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한국화 지음, 김주경 옮김 / 비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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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사막이 어떻게 도시로 들어왔는지. 알고 있는 건, 전에는 도시가 사막이 아니었다는 것 뿐이다.'

-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중에서

사막이 들어온 건 언제 쯤으로 거슬러가야 할까?


이 질문을 던진 화자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도시를 흐릿하게 뒤덮은 모래 바람 뿐이다.

화자는 아침 나절을 맨 바닥에 가만히 누워서 보내는 동안 별다른 일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다.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도, 내일도, 절대로 일주일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빅 맥 메뉴로 때우는 그 절망스러운 얼굴들을 더는 보지 않을 참이다.

하루 종일 햄버거 가게 튀김 냄새에 파묻혀 살며 매니저에게 온갖 잔소리를 듣고 있는 화자는 벽시계의 바늘에게까지 부탁 할 정도로 시간의 고통 노동의 고통, 하루의 고단함을 겨우 벼텨 내고 있다.

루오에스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화자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루오에스((Luoes), 이 도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화자는 구석 구석을 탐방하기 시작한다.

버스 터미널을 빠져나와 지하철에 올라탄 화자는 역 안에서 검은 봉지를 끌어 앉은 채 승객들과 마주칠 때 마다 공손하게 인사하는 한 남자를 유심히 지켜 보고 있다.

'하루 하루는 오늘처럼 어김없이 찾아오지요. 저는 여러분이 보잘것없는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라며 승객들에게 말하는 남자는 뭔가를 보여 주겠다며 품 속에 안고 있던 비닐봉지 속에서 편지 봉투 한 묶음을 꺼낸다.

이 남자가 승객들에게 봉투를 나눠주는 동안 실강이가 벌어지고 역무원까지 나타나 이 남자를 열차에서 끌어낸다.

화자는 그 남자가 비닐봉지에서 떨어뜨린 봉투를 주워 들고 몇 정거장을 지나 내린다.

마침내 루오에스에 도착한 화자는 유리벽으로 단단하게 쌓아 올려진 고층 빌딩이 즐비한 풍경과 마주한다.

고층 빌딩들 사이로 황백색의 하늘 한 점만이 겨우 보인다. 거리 사이로 휩쓸려 들어가는 바람에서 모래 냄새가 난다.

눈이 따끔 거리고 시선이 뿌예진다. 주위 행인 대부분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낯선 도시 루오에스에서 끼니를 떼우기 위해 맥도날드 매장으로 들어 간 화자는 햄버거 세트 메뉴를 다 먹고 난 후 몇 시간 전 전철에서 주운 봉투를 꺼낸다.

순백의 종이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발자국이 찍혀 있는 봉투를 바라 보고 있는 화자는 편지를 보낼 사람도 없는데 불구하고 외우고 있는 유일한 주소인 집 주소를 쓰면서 집에 돌아가면 먼저 도착할 이 봉투를 보며 루오에스의 추억을 떠올려 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화자가 목격한 루오에스는 아스팔트, 자동차, 고층 빌딩으로 가득 찬 대규모 도시임에도 모든 게 낯설게 보인다.

그런데 화자가 찾고 있는 사막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사막....

아마도 사막은 이미 이곳에 있는 것 같다.

도시 중심부, 저 소박한 철책 뒤에....

나는 주변의 소란 속으로 구불 거리며 슬며시 사라지는 사막을 응시한다.

자, 이제 사막 위를 걸어가는 화자의 두 발은 모래 속에 푹푹 빠지고 앞으로 나가는 것 조차 힘겨워서 뜨겁게 내리 쬐는 사막 모래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버린다.

'이봐요. 일어나요. 여기서 잠들면 안 돼요.!'

누군가 화자를 깨우고 눈을 뜬 화자는 주변을 둘러 본다.

아침이다. 차갑고 축축한 모래가 느껴진다.

삽을 든 노동자들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도시에 사막이 들어 온 날

총 8편이 담긴 단편집에는 20여페이지가 채 넘지 않는 스토리에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 구조도 없고 성별 구분도 없고 이야기의 화자가 어디 출신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조차 명확하지 않다.

이 책을 집어든 건 순수한 호기심으로 미술을 전공한 이가 어느 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어로 글을 쓴 작품이였기 때문이다.

'이 글들은 2015년부터 파리 제 8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던 때 쓰였다.

그 이후 퇴고를 거쳐 2020년에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한국화

이 책이 프랑스에 출간 되자 마자 간결한 문체로 풍부한 이미지를 그려내 폭넓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이라는 평단과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이 평가는 사실로 이 책 속의 담긴 이야기들은 서울의 영문 표기를 거꾸로 배열한 이름의 도시를 그린 소설 〈루오에스〉를 비롯해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이어지는 상상의 세계를 이름도, 성별도, 삶의 목적과 이유도 상실한 채 도시를 표류 하는 유령과도 같은 이들의 모습으로 그렸다.

이 이야기를 2023년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 한 부분에 대입 시켜도 좋을 만큼 바닥을 나뒹구는 술병들과 여기저기 피어 있는 곰팡이. 폐허나 다름없는 집에서 깨어난 당신은 오늘도 주인 없는 빈 방에서 잠들어 버린 도시인들의 외롭고 고독한 모습을 담았다.

'나는 어떤 역에도 내리지 않는다. 종착역에 도착해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열차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떠나기를 기다린다.

-방화광 중에서



8편의 단편을 모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쓴 작가 한국화는 파리 제8대학교에 다니면서 6년 만에 이 소설을 썼다.

작가는 프랑스 문화비평 잡지 <디아크리틱> 인터뷰에서 “모국어의 제약을 벗어나 더 유연한 사고가 가능한 중립적인 영역이 필요했다”라고 밝혔다.

이 단편집은 프랑스에서 출판 된 그해 일본어로도 번역이 되어 출간 되었다.

작가는 현재 프랑스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 거주 하며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프랑스어로 번역 했고 에두아르 르베의 <자살>을 한국어로 번역하며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며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일을 병행 하고 있다.

'나는 일주일에 여러 번 어학원에도 다녔다. 이 나라의 언어를 특별히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 별 어려움 없이 체류 허가증을 취득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 눈송이 중에서



나는 이 책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는 동안 작가가 서술하고 묘사한 문장을 프랑스어로 어떻게 썼을지 머릿 속에서 단어 하나 하나를 떠올렸다.


'당신은 눈을 뜬다. 혹은 눈을 뜬다고 믿는다.'

