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한 그루가 구부러져 서 있다:

구부러진 하얀 분필.

구름 세 덩이가 왼쪽에, 산마루 하나.

그리고,황야, 황야, 황야.

그런 다음 갑자기 숲, 소나무숲.

자작나무들 하얗게, 다시 소나무들.

높이 위에는 까마귀들, 곧

별들이 오는 것을 들을까?

연못 하나, 어두워졌다..... 집들? 빛?

마을 하나를 지나오지 않았나?

누가 여기에서 혹시 위로하듯 꿈들을 말하나?

그리고 소나무들 다시, 더 어두워져서....

두 물레방아가 아직, 바람에게 거는 장난:

긴 팔과 함께 둘은,

-여기에서 바람은 선잠일까?-

그리고 밤, 그리고 끝없이:황야......

-파울 첼란 <풍경>


아유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향하는 기나긴 죽음의 행렬에서 빠져나온 파울 첼란

자신이 서있던 그 줄의 자리를 지켰던 이의 죽음을 목격한 파울 첼란은 거대한 죽음의 늪 속에서 끄집어낸 언어로 시를 지었다.

시인 파울 첼란은 동사의 움직임을 통해 집단(집단 수용소의 갇혀 있는 유대인)과 개인(독일인)을 푸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주제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음악 형식)형식으로 변주한다.


​왔네, 왔네.

말 하나가 왔네, 왔네,

밤을 가로질러 와,

빛나고자 했네, 빛나고자 했네.

―파울 첼란, 「스트레토(Engführung)」 중에서

시인 파울 첼란은 1920년 중앙 유럽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걸친 카프파티아 산맥과 드니스테르 강 사이에 위치한 부코비나에서 태어났다.

부코비나는 지정학적인 요새로 오스트리아 ,터키,독일, 러시아에 차례 차례 점령을 받았던 곳으로 2차대전 당시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가 종전 후 루마니아에게 넘어갔다.

부유한 유대인 상인이였던 부모는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고통스러운 노동형에 처해져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외동 아들이였던 파울 첼란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가스실로 향하는 기나긴 줄에서 운 좋게 벗어나 살아 남는다.

종전 후 루마니아의 수도 브쿠레슈티 출판소에서 번역 일을 하다가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첫 시집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1948)를 발표한다.

1949년 파리로 망명해서 프랑스인 판화가와 결혼 하고 프랑스 국적을 획득하며 '죽음의 푸가'를 시작으로 명성을 날린다.

시인 파울 첼란은 대량 무기로 인간을 대량 학살하는 것을 목격하며 운 좋게 살아 남은 이의 죄 의식으로 시를 썼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센 강에 몸을 던진다.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낮에 또 아침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가 외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가진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1957년 독일 브레멘 상 수상식에서 파울 첼란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독일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가 받아 들여질 것은 거의 기대하고 있지 않으므로 미지의 누군가에게 띄우는 '병 속의 편지' 같은 시를 씁니다.'

@gerhard richter Candle (Kerze)1982

시인은 세상을 향해 띄운 병 속의 편지 같은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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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1-24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이 사진을 어디서 몇 번 본 기억이 있어요^^*
파울 첼란 이었군요? ‘죽음의 푸가‘도 제목이 익숙합니다.
스콧님이 써주신 내용을 읽고 시를 읽으니 서글픈 노래같아요.

2022-11-24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11-25 0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이 죽고 자신은 살아 남았을 때 어떨지, 그런 마음 상상하기 어렵겠습니다 아니 지금 사는 사람은 다 여러 가지에서 살아 남은 사람일지도... 그렇다 해도 그 마음은 모르겠습니다 힘들 것 같다는 것밖에... 살아 남았다 해도 자기대로 살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쉽지 않겠지만...


희선

scott 2022-11-25 10:27   좋아요 0 | URL
네, 파울 첼란과 줄을 바꿔섰던 유대인은 가스실에서 영원히 돌아 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자가 남기고가 시어들

읽을 때마다 가슴 깊은 울림이 느껴져서 자주 펼쳐 보고 있습니다

새파랑 2022-11-25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사진은 유명한 작품인가 봅니다 ㅋ 다른 스콧님 글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ㅎㅎ

제가 좋아하는 앨범 표지이기도 하고 ㅋ

새벽의 검은 우유는 뭘 말하는걸까 궁금하네요. 독가스 인걸까요? ㅋ

scott 2022-11-25 10:29   좋아요 1 | URL
서울 리움에 전시 되어 있습니다 ㅎㅎㅎ

새파랑님 음악 매니아 !^^

새벽의 검은 우유는
아우슈비츠 가스 수용실애서 내뿜던 영혼들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