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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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27일 뉴욕 '빌리지 보이스'에 기사 한 편이 게재 된다.

그 기사의 제목은 '역사의 다음 위대한 순간은 그들의 것이다'(The Next Moment in History Is Theirs)


'그들은 각자 만의 불을 품고 모였다. 나는 이들의 손에 들려진 불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것임을 믿는다. 신은 알 것이다. 나의 태어나지 않은 딸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노라고.'

-1970,11.27 빌리지 보이스, 비비언 고닉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은 비비언 고닉으로 서른 세살의 기자가 쏘아 올린 불길은 뒤이어 '여성 해방 운동가들'인 티그레이스 앳킨슨,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필리스 체슬러, 엘런 윌리스, 앨릭스 케이츠 슐먼 운동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1970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의 인터뷰들이 매회 연재 될 때마다 신문사 '빌리지 보이스'는 온갖 협박 전화와 지지자들의 응원 전화들이 쉴새없이 울렸다.

수 많은 미디어 매체들이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 비비언 고닉에게 달려가 진실의 여부를 판명 해 달라고 빗발치듯 항의를 했고, 의문의 백인 남성들은 그녀의 가족, 친지들의 이름을 알아내 협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기자 비비언 고닉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을 뒤로 하고 지난 수 세기 동안 고통을 당한 여성들의 자유, 인권을 울부짖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대학에 갔지만 학위가 미드 타운의 직장을 구해주지는 못했다. 예술가와 결혼했지만 우리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살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14번가 윗 동네에서 내 글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류 회사의 문 따위는 열리지 않았고, 휘황찬란한 세상도 내내 멀기만 했다.'


기자 비비언 고닉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 하기 위해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달려가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주며 열띤 취재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사에 담았다.

취재를 나가기 전 비비언 고닉은 자신의 책상 앞에 안톤 체호프의 문장을 단단하게 고정 시켜 놓았다.

'남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었지만 나는 내게서 그 노예 근성을 한 방울 또 한 방울 짜내야만 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 문장을 응시하며 현장을 누볐던 고닉은 영혼의 노예 상태가 될 때 마다 저 구절을 되새기며 사랑이라는 환상, 공동체라는 환상, 일이라는 환상이 불러 일으킨 상실과 허탈감을 견뎌내며 1970년 세상을 뒤흔들며 강렬하게 들끓어 올랐던 그녀들의 음성을 떠올렸다.


비비언 고닉에게 페미니스트들은 세상과 맞서는데 필요한 검이자 방패였고 삶의 위안과 위로를 주는 존재였지만 1980년대로 넘어가자 단단하게 보였던 페미니스트 연대가 해체 되기 시작했고 서로 연대 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무너져버렸다.




시간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 2006년 여성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인 소수 인종 여성과 아동들이 성폭력, 언어 폭력,감금, 폭행등의 피해 사실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해서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 추가 발생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운동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 반 세기 페미니즘 물결의 선봉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취재 했던 기자 '비비언 고닉'의 이름이 언론과 출판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2015년 비비언 고닉이 몸 담았던 신문 '빌리지 보이스'는 폐간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4년 후 고닉은 애증의 관계였던 어머니에 관한 회고록<사나운 애착>으로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뉴욕타임스가 뽑은 '지난 50년 간 최고의 회고록'으로 선정된다.


마흔다섯 살 딸과 일흔 일곱 살 어머니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던 그곳 ,뉴욕의 한 거리를 어느 새 팔십 세에 접어든 딸이 걷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들린 약국에서 아흔 살 베라를 만난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없는 인근 4층 짜리 건물에 살고 오래전부터 트로츠칼 의자로 늘 가두 연설이라도 하듯 절박하게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이다.'


조제 중인 처방 약을 기다리는 동안 팔십 세 고닉은 아흔 살 베라에게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식, 남편의 사망 이후 찾아 온 새로운 사랑, 그리고 이제는 혼자 살고 있음에도 딱히 우울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굶주림과 전쟁을 피해 미국 땅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고닉은 가난한 이민자들의 거주지였던 브롱크스의 다세대 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한 살 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뉴욕 구석 구석을  탐험하듯 맨해튼 북부와 남부 서부와 동부를 가로질러 다니며 수 많은 이들을 관찰하고 목격했다.


'나는 어린 시절 살았던 공동 주택 이웃들의 우정, 그저 모든 게 상황에 좌우되던 그 관계들을 자주 떠올린다. 필요한 순간마다 말없이 알아주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검고 동그란 눈의 여자들...'


서른 다섯이 되기 전 결혼을 두 번 했고, 이혼도 두 번 했던 그녀의 인생에서 사랑은 '궁극'의 순간으로 나타났다.


'우정에는 두 가자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다.'


비비언 고닉은 20년 지기 친구 레너드를 만날 때면 반나절의 시간을 훌쩍 보낼 정도로 대화가 끊이지 않으면서도 뉴욕이라는 대 도시에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에서 쉽게 '우정'이 싹트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빼앗기도 하고 쉽게 내어주기도 하다가 돌연 미세한 감정 선을 건드려서 그 우정이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사이처럼 되어버린다.


'삶이 불능의 총합처럼 느껴지려 할 때면 나는 타임스 스퀘어까지 산책을 나선다. 세상에서 가장 요령 넘치는 하층민들의 본고장인 그곳에 가면 금세 통찰이 회복된다.'


그녀는 평생 동안 뉴욕에 살면서도 지난 시절의 그들이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안부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으로 뉴욕 곳곳을 걷던 중 불쑥 브롱크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웃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불쑥 말을 거는 사람들과 쉼 없이 대화를 나눈다.


영미 문학계에서 작가들의 작가로 불렸던 '제임스 설터'처럼 에세이와 회고록 분야에서 비비언 고닉은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에 비견 되는 문학비평가이자 회고록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될 만큼 자전적 글쓰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책들은 일찌감치 절판 되어 일반 서점에서 찾을 수 없었다.


2020년 영미권 에세이와 회고록 출간 리스트에 자전적 글쓰기의 고전으로 재 평가 받은 <사나운 애착>이 올라가자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록산 게이,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이 칭송 하면서 비비언 고닉은 이 시대 최고의 회고록 작가로 새롭게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지난 시절에 출간된 책들이 새 판형으로 출간 되며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8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경제적 여유가 생긴 고닉은 여러 매체 인터뷰를 통해 '세상이 이제서야 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 비비언 고닉은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글과 창작 수업에 관한 글을 발표하는 동안 심장병 수술을 받고 유쾌한 목소리로 회복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아흔 네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불법 낙태를 한다며 십 달러를 빌려 달랬던 이웃집 아줌마가 낳은 딸 역시 세상을 떠났다.

동시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페미니즘 물결에 올라 탔던 1933년생 수전 손택, 1934년 생 조앤 디디온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1970년 서른 세 살의 비비언 고닉이 걸었던 5번 애비뉴, 그곳에 몰려 들었던 군중들은 흰색이였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 2023년의 5번 애비뉴는 검은색과 갈색 군중들로 뒤덮혀 있다.

비비언 고닉은 평생 동안 단 한번도 흰색의 군중, 화이트 컬러 부류가 아닌 항상 블루 컬러들 옆에 서 있었다.

그녀가 걸어 왔던 길에는 불법 체류자, 배우, 범죄자, 반 체제 인사, 게이들, 전문 시위꾼들, 정치 선동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관광객들로 이들 중 절반은  범죄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비비언 고닉,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로 오늘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걷는 이들이다.



나는 그녀의 글을 학부 시절, 창작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지침서로 각 대학 창작교재로 쓰이고 있는 <상황과 이야기(The Situation and the Story)>에서 비비언 고닉은 이렇게 말한다.


[자서전의 주제는 항상 자기 인식이 우선이지만 실체가 없는 자기 인식이여서는 안된다.

기억력이 뛰어난 이들이 시인이나 작가가 되어 세상에 창작물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일반인들은 이들과 차별 될 수 있게 이런 저런 유명 작가들의 조언이나 철학적 어법에서 벗어난 생생한 어휘로 채워진 자서전을 완성 해야 한다.

좋은 글에는 두 가지 성격이 포함 되어야 하는데 매 페이지 마다 살아 있는 어휘, 실제로 경험하고 목격한 것들로 채워져야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내어 글쓴이의 삶의 여정을 따라 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시인이나 소설가 그리고 회고록을 쓰는 이들 주제를 명확하게 잡지 않으면 독자들의 시선을 붙들지 못한다.

글에는 자신의 경험과 체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서 가장 쉽고 명확한 어휘와 문장으로 누구나 읽고 싶게 써야 한다.

작가들마다 각기 다른 어조, 시점, 문체가 있다. 독자들은 첫 문장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어떤 삶이 펼쳐질지 판단하기에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라는 걸 고심하는 것 만큼, 자신의 색깔, 어떤 문장으로 써나갈지 부단한 연습과 노력을 해야 한다.

허구의 이야기에서 화자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스토리의 중심을 이끌어가면서도 그 또는 그녀가 하고 있는 이야기, 경험등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 있다.

