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별들 순간들 ㅣ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 된다.
'삼십 년이 지난 뒤, 연인을 만났다. 한동안 베를린 집에서 홀로 지내게 된 나는 어느 날 순전한 호기심과 충동으로 소파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책장의 가장 아래 칸을 살펴보았다. 커다란 소파를 치우자 먼지가 덮인 책들이 나타났다.'
독일 베를린과 한국을 오고 가며 번역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작가가 삼십 년 만에 만난 연인은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 마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으로 장 자크 아노의 영화 속 한 장면이 새겨진 표지 였다.
작가는 오래 전 대학 시절에 읽고 한 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연인>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눈을 떼지 못한 채 예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 주인공이 살던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페스트가 돌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을 무렵 작가는 베를린 서가에서 <연인>을 만났고 그 <연인>이 구사하는 문학적 언어에 흠뻑 빠졌다.
[내가 <연인>을 읽고 있는 이 집은 오직 서가이다. 사방의 벽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공간이 책과 필름, 음반으로 이루어진 장소이다. 나는 화집과 필름 관련 책들이 꽂힌 책장 앞 간신히 마련한 빈자리에 매트리스를 놓고 잠든다. 내 머리 맡에는 파솔리니와 데릭 저먼 관련 책이 가득이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나는 독일 작가나 문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이 집의 서가는 내게 거대한 카오스 자체로 보였다. 나는 손이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한 권의 책을 꺼내서 살펴보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다시 다른 자리에 꽂아 놓곤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서가에 내가 모르는 모종의 질서가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책장의 앞 뒤를 오고 가며 작가의 베를린 서가 주인의 특징을 찾기 위해 문장을 하나 씩 읽어 나갈 때마다 서가 주인의 모습을 내 상상 속에 그려 본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헌책방이 아닌 대형 서점은 거의 출입하지 않는데, 일단 책값이 비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근본적으로는 신간, 베스트셀러, 이런저런 화제성이 큰 책들이 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시간대의 지층이 없이 오직 리얼타임의 사물들만이 가치를 갖는다.]
작가는 자신의 베를린 집 서가 주인과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 상대를 통해 독자들을 향해 말을 건네기도 하고 때로는 들어 주기도 한다.
서가 주인은 일 평생 단 하나의 헌책방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사람이며 방은 물론 욕실과 주방까지 책과 원고들, 편지와 쪽지, 스케치와 콜라주로 그득 채운 사람이다. 여름에는 글을 쓰다가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밤에는 작은 발코니 의자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는 사람이며, 작가의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계속 무언가 쓰고 있다.
작가는 가끔씩 서가 주인에게 공간이 부족하며 너무 많은 양의 책들이 거주 공간을 차지 하고 있다며 서가를 옮기자는 불평섞인 제안을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계절이면 작가와 서가 주인은 베를린을 벗어나서 난방 시설이 없는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자연의 공간, 오두막으로 간다.
작가는 오두막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전염병이 지속 되는 기간에도 빛과 어둠 속에서 글을 쓴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 오면 베를린으로 돌아가 <연인>을 읽는다.
[눈부신 여름날, 한 여자와 한 남자, 기나긴 대화, 자기 자신을 향한 침묵과 관찰로 이루어진, 대화이자 독백, 센강 하구가 내려다 보이는 해변의 카페, 마치 무대와 같은 고정된 공간, 하나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이인극이며 대화극, 그러나 동시에 모놀로그인, 죽음과 공포가 언어로 표현된다.]
진물러 버릴 정도로 짓밟히고 부서지고 무너져 내리는 고통적인 사랑의 언어로 표현한 마그리트 뒤라스
작가는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버린 문장에서 다른 문장, 다른 시 공간으로 확장 되어 뻗어 나간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잊어 버린다.
작가는 베를린 서가에서 읽고 잊어 버리기를 반복하며 언어의 리듬과 흐름, 각 장소마다 배열된 위치를 맞추고 해체하고 분해 해버린다.
'그것은 내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고 깨어나게 했어.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문장을 묻는 거라면,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
그리고 나는 작가의 이런 행위를 읽으면서 이렇게 중얼 거린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다는 건 무의미 한 일인지 모른다. 단 한 문장이라도 마음 속에 파고 들었다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오고 가며 되풀이해서 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작가의 책 첫 페이지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세 살 네 살 다섯 살이 된 사람은 태어날 때 이 생을 위한 지참금처럼 지니고 온 이미지와 생각을 먹고 살게 된다. 그리하여 예순 세 살, 예순 네 살, 예순다섯 살이 된 어느 토요일 강가를 산책하던 한 사람은, 이 강이 북아메리카의 강이라고 단정 짓고 흔들리는 수면의 영롱한 색채를 인디언의 색채인 양 받아들인다. 그러자 그의 환각 속에서 강물을 흘러가는 카누 한 대가 보인다. 카누에는 머리에 오색의 깃털 장식을 두세 개 꽂은 최후의 모히칸족이 타고 있다. 그 광경을 마주한 사람은 시민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보낸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회상한다.]
작가는 베를린 인근 한 시골 마을의 정원 딸린 오두막을 15년 동안 오고 가는 동안 책을 읽었고, 글을 썼고 그리고 마침내 그곳은 작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된다.
