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잔혹한 죽임을 당했다.

조선인을 향한 대학살을 부정 당한 시간은 103년, 광복을 맞이한 시간은 81년이다.

기록되지 않는 기억은 사라진다.


한국의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올릴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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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6-09-02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카스피 2026-09-0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일본의 침략역사 부정은 과거 일본 정부의 잘못도 크지만 그걸 바로 잡을 생각을 전혀 한했던 승전국 미국의 책임이 제일 크단 생각이 듭니다.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고 중국이 공산호되면서 소련의 남하를 막기위해 미국은 일본의 과거 잘못을 많이 눈을 감아 주었지요(실제 일본은 미국말을 잘 들었기에 역사 왜곡쯤 쉽게 눈을 감았단 생각이 듭니다)
이는 독일이나 이태리의 경우 주변의 피해국들이 대부분 직접 전쟁을 치르며 승전국이 되어 역사 왜곡을 할래야 할 수 없었던 반면 한국은 일본과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고 중국은 공산화이후 잦은 뻘짓으로 자국 정차사정도 복잡해 일본의 역사왜곡에 항의나 재제를 가할 형편이 못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주기적으로 건강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식품이 있다.

식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인공적인 첨가물이 많이 포함된 초가공식품들이다.

가장 먼저 유전자 공학자들이 절대로 먹지 않는 초가공 식품은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감자 튀김

맛의 변형을 하기 가장 쉬운 감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대규모로 재배된 것들을 여러 조미 단계를 거쳐 냉동을 시킬 때 제조 과정에서 아크릴아마이드 같은 발암 가능 물질이 생성된다.

이렇게 초가공된 감자를 고온 기름에서  튀겨 지는 동안 짠 맛은 강해지고 식감은 청각과 미각을 자극하고 중독 시킬 정도로 바삭하게 튀겨진다. 바삭한 식감과 짠맛, 인공 향미 맛은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 해서 배가 부르더라도 계속 먹게 되는 중독성이 생긴다.

2. 다양한 과일 맛이 첨가된 가향 요거트

제품 뚜껑에 신선한 과일이 그려진 요거트들은   과일 고유의 향을 내기 위해 당류와 향료를 첨가한 제품이다. 

요거트 뚜껑을 열고 한 스푼 떠 먹어 보면 딸기 덩어리가 씹히고 복숭아, 블루베리 알갱이들이 혀끝에 착 감긴다. 스푼을 세 번 움직 였을 뿐 인데 금세 바닥을 보이는 요거트에는 실제 과일의 농축액은 1퍼센트 미만이고 과일 맛으로 둔감 시킨 향료가 대량 첨가 되어 있다.

 ‘칼슘 강화’, ‘장 건강’ 같은 문구가 붙어 있는 것도  당류 함량과 인공 첨가물 함량이 높다.

가향 요거트의 미각 첨가물은 고도로 설계 되어 있어서 과일 맛 요거트를 먹고 나면 미각의 형질이 바뀌어서 더 단 맛을 찾게 되게 설계 되어 있다.

3. 시리얼

간편하게 아침 공복을 해결해 주는 시리얼은 당 함량이 초가공식품 중에서 가장 많다.

오트밀, 귀리,퀴노아 같은 곡물이 첨가 되었다 해도 하루 당 함량 권장량의 절반을 넘기는 단 맛이 들어 있다. 여기에 초콜릿 맛이나 과일 맛이 첨가 되면 혈당을 급격히 변화 시키고 포만감이 오래 가지 않아 우유 한 그릇에 시리얼을 가득 먹고 나서 다른 음식으로 배를 더 채우고 싶어진다.

초가공 식품들은  가공 과정에서 식품의 형태를 변형 시키고,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공 과정을 거쳐서  배가 불러도 뇌가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어서  계속 먹게 되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 

유전자 공학자들도 먹지 말라는 감자 튀김-가향 요거트- 시리얼은 구매 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면 안 먹게 되고 건강하게 조리한 다른 제품으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고프고 피곤 할 때나 바빠서 제대로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 먹기 힘들 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누군가 맛있게 육즙을 뚝뚝 흘리면서 먹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먹고 싶다는 식욕이 강하게 치솟는 식품이 있다.



