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지음, 한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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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10년 12월 19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빈민 구제소에서 자란 미성년 고아였으므로 호적에 기록된 사항 외에는 나에 대한 다른 사실은 알아내기 어려웠다. 나는 스물 한 살이 되어서야 출생 증명서를 취득했다. 어머니의 이름은 가브리엘 주네였고, 아버지의 이름은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내 출생지는 아사스 가 22번지였다.]

-장 주네의 <도둑 일기> 중에서


1950년 12월 19일 감화원에서 감옥으로 보내진 소년은 40세에 접어든 작가 장 주네에게 편지를 쓴다.


'장 주네 나의 동포여!'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자화상이 되어 진심으로 마음과 영혼을 의지 하는 사이가 된다.

'10월에 영화를 한 편 만들고자 한다네. 필름 25롤을 가지고 있는데 전체 1시간 40분 상영 가능 분이지. 내게는 16밀리미터 카메라와 카메라맨, 배우들도 모두 준비 되어 있다네. 없는 것이라 곤 의상 몇 벌, 식당 세트로 사용할 큰 방, 40암페어 조명 램프 뿐이지.'


1959년, 27살의 프랑수아 트뤼포 자신의 영적 자서전 같은 작품 '400번 구타'를 완성 한다.

‘이 영화를 앙드레 바쟁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400번의 구타’의 주인공은 열 네 살 소년 앙뜨완 드와넬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 채 항상 선생님에게 매질을 당하는 소년이다.

어느 날, 소년 앙뜨완은 친구 르네와 함께 수업을 빼 먹고 거리를 쏘다니다가 자신의 엄마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소년 앙뜨완은 학교를 빼 먹은 이유를 추궁하는 선생님에게 순간 엄마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미안한 마음에 선생님은 소년을 위로 해준다.

하지만 친구 모리셰가 선생님에게 사실 대로 고자질을 하고 선생님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앙뜨완의 아버지를 학교로 부른다.

학교로 찾아 온 아버지는 다짜고짜 아들 앙뜨완의 빰을 때린다.

그날 밤 앙뜨완은 ‘내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편지를 써 놓고 가출하고 밤새 거리를 배회하다가 허기를 참지 못한 채 이른 새벽 우유 한 병을 훔쳐 배를 채운다.

다음 날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 앙뜨완을 데려가 따스한 애정 어린 말을 내뱉지만 앙뜨완은 엄마의 진심 어린 사랑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앙뜨완은 대 문호 발자크의 글을 고스란히 베껴서 작문 숙제를 제출했다가 표절 했다는 수모만 당하고 낙제 점수를 받는다. 게다가 발자크를 기리는 사물함에 켜 두었던 촛불에 불이 붙어서 집 전체가 홀라당 타버릴 뻔 하자 아버지는 또 다시 앙뜨완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다시 거리로 뛰쳐나온 앙뜨완은 단짝 친구 르네에게 “이젠 정말 집에 갈 수가 없어. 아버지는 날 군사 학교로 보내버리려고 해.”라고 말하며 친구 르네의 집에 머물면서 극장에 가기도 하고 좀 도둑질을 하며 학교에 가지 않는다.

돈이 궁해진 앙뜨완은 친구 르네가 망을 보는 사이 몰래 아버지 사무실에 들어가 타자기를 가지고 나오지만 이를 마땅히 처분할 방도가 없자 다시 타자기를 돌려주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관리인에게 들키고 만다.

매정한 아버지는 끝까지 자식을 용서하지 않고 앙뜨완을 경찰에게 넘겨버리고 엄마도 더이상 아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절도 조서에 거짓말만 늘어 놓은 앙뜨완은 결국 소년원 수감이 결정된다.

어떤 순간에도 감정의 동요가 없었던 앙뜨완은 호송차에 올라 타는 순간 눈물을 흘린다. 문제아들만 모아 별도로 수감 하는 소년원 보호 관찰소로 들어간 앙뜨완은 극도의 통제와 규율 ,폭압으로 하루 하루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끔찍한 환경에 못 이겨서 탈출한 소년범들은 더 험한 곳으로 보내지고 앙뜨완은 식사 시간 종이 울리기 전에 빵을 뜯어 먹었다는 죄로 얼굴이 퉁퉁 부어 오를 정도로 빰을 맞는다.

