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깨어 누운 채 창밖의 나무를 보고 싶어 했던 어느 작가는 새로 이사 온 집의 창문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침대에서 누웠을 때 나무가 보이지 않자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한다.

불안감에 사로잡힌 작가는 침대에 누웠을 때 밖을 내다 볼 수 있도록 창문의 높이에 맞추기 위해 목수를 부른다.

작가가 목수에게 저 높은 천장 가까이에 붙어 있는 창문의 높이에 맞게 침대를 수리 해 달라고 요구하자 전쟁 참전 군인 출신이였던 목수는 작가의 방 주변을 둘러 보던 중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시가 꽁초를  피워 대며 늦장을 부리기 시작한다.

목수는 침대를 수선해 달라는 작가에게  자신은 한때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죄수로 수감 중에 형제를 잃었다며 눈물을 글썽이자 작가는 침대 수선을 잊어 버리고 목수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

예순을 훌쩍 넘은 작가는 자신 처럼 흰 콧수염이 자란 동년배 목수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들어준다.

작가의 집에 다시 방문한 목수는 그가 원하는 높이에 맞게 침대를 고쳐 주지만 노쇠한 허리와 무릎 통증을 앓고 있었던 작가는 천장 가까이에 붙은 창문의 위치와 맞게 높아진 침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의자를 겹쳐 놓고 겨우 기어 올라갔다.

마침내 침대에 누워서 창밖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작가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언젠가는 갑작스럽게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침대에서 보이는 세상을 보는 동안 한 때 뛰어난 외모로 숱한 여자들과 달콤한 사랑을 나눴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감정에 잠시 취해 보지만 아침마다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가는 자신의 노쇠한 육신이라는 슬픈 현실을 깨달아간다.

침대에서 작가는 꿈이 아닌 꿈을 꾸었다. 조금씩 졸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의식이 있었고 그런 그의 눈앞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가는 자신 안에 있던 형용할 수 없는 젊은 뭔가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들의 긴 행렬을 몰아대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했다.

-셔우드 앤더슨의  <괴상한 사람들에 관한 책> 중에서 


침대에서 창밖 세상을 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과 추억에 젖어 있던 작가는 침대에서 내려와 하얀 백지와 마주하며 자신의 삶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품고 있었던 수백 가지의 진실들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순결이라는 진실, 열정이라는 진실, 부와 가난, 절약과 낭비, 부주의함과 방종이라는 진실까지 이렇게  수만 가지의 진실들 모두  아름다워 보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며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첨단  디지털 신 기술로 가짜가 진짜로 둔감해도 진짜인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누구나 쉽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가짜를 진짜처럼 조작 할 수 있는 시대에 오랜 세월 동안 신뢰와 사실 보도를 유지 했던 언론 마저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있다.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지는 탈 진실 시대는 21세기 AI시대에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인류의 삶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이 불투명했었다.

2600여년 전 인도의 부처님은 북 인도에서 교세를 확장하며 대중의 지지를 넓혀 가던 중 진실을 기만한 거짓에 호되게 당했던 적이 있다.

신도들이 부처에게만 공양을 올리자 그의 제자인 브라만과 사문들이 거리에서 걸식을 하고 보시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브라만과 사문은  어느 여신도의 배를 거짓으로 부풀려서 부처의 설법을 듣는 자리에 들여 보낸다.

여인이 부처의 아이를 뱄다는 거짓이 금세 탈로 나자 브라만과 사문은 화를 당할 것이 두려워서 그 여인을 죽이고 시신을 부처가 설법 했던 사원에 묻어버린다. 

이 두 제자들은 자신들의 범죄 행각을 지우기 위해 헛소문을 내기 시작하고 그 헛소문은 부처가 어느 여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감추기 위해 그 여자를 죽였다는 끔찍한 사실로 둔갑해버린다.

사실처럼 떠도는 거짓 소문은 점점 커져서 이웃 마을까지 퍼지고 브라만과 사문에게 살해 지시를 받고 돈을 챙긴 일꾼들이 서로 싸움을 하다가 사원에 시신이 묻혀 있다는 진실을 발설 해 버린다.

