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은 선현씨가 학교에 가므로, 저녁때까지 나 혼자서 돌아다니는 날. 느긋이 일어나 호텔 부페에서 맛난 아침식사를 먹고. 난 호텔부페에서 아침식사 먹는 거 무지 좋아한다~ 종류별로 이것저것 다 먹어본다~ 양식과 타이페이식이 어우러진 아침부페 메뉴. 전세계 어느 호텔에나 있는 조식부페메뉴(소시지, 달걀, 베이컨,햄, 빵, 샐러드, 과일, 우유, 주스, 시리얼..)도 맛났지만, 타이페이식 볶음 우동, 하얀 쌀죽도 맛있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아침식사로 즐겨먹는 다는 튀긴 빵에 두유 적신 거는 별로... 과일은 과연 열대 타이페이다운 색다른 과일이 나와서 즐거웠다. 과일에 플레인 요구르트 타서 한 접시 비우고~~
도시지역을 가볍게 여행할 때는 가능한 여행자스러운 차림(청바지에 티셔츠에 배낭)을 하지 않는게 나의 여행관이라면 여행관. 이번 여행에서도 써스데이 아일랜드 할인할 때 산 봄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충분했다. 가방도 천으로 된 A4크기 숄더백. 단, 해가 지면 바람이 차가와지므로 검정 카디건을 걸치고. 우선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민취안시루역(대학교때 그렇게 내 땀을 뺐던 중국어가 한자를 중국식으로 읽을 때 그래도 도움이 된다)에 가서 MRT 1일승차권을 구입했다. 타이페이의 MRT역은 개찰구가 아주 넓고 개찰구 가운데 유리로 된 역원들의 근무부스가 있어서 편리했다. 이용객들이 역원에게 문의하기 쉽고, 또 역원들도 이용객들을 통제하기 쉽다. 참 좋은 아이디어다. 우리나라도 적어도 새로 짓는 지하철 역사라도 이렇게 지으면 안될까.
베이퉁 온천지구에 갔다. 역을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온천 호텔가. 언덕을 따라 쭉 호텔가가 형성되어 있고, 그 한 가운데 공원이 있다. 분수가 있고, 물이 흐르고, 노천 온탕도 있기는 있는데 어느 용감한 사람이 거길 들어갈까. 어중간한 오전 시간인지라, 산책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온천을 해보고는 싶지만, 내가 찍어 놓은 개인실 빌려주는 공중온천탕은 월요일이라 휴관. 온천가를 벗어나면 그냥 평범한 변두리 모습이다. 주택있고, 상점가 있고, 학교 있고...그 길을 쭈욱 걸었다. 날씨는 제법 뜨거워져서 스웨터를 들고 다니기가 무더울 정도가 되었다.
다시 MRT-버스를 갈아타고 고궁박물관에 도착. 박물관은 산의 경사를 이용해 지어졌기 때문에,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저 산을 파고 창고를 지어, 그 안에 보물을 보관한 것이겠지. 장개석공항에서 미리 받아둔 할인권을 내고 할인가격으로 입장. 그런데,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한 것일까.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정도의 느낌. 그 유명한, 벌레 붙은 배추잎 옥조각은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갑골문자에 대한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 갑골문자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어떻게 연구되어 왔는지, 갑골문자와 한자와의 관계는 어떤지, 갑골문자 해독은 어떻게 하는지. 관람객 대부분은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기념품 상점에서 기념품을 고르고 퇴장. 박물관 입구의 중국식 정원은 아쉽게도 휴관이었다. 정원 대문 앞에서 지나가던 아기 엄마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한컷 찰칵.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MRT역 앞에서 내렸다. 거기서 늦은 점심으로 물만두를 먹었다. 야채가 듬뿍 든 담백한 물만두였다. 그리고 상점가를 구경하니, 편안해 보이는 신발이 대할인중이었다. 학교에서 실내화 대용으로 신으면 좋을 거 같아서, 검정색과 갈색으로 한켤레씩 구입.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그리고, 시내 번화가를 거쳐 장개석기념관으로 이동.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장엄한 건물 안에 장개석의 동상이 위치. 여기도 SARS예방을 위한 체온감지기 설치. 지하에 있는 전시실 가보니, 장개석에 관한 사진, 유물 등이 전시. 대부분의 사진이 마담 장, 즉 송미령 여사와 함께 한 사진이었고, 사진 설명에 꼭 장 총통&마담 장이라고 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장만옥이 송미령의 언니인 송경령(손문과 결혼)을 연기했던 [송가왕조]라는 영화의 한장면이 기억난다. 동생이 장개석과 결혼하려 하자 반대하는 송경령. 그 언니에 반발하는 송미령. 설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어색한 분위기인 송미령 부부와 언니 경령. 결국 송경령은 어느 비오는 날 늙은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러시아로 떠나고...일찍이 서양문물과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당대 중국을 이끌던 남자들을 사위로 얻은 송씨 집안으로 잠시 생각이 미쳤다. 기념관 자체보다는, 국부 기념관 주위의 풍경이 더 멋졌다. 음악당을 비롯한 공연장, 주위의 정원, 관청가로 보이는 시내의 풍경. 주위를 둘러보자, 운좋게도 폐관시간이 되었다. 폐관시간! 그렇다. 말로만 듣던, 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는 거다. 장개석 동상 주위를 지키는 위병들이 1시간에 한번씩 교대를 한다는데, 저녁 6시에는 기념관 문이 닫히고, 국기하강식을 한다. 이스탄불 돌바마흐체 궁전 앞에서도 인형처럼 꼼짝않는 위병을 본 적이 있지만, '살아 움직이는 위병'을 보는 건 처음이다. 박차 소리를 내며, 슬로모션으로 절도있게 움직이는 위병의 행진은 정말 볼만했다. 주위 사람들이 다 위병을 쫓아가며 기념촬영을 한다. 타이완 군대 최고의 엘리트들만 가능한 역할이라더니,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보고 오랫만에 엄숙한 국기하강식까지 참가.
그리고, 선현씨와의 약속장소인 사범대학으로 이동. 학생가인 사범대학 앞에 있는 [물고기좌]라는 예쁜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세트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큰 길 건너편에 있는 유명한 다관에 갔는데, 우갸...무슨 차 한주전자 마시는데 이렇게 비싼것이냐...구경만 하다가 결국 감색으로 날염한 천으로 만든 찻잔받침만 몇개 골라가지고 나왔다. 그대신, 학생들이 많이가는 잡화점에 가서 싸구려(그치만 예쁘고 쓸만한 물건) 찻잔/찻주전자 세트를 3개나 골라가지고 나왔다.
선현씨와 이별을 하고...호텔로. 일단 호텔에 짐을 두고, 다시 길가로 나왔다. 그리고 WATSON에 돌진하여 내가 쓸 것과 선물로 돌릴 잡화를 골랐는데, 도대체 Made in Taiwan이 없네. 결국 Made in Taiwan으로는 파스를 샀다.
호텔에 돌아와 TV를 보니, 놀라울 정도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방송하고 있었다. [노란 손수건[[논스톱]...중국 본토보다 더 많은 한국드라마 천지였다. 영화 [스캔들]선전도 그대로 한국어로 나오고, 김희선은 DHC선전 한국말로 하고. 중국 드라마는 [대한천자]밖에 못 알아보겠구. 정말로 많은 걸 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