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다양한 생태계와 기후 상태를 연구 하고 그 지역에 생존하고 있는 생태계의 습성과 진화 상태를 관찰 하기 가장 좋은 지형은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다.

 일본 홋카이도 쪽으로 흐르는 쿠릴 열도의 출발지인 캄차카반도는 태평양과 오호츠크해에서  미국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알류산 열도와  인접해 있어서 북극의 툰드라 기후와 남쪽의 습한  기후로 인해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으로 전 세계 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몰려 가는 곳이다.

17세기말에 러시아인들이 도착하기 이전까지  캄챠카 반도에는 곰과 순록 그리고 연어를 사냥하며 기후 변화에 맞춰 이동하는며 살았던 이텔멘족, 코랴크족 원주민들이 드문 드문 살고 있었던 곳이였지만 19세기 러시아와 일본 열강들의 침략으로 백 러시아인들과 일본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러시아가 캄차카 반도를 점령 하면서 핵원료 생산과 핵실험 장소가 되면서 대 자연은 오염 되었고 반도 땅에서 다양한 민족들과 공존 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은 극소수만 살아 남게 되었다.

 소련 체제아래서 방출된 엄청난 방사능이 캄차카 반도의 자연과 생활 터전을 오염 시켜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전 세계에서 백혈병과 각종 암, 기관지염 같은  질병의 발병률이 높은 곳이 되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나서  서구인들은 이 지역에 탐사와 탐험, 관광과 연구 목적으로 방문 하면서 무분별하게 들어 오는 서구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생태계가 파괴 되었고 토착 원주민들과 토종 동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멸종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보다 약간 넓은 크기의 캄차카 반도는 1년 중 활동 하기 좋은 온화한 기후가 단 3개월 뿐이고 이 시기에 현지인들은  연어와 곰 사냥  그리고 외지인들을 위한 관광 안내와 숙박으로 생계를 유지 하고 있다.

수도 주변 지역은 광물 자원이나 핵실험으로 마구잡이로 개발 되어서 생태계가 파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생태계의 다양한 기후와 멸종 직전의 동물들을 볼 수 있고 특이한 지형이 많아서 외지인들이 끊임없이 이 곳으로 몰려 가고 있다.

 불꽃이 치솟는 활화산 부터 얼음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이칼 호수와 바다 깊숙한 심해까지 전부 외지인들이 훑고 지나가서 생활 터전을 빼앗긴 곰과 순록들이 인간들이 거주 하는 지역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아 다니거나 습격을 하는 일이 자주 발생 하고 있다.

파리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프랑스 태생의  나스타샤 마르탱은 알래스카 지역의 원주민인 그위친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습성과 문화를 탐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알래스카 북부와 캐나다의 유콘 지역에 걸쳐 살고 있는 애서바스칸 인디언의 11개 지파 중 한 종족인 그위친족(Gwich'in)은 침략자 러시아와 미국에 대항하며  북극야생보호구역의 석유 자원 개발에 반대했던  유일한 부족이였다.

하지만 수 세기 전에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로 이주한 그위친족은 러시아와 일본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잔혹하게 학살 당해서 극소수만 살아남아서 무자비한 자원 개발이나 동식물 사냥을 막는데 대항하지 못했다.

2015년 그위친족의 이동 경로와 습성과 문화를 연구 하는 젊은 인류 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 북동부로 이주해서 그곳 원주민과 혼혈 된 에벤인을 대상으로 인류학 연구를 진행 하기 위해 캄차카 화산 지대 근처에 연구 기지에 터를 잡는다.

2015년 8월  인류학자 마르탱은 에벤인 족의 한 가정에 거주 하던 중 활화산 움직임이 시작되던 날 연구 진척을 확인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 간다.

몇 날 몇 일 동안 산을 오르며 강과 불화산을 만나는 위기가 도사리는 숲 속 한 가운데서 동료들이 잠시 다른 지역을 탐사 하러 갔던 날 곰 한 마리가 인류학자 마르탱이 거주 하고 있던 공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단 몇 분 만에 곰의 날카로운 이빨은 그녀의 얼굴 반의 뼈와 살을 무너뜨렸고 턱의 반쪽도 부숴버렸다.

마르탱은 치료를 받는 중에 극심한 통증으로 발 버둥치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상처 부위에 눈물이 파고 들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마르탱은 무사히 러시아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가 후속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러시아 의료진 치료를 불신한 프랑스 의사들이 강행한 재수술에서 병원성 세균에 감염되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곰이 이빨을 드러내며 그녀를 공격 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간을 지나 병원에 긴급 우송 되어 곰에게 습격 당한 부위를 수술하고 회복되는 시기에 마르탱은 곰과 마주 했던 끔찍한 순간을 떠올리며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날 늦은 밤, 문장들이 종이 위를 가로지른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명백한 것들, 내 마음속 깊이 충격을 준 것들을 쓴다. 나에겐 두 권의 현장 노트가 있다. 하나는 주간용으로 세세한 묘사와 대화 혹은 말의 녹취가 어수선한 형태로 한가득 적혀 있다.

