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틀로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9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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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을 맞던 그날, 보셰프는 그동안 생계를 의지해왔던 작은 기계 공장에서 해고되었다. 통지서에는 그가 최근 눈에 띄게 무기력해졌으며 전체 작업 속도를 거스르고 자주 사색에 빠지기 때문에 그를 생산 현장에서 축출 한다고 적혀 있었다.]


서른 번째 생일을 맞던 날, 보셰프는 전체 작업 속도를 거스르고 자주 사색에 빠진다는 이유로 자신이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된다.

공장 밖을 나선 보셰프는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도시 경계 지점을 배회하다가 노동에 지친 이들로 가득 찬 맥주집에 들어 간다.

술에 잔뜩 취한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보셰프는 한결 마음이 편해지지만 어두운 밤 음악이 사라진 적막한 공간에서 또다시 갈 곳을 잃어 버린다.

[바람이 잠잠해지자 다시 정적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한층 더 조용한 어둠이 정적 위로 내려앉았다. 보셰프는 창가에 앉았다. 그는 밤의 부드러운 어둠을 지켜보며 온갖 슬픈 소리를 듣고 싶었고 돌처럼 단단한 뼈에 둘러싸인 심장의 고통을 느끼고 싶었다.]


보셰프는 공장 연 국가를 위해 노동 할 여분의 시간 중에 고작 일곱 시간만 일하지 않았다는 말을 내뱉은 공장 연합체 간부의 말을 되새기며 힘이 남아 나지 않을 때까지 길을 걸었다.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던 두 다리를 잃어버린 상이군, 우렁 찬 목소리로 당을 향한 충성심을 외치는 청년 합창 단원들의 행렬을 뒤로 한 채 풀을 벤 들판에서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기사는 작업을 분배하고 코틀로반(건축공사를 할 때 건물의 토대를 내리기 위해 파는 구덩이)에 표시를 해두었다고 치클린에게 말하며 땅에 박은 말뚝을 가리켰다. 드디어 이제 일을 시작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업 소개소에서 보낸 노동자들과 함께 열심히 땅을 파낸 보셰프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지친 모습을 보이는 동료 코즐로프에게 다가 간다.


[녹초가 된 코즐로프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밖으로 튀어나온 석회석을 도끼로 깨고 있었다. 그는 시간도 장소도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남은 따뜻한 힘을 모두 깨는 돌에 쏟아넣으며 일을 계속했다. 돌은 따뜻해졌지만 코즐로프는 점점 식어갔다.]


땅을 파내어 돌을 잘게 부셔 버리는 동안 노동자들의 심장까지 서서히 부서져 버릴 정도로 고된 노동의 강도로 '코틀로반'을 파내는 작업을 하는 공사장의 사람들은 숨이 붙어 있는 것 만에도 행운이였다.

식은 죽과 약간의 버터 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거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셰프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집단 거주지 프롤레타리아의 집인 '조직의 집'을 건설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늦도록 사람들이 잠들지 않은 채 서로 논쟁하고 상점마다 포도주와 과자 냄새로 진동하는 그런 도시, 흙 먼지와 돌 무덤 속에 파묻혀 있는 이들에게 꿈 속에나 나올 법한 도시다.

피로 얼룩 졌던 혁명의 시대를 지나 전 소비에트 연방 체제 아래 모든 이들은 국가를 위한 노동과 봉사에 종사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노동자들은 야간 근무조와 교대 근무를 시작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량을 채워야 했다.

아무리 노동의 강도가 세어져도 노동자들은 매일 매일 정해진 양의 '공동의 죽'을 먹으며 서로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각에 취침하듯 배고픔도 평등해야 했던 시대에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빛내는 별 빛조차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에게 충성하고 당을 위해 헌신하고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노동 하는 삶 속에는 미래를 향한 꿈도 행복도 없었다.

