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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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1962년 9월 평온한 어느 날 아침, 아내 가즈코는 아침 상을 준비 하고 있고 남편 신이치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내가 차려 준 아침을 먹으며 평소와 다름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딸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일어선 신이치는 아내와 딸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아침 7시 아직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은 이른 시간, 기차역으로 가는 가족을 향해 한 남자가 돌진 한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옆 골목에서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붉은색 러닝 셔츠 차림에 손에는 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신이치와 가즈코는 걸음을 멈춰 그를 바라봤지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남자가 그들을 봤다. 몇 초 후 신이치가 “도망쳐!”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가즈코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공포가 전신을 훑어 내렸다. 남자의 손에는 일본도가 들려 있었다. 게다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셔츠가 붉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발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남자가 돌진해왔다. 그 눈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벌겋게 물든 채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이치가 아내와 아이를 지키려는 듯 둘 앞을 막아섰지만 남자는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 속도 그대로 신이치에게 돌진해왔다.'


한 살 짜리 딸을 두고 괴한에게 목숨을 잃은 부부 신이치와 가즈코

한편, 매년 칠 석을 앞 둔 시기에 다이토 구 이리야에는 나팔꽃 시장이 열린다.

가모 가족은 연례 행사 처럼 이날 나팔꽃 시장이 열리는 곳을 지나 유서 깊은 장어집에서 식사를 한다.


'나팔꽃 시장은 여름의 볼거리야. 그러니까 일본의 문화지. 그걸 즐기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


중학생 이 되고 나서 소타는 늘 집안의 연례 행사 처럼 나팔꽃 시장을 둘러 보는 일이 이제는 영 귀찮아 져서 이런 저런 불평을 늘어 놓고 있다.

아침에만 피는 나팔꽃을 보기 위해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는 가족의 뒤를 따라 가는 소타는 무심코 걷다가 발이 아프다며 잠시 쉴 곳을 찾던 중에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유카타 차림의 소녀를 만난다.

누군가 바닥에 지갑을 떨어뜨리는 것을 동시에 본 두 사람, 지갑을 되 찾은 남자는 소타에게 천 엔짜리 지폐를 쥐어준다.

소타는 유카타 옷을 입은 소녀와 동시에 떨어진 지갑을 봤다며 지갑 주인이 고마움에 준 천엔 짜리 지폐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가모 소타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유가타를 입은 소녀 이바 다카미는 소타와 같은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서로 메일 주소를 주고 받고 난 후 두 사람은 만나면 또 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지만 경찰관이 소타의 아버지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메일을 검열한 후 삭제 하고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고함을 친다.

소타의 한 여름 같은 짧은 사랑은 이렇게 끝이 나고 두 번 다시 나팔꽃 시장에 가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맹세 한다.

신주쿠 거리를 걷던 전 국가 대표 수영 선수 출신의 여대생 리노는 사촌의 자살 소식을 듣고 급히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학교 성적도 좋고 그림과 스포츠에 재능이 뛰어 났던 사촌은 작년 대학을 중퇴하고 음악의 길로 갔지만 창문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가족 모두 믿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가족들은 사촌이 살아 있을 때 함께 즐겨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하며 지난 시절을 추억 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난 후 리노는 꽃으로 가득 찬 사촌의 집에 들려 세상을 떠난 사촌이 두고 간 노트북을 켜서 할아버지 와 함께 사진 파일을 열어 본다.

리노는 할아버지가 찍어 놓은 꽃 사진들을 하나 씩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을 두 어 달 이어 가던 중 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꽃을 보게 된다.

작은 화분에 핀 노란 꽃, 어느 날 꽃은 사라지고 화분만 남겨져 있는 것을 발견 하고 usb에 저장 해 둔 노란 꽃의 사진의 이름을 묻지만 할아버지는 손녀 리노에게 꽃 이름을 공개 하면 안된다고 대답을 한다.

악몽에 시달렸던 꿈에서 깨어난 어느 날, 리노는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하고 누군가에게 피살 된 할아버지의 집에서 노란 꽃이 피었던 화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인이 피살 되었다는 사건을 접수 받은 수사관 하야세는 피살 된 노인이 살아 생전에 찍은 사진으로 인해 좀 도둑 두 명을 검거 했던 사건을 떠올린다.

수사관 하야세는 피살 당한 노인 슈지가 육년 전 퇴직하기 직전까지 근무 했던 '구온 식품 연구 개발 센터'를 찾아 간다.

슈지가 근무 했던 곳은 자연계에 존재 하지 않은 새로운 식물을 만들어서 상품화 시키는 연구소로 현재 '식물개발 연구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수사관 하야세는 이 연구소의 분자 생물학 연구 실 실장인 후쿠자와 다미오에 퇴직한 슈지의 행적과 신상에 대해 탐문한다.

세상에 존재 하지 않은 꽃을 연구 했던 슈지, 화분 속에 피었던 노란색 꽃의 이름을 절대로 알려 주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리는 손녀 리노는 블로그에 노란색 꽃 사진을 올린다. 리노는 도쿄에 살고 있다는 가모 요스케라는 남자로 부터 할아버지가 어떤 병으로 사망 했는지 알고 있냐며, 당장 노란 꽃 사진을 지우거나 블로그를 폐쇄 하라는 의문의 메일을 받는다.

한 편 물리 에너지 공학과에 재학 중인 가모 소타는 몇 년 전에 발생 했던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원자력과 무관한 회사에 취직을 준비 하고 있던 중 아버지가 위독 한 상태라며 황급히 집으로 내려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식물 회사에 다닌다는 가모 요스케의 명함을 쥔 리노는 명함에 적힌 주소를 찾아 가고 소타를 만나게 된다.

전직 올림픽 수영 선수 리노의 얼굴을 알아본 소타는 자신의 형 요스케가 거짓으로 식물 전문가로 행세하면서 꽃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꽃과 잎의 형태가 바뀌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색깔이지 나팔꽃에 대해선 그리 잘 알지 못하지만 이것 만은 알아. 노란색 나팔꽃은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


수사관 하야세는 꽃을 단서로 수사망을 서서히 좁혀 나가며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노란색 색소를 만들어내는 효소와 그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는 이미 발견 된 지 오래되어서 유전자를 주입하기만 하면 빨강 꽃을 피웠던 꽃은 노란 색으로 변한다.

노란색 나팔꽃은 에도 시대에 재배가 번성했었다는 자료가 남아 있지만 현재는 존재 하지 않는 꽃이다.

도감과 문헌 상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노란색 나팔꽃의 씨앗이 누군가에 의해 보존되어 전해 졌을까?

분카 분세이 시절 나팔꽃 재배 붐이 일어 나고 나팔꽃의 다채로운 색깔은 수많은 이들을 매료 시킨다. 집집마다 나팔꽃이 피어 날 때 마다 흉기를 휘두르거나 자살을 하는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 한다.

누군가 휘두른 흉기에 살해 된 가즈코와 신이치 부부, 사촌 나오토의 자살, 할아버지 슈지의 의문의 피살 사건 모두 노란 색 나팔꽃과 긴밀하게 연결 되어 2030년에 가동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폐로 문제까지 이어진다.

인간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위험으로 사라져 버린 노란색 나팔꽃은 엄청난 방사능 피폭 위험을 안고 있는 원자력발전 문제로 연결된다.

에너지 비용의 절감과 편리함으로 곳곳에 세워 졌던 원자력발전소가 무시 무시한 방사능 물질을 안고 있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 마치 노란 나팔꽃 <몽환화>라는 것을 ....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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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3-17 0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는데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저 소타가 원자력발전소가 사라져도 뒤처리를 해야 한다고 한 것만 생각납니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고 그런 걸 생각하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썼군요


희선

scott 2022-03-19 23:31   좋아요 2 | URL
저도 읽고(원서) 잊어 버렸다가
새삼 이번에 한글로 읽어 보고
의외의 스토리를 발견!ㅎㅎ

게이고가 십년 동안 다듬어서 써낸 역작!

동일본 대지진이 게이고 작품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3-17 0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간은 아니고 개정판인가보네요. 전 처음들어 봤어요 ㅋ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요즘에 안봐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 몽환화 이름부터 몽환적이네요 ^^

scott 2022-03-19 23:32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은 한 번 읽기 시작 하시면 게이고 옹 작품 섭렵 하실 것 같습니다!ㅎㅎ

미미 2022-03-17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 /)
ฅ(• - •)ฅ
원전이 갈수록 줄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체르노빌도,후쿠시마도 분명하게 경고를 날려주었는데 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내는군요! 그의 에세이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scott 2022-03-19 23:39   좋아요 1 | URL
방사능 폐기물 처리도 문제이지만
원전이 모든 에너지 비용을 절감 시키기에 (석탄 가스 풍력 태양열보다 300배 이상)

그만큼의 댓가와 비용 환경 문제등등의 문제를 안고 있죠

게이고 옹은 소설공장 공장장 ㅋㅋㅋ

그레이스 2022-03-18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토리가 종횡무진이네요.
꽃에서 원전으로...
김초엽의 지구끝 온실이 생각나는 ...^^

scott 2022-03-19 23:39   좋아요 2 | URL
오!
김초엽 작가님도 어쩌면 게이공옹의 소설 공장 작품 속에서 아이디어를 ㅎㅎㅎ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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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 금요일 새벽 6시 28분 캉티뉴쓰 호텔 뒤 호숫가 산책로에서 총에 맞아 죽은 남자 시신이 발견 됐다는 신고가 긴급 신고 센터에 접수 되고 39분 뒤 인근 파출소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한다.


발견 된 시신의 등 왼쪽 심장 부위에 지름 0.5센티미터의 총알 구멍이 나 있고 손과 얼굴에도 경미한 찰과상이 있었다.

긴급하게 폴리스 라인을 치고 출입을 차단 한 후 오전 9시경 형사와 법 의학자들이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기초적인 감식을 하고 결과를 발표한다.

 피살자는  캉티뉴쓰 호텔의 사장 바이 웨이둬, 연회색 기능성 소재 운동복 티셔츠와 검은 색 트레이닝 팬츠 차림에 스포츠 양말은 신었지만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잔돈 25위안 외에 다른 소지품은 없었고 온몸이 물에 젖고 머리카락과 옷은 진흙 투성이였다.


'캉티뉴쓰 호텔은 5성급 호텔이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안락한 객실, 훌륭한 서비스, 고급 스파,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 호텔은 꿈의 결실이다. 타이완 중앙 산맥에 남은 마지막 미 개발지, 그 신비한 호수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60미터 절벽 꼭대기, 바로 그곳에 이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2015년 여행 잡지 <크라우디드 선>에 소개 된 캉티뉴쓰 호텔, 호수와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서있는 천국 같은 그곳에서 2016년 새해 첫 날 호텔 사장이 피격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 소식을 처음 접한 왕쥔잉 검사로 지방 검찰청에서 12직등급 정도의 서열 3위의 위치에 있지만 화려했던 지난날의 수사 이력과 달리 이제 세월에 맞춰 늙어가는 것만 남겨 두고 있다.

검사 왕쥔링은 2016년 새해 첫날 에 발생한 캉티뉴쓰 호텔 사장 피살 사건이 자신의 경쟁자인 타이중 시 중구 경찰계의 두목 '차이궈안'에게 넘어 갈 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차이궈안'은 경찰 고위 간부 부터 뒷 골목 조폭 똘마니들까지 탄탄하게 쌓아 둔 인맥으로 그의 직인이 찍힌 서류는 어디를 가도 무사 통과 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다.

검사 왕쥔링은 이 피살 사건을 진두 지휘 하며 경찰들을 병풍처럼 세워두고 수사 결과를 발표 해야 겠다고 결심하고 캉티뉴쓰 호텔로 향한다.