보는 것 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만드는 햄버거는 주문부터 포장까지 간편하고 가격 대비 포만감도 좋아서 바쁜 현대인들이 가장 선호 하는 식품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 햄버거는 오늘 날 우리가 먹는 햄버거의 레시피와 재료와 맛의 기준을 만들었을 뿐  최초는 아니다.

10세기 광활한 초원에서 세계 반을 정복 했던 몽골 유목 민족이 척박한 환경에서 신속하게 음식을 조달 하기 위해 질긴 말고기 육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말의 등과 안장 사이에 고기를 넣고 하루에서 이틀 동안 대륙과 대륙을 달렸다. 

질긴 말고기는 이동 중에 마찰로 인해 육질은 부드러워졌고 쫀득한 식감까지 났다. 몽골 유목 민족이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불에 구워낸 말고기 패티는 유럽까지 전해져서 아랍 상인들에게 구입한 후추가 첨가 되고 헝가리 땅에서 타타르 족이 즐겨 먹었던 소스가 올려 졌다. 국경을 넘나드는 상인들에 의해 전해진 이 고기 패티는 독일 함부르크 항에 도착 해서 선원들이 고기를 곱게 갈아서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함부르크 선술집에서 이 고기 패티는 철판에 구워져서  ‘햄버그(hamburg)’라 이름 지었져고 맥주와 찰떡 궁합이 되었다.

19세기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이민자들이 고향 음식을 미국 땅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1848년 캘리포니아 땅에 금광이 발견 되고 금을 찾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서부로 몰려 갔다.

금 몇 개만 있으면 원하는 만큼 땅을 살 수 있었던 골드러쉬 시대에 미국 땅에 자리 잡은 독일 이민자들은 캘리포니아 땅에 햄버그를 팔았다. 하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의 입맛을 사로 잡지 못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의 음식 조리를 담당했던 주방장은 몰려 드는 손님들이 음식을 재촉하자 주방에 있었던 둥근 빵에 구운 고기를 끼워서 내놓았다.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에서 핫 샌드위치(hot sandwich)로 불렸던 이 음식은 미국인들의 입맛을 순식간에 사로 잡아 몇 주 후에 레스토랑의 기본 메뉴로 등장했다.

1950년대 미국 전체 인구 60퍼센트가 중위 소득의 중산 계층으로 경제 대 공항 시기였던 1929년 부터 1930년대에 삼십 퍼센트 미만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 했다.

이들은 교외에 주택을 구입하고 자동차를 소유 했고 집집 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 식기 세척기를 비롯해 다양한 소비재들을 마구 사들였다.

중산층의 급부상으로 엔테테이먼트 산업의 대 호황으로 이어져서 1955년 대규모 놀이 시설이 디즈니 랜드 개장에 이어서 간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맥도날드 매장이 문을 연다.

 1955년 일리노아주의  사업가 레이 크룩이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사업권을 사들여서 캘리포니아에 큰 규모의 맥도날드 매장 문을 열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다.

 5년 만에 미국 전역의 500개 매장 오픈으로 이어진 맥도날드에서 판매하는 햄버거의 크기와 종류 그리고 세트 메뉴는 전 세계 햄버거의  기준이 되어 미국 식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햄버거는 ‘공공의 적’이 되어서 미디어 매체와 건강 전문가들은  햄버거를 ‘비만의 원흉’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침 건강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의사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있다.

“채식을 하고 비타민을 먹으면 암과 성인병, 각종 난치병이 예방된다”라는 가정을 하고 나서 홍삼,염소 추출물, 각종 미네랄 함유 비타민등을 줄줄 소개 하고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약품 회사들의 PPL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심하면서도 의사들이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제시 하며 실제로 효과 본 사람들의 간증까지 이어진다. 