작가는 새 하얀 백지 세상 속에서 두 가지 언어를 넘나들며 붓을 든 화가처럼 상상의 세계 속에 고립된 불투명한 자아들 이 시대의 우리 모두의 모습을 그려 넣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 하얀 세계 속에서 마치 드디어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곳과 저곳 사이 , 낮과 밤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는 곳에서'

-청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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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7-29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 글뿐 아니라 프랑스말을 한국말로 한국말을 프랑스말로 옮기다니 대단하네요 이것저것 다 잘 하는군요 소설은 어려울 것 같은 느낌... 그저 보기만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희선

scott 2023-07-29 10:48   좋아요 1 | URL
작가가 이 책을 프랑스어를 배운지 4년만에 쓰고 육년에 걸쳐 수정했다고 합니다 (완성기간 약 6년)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써서 인지 그래서인지 문장이 짧고 묘사가 많지 않습니다.
지금은 베를린에 거주 하면서 한국어 작품 프랑스어로도 번역 출간 하고 있다고 하네요 ㅎㅎ
한국화 !
이름에 모든 문학적 의미가 담겨 있능 ^^

새파랑 2023-07-29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코타 크리스토프랑 조셉 콘래드 느낌이 드네요. 작가님 이름도 한국화라니 뭔가 아름다운 꽃처럼 느껴집니다 ~!!

2023-07-29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의 평범한 가족
마티아스 에드바르드손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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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서남부에 위치한 룬드는 몇 세기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 때 덴마크의 통치를 받으며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였지만 스웨덴 왕국에게 편입된 이후 루터파 스웨덴 국교회의 주교구가 세워진  도시다.

이처럼  중세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종교의 도시이면서 매년 찾아 오는 여름철 백야 동안에는 전 유럽의 음악 밴드들이 이 도시로 몰려와 도시 곳곳마다 젊은이들의 음악 소리가 넘쳐 나는 곳이다.

이토록 멋지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버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국교회 소속 목사 아담 , 유능한 변호사인 아내 울리카 그리고 외동딸 스텔라로 구성된 단란한 가정의 삶이 어느 날  송두리 채 뒤 흔들린다.


'우리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의 첫 시작은 목사이자 가족을 책임지고 이끌고 있는 아버지 아담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아버지 아담은 도시에서 믿음과 신앙의 표본으로 각계 각층의 유명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공연과 스포츠 관람 그리고 멋진 곳에서 외식을 하는 나날을 보냈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면서도 소박한 일상을 살아갔던 가족이였다.

교구당 신도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목사 아담은 변호사 활동으로 바쁜 아내와의 신뢰와 사랑까지 돈독해서 함께 생활한 지 이 십 년 만에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재 발견할 정도로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 나는 남편이다.

반면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단 하나 밖에 없는 딸 스텔라는 부모의 간섭을 싫어 하며 핸드볼 팀 리더로 어느 누구의 통제를 받기 싫어 할 정도로 독립적인 십 대다.

부모는 아이의 18살 생일을 멋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소소하게 선물을 주며 축하를 해주지만 열 여덟 살 스텔라는 어딘지 모르게 불만으로 가득 찬 태도와 말투로 부모의 마음 한 구석을 섭섭하게 만든다.

딸의 이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해 하며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면 일 핑계로 외면 하지 않고 항상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밤 중에 멍한 표정으로 흐느끼는 딸에게 섣불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못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버지 아담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이토록 평온하면서 평범한 가족의 삶을 바꾸게 만든 건 무엇이였을까?

자, 이제 10대 스텔라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 구치소에서 제일 짜증 나는 건 몸을 뒤척이지 못할 정도로 돌처럼 딱딱한 침대가 아니다.

침침한 조명도 아니다. 심지어 변기에 고리 모양으로 눌러 붙은 역겨운 오줌 자국도 아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냄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양한 직종의 아르바이트 생을 거쳐서 H&M에 취직한 스텔라는 여름 휴가도 없이 가게에 종일 붙어 있을 정도로 몹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겨울 휴가철에 친구들과 아시아로 장기 여행 계획을 세워 놓고 열심히 여행 경비를 모으며 부유한 부모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을 정도로 알뜰한 십대다.

그러던 중 어느 날고등학교 시절 핸드볼 팀에서 함께 뛰었던 단짝 친구 아미나와 댄스 클럽에 갔던 날 어떤 남자가 춤을 추고 있는 스텔라와 아미나를 향해 샴페인 잔을 들어 보인다.

돈 걱정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남자는 십 대 청소년인 아미나와 스텔라 앞에서 서로의 나이를 맞춰 보게 하며 부모의 직업, 여행 가 본 곳등으로 화제를 돌리며 은근 슬쩍 여러 개의 회사 대표라며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서른 세 살의 크리스토퍼 올젠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는 동안 스텔라와 아미나는 어느 새 그를 크리스라 부른다.

무슬림의 엄격한 규율을 내세우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클럽에서 먼저 자리를 뜬 아미나와 달리 스텔라는 술 기운에 비틀거리다 택시를 세워 두고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 크리스에게 별다른 의심 없이 다가간다.

그리고 얼마 후 스텔라는 크리스가 거주 하고 있는 빌딩에 찾아 가 그가 건넨  마약 성분이 들어간 물인 줄 모르고 단숨에 마셔 버린다.

크리스는 그 자리에서  전 여자친구의 여러 정신적인 문제들을 이야기 하며 자신은 여자와 거리를 두는 타입이라는 말을 하고 스텔라는 그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다.

스텔라가 자신의 말에 확 빠져 버리자 크리스는 전 여자친구가 자신을 학대범이자 강간범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스텔라는 크리스에게 동정 어린 마음을 품으며 그에게 점점 빠져든다.

빠른 속도로 스텔라에게 접근한 크리스는 그녀에게 넘겨 받은 집 주소를 들고 집까지 찾아 가 환심을 사고 달콤한 문자를 보내고 선물을 주며 2주 동안 멋진 오픈카를 몰고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스칸디나비아 해변 곳곳을 누비며 덴마크 까지 넘어가 화려한 호텔에서 달콤한 연애의 맛을 맛보게 한다.

만난 지 2주 만에 사랑에 빠져 버린 스텔라는 그의 집, 밀실 같이 폐쇄적인 집을 드나 드는 동안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그의 전 여자 친구 린다로부터 그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사이코패스에게 섹스는 권력을 쥐기 위한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처음엔 섹스 하는 동안 파트너에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흥분과 변주에 이끌린다. 곧 그는 더 자극적인 섹스를 원하며 파트너에게 불편하게 여겨질 행동들을 자주 요구한다. 사이코패스는 파트너를 서서히 한계점으로 몰아넣으며 그 과정에서 권력을 얻으려 한다. 파트너가 제안을 거부하면, 사이코패스는 파트너에게 죄의식이 들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찾겠다고 위협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크리스의 사악한 덫에 걸려든 스텔라는 그의 전 여자친구의 지속적인 충고와 경고를 들으면서도 쉽사리 그에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자신의 덫에 걸려든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사이코패스 크리스는 서서히 목을 졸라 죽이듯 폭력적인 섹스를 하며 또 다른 사냥감인 온순한 아미나에게 짐승 같은 욕망을 드러낸다.

