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디선가 폐차 직전의 봉고차를 얻어와 무면허로 몰고 다녔다. 내연기관에 문제가 있는지 배기 가스가 내부로 유입돼, 한 시간 가량 그 차를 타고 내려 코를 풀면 휴지에 시커먼 검댕이 묻어 나왔다. 그날도 그 똥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길이었다. '대기업에 가야 해.' 아버지가 말했다.'그래야 사람처럼 살 수 있어.']

-김 보통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중에서

대기업에 들어가야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김 보통은 20년 뒤 어느 대기업 면접장에 앉았다.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라고 묻는 면접관의 첫 질문에 그는 '아버지의 소원입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대답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대기업에 지원한 아들 김보통은 마침내 대기업 합격 통보를 받고 회사원이 되었다.

'끝이다. 고생도, 가난도, 이 지긋지긋한 짐승의 삶도 끝이다. 이제 나는 사람이 된다. 드디어 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4년 뒤 회사원 김보통은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따뜻한 곳 일본 오키나와로 떠난다.

보름 동안 오키나와에 머무는 동안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내가 본 것은 뿌연 안개 너머 태양인지 뭔지가 흐리멍덩하게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 미래 같았다.'-김보통


그는 회사 출근 시간에 맞춰 도서관으로 출근했고 퇴직금으로 2천여권의 책을 구입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로스쿨 시험 준비를 한다.

뚜렷한 목적 없이 시작한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트위터를 시작한다.

차츰 그가 올린 트위터 그림을 보았다며 이런 저런 사람들이 DM을 보내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웹툰 <송곳>을 그린 최규석에게 연락이 왔다.

'만화 한번 그려 보실래요?'

로스쿨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던 김보통은 학비라도 벌어 보자 라는 마음으로 웹툰<아만자>를 그렸다. 그리고 2014년 한계레에 <D.P:개의 날> 연재를 시작으로 그의 이름이 웹툰 시장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D.P>가 세상에 나왔고 그의 기나긴 방황과 불행한 나날이 끝이 났다.










'그냥 틈나면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가만히 있다가도 이런 얘기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면 줄거리를 짜고 주인공을 만들고 하면서 혼자 망상의 여행을 떠나는 거죠.'-김보통 인터뷰 중에서


그는 어린 시절 부터 거창한 꿈도 없었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4년만에 우울증 진단을 받고 퇴사한 후 오로지 상상하고 홀로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지었을 뿐이였다.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이야기예요. 잡담을 나누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기사도 이야기죠. 근데 독자가 서로 다를 뿐이에요. 건드리고 싶은 독자의 감정이 다를 뿐이지 결국 이야기라는 건 동일하죠.'-김보통


김보통은 자신의 망상에서 시작된 상상력을 만화와 수필, 칼럼, 드라마 그리고 연출까지 뻗어나가 현재 직원 10여 명 규모의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 타이거' 대표가 되었다.

현재 김보통의 일상은 큰 기대 없이 어느 누구의 작품과 비교 하지 않고 꾸준히 쓰고 그리고 연출하는 삶을 살아간다.

2020년 부터 시작한< 한겨레 21>의 작가 시리즈가 2023년 3월< 씨네 21>과 협업 해서 드라마 작가 특집호로 탄생했다.

소설-논픽션 작가 시리즈에는 정확히 21명의 작가들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이번에 발행된 2023년 <한겨레21>X<씨네 21>에는 21명 +1명이 추가 되어 총 22명의 드라마 작가들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D.P> 김보통 작가 부터 <괴물> 김수진, 노희경,박연선, <빈센조> 박연선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백미경,서숙향, 성초이, 송재정,신하은, 양희승,연상호,유보라,윤성호,이나은,정도윤,정서경,조광진,황진영 그리고 <여명의 눈동자> 작가 송지나의 아들 진한새 인터뷰까지 실렸다.

마지막 부록엔 '이 대사 잊지 못해'의 명 대사가 새겨져서 전 세계 영상 드라마와 웹툰 시장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대본,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입산 금지래. 백록담 못 가. 백록담은 저기, 저기 가면 사슴도 오고 노루도 와서 거기서 물 먹고 그래. 보이냐? 나중에 눈 말고 꽃 피면 오자. 엄마랑 나랑 둘이. 내가 데리고 올게. 꼭'-노희경의 '우리들의 블루스' 중에서


우리의 일상은 오늘도 별 탈 없이 일직선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온종일 누군가에 의해 내면의 파고가 뒤 흔들린다.

