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이야기 2 : 전쟁의 서막 1770~1780 - 자율이 강제를 이긴다 미국인 이야기 2
로버트 미들코프 지음, 이종인 옮김 / 사회평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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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 영국의 노스 행정부는 거대한 식민지 미대륙과의 분쟁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한다.

비교적 온순한 성품에 평화적인 분위기로 영국 정계를 이끌었던 노스는 미 대륙인들의 분노를 일으켰던 톤젠드 관세를 철폐하면서 표면상으로 미국과 비교적 평온한 기류를 주고 받았다.

식민지를 괴롭혀 왔던 통화법도 수정하니 3년 동안 영국 정부는 식민지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영국은 마음만 먹으면 거대한 미대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었다.

영국의 속내를 알아차린 미국인들은 영국의 온건한 정부 정책에 대해 큰 동요나 저항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기존의 식민지 경영에 대한 낡은 법안을 포기 한다면 어떤 식으로 든 저항이나 봉기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며 영국에서 새로 내놓는 법안에 촉각을 기울였다.

하지만 쉽사리 법령을 뜯어 고치거나 수정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영국 의원들은 <차>에 대한 관세는 여전히 굵은 고딕체로 남겨 두었다.

1771년에는 관세 문제 보다 더 심각한 갈등인 종교적 자유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국 국교회 교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프로테스탄트들 신자들은 영국 국교회가 미 대륙 전체로 정치 세력화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앞 세워 국교회 반대 종파들을 하나로 집결하기 시작한다.

장로교, 루터교, 네덜란드 개혁교들을 중심으로 종교의 자유는 곧 시민의 목소리, 자유로 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교회 수장들이 차지 하고 있는 주요 대학들의 학장 자리를 차지 하면서 대학의 입학과 졸업식에서 국교회 예배를 없애 버린다.

영국에서 파견된 주교들이 차지 하고 있는 각 주에 퍼져있는 교회당에서 끊임없는 분란이 일어나고 이는 또다시 관세 징수 문제로 불이 붙어가게 된다.

지난 3년 동안 과세를 올리지 않은채 온건한 정책을 펼쳤던 영국은 막대한 양의 밀수 상품들로 뒤덮여 가고 있는 보스턴 항구로 세관 징수관을 파견한다.

1770년대 보스턴 항만에는 네덜란드 상인들과 교류 하는 불법 밀수업자들의 천국이였다.

이들은 무기로 무장해서 밀수 혐의를 포착하고 체포 하려는 세관원들을 납치 하거나 구타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보스턴 항구가 무시 무시한 밀수업자들의 천국 이였다면 로드아일랜드 항구는 어디서 폭약이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으로 현지 보안관과 밀수 업자가 한 팀으로 움직여서 흔적도 없이 영국에서 파견된 세관원들을 폭약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급기야 로드 아일랜드에서 영국 세관원들이 밀수 업자들을 단속하려고 탑승한 배 '개스피호'를 불태워버리자.영국 내각은 이 사건을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한다.

1773년 여름 로드 아일랜드 주 정부는 자국민은 무죄라는 보고서를 영국으로 보낸다.

시신조차 찾지 못했고 목격자들 조차 찾지 못했던 영국은 개스피호 사건을 종결 시키자 뒤이어 보스턴 통신 위원회에서 [식민지에 사는 남녀 노소 크리스천이 영국 신민으로서 누리는 식민지인의 권리를 선언하고 그 권리를 식민지의 여러 지역에 알리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행된 그 권리의 침해와 위배 사안을 온 세상에 퍼트리고 각 지역이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한다.]는 선언을 한다.

이 선언문은 소책자로 인쇄되어 주 전체로 퍼지면서 시민들은 '영국인들은 우리 집과 침실 그리고 키우는 개에게도 관세를 물릴지 몰라. 우리가 먹고 입는 모든 것에 저들이 세금을 붙여서 탈탈 털어가고 있어. 우리는 저들의 하인이 아니야.'


어떤 권력도 민중이 자유를 적법 하지 않은 방법으로 뺏을 수 없었다.

미국 시민들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영국 정부에 고스란히 양도 할 생각이 없었다.

빠른 속도로 보스턴의 선언문이 여러 주로 퍼지자 영국에 절대적으로 충성 했던 매사추세츠 총독 토마스 허친슨은 자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나는 영국 의회의 지고 한 권위와 식민지의 완전 독립 사이에 아무런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메리카인이 누리는 자유는 영국에서 부여한 자유로 우리 모두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 하면서 자유를 제한 할 수 밖에 없다고 항변 했다.

허친슨 총독은 본국에서 48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미 대륙에서 본국과 똑같은 자유를 누리게 해주는 정부, 미국 시민에게 안전한 삶을 보장 해 줄 수 있는 자치 정부가 없다고 믿었다.

본국과의 단절은 또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이어져 결국 미 대룩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허친슨의 예측이 미 대륙인들의 저항 정신에 불을 붙여 버렸다.

1773년 허친슨 총독의 서안을 받기 전 영국 의회는 자신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재정적 위기에 빠진 동인도 회사를 구제하기 위한 <차세법>을 통과 시킨다.

이 법안은 식민지에서 거래 되는 모든 종류의 <차>에 대한 독점권을 영국 정부가 가져 간다는 것이였다.

미대륙인들은 <차세법> 통과는 곧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차세법>이 통과 되기 이전에 미국인들은 합법적으로 <차>를 수입 했었다.

상당량의 <차>들이 네덜란드인에 의해 불법으로 밀수 되었지만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들어 온 것만 진품<차>로 믿고 밀수 된 차 보다 배로 비싼 영국산<차>를 마셨다.

하지만 영국 의회에서 <차세법>이 통과 되자 파운드당 3펜스의 관세가 붙어버린 <차>를 수입하는 업자들은 '매국노'라는 낙인이 찍혀 버린다.

영국 의회는 미국인들에게 어떤 이유로 차에 대한 과세를 붙였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마시는 차 까지 관세를 붙이는 영국인들에게 노예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민심이 들끓어 오르자 11월에 들어서서 동인도 회사에서 보내는 일부 차에 대한 관세는 붙지 않는 다고 공표 했지만 앞서 몇 해전에 인지세법과 톤젠트 법안을 폐기 시킨 위력을 행사 했던 시민들은 필라델피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

의회에 로비한 주요 관계자들, 동인도 회사 대리인들의 사퇴를 받아내는 위원회가 출범 되고 부유한 퀘이커 상인들은 단합해서 주요 정치 인사들을 끌어 내린다.

거침없는 행동과 단합으로 똘똘 뭉친 민심의 회오리는 동인도회사 화물선이 도착 하는 항구로 몰려 들게 만들었다. 이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정치인들과 총독은 앞서 발생한 사건들을 잘 알지 못한 채 법을 지키는 수입업자와 밀수 업자들 모두 이익을 본다며 모든 차를 압수 하기 시작한다.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거센 저항을 하던 시기에 보스턴의 기류는 오히려 차분하게 흘러 갔는데 그 이유는 오랜 세월 다양한 방법으로 유통 되었던 밀수 된 차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보스턴 시민들에게 차에 대한 관세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스턴의 주요 신문들이 앞 다퉈 차세법 내용을 요약 게재 해서 식민지에 대한 영국 의회의 폭정을 시민들에게 상세하게 알린다.

차에 대한 관세를 시작으로 설탕-당밀-와인등으로 미국 시민들의 식재료에 서서히 관세가 붙어 나갈 것임을 지적한 미국의 주요 언론을 통해 보스턴 시민 위원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1773년 11월 28일 대량의 차를 싣고 온 첫 배인 '다트머스호'가 항구에 도착한다.

세관에 도착이 기입 되는 순간 이 배는 20일 안에 화물에 대한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에 지불 하지 않으면 이 배의 화물 전체가 압류되기 때문에 다트머스호의 선주 프랜시스 로치는 화물을 하역 하고 고래기름을 배에 싣고 동인도 회사의 지시를 기다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총독도 차후 무슨 일이 발생 하더라도 일단 법규는 지켜서 모든 사람들이 20일 안에 세금을 납부 해야 상인들이 손해를 크게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분고분 세금을 내지 않기로 합의한 상인들은 5000여명이 집결해서 화물에 싣고 온 차를 영국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관징수관인 리처드 해린슨은 1768년 대규모 폭동 당시 세관 징수관이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미국 시민들에게 어떤 보복을 당했는지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회항 통행을 거부한다.

회항 신청을 거부하는 이들과 회항 해버리려는 이들은 서로 6시간 넘게 대치하다가 전쟁 속으로 뛰어드는 병사들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선창을 따라 달려 다트머스호가 정착된 부두로 모인다.


인디언 복장을 한 50여명의 남자들이 배에 승선해서 차가 든 궤짝을 갑판 위에 올려서 부셔버리고 보스턴 항구 앞 바다로 던져버린다.

배 주변의 바닷물은 온통 차 잎으로 뒤덮였지만 폭도들은 배를 파손하지도 않았고 선장이나 선원들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한 달 후 머나먼 곳에서 이 소식을 들은 영국 의원들은 보스턴 시민들의 폭정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식민지 상인들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 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곳곳에서 저항의 움직임 소식이 들려 오자 이로 인해 미 대륙이 완전히 독립을 울부짖는 다면 사태가 심각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무력을 사용 해서 라도 13개 미 대륙의 식민지 모두를 굴복 시켜야 함을 통감하며 의회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서로 충돌 하며 미 대륙을 엄하게 다스릴 '참을 수 없는 법'인 5대 법 가운데 첫번째로 <보스턴 항구법>을 통과 시킨다.

이후 메사추세츠 규제법등 영국 통치에 대한 저항을 거세게 하는 주에 대한 강력한 처벌법을 차례차례 통과 시키며 자국의 권위와 이익을 앞세운다.

사정이 어떻든 '모든 식민지를 영국에 복속 시키고 이에 대해 저항하는 자들은 구속한다.'는 선언은 미국 시민들에게 도저히 참고 견디기 힘든 모욕이였다.

보스턴 시민들은 <보스턴 항구법>과 비슷한 법이 곧 미국의 13개 주로 퍼져서 자유를 억압 하게 될 것 이라며 기술자들도 함께 저항하고 봉기 하자고 제안 한다.

각자의 기술로 이익을 취했던 기술자들은 수입품으로 먹고 사는 상인들의 단체 행동에 선뜻 나서지 않았지만 주 정부에서 대륙 회의 개최 하지 놀라운 속도로 합의 하고 하나로 뭉친다.

1774년 9월 부터 10월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된 1차 대륙회의에서 아메리카 권리의 바탕은 무엇인지, 그 권리를 어떻게 옹호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사항이 핵심 논의 주제였다.

1차 대륙회의 에서 장시간 토론이 이어졌지만 쉽게 합의를 도출 하지 못한다.

13개 주의 각기 다른 이해 충돌과 이견이 있기에 '영국과 아메리카의 상호이익'은 서로 존중 되어야 한다는 포괄적 대의 제시를 하고 선언문 속에 수입 거부, 소비 거부 , 수출 거부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포함 시키기로 합의 한다.