집으로 돌아가 체계를 부여 하기 전까지는 상세한 정보의 축적을 정리해서 그것을 토대로 균형적이고 알기 쉬우며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기 전까지는 대부분 몹시 난해 하다.

다른 한 권은 야간용이다. 여기 적힌 내용은 불완전하고 파편적이고 들쭉 날쭉 하다. 나는 그것을 검은 노트라고 부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간 노트와 야간 노트는 나를 갉아 먹는 이중성의 표현이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상징이다.

-나스타샤 마르탱의 <야수를 믿다.>

마르탱은 인류학자로서 관찰하고 목격하고 경험한 것까지 모두 연구 자료의 토대로 활용하려는 의지 만으로 노트에 그 날의 사건을 떠올리기 시작하지만 곰에게 무자비하게 습격 당한 육신의 통증으로 정상적인 사고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캄차카 반도 땅에서는 오래 전 부터 곰과 혼혈 종족들이 서로 경계 하며 공존 하는 삶을 살아갔지만 침입자인 외부인들의 약탈과 파괴로 소멸과 멸종의 시간대로 들어섰다.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회생한 인류학자 마르탱은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곰에게 큰 습격을 받고도 이 사건을 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지 않고  과거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의 경계가 파열 되어 균열을 일으킨 것이라 스스로 정의 한다.

나는 내가 곰과 함께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었나? 내가 기다리던 자가 누군지, 꿈에서 본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나? 

내가 사방으로 그의 흔적을 밟은 이유와 언젠가 그와 눈을 마주치기를 은근히 바란 이유를 알고 있었나? 

자연의 생태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종족을 탐구했던 인류학자 마르탱은 회복 되는 동안 그날의  습격으로  부숴지고 함몰된 현재 자신의 몸 안에서 가족에게 받았던 정신적 상처의 트라우마와 조우하게 된다.

유년기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 홀로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양육 했던 엄마,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 엄마를 위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인류학 연구에 매진 했던 마르탱은 마음 한 구석에 도사 리고 있던 우울증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육신이 파괴된 캄차카 반도 땅에 다시 찾아 간다.

곰에게 습격 당하기 전 마르탱은   캄차카 반도 땅의 동과 서, 겨울과 봄 그리고 새벽부터 밤까지 탐험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논문에 채워야 하는 탐구 대상 목록을 찾아다니는데 급급했었다.

하지만 반쪽 얼굴이 함몰 되고 다리를 절뚝 거리는 육신으로 다시 찾은 캄차카 반도에서 마르탱은 처음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빛이 나는 밤 하늘의 별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는 태곳적 만남을 따라 끝까지 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있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인간 애니미즘의 근본은 가면의 변형된 얼굴이다. 반절은 사람, 반절은 바다표범, 반절은 사람, 반절은 독수리, 반절은 사람, 반절은 늑대, 반절은 여자 반절은 곰, 얼굴의 이면, 짐승들의 인간적인 실체, 그것이 봐서는 안 됐을 자의 눈 속에서 곰이 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눈 속에서 내 곰이 본 것이다.

-나스타샤 마르탱

인간은 캄차카 반도의 땅 속 깊이 매몰된 광물을 캐고 화산재를 퍼 날라서 핵 개발을 하고 강과 바다의 밑바닥까지 훑으며 기후의 변화를 연구 하고 자생하는 동식물을 마구 잡이로 채집하고 사냥 하는 사이 곰의 개체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고 부화 한 곳으로 되돌아와 생을 마감하는 연어들은 방사능으로 오염 되어 인간에게 먹히지 않아도 곧 죽을 운명이 되었다.

숲 속의 사냥꾼은 먹잇감의 냄새를 풍기며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사냥감을 유인 할 수 있어도 지구의 회전 방향을 뜻대로 바꿀 수 없듯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데로 변화되거나 바뀌었던 적이 없었다.

자연에서 가장 초라하고 빈약했던 인간은 동굴과 숲을 벗어나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 도시 생태계를 건설 했지만 남쪽에 살던 기러기가 먹이를 찾아 생명을 부화 시키기 위해 북극 하늘로 날아 오는 걸 막지 못하지만 연어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고 곰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 온 침입자들을 공격 할 수 있는 본능을 갖추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분석하고 통제 할 수 시대가 되었다 해도 현재 지구 곳곳은 붕괴되고 무너지고 있다.

