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사이렌 소리 속에 실려 가는 노파의 이름은 비비안 마이어다.

2월 1일이면 그녀는 83세가 된다. 여기서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는 그 구역의 친숙한 실루엣, 배경의 한 요소처럼 그 장소의 일부로 보이는 실루엣 중 하나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실루엣은 더이상 거기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잠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그런 다음 잊어버린다. 때때로 분별력을 조금 잃어버리는 외로운 노파 가끔 괴상해 보이고 무척 완고한 노파...]


2008년 12월 뉴욕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 날 머리를 크게 다친 노숙자 차림의 한 노인이 엠블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 되었다.

응급실 침대에 눕혀진 노인은 응급 대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저 사람들이 나를 데려가지 못하게 해줘요.'

병원 치료 중에 노숙자는 먹는 걸 완강히 거부 한 채 나날이 쇠약해져 갔다.

노인이 치료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겐스버그 형제는 심신 안정을 위해 뉴욕 하일랜드 파크에 있는 요양원에 입원 시킨다.

2009년 4월 21일 노인은 숨을 거두고, 겐스버그 형제는 이 노인의 유골을 지난 어린 시절 함께 뛰어 놀았던 딸기 밭에 뿌렸다.

2009년 4월 25일 시카고 트리뷴 지에 부고 기사가 실렸다.


[비비안 마이어, 프랑스와 미국 시카고에서 50년 간 살다 지난 주 월요일 영면 하였습니다.

존, 레인, 매튜에겐 또 한 명의 어머니였습니다. 자유롭고 다정한 영혼의 소유자인 마이어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이들의 삶을 마법처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늘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영화 비평가이자 비범한 사진가 였습니다.

진정으로 특별했던 그녀를 몹시 그리워하겠지만 그녀의 길고도 아름다웠던 생을 우리는 늘 기리고 기억할 겁니다.]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 그녀는 일 평생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던 사진가 였지만 이웃들은 그녀를 병든 노숙자로 기억했고 세상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2007년 부동산 중개업자 존 말루프는 경매 사이트를 통해 단 돈 380달러를 내고 30만 장에 달하는 네거티브 필름과 소지품들을 구매 했다.

당시 그는 시카고 포티지 파크 역사에 관한 책을 집필하던 중 관련 사진과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경매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굉장히 특별한 사진들을 대거 발견하게 된다.

사진의 정확한 가치는 물론 누가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일단 100여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스캔 해서 이베이에 올려 놓고 사진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올라 오기를 기다렸다.

이 사진들을 본 저명한 예술가이자 비평가인 앨런 세쿠라는 존 말루프에게 절대로 다른 곳에 팔지 말고 사진을 찍은 이를 찾아 보라고 조언한다.

존 말루프는 수소 문 끝에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비비안 마이어라는 걸 알아 낸 후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를 개설해서 순차적으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단 하루 만에 200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블로그에 몰려 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고 1년 후 덴마크에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첫 전시회가 열렸다.


그녀의 전시장에는 수 많은 인파들이 몰려 들었고 뒤이어 미국의 주요 신문과 언론 잡지사들이 앞다투며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찾기 시작 한다.



2009년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수 많은 이들의 기억 저편의 세상으로 시계를 돌려 놓았다.

1930년대 뉴욕과 시카고 거리 곳곳의 출 퇴근하는 사람들, 쇼핑하는 사람들, 거리의 노동자, 정비가, 배달부, 경찰, 하수 설비 노동자, 서비스직 사람들 등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들의 일상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졌다.


그녀의 카메라가 포착 한 곳에는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 경찰의 심문을 받는 사람 그리고 거리를 이리 저리 배회하는 이들이 욕구, 시선이 담겨 있다.


반세기 전 최초의 스냅 사진 부터 롤라이 플렉스로 찍은 35mm의 정사각형의 흑백 사진 그리고 컬러 사진 까지 40여 년 동안 다양한 각도와 구도로 찍은 사진들의 시간은 1994년에 멈춰져 버렸다.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녀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건 출생지와 이름 뿐으로 1926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프랑스 태생의 어머니와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온 전기 기술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 났다.

그녀에게 6살 위 오빠가 있었지만 다른 가족에게 입양 된 후 1950년 대 뉴욕 맨해튼 이스트가에 살았다는 기록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마이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부모는 이혼 했고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개인 입주 간호사로 일하며 딸과 함께 자신의 고향 프랑스 노르망디와 뉴욕을 오고 가며 살았다.

6살 무렵에 엄마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갔던 마이어는 친지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능숙하지 않았던 아이로 기억 했다.

1949년 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사망한 이모의 유산 중 일부를 물려 받은 마이어는 브라우니 카메라를 구입해서 프랑스와 스위스 농촌 곳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찍었다.


수 천장의 사진을 찍은 그녀는 이웃들의 신고로 스파이로 의심 받아 심문을 받기도 했다.

1951년 마이어는 뉴욕 퀸즈에 입주 보모로 취직한 후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뉴욕의 부촌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의 부유한 가정의 보모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산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뉴욕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그녀가 포착한 1950년대 뉴욕의 역동적인 모습 속에는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인 인종 갈등과 차별, 빈민층의 일상이 담겨 있다.