아들을 면회 온 엄마는 아들이 어떤 말도 믿어 주지 않은 채 비웃음 서린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너 일하고 싶어 했지? 이젠 작업장으로 보내질 거다.”

태어나자 마자 유모의 손에 키워진 앙뜨완에게 따스한 손길 한 번 내민 적 없었던 엄마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된 앙뜨완은 비로소 자신이 완전히 버려졌음을 깨닫는다.

흙 밭 위에서 소년들이 축구를 하고 있는 동안 앙뜨완은 이 틈에 보호소를 탈출한다.

미친듯이 앞 만 보고 내달리는 앙뜨완의 뒤로 그를 쫓는 호각 소리가 울린다. 감시자들을 따돌린 앙뜨완은 숲과 벌판을 가로질러 뛰고 또 뛴다.

얼마나 달렸을까. ....호각 소리는 멀어지고 쉼 없이 달려온 소년 앞에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제 더는 갈 수 없는 곳을 향해 소년 앙뜨완은 모래 해변을 계속 달리고 물속에서 몇 걸음을 내딛던 소년은 이내 체념한 듯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카메라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소년. 표정 없는 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히 채우며 영화는 끝난다.

탈출구 없는 세상의 끝까지 달리고 또 달렸던 또 다른 소년 프랑수와 트뤼포,위선과 거짓, 편견과 권위주의에 물든 어른들의 세계와 상처 받은 어린 영혼은 '400번의 구타'를 통해 세상 밖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932년 2월 6일 토요일 오전 6시, 자닌 드 몽페랑은 아들을 낳아 '프랑수아 롤랑'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젊은 산모는 앙리-모니에 가에 있는 집에서 제법 떨어진 장소에서 남몰래 아이를 낳았다.]

소 귀족 가문 집안인 장 드 몽페랑과 주느비에브 드 몽페랑 부부는 불과 3개월 전에야 딸의 임신 사실을 알았고 엄격한 카톨릭 신앙을 믿는 가문에서 절대로 용납 할 수 없는 일이 였다.

가문의 체면을 유지 하려면 아이 출생을 비밀로 해야 했기에 산파의 호적에 아이 이름을 올렸다.

몽페랑 가문은 아기를 유모에게 맡겨 버렸고 유모에게 맡겨진 아기는 생모 자닌이 롤랑 트뤼포와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 서류 상 '생부 불명'이라는 딱지를 달은 채 30개월 때까지 유모의 친척 집을 전전 했다.

생모 자닌이 결혼식을 올린 이후에도 프랑수아를 집으로 데려 오지 않자 결국 외할머니가 유모 집에서 데려 온다.

'생부 불명'인 채로 유모의 친척 집을 전전 했던 아이는 비로소 몽페랑 가문 집으로 돌아 왔지만 이미 허약해 질 때로 허약해져서 발육 상태가 좋지 못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프랑수와는 엄격한 외할아버지에 눈총을 받으면서 문간 방에서 거의 숨 죽인 채 책만 읽는 아이로 성장 했다.

늘 빈틈없이 말끔한 복장을 갖춰 입었던 외할아버지는 모든 가족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였던 반면에 외할머니는 자신이 낳은 세 명의 자식들과 마지막 외 손자 프랑수와를 키우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딸 자닌이 아이를 지우려고 낙태 수술을 받으려고 할 때도 외할머니는 끝까지 막아냈고 결국 가문에게 버림 받은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학교와 도서관을 보내며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웠다.

반면 프랑수와의 생모인 자닌은 불쑥 찾아와 엄마 행세를 한다며 맛 없는 음식을 강제로 먹이고 거부하면 매질을 하고는 골방에 가둬버렸다.