청교도와 침례교를 믿는 주들은 서로 다른 종교에도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13개주의 주민들의 공동적 이해 관계를 함께 묶어 '검소, 절약, 근면,투계 과시적 행사 ,연극, 기타 값비싼 여흥과 오락을 억제하고 불용한다.'는 가치관으로 합심해서 아메리카인은 공공의 복지에 관한 헌신은 오로지 정치적 자유에서 나온다는 점을 선언문을 통해 드러냈다.

평화적이면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영국 의회의 <참을 수 없는 법>에 대항한 제 1차 대륙회의의 선언문을 받은 영국측은 표면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지만 미 대륙의 13개주 주요 정치 인사들 중 영국에 우호적인 인사들을 포섭해서 분란과 분열을 조장시킨다.

대륙회의 의원들은 미국인의 과반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13개 주 전체 인구 중에 약 15퍼센트 인구가 거주 하고 있던 메사추세츠 서부 지역의 인사들이 선언문에 가장 먼저 반기를 들었고 뒤이어 가장 부유했던 버지니아주에서 소규모 정치 혁명이 시작되었다.

민병대를 조직 하고 무기를 모으는 시민들 항구 곳곳에 도착하는 동인도 회사 배를 불태우며 항거 하자 영국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세금은 부과 해야 한다. 절대로 식민지의 저항에 굴복 하지 말고 냉정한 태도로 채택된 주요 법안을 철저하게 이행 하면 결국 저들은 우리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영국은 보스턴처럼 각 주의 항구에 몰려든 분노한 시민들은 상인과 농부들로 일시적으로 분노하고 집결해서 투쟁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 했다.

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동인도 회사 보안관들은 사태가 심각하다며 본국에 증원군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인들의 저항에 대한 상세한 보고는 영국 의회에 매일 전달 되었지만 의원들은 <참을수 없는 법>의 이행만 밀어 붙이고 있었다.

미국인들의 저항은 날이 갈수록 점점 거세져서 '전쟁으로 영국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독립 할것인지.' 결정하라며 주 정부에 대답을 요구 했다.

미국은 보스턴에 주둔 하고 있는 영국군을 철수 하고 식민지인의 동의 없이 식민지에 과세 하지 않는다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며 영국에 지배나 종속 되지 않는 미 의회의 주권을 재 확인하겠다고 영국 측에 통보 한다.

영국은 겉으로 평화의 제스처로 응답 했지만 상하원은 반란 상태의 식민지를 영국의 법률과 주권에 복종 시키려면 무력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건의를 국왕에게 제출하고 국왕은 이를 승인한다.

영국은 즉각적으로 보스턴의 찰스 타운의 화약과 케임브리지의 대포를 압수 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의 극렬한 저항으로 실패로 돌아 간다.

순식간에 4천명의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영국군은 자발적으로 지원한 보스턴 시민 민병대에 투쟁에 벌벌 떨고 어떤 화약도 대포도 압수 하지 못한다.

영국측은 미 대륙에 시민 복장으로 위장한 정찰 군인들을 파견 하지만 시민들의 예리함에 신분이 금새 탈로 나버린다.

영국은 시민 민병대의 우두머리와 각 주에 흩어진 민병대원들의 주요 인물들을 납치 하거나 체포 할 계획을 세우는 동안 밀수꾼들은 과감하게 유럽에서 총기를 밀수해서 미 대륙 곳곳으로 보낸다.

시민들로 구성된 민병대원들은 애초 부터 구체적인 항거 계획이나 협동 단결 없이 어느날 불쑥 모여든 이들로 구성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장교 출신,해병출신, 정보병 출신 시민들이 합류 하면서 400여명의 병력이 집결하는 특공대의 모습을 갖춰 나간다.

병력을 수송할 소형배들이 속속 강에서 부두로 이동했고 보스턴 일대를 가로 질러 흐르는 찰스 강에 떠 있는 영국 군함으로 향했다.

영국 군함은 즉각 경고를 날리며 소규모 정찰 장교단을 파견 했지만 현지인들만 파악 하고 있는 지형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어떤 정보도 수집하지 못한다.

1775년 4월 18일 영국군은 대포를 보유 하고 있는 콩코드 민병 부대를 비밀리에 공격하기 위해 새벽부터 보스턴을 출발했지만 이미 다양한 첩보 경로로 이 상황을 알아차린 콩코드 민병 부대는 영국군이 도착하기만 기다리며 정확한 위치에서 공격할 대포를 설치한다.

콩코드 민병 부대를 지원 할 세력들이 도착하자 콩코드 민병대는 북소리를 울리며 위치를 알려준다. 영국군은 멀리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를 통해 민병대원 부대의 규모를 짐작하며 총 6개 중대를 분산 시킨다.

400여명의 민병대원들은 6개 중대 영국군에 맞서서 울창한 삼림 속 50미터 폭의 강을 하나 두고 종대를 유지 해서 대응 사격을 하는 방식으로 맞붙었다.

서로 사정 없이 쏘아 대는 교전 중에 천 여명의 렉싱턴 민병 부대가 합류 하면서 대포를 쏙 시작했다.

전투는 점점 살벌한 양상으로 이어져 농민 출신 부대원들이 휘두르는 손도끼와 몽둥이로 영국군에 달려 드는 동안 영국군의 또다른 중대는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급습해 불을 지르고 약탈을 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총 273명의 사상자를 냈고 미국 측 사상자는 총 95명이였다.

군인들과 맞서 싸운 것이 아닌 반란을 일으킨 민중과 맞붙은 전투는 빠른 속도로 13개주 식민지로 퍼져 나가면서 미국 시민들의 가슴에 복수의 열망을 피어 오르게 만들었다.

이 전투는 모든 인종과 계급을 막론하고 오로지 무력 사용 만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믿게 되고 제2차 대륙회의 소집 일정을 앞당긴다.

1775년 6월 14일 13개 식민지 대표들은 군대를 결성하고 다음날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영국 군과 전쟁 준비에 돌입한다.

미국에서 생산된 자원이 필요했던 영국은 해군함을 보내 주요 항구 지역에 주둔하며 강력하게 대응 했지만 무장한 시민들이 불시에 출몰해서 던지는 수류탄과 언제 어디서든지 날아 오는 총알 세례와 대포에 포위 된다.

대규모로 발발한 벙커힐 전투에서 촘촘하게 전선을 구축하고 대항한 아메리카군 민병대에 무참하게 무너진 영국군이 대패 하며 찰스 타운 넥으로 피신해서 그곳 지역을 일시적으로 점령한다.

오합지졸의 민병대원들이 자잘한 전투에서 승리 하는 동안 영국군은 잘 훈련된 장교와 군 장비로 무장한 군인 오천명을 미 대륙으로 보내고 드디어 보스턴 캠브리지에 도착한 지휘관 워싱턴은 부실하게 운영되고 조직된 군대를 재정비해서 전선 상태를 점검한다.

워싱턴은 보스턴을 공격하는 영국군에 맞서는 것과 동시에 영국군부대의 주요 전선 지역인 캐나다 공략을 계획한다.

1775년 1년 동안 보스턴과 캐나다 퀘벡에서 동시 다발로 전투가 이어지자 보급 물자가 끊어진 영국군이 1776년 3월 황급히 영국군으로 돌아간다.

보스턴에는 더이상 영국군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지만 다른 주들은 절반의 승리로만 보고 독립 혁명의 시기로 넘어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다.

1776년 외국 세력의 지원을 모색했던 대륙회의 의원들은 타협보다 오로지 독립만이 미국이 살아갈 길이라고 동의 한다.

'모든 식민지가 연합을 하면서 대륙헌법의 범위를 규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식민지를 각각 주권 국가 또는 다수의 연합 주권국가들로 선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국과 조약을 맺어야 한다.'


급진파와 온건파 사이에 다양한 이견이 오고 갔지만 결국 1776년 5월 15일 독립 선언문 서문의 초안이 완성된다.

'외국 용병의 도움을 받는 영국 군대가 식민지의 선량한 거주민을 살해 하기 위해 파견됐다. 따라서 식민지 거주민이 영국 왕실의 통치를 받는 정부에 충성 맹세를 바치는 것은 이성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다.

왕실이 내세우는 권위를 기반으로 한 모든 활동은 불필요하며 제압돼야 한다. 식민지 인민의 권위 아래에서 행사되는 모든 정부 권력은 적들의 적대적인 침략과 잔인한 파괴에 맞서서 거주민의 목숨,자유, 재산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부적 평화,미덕, 질서 등을 보존 하는데 적용돼야 한다.'

이 선언문 초안은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이 기틀을 잡았다.

독립 선언서에는 그동안 영국과 벌여온 갈등의 역사를 상세히 거론하면서 오로지 영국과의 결별만이 모든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선언문은 각주의 시, 읍, 촌에 사는 이들에게 알려졌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로 부터 양도 불가한 권리를 부여 받았는데, 생존, 자유, 행복의 추구등이 그러한 권리'라는 문구가 명시된 문장에서 대다수 아메리카인들은 영국에 종속되지 않은 미 대륙의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충분하게 이해 하지 못했다.

당시 각주의 부유한 농장주들과 상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서 재산 처럼 소유하고 있었다.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 주장한 독립 선언서 안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 했다.]는 문장은 흑인 노예도 백인 주인도 동등한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당시 노예 소유주였던 제퍼슨은 어느 면에서 흑인도 백인과 동등하다고 생각했지만 17세기 부터 미 대륙으로 끌려온 노예들이 현재 미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백인 주류들과 함께 평등한 지위를 누리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제퍼슨은 영국과 프랑스인이 강력하게 구별 지은 피부색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깊은 불신과 악 감정을 쌓아 올려서 어떤 도덕적 기준으로도 용납 되기 힘든 노예 제도가 미대륙에서 완전하게 사라지기 힘들다는 것을 <버지니아주에 대한 노트>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제퍼슨의 독립 선언서 초안에는 영국의 국왕을 아메리카 노예제를 영속 시키고 인종간의 갈등과 폭동을 사주 한 자로 지목했지만 대륙회의 에서 이런 갈등의 소지를 유발하는 문구는 삭제 되고 제퍼슨이 주창한 아메리카인의 정서적 유대 관계 자선, 상호 배려, 상호 사랑만이 앞으로 태어날 세대에게 물려줄 자산이라는 것을 상기 시킨다.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제 2차 대륙회의에서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다.


당시 미 대륙의 백인들은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오로지 영국으로 부터의 자유와 부당한 세금 부과에서 벗어나는 것만 미국이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규정했고 대다수 백인들은 자신의 재산은 목숨처럼 지킨다는 기준을 수립했다.

그들은 기꺼이 영국군에 대항했고 노예제를 지키며 재산을 축적하며 영국의 어떤 불의와 피박에도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을 정도로 투쟁했고 항거 했다.

하느님의 눈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해도 미국 백인들에게 흑인 노예의 자산은 영국에게 조차 양도 할 수 없는 권리 였다.

따라서 미대륙의 백인들의 독립은 곧 영광스러운 대의로 영국에 대항하는 전쟁은 운명이였다.


