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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광부[쇳돌]
선광부


쇳돌-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동녘, 2026-02-20.




세상이 급하게 변하고 미래산업이 발전하면서 사라지는 산업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산업이 사라지는 건 ‘자연적인 흐름’만이 아닌 ‘정책적 의도’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직업이라는 게 쉬이 바꾸기 어려운데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수록 이에 대한 이해와 기술력이 부족한 노동자는 어떻게 살아가고 살아내었을까.
미래산업과 로봇 성장의 시대를 얘기하면 떠오르는 기막힌 이야기는 ‘일본의 도장찍는 로봇’ 이야기다. 제법 오래전부터 일본의 로봇 기술력은 세계에서 상위에 랭크되었다. 일본이 보여줄 로봇에 대한 기대와 선망이 높았을 게다. 그런데, ‘도장찍는 일본 로봇’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본은 문서가 전자화되지 않고 아직 종이문서인데다 수기로 도장을 찍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인장협회 등 관련 단체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이런 형태를 바꾸지 못하고 해결책으로 좀더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이런 로봇을 만들었다 한다. 이러한 얘기를 접하고선 도대체 일본의 지향점을 무얼까 싶었다. 기술이 발달하는 시대, 단지 물리적인 기술력이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다루고 무엇을 위해 기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과 ‘비전’ 속에 기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이 책 『쇳돌』의 저자는 “경제성, 합리화, 건전성 등의 언어로 포장된 정책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이고 건전한 방향일지 모르나 개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붕괴시키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속 ‘합리화’는 노동자들의 언어도 아니고, 어떠한 부정적 의미도 드러내지 않고, “직장을 잃은 광부에게, 그의 가족들에게, 이들이 거주하던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말해준다. 한 가족의 ‘광산 노동이동사’를, 그의 가족들을, 이들 거주하던 마을의 일들을. 그렇게 한 가정의 가정사가 사회 변화와 맞물리며 흘러온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거대한 담론을 논쟁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친구가 들려주는 ‘우리 아빠, 우리 집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사, 노동사라는 객관적인 실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 이라영은 정말 탁월한 수다쟁이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감정이입을 하며 진지하게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친구-다소 수다스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막장 드라마’할 때 ‘막장’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경상도에서는 쌈장같은 된장을 ‘막장’이라고 부르는데, 드라마와 얽힌 막장은 석탄이나 광석 등을 채굴하는 갱도를 말한다. ‘막장드라마, ’막장 인생‘은 이처럼 광산 산업 노동자들의 삶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막장 인생이 어떤 거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광산 산업은 90년대 이후 감소하며 광산이나 광산노동자, 광부의 삶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광산‘은 하나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딱히 긍정적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대체로 가난하고 가난한 이들이 행하는 노동, 인생의 끝에 몰린 이들이 살아가는 인생으로 이들 삶을 표현한다. ’막장‘은 위험하고 험한 일터이고 그들의 삶 또한 그렇다고. 공장단지가 떠난 지역이 그러하듯 폐허처럼 남은 빈 집, 늙어가는 노인과 그만큼 늙어가는 개들만이 남은 곳, 광산 지역. 그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저자의 아버지는 “다 죽었지”라고 답했다. 저자는 그제야 양양광업소 노동자, 민주노조위원장 출신인 아버지의 양양 광산에서 일했던 기록을 찾기로 한다. 광산노동자들이 열심히 캐고 골라내던 ’쇳돌‘처럼 철광산 산업의 흥망성쇠 속 그때 그 지역의 모습을, 가족의 삶을 광산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하는 산업 지형과 소멸하는 직업 속에서 견디고 이동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을.
이 책을 통해 “선광부”를 알게 된다. 광산하면 광부가 떠오르고 광부는 남성이다. 경리라고 부르는 일 정도는 여성이 했을지라도 광산은 남성의 일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아버지는 또 말한다. “거기 맨 젊은 여자지”. 쇳돌 고르는 작업은 거의 여자들이 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쇳돌이란 철광석처럼 광석을 고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선광부”라 한단다. 석탄 광산에선 선탄부라고 한단다. 저자의 고모도 선광부로 일을 했다 한다. 광부는 ’鑛夫‘로 ‘사내 부夫’자로 쓰이는데 선광부는 ‘부녀 부婦’자를 쓴단다. 광석 고르는 일을 여자가 주로 하니 쉬운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 이 일은 “광산의 굵직한 일 중 하나”이고 “분진 속에서 하는 일이라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에 '지상의 막장'이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과거에 양양 사람들을 비하하던 표현인 “양양하와이”. 양양이 뒤늦게 남한에 편입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라 한다. 양양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대화할 때 조심하느라 말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휴전된 지 35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진짜 남한이 아니’라는 배제의 시선이 깔려 있는 이 말을 저자는 적어도 지금은 잊혀진 말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서핑의 도시로 알려진 양양을 보면 ‘하와이’ 해변이라거나 까페 등 ‘하와이’라는 이름 붙은 가게들이 보인다. 지금은 비하의 의미는 아니겠지만 뭔가 아이러니하다.
저자 또한 양양에서 양양 비하의 경험자로 살았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는 내내 저자의 어머니는 양양을, 광산을, 노조를 자식들과 분리하려 애썼다고 기록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연좌제의 피해자다. 남로당 활동을 했던 조부의 ‘행불’은 삶 내내 아버지와 고모를 따라다녀 공무원이 되지 못했고, 고모 역시 하고픈 일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 국가에게 감시당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노조’ 활동을 했고 노조위원장이 되었다. ‘노조위원장’의 부인인 아내의 삶은 딱히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노조 때문에 “가정이라는 게 없이” 사는 삶이었고, 가난한 삶에 도움 또한 되지 않는 그런 삶이었다. 뒤늦게 과거를 기록하는 시점에서 저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서로 다른 태도를 맞닥뜨린다.