크리스가 어떤 남자인지 서서히 파악해 가던 스텔라는 그에게 당한 만큼 복수 하겠다는 전 여자친구 린다의 말을 100퍼센트 믿지 않으면서 혹시라도 친구 아미나가 크리스와 사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부모님과 함께 18살 생일 파티를 한 그 날 스텔라는 문자 한 통을 받는다.


[모든 게 ok 자고 있었어. 내일 봐.<3]


학교 시절 내내 서로 붙어 다녔던 친구 아미나는 문자에 마침표를 찍거나 오케이를 소문자로 보낸 적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크리스 집을 찾아간 스텔라, 문을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리고 다음 날 스텔라의 직장으로 경찰들이 찾아 오고 그 날 이후 스텔라는 살인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구치소에 수감 되고 수갑을 찬 모습으로 법정에 출두 한다.

서른 세살의 사업가 크리스토퍼 올센은 놀이터 바닥에서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고 검찰은 스텔라를 강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하고 친구 아미나를 증인석에 세운다.

검찰은 시신에 짓눌려진 발자국에 스텔라의 신발 자국이 찍혔다는 증거를 제출하고 스텔라의 부모는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벌이기 시작한다.

룬둔의 최고 연봉을 받고 있던 스텔라의 엄마 울리카는 법정에 서있는 자신의 딸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 무심했던 자신을 원망하며 그동안 영리함과 성공으로 기세등등했던 모습에서 한 풀 꺾여 버린다.

아내와 달리 세상의 모든 도덕 규범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던 목사 아담은 어떤 일이 딸에게 닥쳐 오게 된다면 법정에서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핏줄에 대한 사랑과 방어로 단단하게 무장한다.

가족만 지킬 수 있다면 윤리와 도덕 따위는 얼마든지 치워 버릴 수 있는 남편과 아내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다른 두 사람은 부모라는 존재로 바뀐다. 자녀를 향한 사랑은 법 앞에 복종하지 않는다.'라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주기도 문을 외운다.


스텔라의 무죄를 입증하려면 그 날 살해 장소에 있었던 아미나의 증언과 딸의 휴대폰에 대한 아버지 아담의 증언이 결정적이다.

검찰은 여러 증거를 내놓으며 탄탄한 법리를 들고 스텔라를 강력한 살해 용의자로 몰아가고 아버지 아담은 천역덕스러운 태도와 순발력으로 검찰의 송곳 같은 질문을 교묘하게 피해 간다.

상황은 잠재적 가해자가 두 명인 상황에서 그 둘 중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번갈아서 그들이 공모 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두 명 모두 살인죄로 판결 받지 않고 스텔라는 무죄로 풀려 나올 수 있다.

변호사인 엄마 울리카는 장래 의과 대학 진학 목표를 두고 있는 아미나를 설득하고 아미나는 크리스에게 강간 당했던 그 날 그가 챙겨온 바구니 속에 칼이 들어 있었다는 증언을 한다.

증인들의 적극적인 방어 태세와 교묘한 법리를 빠져 나가는 태도에 잔뜩 약이 오른 검찰측은 아미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크리스토퍼 올센을 살해 했습니까?'


반면 재판부는 살해 된 장소에 스텔라와 아미나는 함께 있었고 그를 해칠 동기와 이유 그리고 도구(호신용 스프레이)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도 입증 된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주문. 법원은 피고인 스텔라 산델에 대한 모든 혐의를 무죄로 인정하며, 이에 피고인의 구금을 즉시 기각한다.'


스텔라와 아미나 그리고 전 여자친구 린다는  강간 데이트를 즐겼던 사이코패스 크리스토퍼 올젠에 대한 어떤 살해 혐의가 없다고 재판부는 사건을 종결 시켜버린다.

열 여덟 살 스텔라 산델은 무죄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 성향의 강간범 크리스 올젠은 누구의 칼에 의해 살해 되었을까?


[가치 있는 인생을 구축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 망치는 건 한순간이면 족하다. 한 사람의 가감 없는 현재를 만드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 여정은 거의 늘 우회적인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시행착오가 쌓여 이뤄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우리가 한 시도와 시련에 의해 빚어지고 만들어진다.]


한 생명을 낳고 키우고 지켜주며 온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키워 내는 부모 노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 말한다.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옳고 그름, 싫고 좋음을 표현하고 거부 할 수 있지만 혈연 관계인 가족에게서는 이러한 선과 악 , 정의를 확실하게 구분 짓고 선을 긋기 힘들다.

사랑과 애증,분노와 오해의 감정의 파고가 수시로 밀려 들었다 사그러드는 가족이란 울타리 안 에서 모두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의 모습과 행동에 눈을 반 쯤 감고 살아야 한다.

설사 피를 나눈 부모를 버리고 형제 자매와 등을 돌리고 살아도 법 앞에서는 혈육이라는 관계로 묶여져 있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이유 없이 사랑하는 게 인간에게 가장 큰 어려운 일로 세상의 모든 사랑 앞에는 책임감이 뒤따른다.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말이 어떤 가족의 일에도 통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식을 폭행하고 위협한 강간범을 용서 할 수 있을까?


여기 스웨덴의 아름다운 도시 룬둔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발생한 이야기가 있다.

매일 신의 이름을 부르며  정의와 사랑, 행복과 안락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 목사 아버지, 스웨덴의 가장 유명한 변호사 중 한 명인 엄마,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른 부모들과는 달라. 우리는 약물을 남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식인이며 고소득자다.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다. 우리는 주변부로 밀려나 사회경제 문제들로 고민하는 결손 가정이 아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우리는 이런 자리에 않는 가족이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인간은 부모 자식의 입장에 서면 언제나 진실을 제대로 직시 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 가족이 여기,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게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극히 평범한 목사 아버지의 고백이 담긴 목소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딸 스텔라 그리고 유능한 변호사인 어머니의 목소리를 지나면 마지막 두 장에서 엄청난 진실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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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03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엄청난 진실이 뭘까요!! 요즘 북유럽도 마약이 많이 퍼졌나 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담긴 걸 보면요...(그 여정은 거의 늘 우회적인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시행착오가 쌓여 이뤄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우리가 한 시도와 시련에 의해 빚어지고 만들어진다.)이 부분 좋네요^^

2023-07-03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7-03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완전 좋아합니다. 스웨덴 하면 Kent~!! 스웨덴도 백야가 있나 보군요.