1776년 9월 부터 영국군과 본격적인 전쟁을 벌인 미국은 워싱턴이 이끄는 진지전과 방어적인 전략으로 롱아일랜드-뉴욕 브루클린 하이츠-맨해튼-뉴저지-펜실베니아에서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허든슨 강에서 대격전을 펼친다.


오합지졸의 부대원들과 취약한 군장비로 힘겹게 전투를 치뤘던 워싱턴은 행군 능력과 행운의 날씨덕분에 델라웨어 강에서 벌어졌던 트렌턴 전투에서 승리한다.

4000여명의 영국군 중 단 오백명의 헤센인과 소수의 용병들만이 강을 건너 도망쳤지만 불어난 강물 속에 갖혀 버린다.

새벽에 프린스턴 으로 치고 올라간 워싱턴 대륙군 은 뉴저지와 뉴브런즈윅 진지에서 도망친 영국 용병 200여명을 생포하고 보급로를 차단해버린다.

1777년 1월 전쟁이 시작된지 오개월 만에 영국군 용병들은 서서히 해체 되어 탈영을 한다. 승리의 깃발을 꽂은 워싱턴 대륙군은 급속하게 퍼지는 천연두로 인해 뉴욕에 발이 묶이지만 예방접종을 하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5월에 대규모 용병군을 대륙으로 파견한 영국, 막대한 군비용으로 인해 상인과 농장주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는 미국은 프랑스에 지원 요청을 보낸다.

전쟁의 형세를 조용히 관망했던 프랑스는 머스킷 소총과 탄약, 의약품을 지원하며 영국군의 추이를 살피며 캐나다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 용병들을 미 대륙군들이 밀어버리기를 바랬다.

영국군 용병으로 캐나다에 주둔 하고 있던 독일 용병들은 총 600여명으로 진지를 움직일 때마다 영어를 몰라 지나가는 캐나다 시민의 도움을 받아 가며 지형을 익혀 나갔다.

한달 분의 식량과 보급품만 보낸 영국과 달리 미 대륙군은 6000명에서 7000명까지 병력을 늘려서 캐나다 협곡을 중심으로 전선을 확대 시켜나간다.

독일 용병들에게 미 대륙군이 날리는 대포와 총알 보다 더 무서운 건 캐나다의 울창한 산림에 살고 있는 야생 동물들로 이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600여명의 독일 용병 중에 미 대륙군에게 사살된 이는 60여명정도로 나머지는 야생 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영국은 미국 버지니아주를 정복하기 위해 잘 훈련된 5800여명의 장교와 병사 27문의 대포 5000점의 무기, 탄약 기타 군수품으로 무장하고 방어가 없는 전선을 향해 돌진한다.

위싱턴과 설리번이 이끄는 부대의 지역에서 벗어난 빈 곳을 노렸던 영국군은 기습 공격과 퇴각을 반복하며 미대륙 부대를 밀어 붙이며 미 대륙군에 심각한 손실을 입힌다.

영국군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미대륙군 부대원은 놀라울 정도로 천천히 대응하다가 빠르게 퇴각하며 패배 당한다.


하지만 워싱턴을 비롯해 미대륙 군대를 이끌었던 지휘관들은 대영제국을 상대로 공격을 감행 하고 싸운 경험이 '위대한 대의'를 향한 소중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엄청난 저력을 지켜 본 프랑스는 서서히 와해 되고 분산되고 있는 영국 해군의 무기력함을 간파하고 미국에게 손을 내민다.

반면, 영국 측에서 가장 두려워 했던 시나리오는 프랑스가 아메리카 식민지 편에 서서 전쟁을 지원 하거나 참전하게 된다면 대영제국에 대항하는 다른 지역 식민지들의 반란으로 이어져 세계 전쟁으로 불이 붙어 버릴지 모른다는 것이였다.

1763년 7년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 측 전략은 전쟁의 규모를 키워서 영국의 군사 힘을 분산 시킨다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프랑스는 영국의 국력은 식민지에서 생산된 물품을 전 세계를 상대로 교역해서 챙기는 막대한 수입에서 나왔기에 식민지들이 독립을 쟁취하는 반란을 일으킨다면 거대한 대영제국의 함대는 침몰하는 순간 프랑스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깃발을 꽂아 유럽의 종주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꿈꿨다.

미국 대륙 회의 측에서는 거대한 영국과 전쟁에 맞붙기 전 해외 군사 원조 세력을 염두 해 두었지만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 그리고 벙커힐 전투를 치르면서 승기를 잡게 되자 협상 상대자는 오로지 영국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일 전쟁 중에 외국 군대에 항구를 열어 미국 땅에서 여러 국가들의 전투가 일어 날 경우 아메리카 땅은 또다시 다른 세력에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며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해리슨, 토머스 제퍼슨, 존 디킨슨 ,존 제이, 로버트 모리스 위원회들이 아메리카의 독립 원조를 지원 하고 싶어하는 유럽 열강 세력의 추이를 예의 주시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오래전 부터 유럽 열강을 외교적으로 이용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비밀 교신 위원회를 가동 시켜서 영국에 대항 하는 세력과 어떤 동맹을 맺을지 고심한다.

영국의 세금 수탈로 골병이 든 미 대륙은 유럽의 어떤 열강 세력에 흔들리거나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무역 관계를 어떤 정책으로 추진 해야 할지 유럽 열강과 동등하면서 안전한 관계를 통해 독립의 길로 갈 수 있는 터전을 다져 나간다.

1776년 12월 프랑스 정부와 동맹 교섭을 시도한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은 다음 해 2월까지 프랑스 측 주요 인사들과 접촉하며 평화 조약과 동맹을 맺는 기나긴 설득 작업에 들어 간다.

프랑스는 미국의 뜻에 동의를 하게 된다면 결국 독립 국가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 하며 완강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영국과 7년 동안의 전쟁으로 국고 재정이 바닥이 난 상태에서 자원이 풍부한 미국과 우호와 통상 조약을 맺어야만 국가가 회생 할 수 있기에 1778년 2월 동맹 조약을 체결한다.

최혜국 대우를 포함한 상업 조약을 비롯해 프랑스는 서인도제도 식민지의 여러 항구를 개방해서 미국 측 선박에 무제한 통행을 승인한다.

만일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에 돌입하게 되면 미국은 프랑스 편에 서서 싸운다는 동맹 조약의 8조에 명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국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영국과 휴전이나 평화 협정을 체결 하지 않는다. 또한 양국은 아메리카 합중국의 독립이 전쟁을 끝내는 공시적 조약에 의해 확실하게 되기 전까지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기로 합의 한다.]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대륙 영국 영토에 대해서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 중에 점령된 영토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소유라는 점에도 동의 했다.

결국 이 동맹 조약은 아메리카 합중국의 자유와 독립을 인정한다는 의미 였다.

1778년 2월에 체결된 조약은 영국의 평화 타협 제안 보다 한 발 앞서 5월 2일 발효 되어 5월 4일 대륙 회의의 승인을 받았다.

절대로 영국은 아메리카 합중국의 독립을 인정 할 수 없었고 6월 14일 영국과 프랑스는 교전 상태에 들어간다.

대륙이 아닌 해양에서 맞붙는 다면 영국은 프랑스에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 하고 별다른 전략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프랑스 군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서인도제도로 군함을 보낸다.

영국 내각의 모든 관료들은 이 계획에 대 찬성했지만 프랑스 함대와 어선이 정확이 몇 척이 주둔 하고 있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국왕과 영국 해군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지브롤타 해협 근처에서 순찰하던 프랑스 해군은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다가 영국 해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회향 한다.

서인도 제도를 사수 하기 위해 8천명의 프랑스 해군은 미 대륙이 아닌 영국측 함대를 목표물로 정했다.

프랑스 군의 지원을 기다렸던 미 대륙의 워싱턴 장군은 군부대를 이탈하는 탈영병들과 추운 겨울의 날씨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군용과 마차가 부족한 시대에 지원 물자를 수송하고 보급 받는 것 조차 힘들었다.

식량과 의복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워싱턴은 주둔 지역 농장주들이 소유 하고 있는 식재료들이 영국군 손에 넘어 가는 것보다 이 땅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보급해 달라며 식량을 제공한 이들에게 영수증을 끊어 준다.

영수증 발급을 통해 군인들의 식량과 말의 사료를 얻으며 겨울을 이겨내는 동안 벤저민 프랭클린의 지략으로 독일 프로이센에서 훈련 교관인 슈토이벤 남작을 데리고

온다.

슈토이벤 남작은 아메리카 대륙군에게 사격과 제식 및 기동 훈련법을 가르치며 대형 교전 전투의 밀집 훈련까지 전수 했다.

체계적인 훈련과 풍부한 식단으로 군부대원은 활기를 띄었고 영국에 대항하는 전투에 참전 하는 건 곧 '영광스러운 대의'라는 점을 상기 한다.

5월 드디어 프랑스에서 보낸 라파예트 후작은 정찰 부대원들과 함께 도착해서 필라델피아에서 신속하게 이동 중이였던 영국군을 대파 한다.

프랑스 군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군부대와 함께 포지 계곡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델라웨어 강을 건너 몬머스 법원 청사에서 영국군과 맞붙는다.

왼쪽에는 울창한 숲이 오른쪽에는 거대한 언덕이 자리한 지형에 다다른 아메리카 군의 전선 앞에는 늪 지가 펼쳐져 있었다.

늪 지에서 공격을 하는 자와 당하는 자 모두 점멸 할 수 있기에 화력에 집중해 일격을 가하는 총공세만이 살아 남을 길이 였다.

계곡을 지나 협곡까지 올라간 영국군은 오후 6시 쯤 되자 기력이 떨어져서 협곡 아래로 내려 가지 못한 채 멀리서 워싱턴 군부대의 대포만 바라 본다.

워싱턴 군부대원들도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양측은 이날 모두 무기를 무장 한 채 협곡과 늪 지대 바로 앞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결국 영국이 워싱턴 군을 추격하지 않고 회군 한다.

불필요한 전투를 치르지 않은 워싱턴은 프랑스 군과 함께 영국의 지뢰밭이 될 로드아일랜드 뉴포트로 향한다.

이곳의 전략적 위치를 간파 했던 영국은 1776년 12월 이곳 항구를 점령했다.

로드아일랜드 주민인 민병대원들까지 합세한 전투는 거주 지역 파괴는 물론 거주민의 3분의 2가 사라질 정도로 격전이였다.

서인도 제도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해군 8000명까지 합세한 전투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영국군은 미 대륙 전선으로 인해 텅빈 서인도 제도로 함대를 돌려 항구를 급습한다.

대포 몇발로 단 하루 만에 승기를 잡은 영국 해군은 프랑스 군이 회생 하지 못하게 부셔 버리고 본국으로 돌아 가고 프랑스 군은 영국이 또 한번 공격 하더라도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1779년 1년의 휴전 기간 동안 영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아메리카 대륙에 분열을 조장 하기 위해 남부 지역을 공략한다. 영국은 거대한 농장과 흑인 노예를 소유 하고 있던 남부의 대지주들은 영국 국왕에 충성스러운 이들이라고 믿고 아메리카 독립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 잡힌다.

