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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뭉크는 5형제의 둘째로 1863년 러턴(Løten)에서 태어났다.
군의관이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크리스티아나로 옮겼고 어머니는 그가 5살 때 결핵으로 사망했다.
남매 중 가장 가까웠던 누나 소피는 14살 때 결핵으로 죽었다. 군의관에서 목사가 된 아버지는 아이들을 매우 엄하게 키우며 죽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로 겁을 주었다.
남매들 중 유일하게 결혼한 남동생 안드레아스는 폐렴으로 죽었고 마지막 남은 여동생은 젊은 나이에 정신병 진단을 받는다. 1889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죄책감 때문인지 절망에 빠진 뭉크는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절망〉은 뭉크가 해질녘에 산책을 하던 중 경험한 불안감을 최초로 표현한 작품으로 모자를 쓴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있고 다른 두 사람은 다리 위를 걸어간다. 뒤에는 언덕으로 둘러싸인 피오르가 보인다. 해가 지면서 강렬한 붉은색이 풍경을 물들이고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심한 피로감에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불타는 듯한 구름이 짙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피 묻은 검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으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나의 길은 나를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가 있는 절벽 가장자리로 이끌었다.
가끔은 그 길로부터 도망쳐 사람들 사이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매번 다시 절벽 위로 돌아와야 했다.
그것이 심연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걸어야 할 나의 길이다."
1898년에 뭉크는 툴라 라르센을 만난다. 그는 아름답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창작에 있어서도 왕성한 시기를 맞아 오랫동안 구상해왔던 연작 '생의 프리즈'를 완성한다.
뭉크가 툴라를 여성성의 이상형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그가 쓴 편지에 잘 드러난다.
나는 마치 수정처럼 변화하는 수천 가지 표정을 가진 여러 여자들을 봐왔어.
하지만 오직 세 가지 강렬한 표정만을 분명하게 지닌 여자는 만나본 적이 없어.
당신은 가장 깊은 슬픔의 표정을 갖고 있어.
마치 옛날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성화 속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처럼 말이지.
그리고 당신이 행복할 때-나는 그토록 빛나는 기쁨의 표정을 본 적이 없어.
마치 당신 얼굴에 갑자기 햇빛이 쏟아지는 것 같아.
그리고 당신이 가진 세 번째 얼굴, 이것은 나를 두렵게 만들어.
그것은 운명의 얼굴, 스핑크스의 얼굴이야. 그 안에서 나는 여성의 위험한 특성을 발견하지.

나는 내 (진짜) 첫사랑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그녀는 사랑의 꽃을 꺾으려 하지만 꽃은 꺾이지 않는다.
반대편에는 검은 옷을 입은 그녀가 슬픈 얼굴로 춤추는 커플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그녀와의 춤을 거절당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거절당한 채.
툴라는 결혼을 원했지만, 비극적 가족사와 자신의 정신병이 유전될까봐 두려웠던 뭉크는 자신의 삶에 사랑보다 예술이 중요하다며 툴라의 사랑을 회피해버렸다. 툴라와의 관계는 1902년에 비극적인 파국을 맞는데 와 그녀와 다투던 뭉크가 자신의 왼손에 권총을 쏴버린다.
툴라는 얼마 후 뭉크의 친구였던 다른 화가와 결혼해버리고 뭉크는 그 후 십년동안 그녀와의 추억을 그림으로 남겨버린다.
“나를 비난하지 마. 내가 삶을 살고 있지도,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슬퍼해줘.
나는 그저 고통스러운 열망을 품고 창가에 앉아
나를 둘러싼 끔찍하도록 시끄럽고 낯선 삶의 소란을 지켜볼 뿐이야.”
1908년에 뭉크는 신경 쇠약발작으로 다음 해 봄까지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차츰 알콜중독에서 벗어난다. 국가에서 훈장을 수여 받아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그는 은둔하며 작업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에켈리에 농장을 구입한 뭉크는 여생을 그곳에서 홀로 살아간다.
이제 그의 그림은 강렬한 불안감을 휘감지 않고 붉은색보다 푸른색과 초록색으로 차분한 심정을 드러낸다.
〈자화상, 밤의 방랑자〉에서 뭉크는 단정한 슈트 차림에 한손에 연기를 내뿜는 담배를 쥔채 에켈리의 텅빈방에 서있다.

.그가 서 있는 베란다 문으로부터 내다본 풍경은 〈별이 빛나는 밤〉에 투영되어 있다. 뭉크는 차가운 밤 공기와 자신의 모습속에 고독이라는 그림자를 녹여냈다. 지평선 멀리 도시의 불빛과 빛나는 별들은 광대한 공간으로 구도를 확대하면서 고독으로 휘감아버렸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뭉크가 자기를 만나러 와줄 수 있냐고 했다.
그는 혼자 있었고, 전구도 장식도 달려 있지 않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만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는 내게 테이블에 놓인 과일을 권했다. 내가 손을 뻗어 사과를 집자 그가 말했다.
'그렇게 앉아 있어, 그대로.' 그것이 〈보헤미안의 결혼식〉의 시작이었다.
내가 가야 할 시간이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계속 있으려면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러지 않는 게 좋겠지.
집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크리스마스이브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니까.'
〈자화상, 새벽 2시 15분〉에서 퀭한 얼굴을 한 화가 뭉크는 몸을 안락의자에서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단호하고 곧은 표정은 자신에게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자각을 보여준다. 주변의 공간은 녹아 사라져가며,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기다린다. 늙은 화가는 삶의 끝자락 죽음의 시간 앞에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나는 갑작스럽게 혹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이 마지막을 경험하고 싶어.
여든한 살 뭉크는 1944년 1월 23일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