리뷰를 보니 여름에 잘어울리는 스릴러 같습니다 ~!!

scott 2023-07-04 10:20   좋아요 1 | URL
백야가 아주 길기로 유명합니다 ㅋㅋ
밤 9시에도 오후 5시 같은 밝기로 낮과밤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새파랑님 프로필 사진 처럼 한 밤중에도 하늘에 저런 오색빛깔 줄이 쫘악 ^^

이 책 정말 재밌습니다
이런 서스펜스물 여름에 읽어야 ^^

희선 2023-07-05 0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평범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렇지 않을 듯하네요 평범하다 믿고 싶은 거겠습니다 제목과는 다른... 사이코패스가 여자를 죽이려나 했는데, 그 반대였군요 사이코패스가 죽는... 그 사람을 잡아 넣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그렇다 해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희선

2023-07-0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 마물의 탑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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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안은 예전부터 해난 사고가 잦았다. 육지와 바다가 인접한 부분에 암초가 허다했고 폭풍우와 짙은 안개, 눈보라 등의 악천후까지 겹치는 데다 항로표식이 충분치 않았던 탓도 컸으리라. 그 항로표식의 대표가 등대이다]


청년 시절 중국 만주 건국 대학에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대동아 전쟁의 불길 속으로 끌려 들어간 모토로이 하야타는 전쟁의 피바다에서 미쳐 날뛰었던 조국 일본에 엄청난 환멸을 느꼈지만 패전 후 자신의 힘으로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꿈을 품는다.

나츠메 소세키는 작품 <갱부>에서 '세상에 노동자 종류는 많지만,그 중 가장 괴롭고 가장 하등한' 일은 광산의 노동자라 지칭 했고 하야타는 땅 속 깊숙한 곳에 파묻힌 석탄을 캐는 세상에서 가장 하등한 일을 시작한다.

하야타는 갱도로 내려 갈 때 마다 두 번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갱도일이 세상에서 가장 하등한 일이라 생각 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와 달리 탄광 갱도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살아 돌아 와도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자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힌 하야타는 갱도 입구에서 보이는 바닷길 위를 비추는 고가사키 등대의 불빛을 바라본다.


[고분에서 출토된 창과 검을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예리하고 가늘고 긴 기암이 바다에서 뾰족 뾰족 솟아 있다. 고깃 배의 앞길을 막으려고 일부러 파도 사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가락처럼 보였다.]


갱도 밖을 나온 하야타는 곧장 요코하마의 등대 관리 양성소를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다이코자키 등대 해상 보안청에 파견 된다.

그의 임무는 등대 주변을 수색, 관찰 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로 등대가 문제 없이 해상 표식의 역할을 다하도록 유지하고 관리 해야 한다.

관광 기간에는 일반 관광객이나 소풍, 수학 여행으로 찾아온 학생들을 이끌고 다니며 등대 주변 지역 안내까지 맡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가끔씩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하려고 찾아 오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하야타는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

히야타가 예의 주시 하는 곳은 바로 폭포수가 흐르는 곳으로 일명 이곳은 일본 열도 내에서도 자살 명소로 지목되고 있는 곳이다.


[바다로 들어간 뒤로는 바닷물과 안개를 헤치면서 정신없이 소녀를 구해냈다. 다행히 상대는 난동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내게 몸을 맡겼다. 그래도 사람을 안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다를 헤엄쳐 근처 바위 사이의 좁은 모래사장까지 도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쟁 때보다 더 힘든 경험이었을지 모른다.]


하야타는 부임 했던 첫 날부터 폭포수 앞에서 뛰어내린 소녀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수 많은 생명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걸 막는데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가 두 번째로 부임한 고가 사키 등대는 첫 근무 지역보다 훨씬 낮은 위치의 곶 암벽 위에 새하얀 탑이 우뚝 솟아 있는 곳으로 높이 솟아 있는 곶 보다 키가 낮아야 하는데 마치 우뚝 솟아 있는 기암 절벽과 경쟁 하듯 높이 솟아 있다.


[구지암 사이에서 꿈틀거리다 쏟아져 나오는 시퍼렇고 성난 파도,등대 뒤로 바싹 다가온 밀림 같은 깊고 짙은 푸른 숲, 어느 샌 가 하늘 가득 펼쳐진 회색 구름, 주변 일대에 펼쳐지고 있는 옅은 우윳빛 안개. 그 한복판에 선 새하얀 탑...]


하야타는 갱에 들어 갔던 그 순간처럼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히며 '가능하다면' 저 곶에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묘한 사건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저 멀리 고가사키 등대의 등대장이 하야타를 향해 손을 흔들지 않고 우두커니 서있다.

사람을 그리워 하거나 반가워 하지 않는 등대장은 새로 부임한 직원을 반갑게 마중 나오지도 않은 채 우두커니 선 채로 이렇게 중얼 거린다.


...허연 게 춤을 춰서 말이야...

....하얀 마물


부임 첫날 하야타는 오래전 쿄토에서 여관을 운영하다 이곳 까지 흘러 들어 왔다는 친절하고 상냥한 주인이 운영하는 여관에 하룻밤을 묶고 그곳에서 하얀 신 '시라가미'를 모시는 무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관 주인이 극구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하야타는 어떤 생각에 사로 잡혔는지 반드시 자신의 근무지 고가사키까지 혼자 가겠다며 여관을 나선다.

지도를 보며 산 속으로 들어 간 하야타는 해변 등대가 있는 곳까지 도달 하려면 울창한 숲을 헤집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인적도 없는 이 산 속에서 하야타의 뒤를 누군가 쫓고 있다. 그는 서서히 숨이 막힐 정도로 호흡이 가파지더니 인기척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뒤를 돌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체 뭐를 무언가가 느껴지지만 어떤 것과도 마주치지 않는 공포 속에서 하야타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등대로 가는 길인지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드디어 좌우로 뽀족한 암벽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과 오른쪽 갈림길로 이어지는 길목에 낭떠러지가 있다.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저 아래로 떨어진다.

까마득한 절벽을 기어 올라갈 지 아니면 바로 코 앞에 보이는 갈림길까지 단 숨에 뛰어넘을지 이제 하야타의 운명은 '거목과 묘석, 기암길' 사이에 놓여 있다.

길을 잃어버린 하야타 ,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암흑으로 변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반짝이든 등대에 불이 켜졌다.

죽음의 찰나의 순간 하야타는 손전등을 켜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돌연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 같이 하야타 귓전에 날아드는 사람의 목소리

'누구세요?'

그는 무엇에 홀린 듯 유카타를 입은 소녀를 따라 걷는다.

소녀를 따라간 오두막집에 두 눈이 이글거리는 공포스러운 가면을 쓴 이가 그를 노려 보고 있다.

소녀의 할머니 시라쿠모는 백녀라 불리는 무속인으로 하얀 가면을 쓰고 있다.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됩니다.

소녀의 이름은 하라타, 자신을 낳아 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소녀는 운명처럼 대를 이어 무녀 수업을 받고 있다.

그날 밤, 하얀 집에서 잠이든 하야타는 꿈 속에서 무언의 발소리를 듣는다.

떠나기 전 하라타에세 받은 부적 천을 손에서 놓쳐버린 하라타, 눈 앞에 펼쳐진 무성한 덤불이 꿈틀거리고 저 멀리 등대가 보이는데도 가지 못한다.

이곳 자연의 기운이 그의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아니며 고가사키 등대가 새로운 등대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고가사키등대

조금 남은 노을빛을 받아 적동색으로 물든 등대는 거대한 밀랍양초처럼 등실에 불까지 들어오면 정말 촛불에 불을 붙인 것처럼 보인다.