남부 지역에는 다수의 영국인 후손들이 살고 있었지만 프랑스 신교도들과 흑인 노예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앞섰고 소수의 스페인계 후손 그리고 독일계들로 분포 되어 그다지 영국에 대한 충성심이 깊지 않았다.

앞선 교전에서 영국 용병들의 잔혹한 실상과 마을 곳곳에 불을 질렀던 만행을 목격했던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싸울 태세를 갖추고 견고한 요새를 구축한다.

시민 민병대들은 참호를 파서 사격 연습을 했다.

서로의 필사적인 생사를 건 찰스턴 공성전 에서 영국군 포병대는 100개의 산탄과 226그램 짜리 중포탄과 파열성 포탄의 정확한 목표물 조준 파괴로 지역을 함락하고 포위한다.

목조 가옥들이 불에 타지 시민들은 칼을 빼들고 영국군에게 달려 들었다.

영국군은 놀라울 정도로 적은 수의 사상자를 내며 대륙군의 다양한 무기와 식량을 차지 하지만 3일 뒤 의문의 폭발 사고로 영국과 대륙군, 용병군, 주민들의 목숨을 빼았아 갔다.

영국측 편에 선 사우스 캐롤라이나 백인 대지주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 소규모 공격이 발생 하면서 대륙에서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영국이 남부를 지배할 병력 수를 늘려서 총 2043명의 정예병을 투입 시킨다.

남부를 사수 하기 위해 버지니아 민병대가 영국군을 향해 진격했지만 고도로 훈련된 영국측의 명 사격수 공격에 겁을 먹고 총과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캠던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은 이제 남부 지역을 거점으로 대륙군을 기다리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식민지 독립을 위해 아메리카 인들은 기꺼이 피를 흘리며 영국에 저항했다.

미 대륙에서 활 활 타오르던 혁명의 불길을 구경하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 해군의 힘을 뒤 흔들 기회라 생각하고 비밀리에 미 대륙을 지원한다.

1770년대 영국의 힘은 막강했고 이들이 쥐고 있던 해상 무역 항로는 견고 했지만 이를 유지 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줄인 식민지 미 대륙의 독립 열기로 인해 영국 전력은 분산 되고 있었다.

미 대륙이 유럽의 종주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싶어하는 프랑스와 손을 잡는 순간 미 대륙의 독립 열망의 불꽃은 대륙과 대륙간의 거대한 전쟁으로 번져서 권력의 중심축을 뒤흔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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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2-21 23: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국을 도왔던 프랑스군의 가슴에도 혁명의 불꽃이 탁🔥
켜졌겠죠?🤭

scott 2022-02-21 23:20   좋아요 5 | URL
프랑스는 영국의 독주(식민지 경영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를 막고 싶어 했고 미대륙을 다시 차지 하고 싶어 했습니다

내부에서 터진 혁명의 불꽃이 아메리카인들 끼리도 치열하게 싸웠던 야만의 시대 ㅎㅎㅎ

mini74 2022-02-21 23: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권에 보스턴 차사건이 나오는군요. 전 프랑스가 군사적 도움뿐만 아니라 후에 자유의 여신상 선물한거 보고 정말 영국을 엄청 싫어하는구나 했어요 ㅎㅎ 너무 알차고 재미있어요 *^^*

scott 2022-02-21 23:21   좋아요 5 | URL
영국 엄청 싫어 하면서도
프랑스 인들도 정치적 군사적으로 오합지졸 ㅎㅎ
두나라 모두
서인도 제도에서 노예와 자원들 무한으로 착취하는 걸로 배불리 살았네요!

미니님 꿀잠! 굿 나잇 ^ㅅ^

희선 2022-02-22 0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했는데 거기에 노예는 있어야 한다고 하다니... 나라에 내야 하는 세금도 있고 영국에도 세금을 내야 한다면 내기 싫겠습니다 그러니 독립을 해야죠 프랑스는 영국 힘을 줄이려고 미국을 도와주는군요 그러면서 다른 뜻도 갖고 있다니... 본래 그런 거기는 하네요 오래전 삼국시대 때 다른 나라 힘을 빌렸을 때 그 나라에서 뭔가 바라기도 했으니...


희선

scott 2022-02-22 15:56   좋아요 1 | URL
노예를 자산으로 생각한 남부와 기술과 산업 혁명 금융으로 부를 일으킨 북부와 개인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시각차가 너무나도 컸습니다
이런 시각차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이제는 제3세계에서 건너온 불법 이민자 저개발국 노동층)
희선님 말씀처럼 세금을 양쪽에서 뜯어가면서 영국은 미 대륙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자원만 야금 야금 수탈 하려다가
민중의 힘으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가
엄청난 유혈 전쟁을 벌인!
프랑스를 끌어 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서로의 이익 다툼이죠...


페넬로페 2022-02-22 0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스턴 차사건은 워낙 유명해 기억이 나네요. 영국은 정말 야심과 그 야욕을 전 세계에 뻗은 악명높은 나라예요^^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자유를 지향하지만 그들이 흑인노예에게 자행한 폭력은 정말 끔찍합니다^^

scott 2022-02-22 15:59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영국의 야욕으로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전세계 곳곳을 자신들의 이권 다툼으로 국경 선도 맘대로 긋고
전쟁 약탈 수탈은 해적질로 제국을 일으킨 이들이 뻔뻔하게 전쟁으로 세계패권을 쥐락 펴락!

인권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남녀 평등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하인과 하나의 테이블에세 식사를 하지 않은 상류 계층이 나라 전체를 움직여서
남부인들의 시각과 놀랍고
가축 처럼 대해서 충격 받았습니다 ㅜ.ㅜ

거리의화가 2022-02-22 09: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스턴 차사건이 주요 사건으로 다뤄지는 이유가있었네요 사건을 둘러싼 전후과정을 상세히 전달해주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인이야기 읽을 이유가 충분한 책인 듯해요 스콧님 리뷰 읽으니 구매욕이 더 뿜뿜합니다ㅋㅋ

scott 2022-02-22 16:01   좋아요 2 | URL
2번째가 1권보다 분량도 많고 전쟁의 양상(내전까지 번지다가 유럽 으로 불이 붙는)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앞 뒤 전후 맥락을 잘 살펴서 읽고 있습니다
3권까지 현재 출간 되었는데 매달 출간 해서 12권 뚝딱 완간 되길 바랄 뿐입니다. ^ㅅ^

새파랑 2022-02-22 0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돈보다는 자유가 더 중요한 거겠죠? 자유를 찾아 떠난 미국인들에게 자유의 억압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역사 전문가 스콧님~!! 클래식은 저리가라 입니다 ^^

scott 2022-02-22 16:08   좋아요 2 | URL
자유 보다 돈!
자유를 찾아 떠나서 넓은 땅 일궈 번 돈!
배타고 건너온 이들에게 기냥 줄수 없음!ㅎㅎ

클래식!
요즘은 듣기만 하고 있습니다 ^ㅅ^
 
미국인 이야기 1 : 독립의 여명 1763~1770 - 혁명은 경제에서 시작된다 미국인 이야기 1
로버트 미들코프 지음, 이종인 옮김 / 사회평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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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북아메리카 대륙 땅에서 프랑스 군과 맞붙었던 영국은 인디언과 연합 작전을 펼친 프랑스 군에 무참하게 패배하며 피츠버그 인근에서 프랑스 장군에게 치욕의 무릎을 꿇었다.

지중해 미노르카 해협 근처에서도 강력한 프랑스 해군에게 밀려났던 영국은 1756년 부터 7년 동안 유럽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무참하게 패배 했다.

1757년 영국은 자신들의 영토 였던 독일 하노버를 프랑스에 넘겨주고 인도 캘커타 마저 프랑스군에 함락 당한다.

인도 전체를 손 안에 넣을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 된 프랑스 군에 대항하기 위해 1757년 영국 조지 2세 왕은 모든 장군들을 현직에서 물러 나게 하고 총리 윌리엄 피트에게 잃어버린 영국 땅을 되찾아오라는 명을 내린다.

해군 육군 장성들의 인사권을 손에 쥐게 된 총리 윌리엄 피트는 해군 지휘관으로 손더스와 보스카웬을 임명 하고 아메리카 지역을 관할할 육군 지휘관에는 제프리 애머스트와 제임스 울프를 임명한다.

이제 영국의 육군과 해군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올 지원금만 있다면 캐나다 부터 멕시코까지 영국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1758년 7월 보스카웬 제독과 애머스트, 울프 장군이 지휘하는 영국 육해군 합동군은 프랑스군이 주둔하고 있던 루이스버그 요새를 탈취해서 캐나다 온타리오와 킹스턴 요새를 차지해버린다.


때마침 인도에서 영국은 프랑스 군을 격파했고 유럽 대륙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끄는 프로이센 군대는 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의 포위 군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진격하고 있었다.


7년 동안 영국은 2000여명의 군대와 1000명의 이로쿼이 인디언 민병대와 연합해서 순차적으로 프랑스 군의 병력과 보급 조달을 원천 봉쇄하는 전략으로 설탕이 많이 나는 섬, 곡물이 많이 생산 되는 땅, 향신료 같은 식재료가 풍부한 땅, 담배 농장이 있는 땅들을 차례 차례 차지해 나간다.

브리튼이 처음 하늘의 명령으로

푸른 바다에서 솟아 올랐을 때

이것은 그 땅의 선언이었고,

수호 천사들이 그 가락을 노래 불렀다.

지배하라 브리타니아여, 바다를 지배하라.

브리튼 사람들은 결코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


1760년 영국 왕실 신하들은 조지 3세가 스물 두 살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영국 애국가 <룰 브라타니아Rule Britania>를 목청 껏 부르며 섬나라를 넘어 드넓은 해양과 대륙을 차지한 자신들의 나라, 브리튼을 찬양했다.


반면, 유럽 대륙은 강해진 국력과 힘을 가진 영국을 야만 국가보다 조금 진보 한 국가 정도로 폄하하며 문화가 없는 영국 국민이 그린 그림이나 작품들을 수집하거나 사들이지 않았다.

유럽 귀족들은 영국 땅으로 자손들을 유학 보내지 않았고 영국 귀족들이 주관하는 문화 살롱에 드나들지 않았다.

영국의 육해군에 밀려난 프랑스는 여전히 유럽 대륙에서 문화 제국으로 군림하며 이들이 퍼트린 자유주의와 계몽 철학의 사상과 문학,음악,건축, 예술은 여전히 전 유럽 국가의 표준이 였다.


한 세기 전 영국 국민의 손에 한 명의 왕이 참수 당했고 또 다른 왕은 추방 당했다.

유럽 귀족들의 시선에서 영국이라는 존재는 불안정한 족속들로 맥주와 생선을 즐기며 대의명분에 급급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일 뿐이였지만 거대한 교회라는 이익 집단의 이권 다툼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영국은 유럽 전 지역과 맞붙어도 될 정도로 강력한 국력과 군대를 앞세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오랜 세월 요동치고 분열되었던 정치 사회 속에 흉폭한 범죄와 심각한 도시 빈민들이 넘쳐 났던 영국 땅은 조지 3세가 재위 하면서 각종 사회 시설과 도로와 하수구 정비,재정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말끔한 도시 국가의 모습으로 변모해나간다.아메리카,서 인도 제도 아시아, 지중해 변방 지대에서 거둬들인 막대한 자원들은 영국이라는 나라를 빠른 속도로 산업 도시로 성장 시켜나간다.