거짓으로 이득을 취해서 세력을 확장해서 궁극적으로 민심을 이용하고 사회를 뒤흔드는 검은 손들의 활동으로 인류는 숱한 위기에 빠졌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큰 화를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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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과 연예인들이 개인 유툽이나 SNS에서 가장 많이 공개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즐겨 먹는 거나 챙겨 먹는 식습관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식습관일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인지도나 유명세에 따라 조회수가 급격하게 올라가서   화제 영상이 될 경우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파급 효과 때문에 각종 PPL이 붙는다.

어떤 유명인이 광고 효과를 노리고 먹고 마시고 요리 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마다 그 영상을 보는 이들의 머릿 속에는 저렇게 먹으면 자신들의 모습이 지금 보다 좀 더 나아지거나 젊어지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난다.


미국 IT 사업가이자 백만 장자인  브라이언 존슨은  40세가 되던 해인 2013년 ‘브레인트리’라는 자신의 온라인 결제 플랫폼 회사를 8억달러(약 1조5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받고 이베이에 팔았다.  단숨에 돈방석에 앉은 브라이언은 자신의 신체 나이를  18세 청춘으로 되돌리겠다는 인생 목표를 세웠다.

일명 ‘회춘(回春)’ 프로젝트를 시작한  브라이언 존스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오전 11시까지  천천히 음식물을 2250칼로리(kcal)정도  섭취하고  4~5시간가량 '집중된 사고'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 

그는 외출 할 때는 반드시 선크림을 바르고 햇볕을 차단하는 SUV용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매일 100여알의 영양·보충제를 복용하고, 매주 3회 고강도 운동을 하는 브라이언 존스는 술은 전혀 마시지 않는다.

오후 8시 30분에는 반드시 취침을 하는 그에게 매달린 의사들은 총 30여명으로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체지방 스캔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는다.

 브라이언 존스는 익명의 젊은 기부자에게 혈장을 수차례 수혈 받은 후  4년 젊어진 신체를 갖고 나서 자신의 열 일곱 살 짜리 친 아들의 피를 수혈 받는다.

17살 아들의 피를 1 리터 수혈 받은 브라이언은 피에서 분리한 혈장을 투여 받아서  46세 나이를 37세 육체로 되돌렸고   피부는 28세 구강 상태는 17살, 폐활량은 18세 수준 까지 되돌렸다.

브라이언이 매년 회춘 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쏟아 부은 돈의 액수는  27억에 달한다.


돈을 쏟아 부은 만큼 젊어지고 있는 브라이언의 회춘 프로젝트를 실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지구상에 몇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생명공학 기술, 새로운 장기를 이식해 젊게 살아갈 수 있는 의료 기술은 물론이고 먹는 음식을 바꿔 젊음을 되찾아주겠다는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하게 발전 한 곳은 전 세계에서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노인성 치매 같은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가장 높은 곳도 미국이고 사회 세대별, 인종별 그리고 거주 지역에 따른 빈부차이가 가장 큰 곳도 미국이다.

이에 대해 어느 유명 셰프가 전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음식을 조리 해 먹는 걸로 비교 하기도 했다.

영국의 어느 유명 셰프가 해외 출장을 갈 때면 아침이나 브런치로 즐겨 먹던 스크램블을 먹다가 문득 국가 별로 각기 다른 조리 상태의 스크램블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장 먼저 계란 2-3개, 버터, 소금 정도만 넣는 스크램블을 조리 할 때 영국식은 계란을 풀면서 버터를 첨가 하고 중불에서 달궈진 팬에 계란 물을 부으면서 빠른 속도로 조리 기구로 젓는 동안 약불로 조절하면서 완성한다.

프랑스 정통 스크램블 조리법은 과정이 좀 다르고 복잡한데 찬물을 냄비에 넣고 끓여 놓은 다음에 그 위에 스텐리스 볼에 계란을 넣고 조리용 거품기로 천천히 휘저으면서 소금을 넣고 생크림이나 우유를 첨가한다.

