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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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못으로 벌어진 예수의 상처에서 나오는 붉은 피를 치유 하듯, 성스러운 푸른빛 장옷을 입은 성모마리아 암울한 하늘 빛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매장entombment of christ> 1709년

18세기 성모 마리아의 옷을 푸른 빛깔로 채색한 네덜란드 태생의 화가 피터르 판데르베르프(pieter van der werff )


그가 사용했던 푸른색 물감은 파란색 안료 중 가장 곱고 값비싼 울트라 마린으로 아프가니스탄 코츠카 강 계곡의 동굴 속에서 캐낸 청금석을 곱게 갈아 만들었다.


곱게 빻아진 청금석 가루의 푸른 빛은 어떤 화학적 기술로 재현 하기 힘든 색깔이였지만 1782년 스위스의 안료 염료 제조업자 요한 야코프 디스바흐가 스페인 제국이 독점하고 있는 루비 레드의 독점권을 빼앗기 위해 연금술사와 함께 여러 곤충과 벌레들을 혼합 시켜 증류액을 부어 버린 결과물이 선명한 푸른 빛깔이였다. 

그는 고대 영광을 능가 하게 될 프러시아를 위해 우연의 산물로 탄생한 세계 최초 합성 안료 인 푸른색을 '프러시안 블루'로 명명했다.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는 '프러시안 블루'는 디스바흐의 후원자 요한 레온하르트 프리슈에게 넘어 갔다. 그는 푸른 색을 막대한 황금으로 바꿔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

18세기 무렵의 원소들은 철, 금, 은, 구리, 주석, 납, 인,비소등 단 몇 가지에 불과했지만 뜻밖의 광물과 자연의 화합물이 인류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782년 칼 빌헬름 셸레는 극미량의 황산을 입힌 스푼으로 프러시안 블루를 휘저어서 치명적인 독약인 '시안화물'을 만들었다.

이 독약은 극소량만 사용해도 온 몸이 마비 되거나 머리카락이 빠지고 근육 손상은 물론 신체 곳곳에 염증과 부종을 일으켜서 서서히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빛을 내며 부를 일으키게 만들었고 그리고 죽음으로 몰고 갔던 푸른 빛은 20세기 초 전쟁의 광풍 속에서 나치가 유대인을 집단 학살 시키는 대량 살상 무기가 되었다.


1907년 독일 유대계 화학자 프란츠 하버가 식물 생장의 영양소에서 직접 채취한 '질소'는 엄청난 식량 난을 불러 일으켰던 대 기근 사태를 막아주는 비료 역할도 했지만  '시안화물'로 추출해서 대량 살충 훈증제로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시안화물'은 유대인 집단 수용소 가스실에서 살포 되었고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 나치 지도부들이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 도중 시안화물 캡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 진단에서 의사들은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진통제 디히드로코데인을 하루에 백 알 넘게 복용하다 중독된 것이었다.]

1945년 4월 전쟁의 막바지에 독일 전역은 캡슐을 집어 삼켜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람들이 수 백 명에 다다랐다.

자신의 과학적 성과물로 조국 독일이 1차 대전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게 만들 계획을 세웠던 화학자 프란츠 하버는 1934년 스위스 바젤에서 관상동맥을 팽창 시키는데 필요한 니트로글리세린 약통을 손에 꼭 움켜쥐고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질소 성분의 살충제가 인류의 굶주림을 해방 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전쟁의 광란 속에 파묻혀 버린 생명들 진흙 구덩이에 파묻힌 채 눈을 감지 못한 시신들. 총상으로 팔 다리를 잃고 거리를 배회하는 참전 용사들, 거대한 증기 가마에서 내뿜는 연기에 질식 되어 강과 들판 위에 비료처럼 뿌려진 시신들..

인류가 치명적인 푸른 색으로 질식 되어 버렸던 시대에 복잡한 방정식에 매달렸던 사람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방정식의 해를 단숨에 풀어낸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수학자인 카를 슈발르츠실트


그는 회전하지 않고 전하가 없는 완벽한 구형의 이상적 항성을 가정 한 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대입해서 질량이 어떻게 공간의 형태를 바꾸는지 계산했다.

그가 풀이한 방정식 계산은 마치 침대 위로 떨어진 포탄이 매트리스를 휘 젖게 만드는 구형으로 그 수치는 항성의 경로와 행성의 궤도 중력이 커다란 천체 주변을 배회하는 광선의 휨까지 추적 할 수 있는 공식 이였다.