반면, 자서전과 회고록에서 화자는 절대적으로 진실을 이야기 해야 한다. 불명확하게 또는 모호하게 두리뭉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속여서는 안된다.

독자들은 단 몇 페이지만 읽고 알아챈다.

'이 인간이 말하는 게 진짜야.'

'나랑 같은 세대 인데 이런 생각을?' 이라며 문장과 문장, 매 페이지 마다 독자는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쓴 저자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앞으로 나와 함께 써나가는 각자의 회고록이 완성 되면 나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기 써 있는 것이 사실이였어?, 진짜 네가 경험한 거야?']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 중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걸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날카로운 메스로 체험한 것 경험한 것을 날 것의 언어로 도려내듯 썼다면, 비비언 고닉은 자신의 삶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타인과 나, 시대와 경험, 감정과 기억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질문 한다.

그러기에 그녀의 글, 자전적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한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모습과 세계를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녀가 이야기 하는  세계는 인간의 내밀 하고 모순적인 욕망들이 느껴지고 거대한 도시 속에서 고된 노동으로 지친 이들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고 그리고 마음 속에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비비언 고닉은 지난 반 세기 동안 타고난 논쟁자로 어떤 단체에 입장을 대변하는 일이 라면 용감하게 맞섰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다양한 매체에 기사와 에세이를 써내며 세상이 공격하면 논리적으로 맞받아쳤고 어떤 권력이나 특정 단체 하고도 타협하거나 슬그머니 뒤로 빠지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이 바뀌었다.

2001년 뉴욕 한 복판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그녀는 여러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며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고 그리고 혼자 걷고 있다.

고닉은 걸으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보며 고통을 흘려 보냈고 그럭저럭 거대한 도시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하루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낸다.




뉴욕 컬럼버스 애비뉴에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매일 다양한 공연이 펼쳐 진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구경하는 이들 모두 세상의 한 부분처럼 각기 다른 피부색과 부의 크기로 나눠진 거대한 도시 뉴욕에 몰려든 이들로 공연이 열리는 순간 만큼은 한 곳을 바라 보고 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앞을 보며 똑바로 걷지 못한다.

때로는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주저 하거나, 멈칫거리거나, 멀리 도망쳐 버리거나 그대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기도 한다.

거리는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도시 속에서 숨을 쉬는 이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도시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며 살아 가야 한다.


2021년 윈덤 캠벨 문학상 논픽션 부문 상을 수상한 후 뒤이어 발표한 에세이와 비평집, 회고록으로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비평 부문 후보에 오른 비비언 고닉은 여전히 도시를 걷는다.

그리고 6번 애비뉴 버스에 올라타 아흔에 가까운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7번 애비뉴 정류장에 내린다.

그녀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민 한 흑인 남성 '천지가 적이네!'라고 내뱉자, 고닉은 '저야 모르죠' 라고 대꾸한다.

그녀는 걸으면서 머릿속을 비우며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쉼없이 떠오르는  공상에 빠지기도 하고 지난 시절 엄마와 나눴던 대화, 대학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 우연히 알게 된 억만장자 상속인의 딸의 모습을 떠올린다.

쉼 없이 걷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떠올리는 그녀의 기억 속에 사람들은 서로 사랑했고, 헐뜯었고, 비아냥 대면서도 각자만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렇게 걸으면서 맞이한 마흔, 오십, 예순, 일흔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여든 살,  비비언 고닉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은 몇 년일까...


혼자 남겨진 친구들,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웃들, 먼 곳으로 떠났던 이들 중에 영영 돌아오지 못한 곳으로 가버린 이들의 모습을 하나 둘 씩 떠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 20년 지기 친구 레너드는 '외로움이라는 습관은 질기기 때문에 쓸모 있는 고독으로 바꾸지 않은 이상 너는 영영 엄마 딸'이 라는 말을 한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삶의 한 부분을 의지하고 지탱해 줄 사람이 없어도 비비언 고닉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봐 주며  말과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지적해주는 친구, 그 모든 친구를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찾아냈고 만났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이후로 페미니스트들은 반세기를 주기로 '해방된' 여성,' 자유로운' 여성으로 불려졌지만 비비언 고닉은 이에 동의 하지 않는다.

1897년 남성 작가 조지 기싱이 발표한 소설 <짝 없는 여자들>의 나오는 서른 살의 로다 던은 사랑과 결혼을 노예제에 빗대며 경멸하며 남자와 여자는 그들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무엇이 되려 하는지 묻는다.


비비언 고닉은 <짝 없는 여자들>의 로다가 외치는 열정적인 화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내어 1970년 대 급진 페미니즘의 과격한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외치며 현실과 이론의 간극에서  좌절하면서도 걷고 또 걸었다.

2023년 미국 전역에서 폭발 하고 있는 분노와 외침은 권력의 한 축에서는 듣지 않고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범죄와 차별은 지난 반 세기 전 1970년대 현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월의 어느 날 저녁, 비비언 고닉은 워싱턴 광장에 서서 백 살을 훌쩍 넘긴 오래된 나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곳에 왔을 때도  서 있었던 나무를 바라본다.

그 시절 이곳 광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백인이였다. 그녀는 그 광장을 지나 자신의 삶을 이어주는 길, 도로를 따라 걷는다.

여든 여덟의 비비언 고닉은  계속 걷는다. 아니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걸으면 워싱턴 광장을 지키고 있는 그 나무의 나이를 뛰어 넘을 것이다.


나란히, 묵묵히, 끊임없이 걷고 있는 비비언 고닉은 20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한 획을 그었던 이들 중 한 명으로 그리고 21세기 반세기 최고의 회고록을 쓴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전 세계 도시란 도시에는 골목 돌길이며 허물어진 교회며 유적이 된 건축물마다 민중이 심어있다. 하나같이 몇 백 년 동안 한 번도 파헤쳐진적 없이 그저 켜켜이 포개어 올려진 것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삶이라는 건 구조물이 아니라 이 목소리들- 그 어떤 목소리도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지 않고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2015년 비비언고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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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3-03-09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읽게 된다면 비비언 고닉을 소개해주신 scott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scott 2023-03-09 23:38   좋아요 2 | URL
앞선 출간 된 <사나운 애착>은 그냥 그랬지만(뉴요커 특유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싫어서 ㅎㅎ) 이 책은 정말 좋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오랜 세월 살았던(한 때) 도시를 걷는다면 이라는 상상을 할 정도로 시대의 목소리, 지성이 넘치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머리통을 후려 치게 만든 책입니다 ^^

2023-03-09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9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0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0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3-11 0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은 비비언 고닉 일찍 알았군요 길을 걸으면 지난 일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비비언 고닉은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글로 썼네요 그때가 그립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 살아가는 건지...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겠네요

scott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3-03-11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3-11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비언 고닉 에세이 한 권만 사다 놓았었는데,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으니 읽고 싶다! 생각이 들었는데, 스콧님 글도 읽어야겠다!란 생각이 드네요^^