대체로 인간의 삶은 즐겁지 않고 힘겹고, 절대로 달콤하지 않고 쓰디 쓴 맛으로 가족과 함께 있어도 ,친구와 함께 있어도 연인과 함께 있어도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리워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 속에 파고든 어떤 드라마의 대사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불현듯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기도 하고 지난 시절 누군가에게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악몽의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 살아 숨 쉬는 어휘를 창작하는 영상물 작가들은 어쩌면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갖춘 전지전능한 재능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방구석에 혼자만 있으면 세상을 잘 몰라요. 어떤 작품을 하든 동네를 돌아다니며 취재를 합니다. 피트니스 센터에 나가고 찜질방에 가고 미용실에 가서 아주머니들과 친분을 쌓죠. 사람 공부 인생 공부를 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제주도에서 몇 달 살면서 시장 사람들, 해녀들, 어부들 이야기를 모조리 수집했습니다. 대본에는 거짓말, 상상으로 쓸 수 없습니다.

취재가 1년이면 대본 쓰는데 정확히 1년의 시간이 걸립니다.'-노희경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짝궁의 꿈은 배우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연기 수업을 받으러 ***아카데미아에 다녔고 유명 연기자와 작가에게 개인 지도를 받으며 '배우'의 꿈을 키워 나갔다.

또 다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항상 저녁 일일 드라마에 고정 출연을 하고 있었다.

두 친구 모두 나의 중학교 동창들로 중학생 시절에 단 한번도 같은 반이였던 적은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3년 내내 같은 반으로  매 학기 두 명이 번갈아가며 내 짝꿍이 되었다.

항상 텔레비젼 화면에 나오는 친구의 꿈은 배우가 아니였고 입시 목표도 연기나 방송 분야도 아니였다. 

반면, 배우의 꿈을 품고 있었던 친구는 어린 시절 열병과 사고로 척추를 다쳐 장애 진단을 받아서 초등학교 시절 내내 병원에서만 살았기에 부모님이 먼저 연기 학원에 등록을 시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랬다.


'내가 감싸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 알아 맞혀보세요.'- 김수진의 <괴물>


나는 배우의 꿈을 가득 품은 짝꿍의 상대역을 하며 연기 수업을 도와 주며 배우 친구가 출연한 드라마 대본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손에 넣은 대본을 토대로 틈틈이  역할극 놀이를 했다.

드디어 고3 수험생 모두 수능 공부에 매진 하고 있던 시기에 *예종 연기과 입시 요강 공고가 떴다. 

8월 1차 시험 합격한 짝꿍은 10월에 시작되는 2차 시험 실기 시험을 치뤘고 11월 최종 합격자 이름에 그 친구의 이름이 없었다.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하네.'- 박바라의 <슈롭> 중에서


척추 장애 진단을 받고 다시 일어서서 걷기 위해 매일 누군가의 삶을 연기 했던 친구는 그 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울었고 나와 배우 친구는 그 친구의 눈물을 그치게 하지 못한 채 함께 눈물만 흘렸다.

2차 면접 당일 날 수험생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면접장에 앉아 있는 면접관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친구에게  개인 교습으로  연기 지도를 해주었던 ***아카데미에 있었던 사람으로 당시 ***방송사 최고 인기 개그 프로그램 작가 중 한 명이였다. 그 작가는 동시에 시트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어서 내 친구는 그 작가에게 감정 표현 하는 연기 지도를 집중적으로 받았었다.

고 3에 올라 가기 직전 친구가 대학로에서 공연 되는 연극 무대에 섰던 날, 공연이 끝난 후 그 작가를 직접 만나 인사를 한 적이 있었고 이후로도 두 세 번 정도 스치듯 만났는데 마지막 만났을 때 그 작가가 나에게 '배우 할 생각 없어요?'라고 물으며 자신의 명함을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당시 그가 준 명함을 다이어리에 간직하고 있어서 내 친구의 이름이 최종 합격자 명단에 없던 날 , 늦은 저녁 그 명함에 적힌 전화 번호를 눌렀다.

그 작가를 만나기로 한 날은 그가 대본을 쓴  개그 프로그램 녹화 촬영 날이였다.

나는 그 작가를 만나기로 한 날, 개그 프로 녹화 장면을 지켜 보며 녹화가 끝나면 그 작가에게 "내 친구 떨어뜨린 이유를 알고 싶다.'고 따질 생각이였다.