1956년 마이어는 어떤 이유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카고로 건너 가 1990년까지 여러 집을 전전 하며 입주 보모와 관리인, 가정부로 일했다.


그녀가 시카고로 건너갔을 때 처음으로 입주한 가정은 겐스버그가로 그곳의 세 명의 아이들, 존과 레인, 매튜를 돌봤다.

겐스버그가의 아이들이 성장 한 후 유명한 거부의 외동딸과 방송인 집의 입주 보모로 살았고 나이가 들어서 입주 간병사로 일했다.

그녀를 고용 했던 이들은 마이어가 자신들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재우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상적인 업무 뿐만 아니라 교양을 쌓고 지식을 쌓는데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주었다고 회고 했다.


마이어는 자신이 입주 했던 가정들 중에 특히 겐스버그가의 세 아이들을 각별히 사랑했다.

아이들에게 간단한 프랑스 요리법을 알려주며 함께 요리 했고 시카고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 영화관을 데리고 다니며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키워주었다.

그녀는 이따금 씩 시카고 도시 한 복판 시위 현장에 데리고 가 시위자들이 사회에 무엇을 요구 하는 지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겐스버그 형제들은 마이어의 삶보다 그녀가 들려 주었던 건축과 미술, 영화, 예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그녀를 만났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일랜드 파크에서 유일한 지식인'으로 기억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시카고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필름 센터에 자주 들렸고 홀로 유럽과 북아프리카 등지를 여행 다녔다.


그녀는 좀 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스 마이어'로 불렀다.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면 완강하게 거절 했고 남자들을 경계 했다.


그녀가 보살폈던 가정의 아이들은 마이어가 어린 시절에 남자들에게 일종의 추행이나 폭력을 겪었던 걸로 추측했다.

마이어는 자신이 돌보는 여자 아이들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 오거나 몸을 만지려고 할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어떻게 보면 카메라가 마이어의 친구 였는지도 몰라요. 마이어는 그 친구를 통해 다른 이들을 봤겠죠. 사진은 마이어가 굳이 자신에 대해 털어 놓지 않고도 사람들을 자신의 삶에 불러들이는 수단이었을 거예요.]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순간을 쉼 없이 포착했던 비비안 마이어, 그녀가 찍고 수집한 모든 것들이 200여개의 상자 속에 담겨 지고 더 이상 보관 할 곳이 없어졌을 때 일자리 조차 찾지 못한다.


마이어가 그토록 사랑했던 겐스버그 형제들은 수소문 끝에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 내 살곳을 마련해 주지만 이마저도 거절하고 1999년 노숙자 처럼 거리를 떠돌아 다닌다.


2008년 12월, 시카고 로저스 파크

'12월 말의 하얀 하늘 아래, 얼어 붙은 미시건 호수 위에서 은빛 갈매기와 오리 들이 시끄럽게 울어 대며 공기를 가르고 있다. 늙은 , 무척 늙은 여인이 눈으로 그 새들을 쫓는다. 날씨가 추운데도 여러 주 전부터 눈이 많이 내려 도시를 꼼짝 못 하게 옥죄고 있는데도 노파는 밖에 나왔다. 그리고 매일 그러듯 호수를 마주한 이 벤치에 그녀의 벤치에 와서 앉았다. 너무 오래 앉아 있지는 않는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녀의 상념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물이 아직 얼지 않은 곳을 찾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몸짓처럼 엉클어 지고 흔들린다. 이 호수는 마치 바다처럼 넓다. 건너편 기슭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정말 바다 라면? 아마도 어떤 배들에 대한 기억이 덧없이 다시 떠오르겠지 하지마 어떻게 알겠는가.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엄청난 분량의 인화하지 않은 필름 상자들, 여기저기 에서 보낸 독촉장들, 현금화 되지 않은 수표들...

마이어는 자신이 끌어 안고 있던 모든 물건들을 시카고 출신의 경매사 로저 건더슨에게 단돈 250달러를 받고 넘겨 버렸다.

평생 동안 사진을 찍었던 마이어가 세상을 떠난 후 수 많은 이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 세계 주요 대학원에서 세미나를 통해 소개 되고 전시되고 있다.


[누가 그녀의 열정과 찍기 위해 들였던 모든 노고를 가져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문제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뿐이지요. 그리고 때론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내린 결정에 행복해 하길 바라면서요. 그것조차도 우리는 알지 못하겠지만요.]

-1980년대 후반 극장에서 일하면서 마이어와 친분을 쌓았던 짐 뎀프시



아이를 돌보고 환자들을 간병 하면서도 마이어는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포착했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리는 세상에서 그녀가 남긴 사진들 ..