하야타는 목숨을 걸고 두 번째 바위로 뛰어 올라가자 그곳에 놓인 돌계단을 발견한다.

이 돌계단을 오르면 등대가 있는 등탑까지 갈 수 있다.

그가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누군가 뒤쫓아 오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마침내 도착한 고가사키 등대에 또 한 번의 십대 소녀가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고, 겨우 구해 낸 그 소녀는 하야타의 첫 부임지에서도 구사일생으로 구했던 그 소녀였다.

첫 부임지와 현재 부임지 사이의 시간은 10년, 저 소녀는 하나도 나이를 먹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소녀는 하야타를 쫓아 다니는 바다의 마물인 것일까?

갱부들이 탄광 속에서 이따금씩 발견하는 검은 빛의 마물 처럼 바다에는 하얀 마물이 살고 있는 것일까?

대를 이어 등대를 지키는 이들에게 하야타는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실제 목격담이야기를 듣는다.

이 십 년 전 산 속 깊은 곳에 사는 무녀의 딸과 결혼한 등대지기, 두 부부가 부임지를 옮길 때마다 하얀 물체가 쫓아다니고 변경의 등대지로 옮겨도 하얀 물체는 어디든 쫓아 온다.

두 부부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나고 어느 날 막내딸 하나미가 사라진다.

그것이 춤추고 있어.....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미친 듯 춤추는 하얀 사람의 그림자가 그의 뇌리에 또렷이 떠올랐다. 그것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착실히 등대를 향해 오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아이가 사라진 후 하얀 물체도 함께 사라졌다.

하야타가 숲 속 하얀 오두막에서 만났던 소녀가 등대지기 부부의 딸이였을까?

아니면 주기적으로 해안 절벽에서 자살 기도를 하며 뛰어내리는 소녀가 두 부부의 아이의 혼령인 것인가?

등대 부속 관사 측면으로 돌아가자 두 번째 바위로 이어지는 돌계단,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하야타가 등대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그 갈림길에 등대와 같은 크기의 거대한 하얀 사람이 서 있었다.

거대한 하얀 마물의 탑의 모습이 하야타의 눈에만 보이고 있는 것인가?

고가사키 등대 불빛에 이상이 감지 된 신호를 등대 관제소는 책임 등대장과 항로 포식직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

이 지역 등대를 오랫동안 신임 모토로이 하야타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 한 후 반 쯤 넋이 나간 채로 등대 주변을 돌아 다니고 있는 하야타를 병원에 입원 시킨다.

등대지기를 만난 것만 기억하고 있는 하야타는 4일 만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후에

등대지기 부부와 아이가 행방 불명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이곳 고가사키 등대에서 만나 이야기 했던 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조사에 착수 한 경찰은 하야타가 등대지기 가족을 살해 하거나 모의 자살로 몰고 갔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등대지기 이사카가 남긴 일기 마지막 페이지가 발견 된다.

[오후 늦게 , 이 시기에는 드물게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금세 짙어졌다. 하마치를 무적실로 보냈는데 도무지 무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는 뭘 하는 걸까?

일지에는 이런 내용을 적을 수 없으니 일기에 적는다.

좀 더 여유가 있으면 무적실로 상황을 보러 가야겠지만, 왠지 나쁜 예감이 들어, 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기에 적어둔다. 또 돌아와 계속....]


기이한 괴담이 서려 있는 등대 마다 어디까지가 인간들이 저질렀는지 아니면 기이한 자연 현상에 깃들려 있는 불가사의한 현상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은 일찌감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며 유럽 곳곳에 사람들을 보내 등대 기술을 배웠고 이후 피바다를 일으키며 무자비하게 주변 국가 사람들을 살육했다.

일본의 해안 곶마다 우뚝 서있는 하얀색 등대는 마치 바닷 속으로 가라 앉은 무고한 생명들의 혼령의 탑일지도 모른다.

마을 여자들 가운데 딱 하나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해녀가 입는 하얀 옷 같은 차림새의 사람이 있었다....

아이가 사라진 후 하얀 사람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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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4-25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일본에서는 몇해 전에 나온 것 같던데, 이제야 한국말로 나왔군요 세번째까지 나왔다는 말이 있네요 이번에는 등대지기로 일을 하는군요 등대에 얽힌 이야기도 있는가 봅니다 자기 나라에 도움 되는 거기만 하면 좋을 텐데, 등대 기술로 다른 나라 사람을 죽이다니...


희선

2023-04-25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긋하게 산다 - 저마다 생긴 대로, 열심대충 곤충 라이프
주에키타로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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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터 곤충을 직접 채집했다.

나비는 눈에 보이는 데로 채집했고 여름이면 매미와 메뚜기들을 가을이면 잠자리들이 내 표본집 속으로 들어 왔다.


친 할머니 집 마당에서 목격한 쇠똥꾸리와 말똥구리들의 부지런한 모습은 일기장에 그림으로 남겼고 여름 밤마다 형제들, 사촌들과 함께 사슴벌레와 장수 풍뎅이를 찾으러 다녔다.


우연히 우리 집 마당에서 펄쩍 뛰어 다녔던 개구리 한 마리는 투명 유리관에서 내가 잡아다 주는 먹이들을 먹고 8년이나 살았고 함께 키웠던 두꺼비는 정말 오래 살아서 결국 고등학교 입학 할 때 산 속 어느 사찰 개울가에 놓아 주었다.

학교 과제로 키우기 시작한 달팽이와 귀뚜라미들은 자고 일어나면 너무 많이 태어나 우리 집 마당 생태계를 위협 할 지경까지 이르러서 결국 달팽이의 천적인 새까지 키우게 되었다.

삼촌이 군대에 입대하면서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앵무새와 구관조까지 우리 집에서 살게 되어 나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 까지 이들을 돌보고 관찰하는데 빠듯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매일 두 눈으로 목격한 곤충들의 생태를 빼곡하게 일지에 적으면서 각각의 곤충들이 즐겨 먹는 양식들, 번식 습성, 천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방어 하고 죽음의 순간을 모면하는지 알게 되니 우리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반 친구의 집에 40년 정도 산 거북이가 있었고 그 친구는 유리관에 개미굴까지 있어서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4학년에 올라가서 친구가 준 나비 알에서 애벌레가 부활해서 2주 후 고치로 변해 비 바람을 견뎌내고 새들의 위협에서도 살아 남은 단 두 마리 고치가 늦은 저녁 드디어 두 날개를 펴고 날개 짓을 하며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친구가 준 40개 나비 알에서 10개 애벌레가 부활해서 단 두 개의 고치만이 나비로 태어났다.

나비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곤충을 채집해서 표본집에 넣지 않았다.