‘몸에 좋다는 음식은 언제든 복용해도 반드시 건강에 좋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평균적으로 하루 복용하는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들은 한 움큼이다. 

특히   ‘어떤 음식이 어떤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방송되면 그 순간부터 그 음식은 ‘유해 식품’이 되어서 하루 아침에 그 음식은 만병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항상 전문가들에게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항상 지목 되는 고열량 식품인 햄버거는 초가공식품보다 더 위험  유해 식품일까?

 햄버거는 이런 편견에 희생된 대표적인 음식이다. 

햄버거는  다진 쇠고기에 달걀, 빵가루, 볶은 양파 등을 넣어 둥굴 넓적하게  공 모양으로 빚은 뒤 손바닥의 힘으로 찹찹 소리 날 정도로 두드려서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패티를 만들어 프라이팬에서 구운 다음 고기 속까지 익혀서 둥그런 빵 속에  양상추, 양파, 토마토와 입 맛에 맞는 소스등을 첨가하면 완성되는 음식이다.

좋은 재료로 만든 햄버거에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서, 제대로만 먹으면 비만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나이프나 포크 등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간편하게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는 언제 어디서든지 사 먹을 수 있어서 편리성과 가격 대비 최고의 식품으로 누군가에게 받는 기프티콘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기프티 콘은 아마도 햄버거 쿠폰일 것이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햄버거 크기는 날이 갈 수록 줄어 들고 있고 인건비 상승까지 겹쳐서 김밥 한 줄 가격과 햄버가 한 개 가격대가 비슷해졌다.

급격한 기후 변화에 천재 지변의 재난으로 꿀벌과 나비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 농작물 생육 마저 멸종 지경에 이르러서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안전 고리가 풀어져 버렸다.

바야흐로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는  소멸의 시대가 우리 눈 앞에 펼쳐 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었던 기본 식재료가 몇 년 안에 우리 식탁 앞에서 사라지게 되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량군이 소멸 해 버린다면 지구 생명체 개체군 먹이 사슬의 최정점을 차지 하고 있는 인간 종도 먼 옛날 공룡 처럼 멸종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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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건 몰라도 과일요거트는 건강에 좋은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넘안좋네요.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어떤 것에 대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생기거나   급하게 찾아 볼 정보나 이슈가 있을 때 마다 인터넷 검색창에 키워드로 검색을 해왔다.

그동안 나날이 발전과 진화 학습을 방대하게 학습해온 AI가 챗팅을 통해 정보의 알고리즘을 찾아 정리 검색해 주고 있지만 인공지능이 찾아 주는 정보가 특정 블로그나 게시글, 잡다한 신문이나 정보 사이트에서 수집한 정보의 짜집기인 경우가 99퍼센트에 달해서 확실성 여부를 직접 확인 하려면 검색창을 통해 내 스스로 원하는 정보를 찾아봐야 한다.

검색을 하는 동안 키워드와 관련된 정보들이나 실시간 검색 상위권에 올라간 정보들이 좌우 화면에서 마구 튀어 나온다.

포탈 사이트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검색어 알고리즘 덫을 곳곳에 지뢰밭처럼 깔아 놓고 끼워 넣기 상품 판매 전략을 유도 해서 클릭 광고 효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런 저런 광고의 덫을 빠져 나가서 원했던 정보를 얻거나 궁금증을 해결하고 나면 본능적으로 실시간 화제가 되고 있는 정보나 뉴스를 클릭하게 된다.

전 세계 검색시장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구글과 한국 검색 시장을 장악 하고 있는 네이버는 어떤 것이든 무슨 일이든 누구에 관한 것이든 척척 찾아 내고 길도 안내 해주고 예약부터 공공기관 관련 업무 부터 금융, 부동산과 같은 개인의 금융과 서비스까지 전부 해결 할 수 있는 만물 대형 백과사전이자 대형 쇼핑몰, 금융 산업기관이다.