마지막 충분히 달궈진 팬에 계란물을 붓고 빠른 속도로 휘저어서 완성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계란 소비를 하고 있는 미국식 스크램블은 달궈진 팬에 버터를 넣고 계란을 그 위에 깨고 소금을 조금 넣고 조리기구로 휘 젓는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이나 일반 식당은 이런 조리법으로 완성하지 않겠지만 대다수 일반 미국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스크램블은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계란물을 만들지 않는다.

왼쪽 사진부터 영국식 계란 스크램블 가운데는 프랑스식 스크램블 마지막 오른쪽은 미국식 스크램블이다. 

계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스크램블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조리 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스타일의 스크램블이 아닌  색다른 스크램블을 해 먹어 보겠다며 유명인들의 유툽이나 팔로잉 하는 이들의 흔적을 뒤져 보았다.


(C) JohnnySun

캐나다 캘거리 태생의 조니 선은  대학에서 공학과 건축학 그리고 도시 공학을 공부 했지만 일러스트와 시나리오를 쓰고 프로듀서를 하며 설치 예술을 하는 만능 재능인이다.

2017년 지구를 관찰 하러 온 외로운 외계인이 다양한 생명체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그래픽 노블 <내가 외계인이면 다들 외계인>을 비롯해 다양한 이들의 에세이의 그림을 그려 주면서 대중적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대본 작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다양한 활동을 폭넓게 펼치기 때문에 제때 끼니를 챙겨 먹는 걸 종종 잊곤 해서 이동 중에 끼니를 때울 때가 많지만 어린 시절 중국계 부모가 항상 집에서 조리 해주었던 계란 요리가 그의 소울 푸드다.

조니 선이 부모님에게 배운 스크램블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프라인팬을 화구에 올리고 약불로 가열한다.

살짝 달궈지면 식용유나 녹인 버터를 두른다

그동안 계란을 깨서 그릇에 넣고 잘 풀어준다.

살짝 달궈진 프라인팬에 붓고 천천히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쉬지 않고 계속 젓는다.

계속 젓는데 변화가 없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무슨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백만장자나 억만장자 같은 부자들처럼 회춘 프로젝트에 쏟아 부을 돈이 없는 이들에게 완전 식품에 가까운 계란은 그야 말로 음식을 통해 회춘을 꿈꿔 볼 수 있는 훌륭한 식재료다.

세상에서 가장 손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저속 노화 속도를 유지 하며 회춘을 꿈꾼다면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 한 판을 꺼내 바삭하게 구운 호밀 토스트에 버터 대신 아보카도를 스프레드 하고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올려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완벽한 영양소를 채울 수 있다.

회춘 프로젝트에 억 단위로 돈을 쏟아 부은 억만장자는 최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불치성 자가면역질환인 자가면역성 위염(autoimmune gastritis, AIG) 진단 사실을 공개했다.

자가면역성 위염(autoimmune gastritis, AIG) 은 위산이 나오지 않으면서 철분 대사에 영향을 미쳐 결핍성 빈혈을 일으키기도 하고, 염증이 생긴 조직에서 암 발생 위험도 커지는 희귀질환으로 정확한 유병률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의학계에서 자가면역성 위염을 완치하는 치료법도 없고 완치한 사례도 없다.

2140년까지 163세의 나이로 생존하겠다며 회춘 프로젝트를 시행 해왔던 억만장자는  자가면역성 위염(autoimmune gastritis, AIG) 질환을 극복하기 위한 실험적인 치료법을 직접 개발해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뉴럴링크(Neuralink) 수술을 받고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신 인류 영생을 꿈꾸는 시대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나 금전적 풍족함은 없는 이들에게는 화성으로 이주하는 프로젝트 만큼 꿈 같은 소리로 들릴 뿐이다.