하지만 왕검사 보다 한발짝 앞서 사건 현장에 도착한 차이궈안은 거들먹거리며 차에서 내리려다가 휘청 거리는 왕검사를 부추겨 주며 서로 날카로운 기 싸움을 벌인다.

경찰 측에서 판단한 사인은 총상이였지만 법의학자들의 초기 부검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피살자의 호흡기에서 점액 분비물과 진흙이 대량으로 발견 되었는데 이는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물에 빠졌다는 증거로 총탄이 피살자의 등으로 들어와 좌측 폐를 관통한 뒤 갈비뼈 사이데 꽂혔지만 심장과 동맥은 손상 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법의학자들은 부검 결과 피살자가 총에 맞아 즉사 하지 않고 호수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산책로까지 기어 올라온 후에 과다 출혈 상태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망한 캉티뉴쓰 호텔의 사장 바이웨이둬는 쉰살 의 나이의 타이중 출신 사업가로 결혼은 했지만 자녀는 없었다.

서른 세 살의 나이에 웨이둬 건설을 설립하며 호텔, 실업 개발등의 여러 기업체를 운영했던 촉망 받는 기업가로 2009년 캉티뉴쓰 호텔이 완공 되자마자 그는 자신의 모든 사물실을 호텔 2층으로 이전 하고 자신도 호텔 옆 직원 기숙사로 이사 했다.

아침 8시 부터 밤 9시까지 왕성하게 일했던 바이웨이둬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던 인물은 아니였고 건축 관리법 위반이나 소소한 민사 분쟁 사기죄 고소 사건이 외에 어떤 전과기록도 없었다.

사건 수사가 오리무중으로 빠질 수록 경찰 쪽 간부 차이궈안과 검사 측 우두머리 왕쥔잉은 수사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언론의 관심을 한 껏 받으며 직접 수사를 진두 지휘하고 싶은 왕 검사는 또라이 기질을 가졌지만 비상한 두뇌를 가진 젠돤 대학의 푸얼타이 부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범죄 연구가 인간을 이해 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 하며 해결하기 힘든 각종 범죄수사를 돕고 있는 푸얼타이 부교수는 조류 연구 전문가로 그의 추리 실력은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캉티뉴쓰 호텔 건물의 'ㅅ'자 형태와 절벽이 만들어낸 삼각형 형태의 야외 테라스에 풀장과 노천 카페가 있는데 이곳의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심어 놓은 키 작은 나무와 스테인리스 난간을 넘으면 20층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다.

절벽 곳곳에 있는 바위와 나무들 사이 움푹 파인 곳의 새 둥지를 발견한 푸얼타이 부교수는 사람의 발자국과 나뭇잎에 묻은 화약의 흔적을 발견한다.

cctv영상에 찍힌 수상한 차림의 범인을 찾기 위해 호텔 전 직원들에게 탐문을 하자 '황아투'라는 이름의 인물을 지목한다.

호텔 정원 조경을 담당했던 인물 '황아투' 현재 행방이 묘연 한 상태로 그 사람 이름으로 등록된 엽총이 있었다.

경찰 기록에 의하면 '황아투'는 막 노동, 제철소, 식당, 농협, 호텔에서 일하면서 상해죄, 불법 감금죄, 기물 파손 죄로 처벌 받은 전과가 있었다.

10여년 전 이곳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바이웨이둬와 친분을 쌓아서 캉티뉴스 호텔을 건설하는데 주요 역할을 했던 인물이였다.

피살자 바이웨이둬는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주변의 원한을 산 인물이 아니였다. 그의 아내 란니는 42살로 중부 지역 부동산 재벌의 무남독녀로 흙수저 출신인 바이웨이둬와 결혼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란 씨 가문 사람들이 뉴질랜드로 이민 간 후 이 집안의 사업체를 바이웨이둬가 넘겨 받아 사업 영역을 확장 할 수 있었다.

남편이 피살 당하기 하루 전 란니는 아침 8시에 남편과 함께 사무실로 출근하고 연회장에서 열리는 약혼 파티를 축하해주었고 각자 일을 본 후 새해 전날 밤을 함께 보낼 친구를 데릴러 차를 몰고 나갔다.

송년 파티에 참석한 부부는 새해 카운트다운이 끝난 뒤 귀가 했다.

다음 날 새벽 5시 조깅 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 바이웨이둬를 아내 란니가 창가에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였다.

부부와 함께 송년 파티에 참석했던 여 비서 장커커는 사건 당일 아침 잠에서 일찍 깨서 호숫가 산책을 나갔다가 녹색 윈드 재킷을 입은 이상한 사람과 마주치고 산책로로 내려갔다가 시신을 발견 했다.

1999년 5월 10일 새벽 1시경에 발생 했던 코야오 연못 옆 가스 공장 가스 폭발 사고로 사망자 6명, 부상자 28명의 인명 피해와 함께 가옥 35채가 전소 되었던 '코야오서 가스 폭발 사고'를 찾아낸 경찰 측은 이 사건으로 캉티뉴쓰 호텔 개발 계획이 통과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연한 가스 누출 사고 였는지 고의적인 폭발이였는지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으로 사건은 덮어졌다.

차이궈안은 호텔 대연회장에서 수많은 취재 기자들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연다.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마침내 중요한 목격자를 찾아 냈습니다. 호텔의 한 경비원이 오늘 새벽 5시경 호텔 바깥쪽 경비 초소에서 황아투(차량번호 XY-3521)가 트럭을 몰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 했습니다.

경찰이 호텔 단지 내 숲에서 그 차량을 발견 했으며, 조사 결과 황아투(본명 황셴)가 차를 그곳에 버려두고 걸어서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야외 테라스로 나간 뒤 로프를 이용해 절벽면의 움푹 파인 곳으로 내려가 숨어 있다가 바이웨이둬가 산책로를 지나갈 때 총을 쏘아 살해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검찰은 황아투에 대한 수배령을 즉각 내리고 용의자 행방을 찾는데 혈안이 된다.

사건의 중요한 핵심 단서가 될 수 있는 일급 보호종 펠리칸 새, 코야오서 가스 폭발 사고, 행방이 묘연 한 호텔 조경 담당자 황아투, 그리고 여비서 장커커....

타이완 중앙 산맥에 자리 잡은 신비한 호수의 절경이 내려다 보이는 60미터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캉티뉴쓰 호텔'

호텔 사장 바이웨이둬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처음부터 계획된 살인이였을까?

명탐정으로 알려진 조류학 교수 푸얼타이, 전직 경찰 뤄밍싱, 변호사 거레이, 신비의 괴도 인텔 선생 모두 살해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던 것일까?


['1998년 화롄으로 출장을 가다가 산사태로 도로가 끊기는 바람에 산길을 돌아가던 중에 우연히 이 호수를 보았어요. 캉티호가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이라 제대로 된 도로도 없었죠. 힘들게 코야오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늦은 시간이었어요. 지치고 배고픈 몸을 이끌고 찾아왔다가 구야오원 목사님 때문에 기절할 뻔 했습니다. 목사님이 내게 활을 겨눈 채 성니콜라스 십자가를 찾아온게 아니냐고 묻더군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했더니 나를 교회로 데리고 가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구워 죽통밥과 함께 내어주시더군요. 좁쌀술과 국화차도 함께요. 우린 밤새도록 애기를 나눴습니다. 코야오서의 역사에 대해 듣고 코야오봉에 올라가 일출도 봤죠.

그 일을 계기로 캉티뉴쓰 호텔 건설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어요.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도 맛있고 좁쌀술도 향기롭고 호수 경치는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웠죠. 수많은 곳을 가봤지만 캉티호와 코야오서 만큼 타이완 고유의 더럽혀지지 않은 신성한 감동을 주는 곳은 없었어요.'

-살아 생전 호텔 사장 바이웨이둬가 검사 왕쥔링과 나눴던 대화 중에서 p.328-329

이들 네 사람의 서로 다른 내밀 한 사정들이 하나 둘 씩 드러나면서 호수와 절벽 사이 자연이 내지른 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천상의 섬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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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0 2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인줄 알았어요 ㅎㅎ 표지는 예쁜데 내용은 추리소설이군요 ~ 스콧님 관심사는 정말 넓은 듯 ㅎㅎ 대만추리소설은 처음 접하는 듯, 궁금합니다. 스콧님 편한 밤 보내세요 ~

scott 2022-03-10 22:05   좋아요 2 | URL
표지가 그랜드! 떠올리게 만들죠.
설정 분위기도 좀 비슷 합니다
타이완 표 밀실 추리 소설!
찬호께이가 인정한 작품이라고 해서 냉큼!!

미니님 편안한 밤 ! 굿! 밤 ^^

미미 2022-03-10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쌩뚱맞지만 무라카미 배지가 욕심나네요ㅎㅎ 스콧님의 별5개 작품은 저도 찜! 😆

scott 2022-03-11 11:53   좋아요 1 | URL
미미님 박사곰에게 달아주고 싶은 거죠!ㅎㅎㅎ
.   /\__.ヘ/ヽ
   /   (_(⌒厂ヽ
  |      ̄\ノ
∩∩ ミ ⌒ o ● ミ
( ⊂) 乀_____ノ

희선 2022-03-11 0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기 나온 사람 가운데 범인이 있겠지요 어떤 비밀이 있을지... 자연이 내지른 소리라는 말을 보니 그곳에 호텔을 지어서 자연이 안 좋아지고 누군가 피해를 입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면 좋을 텐데, 사람은 좋은 곳이 있으면 거기에 꼭 뭔가를 짓는군요


희선

scott 2022-03-11 11:55   좋아요 2 | URL
아닙니다
이거 마지막 반전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리뷰에서는 감춰 버렸습니다
사알짝 힌트만 ㅎㅎㅎㅎ

천혜의 자연 속에 자리한 호텔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요런 설정 하나 만으로 작가가 작품 한권 뚝딱!

밀실 살인 트릭 추리는 흥미진진한데
실제 발생하면 안됌요 ㅎㅎㅎ

psyche 2022-03-11 08: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재미있겠는데요!

scott 2022-03-11 11:55   좋아요 2 | URL
잼!ㅎ 납니다 ㅎㅎ
이제 일본판 추리 안봐여 ㅎㅎ
타이완 추리 SF가 대세!^^

새파랑 2022-03-11 08: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랜드부다페스트랑 히가시노 게이고가 떠올랐어요 ㅋ 간만에 추리소설이 땡기네요 ^^

scott 2022-03-11 11:56   좋아요 2 | URL
게이고 옹 요즘 필력이 하향세 ㅎㅎㅎ
 
폭격기의 달이 뜨면 - 1940 런던 공습, 전격하는 히틀러와 처칠의 도전
에릭 라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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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독일이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군대를 앞세우고 들어가 2년 만에 오스트리아의 주요 도시와 체코 수데텐란트를 차례 차례 점령해 나갈 때도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조차 '독일은 더 이상 다른 국가의 영토를 침범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히틀러의 발언을 굳게 믿고 있었다.


1938년 9월 30일,영국, 프랑스, 나치 독일, 이탈리아 4개국은 뮌헨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중 독일인의 인구가 많은 수데텐란트를 나치 독일에게 양도한다는 협정을 체결한다.


1939년 3월 히틀러는 체코 전역을 집어 삼켜 버리며 뮌헨 협정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1939년 5월 10일 금요일, 히틀러는 유럽 저지대 국가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을 상대로 전격전에 돌입한다.

독일 나치 정부에게 약간의 양보로 평화를 얻었다고 자부했던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영국 땅까지 나치 군이 진격 하지 않으리 라는 희망을 가졌다.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 총리가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집에 돌아가서셔 평안히 주무십시오.'

히틀러의 속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체임벌린을 향해 의원들 중 상당수가 타고난 달변가이자 웅변가인 정치계의 '포악한 코끼리' 처칠을 체임벌린 후임자로 뛰우기 시작한다.