눈부신 과학 기술로 문명의 진보를 이룩해 온 인류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기술 발명이 인류의 모든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사이에 빙하는 녹아 내리고 있고 땅바닥은 갈라져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다.

홍수와 쓰나미, 지진과 산불로 철새들은 떼 죽음을 당하고 있고 연어는 돌아 오지 못하고 오염된 토양에서 태어난 가축들은 인간에 의해 살처분 당하고 있다.

지구 상의  악당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의료 기술과 치료로 생존 시간을 끌어 올린다 해도 100년을 넘어 설 수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삶은 자연을 거슬러서 영원 불멸한 삶을 살 수 없다.


과거를 반복에서부터 조금이라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이상한 과업이다.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결속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오묘하고도 가련한 과업이다. 지나간 일, 일어난 일,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연결고리를 푸는 일은 단순하지만 힘든 과업이다.

-파스칼 키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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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츠키우라는 시골동네에 여관 '마니'를 운영하며 이곳에 투숙하는 손님들을 위해  매일 빵을  굽는 남편 미즈시마와 그의 옆에서 항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 내리는 아내 리에가 살고 있다.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여관의 이름이 '마니'인 것은 아내  리에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동화책인 '달과 마니'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동화책 속  마니는 자전거를 타고 달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워주는 일을 하는 소년이다. 

어느 날 달은 소년 마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마니, 태양을 없애줘. 같이 있으면 너무 눈이 부셔." 

소년 마니는 달의  부탁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태양을 없애면 네가 사라져 버려. 그리고 네가 없으면 밤에 사람들은 길을 잃고 말 거야. 중요한 건 네가 빛을 받아서 너는 또 누군가를 비추는 거야."

어린 시절 리에는 동화책 속의 달과 마니를 어른이 되어서도 찾고 싶어 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아내의 어린 시절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남편 미즈시마가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인   츠키우라로 가자고 제안하고 이곳 에서 '마니'라는 여관을 운영하며 아내를 위한 달과 마니를 찾기 위해 매일 투숙객들에게 행복으로 만든 빵과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두 부부가 운영하는 '마니'에는 다양한 부류의 손님들이 찾아 오기 시작한다.

멋진 남자에게 바람 맞아 도쿄에서 이곳 홋카이도까지 여행 온 손님,기필코 홋카이도를 벗어나 대도시로 가겠다는 손님,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버린 엄마 대신 아버지와 살게 된 딸 그리고 마지막 생을 남겨둔 투병중의 아내와 그녀의 남편들이 빵집 '마니'를 찾아 온다.


두 남녀는 생일 빵을 서로 나눠 먹고, 아버지와 서먹했던 딸은 호박 스튜와 빵을 나눠 먹고, 투병 중의 아내와 온 남편은 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빵을 마지막 생을 남겨 둔 아내와 함께 나눠 먹는다.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의 '마니'를 찾아 온 손님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진짜 '마니'를 찾고  카페 '마니'의 주인인 아내 리에와 남편 미즈시마는 서로에게 달과 마니가 되어준다. 

영화 속에 다양한 빵들이 줄줄이 나오는 데 가장 자주 나오는 빵은 프랑스 호밀 빵인 깜빠뉴다.

 깜빠뉴(Pain de campagne)의 사전적 의미는 '빵을 나눠 먹는 사람들' 또는  '동료'  '가족'을 의미한다.

큼지막한 크기의 깜빠뉴를 서로 나눠 먹는 동안 서로를 챙겨주며 빵을 함께 먹는 시간 동안은 아주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영화 속에 나오는 크기의 깜빠뉴를 한국 빵집에서 사 먹는다면 얼마 정도 할까?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영화 속 깜빠뉴 보다 조금 더 큰 1킬로 짜리는 8유로 정도 나간다. 

여기에 기타 다양한 속 재료들(뮤즐리나, 무화과, 견과류등)이 들어가면 작은 크기별로 대략 3유로 정도 받는다.

프랑스인들에게 빵은 주식이기 때문에 가장 즐겨 먹는 빵인 ( 밀가루, 게랑드 소금으로 만든) 기본 빵류 가격이 빵집마다 거의 비슷하다.

한국은 마켓**에서 오백 그램 짜리 무화과 깜빠뉴가 팔 천 구백원 정도다.

한국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 점에서 깜빠뉴를 구입 한 적이 없어서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전 세계에서 한국 빵 가격이 가장 비싸다.

2026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2026년 세계생활비(World wide cost of Living 2018)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국가  133개 도시 가운데  서울의 빵 1kg 평균 가격은 15.59달러(약 1만7천600원)로 전 세계에서 물가가 비싼 10곳 중에서도 가장 빵 값이 비싸다. 2위를 차지한  뉴욕은 1㎏당 8.33달러(약 9천400원)에 불과한데 거의 두 배 나 차이가 난다.

