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영국에서 태어난 존 버거는 첼시 예술 학교와 중앙 예술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 한 후 1950년대 초 부터 예술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 했다.
<뉴 스테이츠 맨>의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1958년 첫 번째 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를 발표 한다.
존 버거는 1960년대 중반 까지 예술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장르를 종횡 무진 하며 자신 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특권층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를 절대 잊지 않기 때문에 용감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존 버거(1926-2017)]

중년의 나이에 자신이 태어난 영국 땅을 떠나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 시골 농촌 마을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여러 사회 운동에 참여 했다.
근대의 모든 예술가들은 실존하는 모습에 보다 또렷하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통해 자신 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도구의 출현은 예술가들을 이전 시대에 시도 해본 적 없는 방법으로 때로는 혁명적이고 때로는 진취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 할 수 있었다.
[망명자라면 누구나 무인지대에 살아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뒤를 돌아보며 회한에 잠기고 앞을 내다볼 땐 두려움이나 희망이 차오른다.]
수 많은 예술가들은 드러나지 않는 장막 너머 발견 하고 창조 하면서 예술이 품고 있는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 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허구 적 상상력으로 창조한 인물들의 서사가 현실 세계에 투영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읽고 이해 해 나간다.

[인간의 본능 중 가장 빛나는 것들이 건조하고 형식적이고 질서 정연 하게 분해될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 일이 바로 이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곳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강하고 용맹하고 섬세하며 민감한 욕망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한데 모여 있었다. 자본과 재능, 에너지가 떠나 버렸고 지금도 계속 떠나고 있다. 이제 도시는 마치 블랙홀처럼 되었고 주변의 언덕들 마저 모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그는 알프스 산골짜기 평지에 쌓여 있는 건초를 긁어 모으며 글을 썼고 앙상하게 죽은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그림을 그렸다.
남풍이 불어 올 때면 바람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도의 불평등과 차별, 속임수, 회피에 맞서 함께 외쳤다.

[진실과 고통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인다. 왜냐하면 둘 다 소리 없이 애원하며 영원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현존하는 우리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자리에 앉아 우아한 어조로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멋진 말을 던지는 판사 앞에 서서 단 한마디도 못하는 밭에서 당근 하나를 훔쳤다는 이유로 잡혀 온 부랑자 피고인처럼 진실 역시 의견들을 우아하게 제시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지성 앞에 서 있다.]

존 버거의 글은 한 폭의 명화 처럼, 한 장의 드로잉 처럼, 순간을 포착한 사진 처럼 읽혀 진다.
그의 문장 속에는 화가들이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순간,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고 사물을 응시하는 모습이 투영 되어 있다.

[세 그루의 배나무, 그들이 서 있는 언덕, 맞은편 계곡, 수확이 끝난 들녘 그리고 숲... 이 모든 것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며 모든 사물들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랬다.
나는 모든 곳에 있었다. 죽은 배나무에서와 마찬가지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숲 속에, 건초를 모으던 들녘에서와 마찬가지로 저 산속에, 나는 모든 곳에 존재 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서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사회의 불의와 탄압에 맞섰던 것은 아니였다. 단지 세상에서 하찮고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인간적 예의와 존중에 대한 투쟁을 할 뿐 스스로를 거창한 수식어로 포장한 예술가나 소설가 그리고 사진가로 기억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푸르게 빛나는 먼지들이 공기 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나는 숲을 푸른 빛으로 물들이는 그 식물들을 보며 고통은 늘 아름다움과 같이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이 고통들과 함께 오는 것이거나. 이 마을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준 이 식물이 나에게 알려준 진실은 그랬다. 어느 쪽이든, 나는 더 이상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냥 감탄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존 버거의 덧없이 흘러가는 영속의 시간을 포착 하듯 그의 언어 속에는 세상 곳곳을 직접 체험한 땀의 냄새, 흙의 향기가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