교통, 통신, 도로는 운송 산업 제조업의 진보를 이끌며 유럽 대륙과 비교 할 수 없는 산업적, 상업적으로 앞 서 나간다,

1760년 스물 두 살 나이에 왕위에 오른 조지 3세는 하노버 왕실에서 태어나 영국 땅을 지배했던 아버지와 달리 영국 땅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 출신의 고문관에게 교육을 받았다.

조지 3세는 재위 12년 동안 국가와 민족의 이념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과 이해 관계에 사로 잡힌 토리당과 휘그당의 파당 정치를 개혁 하고 싶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륙과 해양에서 프랑스 세력을 격퇴 시킨 영국은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막대한 자원들을 주식과 펀드, 금으로 바꿔서 1694년에 세운 잉글랜드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에 차곡 차곡 쌓아둔다.

대륙과 해양에 걸쳐 뻗어있는 식민지 영토를 관리 하기 위해 영국은 세금청, 물품 세청, 소금청, 재정 위원회, 해군청, 재무부등으로 정부 기관을 세부 화 시켜서 각각의 식민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품목과 조세 품목을 세심하게 관리 하기 시작한다.

18세기 영국은 돈의 관리, 세금 전쟁을 시작하며 광활한 식민지를 통치 하기 위해 거대한 군함 건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

비좁은 영국,브리튼 섬을 벗어나 광활한 식민지, 영국의 자녀이자 신하인 아메리카 대륙을 통치 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무려 13개 조항의 세금 징수 법안을 통과 시킨다.

강력한 세금 징수를 자신들의 목숨과도 맞바꿔야 하는 총독들이 미국 땅에 도착하기 직전,이미 자치 행정과 의회를 갖추고 있었던 미국은 앞서 주둔한 프랑스를 비롯해 곧 들이 닥칠 영국의 행정 체제와 정치 사상에 어떤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 종교적 유대감은 물론 신분 조차 서로 구애 받지 않았기에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던 각 위원장들은 어떤 국가로 부터 통제나 제약에 대항하는 법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1764년 부터 1783년에 들불 처럼 일어나 바다 건너 영국까지 위협 했던 미국 혁명의 불길은 단 한번도 통합 된 적이 없었던 미국인들의 무시 무시한 집결 정신을 보여주었다.

13개 식민지 구역으로 나눠진 채 각기 다른 관습과 제도 문화를 갖고 있었던 미국인들은 농산물, 상업,무역 종사자들의 활발한 교류와 교역으로 무섭게 결집하며 단합했다.


언제 어디서 급습해 올지 모르는 외부 세력에 대항하며 삶을 일궈 나갔던 미국인들은 가난, 탄압, 박해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저항 했다.

이들의  후손들은 계급 사회인 영국 중상류층들 보다 더 가난했지만 척박한 땅을 일구며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인구 성장과 함께 눈부신 기술 산업 성장을 발전 시켜 나간다.

10년 만에 본국인 영국의 대 지주들 보다 수십 배의 수익과 막대한 부를 축적한 대지주들이 탄생한 미국 땅, 이들의 자손들은 정치,외교 법조계로 진출하며 제조업과 제철,산업 시설과 해외 무역에 주요 자리를 차지해나간다.

수세기에 걸쳐 부를 축적한 영국 귀족들과 달리 십 여년 만에 이들의 부를 넘어선 미국의 부유한 시민들은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나갔고 영국은 이들이 축적한 부에 대한 세금을 추징 하기 위해 영국 본국에서 임명한 총리들을 파견 시킨다.

영국의 대의 제도로 무장한 파견된 총독들은 13개 지역 중에 7개 지역을 통치 했지만 당파 정치 보다 자신들이 세운 법안과 규칙을 중심으로 각 주를 관할하는 의원들은 실질적으로 영국 본국에서 파견 된 총독이 제시하는 통치를 따르지 않았다.

종교에서도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자유로웠던 미국은 17세기에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회중 교회주의자들과 영국 국교도, 퀘이커 교도, 침례교들의 분파로 나눠져서 분리파와 정규파로 세력 타툼을 벌이다가 18세기 중반이후 전 세계에서 밀려 들어온 다양한 이민자들의 각기 다른 언어와 종교색으로 분열과 대립 보다는 서로 다른 교리를 인정해 나가며 화합과 통합으로 결집해 나간다.

특히 영국 본국이 식민지 통치 명분으로 세금 징수와 정치 사회 지배 구조에 대한 간섭을 해나갈때 각계 종교 지도자들은 인구 증가와 맞물려서 성장하는 경제 성장 속에서 단 한 명의 신자를 데려 오기 위해 반 권위적이면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미덕, 검소, 근면,소명 의식의 도덕적 사상을 외부 세력에 의해 강탈 당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미국 혁명을 이끈 세대인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제도를 정비하며 기준을 세워나갔다.


1760년 이후 영국의 거센 간섭과 엄청난 세금 징수에 불 처럼 대항 했고 횃불을 들고 봉기 하며 자신들의 땅에서 징수해버린 막대한 자원을 스스로 불태우며 저항한 미국 시민의 저항과 혁명은 강력한 힘으로 내부적 통합을 해나갔다.

영국에 대항 하는 혁명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 식민지의 안정적인 통치와 합법적인 세금 징수를 위해 주둔 시킨 상비군의 심장을 저격했다.

아메리카 시민들은 상인들을 중심으로 영국 본토인들에 대항해 다양한 방법으로 의회 청원을 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해 나갔다.

미국 각 지역의 법안을 주도 하는 의원들은 미국땅에 단 한 푼의 세금을 내지 않은 채 미국땅에서 생산하는 자원에 온갖 세금을 거둬들이는 영국인들보다 미국 땅에서 태어나 삶을 일궈온 이들이 내는 세금이 더 소중했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영토를 관할하고 통치 하는 영국인들이 부과하는 이중 과세와 과도한 세금 추징 법에서 벗어날 방도를 모색했고 영국 통치자들은 추징 해야 할 품목과 대상 자원을 늘려나가며 한 푼이라도 돈을 더 거둬나갈 궁리를 한다.

영국에서 파견된 세금 징수원들은 아직 수확하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품목의 세액을 책정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거둬들일 과세 방안을 세워 나간다.

이런 인지세 법안을 각주의 상인들과 대 지주들은 절대로 받아 들이지 않고 반대 청원을 미 하원에 제출하고 영국 본토에서 파견 된 세금 징수원들의 탄핵 탄원서도 청원한다.

1765년 영국 의회가 미국 식민지의 세금 추징 법안과 인지 세법안을 통과시키기 직전 이미 영국땅을 밟은 벤저민 프링클린과 보수주의자 자레드 잉거솔은 미국인들의 세금은 미국 시민 스스로 과세해야 한다며 영국 의회의 의원들에게 13개 식민지주에 과세 법안을 철회 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영국의 식민지 통치 과세 법안을 반대하는 의원은 단 한 명으로 프랑스 인디언 연합군 전쟁에 참전 했던 아이작 베러 뿐이였다.

국왕이 승인만 하면 영국의 강력한 식민지 세금 징수 법안은 미국땅에 뿌려지게 된다.

자신들이 심어 놓고 생존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미국 땅에서 거둬둘인 세법 1차-2차 법안이 통과 되고 1765년 3월 영국 국왕의 최종 승인이 나자 5월 말 미국 버지니아 하원 의원들은 빠른 속도로 영국의회는 미국인들에게 과세할 권한이 없다는 결의안을 통과 시킨다.

영국 본토에서는 단 한 곳 버지니아 주에서 결의한 법안은 단 몇 주 후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버지니아 주에서 시작 된 법안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각 주로 퍼져 나가서 미국 전체 116명의 의원 중에 단 39명의 의원을 제외하고 찬성 표를 던진다.

영국이 미국 땅에서 생산된 담배와 설탕에게 징수 한 세금은 미국 땅의 극심한 가문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버지니아 의회에서 결의한 법안으로 세금 징수를 거부한다.

한 발 물러선 영국은 나머지 주에서 생산한 담배와 설탕에 모조리 세금을 징수하고

미국 시민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이 스며 있는 담배와 설탕을 지키기 위해 교구당과 상인들이 법정으로 몰려가 영국에서 파견된 관리인들의 탄핵을 청원한다.

이는 6개 주에서 시작되어 7개 8개 주로 퍼져나가 영국은 겨우 400파운드의 세금만 손에 쥐며 미국 의원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제 법안 보다 행동 그리고 말과 글을 내세운 상인들과 인쇄공, 철도 경영자들은 1769년 광장에 모여 폭동을 기획한다. 버지니아와 메사추세츠에서 시작된 세금 징수 반대 운동은 인지세 징수원들과 분배관들의 숨통을 조이는 협박으로 이어진다.

1770년 영국 하원은 일단 징수 법안을 철회 하며 미국인들의 거센 저항에 한 발자국 물러섰지만 조세 저항으로 시작된 운동은 식민지 해방을 울부짖게 만든다.

1770년 10월 단 두명 만 제외하고 세금 징수원들은 목숨만 건진 채 영국 본토로 도망친다. 뒤이어 신변의 불안을 느낀 뉴저지주 총독이 사임해버리자 뉴햄프셔주 세금징수원들이 보스턴에서 영국 땅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도망친다.

자원과 물품에 세금 징수가 힘들어진 영국은 이제 토지세 법안을 통해 세금징수에 착수하고 각종 제조업과 토지 사업주들은 주 의회에서 징수해가는 세금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징수한 영국에 분노 한다,


영국에서 파견된 토지 인지 분배관들은 자신들의 외모와 똑같이 생긴 인형들이 폭도들에 의해 광장에서 짓밟히고 불태워지고 자신들이 거주하는 주택들은 잿더미가 되자 엄청난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유럽 땅에 노란 별을 단 유대계들 처럼 영국인 토지 인지 분배관들의 이름과 주소는 각 주마다 노란색 글씨로 적혀진다.

막대한 영토를 통치하고 관할 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은 미국의 거센 저항에 세금징수 법안을 폐지 할지 고수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흘러 들어오는 돈의 문제는 영국 의원들의 입지를 위협 시켰고 미국 땅에서 건너오지 않은 설탕은 영국인들의 식단과 영양 문제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설탕 품귀 현상은 곧 영국 상인들의 재정 압박과 파산을 불러 일으켰고 식민지 땅 자원의 세금 징수 없이 영국 경제는 암울했다.

영국 의회는 미국 땅 없이는 영국이라는 국가 체제도 온전하게 유지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통치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제 의원들은 무역의 감소로 인해 늘어난 부채에 허덕이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영국의 지주 계층과 귀족들의 아우성까지 감내해야 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법안 철폐를 지연 시키기 위해 시간을 끌어 갔던 영국은 1770년 12월 20일 의회 해산 직접 철폐 법안을 입안 시키고 다음 해 3월 초 입안 시킨 철폐 법안에서 [모든 사안에 대해]라는 문구 삭제를 압도적인 다수표 획득으로 3월 4일 하원에서 최종 통과된다.