2023-03-11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3-11 14:00   좋아요 1 | URL
~~~공연을 한다. 제목이에요.
리뷰는 안 써도 고닉의 도시 이야기랑 사악한 애착 이야기 두 권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네요.^^

2023-03-14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4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3-14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비언 고닉에 대한 풍부한 글이네요. 책 전체의 흐름을 알려주는 스캇 님의 리뷰, 사진과 정보가 첨가된 멋진 리뷰를 통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뉴욕이 펼쳐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cott 2023-03-14 11:03   좋아요 0 | URL
고닉의 글을 읽다보면 그 시절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살아 숨쉬죠

봄날 목련님도 고닉과 함께 걷고 읽고 쓰고 ^^

그레이스 2023-03-18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약국에서 약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대화는 우울한 내용은 너무 재밌게 그렸어요
결국 그들 대화를 듣던 그 옆에 남자가 함께 큰 소리로 웃는 모습은 그냥 한컷의 만화나 영화의 한장면으로 다가왔어요
보고 또 펼쳐 보게 되는 페이지!

2023-03-19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 - 꼭 가야 하는 도쿄 문구점 80곳
하야테노 고지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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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문구류와 얽힌 추억은 하나씩 갖고 있을 것이고 어린 시절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스스로 '현금' 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문구점으로 그곳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부터 시간의 마법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문구류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기 보다 내 눈으로 직접 보며 시간을 들여 고른 제품들이여야 언제 어디서든지 사용하게 될 정도로 사람에게 가장 밀착된 애착 아이템들이다.

아이패드, 노트북, 그리고 스마트 폰에 다양한 쓰기 와 그리기 기능은 정교함을 뛰어 넘어 자유자재로 이미지를 넣고 파일을 첨부 시키고 영상을 재생 하며 입체적인 필기 노트를 장착한 정교하면서 영리한 기기들로 인해 점점 손으로 쥐는 펜과 연필 그리고 종이 노트와 각종 메모지들과 멀어지게 된 시대에 오로지 한 도시에서 문구점만 순례 하는 문구 덕후가 있다.


여행 일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하야테노 고지는 '문구 없이 삶도 없다'라는 모토로 살아가는 문구 덕후로 웹 매거진 <매일, 문방구>에 정기적으로 일러스트를 그리고 칼럼을 쓰고 있다.



자신의 일 때문에 문구점 주인들과 사적인 교류는 물론 개인 주문까지 할 정도로 일상의 모든 것을 문구점에서 찾는 문구 덕후 하야테노 고지가 알려주는 독특한 개성이 넘치는 도쿄 문구점을 따라가 보자.


가장 먼저 문구점에 들어 가면 보이는 상품 진열과 가게 분위기를 잘 살펴서 어떤 테마를 중심으로 문구류를 팔고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문구점 가게 마다 각기 다른 콘셉트가 있어서 눈길이 가는 상품 뿐만 아니라 테스트용 샘플 제품, 신상품,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희귀 아이템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

일반적인 문구점은 필기구, 사무용품 코너와 카테고리별 코너 이렇게 세 가지로 구역을 정해 놓고 각각 자신들의 가게에서 판매 되고 있는 상품 중에 집중적으로 팔고 있는 제품들, 학기 시즌 별 제품, 한정 상품, 계절 아이템 그리고 세일 상품들이 판매 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브랜드의 로드숍과 백화점이 몰려 있는 긴자 지구에는 건물 전체가 문구류만 팔고 있는 대형 문구점이 많은 곳으로 어느 문구점에서 시간을 보낼지 정해야 할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구경하고 구입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긴자 이토야 > 본점 같은 경우에는 1904년에 창업한 역사가 오래된 문구점으로 1층에는 드링크 바가 2층에는 편지 코너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고급 만년필을 대여 해주고 편지 엽서를 보낼 수 있는 우체통까지 설치 되어 있다.

3층에는 고급 필기구 4층에는 각양 각색의 수첩들로 가득차 있고 5층에는 각종 샘플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맨 꼭대기 층은 카페 레스토랑으로 여기서 직접 재배한 채소들로 만든 샐러드와 샌드위치, 쥬스를 판매 하고 있다. 그야말로 문구를 좋아해서 들어간 공간에서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사진 찍고 편지를 쓸 수 있는 곳이다.

긴자 구역 문구점은 직접 자신들이 제작한 자사 종이를 판매 하거나 기능과 디자인을 직접 도안한 제품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많다.


1663년 교토에서 문구점을 개업한 <도쿄 규쿄도>는 에도시대 도쿄로 수도를 옮긴 후 이곳에 분점을 차리고 1982년 그 자리에 건물을 세워서 오로지 서예와 관련된 도구와 제품들 그리고 향도를 판매 하고 계절 별로 다양한 옛 편지지와 봉투 그리고 만년 붓, 족자를 제작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테마치 지역에는 일찌감치 문호를 개방하고 해외 문물을 받아 들이면서 문을 열기 시작한 문구점들이 여전히 대를 이어서 영업하는 곳이 몇 군데 남아 있는 곳으로 유럽에서 생산된 제품은 물론 일본의 오래된 철도 역사를 담고 있는 독특한 문구점도 있다.


지하철 역마다 자리 잡은 문구점은 서적까지 판매해서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오로지 여행과 관련된 문구류와 기타 물품만 파는 실용적인 가게도 있다.

신주쿠 지역으로 넘어가면 젊은 시절 문구점 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일찌감치 회사를 나와 자신이 직접 개발하고 제작 주문한 문구류를 판매 하는 곳이 있다.

신주쿠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 학원 대학' 일명 문화 복장 학원이 있어서 의상 디자인과 미술 디자인에 관련된 문구류와 기타 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 하는 곳이 많다.

패션업이나 미술 갤러리 큐레이터 출신들이 차린 문구점은 다양한 잡화까지 판매 하면서 고객들이 직접 써보고 그리고 채색할 수 있는 체험 공간 까지 마련 되어 있다.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책의 거리'가 있는 JR야마노테 선이 지나가는 구역은 와세다 대학으로 가는 방향과 메이지 대학이 있는 유명한 헌책 방 밀집 지역인 진보초를 지나 갈 수 있는 곳으로 최초로 서양 종이를 판매했던 문구점과 유럽과 처음 문호 개방을 했을 때 유럽인이 직접 문을 연 문구점까지 있는 곳이다.

문구 디자이너 장인들은 물론 과거의 공산국가 시절에서 판매 되었던 유럽산 제품 그리고 작가들이 가장 자주 찾는 문구점 까지 있고 카페와 다양한 식당들이 즐비 한 곳이여서 이 지역은 하루 일정으로 둘러 보기에 부족할 정도로 볼거리 먹을 거리가 많은 곳이다.


에도 시대 부터 전문 기술자들이 모여 살았던 구라마에와 아사쿠사 지역은 일명'제작의 거리'로 알려 질 정도로 이곳에 있는 문구점은 고객들이 직접 제작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템들을 팔고 있다. 자신만의 취향을 담은 노트를 만들 수 있고 그림책도 만들 수 있어서 아이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도쿄의 각 지역의 문구점 주인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문구점을 열었는데 가업을 이어서 10대째 오로지 문구류만 팔고 있는 노포들 부터 예술직에 종사했다가 창업한 이들, 10대 시절 부터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사 모은 문구류를 끌어 안고 살다가 결국엔 문구점을 열게 된 이들 그리고 더 이상 영업 하지 않은 폐가가 된 옛 문구점을 인수 해서 직접 제작한 문구류를 판매하는 곳까지 문구점 주인 마다 각양각색의 사연을 품고 있다.


조상 대대로 종이를 제작한 집안의 손녀는 오로지 장인이 제작하는 명품 종이만 판매해서 유럽에서도 주문이 들어 올 정도로 전 세계 종이 컬렉터들이 반드시 한 번은 들리는 문구점도 있다.


2010년에 들어선 문구점들은 카페와 휴식 공간, 편지 쓰는 공간, 사진 찍는 공간을 갖춰 놓고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 하면서 고객의 발길을 최대한 오래 머물 수 있는 판매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도쿄에는 여전히 문구점 주인들의 개성과 취향이 담긴 다양한 문구점들이 즐비 하다.


학생 시절 가방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필기 도구와 노트들로 어떤 필기류와 노트를 만나는지에 따라서 학습의 집중력이 달라질 정도로 문구류마다 각기 다른 기능과 독특한 매력이 있다.


나는 문구 덕후, 마니아는 아니지만 여전히 다양한 펜촉과 그립감을 갖춘 만년필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서랍에 쟁여 둔 잉크들 중 상당수는   열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만년필이나 기타 펜으로로 무언가 끄적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문구점에 들어서는 순간 코 끝에서 느껴지는 나무 향기, 연필심의 흙 향기 그리고 고급스럽고 단정한 색으로 펼쳐진 그 공간에 오래도록 구경하는 걸 좋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엔 도쿄에 이토록 개성이 넘치는 문구점이 있었는지 몰랐다.

진보초 거리를 걸을 때도 문구점보다 책방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가게로 발 길을 돌렸었다.

문구류 주문도 앱으로 하는 시대지만 가끔씩 문구점에 들려서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들을 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일본 도쿄에 간다면 오로지 문구점만 순례 해도 재밌는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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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5 23: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쿄에만 꼭 가야하는 문구점이 80곳이라면 그것만 다 돌아봐도 엄청난 시간이 들겠네요. 거의 오타쿠급의 매니아가 아니라면 그정도는 힘들듯요. 그래서 어딘가를 지나다가 예쁘고 독특한 문구점이 있으면 꼭 들러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저도 그렇고요. ^^

scott 2023-02-16 00:18   좋아요 3 | URL
다들 어쩌다 들려서 기념으로 사는데
실제로 도쿄 문구점에는 한국에서 수입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건축가나 예술가들은 한달에 꼭 한 번은 간다고 합니다.

희선 2023-02-16 0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은 문구점도 오래된 곳 많군요 대를 이어서 하다니... 문구점에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했다니 그런 곳은 한번 가면 쉽게 나오기 어렵겠습니다 도쿄에 있는 문구점 여든 곳을 소개하는군요 문구점 좋아하는 사람은 일본에 갈 때 이 책 가지고 가면 좋겠네요


희선

scott 2023-02-16 10:39   좋아요 1 | URL