적절한 수면 시간과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제철 음식을 섭취하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손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회춘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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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16번째 장편소설 『夏帆─The Tale of KAHO─』가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자정부터 도쿄 대형 서점에서 오픈런이 벌어지는 등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출간 발매 첫 날 단행본 초판 25만 부가 팔려 나갔고  하루키가 여성 단독 주인공을 내세운 첫 장편소설 이여서 인지 2030 젊은 독자들의 구매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하루키의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 는 이제 막 한국 출판계에서 선인세 경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출간일은 미정이지만, 하루키의 전작 출간 주기를 고려했을 때 올해 안에 국내에 번역 출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하루키가 출간한 전 작품을 읽고 그가 번역한 작품까지 섭렵한 저는 문예지 《신초》와 브루터스 그리고 미국의 뉴요커지에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총 4회에 걸쳐 분할 게재된 일본어 원문과 영문 번역본을 전부 읽었습니다.

현재 예약 주문한 하루키의 신간 夏帆 - The Tale of KAHO가 도착하는 데로 읽고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 되기 전에 맛보기 용으로 제가 직접 번역하는 동안 하루키가 영미권의 주요 매체와 나눈 인터뷰를 직접 번역해서 연재 할 예정입니다.

현재 투비컨티뉴드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연재 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까지 51개의 노트를 발행 했습니다. 국내에 어디에도 개재된 적 없는 인터뷰와 해외 기사, 하루키가 진행하는 도쿄 라디오에서 독자들과 나눈 이야기, 하루키 모교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일명 하루키 도서관)에서 진행 되었던 각종 행사와 잼 콘서트 그리고 한국에 출간 된 적 없는 에세이와 기타 짧은 단편을 제가 직접 번역해서 연재 하고 있습니다.

하루키에 대한 모든 것 투비컨티뉴드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tobe.aladin.co.kr/s/1072

1.무라카미 하루키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출간 미국 뉴요커지 인터뷰

https://tobe.aladin.co.kr/n/631932

2.<가호( 夏帆 - The Tale of KAHO)>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 연대기

https://tobe.aladin.co.kr/n/636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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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 - 교양과 상식으로서 우리 문화유산의 역사
유홍준 지음 / 눌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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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외세 침략과 약탈로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재와 유물이 화재나 도굴, 강탈로 소실 되었다.

1782년 정조가 강화도 행궁(行宮·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곳)에 창덕궁 규장각의 부속시설로 설치했던 왕실 자료실 외규장각(外奎章閣)은 1866년 철종 재임당시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귀중 도서 340여 권과 지도 갑옷 등을 약탈해갔다.

프랑스 군이 외규장각을 약탈 했을 당시  외규장각에는 당시 조선 역대 왕의 글과 글씨, 의궤와 주요 서적, 왕실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도서는 대략  6000여 권 정도 보관 하고 있었지만 귀중한 보물의 상당수가 파괴되어 사라졌다.

1991년 서울대가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요청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간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측에서 지속적인 반환 거부로 협상이 결렬 되었지만 경제적 실무 협약을 맺으면서 협상을 이어가다가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의궤 대여’(5년마다 다시 계약하는 대여 방식)에 합의해서 현재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관람 할 수 있게 되었다.19세기 말 무렵 부터 20세기 전반기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수난기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서 사라진 문화재와 유물들이 국외로 반출되어 현재까지 해외에 남아있는 한국 문화유산은 공식 확인된 것만 약 25만 6천여 점에 달한다.

이 중 전체의 43.2%인 11만 6백여 점이 일본에 집중되어 있어,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압도적인 규모의 문화재 유출이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암암리에  자행 되었던 약탈과 도굴로 찾아낸 문화재들이  밀반출되어 개인이 은닉한 유물까지 합치면 실제 유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29개국 박물관·미술관 등에 분산된 한국 문화유산은 총 256,190점으로  일본이  110,611점에 달하는 한국의 문화재를 자국의 박물관과 사찰, 기타 개인 소장품으로 등록 시켜 놓았다.

반도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이었던 도자기는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목적이 조선의 도공을 납치 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한반도 전역을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해갔다.