긴급 소집된 의회에서 체임벌린 총리는 전쟁 준비에 대한 어떤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치과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의장실을 떠난다.

이제 남은 건 국왕의 새로운 총리 임명 결정 뿐이였다.

국왕은 체임벌린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안정적인 성품에 핼리팩스경을 추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체임벌린 총리는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낼 인물로 '윈스턴 처칠'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갑작스런 국왕의 호출을 받은 처칠은 국왕과 껄끄러운 사이였다.

1936년 처칠은 국왕의 형 에드워드 8세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왕실과 커다란 마찰을 빚었었다.

국왕은 체임벌린 총리의 국가 정책 마다 온갖 비판을 쏟아내는 처칠의 행보를 크게 불신하고 있었다.

'당신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여기 너무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어서 물러나세요! 이제 그만 끝내시라고요! 분명히 말하는데 사라지세요.'

젊은 의원들로 부터 '낡아 빠진 우산' 으로 불렸던 71세 총리 체임벌린은 직접 처칠을 찾아가 사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처칠은 국왕과 함께 한 자리에서 자신을 총리로 추천한 체임벌린의 사임을 만류 하며 태연하게 의리 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시간을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었던 의원들이 왕실로 몰려 가고 5월 10일 아침 독일 히틀러가 유럽 저지대를 점령 하는 순간 ,총리로 임명된 처칠은 '몹시 두렵지만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다 바치겠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지 안다고 생각하는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잡은 권력은 하나의 축복이다.'


처칠은 다우닝 10번지에 도착 하는 순간 부터 '영국은 반드시 승리 할 것이다.' 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독일 히틀러의 침공에 맞서려면 영국 국민들, 지휘관들, 각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국이 참전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없다는 것, 독일에 맞서고 버틴다 해도 히틀러의 막강한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의 병력이 영국으로 몰려 오는 걸 완전히 막을 수 있는건 오로지 미국의 산업 역량과 군비력 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1940년 5월 14일 독일 공군 루프트 바페 폭격기는 로테르담 상공 600미터 높이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과 동시에 독일 기갑부대는 벨기에와 프랑스 연합군을 무력화 시키며 영국 원정군을 포위 해버린다.

이날 오후 프랑스 총리는 처칠에게 전화해 약속한 RAF전투기 4대와 10개 편대를 오늘 내로 보내 달라며 사정 한다.

독일군이 유럽 저지대 지역을 차례 차례 진격 하는 순간 베를린 주둔 미국 특파원은 이미 독일 승전 선언을 반복하는 뉴스를 발송한다.

프랑스 국경 근처 아르덴 숲에 주둔 하고 있던 프랑스 군은 독일의 탱크와 장갑차 부대들이 거세게 몰려 오는 순간 이미 패했다며 도망가버린다.

영국 보다 규모가 큰 군부대와 프랑스 전역 마다 촘촘하게 설계된 전략 요새를 갖고 있었던 프랑스가 한 순간에 독일 나치군에 무너지자 처칠은 즉각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비밀 전보를 친다.


'독일은 곧 영국을 공격 할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 없이 혼자서 라도 독일과 전쟁을 계속 할 것입니다.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각하, 미국의 목소리와 힘을 너무 오랫동안 눌러두고 있으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 갈지 모른다는 것을 각하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놀라우리 만치 빠른 시간에 나치에게 완전히 예속된 유럽이 자리를 잡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중압감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정도 이상일 것입니다.'


처칠은 미국에게 감정적인 호소를 보냈지만 그가 미국에게 실질적으로 원했던 건 물적 지원으로 미국에서 가장 노후화 된 구축함 50척과 최신형 항공기 수백대 그리고 대공무기와 탄약을 보내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

미국이 군사적 지원을 해준다면 영국은 새로운 함정과 항공기를 제조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틀 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처칠에게 의회의 특별 승인 없이는 어떤 구축함도 항공기도 보낼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낸다.


3선 출마를 앞 둔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원들과 미 국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급해진 처칠은 프랑스 주요 지도자와 지휘관을 직접 만나 전시 상황을 파악하고 영국 공군기지와 주요 해군기지를 차례 차례 점검한 후 BBC라디오 방송국 마이크 앞에서 서서 대국민 연설을 한다.


'이번 전투로 프랑스의 기세가 꺾이고 나면 우리 섬을 노리는 전투가 코앞의 일로 닥칠 것입니다. 영국의 모든 것, 영국이 가진 모든 의미를 노리고 말입니다. 가장 우려했던 비상사태가 닥치는 순간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어떤 극단적인 조치도 사양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 국민으로 부터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울, 마지막 한 치의 노력까지 끌어 낼 것입니다.'

1934년 하원 연설에서 처칠은 영국은 독일 나치 세력에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몸집이 크고 살찐 표적으로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을 유인하기 위해 묶어 놓은 아주 값진 소'라고 말했다.

유럽 전역을 날아 다녔던 독일의 1만 4000대의 항공기는 히틀러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1940년 5월 24일 금요일, 히틀러는 신임 하는 어떤 장군의 조언에 따라 영국 원정 군의 뒤를 쫓는 기갑 사단에게 진격을 중지 하라고 명령한다.

히틀러와 주요 군 수뇌부들은 이미 서부 전선에서 2만 칠천 명이 넘는 병사가 사망하고 11만 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1만 팔 천 명의 군인들이 실종된 전력으로 지금 영국을 침공 하는 순간 독일은 치명적인 패배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5월 26일 처칠은 프랑스 해안에서 영국 원정군을 철수 시키라는 작전 개시(다이나모 작전)를 명령하지 히틀러는 즉각 기갑부대에게 영국 원정군을 향해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항구도시 덩케르크 해안에 집결한 영국 원정군은 독일군의 기세가 예상보다 더뎌졌고 해상의 악천후 까지 겹쳐 지면서 덩케르크 탈출 작전에 동원 된 선박 887척에 프랑스군 12만 5천명을 포함해 33만 8,226명이 무사히 탈출한다.(3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상공과 지상의 독일 협공을 뚫고 해협을 건넘)


6월 4일 철수 마지막 날 처칠은 하원 연설에서'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며,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싸울수록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며 공중에서 더욱 힘을 키울 것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외친다.


6월5일 수요일 독일은 항공기와 폭격기 몇 대와 수많은 전투기를 몰고 영국 본토 목표 지점을 밤새도록 공습 하며 영국 전역을 지독한 연기로 가득 채워버린다.


6월 12일 영국은 독일 항공기 접근을 사전에 정확하게 알려주는 레이더(체인 홈) 개발에 성공한다.

'체인 홈' 기지를 설치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몸집이 크고 살찐 표적으로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을 유인하기 위해 묶어 놓은 아주 값진 소' 처럼 독일 루프트 바페가 몰려 오기를 기다렸다.

처칠은 미국을 끌어들일 사건, 참전 명분이 터지기를 고대 했다.

6월 17일 월요일 독일 나치군에 프랑스가 완전히 함락되지만 처칠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반가워했다.

6월 18일 영국 항공기 생산부는 매주 245대 항공기를 출고 하며 엔진 생산량을 4배 6배로 급증시켜 나갔다.

6월 22일 토요일 오후 프랑스는 히틀러와 휴전 협정을 맺었다.

이제 영국 홀로 독일과 싸워야 했다.

6월 23일 조국 승리의 선봉장에 선 요제프 괴벨스는 프랑스 항복 선언을 공식화 하며 섬 하나 정복을 위해 신중하고 체계적이면서 민첩한 전력을 짜기 시작한다.



'처칠은 절대로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얼마 남지 않았다.'

7월 2일 화요일 베를린에서 히틀러는 육해공군 지휘관들에게 영국에 대한 전면 공격의 타당성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히틀러는 서부 전선의 마지막 장애물인 영국이 조만간 이 전쟁에서 발을 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꿈꿔 왔던 러시아 땅, 소련 침공에 전념 해야 했다.

노쇠한 영국은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니 전쟁 승리를 자신 하며 영국으로 향했던 전력 중 국방군 40개 사단을 해산 시켜버린다.

이 사실을 절대로 놓칠리가 없었던 처칠은 스웨덴 왕실과 바티칸 교황청에게 넌지시 독일과 협상 할 것 처럼 행동하며 포스 H함대를 프랑스 지중해 바다 오랑으로 진격 시켰다.


영국은 프랑스 함대들이 독일 나치군의 지휘를 받아 영국 해협을 향해 달려 오는 걸 막기 위해 프랑스 함대를 향해 포격을 날린다.

영국 함대 포격 10분 만에 프랑스 함대들은 바닷속으로 가라 앉았다.

영국은 동맹국 프랑스의 함대에게만 발포 한 것이 아니라 독일을 향해 경고 한것으로 앞으로 어떤 협정도 맺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영국은 항복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미국을 향한 영국의 승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 였고 독일에게는 확실한 전쟁 통고였다.

소련에 막대한 전력을 보내 버린 히틀러는 진정으로 영국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주기를 원했지만 노쇠하고 포악한 처칠이 그런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7월 14일 영국은 독일 폭격기가 몰려 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 했다.

이미 수주 전부터 구체적인 침공 위협에 대한 대비와 방위 대책을 세웠지만 이번 폭격은 1915년 1월 19일 밤에 기습적인 폭격을 맞았던 그 순간과 위력이 다를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방공호로 대피하는 연습을 하던 런던 시민들은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구상 어디에도 거리에서 폭격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폭격기는 언제나 제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피하는 명령을 절대로 흘려 듣지 마십시오 공격이 시작되면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굳건하게 살아 남아 버텨내야 합니다.'


런던 시민들은 공습 경보 소리에 맞춰 달의 위상을 유심히 관찰 하기 시작했다.

달빛에 의지해 목표물을 찾는 폭격기는 분명 밤에 공습 할 것이다.



런던 시민들은 7월 대낮 처럼 밝게 빛나는 달을 향해 '폭격기의 달(bomber's moon)'이라고 불렀다.

자신들의 함대를 무참하게 포격한 영국을 향해 독일과 연합해서 침공할지 프랑스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에 히틀러는 이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다.

괴벨스가 매일 매일 처칠과 영국 국민을 향해 조롱과 위협을 뒤섞은 연설을 했고 영국은 침착하게 침공에 대비 했다.

런던 곳곳은 모래 주머니를 잔뜩 쌓아서 기관총을 설치 했고 지하철의 모든 역마다 방공호가 설치 되었다.

침공을 대비해서 시민들은 매일 어떤 위험과 경고에 대비 할지 훈련했다.

독일 폭격기들이 수많은 전투기를 이끌고 영국 항공을 날아 다녔다.


영국 시민들은 매일 전쟁의 순간을 목격 했지만 대규모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날에는 일상적으로 출근했고 상점에 갔고 거리를 걸어 다녔다.

젊은이들은 밤마다 댄스 파티가 열리는 곳을 찾아 다녔고 농부들은 밭을 일구며 수확물을 거둬들였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비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8월 바다 사자 작전 계획 준비를 지시한다.

독일 군 수뇌부는 히틀러에게 몇개의 낡은 함대만 보유하고 있는 영국은 별다른 저항 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보고한다.

스페인 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루프트바페는 노후화 된 폭격기를 상대하기 위해 전투기를 호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신형 전투기를 보유했던 독일 전투기 부대는 영국 RAF조종사들이 몰고 있는 최신 허리케인과 스핏 파이어의 위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중무장과 기동성이 뛰어난 영국의 허리케인과 스핏파이어와 달리 독일의 메서 슈미트 Me109는 높은 고도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며 방어용 장갑이 튼튼했지만 8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영국의 스핏파이어와 달리 포탄을 발사하는 기관표가 2문 뿐이였다.