생모 자닌은 프랑수와가 아파도 미워 했고 계부가 자신이 키우겠다며 집으로 데리고 와 돌봐주는 모습을 볼 때도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이런 생모의 폭언과 폭행에도 불구하고 프랑수와 트뤼포는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집안 곳곳을 정리했고 한 순간도 어질러져 있으면 미친듯이 청소를 했다.

'이 바보 , 멍청이, 누가 너한테 이런 일을 하라고 했니...'

사랑을 듬뿍 주었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소년 프랑수와는 학교에 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발자크를 탐독 하며 어른들에게 수업을 들은 것 처럼 거짓말을 하거나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거짓과 위선적인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계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년 프랑수와는 집을 나와 공습 대피소에서 잠을 자며 심부름꾼, 가게 종업원, 창고지기, 공장 용접공일을 전전하다가 자잘한 도둑질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영화관을 찾았다.

소년에게 '영화'는 유일한 친구였고 집이 였고 사랑의 안식처였다.

열다섯 살 소년은 계부의 타자기를 훔쳐서 마련한 돈으로 ‘영화중독자들’이라는 클럽을 조직하지만 계부의 손에 의해 소년원으로 보내진다.

프랑수와 트뤼포가 수용된 빌지프 소년원은 서류 상 교정시설이었지만 실제로는 어디에서도 보호 받거나 치료 받지 못한 이들을 가두어 버리는 정신 병동이였다.

소년은 이곳에서 수감원과 감시원들에게 숱한 폭행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활자로 쓰여진 모든 것들을 읽으며 버틴다.

삶과 죽음의 밑바닥에서 겨우 숨을 쉬며 자신의 불행한 출생,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살았던 외가 몽페랑 가문, 비웃음과 미움의 두 얼굴을 가졌던 어머니, 어른들은 무기를 들고 전쟁터로 나갔고 버림 받은 소년은 죽음의 놀이를 하듯 소년원에 갇힌 채 세상 밖으로 나갈 꿈을 꾸고 있다.

전쟁이 지나간 땅 위에 폐허 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그곳엔 선한 자도 악한 자도 영웅도 비열한 인간도 없었고 소년에게 사랑을 줄 부모도 형제도 없었다.

단 한 사람 타고난 포용력과 혜안을 가진 최고의 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소년에게 먼저 다가와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둥지가 되어준다.

1949년, 마침내 여러 지인들의 탄원과 호소로 소년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고 무엇 보다도 영화를 사랑한다. 나는 일한다는 것은 배설물을 폐기하는 것과 같이 필요악이라 간주 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는 내게 인간 그 이상은 아니다. 두 사람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고 그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내게 타인에 지나지 않는다.나는 우정을 믿지 않고 평화 또한 믿지 않는다. 나는 하늘을 오랫 동안 쳐다 보지 않는다. 나의 눈동자가 땅으로 되 돌아 올 때 세상은 내게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프랑수와 트뤼포의 감춰진 재능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였던 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그에게 영화에 대한 이론은 물론 저널리스트와 평론가를 거쳐 감독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물심 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스물 셋이 되던 해 평단에 데뷔한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계에서 줄곧 비 타협적일 정도로 철저하게 혹평을 일삼는 영화 평론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언론은 그를 가리켜 ‘저널리즘의 젊은 깡패’라며 ‘ 지저분하게 내뱉는 말투에서 참을 수 없는 자부심을 지닌 증오에 찬 악동’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1957년 경 신진 감독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의 영화 관습에 저항하는 한편 새로운 경향의 영화 만들기를 주창 하며 태동 한 ‘누벨바그(Neuvelle Vague)’물결은 감독이 작가로서, 영화에 적극 개입하여 주제 의식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작가주의 영화’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 프랑수아 트뤼포를 비롯해 ‘네 멋대로 해라’의 장 뤽 고다르, ‘내 사랑 히로시마’의 알랭 레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루이 말 감독들로 스토리보다는 표현에 중점을 두고 현실과 카메라의 직접적인 접촉을 중시했다.

