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난 시기는 아직 월드컵 전이라 터키 붐이 일기 전이었다. 게다가 여행시즌도 아닌, 4월말~5월초였으니 터키로 가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터키 항공이 좌석 없다고 해서, 에어 프랑스를 예약했다가 막판에 좌석을 내주는 바람에 국내선 연결 할인도 받지 못하는 등 트러블이 많았다. 하여간, 토요일 아침,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터키 항공의 탑승수속은 아시아나 항공에서 대행해주고 있었다. 근데 이거 정말 이스탄불 가는 거 맞나요. 수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우선 일본 칸사이국제공항까지의 탑승권만 받았다.
알고보니 이 비행기는 일본JAL항공과의 코드 쉐어 편으로,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잠시 인천에 들른 것이었다. 비행기안은 인천공항 면세점 쇼핑백을 잔뜩 든 일본 단체 여행객들로 가득. 창가에 자리잡고 앉아보니 내 옆에 배낭을 맨 여자가 터키여행가이드북을 들고 와서 앉는다. 이스탄불 가시나요? 지금은 그 언니의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그 언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1달간 터키일주를 하러 떠나는 언니였다. 하여간 그렇게 비행기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나중에 이스탄불 시내 관광도 같이 하게 되는데, 순식간에 칸사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서투른 한국어로 나와 그 언니, 그리고 또 다른 한국남자 이름이 방송되지 않는가. 알고보니 그 비행기로 이스탄불에 가는 한국인은 딱 3명뿐이었던 것이었다. 나와 언니, 그리고 우리 뒷 좌석의 사업가 아저씨. 게다가 그 아저씨의 최종 목적지는 이란으로 이스탄불 공항에서 또 갈아타신단다. 이란으로 대리석 사러 가신다는데, 이미 수차례 이 코스로 다니셨다고. 이스탄불 초행인 나와 언니는 그 아저씨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 칸사이 공항에서 엄마 줄 시세이도 화운데이션까지 사고, 국수와 삼각김밥으로 배를 채우니 다시 비행기를 탈 차례. 승무원도 교대하고 비행기 청소도 끝내고, 황금연휴를 맞이한 일본 단체 관광객과 귀향길에 오르는 터키인들이 줄줄이 탑승. 이러니 비행기 좌석이 없다고 하지.
이스탄불근접
승객으로 가득찬 비행기는 다시 기수를 서쪽으로. 우리나라와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만원 비행기를 타면 늘 답답함을 느끼는 나. 좌석마다 개인 오락시설이 딸린 것도 아니지. 비행기 창문은 내려놓고 있으라하자...지루하면서도 얼떨떨한 긴장에 싸이면서도, 움직임이 없어 소화도 안되면서도 주는 기내식 다 받아 먹고 하는 동안 어째저째 비행기는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자리한 도시. 도착 시간은 이미 밤이어서 불빛 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드디어 착륙.
비행기를 내려 입국심사대로. 대리석 수입하시는 아저씨는 여기서 다시 이란가는 비행기로 트랜짓하시러 가시고, 언니와 둘이 입국심사대로 이동. 보아하니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많은가본데, 그 사람들은 뭔가 돈을 내고 즉석비자를 발급받는 모양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무사 통과~
근데 밖으로 나와보니 대부분이 단체여행객들이라 마중나온 가이드 쫓아 움직이는데, 언니와 나를 마중나오기로 한 분들이 안 보이는 거다. 둘이 벤치에 멍하니 앉아 기다리는데, 먼저 나를 마중나온 분이 오셨고, 그 분이 언니와 약속한 민박집에 연락해줘서, 언니와 나는 다음날 토카프 궁전에서 만나기로 하고 작별.
이번에 이스탄불에서 신세지기로 된 집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중간 쯤에 위치한 주택가에 있었다. 현지에서 한식당과 여행사를 경영하시는 가족. 전문 민박집이 아니지만, 복층식 빌라의 남는 방을 자유여행객들에게 내주시고 계셨다. 낯가림이 심한 나도 친척집에 다니러 온 거 같은 분위기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여행계획을 상담하고, 사프란볼루로 가는 버스 예약과 가파도키아 갔다가 카이세리 공항에서 다시 이스탄불로 오는 비행기표 예매를 부탁하고 여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