“아니, 할아버지가 왜 서대문형무소에 갔냐니까?”라고 재차 물어보면 “그게 다 관련이 있는 거야”라며 거대한 역사 속에서 제 아버지의 위치를 해석하려 애쓴다.“ […] 개인의 삶을 역사 속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아버지에게는 꽤 익숙해 보인다. 나는 이 점이 남성 중심의 역사와 문학적 서사를 다양하게 접한 개인이 체득한 말하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고모나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고모는 숨으려 했으나 흘러넘치는 분노의 말을 주체하지 못해 끝내 붕괴되고 미쳐버렸다. 어머니는 지금도 “옛날 이야기 하기 싫다”라며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저자는 동네서 가사만 하는 여성을 거의 본적 없다고 한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농사를 짓거나 시내에서 장사를 했고 겉보기에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여자들은 다들 집에서 부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성은 광산 노동자의 부인으로서 가사노동만을 할 수 있는 삶은 아니었다. ’여성‘에게 부여된 전통적인 성역할-가사노동과 돌봄노동-과 함께 광산 노조 투쟁에 함께 하고, 부업 활동도 해야만 했던 삶이었다. 한편, 저자는 아버지가 노조투쟁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부인들‘ 얘기를 들으며 적극적인 투쟁활동을 했던 여성들 외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가정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위치”에 대해서 말이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머니마저‘ 밖에서 투쟁에 참여했을 때 자식들의 위치가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얘기한다.
이처럼 이 책은 남성의 세계로 인식되는 광산 노동자의 삶을 얘기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그것은 분리될 수 없는 이야기, 함께 해 온 역사인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서울 중심, 중산층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동안 밀려나고 사라진 목소리”에 주목한다. 그 목소리를 함부로 제거하고 싶지 않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그러했던 것처럼 석탄 광산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다. 또한 광산을 소재로 영화, 드라마, 문학 작품 속에서 광산 산업과 노동자 가족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찾아낸 문학작품 속 이미지와 실제 ’목소리‘를 통해 본 삶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그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지 비교해볼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 기억에 의존, 구술에 의존하여 기록하지 않았다. 다양한 문학작품은 물론이거니와 광산 산업의 역사적 흐름과 실태를 잘 알 수 있는 사료를 파악하여 전해준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그 방식이 딱딱하지 않고 친구가 들려주는 조금은 진지하게 듣게 되는 가정사같다.
많은 이야기 속 머리를 치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노조 투쟁으로 얻은 주간업무에 대한 광산노동자들의 반응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 24시간 채광하는 교대근무가 사라지고 주간업무만 하게 되었지만 노동자들이 그렇게 달가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급여와 관련한 부분이 클 것이다. 하지만 머리를 띵하게 했던 건 이 말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는 저녁인데 그럼 우리는 하루종일 햇빝도 못 보고 살지 않느냐”

비로소 이 말이 광산노동자의 ’일‘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모든 노동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성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멸하는 직업 세계에 속했던 사람들이 그들의 가치 또한 사라진 듯해서는 안될 텐데 살아온 삶이 노동과 노동자의 가치를 높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I로 대체되는 인간 노동에 대해서 지금도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다. 광산 노동과 이들의 노동이 다를까. 신성장산업이라는 정책 기조 속에 사라질 노동의 세계, 그 노동이 사라진다고 사람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저자가 계속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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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을매일씁니다님도 <쇳돌>을 재미있게 보고 리뷰를 남기셨네요. 리뷰를 읽어보시겠어요?
  • 2026-10-22 21:23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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