누벨 바그 물결 속에 합류한 감독들은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 촬영이 아닌 현장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했고 솔직하고 독창적이며 혁명적인 영화 언어로 짜여진 시나리오를 빛나게 하는 자연광, 즉흥적인 연출,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메는 핸드 헬드 카메라를 활용한 트래킹 촬영, 비약적인 전개,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전 세계 영화계를 매료 시켰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수년 동안 서로 끼리 끼리 상을 주고 받는 영화제를 거부하며 '누벨 바그는 죽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 모호한 것이다'라고 선언하다가 결국 1958년 칸 영화제로부터 추방 당한다.

1년 뒤 1959년 영화 감독으로 돌아 온 스물 일곱 살 프랑수와 트뤼포가 영화 ‘400번의 구타’는 전 세계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온갖 영화상을 휩쓸자 냉담한 태도를 유지 했던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 조차 비평과 상업적 측면 모두 성공한 영화'400번 구타'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준다.

'나의 사생활은 다시 한번 사랑의 행복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프랑수와 트뤼포 인생에서 '사랑'은 일 평생 동안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이뤄졌다.

그는 사회와 세상을 향한 애착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의 행동을 신뢰 하지 않았고 사회에 어떤 문제나 소란에도 관심이 없었다.

트뤼포에게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그 자체였기에 그는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자신의 입으로 예술가라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에게 전쟁은 전쟁일 뿐이고 영화는 자유스러운 영혼들의 놀이터 였기에 사상이나 이념, 정치적 구호가 영화의 독특한 색채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걸 극도로 경계했고 거부 했다.

그에게 사상이나 이념의 갈등으로 빚어진 혁명은 깃발을 휘날리는 순간 이리저리 큰 목소리와 단체들의 강압적이 태도에 휩쓸려서 순식간에 혁명의 명분, 시위의 목적이 변질 된다고 믿었다.

68혁명이 세상을 휩쓰는 동안에도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던 트뤼포는 '더 많은 혜택과 자유' 속에는 아동 학대, 인권 탄압, 자살자, 실업자, 빈곤층의 죽음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이념의 대립각에서 각자의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한 단체들이 뒤섞여 있기에 좌파, 우파, 극 좌파, 극 우파들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트뤼포는 어떤 정치 지도자나 권력자들에게 아부 하거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책과 신문, 영화를 사랑하며 보도의 자유와 사법권의 독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만일 국가가 영화를 만들 자유를 빼앗아 버린다면 트뤼포는 세상의 모든 책을 불태워 버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수 많은 여성들, 자신을 애워쌌던 여성들의 마음에도 불을 질렀다.

트뤼포는 자신에게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몇몇 규칙만 서로 존중한다면, 여자 친구나 옛 애인과 좋은 시간을 가졌는데 그 몇몇 규칙이라는 것은 바로 서로 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 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누구든지 이 규칙을 파기 하게 되면 트뤼포는 곧바로 절교를 했다.

그는 자신의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게 하기 위해 관계를 촘촘하게 세밀화 했고 사랑 조차 세분화 시켰다.

상대방의 고삐를 쥐고 어떤 것을 결정하고 관계를 가질 때도 항상 트뤼포가 주도권을 가졌고 친밀하고 내밀한 관계와 애정 어린 우정의 선을 명확하게 그었다.

이렇게 정교하고 철저하게 상대를 대하는 트뤼포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배우들, 작가들, 예술가들은 그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인생의 큰 즐거움과 행복을 느꼈다.

그는 항상 연인들과 친구들에게 훌륭한 관객이자 팬이 되어 주었고 따스한 평론가이자 아낌 없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진솔한 인간이였다.

영화와 평론으로 대 성공을 거두었지만 프랑수와 트뤼포는 항상 불안함과 극도의 고독 속에서 만성 중이염에 시달렸다.

'그에게 여자란 늘 절반은 상징물, 절반은 여성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 출연했던 모든 여배우들을 사랑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삶이 정상 궤도 속에서 움직였기에 그는 무엇 보다도 세상의 모든 여성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사랑, 어머니의 얼굴을 찾아 다녔다. '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서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꾸렸지만 이런 행복 마저 그에게 기이하게 느껴졌을 정도로 트뤼포는 행복에 젖는 다는 것을 실감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꼈다.


