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잡지 출판 대국으로  온갖 종류에 관한 실용, 전문 잡지가 넘치게 출판 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판매 부수가 높은 잡지마다 이름이 있는 유명인사들의 에세이 글이 연재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오가와 요코, 가쿠다 미츠오,가와카미 히로미 등 베스트 셀러 작가들도 잡지에 에세이를 기고 해서 판매 부수가 높은 잡지마다 이름이 있는 유명 인사들의 에세이 글이 꾸준하게 연재되고있다.


베스트 셀러 작가들과 함께 사카이 마사토, 고바야시 사토미,다케우치 유코, 기무라 타쿠야,카라사와 토시아키 같은 배우들도 잡지에 에세이를 기고 했다.


하루키는 소설보다 그의 에세이,여행기를 더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에세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작가다. 잡지 '앙앙'에 기고한 에세이들은  문고본 기준으로 1-2페이지 분량에 일상 언어로 평이하게 구사하면서 곳곳에 시니컬한 유머로 지루하지 않게 완독할수 있다.

얇디 얇은 분량에 한손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라서 들고 다니며 펼쳐보기 좋다.












'선생님의 가방'으로 문학상을 수상했던 가와카미 히로미의 에세이 그녀의 소설은 기이한 성격의 주인공들 때문에 몰입하기 힘든데 에세이는 평이한 단어,담백한 문체로 부담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특히 의성어, 의태어를 문장 곳곳에 심어 놓아서 그녀가 묘사하는 상황이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단어로 이런 문장을 쓸 수 있구나 라며 학습자 입장에서 응용해보고 싶은 문장들이 많다.

이에세이에 실렸던  체홉의 '갈매기'는 어떠했는지 옮겨본다.

 

촛불의 빛

오랜 만에 연극을 보러 갔다. 2백명 정도면 가득 차는 극장이다. 상연중인 작품은 체홉의 '갈매기'

제2막 무대 설정은 저택의 방 한가운데,폭풍우의 밤이다. 등장인물중 어떤 인물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빠져 있거나 어떤 인물은 카드게임에 빠져 흥분하고 어떤 인물은 이야기를 하면서 방안을 배회 한다.

그 등장인물들을 비추는 조명은  촛불의 불빛 뿐이다.

폭풍우가 부는 사이 하인들이 탁상의 촛대의 초들에 천천히 불을 붙여간다.

이야기의 미래를 가로막는 불길함에  촛불의 불빛뿐인 조명빛이 더욱더 느껴졌다.

실은,제2막이 시작되는 맨처음 가벼운 위화감이 느껴졌다.

몹시 어두워져서 일지 몰라도 아무튼 그런 기분이 들었다.

촛불을 세어보니 수십개, 전기가 없었던 시절이라면 사치스러웠을것이다.

무대는 무척 어두워서 인물들의 움직임이 윤곽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표정도 불확실해서 가령 '오오'라는 감탄사가 기쁜얼굴로 말하고 있는지 슬픈표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판단을 내릴수 없다.

답답해서 마치 꿈에서 빨리 달리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발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그런던 중 10분 정도 지나는 사이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지금껏 밝았던 1막과 연결 시키는 느낌으로 보고 있었다. 눈을 통해 인물들의 세세한 움직임과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자세하게 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귀를 사용하게 되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있는 한숨 섞인 짜증이 들리자 조바심이 생겼다.

그러자 불연듯 귀로 듣고 있는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들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엷은 빛속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인물들의 애매한 움직임들이 뚜렷해져서 확실히 보이지 않아도 불안에 가득차 있다는게 느껴졌다.

제 2막이 끝나고 이야기는  암시한데로 불길한 결말을 맞이한다. 만약 밝은 빛 속에서  결말을 맞았다면 당혹스러웠을지 모른다.

'거절'이 어느새 '허락'으로 이어져 '정당함'이 어느새  '패배'속에 뒤섞여서 옅은 어둠의 세계가 된다는건 뭐라 한들 당혹스러운 결말이 아닐수 없다. 어쨌든 이런 결말이 있을법한 세상이지만.

그야말로 현대는 사물의 구분을 확실히 하는 시대라고 할수 있어서 어쩌면 모든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과잉된 빛의 탓이 그런 세상을 보여주게 된것일지 모른다.