3월 17일 국왕의 승인을 받은 토지 세금 징수 인지세법,이렇게 한 발자국 물러선 영국에게 미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했을까?

세금의 부담에서 면제를 주장하고 철폐를 주장 했던 미국인들은 영국 의회의 권한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영국 의회의 식민지 과세권 권한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결의안과 탄원서를 상,하원 의원에게 제출한다.

영국의 인지세법 철회 이후 미국 정치는 대 변동을 일으키며 권력 구도에 엄청난 변혁을 일으키고 새로운 세입 법안을 도입한 영국은 미국에서 생산된 납, 유리, 차등 기타 물품에 대한 관세 수입을 한 해 4만 파운드를 기준으로 내세운다.

어떤 물품과 생산 제품에 매겨지는 세금이라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매년 새로운 품목 마다 세금이 징수 될 것이라고 확신한 미국인들은 보스턴의 상인과 기술자들부터 세금 징수 거부를 시작한다.

납과 유리에 매겨진 세금은 옷과 거주지 같은 자유과 재산에게 매겨지는 세금과 같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지고 변호사,의사들이 선봉대에 나서자 벽돌공,하수 처리공,짐꾼,굴뚝 청소부 같은 하층민들까지 의회로 몰려가 항의하게 된다.

보스턴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 방위군은 보스턴 시민들에게 거주지를 빼앗기고 광장이나 거리에 텐트를 치며 노숙을 하게 된다.

이들이 허름한 창고를 빌리려고 하자 창고 주인들은 막대한 돈을 요구하고 다른 주에 주둔 하고 있던 영국군들도 미국 시민들에 의해 거리로 쫒겨 나게 된다.

미국 시민들은 영국을 향해 탄원서나,탄핵안, 항의 문서,인형 화형식, 거주 지역의 화재등이 아닌 '자유로운 시민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징수법' 이라며 횃불을 든다.

시민들의 표로 의원직을 유지 하는 의원들은 선거에서 승리 하기 위해 애국심을 독려 하고 미국 시민들은 영국 땅에서 건너온 모든 물품에 대한 수입 거부 운동을 전 지역으로 확대 시켜 나간다.


영국은 어떤 유능한 관리나 총독을 파견 시켜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 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 했다.

세금 징수 법안 만으로 온전하게 세금을 징수 하기 힘든 입항과 통관 절차와 제도는 각각의 구역을 담당하는 대리 징수관 -승선 세관원-기타 하급 관리들까지 엄청난 인력을 필요로 했고 광활한 영토에 자잘한 핏줄 처럼 뻗어 있는 항구와 항만은 강과 시내 냇가 포구를 오고 가는 곳의 장소를 기록하기 힘들 정도였다.

포구들은 지역의 토착민들에 의해 수시로 바꿔졌고 세관 관리가 지정된 항구로 달려 가면 온갖 자원을 가득 실은 배들은 여러 포구를 오고 가며 파견된 세관 관리인들이 알지 못하는 냇가와 강가로 우회 해서 담배와 해군 군수품 농산품들을 싣고 유유히 사라졌다.


1770년 영국에서 파견된 한 세금 관리 징수원이 본국에 보낸 문서에 이런 글을 기록했다.


'보스턴 항은 북쪽으로는 린에서 시작해 메사추세츠만에서 케이프코드를 따라 서쪽과 남쪽으로 나아가며 케이프 코드를 돌아서는 다트머스 항구를 돌아 낸터켓 섬, 마사스비너드 섬, 엘리자베스 섬까지 뻗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항구는 단 세 곳 뿐으로  현지 주민들과 토착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지도 상에도 표시 되지 않은  항구가 몇개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로 부터 광활한 미국 땅을 뺏었던 영국은 아메리카 전 대륙을 상세히 알지 못해서 어떤 항구와 항로에서 어떤 방법으로 밀수와 탈세가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오랜 세월 프랑스인들에게 단련 되었던 보스턴 시민들은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 항로를 경유해서 밀수한 프랑스 산 와인들을 영국에 신고 하지 않은 채 다른 국가로 수출을 했고 다른 밀수 품들도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이루어 졌다.

18세기 미국 땅에서 발생하고 있었던 막대한 밀수와 탈세로 통용 되었던 상업이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자 영국은 급기야 항구마다 주둔할 군인들을 파견한다,

영국 특유의 붉은 제복을 입은 파견 군인들은 너무 나도 쉽게 미국 시민들의 눈에 띄고 이들은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았고 굶주림에 허덕일 정도로 식량 배급 통로가 서서히 차단된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 닥친 겨울, 영국 파견 군인들은 하나 씩 주둔지에서 이탈해서 탈영하고 수색대원과 탈영병들이 뒤엉킨 도시에서 약탈과 강간, 폭행, 절도 같은 극악한 범죄가 들끓게 된다.

선량한 시민들의 자유가 영국군에 의해 짓밟히게 되자 법원과 경찰들은 시민들의 편에 서고 총독은 이제 보스턴 민중의 손에 넘어가 퇴각 명령이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급기야  영국 군 주둔 군은 열 한 살 소년을 엽총으로 쏴 죽이고 무고한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장례 행렬에 수천 명의 군중들이 모여 들면서  민간인과 주둔 군 사이에 폭력의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 폭력의 중심 세력들은 보스턴의 하층민 노동자들로 주둔 군인들이 비번 일 때 민간 시민들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영국 군 규정으로 인해 이들의 생계를 위협 하고 있었다.

가로등이 없었던 1770년대 보스턴의 밤은 날마다 주둔 군인과 하층민 노동자들의 폭력으로 인해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민중의 희생은 다른 지역의 분노를 일으켰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영국인들에 의해 학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1765년 부터 과도한 세금 추징으로 인해 생겨난 영국과 미국 식민지의 갈등은 영국이라는 국가의 정치 제제가 미국 땅에 자리 잡게 될 때 어떤 자유도 무참하게 짓밟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미국의 모든 시민의 자유를 파괴하고 있었다. 

영국의 법과 정치 질서가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제도라고 믿고 있었던 미국 정치인들은 더 이상 영국의 왕을 자신들의 군주, 통치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민중의 자유를 무참하게 짓밟는 것에 대한 분노는 독립을 향한 혁명의 불씨로 활 활 타올라 대영제국이 구축한 세계 질서를 뒤 흔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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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2-11 13:0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엄지척 리뷰!!!
미국 민중들 멋집니다. 세금 징수 반대 운동으로 영국 주둔군을 압박하고 나아가 영국 재정에까지 영향을 미쳤군요. 주둔군이 쏜 총에 한 소년이 희생되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2권도 기대가 되네요~ 어서 읽고 싶어집니다.ㅎㅎ

scott 2022-02-12 12:20   좋아요 4 | URL
단 십년만에 부의 규모를 영국을 넘어서 버려서 별로 해준 것 없이 세금만 왕창 걷어가는 영국에게 총을 겨눈 민족 ㅎㅎㅎ

거리가 너무 멀어서 영국이 미국을 통제하는게 쉽지 않았고
인도 보다 더 복잡한 광활한 영토로 식민지 경영에 골머리를

2권에 드디어 서로 뽱! 터집니다!
화가님 주말 행복 만땅 ^ㅅ^

미미 2022-02-11 13:1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스콧님 재밌을것 같아요👍
‘유럽 귀족들의 시선에서 영국이란...맥주와 생선을 즐기며‘ㅋㅋㅋ저는 홍대에서 피쉬앤 칩스를 처음 맛봤는데 이게 유럽에서 놀림꺼린가봐요. 미디어나 책에서도 본것 같아요ㅋ

scott 2022-02-12 12:22   좋아요 4 | URL
하드커버에 종이질이 넘 ㅎ 좋습니다 ㅋㅋㅋ

맥주와 생선 튀김도 벨기에인들의 식습관 모방한것!

영국 런던은 전 세계 모든 음식 프랜차이즈가 있어서
영국인들 집에서 자주 해먹는 음식이 커리!ㅎㅎ
미미님 주말 맛난거 배불리!^^

새파랑 2022-02-11 13: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역시 문제는 세금? 대영제국이 저렇게 만들어졌는데 미국에서 문제가 있었군요🤔 이런 역사 너무 재미있어요. 역시 역사짱 스콧님~!!

scott 2022-02-12 12:23   좋아요 4 | URL
해적질로 제국을 구축해서
황금과 자원의 땅 미국을 꿀꺽 했는데
미국 세금 앞에서 거세게 반항을!! ㅎㅎ
새파랑님은
문학
순문학 독보적인 짱!👍👍👍

페넬로페 2022-02-11 14: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역사 이야기는 너무나 방대하고도 재밌어요~~미국인의 대처를 보며 식민지 조선을 조금 생각했어요 ㅠㅠ
scott님께서 정리해주신 덕분에 그 당시 상황을 나름 알게 되었어요^^

scott 2022-02-12 12:25   좋아요 5 | URL
미국의 부의 규모가 빠른 시간 동안 영국을 압도 했습니다
드넓은 대지에 부지런히 일구면 농작물과 자원이 쏟아졌던 곳!
정작 영국
아무것도 없이 해적질로 저렇게 제국을 건설

역사의 재미는 무한대 !
페넬로페님 주말 가족과 행복하게 ^ㅅ^

mini74 2022-02-11 17: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분쟁이 있는 곳엔 언제나 영국군대가 있군요. ㅎㅎ스콧님 역사이야기 참 재미있어요. *^^*

scott 2022-02-12 12:26   좋아요 4 | URL
그쵸!
거대한 체스판 위에 항상 영국과 미쿡이!

미니님 주말 똘망이랑
알콩!달콩 ^ㅅ^

psyche 2022-02-12 01: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년에는 음악 이야기를 올해는 역사 이야기인가요? 넘 좋아요!!

scott 2022-02-12 12:27   좋아요 4 | URL
프쉬케님!
한국 확진자 이제 무섭게 급증하다 못해
걸리면 각자 치유해야하는 길로 ㅠ,ㅠ

건강 잘 챙기세요 ^ㅅ^

희선 2022-02-12 0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국에 간 사람도 본래는 영국이나 유럽 사람이었을 텐데... 미국으로 간 사람은 본래 살던 곳에 살기 어려워서 새로운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갔겠습니다 미국에 살던 원주민이나 흑인을... 피해자면서 가해자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넓은 땅 미국을 하나로 이어준 건 철도였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자유로워야죠 미국 독립기념일이 있기도 한데 지금 생각하니 그런 거 깊게 생각하지 않았네요


희선

scott 2022-02-12 12:32   좋아요 5 | URL
역사의 모든 이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인것 같습니다
부의 축적속에는 많은 이들의 피와 땀 눈물이 ㅜ.ㅜ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도 미국땅에 뿌리를 내리니 미국적인 관습과 문화로 변해 가는 모습이 신기 했습니다.
철도 기술이 문명의 속도와 혁명의 불씨를 앞당겼죠.
과도한 세금 앞에서 성실하게 일한 민중들이 돌을 던질지
영국이 전혀 예측을 못했다는 건
그동안 다른 식민지 국에서 피흘리는 착취를 당연시 여겼던 민족 ,,,

희선님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ㅅ^

페크pek0501 2022-02-15 11: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첫 권이 468쪽. 4권짜리를 읽기 시작하신 겁니까?
저는 벅차네요.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싶었는데 15권까지 있어서 포기했답니다.