트뤼포는 연인들과 동료 배우들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영화 스틸 컷을 찍듯이 정확한 시간의 좌표와 정해진 규칙이 새겨진 관례에 맞춰 움직였다.


'타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 것, 저절로 주어지지 않을 테니 필요한 것은 스스로 쟁취할 것,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할 것, 타인과 관계도 맺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것을 배울 것, 아무런 속박 없이 시간 계획을 짤 것...'

이렇게 해야만 그의 불안감이 해소 되었기에 아내도 아이들도 연인들도 그의 이런 행동을 이해해주었다.

서로 알게 되었고, 다시 서로 알게 되었고

서로 멀어졌고 다시 서로 멀어졌고

다시 서로 찾아냈고 서로 불태웠고

그리고 나서 서로 헤어졌다네

각자는 자신의 길을 떠났네

인생의 회오리 바람 속으로

-영화 '쥴 앤 짐' OST <인생의 회오리바람>


1912년의 파리, 오스트리아인 쥘과 프랑스인 짐은 이상적인 여자 카트린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파리와 1차 대전과 라인 강과 센 강을 오가며 사랑을 나누는 그들에게 하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앙리 피에르 로셰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쥴 앤 짐>을 우연히 할인 서적 코너에서 찾아 읽은 프랑수와 트뤼포는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 버린다.

지고 지순 한 사랑을 간직한 여인, 부서질 듯 파멸 속으로 이끌고 가면서도 현명함과 생기를 잃어 버리지 않는 여인, 한 순간 우스울 정도로 비극적인 삶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남자들, 그러나 언제나 항상 자유로운 사랑과 충동적 욕망을 절제 하지 못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트뤼포는 원작자 앙리 피에르 로셰에게 연락을 한다.

<쥴 앤 짐>은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로 예술가인 두 남자가 사랑했던 한 여자와 오랜 세월 나눴던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를 감독 트뤼포는 늦가을 날 무렵이면 떠오르는 따스한 봄 날의 햇살 처럼 한 시절 청춘들의 삶과 사랑, 죽음의 순간을 날렵한 영상과 간결한 대사, 사랑의 은유를 보여주는 여주인공의 노랫 말 속에 담아 냈다.

'사랑의 고뇌는 의사도 치유 할 수 없는 질병이다.'


'생부 불명'이라는 딱지를 달고 세상 밖을 떠돌았던 소년은 어떤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영상을 통해 작업 하며 동료들과 주고 받는 사랑과 존경심 속에서 진정한 얼굴, 사랑의 눈빛을 보여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 다녔다.


첫 번째 아내와 이혼 후에 만난 연인들 그리고 마지막 연인 파니, 곧 태어날 아기의 성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트뤼포는 뇌 경색 후유증 후에 발견 된 악성 종양으로 1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는 이전 보다 더 작아 졌고 온통 머리카락은 흰색으로 변해 버렸고 어린 시절의 고통의 기억은 더 깊어 졌다.

투병 하는 동안 트뤼포는 거의 매일 밤 9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버림 받아 길거리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항상 자신이 세운 계획과 시간에 맞춰 살았던 트뤼포는 하루의 반은 깊은 수면 속에 빠져 있었다.'

수술을 받은 육체에 남겨진 상처가 더디게 회복 되는 동안 트뤼포는 이런 문장을 끄적인다.


-무단 결석 한 뒤 학교에 댔던 핑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내가 '400번의 구타'에서 사용했던 말이였던가? 아니, 엄마 자닌에게 했던 말이였던가?


그는 지난 시절 자신의 삶의 희망이자 빛이 되어 주었던 책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꺼내 읽으며 마지막 순간, 인생의 끝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만일 프랑수아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만일 그 꼬맹이가 몽페랑 가문 집 문턱을 넘어오지 않았다면....'