실시간 뉴스 속보도 방송 미디어 보다 구글과 네이버가 더 빠른 속도로 전달해 주고 있고 영화와 드라마 숏폼, 소설과 만화  그리고 전문성 있는 글부터 사소한 개인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포털 사이트를 접속 하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반면에 대형 포털 사이트들은  여러 방식을 통한 검증이나 여과 없이 확증 되지도 않은 정보나 조작된 실체적 사실들이 마구 뒤섞여 있고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사실이 아닌 거짓을 유포 하거나 실체가 없는 익명의 다수들이 막말을 쏟아내는 지구상의 가장 더러운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이다.

여론을 지배하고 확장 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는 현재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몰고 오는 사건과 사람들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개인 블로그의 통계 수치 데이터 기록을 일별과 주별 그리고 월별로 유입된 검색 키워드를 살펴 볼 때면 현재 대한민국과 전 세계 유입층이 어떤 주제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8월 검색 유입 키워드 통계 수치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유입된 검색어는 의문의 죽음/살해 의도/부패/물가 폭등/민음사 멤버쉽/ 민음사 빵/무라카미 하루키/바둑/저속 노화/소설 창작/사이비 교주 범죄 행각/가난/생활고/은행 금리/전세란/아파트 가격 폭등의 키워드들이 몇 달 동안 상위권을 차지 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에는 일상적인 것보다 시사와 문화/예술 그리고 다양한 도서 리뷰나, 잡다한 글을 올리기 때문에 도서 리뷰에서 검색된 키워드로 유입되는 층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인들이 무엇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평균적이 통계라고 할 수 없고 수치 또한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재난과 불안정한 경제 기류 그리고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와 민생 치안 불안과 물가 폭등 그리고 서민 경제 불황등을 현재 블로그로 유입되고 있는 검색 키워드로 현재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기후 재난과 경제 불황으로  미래에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는 것과 별개로  매일 꾸준하게 대량으로 유입되는  한국어 검색 키워드는 하루키와  책 그리고  빵이다.

가난하여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기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았던 조상들은 흙벽에 매서운  바람이 새어 들어와 방 안에 고드름이 주렁 주렁 열리는 추운 겨울에도 글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가 폭등은 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

김밥 한 줄에 오천원 시대

불안한 미래에 책과 빵이 구원의 힘이 되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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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쿠사마의 상징적인 거울 무한대 방과 물방울 무늬 호박에서 영감을 받은 "INFINITY DOGGY DOTS"는 전통 한국 김밥을 매혹적인 요리 팝아트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황금빛 호박에 새겨진 귀여운 댕댕이 얼굴이 새겨진  김밥을 쓱쓱 자르는 ASMR까지, 현대 미술과 음식 디자인이 만나는 무한한 물방울 터널 속으로 깊이 빠져보세요.

🎨 아티스트 웨이 채널 @Artistway-official

캔버스가 주방과 만나는 곳, 그리고 세상의 모든 예술을 접시 위의  걸작으로 재 탄생 시키는 곳. 순수 미술, 요리 미학, 그리고 마음을 담은 시각적 여정이 어우러진 세계를 탐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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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서른 한 살의 조지 오웰은 그해 7월 부터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 참가 하기 위해 여러 절차와 준비를 마치고 12월 함께 의용군으로 전선에서 싸울 의지를 불태우는 동지들을 만난다.

나는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그리고 그 후 얼마 동안도, 정치적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종류의 전쟁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왜 의용군에 입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싸우냐고 묻는다면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동지들을 만나기 전 참전 서류 절차를 밟는 동안 저널리스트로 전선에 참전 할지 의용군으로 총을 들고 복무 할지를 놓고 갈등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

20세기 초 가장 잔혹한 최악의 내전으로 기록된 스페인 내전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총 3년에 걸쳐서  스페인 제2공화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내전으로 이곳에서 불붙어 버린 파시즘, 공산주의, 민주주의, 아나키즘, 반동주의, 군국주의, 반군국주의, 공화주의, 군주주의 등 당대 주류 이념들의 격전장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서막을 알리지는 전쟁이였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와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카탈로니아에서 내전이 시작된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를 뺏아긴 다른 도시의 노동자들이 권리 쟁취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다른 도시로  확장 시켜 나갔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활기 치고 다녔다.