특히 독일의 메서 슈미트는 시속 500킬로미터까지만 속도를 낼 수 있는 단발엔진 항공기종이여서 런던까지 간신히 90분 정도만 떠있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영국의 항공기 종 역시 단발성 연료 탱크로 오로지 조종 능력이 뛰어난 조종사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의 평균 연령은 26세였고 영국 조종사들의 평균 연령은 20살이였다. 전투 경험이 많은 독일 전투기 부대는 영국 전투기를 종이장 처럼 찢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프랑스 해협 비행장에 모든 전투기를 집결 시켰다.

런던 중심부까지 150킬로를 남겨둔 독일군은 샴페인 한 병을 챙기며 승리를 자신했다.

영국 땅의 처칠은 50배 가까이 늘어난 전투기와 두 척의 신형 전함 비스마르크호와 티르피츠호에 큰 불안감을 느끼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간절한 심경과 상황을 담은 비밀 전보를 보낸다.

처칠은 미국에게는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지금 영국에게 가장 시급한 것들을 조목 조목 나열한다.

그는 전쟁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바꿀 중요한 순간을 바꾸려면 서부 진입로로 들어오는 독일의 U보트 공격을 막야 한다며 구축함 60척을 요구 했다.

미국은 영국령의 뉴펀들랜드와 버뮤다 지역의 여러섬에 퍼져 있는 영국 해군기지를 미군이 사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8월 11일 독일은 영국의 RAF에 대한 총력전의 시작을 알리는 독수리 날로 공표하고

8월13일 야간 작전 수행에 들어 갈 루프트바페는 새로운 시스템인 빔 항법 기술을 장착했지만 단 한번도 실전에 적용해보지 않아서 성공 여부를 짐작 할 수 없었다.

조종사들은 여전히 달빛이 지상을 환하게 비춰 주는 순간에 공격한다는 태세를 갖췄다.

8월 13일 화요일 200대의 폭격기가 프랑스 셰르부르 북쪽 채널에서 날라 올라 영국을 향했다.

독일군 측 괴링은 영국RAF공격이 시작되면 폭격기 949대 급강하 폭격기 336대 전투기 1002대까지 총 2300대의 공군력을 영국 땅으로 보낸다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이런 엄청난 전투력을 준비 하는데에 만 30여분을 소요 한 독일을 기다렸던 영국 조종사들은 꿀에 파리를 끌어들이듯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으로 독일 전투기들을 유인하며 느리게 천천히 활보 하다가 빠른 속도로 공중 속으로 튀어 올라가 벌침을 쏘듯 단 번에 독일 전투기들을 격추 시켜버렸다.

최신형 레이더를 능숙하게 작동 시키며 전투기를 조종했던 영국 조종사들은 독일 전투기를 격추시킬 때마다 단 한 명의 영국 국민의 생명을 살린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투에 임하며 500대 전투기들이 이 천대가 넘는 독일 전투기들과 맞붙었다.

때마침 미군 해군은 노후화 되어 폐기 처분 하기 일보 직전의 50척 전함을 영국으로 보내며 99년 동안 임대 해 준다는 조건을 단다.

3선을 앞 둔 루스벨트는 까다로운 의회의 승인 없이 우방국 영국에게 선심 쓰듯 50척을 준다는 것에 잔뜩 화가 난 처칠은 '미국이 전함 50척을 영국으로 넘긴 것은 결정적으로 중립조치를 위반한 행위'라며 이는 독일 정부가 미국에게 전쟁을 선포할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경고 한다.

영국 전투기에 격추 당하고 80대만 살아 돌아온 독일 전투기는 이제 도버 해협을 노리며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싸울 태세였다.

독일은 휘황찬란한 달, 보름에 뜨는 폭격기 달빛이 비춰준다면 영국 땅을 차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벨스는 영국 시민들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외국어 서비스 방송을 시작하고 히틀러는 여전히 런던 중심 폭격을 허락하지 않는다.

8월 24일 토요일 밤 영국 항공에서 길을 잃은 독일 폭격기 한 대가 런던 중심가에 폭탄을 떨어뜨린다.

피해는 경미 했고 인명피해도 거의 없었지만 도시 전체는 공포에 휩싸였다.

절대로 런던은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했던 히틀러는 조종사의 실수로 폭탄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몰랐고 괴링도 폭격기와 어떻게 런던까지 날아 갈 수 있었는지 어떤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

런던 공습에 격분한 처칠은 다음날 밤 폭격기 한 대를 독일 베를린으로 보낸다.

공습 피해는 경미 했고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 하지 않았다.

처칠은 독일군이 때로 몰려 오기를 기다리며 히틀러의 보복 공격에 대비 했다.

8월 31일 토요일 집단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나치군은 불같이 화내는 히틀러에게 목숨이 날아 가지 않으려면 처칠을 항복 시켜야 한다며 독일의 모든 전투기를 영국땅으로 몰고 가는 복수의 시나리오를 기획한다.

9월 2일 영국 해군 기지가 있는 뉴편들랜드와 버뮤다 기지에 도착한 미국 함대는 인디언들에게 24달러어치 물품과 술 한 병을 주고 맨해튼 섬을 받아 낸 것 처럼 낡은 구축함과 맞바꾼다.

영국 해군은 처참하게 낡고 해진 미국 구축함을 보고 망연자실 했지만 처칠은 이로 인해 미국은 영국과 독일 전쟁에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다고 확신한다.

공습의 선두에서 대형 화재를 일으키는 소이탄과 고폭탄을 혼합한 폭탄을 장착한 루프트 바페는 KGr100특수 기능을 장착하고 런던을 향했다.


9월 8일 루프트바페는 티타임에 왔다.

폭탄은 밤새도록 상공에서 비 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글거리는 불의 고리가 도시 곳곳으로 퍼져 붙어 활활 타올랐다.


이 날 밤 공습으로 400여명의 런던 시민들이 사망했고 1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잿더미에서 살아 남은 시민들은 잔해들을 치우고 부상자들을 실어 날랐고 처칠은 불에 타버린 런던을 둘러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흘 안에 영국을 굴복 시킬 수 있다고 장담 했던 괴링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전투를 끝내고 싶었다.

4주 동안 밤마다 영국 땅을 공격했지만 영국 국민들은 전혀 동요 하지 않았고 처칠은 꿈쩍 하지 않았다.

선전 장관 괴벨스는 영국의 이런 모습에 당혹하며 아무리 두둘겨 때리고 퍼부어도 영국이 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영국의 투쟁 의지에 길어지는 전쟁에 골머리를 앓았다.

독일은 영국의 침공에 대한 어떤 대비 태세도 갖추지 못했다. 베를린 시 방공호에는 다른 나라에서 밀수 한 식량으로 가득 차 있어서 시민들이 대피할 곳이 없었다.

처칠을 굴복 시키지 못한 히틀러는 기약 없이 U보트 작전을 내세운 바다 사자 작전을 봄으로 연기 했다.

히틀러는 영국이 버티게 되면 결국 미국이 전쟁에 개입 할 것이고 처칠은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을 공격 할 것이다. 영국과 소련 미국이 연합하는 순간 독일은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양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위험성에 히틀러는 해협을 건너야 하는 영국 침공보다 광활한 대지의 소련 땅을 침략하는게 훨씬 쉬워 보였다.

독일 나치가 딱 6주 공격을 계획한 레닌그라드 함락 작전은 처칠이 일기장에 '할렐루야! 만세'라는 문장을 적게 만든다.

독일이 거세게 런던 공격을 때리자 런던은 독일 전투기가 목표물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도시 전체를 어둠으로 만드는 등화 관제를 실시한다.


안전한 지역에 살지 않은 시민들은 방공호로 모였고 그곳에서 방독면 마스크를 비롯해 정부의 지침을 라디오에 의지하며 어제와 다름없이 일터로 출근 했다.

상점들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이어갔고 어두워지면 굉음의 독일 전투기가 어둠의 공포를 증폭 시켰다.

음악가들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콘서트를 열어 죽음의 공포를 시민들과 함께 견뎌 냈다.

폭격으로 파괴된 런던 시 곳곳은 어디 하나 무너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처참한 상황으로 바뀌어 갔다.

집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옆집에 폭탄이 떨어진 광경을 보는 게 런던 시민들의 일상이였다,


폭탄 세례는 더욱 거세졌지만 런던 시민들의 두려움은 점점 줄어 들어 공습 중에도 강아지와 함께 공원 산책을 나갔다. 낯선 이들과 만나면 서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 위로 했고 부족한 물품을 교환 했다.

대피소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온갖 종류의 잡지와 차들이 시민들의 도움과 협조로 서로 함께 읽고 마셨다.

야간 공습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 런던 영유아 출산율이 급증했고 클럽의 음악은 단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밤마다 런던을 두들겨 때려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처칠 때문에 괴벨스는 무척 당황했다.

영국이 투쟁 의지를 포기 하지 않았고 곧 혹독한 겨울이 다가 오면 소련으로 진출한 군대가 어떤 상황에 부딪칠지 모른다.

동시다발 전을 피하고 싶었던 히틀러에게 괴링은 영국의 강력한 저항을 부셔 버릴 작전인 '월광 소나타'를 계획한다.

작은 도시를 집중 파괴해서 아예 도시 자체를 없애는 목적인 '월광소나타'

처칠은 독일의 침공에 강력하게 저항하라며 프랑스 인들을 향해 용기와 투쟁의 의지를 호소하고 연합 작전으로 독일 도시를 폭격한다.

11월 4일 목요일 오후 5시 18분에 달이 뜨자 런던 도시 전체가 등화 관제에 들어간다.

독일군이 코번트리에 공격을 개시한다는 것을 영국 무선 대응팀이 비밀 암호를 해독한다.

이날 늦은 저녁에 떠오른 달빛은 신문을 읽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런던 시민들은 11월에 이토록 밝게 빛나는 달을 본 적이 없었다.

오후 7시 5분 지역 민방위 통제실에 런던 시민에게 '황색 공습 메시지' 사이렌을 울리고 뒤이어 '적색 공습 메시지'를 울린다.

전에도 여러 번 공격을 당한 적이 있었던 코번트리 시민들은 공습 대비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7시 20분 달빛처럼 하늘에서 환한 불꽃들이 낙하산에 매달린 채 땅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우가 내는 소리를 내고는 폭발하면서 발화 물질을 사방에 뿌렸다.

사탄 5발이 뿌린 포탄은 비처럼 쏟아져서 코번트리의 모든 수도관을 파괴했고 대피소 까지 강타 했다.

도시 전체는 불에 탄 시신으로 넘쳐 났고 발화 된 불은 병원과 성당, 교회 소방소 경찰서를 차례 차례 잿더미로 만들었다.

11시간 동안 비처럼 내린 폭탄은 다음날 새벽 6시 까지 쏟아졌다.

121회나 출격한 영국 RAF는 독일 전투기를 단 한 대도 추락 시키지 못했고 코벤트리를 구하지 못했다.

괴링은 509대의 폭격기로 코번트리를 초토화 시켰다.

11월 8일 처칠은 눈물로 얼룩진 전보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다.

루스벨트는 3선 재임 성공으로 미 해군 순양함을 타고 카리브해에서 일광욕과 영화 관람을 하며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처칠은 미국에게 막대한 양의 선박과 항공기 ,총탄, 기계 부품, 식량 원조가 필요 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영국은 막대한 원조를 보상할 재정은 빠르게 고갈 되어 가고 있어서 설사 미국이 원조대금을 후에 청구 한다 해도 갚을 돈이 없었다.

12월 16일 카리브해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온 루스벨트는 '요근래 특별한 뉴스 거리가 없다.'는 말로 기자들과 간담회를 나누며 불이 난 이웃집에 정원용 호스를 빌려주듯 불이 난 집에 15달러짜리 호수를 빌려주고 불을 다 끄고 난 후 빌려준 호스만 제자리에 갖다 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루스벨트는 ' 미국의 방위 및 기타 목적을 증진하기 위한 추가 법안'을 상정해서 영국이든 어떤 동맹국이든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고 없고 여부 없이 필요할 경우 모든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일명 '무기대여법'이라는 법안을 제안한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미국 청년들을 땅에 묻어 버려야 하냐는 의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고 처칠은 크리스마스 때까지 미국으로 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다.