전쟁 중에 음식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병약한 상태 속에서 슈바르츠실트는 이 공식 연구를 계속 하며 오류인 특이점을 찾기 위해 공간을 압축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가상의 여행자가 텅 빈 공간을 지나가고도 살아 남을 수 있다면 미래로부터 빛과 정보를 받아서 아직 발생하지 않는 사건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추론했다.

질량의 밀도가 가장 높아질 때 무엇 보다 두려운 것은 공간의 형태가 달라 진다 거나 시간의 기묘한 영향이 미쳐 버릴 수 있기에 빛은 특이점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눈은 특이점을 볼 수도 이해 할 수도 없기 때문에 특이점에서는 일반 상대성 법칙도 무너지고 물리학의 어떤 법칙도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만약 가상의 여행자가 만화경을 통해 보듯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자신의 머리 위 작은 원 속에 한꺼번에 중첩되어 투사 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모두 과거의 시간, 찰나의 순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슈바르츠실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인슈타인은 그의 무덤 앞에서 직접 작성 한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달아날 때 문제들에 맞서 싸웠습니다. 자연의 여러 측면들 사이에서 관계를 발견하는 일을 좋아했으나, 그의 탐색을 이끈 것은 기쁨, 예술가가 느끼는 쾌감, 미래라는 직물을 짜는 실들을 분간할 수 있는 선각자의 현기증이었습니다.'

이렇게 추도사를 직접 읽었던 아인슈타인은 1939년 <많은 중력 질량으로 구성된 구면 대칭의 정지계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슈바르트실트가 고안해 낸 '특이점'이 왜 존재 할 수 없는지 설명했다.

'특이점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은 물질이 아무렇게 나 집중될 수 없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빛의 속도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으로 시공간 구조의 균열을 보수 해서 거대한 우주에 불어 닥칠 파국적 중력 붕괴를 막아내려고 했다.

1939년 9월 1일 나치의 탱크들이 폴란드 국경으로 넘어 갔던 그날 미국의 물리 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하틀랜드 스나이더는 <피지컬 리뷰>에 이런 논문을 발표했다.


'모든 열 핵 에너지원이 소진되면 충분히 무거워진 항성은 붕괴할 것이다. 분열이나 회전 복사 때문에 질량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이 수축은 무한히 계속 될 것이다.'

20세기 전장의 포성과 독가스 구름 사이에서 발견 된 물질, 수 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현상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슈바르츠실트가 가정 한대로 '공간을 종잇장처럼 구겨서 시간을 촛불처럼 끌 수 있는 블랙홀이 형성된다'면 이것은 어떤 자연 법칙이나 인간의 물리적 힘으로도 막을 수 있었을까?


“형태나 차원이 없는 공간, 볼 순 없지만 온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자”는 마치 야누스의 상반된 두 얼굴처럼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기도 했고 파국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은 자연이 품고 있는 모든 생명에 닿기 위해 무수히 많은 파동과 입자로 부서져서 한정적 공간 속 단 하나의 위치에 안착한 후 여러 장애물과 부딪치면서 특이점에 도달한다.

이렇게 특이점에 도달한 파동은 여러 장소에 도달해서 서로 상쇄하다가 소멸 할 수도 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던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에 의하면 모든 원자는 빛과 마친가지로 때로는 파동 치며 때로는 입자처럼 움직인다.

세상 밖 다 차원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는 파동은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을 방정식 함수로 계산 할 수 있다면 미래에 발생할 파고를 예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함수, 슈뢰딩거가 고안한 '파동 함수'를 풀어 버린 하이젠베르크 쓴맛이 나는 초록색 액체를 마신 것 처럼 환각 상태에서 양자역학을 창시 한다.


스물 다섯 나이에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 교수로 임용 되었던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으로 1932년 노벨상을 받고 7년 후 나치 정부로 부터 핵폭탄 제조 토대를 실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핵탄두가 쏟아져 내렸다.

상공에서 떨어진 핵탄두 덩어리들은 잎사귀의 포자들 처럼 땅 속 깊은 곳까지 내려 앉아 모든 생명을 태워버리며 한 공간을 집어 삼켜버렸다.

가뭄과 역병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 남았던 생명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거대한 죽음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간은 원자를 쪼개어 최초의 빛을 포착해내어 방정식으로 도출 해서 우주의 나이를 계산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라져 버리는 인류 전체의 삶을 구원 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21세기 인간은 인터넷의 그물 망 속에 갇혀 버린 생명체에 불과 할지 모른다.

아인슈타인을 공격했던 과학자 보어는 이런 말을 내뱉었다.

'신에게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여러 변이를 일으키며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전염병의 시대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의학과 과학의 기술에 매달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연의 소멸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고 있다.

