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다양한 창업가의 아이디어가 넘쳐흐르는 공유경제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타자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잉여 자원을 가져 더 선한 사회 실현에 공헌 가능한 ‘시민‘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유경제에서누락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금 0원, 주소 불명, 직업은 사기꾼, 취미는 방랑입니다"라고 회원 가입란에 써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강조한 ‘겸사겸사‘는 그 사람이 가진 정신적/재정적/능력적/시간적 여력이다. 그런데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유휴 자원이나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 지향적인 경제 논리로 ‘겸사겸사‘를 조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겸사겸사‘, ‘무리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사람이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낭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단치않음‘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을 찾아 홍콩에 와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개별 인간의 자율성, 서로 간의 대등함을 저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돕는 이유는 시민 사회, 환경 지속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연일지라도 ‘함께 있게‘ 된 정체를 알 수없는 타자에게 ‘나는 당신의 동료다‘, ‘당신은 나의 동료다‘라고 표명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즉, 새로운 경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의 논리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동료 간의 증여와 분배를 위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보츠먼과 로저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류학자와 사회경제학자들은 "당신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 나도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해줄게"라는 직접 호혜주의 reciprocity의 원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 친척끼리, 이웃끼리, 작은 마을 주민끼리 거래하던 시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주고받던 시절, 누가 누구와 어떤 교류를 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서로 돕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 또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주고받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떨까?
소셜 네트워크에서 상호 부조는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간접 호혜주의). 이곳에서는 더 이상 ‘내가 널 도우면 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단순한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상호 부조의 구조는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나를 도와줄 것이다‘로 바뀌었다.
이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원칙은 내가 홍콩 탄자니아인의 사회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