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교육대학원 교직과목으로 [대안교육론]을 선택했다. 인문계 고교로 옮긴 후 첫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하면서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던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게 대안교육이다. 강사는 이 분야에서 꽤나 유명인. 수강생은 인기 과목의 1/3? 우리 과에서 이 과목을 선택한 사람은 나뿐이다. 아직 몇시간 안 들었지만, 이 과목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요즘 틈만나면 참고도서를 읽고, 이것저것 끄적인다. 알라딘 보관함에는 관련 도서가 하나둘 늘어간다. 어제부터는 [간디학교의 행복찾기]라고, 간디학교를 테마로 쓴 현직 교사의 박사 논문을 재구성한 책을 읽고 있는데, 오늘 3학년 수업을 하면서 그 책의 일부 구절이 떠올랐다.
예상대로 중2수업은 산만했다. 교사가 들어와도 좀처럼 조용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아이들 열두 명이 둘레둘레 앉아서 대형 텔레비전 모니터를 보고 있다. 서너 명은 아예 컴퓨터 책상 위에 걸터 앉아 두 발을 개고 앉았다....
수업이 시작된 지 10분쯤 지나서 남학생 한 명이 머리에 물을 흠뻑 전신 채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언젠가 점심시간에 한 교실에서 (내장형 컴퓨터) 책상 위에 반듯이 누워 낮잠을 자는 학생을 본 적도 있다. 간디학교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연스럽다.
이런 장면이 간디학교에서는 자연스럽다고? 책을 쓴 인문계 고교에 계신 선생님께는 이런 장면이 어떻게 비추어진 것일까? 어이없어하는걸까? 대안학교다운 자유로운 분위기로 파악하는걸까?
그런데, 대안학교와 거리가 먼 우리 학교에서도 나는 이런 장면에 익숙하다. 오늘 3학년 3교시 수업풍경을 위와 비슷한 형식으로 옮겨보자면.
시작종이 치고 교사가 교실로 들어가도 20여명의 고3 아이들은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는다. 이미 1차 수시 합격을 한 십여명의 자리는 아예 빈 자리다. 뒷문으로 들어가 앞쪽으로 가면서 [자리에 앉자. 교과서 꺼내자]하고 말하며 수업준비를 시킨다. [어떻게 종 치자마자 들어오세요?]하고 투덜거리며 사물함으로 가서 교과서를 찾는 아이들. 앞으로 가니, 한 녀석이 배까지 내놓고 내장형 컴퓨터 책상 위에 누워 자고 있다. [*욱야, 수업시간이다. 일어나라]하고 깨워서 자리로 보낸다. [#수야, 네 짝은 어디 갔니?][화장실 갔어요.][걔는 매점 다녀오면 바로 화장실 가야해요.][우하하~~.] 일단 판서를 하며 지난 시간 학습 내용을 복습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교실을 돈다. 여전히 책을 펴지 않고 있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기야, 네 책은?][옆반애가 빌려갔는데 안 가져왔어요][그래? 그러면 감점이네?][야! 대학생 애들(수시합격자) 자리 봐봐. 책 많아]하고 뒤에서 부반장이 끼어든다. 교과서 안 가져오면 수행평가 점수 감점이다. 재빨리 책을 찾아오는 *기. 그리고 오늘 진도나갈 곳을 찾아 교과서를 펴게 한다. [몇쪽이여요?]하는 질문이 서너번 나온다. 아예 페이지수를 단원명 옆에 판서해둔다. 그러다보니, 화장실 갔던 *현이가 두루마리 휴지를 한 손에 들고 뛰어들어온다.....미대 지망인 *수는 어제도 미술학원에서 늦게 끝났나. 하품하고 눈 비비는 모습이 무척이나 졸린 모습이다. 저러다 책상에 엎드려 버리겠지. 처음에는 교과서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희들이 아는 사회보장제도는 어떤 게 있니?] [의료보험, 고용보험...] 맨 앞 자리에 앉은 라이트노블 매니아 석#가 겨우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책상 다리를 하고 앉은 *찬이는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늘 텁수룩한 모습의 진*는 고개를 떨군 채로 대답을 한다.[국민보험도 있어요]하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큰 소리로 말하는 건 상*이다. [국민보험이냐? 국민연금이지]하고 *찬이가 핀잔을 준다. [ 아, 그럴 수도 있지~] [뭐가 그럴 수도 있어~] 앞 뒤로 앉은 두 녀석이 툭탁거린다...