1902년 사라고사와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들이 봉기 하며 이때 부터 스페인 혁명의 불씨가 붙기 시작했다. 정부는 탄압으로 강제적으로 노동자들을 해산 시켜 버렸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노동조합원에 가입하는 노동자들이 늘어 나면서 그 세력은 스페인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1902년 부터 1923 년까지 정권이 33번이나 교체되면서 정치적 불안정이 고조 되었지만 세계 1차 대전 기간 동안 스페인 정부는 절대 중립을 지키며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경제 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유럽 땅에서 탄압을 피해 날아 온 사회주의자들이 도시 곳곳에 시위와 봉기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1917년 러시아의 피의 혁명의 시작으로 카탈로니아에서 시작된 봉기는 군대의 무력 탄압이 아니고는 막지 못할 정도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맨 주먹으로 울부 짓지 않았다. 1923년 모로코에서 스페인이 반란 진압에 실패 하면서 스페인 내부에서 정치적 갈등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된다.

결국 프리모 데 리베라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군사 독재 내각을 수립하게 된다.

1929년 전세계 공황의 여파로 군사 독재 정권은 흔들리면서 1931년 군주제를 반대하는 혁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공화파는 지방 선거의 압승으로 공화국 수립을 선언한다.

1930년 제 2공화국의 시작을 알리며 혁명위원회는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1930년 스페인에서 발발했던 내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혁명의 양상으로 변질 되고 있었다. 내전 당시 스페인은 제 2공화국 체제 였다.

1931년 6월 좌익계 공화파는 제헌의회 선거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스페인을 '모든 노동자의 민주 공화국'으로 규정하는 민주적 헌법을 제정했다.

1932년 9월 카탈로니아 자치법이 성립되어 카탈로니아는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카탈로니아어를 공식어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32년 10월에는 부재 지주의 토지 몰수를 규정한 신농업법을 공포 했지만 보수세력의 반격으로 좌파 정권은 물러나고 1933년 우익 정권의 수장 알렉한드로 레룩스가 정권을 쥔다.

이에 반기를 든 카탈로니아에서 1934년 10월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로니아 국가'를 선포하지만 유혈 진압 당한다.

1936연 1월 선거를 통해 공화파 공화좌파 사회당 공산당등으로 구성된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지만 우익 군부의 탄압으로 전국 곳곳에 수백개의 봉기가 일어난다.

결국 1936년 7월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지휘하는 군이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키며 본토 각지의 병영에도 파급 되기 시작한다.

군부는 쉽게 쿠데타에 성공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노동 계급의 강력한 저항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등 대도시를 중심은 군부를 막아내는 승리를 거두며 드디어 스페인 내전의 비극이 시작된다.

파시스트 정권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즉각 반란군을 지원하며 물자와 군비를 보내자 소련도 스페인 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 대 반 파시즘의 전쟁의 양상이 된다.

작가 조지오웰, 헤밍웨이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은 반 파시즘 전선에 뛰어든다.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은 사실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었다. 스페인 외부의 반파시스트 언론은 그 사실을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었다. 쟁점은 <파시즘 대 민주주의>로 좁혀졌다. 혁명적 측면은 최대한 은폐되었다. 다른 곳보다 언론의 집중이 심하고, 또 대중이 언론에 쉽사리 기만당하는 영국에서는 스페인 전쟁에 대해서 오직 두 가지 이야기만이 입에 오르내렸다. 하나는 기독교 애국자들과 피를 뚝뚝 흘리는 볼셰비키들의 대립이라는 우익의 이야기였다. 또 하나는 신사적인 공화주의자들이 군사 반란을 진압하고 있다는 좌익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해서 핵심적 쟁점을 성공적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스페인 밖에서는 이곳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반면 스페인 내부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중에서

생활고를 겪었던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으로 참가 하기 전에 경비를 대기 위해 집안에 있는 은식기를 전부 전당포에 팔아 넘겼고 은행에서 융자까지 신청을 받았다.