백년 가업을 이어가는 것도 대단하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앱주문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구매 하는 이들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문구 덕후가 아닌데 막상 일본 가면 사고 싶은 문구가 많아서 갈 때 마다 주섬 주섬 ^^

책먼지 2023-02-16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이 생산성 뭐예요!! 어려운 책만 올리면 힘들어할까봐 난이도 조절까지 해주심!!! 저도 쓰지도 않으면서 만년필, 잉크, 연필 모으는 타입이라 써주신 글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여행 가고 싶네요.. 문구 테마 아니라도.. 도쿄 아니라도.. 어디든! 당장!! ㅠㅠ (책장 공개 전에 차근차근 문구 공개부터 하시는 건가요?!!)

2023-02-16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6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6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3-02-16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일본 가고 싶어지네요. 문구점 순례 여행이라니 생각만해도 기분좋아집니다.

scott 2023-02-16 10:42   좋아요 0 | URL
그쵸! 문구 덕후 아니더라도 도쿄 문구점에 가면 포스트 잇 한팩이라도 살것 같습니다 ^ㅎ^

새파랑 2023-02-16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동네 문방구는 많이 없어지고 오피스 디포만 많던데 ㅋ 일본은 이런 아기자기한게 좋더라구요~!! 알라딘 우주점에도 문구류 많던데 ㅋ

연필시리즈 예쁘네요 ^^

scott 2023-02-16 16:02   좋아요 1 | URL
알라딘 우주점 문구류가 이제 커피 마시는 곳 까지 점령해 버렸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곳은 패쑤^^

거리의화가 2023-02-16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구 덕후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쿄 여행은 너무 짧은 일정이라 문구 순례는 하지를 못했어서 아쉬워요ㅠㅠ 가면 문구보며 눈이 저절로 돌아갈 듯합니다. 이 책 그림체도 귀엽고 너무 좋네요!ㅎㅎㅎ 저도 만년필 몇 자루 갖고 있어요. 라미도 한 2~3자루 갖고 있는 것 같고 만년필도 욕심 가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더군요ㅠㅠ

2023-02-16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2-19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쿄에 가본적은 없지만 스콧님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scott 2023-02-19 18:47   좋아요 1 | URL
일본인들이 이토록 문구류를 애정하는지 몰랐습니다
아마도 한국보다 앱마켓이나 스마트폰(여전히 2쥐폰 쓰는 이들도 많은) 보급율이 낮아서인지도 ㅎㅎㅎ

이 책으로 저도 도쿄 문구점을 눈구경 했습니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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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기차에서 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학교를 바꾸고 새로운 도시에 마음을 붙이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대학 도시여서 곳곳에서 만나고 부딪치는 이들 모두 각기 다른 학부 과정에 다녀서  서로 전혀 알지 못해도  펍이나 콘서트 장 클럽에서 만나면 곧바로 친구가 되었다.

한 친구를 사귀니 그 친구들의 친구가 되었고 서로 어려운 일이나 도움이 필요 할 때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는 친구들이 내 주변을 에워쌌다.

엄청난 포부와 원대한 계획을 품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학교를 옮겼던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정신이 팔려서 수업이나 세미나 시간에 자주 지각을 했고 튜터링 타임에서 준비 부족을 지적 받았고 서서히 제출 하는 과제들을 다시 제출 하라는 경고를 받게 되었다.

입학 당시 면접 점수에서 만점을 주었던 학과장은 자신의 수업 시간에 단단히 나의 수업 태도나 정신 상태를 지적 했고 모든 발표 수업 때마다 충격의 학점을 날리며 겁을 주었다.

그 학과장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였기에 당시 내 스스로의 문제점을 직시 하지 못했고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그 학과장을 험담 하면 나도 그들 틈에 끼여 들었다.

사건의 발달은 기말 시험을 앞 둔 마지막 수업 당일, 학부의 최고의 우등생이자 지역 신문 헤드라인에도 얼굴이 나오는 학생이 돌연 학과장이 수업에 들어 오기 전 우리 모두 도망쳐 버리자 라고 외쳤다.

그날 이른 아침 일기 예보에서 폭설로 인해 고립 될 수 있다며 각별히 주의 하라는 예보가 있었고 그 날 우리 모두 눈의 도시에 갇혀 있었다.

밤사이 내린 눈은 무릎 까지 차 오를 정도로 쌓여서 우리는 어마 어마 하게 쌓인 눈을 치우느라 캠퍼스 곳곳에 세워진 눈 벽을 지나 기차역을 향해 달려 갔다.

기차 역까지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지독할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영국 날씨 탓을 하며 매일 맛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우리 청춘의 인생이 불쌍하다며 서로를 위로 했고, 친구의 고향, 따스하고 맛있는 요리가 있는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로 향하고 있다는 꿈에 부풀러 있었다.

늦은 밤 우리 일행이 세비야에 도착 하자 친구 부모님은 엄청난 눈 폭설을 뚫고 온 우리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셨다.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세비야의 따사로운 햇살, 정겨운 사람들의 정취는 매서운 바람과 햇살이 비추는 경우가 극히 드문 12월의 영국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늑했다.

세비야가 고향인 친구가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척집들을 찾아 다니는 동안 우리는 리스본으로 향하는 야간 열차에 올라 탔다.

수업을 건너 뛰고 눈 폭설을 뚫고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 밤의 공기를 마시자 드디어 유럽의 끝, 리스본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곳을 리스본이라 불렀고 그곳 사람들은 리스보아라 불렸던 그곳, 포르투갈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일곱 개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노란색 트램에 올라탄 우리들은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눈 속에 파묻혀 버린 학교도 잊어버렸고 학과장의 엄중한 수업, 그의 시험을 통과 하지 못하면 졸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경고도 잊어 버렸다.

트램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떠들며 웃고 있었던 나, 당시 내 배낭 속에는 수업 준비 자료와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리스본의 공기를 마시며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그토록 바랬던 학교로 무사히 옮길 수 있게 해준 학과장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 앞날의 커다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있었다.

여기 또 다른 한 명, 이십 대의 나처럼 ,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올라탄 사람이 있다.


스위스 베른의 한 학교에서 고전 문헌학을 가르치는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출근길에 자살하려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레고리우스는 말이 안 통하는 그녀에게 모국어가 뭐냐고 묻자.


“포르투게스”.

라고 답하는 그녀의 이 한마디를 들은 그레고리우스는 즉각 헌책방으로 달려가 포르투갈 작가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산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한 세기 전의 작가 프라두가 던진 이 질문을 읽은 그레고리우스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수 십 년 동안 똑같은 수업을 가르치는 자신의 삶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레고리우스는 옛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책을 넘기다가 저자의 사진을 발견 했다. 그 남자는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지적인 외모였다. 자신감과 자의식으로 빛나는 인상에 그레고리우스는 넋을 잃었다.]


프라두가 쓴 책, 포르투갈어를 이해 하고 읽기 위해 그레고리우스는 어학교재를 놓고 매일 사전을 찾아 가며 자신의 인생에  질문을 던진 작가 프라우드의 언어를 하나 씩 해독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수 십 년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의 진부한 단어들, 정교하면서 꽉 짜여진 틀에 맞춰진 답답한 문법의 찌꺼기를 밀어 내고 새로운 언어, 새로운 말이 품고 있는 어감으로 자신의 삶을 응시 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모국어를 버린 다거나 반 평생 동안 연구하고 가르쳤던 고전 문헌학을 포기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프라두의 글을 읽을 때 마다. 마음 속에 일어났던 분노가 가라 앉았고 수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압박감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드디어 그는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유럽 지도를 펼쳐 든다.

 어떤 기차를 타고 어떻게 리스본으로 갈지 메모하고 예약하고 그리고 프라두의 책을 챙겨 넣고,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올라 탄다.

그의 배낭 속에는 빛바랜 포르투갈의 귀족 사진이 들어 있는 프라두의 책, 포르투갈어 초보자를 위한 교재만 들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그동안 행복한 척, 기쁜 척 하느라 자신의 거의 모든 삶에서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살아 보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번 주어지기에 그는 이제 삶의 행로에서 벗어나 리스본으로 향하고 있다.


'익숙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격렬한 내적 동요를 동반하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 '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동한다.

그 요인들은 부모나 형제, 친구, 스승일 수도 있고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이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레고리우스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만든 건 '책'으로 그는 프라두라는 작가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엄격한 판사 아버지와 항상 아들이 최고가 되기 만을 바라는 어머니 아래서 자란 프라두는 최고의 교육을 받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법학 공부에 몰두 한다.


‘부모들이 지닌 의도나 불안한 윤곽은, 완벽하게 무기력하고 자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에 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 새겨지지.’