이토 히로부미도 고려청자를 손에 넣자 마자 자신의 방에 모셔 두었을 만큼 일본의 한국 청자 사랑은 유별나다 못해 병적이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유물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고문헌(서적류), 고분 출토 장신구 및 불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고려청자 수집 열풍이 불면서 무덤을 파헤치는 잔인한 도굴이 성행했다.

도굴에서 파낸 청자는 중간 상인들을 거쳐서 비싼 가격에 해외 컬렉터에게 넘겨 졌다.

1883년 조영통상조약 체결 이후 한국에 들어온 영국의 외교관, 의사, 선교사들은 조선 왕실 및 고위층과 교류하며 엄청난 양의 미술품과 민속품을 합법·비합법적으로 사들였는데 영국인들은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에 탐복해서 외교관·자산가·박물관이 삼각편대를 이루어 고려청자를 필두로 한 예술품과 민속품을 종합적이고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한국과 해외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애국적 수집가와 후원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구입한 한국의  청자를 국가에 조건 없이 기증 해서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호암 미술관 기타 지방 국립과 사립 미술관에서 청자를 볼 수 있다.

일본 다음으로 한국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 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으로  68,961점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선교나 목회 활동으로 한국에 체류 했던 종교인들과 외교 사절단으로 방문해서 장기 체류 했던 해외 관료들과 대사관 근무를 했던 외교관들 그리고 방대한 자금으로 컬렉션을 갖고 있던 수집가들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한국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손에 넣었다.

1909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던 독일 가톨릭 순교 수도회인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와 풍속을 깊이 연구했는데 이들 중에서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총원장은 일제에 의해 한국 전통문화가 말살되고 헐값에 팔려 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조선의 일상 유물, 민속품, 양반가의 가구 등을 대거 수집하여 독일로 가져가 보존했는데 베버 총원장의 수집품 중에 조선 최고의 천재 화가 중 한 명인 겸재 정선 화첩이 있었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던 '겸재 정선 화첩(보물)'은 수도원 측에서  이 유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난 2005년 한국(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 조건 없이 영구 기탁 형식으로 반환해 주었지만 여전히 독일 수도원에 한국의  많은 민속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제국주의 시절 전 세계의 문화재를 끌어 모은 영국은  서울 인사동으로 흘러들어 온 한국 유물과  일본, 중국의 골동품 시장에 유출된 문화재를 대영 박물관 예산으로 직접 대량 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보급 유물인 고려시대 '나전칠기 경함'이나 '화엄경변상도', 삼국시대 금귀걸이 등이 영국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편입되었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초정밀 공예품인 고려 나전칠기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단 20여 점밖에 남아있지 않은 초희귀 유물품이 되었다. 20여점 중에 7점이 현재 일본 도교 국립 박물관에 국보로 소장 되어 있다.

고려 시대의 정교한 기법을 이어받으면서도 조선 공예가들의 독창성이 꽃피기 시작한 조선 전·중기(15~16세기) 나전함은 임진왜란 당시 약탈 당하거나 화재로 소실 되어서 현재  전 세계에 단 4점만 남아 있는 초희귀 유물이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전함 (1점)은 조선 중기에 제작되었고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나전함 (1점)은 현재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2023년 일본에서 환수된 나전함 (1점)은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일본의 한 개인 수집가에게 사들인  16세기 경에 제작된  나전함이다.


 8~10년 정도 자라야 옻액을 채취할 수 있는 옻나무에서 채취하고 걸러 내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옻칠로 가공한 상자에 4만 5천여 자개조각을 길고 가느다란 모양으로 오린 후, 아교를 바른 바탕 위에 칼로 끊어가며 붙여 장식하는 끊음질 기법과 타찰법으로 무늬의 균열을 내어 다양한 형태의 연꽃과 넝쿨 줄기 밤하늘을 수 놓은 별빛 처럼 새겨져 있다.

유럽과 이슬람권 등 다른 문화권에도 조개껍데기를 가구나 목재 상자 표면에 박아 넣는 장식(Inlay) 기법은  존재했다.