극장을 나와 느티나무에 돋아난 새잎을 비추는 환한 빛을 응시하며 멍하니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일본 최고의 에세이스트 '수필문학'의 최고봉은 헤이안 시대의 고위궁녀 '세이 쇼나곤'이 지은 '마쿠라노소시'

사계절의 멋

봄은 동틀 무렵. 산 능선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그 위로 보랏빛 구름이 가늘게 떠 있는 풍경이 멋있다.
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은 보기 좋다. 반딧불이가 달랑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밤도 좋다.
가을은 해질녘. 석양이 비추고 산봉우리가 가깝게 보일 때 까마귀가 둥지를 향해 세 마리나 네 마리, 아니면 두 마리씩 떼 지어 날아가는 광경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러기가 줄지어 저 멀리로 날아가는 광경은 한층 더 정취 있다. 해가 진 후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기분 좋다.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 재로 변해버려 좋지 않다.

천황비인 중궁을 보필하면서 체험한 일과 개인적인 감상을 써내려간 글로, 일본 헤이안 시대의 풍습, 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이야기,무엇보다도 날카로운 관찰과 허를 찌르는 시선으로 글쓴이의 지적 수준이 놀라울 정도다. 특히 당시 생활 모습과 풍습을 보여주는데 몸이 아프면 귀신 때문이라고 믿고 스님을 불러 기도하게 한다든지, 결혼해도 함께 살지 않고 남자가 여자 집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는 등의 모습까지 천년 전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사소한 일상을  깔끔한 언어로 서술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그늘에 대하여'

1930년대 일본에 서구의 문물을 도입되면서 근대의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기로 , 한지를 바른 장지문에 유리창이 끼워지고 전통 의상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었고 서양식 건물이 속속 들어서던 시대에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당시 일본의 풍토와  전통문화를 외면한 채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구의 외래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전통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사물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견해 속에 작가 자신의 미학을 감성과 이론을 담았다.

이책은 미국 출판계에서 번역되자마자  대학 건축학과에  교양 참고 도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생활의 실제로부터 발달하는 것으로, 어두운 방에 사는 것을 부득이하게 여긴 우리 선조는, 어느덧 그늘 속에서 미를 발견하고, 마침내 미의 목적에 맞도록 그늘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다다미방의 미는 전적으로 그늘의 농담에 따라 생겨난 것이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서양인이 다다미방을 보고 그 간소함에 놀라고, 다만 회색의 벽이 있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로서는 아무래도 당연하지만, 그것은 그늘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도, 태양 광선이 들어오기 어려운 다다미방의 바깥쪽으로 차양을 낸다든지 툇마루를 붙인다든지 하여 한층 햇빛을 멀리한다. 그리고 실내는 정원으로부터 반사된 빛이 장지를 통해 약간 밝게 들어오도록 한다. 우리 다다미방의 미적 요소는 이 간접적인 둔한 광선밖에 없다. 우리들은 이 힘없고 초라하고 무상한 광선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다다미방의 벽으로 스며들도록, 일부러 정도가 약한 색의 모래벽을 바른다. 흙벽으로 만든 광이나 부엌이나 복도와 같은 곳을 바를 경우에는 광택을 넣지만, 다다미방의 벽은 대부분 모래벽으로, 절대로 반짝이게 하지 않는다. 만약 반짝이게 한다면 그 부족한 광선의 부드럽고 약한 맛이 없어진다.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빈약한 외광이, 황혼색의 벽면에 매달려서 겨우 여생을 지키고 있는, 저 섬세한 밝음을 즐긴다. 우리들로서는 이 벽 위의 밝음 혹은 옅은 어두움이 어떤 장식보다 나은 것이고, 정말로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다

1959년부터 1만여 편이 넘는 라디오 드라마와 100여 편 이상의 TV 드라마를 쓴 괴물 같은 작가 '무코다 구니코' 1980년단편소설 ‘수달’, ‘꽃이름’, ‘개집’은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 작품성 문학성을 두루 갖춘 작가로 평가받는다.

 



드라마에서는 정교한 구성과 맞물리는 절묘한 대사를 구사하는데  무코다 구니코의 글중 에세이들은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정도로 명에세이로 평가 받고 있다.