귓속에서 맴도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엄마 자닌의 울부짖는 음성,,,


'사랑하는 아빠, 저의 아픔을 아빠에게 털어놓는 것은, 생각하시는 것과는 반대로 아빠에 대해 제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사실은 생각하시는 것처럼 저를 아빠에게서 멀어지게 하지 않았어요. 그 사실로 인해 저는 엄마로 부터는 멀어졌지만 아빠에겐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실은 진실을 알기 전 부터 저는 가족 안에서 저의 신상에 비정상적인 점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어요, 그러나 제 마음 속에는 언제나 엄마가 계모가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라고 할 수도 없어요. 저의 새로운 삶 속에서는 아빠를 진정 신뢰할 사람으로 만들어 작은 근심까지도 모두 털어 놓고 싶어요.'


1984년 10월 21이 일요일 오후 프랑수와 트뤼포는 눈을 감는다.

한 달 후 생 -로크 성당에서 예술가 소교구의 주임 사제와 망브리노 신부가 장례 미사를 거행한다.


트뤼포는 살아 생전 신을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존재 한 적이 없었던 세상, 엄마 자닌의 눈 흘김을 받지 않는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의 빛, 세계 영화인들의 영원불멸한 시네필이 되었다.

영화를 향한 영원한 사랑의 서약을 실천한 사람, 프랑수와 트뤼포, 그의 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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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2-02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뤼포 전 처음들어보는데 엄청난 분이시군요. 외모에서도 예술이 느껴집니다 ㅋ 작품이름이 <400번의 구타>라니... 얼마나 아팠을까요 🤔

scott 2022-12-02 17:02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 첨 볼 때
소년 앙뜨완
400번 맞는지
세어 보기도 ㅎㅎㅎ

바람돌이 2022-12-02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쥴앤짐 볼 때 트라우마가 또..... ㅎㅎ
저 20대때 누벨바그 영화들이랑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막 의무감으로 밤새가며 봤었거든요. 근데 진짜 공감이 너무 안된느.... 그래도 이탈리아쪽은 괜찮았어요. 프랑스는 진짜 공감 1도 안됨요.
근데 스콧님 글 보다 보니까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었잖아? 지금 보면 또 다를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건 뭡니까? ㅎㅎ

scott 2022-12-02 17:18   좋아요 1 | URL
오! 바람돌이님 20대 시네필이셨군요 ㅎㅎ
전 프랑스 이딸리아 영화 사릉 하는데
고다르 VS트뤼포 중에
딱 한 명만 고르라고 하면
단연 트뤼포 입니다! ㅎㅎ

쥴앤짐은 원작자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작품이기도 하고
실제 프랑스인들의 사랑(남녀 관계)에 관한 모습을 보여 줘서
제 3자적 시점으로 이해 불가 일 수도 .. ㅎㅎ

2023-01-06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워 보여서 쥴앤짐을 찾아볼까 했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군요.. ㅎㅎ
당선작 선정 축하드려요 스콧님! 🎉
페이퍼까지 무려 2관왕!🥰
정말 늘 정성스런 포스팅이에요!

scott 2023-01-06 21:44   좋아요 1 | URL
쥴앤짐 유툽에 있는데 프랑스 말로 나오고 영어 자막이 없습니다 ㅎㅎ

쥬님 새해 복 많이 받기롱 ^^

2023-01-06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6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6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6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1-06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3-01-07 11: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주말 행복하게 ^^

2023-01-06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7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thkang1001 2023-01-07 1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scott 2023-01-07 11:34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주말 미세먼지 폭탄 입니다
호흡기 건강 잘 챙기세요
2023년 행복한 일만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마뉘 ^^

thkang1001 2023-01-07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scott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일년내내 황사가 몰려온다거나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scott 2023-01-29 17: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1월 정말 춥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

희선 2023-01-08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 축하합니다 2023년 시작부터 좋은 일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글을 잘 쓰시고 깊게 쓰시니 거의 빠지지 않지만... 2023년에도 책읽기뿐 아니라 글쓰기도 즐겁게 하세요


희선

scott 2023-01-29 17: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일상이 무의미 한것 같아서 기록 차원에서 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