하지만 조개껍데기를  실처럼 가늘게 자르고(끊음질) 의도적으로 깨뜨려(타찰법) 보석처럼 수놓는 기법은 한국(조선)이 세계에서 유일한 독보적인 기술이었다.연꽃 봉오리, 잎받침이 있는 연꽃, 활짝 핀 연꽃들이  뒤얽힌 넝쿨 줄기와 이파리, 칠보무늬의 장식이 언뜻 보면 별 것이 아닌 듯한 상자로 보이는 나전 칠 연꽃넝쿨무늬 상자는 나라를 잃은 우리 조상들 처럼  400년 동안 해외를 유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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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 껍질에 칼·긁기낫 등으로 홈을 내면 옻나무가 상처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하얀 수액을 내보내는데 이 수액을 주걱칼로 긁어내 채취한 것을 옻 또는 옻액이라 한다. 옻액을 가공하여 만든 도료가 바로 옻칠로 전복·조개 등 어패류의 껍데기를 얇고 판판하게 갈아 자개로 가공한 뒤, 이를 옻칠한 바탕에 붙여서 꾸민 기물을 나전칠기(螺鈿漆器)라 합니다.

옻칠을 수십 번에서 수백 번까지 겹겹이 두껍게 바른 뒤, 그 층을 조각칼로 파내어 입체적인 무늬를 표현하는 조칠(彫漆) 기법을 사용했던 중국은 붉은색이나 검은색 옻칠의 단단하고 두터운 질감을 바탕으로, 꽃, 용, 인물 등 웅장하고 화려한 문양을 깊이 있게 조각하여 압도적인 입체감과 묵직한 나전칠 공예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통일신라 시기부터 각종 생활 용품에 나전칠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한반도 장인들은  자개를 길고 가느다란 모양으로 오린 후, 아교를 바른 바탕 위에 칼로 끊어가며 붙여 장식하는 끊음질 기법으로 장식해서  특유의 광택과 색감에서 느껴지는 영롱한 아름다움을 새겨 넣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옻칠로 기물 표면에 그림을 그린 후, 굳기 전에 금속 가루의 굵기와 농도를 조절하여 그라데이션을 주거나, 옻칠을 두껍게 올려 입체감을 더하는  마키에 기법으로 화려함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10년 생 옻나무에서만 옻액을 체취 할 수 있고 나무마다 하루에 체취 할 수 있는 양이 한정 되어 있고 수액 추출 후 불순물을 걸러 내어야 하기 때문에 옻액은 국가에서 전적으로 관리 했습니다.

​​인류가 기원전 3000여 년 전부터 사용해 온 공예 재료이자 기술인 옻칠은 천연 페인트 역할 뿐만 아니라 습기와 화염에도 견뎌 낼 수 있는 방부제 성분을 함유 했기 때문에 각종 무기류나 철이 녹스는 걸 방지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물과 가구 그리고 생활 소품까지 널리 사용 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옻칠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던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군수용품과 무기 제조에 옻칠을 사용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에 자생 하고 있던 옻나무들의 수액을 추출해서 옻액을 추출하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한반도의 문화 유산을 마구잡이로 도굴 했고 귀중한 문화재를 수집하는데 광적으로 달려 들어서 한국의 조선 자기 보다 쉽게 손에 넣기 힘들었던 나전칠 공예품은 일본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십 점이 전해지는 고려나 조선 후기 나전 유물과 달리, 현재 확인된 조선 중기 나전칠 공예품은 세계적으로 4점 정도만 남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세계를 떠돌고 있는 한국의 문화 유산을 적극적으로 환수 하는데 앞장선 민간 후원자(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친구들/YFM)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3점은 현재 서울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있고 나머지 한 점은 일본 도쿄 국립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데 현재 일본은 조선의 나전칠 공예품을 국가 보물로 지정해 놓았습니다.

에도 시대 다이묘(유력 영주)들의 수집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조선 장인들이 혼으로 조각한 나전칠기

1551년 불타버린 오우치 궁궐의 불길을 견디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매료시킨 후 마침내 고국의 품(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온 '조선 나전 칠 연꽃넝쿨무늬 상자'의 파란만장한 대 서사시  5분 13초 영상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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