깜빠뉴 빵은 유럽인들이 즐겨 먹는 빵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빵은 ‘소금빵’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연한 갈색으로 구워진 빵을  한 입 베어 물면 가장 먼저  표면에 뿌려진 짭짤한 소금 알갱이가  혀 끝에 닿고 빵 가운데 뚫린 구멍에서는 고소한 버터 향이 훅 올라온다. 

짭짤한 소금과 고소한 버터 맛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 잡은 소금 빵이 만들어진 곳은 일본 에히메현(愛媛県) 야와타하마시(八幡浜)에 있는 작은 빵집 ‘팡 메종’이다.

 ‘팡 메종’ 주인 히라타 미토시(平田巳登志)씨는 무덥고 습한 여름철에 팔리지 않는 빵 때문에 고민하다 2003년 어느 날 아들에게 “프랑스에서 소금 뿌린 빵이 유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소금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팡 메종’ 주인은 겉이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유럽식 빵이 아닌 버터가 주 재료인 롤빵에  20% 버터량을 더 넣고  빵 위에  암염을 뿌려 빵을 굽는 도중 발생하는 습기에도 녹지 않도록 했다.

동네 빵집의 주 고객층을 겨냥하고 만든 소금빵은 처음부터 잘 팔리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소금 빵 가격이 일반 롤빵 보다 10엔(100원) 정도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 할 때 빵집 인근  어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 했다.

이른 새벽 어시장에서 고된 육체 노동을 하고 나서 커피와 소금 빵을 먹었던 어시장 상인들이  ‘팡 메종’의 소금 빵을 쓸어 담으면서  소금빵은 일본 전 열도를 휩쓸며  “하루 6000개'씩 팔리고 있다.

소금 빵을 세계로 전파한 건 일본이지만 소금 빵의 원조는 북유럽이다.

겨울이 긴 북유럽에서는 절임류 식품들이 발달 되어 있어서 음식의 기본 간이 새다.

버터를 듬뿍 넣은 롤빵에 굵은 소금을 겉 표면에 뿌려낸 빵은 태양의 길이가 짧아서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북유럽인들은 소금 맛이 강한 빵을 즐겨 먹는다.

북유럽인들에게 빵은 주식이지만 국가별로 가격을 따져 보면 스웨덴을 제외 하고 한국 보다 빵 가격이 비싸다.스워덴은 커다란 호밀빵이 (3.01달러) 정도 인 반면에 덴마크(3.43달러)와 노르웨이(3.41달러) 정도이고 북극과 가까운 핀란드는 4달러에 달한다.

현재 일본에서  개인 빵집에서 판매 하고 있는 소금빵 가격은 1개에 77엔(770원)이고 도쿄  대형 프랜차이점에서 판매 하고 있는 가격은 1개당 110엔(약 99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 소금 빵 인기는 코로나 해제 이후 여행객이  급증하고 부터다.

일본에서 천 원  안팎의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는 소금 빵은 크기와 질감 맛도 거의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프랜차이즈에선 개당 2000원에서 2천 5백원 대, 개인이 운영하는 유명 빵집의 경우 5000원을 내야 사 먹을 수 있다.

10년 전에도 서울의 빵 가격은 전 세계 1위(8.16달러)를 기록했고 현재 한국의 빵값 상승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 하고 있다.

유명 빵집으로 소문난 곳에 가보면 손 바닥 크기 보다 작은 빵들이 3800원을 넘고 여기에 각종 재료가 들어가면 7000원을 넘어간다.

가족들과 함께 먹을 빵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오만원 가까이 나온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한국 빵들 이번에 가격을 인하 한다는 방침을 발표 했지만 가장 잘 나가는 빵들인 소보로 빵, 단팥 빵, 크림 빵 등 가격을 개 당 100원~200원도 내려갔을 뿐이다.

제빵업체들은 밀가루와 설탕 등 원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빵값 인상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최근 원자재 값의 안정화 및 작년 전체 물가 상승에 비해 몇 배나 더 가파른 '빵플레이션'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소금 빵에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길게 자른 버터 덩어리를 발효 시킨 반죽으로 감싸고, 표면에 소금을 뿌려 굽는다. 

 빵의 질감, 버터와 소금의 균형에 따라 소금 빵의 맛이 미세하게 달라질 뿐이다.

현재 한국에서 소금 빵 인기는 오픈런을 할 정도로 매장에 내놓자 마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옥수수 크림, 흑임자 크림, 우유 크림, 트러플 초콜릿 까지 넣은 소금 빵으로 진화 될 수록 한국의 빵값은 한 끼 식사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치솟고 있다.

한국의 물가는 원가 100원이 오르면 현장에선 1000원씩 올라가고 있다.

