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속 배경을 미국으로 설정해 놓은 이유는 미국이란 나라는 영국이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젊지만 급격한 사회 변혁 속에서 스스로 개선하고 개혁해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는 나라로 느껴졌습니다.
기본적인 사회 제도 기반이 영국 같은 오래된 국가들만큼 굳건하지 않으면서도 과학과 기술에 발전 속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한 곳이죠
하지만 그렇게 눈부신 과학과 기술 발전 속도를 뒷 받침 해주지 못하는 사회 제도의 모순이 제 눈에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로 비춰졌습니다.
제도를 정비 하지 않은 국가에서 유전자 연구와 기술 분야가 미래 세대에 어떤 결과를 초래 하게 될까요?
'클라라'가 세상 밖으로 나온 그곳을 미국으로 설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클라라가 처음 마주 하는 세상의 이미지는 1930년대 미국 회화에서 가져 왔습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와 랠스턴 크로포드(Ralston Crawford), 찰스 실러(Charles Sheeler) 그림속 세상.

황량한 빈 들판과 커다란 하늘, 넓은 거리. 저 멀리 농장이나 녹색 승강대 같은 것이 보이는곳



에드워드 호퍼가 남긴 도시의 모습 , 텅빈 식당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들.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 커튼 너머 보이는 외로운 사람들, 이런 이미지들을 제 머릿속에 담아두고 클라라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려 나갔습니다.
저는 원래 영국적인 풍경, 이미지에 관심을 갖고 살지 않았습니다. 딱히 끌리거나 매료되었던적도 없었고요.
제 소설 중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영국을 배경으로 설정해도 어느 한 곳도 제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영국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수백 년 전 영국이 였거나 100년 전의 영국의 모습 일종의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린 영국의 모습이니 판타지나 SF 버전의 영국일 수 있겠네요.
제 성장 과정이 특별해서 이런 식으로 영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는것 같습니다.
애초에 아버지가 영국에 2-3년 정도 체류 할 예정으로 왔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언제든지 영국 땅을 떠날 준비를 하셨죠. 그래서 자식들에게 완벽하게 영국 사회에 적응 하라 든가등의 강요를 하지 않으셨죠. 저희 가족이 살던 곳에 아시아인 가족은 딱 저희 가족 뿐이였고 학교에서도 저처럼 생긴 사람은 저 뿐이 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인종이나 집단에 소속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영국에서 사는 동안 어떤 일본인 커뮤니티속에 살았던 적이 없습니다. 상하이 태생이셨던 아버지는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분이셨으니까요. 저라는 사람은 일본 태생으로 서양 문화를 경험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항상 제 책을 돌아볼 때마다 사진 앨범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제 인생 여러 시점의 제 모습이 담긴 사진 앨범처럼 저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영국인으로 살라고 강요 하신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전형적인 일본인 그러니까 20세기 초반의 일본 사회에 순응 하고 살았던 모습에 박제된 분이였습니다.
일본 친척들이 보내준 영화와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여자의 모습이 저희 어머니였죠.
남자에게 순응하고 가족에게 복종하는 남자가 쓰는 말과 여자가 쓰는 말이 다른,,,
5살때 일본 땅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1990년에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 갔을 때 저희 어머니가 무척 충격을 받으시더군요. 젊은 여성들이 남자들 처럼 말한다고,,,
저는 그 순간 부터 일본인이란, 영국인이란 그리고 나란 사람이란 이런 식의 생각을 접어버렸습니다.
어떤 특정 문화나 인종, 태생에 더 이상 얽매이거나 집착 하지 않게 되었죠.개개인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그래서 저는 제가 사는 현대 세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를 쓰고 있을 당시 이 작품이 SF 장르로 분류 되리 라는 점을 의식하며 sf 장르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들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현실 세계의 인공 지능이나 유전자 편집의 실제 개발과 사용 여부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읽으며 , 과학자들과 함께 이 주제를 다루는 콘퍼런스와 세미나에도 참석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오늘날 인공 지능과 유전자 편집 분야의 발전은 <클라라와 태양>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두 분야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를 쓸 때는 장르를 의식하며 스토리를 장르에 맞추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엄청난 과학 발전의 속도를 반영하기 위해 과감하게 사실주의 기법을 도입하고 그다음 스토리로 덧칠 했습니다.
이번에 출간 반응을 살펴보니 영어권 사람들은 <클라라와 태양>이 SF 소설이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05년에 <나를 보내지 마>가 출판되었을 때는 “이 작가가 SF를 썼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는 인공 지능과 유전자 편집과 같은 문제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중대한 문제이자 이슈이고 현재 이 중요성이 어떤 하나의 소설 장르에서 부각된 게 아니라는 것
<나를 보내지 마>가 출간되었을 때, SF는 여전히 아웃사이더 장르, 전문적인 장르이며, 주류 문학과는 상당히 단절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SF는 책 뿐 아니라 영화와 TV에서도.SF가 훨씬 더 대중적인 장르, 현재와 미래 세계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매개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지 영국과 미국에서 SF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바뀌었는데 <나를 보내지 마>를 출판했을 때와 이번에 <클라라와 태양> 책을 출판했을 때와 반응이 굉장히 다릅니다.

저는 원래 현대 작품은 읽지 않습니다.
유명한 영국 작가나 미국 작가들 중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책과는 거리가 멀었고 성인이 되고 난 후 대학에서 고전 문학을 읽기 시작 했습니다. 워낙 읽는 속도가 느리고 끝까지 완독 하지 않고 덮어두는 책들도 많습니다.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도 예전에 대학 시절에 읽었던 책들로 다시 돌아 가버립니다.
최근에는 논픽션을 많이 읽었습니다.
영국인이란 누구인지, 또는 미국인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담긴 생생한 스토리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서로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거라는 희망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 해야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 해야 하는지 판단 할 수 있어야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RPO빌딩이 벽돌로 뒤덮여 있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흰색이 아니라 연 노란색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내가 상상 했던 것 보다 훨씬 높고 (22층 이었다) 창문 아래마다 창 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해가 RPO 빌딩 전면에 대각선으로 빛을 드리워 한쪽 면에는 거의 하얗게 빛나는 삼각형이 생기고 다른 면에는 아주 짙은 색 삼각형이 생기는 것도 보았다.
두 면 다 원래는 연 노란색인데도 또 건물 창문이 꼭대기 층까지 전부 보였고 가끔은 심지어 그 창문 안쪽에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돌아다니는 사람도 보였다. 또 인도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았다.- 클라라와 태양 中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 날 수 있는 이야기를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존재 했거나 존재 할 수도 있을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읽어 줌으로 써 우리는 상상의 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있다. 그 상상은 우리가 서로의 머리와 마음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설은 분명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 허구의 세계다. 하지만 소설은 사실 파악이나 거짓말과 결이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상상을 하려면 현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현실에서 출발한 상상은 결국엔 현실 속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위대한 상상이 빚어낸 이야기는 수백년의 세월을 지나도 여전히 우리 현실에서 읽혀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