아들 프라두는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독재정권에서 판사를 지내는 아버지에 대해 심한 반발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아버지에게 어떤 항의 조차 못한 채 지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프라두는 무고한 학생들 시민들이 무자비한 권력 앞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걸 목격하는 동안 귀족이라는 신분, 가문의 명예를 위해 거리로 나가지 못한 자괴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영원히 죽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이 과연 있으랴? 누가 영원히 살고 싶어 할까?

시간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 만 살아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안다는 신이 왜 이것은 모르는가? 견딜 수 없는 단조로움을 의미하는 무한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프라두가 의사의 사명감과  신념으로 병원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비밀 경찰 멘드스를 살려내자 이웃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을 죽인 독재 정권의 하수인을 살렸다고 비난하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프라두는 수 많은 생명을 짓밟은 이를 살려낸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저항운동에 투신하지만 결국 이로 인해 그의 인생은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이 어떤 한 사람에 대해 하는 말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 가운데 어떤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리스본의 거리 곳곳을 헤매고 있는 그레고리우스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는 모릅니다 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테니까요." 


그레고리우스의 인생도 반세기 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프라두로 인해  전혀 다른 인생의 행로를 걷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말에서 흘러나오는 들끓는 용암을 느끼고 싶었다. 프라두의 책을 꺼내 사진에 손전등을 비추었다. 처음 열정이 재단의 촛불과 그 환한 불빛 속에서 감히 접근할 수 없게 보이던 성서의 말씀을 향했던 소년, 그러다가 그는 다른 책들에서도 언어를 발견했고 그 언어는 그가 낯선 모든 언어를 곰곰이 생각하고 자기만의 언어를 버릴 때까지 그의 안에서 무성하게 자랐다.]




그레고리우스는 부유하고 명망 높은 가문 출신의 프라두가 자신의 의지와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걸었던 여정을 뒤 쫓아 가면서 어린 시절 죽을 뻔한 자신을 살려준 오빠에게 강박적인 사랑을 품고 살아온 여동생 아드리아나, 아마데우 프라두가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만났던 동료들, 그의 오랜 친구,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을 찾아 내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프라두의 삶의 퍼즐들을 하나 씩 맞춰나간다.


'삶이 완전하지 못할 거라고 미리 생각만 해도 이마에 땀이 솟는다. 완전한 삶, 그건 과연 뭘까?


그레고리우스에게도 문헌학자가 아닌 다른 삶을 살 기회가 한 번 주어진 적이 있었다. 

그는 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페르시아의 도시, 이스파한으로 건너가 동양학자가 되려는 열망에 불타 올랐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페르시아의 이스파한은 척박한 도시로 한 낮에는 사막에서 불어 오는 엄청난 열기를 동반한 모래 바람으로 인해 제대로 걷거나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게다가 어떤 기술도 없는 오로지 공부만 하는 학생 신분으로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도 못했기에 그는 자신의 꿈을 포기 해버렸다.

그레고리우스는 30년 동안 항상 우산을 쓰고 정확히 8시 15분 전, 학교와 연결되는 키르헨펠트 다리를 지나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30년 동안 교사로 단 한 번 실수한 적도, 비난 받을 일을 한 적도 없이 살았다.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라고 적혀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기 전 까지 그레고리우스의 인생에는 어떤 파도도 치지 않았고 어떤 변화도 없었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1974년 독재 정권과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시대에 인생은 정해져 있는 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해왔던 귀족 가문 출신의 의사 프라두가 의사로서의 사명과 신념을 져버리고 독재 정권의 하수인인 비밀경찰이 죽게 내버려 두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정말 영원히 산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을까? 우리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고, 놓치는 것도 없으며, 서두를 필요도 없다. …. 회복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수없이 많은 실수도 영원 앞에서는 무가 되고, 뭔가 후회한다는 것도 무의미해진다.”




한 순간의 선택은 타인에게 나의 영혼을 엿보기를 잠시 허용하는 것으로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삶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자신을 향해 달려 오고 있는 삶의 불안, 도저히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아 볼 시간 조차 없이 하루 하루 주어진 인생의 쳇바퀴를 돌리는데 허비 해버린 자신의 소중한 시간들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다.

프라두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투영 시켰던 그레고리우스

그는  세상의 끝 피니스테레에서 어부들을 만나 어부들에게 자신의 삶에 만족하냐고 묻자

한 어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만족하냐고? 다른 삶은 모르는 걸!”

누구에게나 삶은 완전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만족한 삶을 위해 완전함을 쫓는 건지도 모른다.


리스본의 낮과 밤은 따스함과 흥겨움이 공존 했다.

친구들이 영국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싼 음식과 와인에 취해 있는 동안 나는 틈틈이 메모를 했고 기록했고 그리고 늦은 밤 숙소로 돌아와 시험 준비에 몰두 했다.

이번 시험을 통과 하지 못한다면 다음 학기에 진학 하지 못하고 나의 스무 살 인생의 열차는 이곳 리스본에서 멈춰 설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자신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은, 쉬지 말고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 '


나는 매일 밤, 리스본의 태양이 사라지면 전공 서적을 통째로 집어 먹을 태세로 달려 들었다. 

한 낮에 친구들과 이동 중에도 전공 서적의 내용을 입으로 중얼 거렸고, 콘서트 장에서도 식당에서도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로 책 내용을 전부 밀어 넣었다.


'젊은 시절 우리는 자기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산다. 죽을 운명이라는 인식은 종이로 만든 느슨한 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런 상황은 언제 바뀌는 가?'


한국을 떠나기 전 나의 스무 살은 영원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영원히 멈추지 않았고 리스본의 시간도 서서히 끝나갔고 시험 날짜는 코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리스본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 오자 친구들은 돌연 인생의 한 번은 킬리만자로에 올라가야 한다며 남아공으로 가자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간 상으로만 광범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나는 리스본을 떠나는 날 기차역에서 버킷 리스트에 '킬리만자로에 올라가기' 라고 수첩에 적어 넣고 열차에 올라탔다.

12월 기말 시험 기간에 친구들은 남아공 킬리만자로에 올라갔고 나는 두 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내 뿜는 학과장과 단 둘이 마주 앉아 튜토리얼 시험을 보느라 진땀을 흘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망과 생각을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고 다른 사람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때도 있다.'


인생의 여정은 길다. 어떤 시절의 여행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지만 어떤 시절의 여행은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감 만 남기기도 한다.

스무 살 내 인생의 기차가 통과 했던 시절은 때로는 눈 속에 파묻혀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긴 터널처럼 끝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태양빛으로도 녹아내릴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영혼의 파도가 우리 자신보다 강하고 그 파도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칭찬과 비난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단순히 운이 좋았다 거나 나빴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 파도는 우리보다 강하다. 그것도 언제나.....'


킬리만자로 봉우리에 쌓여 있는 눈 맛을 느끼고 돌아 온 친구들은 이듬해 봄, 나와 같은 수업을 듣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서 리스본 행 야간 열차를 타고 돌아 와 시험을 무사히 통과 하고 예비 석사 시험 준비 자격을 얻은 학생으로 알려졌다.

학년이 뒤로 밀려난 친구들은 그해 겨울 지독한 영국 땅에 갇혀 있었다면 나에게 그런 행운이 없었을 거라며 농담처럼 말했다.


유럽의 끝, 피니스테레에 다다른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인생은 비로소 이곳에서 다시 출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는 이제 남아 있는 돈으로 에스파냐어를 배워서 영웅의 도시에서 살며 에스피노자의 강의를 듣고 여러 수도원의 역사를 공부 하며 남은 여생 동안 프라두가 남긴 글을 전부 번역하기로 결심하며 천천히 속도를 내지 않은 채 역마다 멈춰서는 완행 열차에 올라탄다.



만일 나에게 리스본으로 돌아갈 시간이 주어진다면 배낭 속에 어떤 것을 넣게 될까?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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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2-12-19 0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월드컵 결승전 시청 중에 전반전 끝나서 잠시 들렀어요. scott님 유려한 스토리텔링에 점점 빠져 긴 글을 읽고 나니 후반전 시작되어 있네요.