강인하고 우직하며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치클린, 부르주아 출신으로 나약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건축기사 프루솁스키, 글을 읽고 쓸 줄도 모르면서 조합 위원장의 직책을 맡아 부패를 일삼으며 부르주아 생활을 영위하는 파시킨, 제국주의에 의해 두 자리가 잘려나간 자체프 그리고 공장에서 해고 되어 정처 없이 떠돌았던 노동자 보셰프는 각자 꿈꿨던 이상적인 삶의 둥지를 짓기 위해 온 힘을 다 바쳐 공사 일에 매달리다가 점차 집단화 정책에 반기를 들며 부농 계급을 철폐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조직의 집'을 건설 하기 위해 열성 분자들을 모았지만 결국 각자 자신들이 추구한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서 함께 거주 하기로 하고 그토록 열심히 팠던 코틀로반은 마치 거대한 무덤 처럼 커다란 구덩이로 남겨진다.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보잘것없고 버려진 온갖 물건들과 알려지지 않은 것들,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을 주워 모았다. 그것은 사회주의적 보상을 위해서 였다. 닳고 낡았지만 질긴 이 물건들은 예전에 언젠가 피가 도는 고용자의 살에 닿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물건들에는 아무 의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소모되어 대지의 보리 짚단 아래 어디선가 아무 영광도 없이 죽어간 등 굽은 인생의 무게가 영원히 아로 새겨져 있었다.]


결국 보셰프는 자신들의 평온한 하루를 쉬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을 건설 하는데 실패 한다. 그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놓쳐 버렸거나 흘려버린 물건들이 눈에 띄는 데로 하나 둘 씩 부지런히 주워 모으며 자신들이 파낸 거대한 구덩이의 위치를 표시한 코틀로반으로 끌고 가버린다.

짚신과 주석 귀고리만 남기고 간 이름 없는 노동자들, 땅 속 깊은 곳에서 당의 어떤 명령이 떨어져도 영원히 일어 날 수 없도록,,,,


[치클린은 쇠 몽둥이와 새 삽을 들고 천천히 코틀로반의 맞은편 가장자리로 향했다. 그는 거기서 다시 미동도 없는 땅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는 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칠 겨를도 없이 밤이 올 때까지, 그리고 밤이 새도록 파고 또 팠다. 노동을 하는 그의 몸 속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작업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단 농장원들이 그를 뒤따라와서 쉼 없이 땅을 파고 있었다. 모든 빈농과 중농들이 온생의 정성을 바쳐 일하고 있었다. 마치 코틀로반의 심연 속에서 영원의 구원을 얻기라도 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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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5-14 18: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르미날>만큼 암울한 기운이 노동자의 삶에 퍼져 있네요.
생일날 해고되다니...체제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생전에 작품이
출간되지 못했었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scott 2022-05-14 23:23   좋아요 2 | URL
암울함에 대한 묘사는 졸라옹이 사실적으로!
플라토노프는 은유적이면서 사유적으로 서술해서
문장이 건조 한데
사회주의 공산당의 집단정책의 모습이 굉장히 현실적이게 느껴집니다. ^^

새파랑 2022-05-14 1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련식 공산주의의 문제가 잘 드러난 작품인거 같아요~! ‘코틀로반‘이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

scott 2022-05-14 23:25   좋아요 3 | URL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련 스톼일 러쉬아 ㅎㅎㅎ

‘코틀로반‘은(건축공사를 할 때 건물의 토대를 내리기 위해 파는 구덩이의 위치를 표시하는 걸 의미 합니다.
결국 이 표시(코틀로반)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묘비석이기도 ㅜ.ㅜ

coolcat329 2022-05-14 2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사고 싶은 책이었는데 찜해놓고 잊고 있었네요.
행복한 삶을 기대하며 판 구덩이가 결국엔 무덤이 되다니 ㅠㅠ 슬프네요.

scott 2022-05-14 23:26   좋아요 3 | URL
번역이 훌륭합니다. 플라토노프 작품이 번역하기 아주 힘들다고 하네요.

이들이 꿈꿨던 행복한 삶은
그저 세끼 식사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방한칸 ㅠ.ㅠ

페넬로페 2022-05-14 2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노동자를 위해 혁명이 일어났고 성공했지만 결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니 이 세상에 인간 자체를 위한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듯 한 느낌이 들어요 ㅠㅠ

scott 2022-05-15 16:04   좋아요 2 | URL
계급 타파, 노동자를 위한 국가 혁명을 내세웠지만
집단 노동 체제 안에 인간 그리고 최소한의 인권 조차 없었습니다.

페넬로페님 말씀 처럼 인간 자체를 위한 사상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것 같습니다 ㅠ.ㅠ

mini74 2022-05-16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삽화들이 비참한 모습을 더 절절히 나타내는 거 같아요. 조직의 집에 조직의 집을 만든 이들이 들어갈수나 있을까요 ㅠㅠ

scott 2022-05-16 21:38   좋아요 0 | URL
포스팅에 올린 삽화들은 코틀로반 그래픽 노블에 수록된 것들입니다

체제가 만든 집,,,
노동과 착취 굶주림의 커다란 구덩이, 무덤이였다는 것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