주식인 기본 식재료들이 전부 올라가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서민들의 허리가 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의 혈세로 살고 있는 이들은 물가 상승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을 하지 않고  악착 같이 국민의 유리 지갑만 탈탈 털어낼 궁리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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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빵은 디저트개념의 빵들이라 주식개념의 유럽빵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긴 그렇지만 같은 디저트빵계열인 일본과 비교해서도 빵값이 비싼것은 사실이지요.흔히 한국의 윈자자비,임대료,인건비등이 비싸다고 변명하는데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라 이해가 좀 안가지요.결론은 두대기업 빵집이 가격을 올리면 동네빵집도 따라기는 구조라 그런거 같습니다.
 


지독한 난시로 사람을 정면으로 응시 하지 못하는 지로는 밥을 먹을 때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고 항상 시선은 책을 향해 있다.

소년 지로의 시선은 책과 미래에 자신의 꿈을 실현 시켜줄 비행기를 만드는데 온통 쏠려 있지만 소년이 처한 현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울하다.

관동 대지진 발발로 도쿄 전체가  불길에 사로 잡히고 조선인을 죽이는 살육의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는  도쿄를  소년은 그저 바라 볼 뿐이다.

대학을 마친 지로는 나고야로 건너가 항공사 부품 설계부에 취직해서 전투기 도면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가 그토록 갈망하고 염원했던 꿈의 비행기가 완성 되기 직전 대공황의 여파로 은행들이 연달아 부도가 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거리로 나온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지로는 자동차 대신 소떼를 이끌고 전투기를 겨우 비행장으로 옮겨 놓고 전투기 개발에 몰두 하지만 어떤 엔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로는 매일 밤 꿈에서 자신이 만든  붉은 색 일장기를 새긴 전투기들이 추락하는 꿈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을 실현 하기 위해 지로가 살육과 파괴의 화신이 되는 전투기 개발에 매진하는 동안 일본은 조선인들의 밥상에 올려지는 모든 걸 빼앗아버리고  한반도에서 끌어 모아온 쇠붙이들을 전부 녹여서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 일본 군부는 독일 융커스사에 전투기와 폭격기 제조 기술 도입에 비용한 막대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한반도에서 강제 징용으로 끌고 와 강제 노역을 시키고 동아시아 전역에서 도로 설계 기술자들과 항공 엔지니어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기여코 전투기 개발에 성공한다.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세상을 전부 집어 삼킬 태세로 대량 살육 기기 공장을 가동 시킨다.

전투기 설계팀장 자리에 올라 선 지로는  어느 여행지에서 한 독일인을 만나 이런 말을 듣게 된다.

“히틀러의 독일은 깡패 집단입니다. 중일전쟁, 잊어요. 만주국, 잊어요. 국제연맹 탈퇴, 잊어요. 세계를 적으로 만든 것, 잊어요. 일본은 파멸해요. 독일도 파멸해요.” 

 1937년, 지로가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약혼녀 사토미 나오코는 결핵이 악화돼 각혈 하지만 그는 아픈 그녀를 옆에 두고 전투기 개발에 열중한다. 

마침내 지로는 꿈에 그리던 '제로센'을 완성하고, 그리고 그 제로센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던 그 날 약혼녀 나오코는 세상을 떠났다.

2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 너덜 너덜한 조각으로 돌아 온 '제로센'

비행장은 고철이 된 전투기의 잔해로 가득하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끝은 너덜너덜 했지만요.” 

1940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지로의 제로센은 단 한 대도 돌아오지 않았다.

1939년에 첫 비행을 마친 A6M 제로센은 1940년 7월에 생산되어 같은 해 9월  중일 전쟁에 처음 투입 되었다. 이후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가 된  A6M 제로센은 250Kg 폭탄을 적재한 채로 적함에 들이받도록 훈련 받은 카미카제 특공대가 된다.

카미카제 특공대의 본래 이름은 신풍특별공격대(神風特別攻撃隊 )로 일본 해군은  '신푸'라고만 불렀는데 한 미국 기자가 '카미카제(Kamikaze)' 특공대라고 잘못 읽었던 것이 대명사로 굳어져 버렸다.

1274년 쿠빌라이 칸이 주도한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서 몽골 제국군과 고려군이 바다를 건너오던 중 두 차례나 태풍을 만나 좌절한 것을 두고 "신령이 일본에 가호를 내려 준 것"이라 생각하여 '신풍'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서 유래한 카미카제는 인류 전쟁 역사상 기계가 인간을 공격한 최초의 인간 드론 살상 폭격기로 미군 함선에 들이받는 것을 전제로 자폭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와 하야오는 전투기 개발에 몰두 하는 지로의 입에서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가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말로  일본 전투기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는 지로를 다시 한 번 후대인들에게 각인 시켰다.