12월 29일 일요일 밤 루스벨트는 '노변 담화(fireside chat)에서 영국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미국 국민에게 처음으로 '나치'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그는 미국을 '민주주의 병기창'이라고 지칭하며 '잔인한 상대에겐 어떤 유화 정책도 소용 없습니다. 만약 영국이 패배한다면 우리는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사악한 동맹의 총부리 끝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수 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날 방송을 들었고 동시에 영국인들도 새벽 시간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목소리를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1940년 12월 31일 자정을 기준으로 괴링은 단 한번의 화재 공습으로 런던을 날려 버리겠다고 전투력을 보강한다.

1941년 2월 6일 목요일 히틀러는 러시아 침공계획인 바르바로사 작전이 착착 진행될수록 영국의 끈질긴 저항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공군과 해군에 새로운 작전 지시를 발령해서 영국에 보다 더 높은 강도의 공격을 개시하라고 명령한다.

2월 8일 토요일 미국 하원에서 무기 대여법이 통과 되었다.


'히틀러는 프랑스가 항복 했으니 당연히 우리도 항복할 줄 알았겠지만 우리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가스 공격, 낙하산 공격, 글라이더 공격에 항상 대비하고 미리 생각 하고 기량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히틀러가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대영제국을 무너뜨려야 할 것입니다. 계속 항해하라, 오, 조국의 배여.'


영국 국민이 처칠의 연설을 듣고 있을 때 괴벨스도 듣고 있었다.

아프리카 전선에 이어서 그리스와 발칸 반도에서 영국군은 독일군 세력에 밀렸고 바다와 하늘에서는 U보트와 루프트바페의 위력에 영국 곳곳이 흔적 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괴벨스는 우리가 원했던 적의 모습을 이제서야 볼 수 있다며 활기 넘치게 선전술을 펼쳐나갔다.

4월 28일 월요일 미의회는 전쟁 개입 여부를 놓고 여전히 격론 중이였다. 독일은 몇 주만 집중 공격 하면 영국은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소련으로 전력을 집결 시킨다.

하지만 승기를 잡은 독일은 머뭇거리며 영국과의 평화 협정을 위해 서부 전선에서 군대 진격을 멈춰 놓고 전력의 25%에 해당하는 국방군 40개 사단도 해산하자 군 내부는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분열되기 시작한다.

1941년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 둔 12월 어느 일요일 저녁, 얼어붙은 소련 땅에 발이 묶여 버린 독일 기갑부대가 멈춰버린 순간 일본 항공기가 하와이 섬에 있는 미군 해군 기지인 진주만을 급습한다.


다음날 루스벨트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뒤이어 12월 11일 히틀러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 한다.

처칠은 이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거센 폭풍을 만날 수도 있지만 뒤집히거나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일군은 500여 대의 폭격기와 62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최대 규모의 폭격에 나섰다. 영국 공군은 단 한 대의 예비 기체도 남기지 않고 모든 전투기를 출격 시켜 맞섰다. 체공 시간이 짧은 독일 전투기들은 고전했다.

밤낮으로 계속된 전투에서 영국군은 29대의 전투기를 잃었고, 독일군은 80대가 넘는 폭격기와 전투기를 잃었다. 귀환 도중 연료가 바닥난 수십 대의 독일 전투기들이 도버 해협에 떨어지고 독일군의 기세는 꺾였다.

이제 독일이 공군력으로 영국을 굴복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제공권을 장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륙작전은 불가능했다. 피해가 누적되자 독일군은 야간 폭격으로 전환했다. 이듬해 초까지 독일군의 폭격이 이어졌으나 효과는 점차 떨어졌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독일 공군은 동부 전선으로 이동했다.


영국은 끝내 살아남았다.

영국이 본토 항공 전에서 승리하자 독일에 점령 된 국가들은 승리의 희망을 얻었다.

미국 정부도 영국에 지원을 늘리기 시작했다. 폭격에 시달리던 영국 항구들은 훗날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발진 기지가 됐다.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고, 방독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방독면에 미키 마우스를 그렸다. 부서진 건물 잔해를 치우며 사람들은 쾌활하게 농담을 내뱉었다.

처칠 총리는 한밤중에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독려했다.


부서진 도서관에서 시민들은 서가에 꽂힌 책을 읽었다. 날마다 누군가 죽어가는 생활 속에서도 사람들은 연애하고, 산책하며 활기를 이어갔고 지하 대피소 에서는 즉흥적인 공연이 벌어졌다.


영국 국민들은 휘황찬란한 보름달‘폭격기의 달(bomber’s moon)’이 뜰 때마다 “오늘 밤에 (전투기가) 더 많이 몰려오겠지”라며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아 남았고 이겨냈다.

자신을 간신히 비껴 간 폭탄을 보며 매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극한의 상황을 버텨낸 이들은 ' 침착하라. 하던 일을 계속하라(Keep calm and carry on)’' 라는 구호를 외치며 끊이지 않는 공습 사이렌 소리와 포성 속에서 견뎠고 살아 남았다.


'그날 밤은 구름 한 점 없고 별이 총총 했으며 달은 웨스트민스터 상공에 떠 있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정경도 없을 것이다. 지평선의 어딘가에서 엇갈리는 서치라이트 불빛, 포탄이 터지는 하늘에는 별 같은 섬광, 먼 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광채 등, 여러가지가 그 정경에 더해졌다. 웅장하면서도 끔찍했다. 머리 위로는 적기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고, 포성이 멀리 때로는 가까이 들렸다. 평화로운 때 전동열차가 신호하는 조명처럼 대포가 발사될 때마다 빛이 번쩍였다. 하늘에서는 수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진짜 별도 있고 인위적인 별도 있었다. 자연의 찬란함과 인간의 사악함이 이렇게 두드러진 대조를 보인 적은 없었다.'- 처칠 개인비서 '존 콜빌' 일지 중에서

처칠은 영국과 프랑스군 약 34만명을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철수 시키는 데 성공한 후 항공기 생산부를 신설하고, 전투기 생산과 승무원 훈련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임박한 본토 공격에 대비하며 미국이 참전 하기 전까지 버텼다.

암울한 세계 권력 구도 속에 영국이 처한 냉혹한 상황을 영국의 어떤 지도자들 보다 잘 알고 있었던 현실주의자 처칠은 국민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다짐하며 독일에게 굴복 하지 않았다.


1940년 9월 7일 런던 중심부에 대규모 첫 공습 이후 1941년 5월 11일 영국 대 공습이 끝날 때까지 영국 전역에선 4만 465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5만2370명이 부상 당했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소련 침공 전까지 집중적으로 이어진 영국 대 공습은 영국 전 국토와 국민의 심신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45년 5월 8일 전쟁 속에서 살아 남은 영국 국민들은 두 달 후 치루어진 선거에서 처칠을 총리로 선택하지 않는다.


'적의 도발에 평화를 애걸하면 비극을 초래한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찬란한 이들과 사악한 자들(The Splendid and the Vile)’로 처칠이 총리로 취임한 1940년 5월 부터 1941년 5월까지 1년 동안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 지도자의 관점과 전략에 따라 전세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처칠 주변의 인물들과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추적하며 생과 사의 순간을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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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2022-03-01 11: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글 읽으니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장바구니에 쏙~ ㅎㅎ

scott 2022-03-01 11:59   좋아요 5 | URL
이 책 몰입감 👍👍👍

전 지유님이 읽으신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장바구니 속으로~@@@

휴일 평안하게 ^ㅅ^

새파랑 2022-03-01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방금 <서부 전선 이상없다> 책을 읽었는데 또 스콧님의 이런 전쟁 관련 리뷰를 보니 전쟁은 정말 비극인거 같아요 ㅜㅜ 특히 그 피해는 정치지도자가 아닌 군인들과 시민들만 받고..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ㅜㅜ

scott 2022-03-01 12:11   좋아요 6 | URL
레마르크
사랑할때 죽을 때,,,
강추 합니다 ^^

전쟁에 가장 큰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들
그리고 어린이들 ㅠ.ㅠ

대장정 2022-03-01 12: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전쟁관련 책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히틀러의 선동적인 저 얼굴보다 무표정한 푸틴의 얼굴이 더 무섭.

scott 2022-03-01 12:55   좋아요 5 | URL
칠순 푸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미미 2022-03-01 13: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에서 2차세계대전 다큐로(몇 부작짜리)본 내용들인데 하나의 페이지로 정리하신 스콧님 존경합니다!! 페이지 찜해두고 몇 번 더 읽어야겠어요👍 이당시 물밑에서 암호전쟁도 이루어지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 치열하게 느껴집니다.

scott 2022-03-01 13:32   좋아요 4 | URL
정리한것이 아닌
이 책 넘 ㅎ
좋아서 몇 달동안
베개 옆에 🙈
암호 전쟁 해독한 영화
강추 합니다

미미 2022-03-01 13:41   좋아요 4 | URL
혹시 <이미테이션 게임>인가요? 이 영화는 봤는데 다른거면 제목을 알려주세요😁

scott 2022-03-01 13:44   좋아요 4 | URL
네^^
베니가 남주🤗

페넬로페 2022-03-01 13: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의 글을 읽으며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 당시의 긴박했던 스토리가 한 눈에 들어오네요. 아무튼 히틀러, 참 ㅠㅠ
결국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도자도 중요하고 힘도 있어야한다는 것이네요^^

scott 2022-03-01 15:25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푸틴 히틀러 스탈린
이들의 광기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 ㅠ.ㅠ

우크라이나 피투성이 된 아이들 ㅠ.ㅠ

이번 기회에 푸틴 완전히 사라졌으면,,,

coolcat329 2022-03-01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 어제 이 책 살까말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사라는 계시같습니다.

scott 2022-03-01 16:34   좋아요 2 | URL
이 책 매력 여기에 전부 담지 못했습니다😆
쿨켓님 휴일 평안하게 ☺

거리의화가 2022-03-01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 소개 감사합니다. 작년 말에 눈여겨보았던 책인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사진까지 함께 올려주셔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영국 땅을 보니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오버랩이 됩니다.

scott 2022-03-01 17:55   좋아요 3 | URL
소개한것이 아닌
저의 땀과 눈물로 쓴,,,,

우크라이나 국민 극심한 공포 죽음 앞에 놓여 있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ㅠ.ㅠ

화가님 3월에도 알찬 독서!^^

mini74 2022-03-01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임벌린 동네 이장이나 할 인물이라고 악평이 엄청나더군요. ㅠㅠ팃포텟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는거 같아요. 스콧님이 소개하시면 무조건 사고싶어집니다. 정성어린 리뷰에 참 고맙습니다 스콧님 ~~

scott 2022-03-01 22:07   좋아요 2 | URL
동네 이장!ㅎㅎㅎ
이장이 훠얼씬 냉정한 현실주의자!로 동네 주민의 생명과 안전에 만반의 준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체임벌린,,,,
영화 처칠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 했는데
진인짜 저 사진 속 인물과 똑같이!
연기를 ㅎㅎ

이 책 강추! 합니다
소설도 이보다 더 재밌을 수가 없능!

팃포텐 전략!
전 미니님 소총 리뷰 읽으러
슈우!웅~@@@

그레이스 2022-03-01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으
이 길이 뭡니까!
저는 우크라이나 정리하다가 현대사로 오면서 지쳐서 줄였는데...
참 감탄하게 됩니다. ^^

scott 2022-03-01 23:17   좋아요 2 | URL
지도, 사진, 년도 필수 체크!ㅎㅎㅎ
현대사로 넘어가면
더더욱 길이 조절이 힘드러집니다

담주엔
조금 더 기일게 ^^
 
진범인
쇼다 간 지음, 홍미화 옮김 / 청미래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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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20일 <스루가 일보> 제 14판 사회면


유괴된 5세 남아 시신 발견


어제 스즈오카 현 경찰청은 도쿄 도내의 다마 강에서 미시마 시에 사는 오바타 마모루(5)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피해자는 7월 27일에 집 근처에서 행방 불명 되었고, 그 후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이웃집으로 걸려왔다. 