조지 오웰은 가족에게 집안의 은식기들을 가문의 문장을 새기기 위해 장인에게 수작업을 의뢰하며 맡겼다고 들러댔다.

집안에 식기들까지 팔아 치우고 모은 돈 빌린 돈을 탈탈 털어 겨우 군복을 구입한 조지 오웰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작가 헨리 밀러는  소중한 생명을 무모한 권력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갖다 바치는 건 무모한 짓이라며 자신의 옷장에서 가장 비싼 코튜로이로 만든 정장 코트를 건넨다.


어린 시절 집 근처에서 토끼 몇 마리를 엽총으로 쏴본 경험만 있었던 조지 오웰은 버마 제국 경찰로 복무 했음에도 사격 실력은 형편이 없었고 오합지졸로 구성된 의용군 부대에서 제대로 된 총기나 탄약이 장전된 무기조차 지급 받지 못한 채 서서히 전선의 격전지에서 멀어져 가버린다.


질흙 같은 어두운 밤,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한 남자가 바지를 추스리는 모습이 조지 오웰의 총구에 잡혔다.

그는 저 자를 지금 당장 쏠 것인가, 쏘지 않을 것인가 몇 분동안 갈등하며 어쩌면 저렇게 바지를 추스리는 남자가 자신이 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총구에서 눈을 떼버린다.


<동맥이 날아갔구나.> 나는 생각했다. 경동맥이 잘렸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 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일까. 나를 맞히었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그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파시스트였다면 나도 그를 죽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그 순간에 그가 포로가 되어 내 앞에 끌려 왔다면 잘 쏜 것을 축하해 주기만 했을 것이다. 


구사 일생으로 전선에서 목숨을 건진 조지 오웰은 바르셀로나 병원으로 후송되는 동안 극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포탄 주변 곳곳에 피어 있었던 꽃 향기를 떠올린다.

'우리 흉벽 앞의 총탄 맞은 나무에도 버찌 송이들이 빽빽이 달리기 시작했다.

찻종만한 분홍 꽃송이를 피우는 들장미들이 토레 파비안 주위 포탄 구멍들 위로 흐드러졌다. 전선 뒤쪽에서는 귓바퀴에 들장미를 꽂은 농부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조지 오웰

스페인 내전 전선에서 115일 동안 복무한 조지 오웰은 참혹한 죽음의 늪 속에서 향기를 내뿜으며 피어 있는 꽃을 발견 했고 죽은자의 시신을 덮은 땅 위에 솟구치는 희망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전쟁의 시작과 끝은 각자의 이권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대립하는 이들의  돈의 전쟁이다.


무자비한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땅을 초토화 시키는 동안 푸틴의 집권은 무한대로 늘어 나고 있고 2009년 부터 이스라엘 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벤냐민 네타냐후도 하마스 정권을 뿌리 뽑겠다는 기세로 달려들어 최첨단 무기를 쏘아 대며 장기 집권을 계속 유지 하고 있다.

세계 제 1의 군사력을 갖춘 대국이 전 세계 물류의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인질 삼아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전쟁 종식 이후 평화의 시대 보다 전쟁 발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많기에 더더욱 전쟁의 양상은 잔혹함을 넘어선 끔찍한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총 3년에 걸친 스페인  내전에서 약70만명이 희생되었다.


천지 지변과 같은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지구 상에 존재 하는 동물 개체군 중에 가장 취약한 존재 이면서 모든 생명체와 자연을 순식간에 파괴하고 파멸 하게 만들고 있다.


전선에서 살아 돌아 온 나에게 전쟁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우리로서는 막을  수 없는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일종의 자연 재해로 여겨졌다.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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