하지만 그가  만든 '제로센'은 그야 말로 살상 전장 터의 지옥의 불길을 치솟게 만들었던 불쏘시개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와 하야오는 전투기 개발에 몰두 하는 지로를 사람도 사물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는 지독한 근시라는 신체적 한계를 갖은 자로 설정하고 소년이 열정적으로 꿈에 매진하는 모습을 부각 시켜서 정작 지로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죽이게 될지 꿈에도 알지 못했다는 스토리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낭만적인 화풍으로  일본 군부가 저지른 끔찍한 살육의 만행에 대해 당시 일반 국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 역사의  희생자일 뿐이고 태평양 전쟁은 일본 국민이 아닌 일본 군부의  군국주의가 불러 일으킨 피의 전쟁이였다는 걸 대작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꿈에 그리던 '제로센'을 완성한 지로의 제로센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던 그 날 약혼녀 나오코는 세상을 떠났다.

악몽에 시달리던 지로의 꿈에  약혼녀 나오코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살아가세요. 살아야 돼요.” 

카미카제를 앞세우고 동아시아 전역을 피바다로 물들였던 일본은 히로시마 폭격을 맞고 항복을 선언하고 어떻게든 살아 남았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가 식민지배를 벗어 난지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5대 국경일 중 무려 2개가 일본과 역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인 8월 15일은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이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에서 경축 행사가 열리는 동안 일본에서는 전몰자 추도식을 거행 하며 전범들이 유해가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 하며  '종전 기념일'로 부르고 있다.

매년 8월이면 일본 미디어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날들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방송 하고 있다.

  일본은 매년  원폭 투하의 날이 돌아 올 때 마다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가 정당 했는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시행 하며 원폭의 비인간성과 일본이 지구상 유일한 피폭 국가라는 데 대한 피해자 의식을 일본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 시키고 있다. 

특히 일본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발행 하고 있고 우익 단체의 사상과 신념을 대변하는 미디어와 언론들이 앞장서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 전범국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1886년(고종 23년), 청나라의 이홍장(李鴻章)의 추천으로 묄렌도르프의 후임으로 조선에 부임한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 하면서 청나라의 부당한 내정 간섭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 출신의 변호사이자 판사로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조선이 청의 속방이 아닌 주권 독립국임을 강조하며 서구의 근대 국제법 이론을 근거로 삼아 이홍장의 '속방론'을 반박했다.

고종의 외교 고문 데니가 활동하던 시절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2025년 현재와 거의 흡사하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이 미국 함정을 타고 워싱턴 D.C.로 떠날 때 이홍장은 주재국에 가면 가장 먼저 청국 공사관에 알린 뒤 청국 공사와 함께 주재국 외교부를 방문하고, 외교 모임에서는 청국 공사의 아랫자리에 앉고, 문제가 생기면 청국 공사와 합의 처리하라는 영약삼단(另約三端)이라는 치욕적인 원칙을 제시 했다.

하지만  박정양이 청국 공사를 배제하고 스티븐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청하자 이홍장은 고종에게 그의 처벌을 요구했다. 박정양을 국내로 소환한 고종은 형식적으로 처벌한 뒤 그를 다시 중용하자 외교 고문 데니는  ‘청한론(淸韓論·China and Korea)’이라는 저서를 통해 조선이 청에 속한다는 속방론(屬邦論)을 부정하고 조선의 국제적 지위를 독립국으로 규정하면서 청의 간섭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데니는 이홍장을  대대적으로 규탄하고 청나라 정부에 소환을 촉구하자 스파이처럼 오웬 니커슨 데니를  이용하려던 청나라는 그가 뜻밖에도  청나라를 견제하는 외교 활동을 펼치자  1890년 외교 고문직에서 파면 시켜 버린다. 

1890년 고종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태극기를 선물하고 이를 소중하게 간직했던 오웬 니커슨 데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친척들이 대대로 보관해왔다.

1980년 오웬 니커슨 데니의 누나의 손자인  윌리엄 랠스턴이 가족들의 가문에서 물려 받은 유품을 정리하다 이 태극기를 발견한다. 1981년 6월 23일 한국에 기증했다.


1981년 6월 23일 한국에 기증 된 이 태극기는  가로 262㎝, 세로 182.5㎝에 흰색 광목 두 폭에 새겨진 4괘의 형태와 배치는 지금의 태극기와 같지만 검은색이 아닌 푸른색의 문양을 두 줄로 박음질해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인다. 

'데니의 태극기'는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자, 국기 제정 초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실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적과 아군을 구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진짜 적에게 습격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적을 친구처럼 사랑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가 누구를 적으로 삼아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

'적을 분명히 알고' 그 적에 대응하는 대비책을 단단히 세워 놓고 적재 적시에 적과 맞붙어야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인 대응으로 진짜 적에게 사소한 약점을 드러내 보인다.