배우 친구는 나에게 '너 미쳤어? 떨어질 이유가 있으니 떨어진 거야.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데 네가 왜 그 작가 한테 따져.'라고 말렸지만 당시 나는 진짜로 따질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개그 녹화 촬영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자리에서 개그맨들의 연기에 빠져서 광대뼈가 아플 정도로 웃었고 촬영이 끝난 후 만난 그 작가가 "어땠어?'라고 묻는 말에

'실제로 보니 너무 재밌었요.'라고 몇 시간 동안 웃느라 영혼이 빠져 버린 상태로 대답을 했다.

'어디에서 웃음이 났어? 어떤 대사가 가장 재밌었어? 누가 제일 웃겼어?'

그 작가가 쉼 없이 묻는 질문에 정신없이 대답을 하는 동안 그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메모를 했고 그 작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새끼 작가'들은 내 입에서 말이 나올 때마다. '아! 우리가 그 순간을 노렸지. 맞아. 이렇게 웃길 수 있다니깐.' 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의심스러운데?'- 성초이의 <구경이> 중에서


작가는 열심히 메모 한 것을 보며 노트패드에 대화체 문장을 빠른 속도로 쳤고 수정 대본 1-2-3을 붙이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작가는 나와 나를 뜯어 말리려고 달려온 배우 친구에게 피자를 사주며 이런 말을 했다.


'매번 방송 나갈 때 마다 초 죽음이 되고 방송 끝나면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야 하고 그리고 매일 고치고 또 고쳐서 영혼까지 탈탈 털어내지 않으면 사람들 웃기지 못해. 웃기지 못하면 난 그 날로 여기 나가야 하고 , 그러니 오늘 죽는다 해도 지구가 망한다 해도 웃겨야 해.'

배우 친구는 사진과에 합격 했고 *예종 시험에 떨어진 친구는 그 다음 해 지방 대학 연기과에 합격을 했다. 그 친구가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섰던 날, 나는 한국 땅을 떠났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다. 나의 시작은 여기 아니야. 내 이야기의 시작은 역시 너다.'-유보라의 <너를 닮은 사람>중에서

그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늦은 저녁 친구들과 뮤지컬 공연을 보고 나왔던 날로 누군가 한국어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널 , 여기서 만나다니.'

그 작가는 나를 보자 마자 두 손을 붙잡고 흔들었고, 나는 순간, 당황해서 그를 알아 보지 못했다.

그는 내가 영국에 오기 훨씬 전 부터 런던에서 연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한국 방송국을 오고 가며 방송 대본을 썼다.


'이상하다. 세상이 너를 미쳤다고 하네. 그런데 괜찮아. 나도 너와 같아.'-진한새의 <글리치> 중에서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런던에서 졸업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는 '주변에서 뭐라고 이야기 해도 네 결정을 믿어. 네가 원하는 대로 살고 공부해야 후회하지 않아.'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한국의 여러 선배들 교수들이 줄줄이 런던으로 건너와 온갖 심부름(공황 마중, 배웅, 시내 관광, 각종 면접 준비, 번역, 통역, 집구하기, 쇼핑등등)을 하고 있을 때도 그는

'금쪽 같은 네 시간, 네 청춘을 저런 쓰레기들에게 주지마. 못 하겠다고 해.'라며 칼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자기 인생에 물음표를 던지지 마. 그냥 느낌표만 던져.'-서숙향의 <질투의 화신>중에서


런던에서 두 학기를 마친 나는  매달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인들에게 내 시간을 방해 받지 않기 위해 학교를 바꾸고 전공도 바꾸는 인생의 중대한 결심을 했다.

한국의 부모님은 나의 이런 결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 말씀 하셨고 다른 형제들은 '돈 낭비 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서 한국 학교로 돌아 가라'고 말했다.

그해 봄 나는 떠나기 위해 챙긴 트렁크 가방 여러 개를 앞에 놓고 몇 날 몇 일 동안 고민했다.


그는 내가 런던을 떠나는 날 .'내가 네 나이였다면 아니 그 시절로 돌아 간다면 지금 네가 한 선택을 했을꺼야. 네 인생이야. 뒤를 돌아 보지마. '넌 뭘 해도 잘 할꺼야. 반드시 성공할 꺼야. 너 자신을 믿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서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나는 그의 말이 아니였다면 런던을 떠난 걸 후회 하며 형제들의 말처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목표가 확고한 사람의 성장은 무서운 법이야.'-조광진의 <이태원 클라쓰> 중에서


그해 내가 선택한 전공에 단 한 명의 아시아계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그 시절에 한 선택에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난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조광진의 <이태원 클라쓰> 중에서


그는 내가 런던을 떠난 시간 동안 개그 프로그램 대본이 아닌 드라마 대본을 썼고 몇 편의 미니시리즈를 완성했다.