과학 기술이 세상에 비추는 빛이 될 때 우리의 생명의 시간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일생의 끝에 이른 나무에서는 마지막으로 무수한 레몬이 달린다. 마지막 봄이 되면 꽃 눈이 트고 거대한 꽃송이가 피어 공기를 향기로 채우는데 어찌나 달콤한지 두 블록 떨어져도 콧구멍이 아릴 정도다. 그런 다음 열매가 한꺼번에 익고 이 초과 중량 때문에 모든 가지가 부러져 몇 주 뒤에는 썩어가는 레몬이 땅을 뒤덮는다.]

                                       -벵하민 라바투르의 <밤의 정원> 중에서

생명의 끝자락에 다다른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과 열매를 맺고 자연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법칙을 인간은 영원히 풀지 못할 것이다.


하늘을 길들일 색깔은 어디 있는가?

잿빛 안개가 내 눈을 멀게 한다.

더 볼수록 덜 보인다.

-괴테 <서동 시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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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3 17: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이런 내용이군요. 저자의 밤의 정원에 나온다는 문구는 진짜 섬뜻하네요. 스콧님 이야기봐도 과학의 예로 든것들은 좀 어려운데 일기 괜찮을까요?

scott 2022-06-23 23:19   좋아요 3 | URL
각각의 단편이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는데
굉장히 매력적인 스토리 입니다

이 책에 나온 과학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올 상반긴 단연 최고의 책 중에 한권!^^

미미 2022-06-23 17: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덕분에 이 책을 꼭 읽고싶어졌습니다. 전혀 관심없었는데 ㅠㅠ이 페이퍼도
인상적이예요!!

2022-06-2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6-23 18: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하던 책!
이런류 많지 않나 했었는데,,, 어떻게 풀어내는가에 따라 다르겠죠?!

저는 페르메이르의 파란색을 좋아해요^^

2022-06-23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6-24 0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프러시안 블루 색상을 보면서 저 안료도 시안 계열이겠지? 까지는 생각했는데, 그게 시안화물이 될 줄이야. 그 내용을 읽어서인지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 빨간색과 하얀색에는 납이 들어간다는 말도 생각나네요. 근사한 색상 안에 위험물이 들어있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데요.
잘 읽었습니다. scott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scott 2022-06-27 23:29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시안화물을 알고 계셨군요.
고딩때 화학시간에도 배웠던 그 원소!ㅎㅎ
맞습니다
빨강 하양 물감에 납성분이 들어가서
화가들 중 납 중독자들이 많았어요!

서니데이님 장마 시작!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굿!나잇!^^

페넬로페 2022-06-24 00: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파란색깔이 넘 좋아요~~
인류의 발명품이 어느 곳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예술도, 살상무기도 될 수 있네요.
어느 역사의 모퉁이에 서 있어야 저런 고통을 피할 수 있을지~
삶과 죽음은 정말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scott 2022-06-27 23:30   좋아요 3 | URL
파란 빛깔
오래도록 보고 있으면 가숨 속도 시원!ㅎㅎ

좋은 의도로 발명해 놔도 기가 막히게 무기로 바꾸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 중심에 과학이 있었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이런 엄청난 파급과 재난이 가져오게 될 재앙을 잘 몰랐어요

mini74 2022-06-24 16: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리뷰 읽으면 무조건 사고싶어지는 ㅠㅠ 프란츠 하버 아내가 애원하다가 자살한거 생각나네요 ㅠㅠ

scott 2022-06-27 23:31   좋아요 2 | URL
하버 아내 이야기 이 책에서 언급 됩니다!
하버 바람둥이!
나쁜 놈!

희선 2022-06-25 0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파란색 물감 이야기여서 그림 이야긴가 했는데 과학이었군요 파란색 물감에서 시안화물이 나왔다니, 그래서 청산가리인가 했습니다 비료로 쓸 질소에서도... 과학은 좋은 것뿐 아니라 안 좋은 것도 있네요 과학자도 좋은 뜻으로 연구할 텐데, 그게 안 좋게 쓰이기도 하는군요 과학은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할 듯합니다 언제나 좋은 데 쓰면 좋을 텐데...


희선

scott 2022-06-27 23:32   좋아요 2 | URL
청산 가리 맞습니다!
청산 가리 처음 출시된 약병 색깔이 파랑!ㅎㅎㅎ

질소가 인류 대기근을 막아 줬는데
인간의 목숨을 빼앗게도 만들었네요

코로나 시대에 과학 기술은 정말 중요 한데...

인간의 능력은 분명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