직접 키웠던 포유류와 곤충들 모두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와 공기의 움직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 했고 항상 무언가에 대비 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귀가 찢어 질 정도로 매미가 울어 대는 날이 몇 일 지속 되다가 더 이상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하루 종일 먹이들을 물고 다녔던 개미들은 인간처럼 일요일에는 움직임 없이 자신들이 파 놓은 미로 같은 공간에 꼼짝 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려서 마당 한 가운데 움푹 패인 곳에 물이 고이면 개미 떼들은 잎사귀를 움직여서 물 웅덩이를 무사히 건너 갈 정도로 갑작스런 위기를 빠르게 헤쳐 나갔고 꿀 방울을 채취하는 개미를 호위하고 있는 개미 군단까지 있을 정도로 서로 협력했다.


언젠가 우연히 우리 집 마당에서 펄쩍 뛰어 다녔던 새끼 개구리를 유리관에서 키웠었다.


나는 날마다 개구리의 배를 채워 주기 위해 커다란 개미를 잡아 허리를 낚시 줄로 묶어 개구리가 있는 유리관에 넣었던 적이 있었다.

개구리의 혀가 나올 때 마다 낚시 줄에 허리가 묶여 있던 개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다리로 저항을 했고 결국엔 개구리가 먼저 지쳐 버려서 그 개미는 용캐 낚시줄을 빠져나와 유리관 밖으로 나갔다.


대학 졸업 후 고된 직장 생활 중에 곤충들의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주에키타로는 세밀하면서 독특한 화풍으로 일본 오카모토타로 현대예술상에 입선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년 동안 곤충 생태계를 그린 작품을 연재 한 주에키타로의 그림에는 인간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마치 시트콤 에피소드 장면처럼 웃음을 유발한다.

연재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림들이 수록된 <느긋하게 산다>에는 저마다 각자 주어진데로 열심히 사는 곤충들과 이번 생에는 대충 살다 떠나는 곤충들의 모습들이 마치 한국 드라마 <미생>을 연상 시키듯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저는 초등학교 때 부터 생물 사육과 관찰을 좋아해서 학교에서 사육 동아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장수풍뎅이, 사슴벌레를 비롯해 개구리와 송사리를 기르고 그 생물이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관찰합니다. 개구리는 네 마리 기르는데 한 마리 한 마리 성격이 다릅니다. 개구리 뿐만 아니라 곤충인 오이사슴 벌레는 의외로 얌전하고 톱사슴벌레는 폭군입니다. 장수 풍뎅이는 촐랑대서 자신의 먹이인 곤충젤리를 뒤집어 엎기도 합니다.'-주에키타로


아버지가 사다 준 자라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던 나는 어느 날 굵은 펜으로 자라 배에 '불'이라는 이름을 새겨 주었다.

애지중지하게 키우니 그 자라는 어느 날 알을 20개정도 낳았고 그 알에서 부활한 자라의 새끼들은 친 할머니 손에 의해 방생으로 차례 차례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총 네 마리 자라 새끼들에게 만-수-무-강이라는 글자를 배에 새겨 주었다.

나날이 만-수-무-강이 크는 모습을 지켜 보셨던 친 할머니는 자신이 다니는 절 바로 앞 개울가에 만-수-무-강이를 자유롭게 살게 해준다며 내가 스카웃 야영을 떠난 날 모두 방생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할머니가 만-수-무-강의 어미를 방생 하고 몇 달 후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법당 입구에 벗어 놓으신 신발에 자라 몇 마리가 모여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 할머니는 눈이 침침하셨지만 분명히 자라 무리들 중 한 마리 배에 만( 卍)이라고 새겨져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솔직히 내가 키웠던 '만'이 할머니 신발까지 기어 갔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다.

자라의 평균 수명은 30년으로 운이 좋으면 이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

만일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만-수-무-강이가 부디 어디에선가 마음껏 많은 자손을 낳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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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27 0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곤충으로 보는 사람일 것 같기도 하네요 지금은 곤충이 많이 줄었다고 하던데... 글 보기 전에 곤충이 없어지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scott 님은 어릴 때 곤충 관찰을 하셨군요 파브르가 생각나네요 파브르 잘 모르지만... 나비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모습도 보고 자라는 알을 낳고 새끼가 나오는 것까지 보다니... 그런 모습을 보려면 마음을 많이 써야겠습니다


희선

scott 2023-03-27 21:52   좋아요 1 | URL
곤충 정말 많이 줄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매년 나비들도 별로 안보이고 (깊은 산속은 많이 있을지도) 꿀벌들도 드문데 말벌은 엄청 많아 져서 걱정이

파브르의 곤충기 초딩 시절 저의 최고의 책이였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곤충은 전부 키워보고 싶어 할정도로 ㅋㅋ

나비가 고치에서 날개를 펴는 순간 정말 감동적이여서
너무나도 상세하게 일지를 기록해서 개학후 숙제로 제출하니 담임이 감동 먹고
저희집 고치 교실로 옮겨 와서 나비 탄생하는거 모두들 관찰 한 적도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3-27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채화 그림 너무 좋네요!
저도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달팽이 2마리를 줬는데,
손톱만하던 달팽이가 아이 주먹보다 커지고 알을 얼마나 자주, 많이 낳던지,, 무서웠습니다;;;
직접 키워봐야 아는 경험이었어요^^

scott 2023-03-27 21:53   좋아요 2 | URL
그림마다 곤충들의 표정이 다양한데 실제로 이 책의 작가가 곤충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달팽이 번식력보다 더 무서웠던건
귀뚜라미였습니다
저희집 식탁에도 털썩
욕실에도 둥둥 ㅋㅋ
심지어 인터폰 전화기에도 펄쩍!
한 밤중에 귀뚜라미들이 마당에서 합창 할 때 소름이 ㅋㅋㅋ

hnine 2023-03-27 14: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8년을 키운 개구리 모습이 궁금해요. 자라를 사다주신 아버님...
자라 배에 새기신 글자들이 모두 불심 깊은 글자들이니 모두 자연 속에서 남은 생을 잘 누렸으면 좋겠어요.
혹시 키우면서 관찰일지 같은 것은 안쓰셨는지. 아마 위의 책 못지 않았을텐데요.

scott 2023-03-27 21:56   좋아요 1 | URL
그 개구리 저희집 마당에서 발견 했을 때 제 엄지 손톱 크기 였는데 나중엔 엄지 손가락 크기로 자랐습니다
8년 동안 제가 주는 것만 먹어서 야생 본능이 제로 ㅋㅋ

자라 번식도 무시 무시해서 알을 낳는 데로 저희 할머니 손에 방생을 ㅋㅋㅋ

관찰일지는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써서 초딩 졸업까지 썼습니다
각종 대회상은 전부 휩쓸어서
그야말로 저희집 온갖 동식물들의 천국이였습니다
비 온 뒤에 마당에서 지렁이 잡아 키우는 아이들 먹이로 주기도 ㅎㅎㅎ