[얘들아, 너희들 모습을 보니 어제 읽은 책이 생각나네. 대안학교를 연구한 선생님이 쓴 책인데, 대안학교를 방문해보고는 컴퓨터 책상에 누워 자는 학생,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 그 학교에서는 자연스럽다고 썼거든. 근데 보니까 그건 딱 너희들 일상 모습이잖아?] [에이, 선생님이 모르셔서 그래요. 저 원래 대안학교 가려고 했는데, 요즘 대안학교가 얼마나 쎈데요. 거기 떨어져서 여기 온거예요. 그래서 이런 거여요.]하고 천연덕스럽게 받아치는 수*이. 다시 한번 [우하하~].
이런 모습,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교사의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판 일분전인 교실의 모습? 여기서 나는 애들 못잡고, 오히려 애들에게 끌려다니며, 애들 어리광을 지나치게 받아주고, 애들을 방치하며 바른 길로 이끌어주지 못하는 '한심한' 교사?
중요한 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냐지 겉모습이 아니다, 말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느냐 못하냐가 문제다. 이게 나의 개똥 교육 철학이다. 그러나 '이해찬식 열린 교육의 피해자'라는 이 아이들과 1학기 이상 같이 지내면서 화도 내보고 짜증도 내보고 한숨도 수도 없이 쉬어봤다. 나중에 뭐될려고 저러냐.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거냐... 그런데, 한편으로는 믿음도 가지게 되었다. 저러고 있어도 내가 담당한 과목에서 절대 꼴등반은 하지 않을거라는 믿음. 컴퓨터 책상에 큰 대자로 누워 자는 *욱이가 시험 때면 눈 동그랗게 뜨고 풀던 문제집을 가져와 질문할거라는 믿음. *섭이는 수업 내내 한마디 말도 안하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지만, 수를 받고 말거라는 믿음. 191cm라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가끔 어색한 어리광을 부리는 *훈이가 매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진지하게 공부를 할거라는 믿음. 몇몇 아이들의 장난이 도를 넘겨, 내가 지휘봉으로 칠판을 두드리게 되면, 총학생회 간부인 *일이나 *찬이가 [죄송합니다. 야! 조용히하자!][야,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에 비해서는 얼마나 우리 편하게 해주는 건데, 그만 졸라대라]하고 한마디해줄 것을, 그러면 또 다른 애들도 입을 다물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기본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애들, 나름대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얼마 안남은 고교생활을 아쉬워하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애들이라고 믿는다.
비평준화지역. 입학성적 서열3위의 인문계 고교. 거기서도 성적순으로 반 편성하여 소위 '평반'으로 불리는 아이들. 수능보다는 3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성적+@로 지방대학이나 전문대 수시 입학을 결정해 버리는 아이들. 그 애들에게 서열1위의 전통명문고, 우수반/준우수반 아이들과 똑같은 수업 태도를 바라며 비교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 물론, 시험을 알아서 잘 본다고해서 4가지 없는 태도를 지닌 아이들을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3개월정도 이 아이들과 밀고 당기고, 야단치고 달래고하는 상황을 되풀이해서 연출하겠지. Anyway 세상은 변했고, 아이들도 변했다. 앞으로 계속 변해갈 것이다. 지금은 과도기적 혼란이라고 되새기면서, 실패를 거듭하다가는 해답에 가까운 무엇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