과거의 추억들을 겹겹이 겹쳐서 '추억의 장인' , 쇼와 시대의 모습을 감동적이게 빚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린다. 그녀가 쓴 드라마 각본으로 라디오는 1만편 방송드라마는 천편을 썼을정도로 열정적인 작가 였다. '추억의 트럼프','꽃이름', '남자 눈썹'라는 단편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많은 일본인들은 그녀가 들려주는 가족과 사람들 이야기에 눈물과 웃음을 지으며 최고의 방송작가, 에세이스트로 기억하고 있다.
무코다는 1929년에 보험회사 직원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후에 무학력자로 지점장까지 오를정도로 입지적인 인물이였지만 가족들에게는 폭군이자 기분파로 단 한번도 살갑게 대했던 적이 없으셨던 분이였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들에 얽힌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연결시켜서 여러편의 추억을 한꺼번에 축보처럼 터트리는 재주를 갖고 있다.
추억이란 네즈미하나비(불꽃)와 같아서, 일단 붙이면 순식간에 발밑으로 작은 불꽃을 쏘아올려,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날아가 터지면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쇼와 시대(1926~89)를 관통했던 이들에게 그녀의 글은 추억 그이상의 아련함과 애뜻함을 불러 일으킨다고 한다.
1981년 대만상공에서 비행사고로 생을 마감한 무코다 구니코
그녀의 드라마는 제대로 본 적 없지만 몇편의 에세이를 읽고 금새 책장을 덮지 못할정도로 가슴이 져려왔다.
간혹 일본 공습, 피난 행렬, 폭격으로 죽은이들의 이야기를 등장시키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은연중에 말해서 마음이 불편해지곤 하지만 읽다보면 우리들 부모님들의 이야기와 우리의 기억들이 섞여 있다.
그녀의 감동적인 에세이 한편을 여기에 올려본다.

글자가 없는 엽서
돌아가신 아버지는 부지런히 편지를 쓰셨던 분은 아니셨지만 내가 처음으로 여학교 1학년에 부모님 곁을 떠났을때는, 사흘이 멀게 편지를 보내셨다.
당시 보험 회사 지점장으로 계시면서도 한자 한자 소홀하게 휘갈기시지 않고 적당하게 휘갈긴 글씨로 [무코다 쿠니코 귀하] 라고 쓰인 겉봉투를 처음 봤을때 몹시 놀랐다.
아버지는 딸앞으로 보낸 편지에 [귀하]를 사용한것은 당치도 않았을 뿐더러, 바로 4,5일전에 [야! 쿠니코!] 라고 이름만 부르셨거나,[멍청아!]라고 큰소리로 욕하며 주먹을 올리시는게 일상 이셨다.
갑자기 변하셨다는게 쑥스러우셨는지 너무 드러내놓고 겉봉투에 '귀하'라고 버젓이 적고 속이 후련 하셨을까.

편지 내용도 예의를 갖추고 깍듯하게 계절 인사로 시작해서 새로 이사온 도쿄 사택의 방배치 부터 정원 에 있는 분재 종류들까지 쓰셨다. 문장 중간마다 나를 '귀부인'라고 부르며 ,[귀부인의 학력에 어려운 한자도 있으니 공부를 위해서 부지런히 옥편을 찾도록.] 이라고 훈계도 덧붙이셨다.
무명천으로 만든 팬티만 달랑 입으신채로 집안을 어슬렁거리시거나,술을 왕창 마셔놓고 짜증을 부리시며 일어나셔서 어머니나 아이들에게 손지검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엄격하면서 애정이 넘쳐 흐르는 어조를 강조 하시기는 커녕 아버지는 늘 그런 모습 이셨다.
폭군이시긴 하셨지만 반면에 수줍음을 잘타는 성격이 셨던 아버지는 남을 대하시듯 데면 데면한 모습 으로13살짜리 딸에게 편지를 쓸수밖에 없으셨을까..
어쩌면 평소 쑥스러우셔서 아버지로써 해보지 못했던것을 편지 속에서 나마 연기 하셨을지도 모른다.
편지는 하루에 두통 올때도 있어서 한학기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어지간한 양의 편지가 쌓였다. 나는 그편지들을 고무밴드로 묶어두고 얼마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어느새 어디에 놔뒀는지 없어져 버렸다.
아버지는 64세때 돌아가셨으니 이편지들을 주고받은후에도 그럭저럭 30년 함께 살면서도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것은 이편지 속에서만이였다.