사진이 주는 느낌이 참 좋고요, 인생은…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여운이 길게 남네요. 그래서 더 좋은 느낌입니다. ^^
scott님 긴 페이퍼 남기고 기진맥진 하셨을 것 같아요. ㅋㅋㅋ 편안히 주무세요~ ^^;
저는 다시 월드컵 시청하러 고고~ ^^

scott 2022-12-19 10:12   좋아요 2 | URL
저도 새벽 월드컵 결승 시청 중이였습니다
메시가 축구의 신화를 다시 쓴 神이 되었네요

리스본행은 출간 되자 마자 읽었었는데 그땐 넘 어려서 무슨말인지 몰랐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다 보니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ㅎㅎ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만났던 어부의 말 처럼
다른 삶은 모르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안주 하며 산다고 상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거서님 오늘 날씨 주말 보다 더 춥게 느껴집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오늘 하루 포근, 따숩게 ^^

희선 2022-12-19 0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이지만 실제로 그레고리우스 같은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한권으로 삶이 아주 바뀐... 저는 아니군요 그저 보기만 하고 그걸로 끝이니... scott 님은 스무살에 기억에 남을 일이 있었군요 리스본에도 가시고 그런 기억이 있어서 이 책을 봤을 때 더 가깝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희선

scott 2022-12-19 10:14   좋아요 2 | URL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의 모습이 많이 반영 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철학 법학을 공부 한 교수이고

책에서 공부 과정이 상세하게 나오거든요

리스본 그 이후에도 가서 좋은 추억 많이 쌓았는데
첫 번째 리스본에 도착 했던 그 흥분 된 순간은 어느 도시에서도 느껴 본 적 없는 특별한 감정이 였습니다


희선님 오늘 하루 건강하게 행복하게 보내세요 ^^

bookholic 2022-12-19 0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듯 Scott님의 경험담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더 소설 같아요..^^
따뜻한 하루 되십시오~~

scott 2022-12-19 10:15   좋아요 2 | URL
킬리만자로 가기 전에 약간의 모험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생략! ㅎㅎㅎ

북홀릭님 한 주 시작 따숩게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오거서 2022-12-20 19:41   좋아요 2 | URL
scott님 킬리만자로 모험담에 귀쫑긋해요. 아직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지만서도 ㅋㅋㅋㅋㅋ

scott 2022-12-21 11:26   좋아요 2 | URL
킬리만자로
오거서님
버킷 리스트에 찜!👆

거리의화가 2022-12-19 1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친구들과 함께 리스본으로! 옆지기와 가보고 싶은 곳으로 유일하게 고른 곳이 스페인인데 저는 스페인도 좋지만 포르투갈도 가보고 싶어요.
만약 스콧님이 킬리만자로에 함께 올라가셨다면~? 어떤 결정이든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scott 2022-12-19 10:17   좋아요 3 | URL
스페인은 반드시 바르셀로나!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문화도 예술도 사람들도!

여기 가게 되시면 제가 개인적으로 추천해드릴 장소 아주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살고 싶은 곳 1위!^^

킬리만자로는 이후 수 년 뒤에 딱 한번!^^

눈 구경은 못했습니다 ^^

새파랑 2022-12-19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개정판이 나왔군요? 저 지금 이책 구판이 책상 바로 옆에 딱 있습니다~! 영국 유학생 스콧님의 포루투갈 여행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

scott 2022-12-19 12:40   좋아요 3 | URL
이 책 새 커버
엄청 멋집니다! ㅎㅎㅎ

여행기 이거슨
극히 사막 위 모래알의 일부분 ㅎㅎㅎ

새파랑님 오늘 낮추위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조건 따숩게 ^^

hnine 2022-12-19 1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컨텐츠가 풍부하신 scott 님^^

scott 2022-12-19 12:40   좋아요 2 | URL
^^

햇살과함께 2022-12-20 17: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사진. 저기 가고 싶네요~!

scott 2022-12-21 11:25   좋아요 1 | URL
꼬옥 가보세요

리스본에서 먹는 에그 타르트는
천국의 맛입니다 ^^

mini74 2022-12-21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책 표지가 예쁘게 바뀌었네요. 스콧님 이야기 몰입해서 읽었어요. 스물 그 예쁘고 찬란한 시절 치열하게 공부하고 꿈꾸며 산 스콧님 이야기를 읽으면 자꾸만 물개박수를 치고 싶어집니다. 가끔 스콧님 글을 아이에게 읽어보라 주소 보낸답니다. *^^*

2022-12-21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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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 은하가 차디찬 회복실에서 깨어나 한 결심은 이런 것이었다.

삶에 피하지방처럼 껴 있는 모든 영양가 없는 관계들과 결별해야지.

그것들이 은하 인생에 달라 붙어 얼마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일으켜왔는지는 막 수술을 마친 은하의 몸이 증거하고 있었다.]

                                                                                         -<은하의 밤> 중에서 


마흔 여섯의 은하는 유방암 선고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주변 지인들에게는 갑상샘암에 걸렸다며 쉽게 회복 될 것이라고 속였다.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은하는 엄마와 함께 다녔던 성당 마저 발길을 끊어 버리며 이렇게 스스로 벌을 받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수술 후에 찾아 온 극심한 통증,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하면서 은하는 자신의 생명이 이렇게 고통 속에 서서히 산화 되고 있다는 사실에 울적해졌다.

미혼인 채로 늙어가는 건 괜찮지만 어느 날, 치료 중에 홀로 죽게 된다면,,,이라는 자조적인 생각에 사로 잡힌다.

'고모, 요즘엔 부모도 자기 자식한테 그런 기대 안 해요. 바라지 마세요.'


암 발병이 시작 되기 전 은하는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작가로 한 순간도 쉼 없이 달려 왔다. 암 투병을 하는 동안 가족들 보다 직장 동료 후배들이 은하의 상태를 더 걱정해주며 항암 치료로 고통스러워 할 때는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는 후배, 신입 막내 작가들이 살뜰 하게 챙겨주었다.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발병 이전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삶에는 오로지 고독 크기를 잴 수 없이 크고 깊은 고독만이 필요 하리 라는 결론이었다.]


은하는 암을 도려내고 난 후 육체의 한 부분이 떼어져 나간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홀로 남미로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 봄, 방송국으로 돌아 와 지지부진한 시청률의 늪에 빠져 버린 예능국으로 복귀한다.

남들 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 한 은하의 바로 옆 자리에는 보도국 아나운서 출신의 딱지가 붙은 덩치가 산 만한 남자 오태만이 앉아 있다.

조직 개편을 한 날 보도국에서 예능국으로 굴러 들어 온 불운한 낙오자 오태만은 구체적인 업무 담당 조차 받지 못한 채 ,섭외로 바삐 뛰어다니는 은하의 동태만 살피고 있다.

남 국장은 4차 산업 시기에 귀농하는 청년들의 인생 역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암투병에서 살아 돌아온 은하는 사람의 인생이 이런 식으로 역전 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보도국 출신 오태만은 뉴스 보도 주제를 찾듯 취재를 하기 시작한다.

조직 생활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는 자는 바로 한가하게 유유자적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상사이고 더 두려운 존재는 가족 모두 해외로 보내서 홀로 살고 있는 기러기 신세로 24시간 회사 일에 매달리며 직원들에게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 상사 일 것이다.

인생 역전한 귀농 청년들에 관한 프로그램의 이름은 <마망자들>로 정해지자 프로그램을 이끌고 채워 나갈 진행자와 게스트들을 섭외 하고 프로그램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미션과 상금을 걸기로 한다.

상금의 액수를 얼마로 정할 지 실강이를 벌이는 동안 은하는 정규직인 담당 피디 지민과 충돌한다.

아무리 이름난 작가여도 방송국의 개별 프로그램들 방송 되는 동안에 일하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자칫 정규직 피디들과 충돌 했다가는 곧바로 일자리를 잃게 되기에 아홉 번 도전 만에 겨우 아나운서 시험에 붙은 오태만에게 이런 저런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

보도국에서 예능국으로 굴러 들어 온 오태만은 아나운서 시험에 여덟 번 떨어 졌을 때 훌쩍 쿠바로 떠났다. 은하는 항암 치료 후 암 세포가 제거 되자 마자 홀연히 쿠바로 떠났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함께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굽던 피디 지민은 암 항암 치료 후에는 단백질 섭취가 필수 라며 자신의 엄마가 유방암 투병 했다는 말을 꺼낸다.

은하가 자신의 암이 갑상샘 암이라고 속였지만 아이돌 출신 방송인을 통해 유방암 투병 중이라는 걸 그녀의 모든 지인들이 알게 되었다.


'모두 방송계에서 계속 볼 사이잖아요. 이 바닥에서 위성처럼 빙글빙글 돌며 만나고 헤어지고 할 사이요. 방송국이 폭발하지 않는 한 함께 있을 운명이고요.'

뉴스 화면을 장악 하기에는 인물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도국에서 쫓겨난 오태만은 오로지 발로 뛰어 다니는 취재와 섭외가 중요한 예능국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프로그램 장소를 찾느라 무리 할 정도로 기여코 산에 올라가는 오태만, 입과 코를 가리고 있던 마스크가 순식간에 불어 온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오태만은 젖어 있는 덤불에 미끄러져서 발목을 다친다.

은하는 자신도 함께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에 발목을 다친 태만을 부추켜서 겨우 산 아래로 끌고 내려 와 간신히 연출 부 사람들에게 구조 요청을 한다.

섭외 장소인 식당에 도착한 은하는 주인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당 안과 방을 둘러 보다가 대 식구가 모여 찍은 사진에 쓰여진 '회갑 기념' 문구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뭐 바랄게 있겄어. 그냥 아프지 마라, 허지.'

'아프지 마라. 죽어서도 아프덜 말고 살아서도 아프덜 말고 그 말벢에 더 있겄어.'

드디어 <마망자>가 방영 되는 날, 방송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은하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눈이 오고 있었다.