이 세상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역사에서도 끊임없는 약탈과 침략을 행했던 국가들끼리도 서로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에는 협력과 대립의 균형 추를 움직이며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을 유지 하고 있다.

광복 81년...

2026년의 8월 15일 현재 시점에서 지난 반 세기를 훌쩍 넘긴  그 시절을 되 돌아 보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지도 상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지워졌던 지난 세월 동안 미래 세대를 위해 피를 흘린 선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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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사진작가 레이철 서스만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식물학자들과 함께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유럽,시베리아, 남극 그리고 사막과 바닷속에 살고 있는 고생명체 '나무'의 모습을 찾아 떠난다.

 사진작가 레이첼 서스만이 찾아낸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들'의 나이를 추적해보면 남극 너도밤나무(6000~1만년)-브리슬콘 파인(5068년)-웰위치아(2000년)-파머참나무(1만3000년)등으로 지구 상에 인류의 문명이 건설 되기 전, 공룡들이 하늘과 땅 위를 날고 뛰어 다닐 때 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기후 변화와 산불, 지진, 홍수, 각종 자연 재해를 수 세기 동안 겪어나가면서 고나무들은 나름대로의 생존 비결을 갖춘 최첨단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다.

가령 남극너도밤나무는 생존하기에 적합한 기후를 찾아 뿌리들이 한 뿌리씩 이동하고 브리슬콘 파인은 한정된 영양분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잔 가지까지 수분을 공급 하지 않아 메말라 버리고 만일을 대비 해서 영양분을 항시 축적하고 있다.

사막에 사는 웰위치아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딱 두 장의 잎만 살려둔다.

가장 흥미로운 생존비법을 갖고 있는 파머 참나무는 인간이 도저히 나무의 형태로 알아 보지 못한 형태로 진화해서 살아 남았다.


나무가 성장하려면 빛,토양의 적절한 조합이 필수인 것은 물론이고 나무 껍질에 기생하는 벌레,조류들, 각종 균류들이 때로는 생존의 위협적이기도 해서 나무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수천년,만년을 훌쩍 뛰어넘어 살아남은 나무들은 주변 생물들과 공존하며 기후변화에 맞춰 색과 모양 크기들을 바꾸며 진화 해나갔다.

 나무는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생존 하기  위해 자신의 껍질,가지,잎사귀,열매들을 기꺼이 주변 생물에게 나눠주고 수 천년, 수 백년간  뿌리를 이동 시키고 형태를 변화 시켜가며 살아남아서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고귀하고 값진 보물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머무는 궁궐마다 선대 왕과 왕후의 어진을 모시는 선원전(璿源殿)이라는 사당을 두고 간소한 제사를 지냈고 거처를 옮길 때 마다  선원전 어진들도 함께  옮겨갔다.

‘아름다운 근본’이라는 뜻의  선원전은 왕실의 근간과도 같이 여겨진 공간이었기 때문에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세 곳에 설치되었고  이 전통은  대한 제국까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에 모두  헐려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 

왕과 왕후의 어진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수 세기 동안 지켰던 나무 한 그루는 대 환란의 시기에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출처: 서울 덕수궁 선원전 영역의 회화나무. 이명호 작가의 사진 작품. 국가유산청 제공

일제에 의해 궁궐을 강탈하고 황후를 잔혹하게 시해 하자마자 1896년 2월11일, 고종은 일제의 눈을 피해 궁녀의 가마를 타고 서둘러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동안 덕수궁 선원전 터를 지키고 있던 회화나무는 모든 걸 지켜 보았다.

고종의 피난길을 배웅하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던 회화나무 200여년의 세월 동안  이 나무가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다사다난 했던 역사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강세황의 <두운지정 화첩> 중 `옥후북조도

 

1784년 3월 당대 최고의 사대부 화가였던 표암 강세황은 서울 교외 둔지산(둔지미) 별서 ‘두운지정’(逗雲池亭)에 머무는 동안 현재  대통령실 남쪽 어린이정원 부근에서 바라본 남산(오른쪽)과 북한산(남산 왼쪽), 북악(북한산 앞), 인왕산(북한산 왼쪽)의 풍경을 그렸다.

200년 후 1904~1906년 일제가 둔지산 지역의 땅 115만 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하면서 ‘용산’이란 이름을 멋대로 갖다 붙였고 일대 울창한 숲에 자생하는 희귀한 나무들은 모조리  뽑아서 섬나라로 끌고 갔다.

대기의 뜨거운 열기에 바닷 속도 땅 속도  끓어 올라서 작황상태가 좋지 않아 먹을 수 있는 모든 식재료 가격이 천정 부지로 오르고 있고 세금 폭탄에 서민들의 주거 환경 마저 흔들리고 있다.