지금은 바빠서 다음에 읽어야지, 하고 있는데 시작이 반이니까 출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완독하는 그날까지 응원하겠습니당~~

scott 2022-02-15 17:08   좋아요 3 | URL
페크님 잘지내셨나요 ?

이 책 두번째 세번째로 갈 수록 두툼해지는데
12권 완간예정이라서 속도 조절 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후딱 읽어치우면 12권 출간 될때까지 견디기 힘드러 질것 같은 !ㅎㅎ

시리즈가 길면 첫 권 시도 하기 전에 선뜻 읽기 망설여 지죠
전 토지 9권에서 멈춘지 수년째 ㅎㅎㅎ

페크님의 응원에 캄솨!ㅎㅎ

페크님 건강 잘 챙기세요
오미크론 확진자 이제 몇만 시대 입니다 ㅜ.ㅜ

그레이스 2022-02-15 1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것마저도 방대하네요 ^^
자료도 많구요
침착하게 읽어야하는데...ㅠ

scott 2022-02-15 17:09   좋아요 1 | URL
방대 한데
재미가 있어서
이동중에 읽다가 급 흥분을 ㅋㅋㅋ

그레이스님 천천히 쉬엄 쉬엄(눈 보호를 위해 ^^)
 
리더 디퍼런트 - 사람과 숫자 모두를 얻는, 이 시대의 다른 리더
사이먼 사이넥 지음, 윤혜리 옮김 / 세계사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시 시대 인류는 하루의 시작을 무엇을 잡아 올지 흥분되는 마음으로 사냥을 준비했다. 이들은 목표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목표를 이뤘을 때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상상 하면서 함께 사냥을 나서는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냥꾼 한 명이 근처에 가젤이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린 후 몇 명이 짝을 지어서 가젤의 서식처를 에워싸기 시작한다. 또 다른 한 명이 멀리서 가젤의 모습을 발견 하고 서로 짝을 지은 사냥꾼들은 본격적으로 가젤을 추적한다. 사냥꾼들이 가젤을 추적하는 몇 시간 동안 하나의 목표물을 향해 돌진 하는 동안 하나의 공동체로 서로 협력해야만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 드디어 포위 된 가젤을 사냥 하는 순간 사냥꾼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서로간의 신뢰와 유대감을 확인하며 부족원으로 부터 절대적인 환영과 존경을 받게 된다. 원시 시대의 공동체 생활을 이끌어가는데 리더의 역할은 부족원들의 식량을 해결 하고 안전한 생활을 향유 할 수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였다.

현대 사회의 비즈니스 세계도 원시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각각의 기업과 단체들은 최종 목표를 향해 조직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원시시대 부족 사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 보상 체계와 매우 불균형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보상 체계는 월간-분기별-연간 목표 같은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반면에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 한다거나 다른 조직원들과 서로 협력하는 행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

즉, 안전망을 유지 하는 행동을 강화 하는 방향으로 보상을 주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조직의 수장인 리더의 역할이 불분명 하게 된다면 각각의 조직원들의 협동심은 와해 되어 그 조직은 어느새 해체 되거나 붕괴 되고 만다.

애초에 인간은 원시 시대 때부터 협력하고 신뢰 하도록 학습된 동물이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협력이나 신뢰 없이 최악의 상황에서 목표 한 것만 성취 하면 별다른 제재나 비난을 받지 않고 승승 장구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조직의 해체와 파멸은 외부로 부터 위험이 아니라 내부 조직원들로 부터 시작된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성과를 달성 하기 위한 목표를 수치화 시켜서 이를 누가 가장 먼저 달성 하는 지에 따라 업무 보상 체계가 결정되고 있다.

즉 내부 구성원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조직의 리더가 독려 하기 때문에 조직원들 끼리는 서로를 신뢰 하지 않게 된다.

서로를 신뢰 하지 않는 공동체 구성원들은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 금새 붕괴 된다.

동료들이 각자 자기 이익만 챙기고 리더가 직원보다 실적을 우선시한다고 느껴지면 이에 따른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점점 커져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커녕 안정된 연봉과 복지 혜택을 찾아 이직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직장에서 보낸 최고의 날은 언제 였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언제' 였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성취한 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았을 때라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직 생활에서 일이 힘든 것 보다 함께 일하고 있는 이들로 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조직원의 구성이 적을 수록, 회사의 규모가 작을 수록 개개인의 업무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반면 규모가 크고 매출 규모가 상위권인 회사는 자원이 많기 때문에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성장이지만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목표를 향해 직원들을 독려 하려면 리더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리더가 기업을 어떻게 경영 하느냐와 연관이 깊다.

이용 가능한 자원을 넘어서는 도전,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향한 비전을 제시 할 수 있는 리더, 바로 성공하는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은 이런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 어려운 목표를 도전의 과제로 삼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모든 책상에 컴퓨터를 올려 놓은 일을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의 비전으로 정했다.

스티브 잡스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리더는 기술의 가치를 실현 시키기 위해서 그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대로 현재 사회의 기술과 제도를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에 맞게 기술을 변화 시키는 방법 뿐이라고 믿는 것이다.

리더가 제시 하는 비전을 보고 구성원들은 크게 도약 할 수 도 있고 현 상태에서 멈춰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비전을 향해 헌신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리더는 서로 헌신 할 만한 이유와 동기를 제시 해야 한다.

해병대 리더는 자신이 이끄는 대원들을 자기 자신 보다 우선시 해야 전체 조직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훈련을 받는다.

뛰어난 리더는 그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잇속만 차리거나 외부 거래자들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 대의란 항상 인간, 인간의 마음을 얻어야 비로소 번영 할 수 있다.

인간이 5만년 동안 생존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자신의 생명만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협력하며 공생 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제일 높은 사람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리더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모든 책임을 짊어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서 안전망을 더 튼튼하게 유지할 책임이 있다.

각자의 안위 보다 서로에게 작은 도움과 이익이 될 만한 것 부터 시작해야 스스로 속한 조직에서 리더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의욕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리더의 비전을 추구한다.

상부로 부터 보호 받지 못하는 조직원들은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

전구의 힘은 와트로 측정한다. 와트 수가 클수록 빛과 열로 전달되는 전기량이 많아지고 전구는 더욱 밝아진다.

리더는 실무를 맡은 직원들 매일 매일 발생하는 업무와 외부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직원들에게 조직 최상 위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전달 할 수 있는 체계와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조직의 흥망 성쇠는 결국 조직이 처한 내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리더란 개개인의 조직원들을 설득하고 훈련 시켜서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 이여야 한다. 이들이 임무를 책임지고 완수 할 수 있도록 독려 하면서 개개인에게 권한을 주는 역할 이여야 한다.

목표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적절한 보상과 책임을 해주는 조직의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가 있는 곳이라면 설사 허황되고 불가능한 목표가 있다 해도 그 목표를 향해 돌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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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20 16: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

scott 2021-11-20 16:32   좋아요 4 | URL
d(*⌒▽⌒*)b

새파랑 2021-11-20 16:33   좋아요 4 | URL
예전에도 그렇고 요즘도 그렇고 리더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성과만이 아니더라도 조직원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요~!! 스콧님과 같은 리더가 이끌면 야근도 밥먹듯이 할 수 있음~!!

2021-11-20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0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1-11-20 16: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잡스는 비전도 남달랐네요!!🤔 국가의 리더도 마찬가지겠지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scott 2021-11-20 16:38   좋아요 4 | URL
그쵸! 리더에 따라 조직원 전체
나라 전체
국민의 운명이 달라지능!!ㅎㅎ

잡스가 애플을 운영 할 당시 제시한 비전을 저렇게 제시 했지만

실제로 애플사에서 일하는 이들은 불행 하다고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도 마찬가지 ㅜ.ㅜ

mini74 2021-11-20 17: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시들에게 동굴벽화는 그럼 사냥 나가기전 프레젠테이션? ㅎㅎㅎ 작전화의인건가요ㅎㅎ 리더의 역할 확 와닿아요.앨런 머스크는 왠지 직원들에게 로켓 나눠줬울거 같은 ㅎㅎ ~~

scott 2021-11-20 17:17   좋아요 4 | URL
미니님 말씀이 정확!
사냥 나가기전 오늘 어떤 동물 잡을지 프레젠테이션을!!
작전을 짜야! 그날 부족 전체 배불리!

머스크,,,연봉은 0원인데 스톡 옵션으로 7조 받는 머스크!!!
직원들에게 로켓 주고 더 많은 이익 가져갈것응 ㅎㅎ~

페넬로페 2021-11-20 18: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조직과 리더의 역할이 scott님의 글에 쓰여진 것처럼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은 듯 해요. 전에 어떤 다큐를 봤는데 아직까지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서 같이 나가서 원숭이를 잡아왔는데 리더는 몇 시간동안 그것을 부족민에게 어떻게 하면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더라고요. 그것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scott 2021-11-21 00:15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실적을 내는 것 이외에는 조직원에 대한 애정이 별가루 만큼도 없는
무책임한 리더들이 많습니다.

성취한 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으면 오우케이
맘 편하게 하는 리더가 쵝오 ㅎㅎㅎ

부족 사회에서도 족장의 리더쉽이 중요 하죠!

다른 이들은 지나치는 다큐를 페넬로페님은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보셨네요.