은하가 눈 오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 시키고 있는 동안 8시 뉴스가 시작 되기 전까지 후속 작업 편집이 끝날 수 있는지 오태만과 피디 지민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업으로 시끌벅적한 방송국 내분 상태에서 시작 되는 아홉 시 예능이 성공 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방송국의 이런 복잡한 상황을 알지 못하고 보도국에서 추방된 아나운서들의 시위 목소리가 점점 크게 울리더니 뉴스 방송 중에 거리 현장에서 취재 중인 기자 뒷 편에 누군가가 불쑥 나타난다.


'국민 여러분, MTN 부당 전보의 진실을 보도하겠습니다! 보도국 정상화 투쟁 중입니다. 저는 앵커 최지영, 김무한, 정치부 기자 주성태...'


뉴스 화면에서 곧바로 광고 화면으로 넘어 가버렸다.

<마망자들> 프로그램 출연 게스트로 준비 중인 오태만을 급히 호출하는 피디와 작가들


'나와, 나와요. 오태만 씨, 지금 사고 났어. 얼른 테이프 틀어야 해. 뉴스 사고 났다고.'

보도국에서 추방된 이들의 항의 시위로 뉴스 방영도 중단 되었고 뒤이어 방송 되는 아홉시 예능 <마망자>는 단 1초도 방영 되지 못했다.

'뉴스에서 그런 사고가 났는데 보도국 퇴사자가 상 받는 프로를 냈어 봐요. 일이 더 커졌겠죠.'

입봉작을 열심히 준비 했던 작가의 울분을 달래는 피디 지민, 첫 예능 방송 작가로 인생 역전의 꿈이 무너져 버린 막내 작가는 은하에게 쿠바에 가서 무엇을 위로 받고 구원 받았는지 묻는다.

'아, 그게 쿠바 였구나 페루 아니고.' 라며 말을 돌리며

'응, 구원이 있긴 있었더라고.'

은하는 쿠바에서 사흘 째 되던 날 문득 바다라도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해변으로 나갔지만 신기한 듯 홀로 있는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워서 한적한 숲 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걷고 또 걷다가 목 속 깊은 곳까지 모래 알들이 올라오듯 갈증이 차올랐다.

물탱크에 연결된 수도꼭지에 입을 대려는 순간, 앙상하게 말라 버리고 송곳니가 멧돼지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온 개와 맞닥뜨렸다.

무서움에 뒤로 물러 선 은하가 수도 꼭지를 돌리자 개는 물이 뿜어 나오는 호수에 혀를 대로 찹찹찹 마시기 시작했다.

갈증에 목 마른 개와 은하, 홀로 이곳을 떠도는 개의 모습을 보며 은하는 자신은 절대로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은하는 창밖을 한번 바라보았다. 회사가 보도에 세워 놓은 대형 전광판으로 눈이 계속 내렸고 은하는 잠깐 조카 겨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신호가 가기 전에 끊었다.

잠시 후,,,


'고모 아까 전화 잘못 걸었어요?'

'아니'

'ㅋㅋㅋㅋ 다행이다.'

'고모 이제 안 아파요? 다 나았어요?'


크리스마스 이브, 새 하얀 눈이 하늘에서 흩날리는 동안 은하는 홀로 누운 방안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지도 않았고 하느님에게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어떤 용서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홀로 있는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구원 되지 않는 날, 그저 그렇게 크리스마스 날은 흘러가고 있었다.


[멋지다. 멋져. 방송하는 사람은 말이야. 바로 은하 작가처럼 넓은 세상을 체험해야지. 망망대해를 헤밍웨이 처럼 일엽편주로 나가서 청 새치도 낚고 고등어도 낚고, 이 작업 해보고 저 작업 해보고, 그래서 은하 작가가 훌륭한 작가이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거지]


명절이나 자신의 생일 조차 제대로 챙기거나 기념하지 못한 채 오로지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 살아 가고 있는 사람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김금희 작가가 독자들에게 내미는 선물 같은 스토리 <크리스마스 타일>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어려움과  슬픔 그리고 기쁨과 고독을 경험하며 2022년의 시간을 통과 하고 있다. 

한 해의 끝 자락 11월, 그리고 12월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르게 되면 앞 서 흘러간 시간들을 이겨낸 우리 모두에게 축복하듯 하늘 높은 곳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쏟아지길 바란다.




하늘 가득 눈 가루가 내릴지 모르는 그날, 2022년 12월 25일, 우리 모두의 행복을 빌어주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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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23 2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말이 되어 가니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괜찮겠네요. 저도 이 책 배송 기다리고 있어요. scott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scott 2022-11-23 22:41   좋아요 2 | URL
네, 책 표지가 이뻐서
다이어리로 주는 데서 구입 선물 하고 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이 책 구입 하셨군요.

그다지 춥지 않은 11월
서니데이님 건강 잘 챙기세요 ^^

책읽는나무 2022-11-23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리고 있어요.
따뜻하고 아름다운 2022년의 크리스마스를요.
책 표지처럼 이쁜 크리스마스가 빨리 왔음 좋겠네요^^

scott 2022-11-23 23:19   좋아요 2 | URL
나무님도
금희 작가님의 엽서 받아 보실 겁니다 ㅎㅎㅎ

이번 겨울 눈 보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ㅎㅎㅎ

어쩌면 12월 25일 비가 내릴 지도 몰라여 ㅎㅎㅎ

나무님 둥이들과 트리 장식 멋지게 하실 것 같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2-11-23 23:39   좋아요 2 | URL
앗!! 아직 금희 작가님 책은 안샀고, 크리스마스만 기다리고 있네요ㅋㅋㅋ
엽서가 포함되어 있나요???
사진을 확대하니까 진짜 손글 엽서네요?? 노안이 심해 잘 안보였어요ㅜㅜ

scott 2022-11-23 23:43   좋아요 2 | URL
엽서가 들어 있습니다 (작가님 손글씨가 인쇄된 ㅎㅎ)

노안이시라뇨 ㅠ.ㅠ


12월엔 나무님이 직접 셀렉트 하신 굿즈 구경 시켜 주실 거쥬 ^0^

희선 2022-11-24 0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12월 25일엔 눈이 오면 좋겠네요 십일월에 첫눈이 오기도 했는데, 눈이 올 기미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밤엔 좀 춥지만... 비라도 좀 와서 건조함을 없애야 할 텐데... 어제 조금 내렸군요 그렇게 조금 내리는 걸로는... 비 오고 나서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어요 방송국 사람은 다른 사람처럼 이런저런 날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겠습니다 저도 그런 거 별로 생각하지 않고, 방송국 사람하고는 다르게 아주 시간 많지만... 성탄절엔 모두 평화롭기를...


희선

scott 2022-11-24 10:57   좋아요 2 | URL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내려 오지 못한 채 증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가 내릴 지도
12월에는 비오는 날이 많다고 합니다

겨울에 눈이 오지 않거나 영하로 기온이 안 떨어지면 각종 병충해들이 죽지 않아서 다음년도에는 질병이 창궐,,,,

희선님의 성탄절도 평화 롭기를 바랍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2-11-24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받아 놓고 펼쳐보지도 않고 꽂아뒀다 scott님 글 보고는 펼쳐서 엽서 확인했네요 ㅋㅋㅋㅋ 11월25일 발행 되어 있어서 뭐야 미래의 책이야 크리스마스 한 달 전 맞추고 싶었어요 언니? (속으로) 했는데 벌써 내일이 11월 25일 ㅋㅋ

scott 2022-11-24 10:59   좋아요 2 | URL
금희 작가 코믹함이 있습니다 ㅎㅎㅎ

자신도 엽서 쓰다가 이게 웬일이라공 ㅎㅎㅎ

미래의 책 <크리스마스 타일>
열반인님의 수능 열독의 후유증을 날려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24 14: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올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연말 분위기도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ㅠ 작가님의 겉으로 보이는 인상과는 글의 색채가 약간은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네요.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책인듯합니다.

scott 2022-11-24 16:03   좋아요 3 | URL
반전 성격의 매력을 갖고 계십니다
김금희 작가님 ㅎㅎ

예년에 비해 길어진 가을
화가님 멋진 오후 보내시기 바랍니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
 
오, 윌리엄!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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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아홉 살에 접어든 윌리엄 게르하르트의 겉모습은 회색이 섞인 흰색의 풍성한 콧수염을 지녔고 숱이 풍성한 머리칼은 커트로 잘 손질 되어 있다.

윌리엄은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큰 눈을 유지 하며 키가 크고 옷을 아주 잘 입었고 드물게 한 번 씩 고개를 뒤로 젖히고 껄껄 웃는 유쾌한 성격이다.

그의 실험실 조교는 아인슈타인 같은 외모라고 말하지만 그의 첫 번째 아내이자 소설가인 루시는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윌리엄 게르하르트와 루시, 두 사람 사이에 두 명의 딸이 있었지만 수 년 동안 내연 관계를 유지 했던 윌리엄의 외도로 인해 이 십 년의 결혼 생활이 깨져 버렸다.

이혼 후 루시는 자신의 원래 성이 바턴으로 돌아와 소설가로 멋지게 성공하고 전 남편 윌리엄은 한 번 더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한 아내와도 헤어진다.

그리고 루시의 두 번째 남편 데이비드도 세상을 떠나고 전 남편 윌리엄은 함께 슬퍼 하며 홀로 남은 루시의 안부를 걱정한다.


'나는 생각한다. 슬픔은 당신이 유리로 된 아주 높은 건물의 긴 외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지독할 정도로 가난하면서 암담한 현실 속에서 힘겹게 대학에 진학한 루시와 달리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은 외동으로 모든 걸을 갖춘 환경에서 성장 해서 타인의 처지를 크게 헤아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혼 후 연달아 사귀었던 여자들이 차례 차례 자신의 곁을 떠나 버리자 차츰 죽음이 가까워 지고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 잡힌다.

윌리엄이 느끼는 공포심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자신을 낳아 준 엄마 캐서린과 그리고 열 네 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관련 되었다.

그는 공포심을 느낄 때 마다 자신의 첫 번째 아내 루시를 떠올렸고 마침내 한밤중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한다.

루시는 전 남편과 함께 살던 시절 이따금씩 유쾌하면서 온화한 성품의 남편에게 다가가기 힘든 어떤 묵직한 덩어리를 느꼈다.

그녀는 그 묵직한 덩어리가 자신 때문인 걸로 알고 있었고 종종 남편도 그녀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서로 헤어진 후 ,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며 안부를 물으며 안 좋은 일을 당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루시에게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은 태어나서 난생 처음 가져 본 집과 같았다.