이편지도 그립다. 가슴속에 가장 남이있는 편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아버지 앞'이라고 적힌 엽서로 여동생이 보낸 편지라고 대답할것이다.
종전했던 해 4월, 소학교1학년생인 막내 여동생은 코우후
(도교인근)의 아동보호소(일명 '소개소'라고 불림,소학교로2차세계대전당시 폭격을피해 어린학생들을 강제로 이주시킴,공습으로 전가족이 죽는것을 막기위해 내린 조치)
로 보내졌다. 이미 한해전 가을에 한살위에 여동생이 같은 보호소에 들어갔지만 막내는 아직어리고 가여워서 부모님이 보내시지 못하셨다. 그러나 3월10일 도쿄 대공습으로 집은 화재를 면했지만 간신히 목숨만 건진 꼴이 됐으니 이대로 함께 살다가 가족이 전멸하느니 막내는 보호소로 보내야겠다고 결심하신것 같았다.
막내의 출발날짜가 정해지자 검은 천을 늘어뜨려서 컴컴해진 등불 아래서 엄마는 당시 귀중품이였던 옥양목으로 내복을 만들어서 거기에 이름표를 붙여서 꿰매셨고 아버지는 엄청난양의 엽서 귀퉁이에 받는사람 주소 옆에 자신의 이름을 꼼꼼하게 쓰셨다.
[건강한 날에 동그라미를 그리고,매일 한장씩 우체통에 넣어라.] 라고 막내에게 설명하셨다. 막내는 아직 글자를 쓰지 못했다.
막내는 받는 사람주소만 쓰여진 엄청난 양의 엽서묶음을 배낭에 넣고 죽이 덮힌 덥밥
(雑炊用のどんぶり:채소,어패류를 잘게 다져서 끓인 죽을 덥밥과 섞은 일종의 꿀꿀이죽)을 끌어안고 소풍이라도 가는것처럼 들떠서 집을 나섰다. 일주일이지나고 처음으로 엽서 한장이 도착했다. 종이 한가득 삐져 나올정도로 기세 등등하게 빨간색 연필로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져있었다.
막내를 바라다 주었던 분이 말하기를, 지역 부인회에서 팥찰밥과 떡(ぼた餅 대충 빚은 떡으로 모생긴 여자를 칭할때 쓰임) 갖고 아이들을 환영해주었다며 큰동그라미를 그린건 호박줄기까지 먹는 도쿄에 비해 잘먹고 있는거라 하셨다.
그러나 다음날 부터 동그라미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들더니 비참할정도로 짙은색 연필의 가위표로 변했다. 그즘, 막내가 있는 보호소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있었던 바로 위 여동생이 동생을 만나러 그곳을 찾아갔다. 막내는 학교건물 벽에 기댄채 매실 씨를 빨고 있다가 언니를 보자마자 씨를 뱉어버리고 울음을 터뜨렸다고한다.
그리고 얼마후 가위표가 그려진 엽서마저 오지 았았다.
3개월째가 되던날 엄마는 막내를 데릴러 가셨고 백일해를 앓고 있던 막내는 이투성이 머리를 한채 석장짜리 다다미 방에 누워있었다고한다.
막내가 돌아온다고 한날, 나와 남동생은 채소밭에 나가서 호박
(당시 도쿄에서 재배할수 있는 유일한 채소였다고함)
이나 따고 있었다.
작은것까지 꼭지를 땄냐고 야단치셨던 아버지는 이날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나는 동생과 함께 큰것부터 손바닥 만한것 쭉쟁이 호박까지 한아름 안아서 거실에 쫙펼쳐서보니 스무개 정도 였다.
이것밖에 막내를 기쁘게 해줄 방법이 없었다.
늦은밤 밖으로 난 창문에서 망을 보고 있던 남동생이 '돌아왔다'라고 소리쳤다.
주방( 茶の間 주방옆에 붙은 작은공간으로 주로 차를 마신곳)에 앉아계셨던 아버지는 맨발로 뛰쳐나가셔서 방화용수 앞에서 바짝 여윈 막내의 어깨를 감싸안고 소리 높여 우셨다.
나는 아버지가, 다 큰 어른이 소리내서 우는것을 그때 처음 봤다.
그로부터 31년,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막내도 그때 우셨던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졌지만 그 글자 없는 엽서는 어디에 두었는지 아니면 없어져 버린건지 ...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들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언어 감각을 배울수 있다.

독특한 신조어를 배울수 있고 평이한 문장속에 지성과 유머가 넘치는 감각적인 사고도 엿볼수 있다.

교과서적인 언어가 아닌 이런 단어를 이렇게 표현 할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 문장력을 에세이 글을 읽으면서 느낄수 있다.

한편의 에세이를 읽는다고 일본어 실력이 확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 한편씩 꾸준히 읽어나가는 에세이, 일상의 언어를 읽다 보면 사전식 해설이나 묘사가  아닌 살아있는 사물, 인간의 모습을 엿볼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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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ribaba 2019-10-10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정말 해박하십니다. 짝짝짝짝!!!!!!! 뤼스펙트👍

scott 2019-10-10 23:31   좋아요 1 | URL
발번역 ^^::

yaribaba 2019-10-10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오늘 죽어도 이 세상은 오늘도, 내일도 아무일없이 흘러가는 무의미한 세상살이.
이왕 살아가는거 나를 아끼지말고 사용하다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스콭님을 뵈면서 많이 배웁니다. 사람을 다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제게 보이는 스콭님은 제게 뭔가를 열심히 하게 하는 마음 들게 하는 분입니다.
덕분에 무얼하든 열심히할 마음이 생겨납니다.
스콭님. 이 세상 소풍 끝날때 후회가 많지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수있는 삶을 살기를.

scott 2019-10-11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e too! yaribaba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