잠시 한국에 머무는 시기에는 번역에 매달리지만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가 숲 속에 자리한 허름한 오두막으로 돌아가면 작가는 황홀할 정도로 눈 앞에서 일렁 거리는 자연의 빛 에 흠뻑 빠져 회상의 시계를 돌린다.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작가와 서가 주인은 '서로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작가는 오두막 주변 숲 속을 산책하며 봄이 오고 여름이 찾아오고 가을이 가고 그리고 베를린으로 돌아가야 할 '겨울'이 왔다는 걸 알아차릴 뿐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서로 읽거나 쓰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가장 적절한 장소이다. 잠시 동안 빛이 넘실 대는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는 밤의 정원에 있다. 밤새도록 나이팅게일이 운다. 잠 속에서도 꿈속에서도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잠시 동안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는 수많은 세월을 늙어버린 다음일 것이다. 그것이 환희라면. ]
작가는 서가의 주인과 함께 천천히 두 시간 동안 너도밤나무 숲을 지나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바흐 연주회에 참석하고 오두막 정원에서 낭독회를 열기도 한다.
그리고 이따금씩 도시로 나가 작가가 번역한 작가들을 만나기도 하고 특급 열차를 타고 유럽 다른 도시로 넘어가도 언제나 돌아 오는 곳은 베를린 그리고 비밀스러운 기쁨의 순간들로 충만한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여기,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
그러면, 작가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다시 책장을 넘긴다.
책장 구석 구석마다 낯선 지명들, 영화들 그리고 사람들이 등장 한다.
어떤 장소는 오래전 작가가 살았던 곳,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세상으로 간 이들이다.
베를린 서가 곳곳에는 서늘한 농담과 그리움이 숨어 있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그곳에 두고 온 사람들, 장소들 시간들을 흐릿하게 떠올린다.
처음 베를린에 도착 했을 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올라 탔던 순간, 기나긴 여행, 수 많은 편지들이 오고 갔고, 그리고 또 다시 베를린으로 향했던 그날 들은 책장 마다 작가가 회상하는 연두색 풍경 속에 푸른 빛깔의 수초들이 둥둥 떠다닌다.
작가는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고 그 언어 속에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거주 하는 곳은 베를린이지만 그 베를린은 작가의 글쓰기 속에 들어 있다.
[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어디에서 살아왔던가? 항상 나는 내 최초의 집을 생각한다. 내게 최초로 말과 글을 가르쳐준 이는 누구였을까? 글을 쓸 때, 나는 종종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화가의 아틀리에를 상상한다.]
베를린의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의 시간이 흐른 후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작가에게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묻자 작가는 읽기에 대하여 쓰고 있다고 답한다.
작가가 새겨 놓은 이 책 <순간들, 작별들> 속의 문장들은 마치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의 파편들이 흩어졌다 다시 연결 되어 이어지고 반복되며 여러 시간에 걸쳐 하나의 파편, 즉 한 문장으로 완성된다.
나는 다시 이 책의 첫 장으로 돌아가 작가의 베를린 서재의 흔적을 되짚어 본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일 평생 단 하나의 헌책방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각각 다른 장소에 있는 그의 서재 세 곳은 책으로 가득하며, 그때 그때의 운명과 우연에 따라, 여행과 체류 계획에 따라 각 서재의 책들을 재 배치하는 일이 그의 커다란 열정이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 커다란 여행 가방을 싣고 한 서재에서 다른 서재로 떠난다. 어디로 떠나더라도 여행 가방에는 다른 물건은 거의 없이 오직 책이 가득하다. 그의 여행 가방은 그 자체로 작은 도서관이다.]
작은 도서관 같은 '여행 가방'을 짊어진 작가는 느리게 움직이며, 느리게 읽고 그리고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언어로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한다. 누구나 일생 동안 그 일에 매달려야 하며, 자신이 얻은 외국을 거주 가능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한국 땅을 떠난 작가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자신의 언어로 만든 집에 살고 있다.
그렇게 모국어가 존재 하지 않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먹고, 일하며 그리고 읽고 쓴다.
그곳엔 항상 태양이 빛나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날리고, 얼음이 얼어서 장작 불을 태운다.
작가가 살고 있는 오두막의 지붕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저 않거나 더러운 흙더미와 풀더미로 뒤덮인다.
벽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그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 온다.
작가는 바란다. 이 공간이 무너져 버리기를 , 유리창이 날아가 버리기를, 모든 사물들이 빛과 섬광에 노출되어 분해 되고 사라지기를 ....
한국을 떠난 기나긴 시간 속에 작가와 만나고, 교류했고, 함께 살았던 이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났다.
문득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 공간 속에 생명들도 서서히 생명을 다해 사라져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내뱉는다.
'세상의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아마 한 권의 책도 그렇지 않을까요?'
나는 다시 이 책의 첫 장으로 되돌아가 작가의 기억의 파편이 새겨진 베를린 서가의 한 문단을 읽는다.
[베를린은 내 인생의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시작된 도시이다. 내가 그것과 비로소 만난 도시이다. 베를린은 그것을 내게 주었다.
하지만 나는 베를린을 좋아하지 않으며, 언젠가 베를린을 떠날 수 있기를 남몰래 소망 한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베를린에 올 일이 없게 되고 마침내 베를린을 영영 잊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언어는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 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책장에서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뽑아 읽거나, 어떤 시간 속에서 영화를 보거나 그리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작가가 기억하는 언어는 또 다른 작품의 언어가 되어 이야기 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언어의 파동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어 맨 첫 장의 시작인 베를린, 작가와 서가 주인의 여행 가방 속 책장으로 들어간다.
베를린에 두고 온 가방이 있더라도
Ich hab' noch einen Koffer in
베를린에 죽은 자를 두고 왔더라도
Ich hab noch einen Toten in Berlin
그리고 베를린에서 연인과 재회했다 할지라도
마치 우리의 인생이 어제의 시간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가듯 어쩌면 나는 작가의 이 책을 오직 단 하나의 문장만 기억 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