시즈오카 경찰서는 즉시 각 언론사에 보도협정을 요청함과 동시에 금품을 노린 유괴 사건으로 보고 비공개 수사를 진행해왔다. 또한 각 언론사는 보도협정에 따라 보도를 자제해왔다. 그러나 시신이 발견됨에 따라 시즈오카 현 경찰 본부는 이 사건을 유괴 살인 사건으로 분류하고 공개 수사로 전환했다.

 

-2015년 8월 2일 오후 9시 5분 전.


'여기는 통신사령계. 스소노서 관내 스소노 시 미슈쿠 648번지/로부터의 통보를 전한다. 근처 도메이 고속도로 상행선 옆 수풀 부근, 고령의 남성 발견, 복부 출혈, 각 이동 중인 대원들은 급히 현장으로 출동 바란다.'


구사카 사토루 경위가 스소노 경찰서의 통신 지령과로부터 무선 연락을 받자마자 잠복용 경찰차를 타고 급히 현장으로 출동한다.

사건 현장인 고속도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계단 난간 건너편 경사면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사체는 이미 한 시간 전에 사망했다. 이 남자는 어떻게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것 일까? 

산책을 나왔던 인근 주민일까? 

사체를 가정 먼저 발견한 사람의 집은 이 남자가 쓰러져 있던 곳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개와 산책 중 고함 소리를 듣고 달려 간 곳에 이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고 경찰 측에 밝힌다. 

뒤이어 현장에서 이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수상한 차량 한 대를 발견하고 손전등을 비춰 자동차 내부에 붙어 있는 등록증을 들여다 보니  이름 '스도 이사오' 주소는 도쿄 시 세타가야 구 산겐 자야 1번지.

사체 검안 결과 남자는 살해 당했고 사망 원인은 복부의 상처로 인한 과다 출혈, 사망 일시와 추정 시각은 8월 11일 오후 7시 부터 오후 8시 사이 


예리한 칼 같은 흉기로 인한 상처라는 소견서가 나온다. 

'스도 이사오' 그는 누구이며, 누가 그를 살해 했을까?

중고차 판매점을 경영했던 스도 이사오,오래전 어린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주변 탐문 수사 끝에 드러난다.
1974년 7월 27일 피해자는 오바타 마모루 나이는 다섯 살 
가족으로 모친 오바타 사에코 7살 누나 리에
아이가 유괴 되기 전 오바타 사에코는 남편 스도 이사오와 이혼하고 사건 전날 부터 당일 까지 시내 월세 집으로 막 이사를 왔다.
오바타 사에코가 이웃집에 인사를 다니며 이삿짐을 정리 하는 동안 다섯 살 오바타 마모루는 혼자서 집을 나가 누군가에게 유괴를 당했다고 사건 기록에 적혀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한 중년의 남자가 오바타 사에코 주인 집으로 전화를 걸어 사에코에게  자신이 남자 아이를 납치 했으니 일 천만 엔 현금을 준비 해 두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 후 범인으로 부터 한통의 전화와 두 통의 편지로 연락이 왔고 그때 마다 몸값을 받으러 올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들은 항시 대기 중 이였다. 
하지만 세 번 모두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 후 연락 조차 없다가 사건 발생 23일 이 지난 후 다섯 살 마모루의 시신이 다마 강의 물 속에서 발견 되었다. 아이는 옷을 입은 체  맨발이였다.
이 사건을 담당 했던 미시마 경찰서에서는 이미 사건의 시효가 끝나기 1년 전 1988년에 특별 수사반이 편성 되어 다시 수사에 착수 한다.

'시게토 세이치로'

1988년 7월 28일  미궁에 빠져버린 유괴 사건을  재 수사 하며 아이를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고 있다.
구사카 사토루 경위는 시게토 세이치로 특별 수사 반장을 찾아 나서고 유괴 사건의 진범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41년 전의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건을 파헤치고 범인의 흔적을 추적할 수록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1975년 세 명의 중학생이 다마 강변에서 낚시대를 들고 강 유원 지역 앞에 모인다. 
2시간 정도 낚시를 하다가 지루함에 강물에 돌을 던지는 놀이를 하고 수면에 수건 같은 헝겊에 싸인 물체를 발견하게 된다.
수건의 일부가 스르륵 풀리면서 부패한 발가락이 드러났다. 
다음날 아침 시신은 미시마 시에서 유괴된 오바타 마모루
아이를 유괴한 범인의 단서는 전화기에 녹음 된 목소리와  두통의 편지, 편지의 문장은 신문 활자를 오려 짜 맞춰 붙였다.
범인이  아이의 어머니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나는 경찰에게 잡힐 멍청이가 아니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기를 그렇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8월 3일 오후 8시에 도메이 고속도로 상행선 , 나카자토 버스 정류장 안내판에서 동쪽으로 20미터 떨어진 곳의 가드레일 안쪽에 일천만 엔이 든 가방을 둘 것]

전날 밤 특수반이 투입 되고 총 100명의 수사원들이 은밀한 곳으로 흩어져서 범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범인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의 사체가 발견 된 직후 어머니 오바타 사에코의 이해 할 수 없는 행동과 말, 그녀의 과거를 둘러싼 친지들과 주변 이웃들의 증언을 추적하면서 동생이 유괴 되었을 당시 7살이였던 누나 리에를 찾아 간다. 당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누나 리에
그녀의 가족들을 조사 하면서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은 아동 학대로 인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을 찾아낸다.
한편, 진범으로 추정되는 인물 아동 성애자이자 전과자인  요네야마 가쓰미의 행적을 뒤쫒는다.

2015년 8월 14일

스소노 경찰서

'스도 이사오의 살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빨간 플라스틱 조각은 그가 경영하는 중고차 판매점의 선반에 여러 해 동안 놓아져 있던 빨간 플라스틱 양동이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빨간 양동이는 사십 여년 전 유괴되어 살해 당한 아이의 사건과도 관련이 있을까?
스소노 경찰서 강당에 설치된 수사 본부의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 너머 수사 경찰 구사카는 유괴된 아이의 누나 리에로 부터 결정적인 증언을 받아 냈다는 사실을 알린다.
 유괴범으로 추정되는 범인의 전화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 '스도 이사오', 그렇다면 '스도 이사오'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 인가?
리에의 전화를 받기 3일전 수사관들은 어머니 오바타 사에코가 구급차에 실려 종합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십여년 전 유괴범이 보낸 두번째 편지

[나는 경찰에게 잡힐 멍청이가 아니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기를. 그렇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 8월 3일 오후 8시에 도메이 고속도로 상행선, 나카자토 버스 정류장 안내판에서 동쪽으로 20미터 떨어진 곳의 가드레일 안쪽에 일천만 엔이 든 가방을 둘 것]
 
-리에의 몸에 남아 있던 학대의 흔적
-사에코의 극심한 히스테리
-스도 이사오가 바람을 피운 현장.
 
41년 전 누군가에게 유괴 되어 살해 당한 오바타 마모루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버렸다,
수사 자료에 남아 있는 오바타 사에코, 아들 마모루가 던진 고무공이 신발장 위의 꽃병에 맞아 깨지고 이에 화가 치밀어 오른 사에코는 아들의 빰을 거세게 때린다.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의 나이를 세면서 슬픔과 분노의 세월을 살았던 아버지 '스도 이사오'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동생의 얼굴이 생각 나지 않습니다. 그 애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했는지...'
 
다쓰가와 경위는 처음 부터 이 사건의 '진범'이 누구 인지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이 사건의 시효를 이대로 넘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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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2 16:3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의 리뷰를 이렇게 쓰면 막막 읽고 싶어지잖아요. 출판사에서 책 읽어야 궁금증이 해결되라고 뽐뿌질 막 하면서 쓴 소개글 같아요. ^^
그래서 진범인이 누구라고요?

scott 2021-08-02 21:12   좋아요 6 | URL
번역이 훌륭해서! 번역자 이름을 꼭 기억해 둘려고요 ㅎㅎ
2018년에 와우와우에서 형사물 일드로 방영 했었는데
원작도 재미,,
올드한 수사물이지만 사건 추리 해나가는 과정, 범인 추적하는 과정속에 수사관들의 고민, 비애까지,,,
오랫만에 잼 ㅎ 나게 읽었습니다

전, 바람돌이님 서재방에서 뽐!뿌 옴!

미미 2021-08-02 17: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스콧님도 추리소설 은근 좋아하시는 듯~♡ 지난번 ‘명상 살인‘도 재밌어보였는데 말이죠!🤔 여름 더울때 추리,미스터리,공포가 딱ㅎㅎ

scott 2021-08-02 21:13   좋아요 5 | URL
추리 소설 읽고 싶어서 한글 깨우친 1인! ㅎㅎㅎ

추리-미스터리-공포
추운 겨울날 뒹굴뒹굴 하면서 읽어도 잼 ㅎ 나여 ^ㅎ^

mini74 2021-08-02 17: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전 csi 류의 추리소설 좋아하는데. 이 책도 뭔가 흥미진진. 이것이 바로 리뷰 쓰는 이의 힘인가요.*^^*

미미 2021-08-02 17:14   좋아요 6 | URL
저도 csi에서 시작. 크리미널마인드,성범죄수사대로 이어오고 있어요ㅎㅎ

scott 2021-08-02 21:15   좋아요 5 | URL
오 ! 저도 ! 법의학 장르물 좋아 합니다 ‘CSI‘ 장르의 최고봉! 퍼트리샤 콘웰 작품도 전부 섭렵!!!

‘진범인‘은 올드한 수사물인데 사건 전개 구성이 독특합니다 ^ㅅ^

scott 2021-08-02 21:19   좋아요 5 | URL
호반장 CSI 마이애미!!୧(⑅˃ᗜ˂⑅)୨

미미 2021-08-02 21:23   좋아요 4 | URL
ㅎㅎㅎ☆( ˆoˆ )/​☆

scott 2021-08-04 16:43   좋아요 3 | URL
*•.❥*.꒰๓´͈ ˘ `͈๓꒱.*

2021-08-02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2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1-08-02 19:5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진범인이 말그대로 진짜 범인이라는 뜻인가요? 추리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되잖아요~~
여름에 한 권쯤 읽어야하는데 책이 밀려있어요 ㅠㅠ

scott 2021-08-02 21:21   좋아요 6 | URL
네! 진짜 범인 ㅎㅎ

이 작품 일드로도 제작 되었는데,
여름엔 추리 영상물이라도!

페넬로페님 읽으실 책 밀려 있고,

전 8월에 책 구매 안할 ㅋㅋ

그레이스 2021-08-02 20:2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읽기 좋겠어요

scott 2021-08-03 01:26   좋아요 3 | URL
(๑ ‘ ◡ ‘ )

붕붕툐툐 2021-08-02 23: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콧님이 추리물 좋아하신다고 하니 처음으로 같은 세계 사람인 거 같았는데, 추리 소설 읽으시려고 한글을 깨쳤다는 건.. 다시 이질감이..ㅋㅋㅋㅋㅋㅋㅋ
스콧님이 칭찬하시는 번역이라면 믿고 읽어도 될 거 같아요~👍👍

scott 2021-08-03 01:27   좋아요 2 | URL
( ⸝⸝•ᴗ•⸝⸝ )੭⁾⁾

서니데이 2021-08-03 00: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쇼다 간은 처음 보는 작가네요. 여름에 읽기에 좋은 서늘한 내용 같습니다.^^

scott 2021-08-03 01:28   좋아요 4 | URL
๑ᴖ◡ᴖ๑

라로 2021-08-03 00: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재밌겠어요!!! 찜

scott 2021-08-03 01:28   좋아요 3 | URL
💓´・ᴗ・💓
 
해양 세력 연대기 - 현대 세계를 형성한 바다의 사람들
앤드루 램버트 지음, 박홍경 옮김 / 까치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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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인간이 바다에 지배력을 행사한 이래 세 왕좌가 모래 위에 세워졌으니 바로 티레, 베네치아, 잉글랜드의 왕좌이다. 
그 중 첫 번째 강대국은 오직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두 번째는 파멸에 이르렀다. 
위대함을 물려받은 세 번째 왕좌는 선례를 망각할 경우에만 그나마 덜 유감스러운 파멸을 맞았다는 자랑스러운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1851년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J.M.W터너의 그림 속 왕국을 찾아 베네치아까지 찾아 갔다. 