그가 쓴 드라마는 지난 시절 웃음을 터지게 만들었던 장면이나 대사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비극적 스토리로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결국 자식들을 위해 안락사를 결정하고 어린 아들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엄마는 아버지 장례가 끝나는 날 돈을 빌려 달라고 아들 앞에 나타난다.


그의 책상엔 이런 문구가 붙여 있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


그는 쉼없이 썼고, 쓰지 않을 때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수집했고 어떤 날은 런던 거리의 노숙자들과 꽁초 담배를 나눠 피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항상 그의 손에서 수첩과 볼펜이 붙어 있었고 가방엔 오로지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어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짓는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그런데 어떤 관계, 어떤 마음을 궁금해 하는 탐구심은 있어요. 우리는 왜 상처 받고 어떻게 그 상처를 이겨내는지, 우리는 어떤 순간에 행복하고 어떤 순간에 절망하는지, 그렇게 탐구하다 보면 거기에 부합하는 이야기가 나와요.'-노희경의 인터뷰 중에서


원인을 모르는 피부 질환에 시달렸던 나는 친구들의 소개로 피부 질환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피부병에 좋다는 온천수도 마셔보고 온천물도 발라 보았고 심지어 이스라엘 출신 친구가 준 사해 소금, 머드도 발라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 치료 받기 위해 떠나는 날, 그가 공항까지 바라다 주며 혹시 상태가 악화 되며 여기로 가보라며 어떤 한의원 명함을 건넸다.

한국에서 병원 치료를 받는 동안 차츰 상태가 나아졌고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가 준 명함에 적힌 그 한의원을 찾아 갔다.

그곳은 그의 여동생이 근무하는 한의원으로 한의사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날 함께 간 엄마는 '어머, 우리 딸이랑 비슷하게 생겼네.'라는 말씀을 하셨다.

프란츠 카프카는 세상을 떠나기 전 가장 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이 죽으면 출간 된 모든 소설은 절판 시키고 발표하지 않은 원고들은 모조리 불태워 달라고 두 번에 걸쳐 쓴 편지에 단단히 못을 박았다.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모든 원고들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우리는 예술가들의 시간이 담긴 작품을 보고 읽는 동안 그 시간 속에 각자의 삶을 비춰 보며 살아 간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만큼 아름다운 드라마를 만들 순 없을 거야.'-노희경의 <그들이 사는 세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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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13 0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다 좋은 건 아니겠지요 거기 그만두고 그림 그리고 이야기를 쓴 게 잘 됐군요 방송작가는 정말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라마 작가도 그렇고, 그건 다른 것보다 반응이 바로 오기도 하니...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어떤 거든 반응이 빨리 올지도... 그런 것에 마음을 안 쓰고 자기 뜻대로 해 가는 거 쉽지 않겠습니다

scott 님이 살아온 것도 평범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할 이야기가 많으시겠습니다 지금까지 조금씩 했군요


희선

scott 2023-03-13 09:55   좋아요 1 | URL
김보통 작가 이제는 전혀 보통스럽지 않은 작가가 되셨습니다 ㅋㅋ
방송 극 대본은 영화 달리 피드백도 빠르고 씬도 여러개가 들어가니 작가들은 영혼을 갈아 넣을 정도로 써야 ㅋㅋ

오늘은 어제보다 기온이 뚝 떨어졌네요
희선님 오늘 하루 무조껀 따숩게 ^^

2023-03-13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3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3-13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토피성 피부염이 아주 심했어서 한의원에 다녔었는데ㅋㅋ그 경험 덕에 제 장래희망에 한의사는 없네요 ㅋㅋㅋ(어차피 공부 못해서 안 시켜준대요…) 스콧님 조각조각 뿌려주시는 인생 이야기 하나하나 모으기 감질납니다!! 그냥 장편소설 한 편 뚝딱 써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ㅋㅋㅋㅋ

2023-03-13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3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3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나 2023-03-17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얘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스콧님 이야기예요. 누군가의 지나온 삶을 들여다보며 그 마음을 느껴보는 게, 소설보다 더 의미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반유행열반인 님 말씀처럼 장편소설 분량으로 읽어 보고 싶은 맘이예요. ^^

2023-03-17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8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9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