 착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 서민들에게 계란 한 판 가격 숫자 변동이 가져 오는 불안정한 가계 생활비 형편을 정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이란 한 번 손에 쥐면 놓기 싫고 놓치면 다시 쥐고 싶고  다시 쥐고 싶어 평생 주위를 맴돌게 만드는 정령 도른자의 호르몬을 분출 시키게 만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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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여러 번 요동을 치는 감정의 곡선처럼 인간의 삶에도 일직선이 아닌 여러 형태의 굴곡이 존재 하는데 이는 마치 각 나이 대 별로 겪게 되는 생애 주기 곡선인 U자형의 ‘행복곡선’처럼 어느 순간엔 높은 성취도를 보였다가 또 어느 시점 부터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추락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교수가  132개국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해 생활 만족도와 연령의 관계를 측정한 결과 선진국에서는 47.2세의 중년층이 가장 비참한 순간에 처해있고 후진국은 그보다 좀 늦은 48.2세에 경제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한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했다.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47.2세에서 48.2세의 중년층들 중에서 중간 임금이 높든 그렇지 않든, 평균 수명이 길든 짧든 상관 없이 스스로의 삶의 위기에 처해지게 되는데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행복은 다시 원 상태 수준으로 회복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건 그저 하나의  연구 결과일 뿐으로  2019년 1월부터 전 세계를 감염 공포 속으로 몰아 넣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각국가의 사회 공동체의 회복력이 떨어지면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취약계층이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100세 시대에 47세와 48세부터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라는 연구 결과를 백 퍼센트 믿을 수 없지만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위기와 위협, 날로 치솟고 있는 각종 생활 물가와 전세난으로  가장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부모님 세대보다 더 높은 세금을 지불하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내일을 살아 가고 있다.

일본 오더블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책이 있다.

  88세의 전업투자가  시게루 후지모토는 1990년대 일본의 자산 거품이 꺼진 후부터 시작된  블랙먼데이, 버블 붕괴, 리먼 쇼크, 동일본 대지진, 코로나19 사태 등 숱한 경제 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나의 루틴’과 ‘나의 분석’과 ‘나의 판단’으로 시장에 맞서서  69년간 주식 투자로 20억엔(약 183억원)의 자산을 모았다. 

현재 일본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시게루 후지모토는  19세 때  키우고 있던 앵무새의 먹이를 사러 갔던 주인에게 전해 들었던 주식 투자를 몸 소 실천해서 90세를 앞두고 있는 나이에도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경제 뉴스와 미국 주식 시장, 선물 동향 등을 확인하는 현역 트레이더다.

1995년에 발생했던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살고 있던 집과 자동차를 모두 잃고 간신히 살아 남았던 시게루 후지모토는 버블 경제 때는자산의 80%를 한번에 날리기도 했다.

 자칭 투자 경력을 내세워서 유툽 라방을 하며 투자자들을 현혹 시키는 부류들과 다른 투자 경험을 가진 후지모토가  온 몸으로 겪고 버텨낸 모습에서 귀가 솔깃해지는  삶의 교훈들이 아주 많았다.

현재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려 나가는 책은 단연 부동산 투자와 주식 투자 비법에 관한 책들이다.

60년이란 시간 동안 롱런한 투자자들은  '투자 고수'를 넘어 숱한 고비를 넘긴  '인생 구루'들이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투자가 워런 버핏은 천문학적인 돈을 쓸어 담고 유흥으로 흥청 망청 쓰고 있는 월가의 금융인들보다 몇 백배 자산 규모를 갖고 있지만 그에겐 운전기사도 없고 전용 비행기도 없다. 

워런 버핏은 처음 투자를 시작했던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검소한 삶을 살고 있고 일본의 투자가 후지모토는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신용카드조차 없다.

100세를 앞 두고 있는 워런 버핏도 90세를 앞두고 있는 후지모토도 65세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해서 그 자산이 눈덩이처럼 불어서 현재 자산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돈에 투자하지 않고  인생에 투자한 부자 할아버지들의 생애 주기 그래프는 일직선이 아닌 여러 형태의 굴곡이 있는 그래프였어도 언제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 보았고 유머를 잃지 않았다.

현재 한국 사회의 행복의 척도를  측정 해 본다면 전체 인구에서 3분의 2 이상은 행복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성실하고 근면한 우리 국민은 세계 제일의 시민

정치는 왕조 정권 시절부터 쭉 하류에서 썩을 대로 썩어서 국민의 피 땀 눈물로 그들만의 낙원을 건설하는데 만 골몰  하고 있다

"당신이 인류 중 1% 행운아에 속한다면, 나머지 99%에 빚을 진 것이다" 

If you're in the luckiest 1% of humanity, 

you owe it to the rest of humanity to think about the other 99%

-워런 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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