어쩌다냥장판 2023-03-28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곤충을 직접.. 저는 이상하게 머리가슴배로 나뉘는 곤충과 다리가 일단 6개로 시작하는건 겁이 났어요 쥐도 귀엽고 개구리도 귀여웠는데 나비나 잠자리 매미 메뚜기는 기겁해서 머리카락이 쭈뻣하고 서고 등에서 땀이 날정도.. 그래서 곤충은관련 과제 같은건 제출한적이 없었네요 ㅎㅎ
지금도 고양이 강아지 토끼 다람쥐 다 너무 좋은데 곤충은 가까이 가기 어렵네요 ㅋ

scott 2023-03-28 22:29   좋아요 0 | URL
저는 쥐과 동물을 무서워 합니다 ㅋㅋ(햄스터도 )
파충류 이구아나도 좀 (혀가 정말 길어서 무섭 ㅋㅋ)
저희 집 정원에 커다란 나무(배나무) 아래 뿌리 깊숙한 곳에 두더지 가족들이 굴을 파 놓고 살았었습니다.
제가 돌아댕길때는 두더지 가족들은 쿨 ZZZZ
늦은밤에 돌아댕겼던 두더지들 ㅋㅋㅋ

메뚜기 보다 사마귀들이 지능이 좀 더 높아서 톱질하듯 싸움질 하는거 본적도 ㅎㅎㅎ



망고 2023-04-02 0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때 자라 길렀었는데 어느날 자라가 탈출해서 찾을 수 없는 상태였어요ㅠㅠ 근데 1년후 저희집 마당에서 발견했는데 쬐그맣던 녀석이 무섭게 커져서 너무너무 징그러워서ㅋㅋㅋㅋ모른척 했어요 그후 어찌 되었는진 모르겠네요 마당에서 계속 살다가 어디로 갔는지...가끔 그 커다래진 덩치 생각하면 소름이 돋곤 했답니다ㅋㅋㅋㅋ전 어릴때 콩벌레 잡아다가 인형옷장에 가득 넣어놓고 흐뭇해했었는데 엄마가 기겁을 하셔서 다 놔줬던 기억도 있네요 콩벌레 귀여웠는데^^;

2023-04-02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육왕 - 트랙의 왕, 러닝슈즈의 왕
이케이도 준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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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는 올해 예순 다섯 살, 창업한 지 백이십 년이 넘은 히시야 다비의 4대 사장이었다. 초대 사장은 상공회의소 회장도 역임한 중진인데, 지난 오십 년간 눈에 띄게 쇠퇴하여 결국 폐업에 이르렀다.]

일본 전통 버선(다비)의 제조 기업 <고하제야>는 백년 전 독일에서 신발을 꿰매기 위해 수입한 재봉틀로 '다비'를 손으로 꿰매듯 섬세한 바느질처럼 제작하며 동종업계에서 매출 1위를 달렸던 중소 기업이였다.

1913년, 세계 1차 대전 이 발발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창업한 <고하제야>는 전국으로 유통되는 '다비'를 약 80퍼센트 생산 할 정도로 사업 규모가 컸지만 헤이세이(1989-2019)시대부터 생산 판매가 급격하게 줄어 버렸다.

더 이상 일본 전통 옷을 입지 않는 시대에도 옛날 방식을 고수하며 스물 일곱 명의 직원들과 힘겹게 사업을 이어 왔지만 결국 폐업 절차를 밟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57세로 가장 오래 근속한 직원의 나이는 일흔 다섯 살이다.

직원들은 전국에서 들어 오는 반품을 폐기 처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하고 있었고 회사는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이자가 나날이 눈덩이 처럼 불어 나고 있다.

강습이나 지역 전통 행사에서 신는 '다비'를 제외하고 일본 사회에서 '다비'라는 존재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지만 <고하제야>의 사장은 일본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누군가는 반드시 '다비'를 찾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반면, 그의 아들 미야자와는 주요 백화점을 둘러 보는 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 했던 백화점 단골 거래처 사람들 부터 쓴 소리를 듣고는 냉정한 시장의 현실을 파악한다.

어느 때 처럼 백화점을 돌아 보던 어느 날, 아들이 스니커즈 꼭 사 달라는 문자를 발견하고 스니커즈 매장에 들어 가 러닝 슈즈 선반에 시선을 멈추고는 기묘한 신발을 만져 본다.

그가 발견한 신발은 앞 코 부분이 둥그렇지 않은 대신 다섯 개의 발가락이 달려있고 발 뒤꿈치 부분 쿠션은 납작했다.

그 신발은 비브람 사의 '파이브 핑거스'로 다섯 발가락을 앞코 부분에 고스란히 넣고 지면 위를 딛고 걸을 때 마치 맨발로 편안하게 걷듯이 인간의 발과 밀착되게 디자인 된 제품이다.


'지금까지의 신발에는 없는 '맨발 감각'으로 달릴 수 있어서, 달려 보고 나니 다른 건 신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번 신어 보시겠습니까?'


다비 제조 업체 <고하제야>는 전 직원이 맨 발로 뛰어도 눈덩이 처럼 불어난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할 정도로 이익은 커녕 판매량 보다 반품 되는 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직원 수를 줄여 버려야 재봉틀 기기를 돌릴 기름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회생 불가능한 상태다.

오로지 전통적인 생산 방식만 고수 한 채 변해 버린 시대의 조류를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음 <고하제야>는 과연 소비자들의 취향과 눈부시게 발전 된 고도화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시대에 마라톤을 취미 삼아 달리기에 몰두 하는 이들에게 신발은 제2의 심장이다. 그렇다면 가장 편안하고 인간의 주법에 맞춘 러닝 신발이 있다면, 아니 전통 양말 생산 업체가 마치 발에 밀착된 양말 같이 편안한 신발을 제조 하게 된다면 시장은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은행은 더 이상 대출을 해주지 않고 어느덧 직원 수는 20명으로 줄어들었다.

마라톤 슈즈를 생산하기 위해 직원들은 각기 다른 신발을 신고 또 다른 몇 명은 다비 모양을 한 신발 '파이브 핑거스'를 신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달려서 탄생 시킨 신발은 <육왕陸王>으로 우연히 마라톤 경기를 보고 만들기 시작한 마라톤 전용 신발은 이제 회사의 존폐 여부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제품이 되었다.