그는 베네치아의 대 운하를 바라보며 지난 날의 해상 무역의 흔적을 추적하며  베네치아의 해상 세력이  건설한 건축물에 새겨진 과거를 통해 문명의 여명기 부터 인류 전체를 사로 잡았던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파도가 빠르게 다가 올 때 마다  마치 베네치아의 돌을 향해서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듯 신뢰할 만한 역사 연구에서 도출된 경고음이 울리는 듯 했다.'


베네치아의 해양 세력이 건축 한 고딕 건물들은 로마, 비잔틴, 아라비아, 이탈리아 본토의 팔라디오풍의 바로크 양식이 응축 되어 있다. 

바다 위를 떠다니며 여러 문명과의 교류 속에서 베네치아 공국은 포괄적이면서 개방 적인 정치를 추구 했다.

철저하게 상업주의 정신으로 정복자와 피 정복자 사이에 주고 받는 공정한 무역관계를 통해  계급 보다 상업적 이익을 중시 했다.


1851년 존 러스킨은 베네치아에 머물 면서 '베네치아의 돌'이라는 문화 비평서를 저술한다. 


그가 원고를 완성하고 고국 영국 땅으로 돌아가자 영국은 대영 만국 박람회 준비로 사회전체가 들썩 거리고 있었다. 

반면, 빅토리아 왕조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해양 국가들은 인구에 비해 토지가 부족하고 대규모 육군이 없다. 

포괄적인 정치 체제 속에 절대 군주제에 도전하는 피 지배 층의 진보적인 정치 세력들이 활발하게 작동하며 전체 인적 자원과 재정 자원을 바다 건너 육지 세력인 경쟁 국으로 부터 얻어 냈다. 

일차적으로 해군 세력을 유지 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금 줄이 되어주는 해상 무역로를 확보 해야 했다. 

대륙 강국들이 한 사람의 지도자, 하나의 국가, 하나의 문화, 하나의 중앙 집권화 된 국가 였지만 해양 국가들은 포용적인 정치를 통해 육지의 법과 문화를 끌어와 융합적인 법치 국가를 지향 했다.


[인간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살기 때문에, 매우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전쟁에서 국가 간의 주요 문제는 육군이 적의 영토와 국민의 생활에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혹은 육군이 함대를 통해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하는 두려움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육지 세력 국가들이 사회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시선을 바다에 두지 않고 있던 시기에 해양 국가들은 본격적으로 해상 무역을 통해 정치 사회 법과 제도에 유연성을 중시 했다.

 육지에 얽매이지 않은 정신은 곧 해상 통신 체제를 구축하며 해양 권력의 새로운 세력 판을 재편하기 시작한다.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의 탐색과 탐험을 통해 얻어낸 경제적 이익과 착취물을 육지 국가에게 되팔아서 남는 차익들은  안전한 해상 무역의 항로를 확보하는데 쓰였다. 

해상 운송이 육상 운송 보다 훨씬 더 간편하고 비용이 덜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육지 국가들은 해양 세력을 '민족의 적' '문화의 적'으로 대항했다.

해양 세력이라는 정체성과 전략의 현대적 개념이 정립된 시기는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 이후 부터 다,


아테네는 해양 국가가 되기로 선택한 최초의 국가 였다.   

아테네 이전의 해양 세력은 섬이나 소도시, 또는 대륙의 강대국이 형성한 세계에서 움직이는 주변부 소규모 집단이 였다.

민주주의 사회 국가 였던 아테네가 은을 확보 하고 난 후 전함을 구축했다.

전함은 아테네의 독립을 지켜주었고 사회 문화에 눈부신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 

아테네인들은 해양 제국이 가져다 준 영광과 번영 속에 정치 제제는 독재로 변형 되었다. 은화가 가져다 준 전함은 곧 페르시아의 금을 사들이면서 아테나가 누렸던 번영은 쇠락의 길로 접어 든다. 


기원전 9세기 중반 아시리아의 통치자 샬마네세르 3세가 정복한 이후 티레인들에 의해서 계획적으로 건설된 국가 '카르타고' 


해상 무역을 중심으로 번영의 길을 걷기 시작한 카르타고는 역설적으로 각 국가들의 무역로와 자원의 통제에 대한 갈등과 다툼 그리고 육지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한 그리스와 로마 경쟁자들과 의 충돌 속에서 번영 하기 시작했다. 

카르타고의 권력자들은 바다를 매개로 이웃 국가들 사이에서 전략적 경제적 이득을 추구 했다. 

경작 할 수 없는 토양을 정복하는데 국력을 소비 하지 않고 바다라는 제한된 이동 경로에서 식량 이동 수급 경제권을 통해 이권을 챙겼다.

카르타고가 유티카를 연결 하고 나서 아프리카는 시칠리아 해협을 이용해서 무역 경로를 확보해 나갔다.  카르타고는 지정학 적으로 화살촉 모양의 반도에 위치해서 육상에서 손쉽게 외부 세력을 방어 할 수 있었다. 

전략적 요새 지역에 거대한 항구 도시가 건설 되었고 성전과 의회를 갖춘 국가가 탄생 한다. 

기원전 550년 까지 카르타고는 독립 국가로 거대한 함대를 소유하고 이베리아로 가는 항로를 지배 하며 아프리카의 강대국으로 거듭 난다. 

하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무장한 그리스의 협공에 견뎌 내기 위해서 베네치아로 가는 항로를 확보 해야 했고 반드시 시칠리아를 손아귀에 넣어야 가능한 일이였다.

하지만 그곳엔 그리스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로마군들이 있었다. 

카르타고는 철저하게 방어를 위한 전쟁을 했다. 

카르타고의 제한적인 방어 전략은 오히려  로마의 영토를 확장하게 만들어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만든다.

결국 포에니 1,2,차 전쟁에서 카르타고는 더 이상 국가를 유지 하기 힘들 정도로 재정이 바닥이 나버리지만 여전히 지중해 최대의 항구 도시로 두 차례 전쟁 비용을 무역 과세로 거둬들인 세금으로 충당했다.


한니발 장군은 두 차례 전쟁을 통해 로마가 존재 하는 한 어떤 도시나 국가, 제국도 안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탁월한 전술 만으로 카르타고가 로마를 무 찌를 수 없으니 동맹을 찾기 시작했다. 

카르타고-마케도니아-셀레우키아 이들 세 국가가 연합했다면 로마를 무찌를 수 있었을까? 

하지만 각국의 정치인들의 이권 다툼으로 동맹은 결성 되지 못한 채  정치 사회적으로 큰 혼돈의 상태에 빠진다.


마지막 포에니 전쟁은 바다와 육지, 육지에 기반을 둔 귀족 권력자들과 지지자들, 민중주의 민회, 군사 제국과 상인 문화의 충돌로 발생 했다. 


결국 전쟁의 원인이 영토의 싸움이나 무역 이권을 두고 다툰 것이 아니라 각 국가들의 정체성과 문화에 있었다.

단 6일 만에 로마는 카르타고와 코린토스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어 어느 누구도 살려두지 않았다.

 5만명은 노예로 팔렸고 도시 전체는 불에 타버렸다. 그리스 문명은 숭배했던 로마는 카르타고의 모든 문화는 철저하게 파괴했다. 


카르타고와 코린토스는 지도에서 사라지고 로마가 세운 무역 중심지가 된다. 

로마는  상업, 정치적 포용성, 해군의 정찰 임무 수행이 아닌 오로지 군사력을 증진 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바다와 밀접한 국가나 해외에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다고 해서 해양 세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 국가들은  강대국 지위로 올라서기에 인구가 부족하거나 해외 식민지를 통해 얻은 이익을 활용하지 못했다.

 반면 대륙 국가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바꿔서 해양 문화를 손에 넣어 제국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고대의 로도스 섬, 근대 초기 제노바와 포르투갈,스페인은 강대국에 도전하지 않고 자국의 부와 안보를 향상 시키는데 바다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특히 스페인은 수 백년 동안 제국이 였지만 이들의 주요 경제권과 문화의 중심은 바다가 아니였다. 

절대주의 왕정을 고수 하며 로마 카톨릭 세력과 귀족 권력층의 부패로 인해 바다 보다 육지 자원에 집착하며 육지 방어에만 집중했다.


해양 세력과의 동맹을 통해서 얻어낸 식민지 경영은 결국 로마 카톨릭 세력에 부를 축적 시켜서 농노들과 소농에 막대한 세금으로 국가 경영은 방만하게 되어 군국주의와 독재 정치라는 폐단을 가져온다. 

이들 세력과 동맹을 맺으며 경제적 이권을 챙긴 네덜란드와 영국은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발트해를 무역 도시로 건설 하면서 운송 독점권을 따낸다.


16세기 해양 세력이 될 의도가 전혀 없었던 러시아는 발트해 연안을 식량과 사치품 그리고 자원을 수출하는 무역 항구로 키운다. 

문제는 러시아는 부족한 자본과 기술력으로 상선을 건립하지 못하고 영국은 러시아 목재로 뛰어난 선박을 건조 시키며 더욱 강력한 해양 세력으로 발전한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가 군사력으로 스웨덴과 튀르크 세력을 물리치고 각 지역 무역소를 폐쇠하며 관세 장벽을 높여 버린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는 영국의 상선 없이 사회와 경제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무역 의존도가 90퍼센트에 달했다.

1855년 영국은 러시아의 관세 장벽 조치에 대항 하는 전략으로 자본 공급을 줄여 버리자, 무역을 금지한 러시아 제국은 파산 직전에 몰리고 영국은 수출을 봉쇄한 상트페테르부르크 항을 폭파해버리겠다고 위협한다. 

크림 전쟁으로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며 승전보를 세운 영국은 육지 보다 해양에 집중했던 국가적 역량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16세기 헨리 8세가 자신의 국가 잉글랜드가 유럽의 어떤 제도나 종교 체제에 종속 되지 않으려면 압도적인 힘, 해양 국가로 거듭 나야 한다는 선견 지명으로 영국은 카르타고의 실패를 반면 교사로 삼는다.

 로마의 길이 아닌 사치와 부패의 중심인 로마 카톨릭 수도원을 해체 시켜버리고 국가 방위 산업에 투자 하며 해양 세력을 구축할 막대한 자금을 확보해 나갔다.

 이를 위해 민간 기업을 통해 재원을 확보해 나가지만 강력한 해군력 유지를 위해서 턱없이 부족했다. 

뒤이어 왕권을 잡은 엘리자베스와 스튜어트 왕조의 후계자들은 신흥경제부유층들과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과두제 공화정은 토지에서 발생한 부로 인해 유럽 최대의 전투함을 건조 시키며 영국 해협을 위협하는 네덜란드 공화국 상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1650년 잉글랜드 연방 함대는 잉글랜드를 지중해의 중요한 해양 세력으로 탈바꿈 시켰다. 