반면 그녀의 두 번째 남편 데이비드는 유대교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는 하시드파 유대인으로 열 아홉살 때 가난한 유대인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떠난 후 죽기 전까지 혈육과 어떤 연락이나 만남도 가지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 텔레비전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 하며 세상의 모든 이치를 스스로 찾아 다니며 깨달았다.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골반이 반대 쪽 보다 더 올라가 있어서 심하게 절뚝 거렸던 두번째 남편 데이비드

루시는 그와 함께 사는 동안 그의 걸음에 맞춰 생활 하며 서로의 집이 되어 주었다.

루시는 시종일관 전 남편과 함께 살던 시절, 두 아이를 키웠던 순간 그리고 시어머니 캐서린의 모습을 떠올리며 쉼 없이 떠오르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끔씩 연락하는 오빠와 언니와의 관계를 들춰보고 되돌아 보며 자의식에 가득 찬 자기 고백적인 시각으로 윌리엄의 삶을 이야기 한다.


[나는 소설가라서 이 이야기를 거의 소설처럼 써야 하지만, 이건 진실이다- 내가 써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

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윌리엄에 대해 뭔 가를 이야기 한다면, 그가 내게 말해줬거나 내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루시가 직접 목격했거나 전해 들은 이들 그리고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윌리엄, 윌러임과의 사이에서 낳은 크리시와 베카, 윌리엄의 엄마인 캐서린, 윌리엄의 다음 부인들인 조앤과 에스텔과의 이야기들이 루시의 삶에 불쑥 불쑥 튀어 나온다.

루시는 마치 이들의 삶 속에 공기처럼 떠다니며 스쳐 지나가듯 발생 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펼쳐 보인다.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고 나서도 전 남편 윌리엄은 품위와 권위를 결코 잃어 버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혼 생활 동안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가고 나서도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헨젤과 그렌텔 처럼 서로를 의지 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배고픔을 절대로 잊지 못하는 루시

난방이 되는 호텔 방에서도 추위를 느끼는 그녀는 평생 동안 지독한 가난의 냄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신 어머니는 나와 같았어. 끔찍히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아마 아버지도 끔찍했을 거야... 그러니까 그녀는 ...나도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은 같은 유의 여자와 결혼 했어. 윌리엄, 세상에 고를 수 있는 다른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은 당신 어머니 같은 여자를 고른 거야. 나는 ....심지어 나는 아이들도 버렸어.'


루시는 두 번째 남편 데이비드와 결핍을 공유하며 안쓰러운 존재 처럼 위로 하며 살았지만 서로에게 안락한 환경, 정서적으로 안정된 집이 되어 주지 못했다.

루시의 시선은 시어머니 캐서린 톨의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윌리엄과 루시가 살았던 집, 데이비드와 루시가 살았던 집, 윌리엄과 에스텔이 살았던 집을 지나 자신과 함께 가정을 이루었던 윌리엄과 데이비드 그리고 각자의 부모들이 이룬 가정을 보여주며 이런 말을 내뱉는다.


'나는 사람이 뭔가를 실제로 선택하는 건-기껏해야- 아주 가끔이라고 생각해. 그런 경우가 아니면 우린 그저 뭔가를 쫓아갈 뿐이야-심지어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따라가...'

어쩌면 글쓰기는 루시의 소명이자 운명일지 모른다.


'나는 아주 좋은 삶을 살았어요.' 라는 말은 한 편의 동화 속 이야기 일 뿐이다.

어두운 추억과 경험은 인간의 기억 중에 가장 밑바닥에 눌려져 있어도 어느 날 불어오는 바람에 그 어둠은 들춰지고 누군가의 말 속에서 그 시절의 아픔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흘러 지난 시절의 모습을 떨쳐 버려도 어둠의 기억이 희미해져 버려도 아픔과 고통이 배어 버린 영혼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의 커튼이 다시 한번 내 주위로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끔찍한 폐쇄, 조용한 공포, 이게 내가 느낀 감정이고, 내 어린 시절 전체가 그것이었다.

....어린 시절 내내 품었던 암울한 숙명의 느낌을 아주 조용히, 하지만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이런 식으로 재현 시키는 것, 그 감정이 다시 돌아온 것은 내게 음울하고 무섭고 서글픈 영역을 보여주었다. 출구는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분 좋지 않은 냄새, 찌들린 가난이 묻어 나는 냄새가 풍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루시는 거대하고 텅 빈 공간 속에 전 남편의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의 감정을 품었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을 사랑했지만 늘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남자, 여러 해 동안 그에게 받았던 따스한 위로 만은 절대로 기억에서 지우지 않았다.

도시 에서 가장 멋진 불빛을 내뿜는 뮤지엄의 불빛 같았던 남자 윌리엄, 루시는 자신과 헤어진 후 여러 일을 겪는 동안 그가 느꼈던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노력 하면서 평생 마음 속에 품고 다녔던 헨젤과 그레텔의 모습을 떨쳐버린다.

우리는 타인의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한다고 믿지만 아주 작은 부분만 이해 할 뿐 온전히 이해 하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감정,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채 수시로 꿈틀거리는 어둠의 공간은 어느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타인은 절대로 이런 모습, 이런 감정을 알아 채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혈육,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영원히 이해 하지 못할지 모른다.

우리가 공감한다고 느꼈던 타인의 모습은 어쩌면 단 한 번도 헤아려 본 적 없었던 것들로 우리 모두 서로에게 미스터리 한 존재다.



'오 모든 이여. 오 드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모든 이여.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 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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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02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둠 속에서 잠자던 기억이 튀어나와서 자신의 내면을 흔들 때 타인은 그 모습을 생경하게 느끼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평소답지 않게) 왜 그래?˝ 상황이 떠오릅니다. 이건 언제 튀어나올지 자신조차도 모르는 거니까요. 우리는 서로에게 미스터리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scott 2022-11-02 16:05   좋아요 3 | URL
오😄화가님 작가 스트라우트도 화가님이 언급했던 그 어둠속 감정을 정확하게 묘사 합니다
우리 모두 잠재된 어둠 평생동안 못 떨쳐내는것 같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오는 어둠 우울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힘든것 같습니다 ^^

그레이스 2022-11-02 1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루시 버튼의 그 루시의 후속인가요?
스트라우스 전작 읽기 하다 멈췄는데 이 책도 궁금했어요^^
이제야 정신차리고 북플 방문중인데 올라온 글들이 너무 많아서 언제 다 보나 싶네요^^

scott 2022-11-02 16:52   좋아요 3 | URL
네 루시 바턴의 첫번째 남편 이야기 입니다
이번엔 바닷가 루시로 후속편신작 발표 했습니다
아마 한쿡말은 내년쯤 😊

alummii 2022-11-02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윌리엄 인기가 뜨거워요 ~~저희동네 도서관 북페이백신청이 설거지하다가 깜박해서 몇시간만에 품절났어요 흑 ㅜㅜ

scott 2022-11-02 21:06   좋아요 1 | URL
오😅넘 안타깝습니다 ㅠㅠ
알럽미미님 손에 반드시 가야 하는뎅😂

바람돌이 2022-11-02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인을 이해한다는건 정말 불가능한걸까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유일한 타인에 대한 최대의 배려인걸까요? 책을 보면 정말 많은 작가들이 타인에 대한, 또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이해불가능성을 얘기하는데 저는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완전한 이해는 어차피 내가 그 또는 그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소통과 공감은 그 비슷한 경지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요.

scott 2022-11-02 21:54   좋아요 1 | URL
태생적으로 인간은 누군가에게 이해 받고 공감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동물 세계에서 영장류 동물들도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고
가족 끼리 함께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부터 자신의 말만 하고 있습니다.
sns시대에 소통의 부재가 더 심각해졌죠.
내 상황과 처지를 헤아려 주길 바라는 게 인간의 심리

아마도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이런 미스터리한 인간의 심리를 파고 들어야 스토리가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나봐요.

항상 상대방을 향해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대해도 그것 자체를 잘 받아 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새파랑 2022-11-02 2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남편과 살면서 첫번째 남편과 더 마음을 터놓는게 신기하네요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ㅋ 역시 사람은 미스터리~!

scott 2022-11-02 22:30   좋아요 3 | URL
두 사람 사이에 아이들이 있어서 이혼 후에도 친구 처럼! ㅎㅎ
외도를 했지만 첫번째 남편과 나쁜 감정으로 헤어지지 않았서 ㅎㅎ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몰라유 ~@@@

alummii 2022-11-02 23:11   좋아요 2 | URL
우리 동네 클났네요 ㅋㅋㅋㅋㅋ 😂

mini74 2022-11-03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윌리엄이 난생 처음 가져본 집과 같다니 넘 좋네요. 저는 남편이 음 … 난생 처음 가져보는 대형 댕댕이같다는 느낌을 ㅋㅋ 가끔 승질부리고 물기도 하지만요 ~

scott 2022-11-03 00:34   좋아요 1 | URL
대형 댕댕이!
이가 되었다는 건
미니님이 무엇이든지 잘 해주기 때문에
사랑둥이 똘망이 처럼
미니님의 댕댕이로! ㅎㅎㅎ

그럼에도 미니님과 남편 분
천생 연분 이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