회사는 좋은 소재를 구하고 그 러닝화를 신어줄 선수를 찾아 내서 경기 중에 안타깝게 부상 당한 유망주에 발에 <육왕>을 신게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교다 시에서 다비를 제작하는 고하제야라는 업체 입니다. 저희는 백 년 역사를 가진 다비 제작업체이지만, 이번에 러닝슈즈 '육왕'을 기획하고 개발했습니다. 지면을 붙잡는 독특한 감각과 기능성을 겸비 하여 기존 러닝슈즈 '육왕'을 기획하고 개발했습니다. 지면을 붙잡는 독특한 감각과 기능성을 겸비하여 기존 러닝슈즈에는 없는 착화감을 구현했습니다. 인간 본연의 주법인 미드풋 착지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부상당하지 않는 주법이야말로 승리를 향한 최단거리입니다. 괜찮다면 한번 시험해주시겠습니까, 수정 사항이 있다면 모기 씨가 납득할 때까지 고쳐나가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 드립니다. -고하제야, 미야자와 고이치]

반건양근건 부분 손상과 왼발 발목에 있는 힘줄 손상을 입은 마라톤 선수 '모기'는 기존에 고수 했던 주번이 아닌 <육왕> 신발에 맞는 주법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부상당하지 않는 주법이야말로 승리를 향한 최단거리'

후원이 결정된 선수에게는 러닝슈즈가 무상 지급되고, 올림픽 출전을 앞 둔 정상급 선수에게는 족형을 떠서 발 모양이나 발등 높이, 디자인까지 맞춤 제작 신발을 제공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뛰는 마라톤 대회에서 육상 선수들에게 신발을 후원하는 업체는 동종 업계에서 1위와 2위를 다툴 정도로 뛰어난 제품이여야 하고 후원한 선수가 상위권 순위에 들게 되면 그 회사는 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지게 될 것이다.

회사는 선수들과 함께 달리며 선수가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해도 기록이 이전 보다 나오지 않아도 신발을 신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고하제야는 마라톤 시장에 내놓을 신발 <육왕>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재개발, 자금충당, 직원들의 피,땀, 눈물을 모아 마침내 선두주자이자 감히 넘볼 수 없었던 대기업 '아틀란티스'를 누르고 최고의 런닝화 '인간 본래의 주법'으로 달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낸다.

마라톤의 출발 지점에 선 선수들의 마음은 똑같다.

-무사히 레이스를 완주 할 것

-자신의 기록을 뛰어 넘을 것

그리고 대회 우승자로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인생의 좌절을 맛본 마라톤 유망주 '모기'가 <육왕>을 신고 달린다.


[모기는 하코네역전마라톤에서 달렸을 때, 흥분과 설렘으로 몸이 떨리던 그 감각을 절실히 떠올렸다. 대학 역전 마라톤의 화려한 무대 이후 삼 년, 좌절하고 꿈도 희망도 잃어본 자신에게 이제 무서운 것은 없다.]

자, 이제 역전 마라톤 대회 출발로 부터 남은 시간은 3시간 29분

드디어 <육왕>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고 모기는 맨발로 달리듯 육왕을 신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역전 마라톤 지역의 최대의 고비 구간 '6구간' 고저차가 심하고 구불 구불한 도로를 속도감 있게 질주 하면 우승의 빛이 보일 것이다.

'육왕에 담긴 것은 러닝슈즈로서의 성능만이 아니다. 개발에 종사해온 사람들의 꿈, 모두의 꿈이 이 한 켤레에 응축 되어 있다.'

바람의 세기가 급격하게 바뀌더니 5킬로지점을 지난 모기의 등을 향해 몰아 붙였고 모기는 바로 앞 선수를 추월 하지 않고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 하고 달린다.

언덕을 넘자 땅은 급강하듯 미끄러지더니 모기의 발에 바람의 세기에 맞춘 속도감이 붙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선두 그룹을 앞 지른 모기는 드디어 수백명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그곳, 결승점을 통과 한다.

언제 망해도 어떤 은행도 구제해주지 않았던 고하제야가 생산한 신발 <육왕>

새해 역전 마라톤 대회에서 육왕을 신은 모기가 1등 메달을 목에 걸었다.

백년의 세월 동안 오로지 하나만 고집했던 고하제야가 새로운 시대의 조류에 성공적이게 올라타자 경쟁 업체의 반격이 시작된다.

동종업계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의 서슬퍼런 반격에서 과연 영세업체인 고하제야가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아무리 주문이 쏟아져 들어와도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업체들은 대규모로 제품을 생산할 여력이 없다. 마음껏 늘릴 수 도 없고 적극적으로 협력 업체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후원을 계속하려면 결국엔 설비에 투자를 해야 하고 그러면 또다시 빚을 지게 되어 매달 늘어나는 이자를 갚아 나가면서 생산 기계를 돌릴 수 없다.

게다가 마라톤 선수들에게 엄청난 후원을 퍼 붇는 대기업의 공세에서 영세 업체들은 낄 자리 조차 없다.

대기업은 첨단장비를 동원해 런닝화 개발에 나서고 육왕에 쓰인 신발 밑바닥 소재 특허인 '실크레이' 기술을 가로채서 런닝화 천을 대주던 중소기업에게 육왕을 생산하는 ' 고하제야'와 거래를 끊게 만든다.

고하제야는 세계적인 아웃도어 생산 업체에게 생산 설비 지원을 받는 대가로 자회사로 들어 갈지 아니면 대기업의 손아귀에 먹혀 버릴지 또 한 번 막다른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전통을 고수 하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고하제야는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망하는 건 한 순간이지만 자고 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술력을 가진 영세업체가 대기업을 상대로 시장에서 경쟁해서 살아 남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라톤 경기에서 타인의 페이스로 달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지만 그렇다고 지난 번 실패를 했던 자신의 주법과 페이스를 지키기만 해도 승리의 고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육왕>을 신고 복귀전을 뛰는 모기 히로토 선수

그가 통과한 결승점은 <고하제야> 기업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모기 히로토 선수가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달렸던 승리의 레이스는 고하제야 기업을 이끄는 미야자와의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승리를 믿고 정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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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02 0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몇해 전에 드라마로 봤어요 드라마 제목만 봤을 때는 <육왕>이 뭔가 했어요 며칠전에 책방에 갔더니 이 책이 보이더군요 그때는 언제 나왔는지 몰랐는데 나온 지 얼마 안 됐던 거였네요 전통을 지키는 것과 지금 시대를 반영하는 것, 두 가지를 섞기 어렵겠지요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에 기계가 아닌 사람이 했을 때 훨씬 잘 만들었다는 게 나왔던 것 같네요


희선

scott 2023-03-02 11:34   좋아요 2 | URL
육상의 왕 ㅋㅋ
그신발 신으면 달리기 속도가 좋아진다고 하네요
드라마는 비지니스계 선악대결
힘을 모으고 정직하게를 외치는 교훈 드라마😄
원작도 좋고 드라마도 재밌어서
한자와 나오키 팬으로 이분책은 즐겨 읽고 있습니다 일본도 더이상 대를 잇는 장인 정신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도 여기도
인구 소멸 시대

어쩌다냥장판 2023-03-02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많이 봤던거 같은데 신발을 뜻하는 거였군요 순간 읽으면서 다친 모기가 신고 달린다고? 그랬다가 ㅎㅎ 사람이름이 모기인것도 재밌네 했네요
재밌을것 같아요 ~~ 드라마로도 나왔다면 인기가 많았겠는데요

scott 2023-03-02 23:33   좋아요 1 | URL
육상의 왕!
육지의 왕! ㅎㅎㅎ

일본인들에게 모기는 울 나라 모기가 아닝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