인간의 조직은 작으면 작을 수록 스트레스 크기는 더 커진답니다 ㅜ.ㅜ
 
브로콜리너마저 - EP앨범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 비스킷 사운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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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브로콜리와 함께~♡
감사히 잘 듣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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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0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0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0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1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1-08-20 22: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앨범 좋더라구요~^^ 예전 곡들도 좀 듣고 있는데 참 명곡이 많네요.

scott 2021-08-21 00:23   좋아요 5 | URL
괭님도 브로콜리! ㅎㅎ
무공해 노래
무한 반복해도 전혀 싫증이 안나는데

먹는 브로콜리는 그때 그때 다릅니다.ฅ🐾

mini74 2021-08-20 22: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브로콜리와 함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스콧님 *^^*

scott 2021-08-21 00:24   좋아요 5 | URL
미니님 주말 맛나는게 많이 드세요

날씨가 식욕을 ฅ🐾

서니데이 2021-08-20 22: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브로콜리 너마저,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가 이어지는 내용 같은 제목이네요.
scott님, 벌써 금요일입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scott 2021-08-21 00:25   좋아요 5 | URL
맞습니다
서니데이님
문장형 제목입니다 ㅎㅎ

서니데이님 주말 건강 잘 챙기세요
항상 캄솨 ~ฅ🐾

새파랑 2021-08-20 22: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브로콜리 🥦 는 사랑입니다~!!

scott 2021-08-21 00:26   좋아요 4 | URL
그쵸 ! 브로콜리! 💗
새파랑님 주말 멋지게!
굿 나잇!!
┊ ┊ ┊ ┊ ┊ 🥦
┊ ┊ ✫ ˚♡ ⋆。 ❀
┊ ☪︎⋆ ⊹
┊ 🥦 . ˚

붕붕툐툐 2021-08-20 23: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콧너마저~😍😍

scott 2021-08-21 00:27   좋아요 5 | URL
툐툐님 혹쉬 브로콜리 키우시고 계신가여 ??
  __ ∧ ∧
/\  (*゚∀゚)\
\/| ̄ ̄∪ ∪ ̄|\
 \|  〓🥦  |
    ̄ ̄ ̄ ̄ ̄

붕붕툐툐 2021-08-21 01:24   좋아요 5 | URL
아뇽~ 브로콜리는 사먹는 아이. 그걸 키울 수 있다고 단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네용!ㅎㅎㅎㅎㅎ
근데 이모티콘은 너무 귀여워용~😍

scott 2021-08-21 17:06   좋아요 3 | URL
툐툐님 브로콜리 새싹이가 있습니다
그걸 갈아서 쥬스로도 마시고
샐러드처럼 먹기도 하고
브로콜리보다 좋은 성분이 많다고 하네요 ^^

bookholic 2021-08-21 07:1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먹는 브로콜리는 싫고 듣는 브로콜리는 좋아요~~^^

scott 2021-08-21 17:06   좋아요 4 | URL
북홀릭님 전 오래전에
브로콜리에서 살고 있는 벌레 보고나서

브로콜리는 음악으로 만 ㅎㅎㅎ^ㅅ^

그레이스 2021-08-21 12: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노래, 어떻게든 뭐라도, 지금 듣고 있어요

scott 2021-08-21 17:07   좋아요 3 | URL
오! 그레이스님 마저도 브로콜리를!!🥦🥦
 
기술의 시대 - 기술이 인류를 소외시키는 사회에 대한 통찰과 예측
브래드 스미스.캐럴 앤 브라운 지음, 이지연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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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로  재택근무 확산은 물론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일상 곳곳에서 인공지능기술이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 전화기, 개인용 컴퓨터(PC) 등과 같은 기기들과 달리 인공지능(AI)은 항상 접속 상태인 전기 처럼  우리 일상의 모든 도구와 장치에 쓰이고 있다.

특히  하드웨어에 인공지능이 접목된 안면 인식 기술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잠금 해제, 열화상 카메라, 폐쇄회로(CCTV 등에 쓰이면서 한편으로는 중요 범죄나 화재 현장을 예방 방지 하는 도구로도 사용되기도 하지만 안면 인식 기술을 이용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개인을 식별해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유출 될지 모르는 개인 정보는 물론 대규모 적으로 기업들의 데이터 속에 축적되고 있는 개인들의 신상 정보들에 대한 안전한 보안 장치나 법적 규제 없다. 이로 인해 인공지능 시대에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디지털 신 기술에 대해 IT 업계와 정부가 인공지능에 관한 윤리적 문제와 인권 문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류의 문명은 항상 데이터 중심으로 움직였다. 인간은 언어로 소통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부터 자신의 생각과 사고 경험을 서로 공유 하며 문명을 발전 시켜 나갔다. 문자의 발명과 해독 능력은 서로 다른 경험과 지식들이 축적 되고 교류 하면서 더 정교한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인쇄의 발명, 지식의 보급, 전파, 문서를 보관하고 유통하면서 다음세대로 정보를 전달하면서 이렇게 축적된 지식들을 함께 읽고 저장하고 찾아보며 공유 하면서 국가라는 기틀이 세워질 수 있었다. 

 인류 발전의 시작은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이루어졌다. 20세기에 들어서 발명 된 컴퓨터라는 디지털 기기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생 가능한 지식 자원을 생산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컴퓨터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들은 전세계 기기들과 연결되어 불과 반세기 전에는 실현 불가능했던 일들을 해내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인류는 개개인의 스마트 폰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광범위하게 연결된 인터넷 시대는 개개인의 편리함을 벗어나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부작용도 크다.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해킹을 통해 기업이나 병원, 금융사 전산망을 무력화 시키거나 거짓으로 누가 무언가를 발언하거나 행동한 것처럼 꾸미는 정교한 오디오·비디오를 합성하는 기술 ' 툴’이 법적 규제와 제제를 피해 인터넷 상에 떠돌고 있다.

이처럼 기술 진보는 현대 사회에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사생활 침해, 사이버 범죄와 사이버 전쟁, 소셜 미디어, 인공지능의 도덕적 문제, 불평등과 빅 테크놀로지의 관계,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도전 등은 그동안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문제다.

이책의 저자 마이크로소프트(MS)의 브래드 스미스 사장과 캐럴 앤 브라운 이사는 "디지털 기술은 말 그대로 도구이자 무기가 됐다. 우리는 인류에게 더 많은 기술을 보급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기술에 더 많은 인간성을 주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 한다.

그렇다면,기술 발전의 속도가 인간을 앞서갈 때 기술 선도 기업과 사회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다면 그로 인한 변화에 사람들이 적응하도록 도울 의무가 있다. 

 눈부신 기술 혁신을 통해 시장 점유율과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에만 급급했던 정보기술(IT) 업계는 비대면 사회 시대로 접어든 코로나 팬더믹 시대에 인공지능에 관한 윤리적 문제와 인권 문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혁신을 이어가면서도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보호하고, 편견이나 차별의 위험을 없애려면 새로운 법률과 규제가 필요하다.

이 책의 두 저자들은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사법 기관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입법으로 정해두라며  당장 사람의 목숨이 위험한 것 같은 긴급 상황이나 감시를 위해 수색영장 같은 법원의 명령을 받았을 때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규칙이 만들어질 것 이라고 주장한다.

MS, 구글, 페이스북 등 기술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은 기업의 수익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개인정보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고, 정부는 혁신의 속도를 따라 잡아 기술을 규제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현대 사회에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사생활 침해, 사이버 범죄와 사이버 전쟁, 소셜 미디어, 인공지능의 도덕적 문제, 불평등과 빅 테크놀로지의 관계,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도전 까지 그동안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먼저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 해야 한다.

도구의 힘이 막강해지면 그로 인한 혜택이나 크기도 커진다. 디지털 인공 지능 시대가 몰고 온 변화는 새로운 불안의 시대를 예고 하고 있다. 이민, 무역, 소득 불평등은 물론 포퓰리즘 정치가나 국수주의자들이 조장하는 분열에 개인의 공동체를 넘어 인류 전체를 힘겹게 만들고 있다.

인류를 혁신의 시대로 안전하게 이끌고 가려면 기술을 만들어낸 기업이 반드시 민주 사회를 안정적이게 유지 할 수 있도록 일자리의 안전과 기본적인 인권 문제를 함께 해결 하는 방법을 찾아 내야 한다. 혁신의 가장 큰 위협은 정부의 과잉 조치와 과잉 규제다. IT기술은 민주적 자유와 인권이라는 기본적 가치와도 깊이  연관 되어 있다. 기술의 혁신은 민주적 자유 제도 아래서 성장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보호 할 책임이 있다. 코로나 팬더믹 시대에 기술의 발전 속도가 예상 보다 빨라졌다. 속도를 조절 할 수 없다면 법적 제도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사회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세상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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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5-16 17: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기술의 발달이 여러가지 부작용도 많겠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것 같아요~~여러가지 편의를 누릴 수 있어서요^^ 하지만 기술이란것의 시작부터 차별이 전제되니 양날의 칼인게 틀림없는 것 같아요 ㅠㅠ
보통 이런 책들은 어떤 사실의 나열만이 대부분이고 끝은 흐지부지하던데 scott님께서 별 다섯개를 주시니 흥미롭습니다~~

scott 2021-05-16 23:58   좋아요 3 | URL
기술 발전이 인간의 속도 보다 한참을 추월해서
현재 우리의 개인 정보가 어떤 식으로 쓰이고 있는지도 모르게 새어나가는 ,,,
법적인 안전 장치 마련 하기 전에 코로나로 4-5년 이상 앞당겨졌습니다.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시작 부터 차별이,,,
어르신들 햄버거 주문 하실때 카페에서 주문 하실때 어려워 하시고 포기까지,,,

사실만 나열 되진 않고 지금 한참 논의 중의 사항들인데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이런 기업들 부터 법적 제한과 여러 보호망이 만들어져야 한국에도 적용이 된다죠.

저의 별 다섯은 제가 끝까지 완독 할수 있는 수준의 글일때 ^.~

미미 2021-05-16 19: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크롤하다 놓쳤나봐요! 지금 읽었네요. 도구도 무기도 될수 있는 인공지능, 미래 산업들! 제도적 장치를 미리 마련해두어야 하는데 입법자들은 늘상 문제가 터진뒤에 나서는 느낌이예요. 비트코인도 뭘 알아야 장치를 마련할텐데 제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가니 걱정입니다.🤔🧐

scott 2021-05-17 00:02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입법자들은 자신들의 신상에 문제가 생길때만 움직이는 ㅎㅎ
각종 제재와 조치는 정작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동안
비트코인 광풍에 어떤 이들이 피해를 볼지 못하는 상황이죠.

새파랑 2021-05-16 22: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최근 1일 2리뷰~!! 이런 분야까지 잘아시니 저는 감탄에 감탄을 합니다 ^^ 어제 말씀하신 스마트폰에 연관된 책읽기 같은데 ㅎㅎ 이 리뷰를 계기로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겠어요. 영문제목과 한글제목이 왠지 괴리가 있긴 하네요 ㅋ

scott 2021-05-17 00:04   좋아요 3 | URL
원래 소설은 잘 안 읽어요 ㅎㅎ
처음 알라딘에 서재 생겼을때 제가 읽는 책중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서
많이들 읽는 책들, 읽었던 책들 위주로 올렸습니다.

한글 제목 넘 두리 뭉실 하지 않나요?

이런거 읽어둬야 조직에서 살아남아서 ^ㅎ^

바람돌이 2021-05-16 22: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여러문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 국가의 책임을 정확하게 지적해주는 면이 인상적이네요. 실제 기업은 이유추구가 먼저고, 국가, 정부기구는 이런 면에 대해 무지한게 일반적이잖아요. 지금 사실 코로나 때문에 기술의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고 확산 속도는 어지러울 정도인데 윤리나 시민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괴리가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온라인 수업이 가져오는 문제들을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 간과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해요.

scott 2021-05-17 00:25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은 현장에 계시는 온라인 수업과 원격 강의 문제점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지만 정작 국가나 기업은 이런 저런 보안이나 개인 인권 보호 이런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죠.
일단 미국의 IT기업들이 이런저런 압력에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할지 모르지만 이들이 코로나로 엄청난 수혜를 입었으니 정부와 적절하게 타협의 방향으로 갈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규제들 미국쪽 방향보고 정치인들은 맨 나중이고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을까요?
이제는 국가보다 구글에 종속된 삶을 살게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