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성분의 약 8퍼센트는 수분이다. 때문에 습도나 온도에 따라 미세하게 신축하고 변질된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습도가 높아서 종이와 종이가 들러붙기 쉽다. 공기를 충분히 넣어 주지 않은 채 급지부에 세팅하면 종이가 막히거나 여러 장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겹침이 발생하기 쉽다.]
-안도 유스케 <엔딩 크레딧>중에서
차곡 차곡 쟁여 두어 묵은 책들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 가득한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은 알 것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활자, 종이의 따스한 감촉을...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
'꿈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꿈은,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인쇄입니다. 주문 받은 사양을 충실히 실현하는 거죠. 꿈이 뭐냐고 묻는 다면, 굳이 말하자면 방금 대답한 대로 하루하루 맡은 일을 실수 없이 마치는 겁니다.'
인쇄 회사 영업부의 문예서 담당 우라모토 마나부는 인쇄가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의 결과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지로 씨는 그야말로 기술자라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종이 재질, 온도, 습도에 따라 잉크 성분이나 점착성을 판단하고 별색을 조합해 낸다. 인쇄기를 다루는 책임자인 노즈에도 잉크나 종이의 기본에 대해서는 거의 다 지로 씨에게 배웠다.]
손 글씨나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원고는 편집자를 거쳐 인쇄 회사로 넘어가고 인쇄 회사에서 책의 레이아웃에 맞춰 내용을 인쇄하는데 인쇄 회사가 교정쇄라 불리는 교정지를 출력하면 출판사 교열부나 저자의 교정을 거쳐 교료한 데이터를 인쇄 공장에 보내 알루미늄 쇄판을 만들어 인쇄기에 건다.

수십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 안도 유스케는 어느 날 원고를 보내고 나면 정작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3년 동안 인쇄 업계 현장을 취재 하기 시작한다.
작가 안도 유스케가 목격한 인쇄 현장에는 종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잉크를 배합 하고 그날 그날 기계의 컨디션을 파악하여 설정을 결정하는 인쇄 기술자, 온도와 습도에 따라 잉크의 점착성을 판단하고 마른 뒤의 색까지 예측해 별색을 조합해 내는 제조 담당자, 뜻대로 되지 않는 종이 수급과 갑작스런 제작 변경에 따라 스케줄을 조율하는 인쇄 영업맨들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책 한 권을 완성한다.
'인쇄 회사는 책의 탄생을 돕는 산파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책이라는 몸을 얻으며 세상에 태어나니까 태어날 때 거드는 우리야말로 책의 산파가 아닐까 하는 거죠.'
책은 사양 산업으로 출판 인쇄 업계에서는 앞으로 책이 이전 보다 더 안 팔릴 것임을 알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다양하게 즐길 콘텐츠가 넘쳐 나는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수백 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고 정보를 습득하지 않는다.
언젠가 인쇄 매체, 즉 종이가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될까?
책을 읽는다고 오늘의 삶이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책은 2022년 인류의 삶을 붕괴 시키고 있는 바이러스 변이를 없애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책은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게 만들고 무언가를 학습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는 시간 동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며 가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가게 만든다.
'독서는 저에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 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수전 손택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