그녀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셀 수 없이 많고 기묘한 자화상 사진들에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같다. 때때로 사진에는 그녀의 그림자, 그녀의 눈, 그녀의 모자만 담기기도 한다. 혹은 보물찾기 놀이처럼 예기치 않은 앵글 속에서 그녀를 찾아야 한다. 혹은 거울들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무한히 증식하기도 한다. 튀어나온 광대뼈, 이마를 돋보이게 하는 챙 없는 납작한 모자로 고정한 짧은 머리칼, 윤곽이 뚜렷한 입술, 조금 처진 눈꺼풀, 진지하고 주의 깊은 눈길을 한 아파트나 상점의 거울 속에, 진열장 속에, 백미러나 타이어 덮개나 문 손잡이 속에 포착되고 분할 되는 라이트 모티프 같은 얼굴이다. 망을 보거나 무언가를 추격하는 듯한 인상을 결코 주지 않는 침착하고 내향적인 눈길,자잘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었어도 무성으로 느껴지는 그 견고하고 탄탄하고 간소한 실루엣, 미소, 애교, 보석 치장 같은 것은 없다. 이미지의 장 속에서 행해지는 일에 대한 극도의 주목만이 있을 뿐이다.]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살다 간 비비안 마이어

그녀가 남긴 사진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 ,.........


'완전히 나를 벗어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가장 가까이 이르게 되는 순간,

그때가 가장 좋다.

가장 매력적인 순간이다.

나는 카메라다.'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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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21 23: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하는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오랜만에 보게 되네요. 오래전에 다큐 영화도 본 적 있어요. 그리고 사진집을 샀었죠. 가끔 들춰봅니다. 겐스버그 형제들 고맙고요. 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가장 가까이 이르게 되는 순간, 찰칵! 롤라이 플랙스는 철커덩.
늘 소중한 페이퍼 잘 보았어요 ^^

scott 2022-06-22 23:56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님의 픽!
비비안 마이어!ㅎㅎ

제가 벽에 걸어둔 각종 그림 사진액자를 떼어 버려도
비비안 마이어 작품만은 떼어내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기들이 가장 탐나여!
대단한 작품 찍지도 못하면서 ^ㅅ^

mini74 2022-06-22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분 셀피 넘 좋아요. 흑백사진들도. 엄청난 양이라고 하던데요. 이분 사진 보고나면 저도 사진 찍고 싶어져요 ㅎㅎㅎ 전 이 분 보면 헨리 디거도 같이 떠오르더라고요.

scott 2022-06-22 23:58   좋아요 2 | URL
셀피!

미니님 사진첩에
귀염둥이 똘망이 포착한 것들만 가득 차 있을 것 같습니다.!

∩____∩
|ノ    ヽ
|  ●  ●  |
彡 *( _,●_)*ミ
|  |´・ω・ | |
|    ̄ ̄ ̄ _|
| ∪     ∪
\__     _/
  ∪ ̄∪

그레이스 2022-06-22 08: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하면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지구별 여행자처럼 살아간 그녀의 삶이 기이하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네요

scott 2022-06-22 23:59   좋아요 3 | URL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라는 다큐에 여러 인물들이 그녀의 삶을 추적하고 증언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진을 찍을 정도로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득 안고 있었던 비비안 마이어
그 이름만으로 고유 대명사인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6-22 13: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이어의 친구는 카메라가 맞군요. 그녀가 찍은 사진들은 왠지 평범해보이면서도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은 정말 매력적인거 같아요~!!

scott 2022-06-23 00:05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친구는
책!이 있는 광활점 알라딘!

제 친구는 스맛폰!ㅎㅎ

coolcat329 2022-06-22 14: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참 슬프네요. 천재 사진작가가 자기가 찍은 그 많은 사진들도 못 보고 노숙자로 살다 죽었다니...

scott 2022-06-23 00:06   좋아요 2 | URL
슬픕니다
그녀가 남긴 사진 만으로도
비비안 마이어의 생은 찬란한 ^^

바람돌이 2022-06-22 18: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독특하고 위대한 인물이 그래도 사장되지 않고 알려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그의 사진들도요. 어떤 삶을 살것인가는 결국에는 개인의 선택일수 있는데 비비안 마이어의 선택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네요.

scott 2022-06-23 00:08   좋아요 2 | URL
그쵸!
다행이도 이 막대한 사진 더미가 사라져 버리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
비비안 마이어는
카메라에 자신의 영혼을 실었던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2022-06-23 0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나가고 나면, 많이 기억하는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사진 찍은 사람은 자리를 비웠지만, 사진은 많이 남아서, 그 사람이 본 시대를 남긴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scott님, 요즘 날씨가 많이 덥고 습도가 높은 시기예요.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scott 2022-06-27 23:34   좋아요 0 | URL
요즘은 스맛폰으로 찍어두고는 출력을 안하게 되어서
찍고 간직해서 추억을 되새기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이 더 특별 한것!

습도 정말 높습니다
유월의 무더운 습도
다가 올 칠월이 두렵 ^^

희선 2022-06-25 0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잘 알려지고 사진가로 살아도 멋지겠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살다 간 것도 멋집니다 비비안 마이어가 담은 사진으로 옛날 모습이나 평범한 사람 모습을 봐서 좋기도 하겠습니다 사진이 다 좋아 보여요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해도 세상을 좋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희선

scott 2022-06-27 23:35   좋아요 0 | URL
그쵸!
마이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 해버린 대단한 예술가!

다행이도 그녀의 사진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우리 눈 앞에 있어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