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즉위한 정조 앞에는 두 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그가 단 하루도 잊지 않았던 영조 38년(1762) 윤5월 21일,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신음하다 훙서(한 그날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것은대리청정하던 저군(君: 세자)을 죽인 세력들을 향한 복수의 길이었다. 그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이 할아버지 영조였다. 그 길에서는 오이디푸스가 죽인 생부 라이어스나, 햄릿이 숙부로 오인해 죽인 연인 오필리아의 부친 폴로니어스 같은 인물도 만나야 했다. 그리고 복수에 성공했으나 그 자신도 죽고 마는 햄릿의 운명을 따르게 될 수도 있었다. 하긴 햄릿을 빌려 올 필요가 있겠는가. 모친 윤씨를 비명에 잃은 연산군이 그랬고, 모친 장씨를 비명에 잃은 경종이 이미 그랬지 않은가.
정조는 그런 과거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즉위 일성으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자신이 저주받은 운명의 주인공이라는사실을 명백히 밝혔으나, 그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는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며, 현실이 응축된 미래라는 사실을수없이 탐독했던 역사서 속에서 깨달았다. 현실이 과거에 지배받을 때 미래는 불행해짐을 그가 본 역사서들은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런 과거를 가슴에 묻고 또 다른 길, 미래로 나아갔다. 그것은 굴복도 회피도 아니었다. 자신과 왕실, 그리고 조선의 저주받은 운명과 맞서 싸우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미래를 택했다고 하여 어찌 과거가 온전히 잊힐 수 있겠는가. 다른집안도 아닌 왕가, 그것도 손이 귀한 삼종의 혈맥이 뒤주에 갇혀 죽어야 했던 과거가 어찌 잊힐 수 있겠는가. 병석에서 "두통이 많이 있을 때는 등 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