잉글랜드 연방 함대는 바다의 지배 세력인 왕정주의 세력을 무너뜨렸고 바르바리 해적을 괴멸 시키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잉글랜드의 요구에 따르도록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한다. 네덜란드 함대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영국 함대와 협력해서 프랑스 세력을 무너뜨려버린다. 


1688년-1713년 사이에 벌어진 두 차례 대전에서 잉글랜드는 '무적의 해양 세력'으로 우뚝 선다.


'이는 당신의 영광, 당신의 지혜

당신에게서 고안된 본래의 힘

운명이 최강의 국가를 고안 했을 때

복종하는 바다 위에 앉게 했네' 


영국이 수 백년 동안 해양 세력을 지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섬나라라는 전략적 이점에 스코틀랜드의 편입과 아일랜드 지배로 인해 증가한 인구와 영토의 확대가 자원의 증가로 이어져서 경제적 역동성이 확장 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실패 사례를 철저하게 연구 해서 식민지 경영과 항구 확보지를 넓혀나가며 전략적 실패를 줄여 나갔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영국이 연안의 해군 기지 너머 유럽의 육지 권력 구축 야망을 줄이게 만들어 급진적인 변화 대신 현상 유지에 집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럽은 하나로 뭉칠 때만 영국에 위협적인 상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영국의 정치 지도층은 오히려 선거권이 전 계층으로 확대 되는 것을 체제 전복의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많은 계층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면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 정체성을 유지 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며 1832년부터 시작된 선거권 확대를 더디게 진행 시켜나갔다.

하지만 영국의 해양 세력 국가 지위를 무너뜨린 건 미 합중국이였다. 

유럽 밖에 위치한 미국은 명시적으로 영국과 협력하는 동맹 관계 속에서 영국의 해양 세력 힘을 무력화 시켜버렸다. 

영국은 두 차례 독일과 전쟁을 치르면서 재정 상태가 바닥이 나고 있었고 언어를 비롯해 법과 정치 기업 자금 규모까지 공유하고 있던 미국에게 재정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그동안 바다에서 미래를 찾지 않았던 미국은 나폴레옹 세력이 미국 땅에서 물러 난 후 영국 왕립 해군이 수도 워싱턴 Dc를 점령하고 불태우며 해양 세력이 미국 땅에서 얼마나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일깨워주었다.

영국은 남부에서 노예제를 옹호 하며 원주민들의 저항을 부축여서 미국의 법과 정치를 위협했다. 

바다 통제를 넘어 영국은 미국 대륙 전체를 뒤 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미국은 남북 전쟁을 겪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군사 개입을 후퇴 시키며 북부 군의 승리로 더 이상 영국과 문화 경제적 협력에 의지 하지 않고 강력한 새 정체성 구축에 힘을 모은다.

새로운 국가 정체성은 노예 해방과 민주주의로 선거권 부여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부여 해서 단 하나의 정체성, 국가관을 확립 시켜나간다.

그동안 로마 제국 처럼 대륙 패권에만 힘을 모았던 미국은 애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멕시코로부터 영토를 빼았으며 영토 확장을 통해서 확보한 폭발적인 노동력과 자본력, 산업으로 바다로 눈을 돌린다.

이제 영국과 미국은 서로를 향한 경계심은 세워 놓은 채 충돌보다 타협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양 국가의 정치인들은 어느 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을 일으키는 대신 현명한 판단과 명백한 외교적 대화와 시의 적절한 타협을 통해 평화 관계를 유지 했다.

1890년 드디어 미국은 해군을 구축하며 1898년 쿠바에서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고  카리브 해 상권을 지배한다. 

이후 미국 함대는 필리핀을 점령 하며 아시아 해상 권 까지 들어온다. 

영국은 독일과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에게 해양 상권을 차례 차례 넘겨주기 시작한다. 이들은 때로 전략적으로 해양에서 연합하며 철저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이어나간다. 

1914년부터 1918년 유럽 전쟁을 통해 군사적 우위를 차지한 미국은 1916년 실질적으로 해양 세력으로 파산해버린 영국의 해양 권력을 고스란히 손안에 넣게 된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영국의 해상 경제권은 미국에게 넘어 가버렸고 영국은 해군의 규모를 축소 하면서 세계 정치에서 외교적 영향력까지 약화되어버린다.

1929년 대 공항을 겪은 미국은 경제적 위기 해소로 실업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해군을 증강 시키며 실업 문제를 해소해나간다. 

독일에 프랑스가 지배 되고 이제 영국만 남겨 놓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영국이 계속 독일과 전쟁을 이어 나갈 수 있게  자금과 군수품, 군비를 빌려주는 대신 전후 완전히 제국을 유지 하지 못하도록 경제적, 전략적으로 자산을 압류 해 나간다.

영국의 해양 세력을 밟고 해양 제국으로 우뚝 선 미국은 공군 세력까지 증강 시키며 소련과 독일을 차례로 격파 하고 일본은 전방위 포위를 하며 원자 폭탄으로 무릎 꿇게 만든다.

20세기 중반을 넘으면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경제 호황으로 인해 미국과 동 아시아 해상 지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며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약한 이웃 나라의 제도와 모래 섬을 빼앗아 인공 섬을 조성하며 배타적인 해양 지배로 타이완을 위협하며 일본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만일 중국이 미국을 대신 해서 해양 패권이 된다면 세계 경제와 이를 지탱하는 해양 세력 모형을 무차별 적으로 무너뜨리며 자유민주주의 자본 체제까지 위협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해양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최대 위기는 해양이 점차 대륙화 되고 바다를 이용할 권리에 제약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대륙의 전략은 해안 요새 구축과 지뢰 설치로 자 국민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촉발 시키며 다른 나라의 해협 경제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바다는 공정한 무역과 교류를 위한 열린 공간 이여야 한다.

앞으로 대륙화 된 해양 공간에서 각국의 공정한 해양 권을 보장 하지 않으면 '거대한 공유지'인 바다는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각 국가들의 안전한 무역과 문화, 안보를 위해 포괄적인 법치와 외교, 평화적인 타협으로 공평한 자유와 기회를 부여해 불확실한 시대에 바다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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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9 16: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등 👍

scott 2021-07-19 16:30   좋아요 3 | URL
| ᐕ)੭*⁾⁾

새파랑 2021-07-19 17:25   좋아요 6 | URL
와 해양분야에도 전문적인 스콧님~!! 역시 완전 대단 👍👍 고대부터 바다를 지배한 국가가 세계의 패권을 잡는거 같아요. 네덜란드나 포루투갈 보면 그런게 확 와닿더라구요, 나라는 작은데~~ 요새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우리도 어느정도 대비를 해야할거 같아요. 무해통항권 같은것도 언젠가는 없어질수도 😐

scott 2021-07-19 17:31   좋아요 6 | URL
지도도 올릴까 했는데
그러면 페이퍼가 넘 길어지고
그러다가 불안한 알라딘 홀라당 날려 버릴것 같아서 패쑤 ㅎㅎ

이 작가가 진행한 비비씨 다큐 바다의 전쟁도 엄청 재밌습니다 ^ㅎ^

페넬로페 2021-07-19 16: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고대의 도시로부터 시작해 지금 현재까지 해양세력의 지배와 몰락의 과정이 총망라되어 있네요. 이 연대기를 잘 알려면 역시 지중해연안의 역사로 거슬러올라가야할것 같아요. 카르타고와 로마사도 궁금하고~~
지금의 중국과 미국의 패권싸움도 흥미롭습니다. 강대국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니 관심가져야할것 같아요^^

scott 2021-07-19 17:02   좋아요 6 | URL
맞습니다
이책에 해양 세력의 연대기,
그러니까 바다에서 세력 다툼을 하면서 성장하고 팽창 하고 쇠망한 국가들이 어떻게 성공하고 침몰 해버렸는지 흥미롭게 조망 합니다
카르타고 로마사 전쟁에 관해 알면 더욱더 잼나게 읽게 되는데
전 로마 보다 카르타고 에 더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각주와 부록이 꼼꼼하게 정리 되어서
읽고 싶은 책이 한가득 ㅎㅎㅎ

페넬로페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바다에서는 군사보다는 공정한 무역을, 권력의 집중보다는 평등을 추구해야 하는데,,,
강대국 틈 사이에서 현명하게 대응해야 할것 같습니다. ^ㅅ^


mini74 2021-07-19 18:3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살라미스 카르타고. 포에니 한니발. ㅎㅎㅎ중딩때 세계사 욕하면서 외웠던 기억이 ㅎㅎ 근데 이 글은 왜 이리 재미있는 거죠. 꿀 발라놓으셨죠 스콧님. 장바구니에 스콧님 추천 책들이 쌓이고 있어요. ㅎㅎ 8월 땡 하면 사려고요 ㅎㅎㅎ

scott 2021-07-19 21:54   좋아요 4 | URL
아마 세계사 선생님이 재미 없게 가르치신거 아닐까여 ㅎㅎㅎ

한니발 이야기 더 길게 쓰고 싶었는데
알라딘 포스팅 용량을 못믿 ㅎㅎㅎ

저도 제 장바구니에 미니님 서재방 책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몇권 중고로 나오서 덥석 넣었는데 매시간 체크중 누가 먼저 결제 할까봐 ◜◡◝

미미 2021-07-19 20: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신간 중에서 비슷한 주제의 책이 있어 지난번에 살까말까 했었는데 이 책도 재밌을것 같아요! 역시 스콧님 역사쪽 좋아하시는 듯~♡ 그림들도 죄다 멋지고 스콧님의 글에 또 놀랍니다👍

scott 2021-07-19 21:55   좋아요 5 | URL
전 여기 출판사 신간은 매달 ㅎㅎㅎ
가능한 꼬박 사서 읽고 있습니다.
만듦새가 넘 좋고

여기서 출판 된 책들중 별로인게 없어여 (저한테는)ヾ(๑╹ꇴ◠๑)ノ”

붕붕툐툐 2021-07-19 22: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스콧님의 방대한 지식의 양에 또 한번 놀랍니다~ 해양 세력 연대기라니 저 혼자였음 절대 집어보지도 못했을 거 같아용~ 스콧님의 글 덕에 내용을 알게 되었네용~ 스콧님의 영향력 과연 어디까지일지!!🙆

scott 2021-07-20 15:18   좋아요 2 | URL
딱 꽂히는 주제만 파고 듭니다 ㅎㅎ

제 영향력은 딱 툐툐님 까지롱 (*Ü*)ﻌﻌﻌ♥

바람돌이 2021-07-20 02: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군할아버지가 터를 참 잘못잡았다는 생각을 가끔 햇어요. 자원이 뭐 있는게 없잖아요. ㅎㅎ
근데 제가 듣는 팟캐스트에서 바다가 없는 국가들이 자원이 그렇게 많아도 그걸 수출할 통로가 없어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예를 잔뜩 들으면서 아 그래 우린 바다가 온 사방으로 열려있지 했어요. ㅎㅎ 좋은 책 소개 잘 읽었습니다. 스콧님 덕분에 해양사가 한방에 정리가 되네요. 그나저나 까치 출판사는 도대체 언제쯤 표지에 신경쓸까요? 안티 표지 세력이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듭니다. ㅎㅎ

scott 2021-07-20 15:20   좋아요 3 | URL
바람돌이님 말씀이 맞습니다. 자원이 그렇게 많아도 바다가 없어서 활용 못하는 나라들 바다에 둘러쌓여서 어떻게 해서든 멀리 나가서 개척하고 이익을 쟁취하는 민족들!

까치 출판사 표지는 어찌 해볼 ㅎㅎ

그런데 요근래 나오는 책들 커버는 그나마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까치는 응원 하고 싶음요 ^ㅅ^

SIRIUS1102 2023-01-02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사실 단군할아버지가 터잡은 곳은 만주의 요동과 요서죠 ㅎㅎ

scott 2023-01-03 12:0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