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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23일 오전 10:36 공개
일론 머스크의 인생을 바꾼 명저 40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크기였습니다. 핸드북 사이즈라 한 손에 쏙 들어오는데, 강렬한 빨간 표지 위에서 머스크가 책을 든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사진 한 장이 이렇게 많은 말을 대신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로켓을 쥔 것도, 자동차 키를 쥔 것도 아니고 책을 쥔 모습이라니. 그 한 컷만으로도 이 사람의 머릿속을 한 발짝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최경수 작가의 <일론 머스크의 인생을 바꾼 명저 40>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머스크가 직접 인용하거나 추천한 책 마흔 권을 골라, 그 책에서 무엇을 가져갔고 그것이 어떻게 사업으로 이어졌는지를 짚어 갑니다. 흔한 추천 도서 목록과 다른 점은, 각 칼럼이 머스크의 실제 발언과 결정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거예요. 막연히 "이런 책을 봤다더라"가 아니라 "이 문장이 저 결정이 됐다"는 식이라, 읽는 내내 그의 판단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이 듭니다.

저자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IT 전문지 기자와 출판 기획자를 거친 사람입니다. 그 이력 덕분인지 복잡한 경영 이론이나 인문학 개념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요. 칼럼 하나가 네댓 쪽 정도라 부담도 적고요.


책의 문을 여는 건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입니다. 열다섯 살의 머스크가 따돌림과 부모의 이혼 속에서 책으로 도망치듯 빠져들던 시절, 그의 손에 들어온 소설이라고 하죠. 소설 속 거대한 컴퓨터는 오랜 계산 끝에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답"으로 단 하나의 숫자를 내놓습니다. 42. 그런데 정작 아무도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릅니다. 머스크는 바로 그 대목에서 멈췄다고 해요. 2013년 TED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소설이 가르쳐준 것은, 답을 찾는 것보다 올바른 질문을 찾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깨달음이 그의 사고방식 전체를 바꿔 놓았다는 게 이 칼럼의 요지입니다. 로켓을 두고도 그는 "어떻게 더 강한 로켓을 만들까"를 묻지 않았어요. "어떻게 더 싸게 반복 발사할까"로 질문을 바꾸는 순간, 우주는 막연한 꿈에서 풀어야 할 공학 문제로 내려옵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였죠. "왜 전기차는 비싸고 느린가"가 아니라 "배터리 원가를 물질 단위로 계산하면 얼마인가"를 먼저 물었습니다. 저자는 이 태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질문이 바뀌면 비용과 시간과 인력의 배치가 함께 바뀌고, 그 변화가 곧 결정이 된다고요. 일하다 보면 답을 빨리 내놓으라는 압박은 많아도, 지금 옳은 질문을 붙잡고 있는지 되묻는 시간은 좀처럼 갖기 어렵잖아요. 첫 칼럼이 오래 남은 이유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편은 결이 좀 더 깊습니다. 하라리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비결을 '실재하지 않는 것을 함께 믿는 능력'에서 찾습니다. 국가, 돈, 인권, 회사. 물리적으로는 어디에도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믿을 때 현실의 힘을 갖는 것들이죠. 저자는 이 '상상의 질서'를 머스크의 사업과 나란히 놓습니다. 화성 이주, 전기차 전환, AI 민주화. 이것들은 지금의 사실이 아니라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고, 충분히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믿을 때 투자와 인재가 몰려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현실이 된다는 겁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가치도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짚는 대목이 설득력 있었어요.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하라리는 인류가 만든 허구의 구조를 분석하는 관찰자이고, 머스크는 새로운 허구를 만드는 설계자라는 거예요. 한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설명하고, 다른 사람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밀어붙입니다. 2023년 AI 개발 일시정지를 촉구하는 서한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명했지만, 위험을 경계한다는 한 지점에서만 잠시 같은 방향을 봤을 뿐 나머지는 정반대를 향한다고 하죠. 하라리가 던지는 가장 불안한 질문,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기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라면 끝내 피할 수 없는 물음일 겁니다.


씨앗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힌 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편에서였습니다. 수학자 셀던은 통계 기법으로 제국의 붕괴를 예측하고, 다가올 암흑기를 줄이기 위해 은하 끝 행성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모은 파운데이션을 세웁니다. 제국이 무너져도 지식이 살아남으면 문명은 더 빨리 재건될 수 있다는 발상이죠. 책에 따르면 이 논리는 스페이스X의 창립 논리와 정확히 겹칩니다. 지구라는 단일 행성은 결국 단일 실패 지점이라, 다행성 종이 되는 것은 셀던이 먼 행성에 씨앗을 심은 것과 같다는 거예요. 2013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아시모프에게서 "문명은 순환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순환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지금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요. 거창한 화성 이야기가 갑자기 '오늘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현실의 질문으로 바뀌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에 본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편은 분위기가 한층 다릅니다. 기술이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는 한 가지 주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책인데, 저자는 커즈와일과 머스크가 같은 미래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라본다고 정리합니다. 커즈와일은 인간과 AI가 하나로 융합하는 특이점을 축복으로 보고, 머스크는 그것을 생존의 문제로 봅니다. 눈길이 머문 건 커즈와일의 개인사였어요. 아버지를 심장병으로 일찍 잃은 그가 특이점이 오기 전에 죽지 않으려 매일 수많은 영양제를 챙긴다고 합니다. 기술 낙관론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죠. 이 칼럼을 닫는 한 문장이 책 전체를 요약하는 듯합니다. 화성 이주도, AI 설계도, 뉴럴링크도 예측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 커즈와일이 책으로 그린 지도를 머스크는 로켓과 칩과 코드로 현실에 새기고 있다는 것.

네 칼럼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질문을 바꾸고, 그 위에 미래의 이야기를 세우고, 무너질 것에 대비해 씨앗을 심고, 끝내 그 미래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사람. 머스크의 기행과 거친 발언만 보던 입장에서는 의외의 그림일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이 책이 그리는 그는 충동이 아니라 오래 읽고 계산한 끝에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슬그머니 화살이 제 쪽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일터에서 어떤 질문을 붙잡고 있나, 내 판단의 바탕에는 어떤 읽기가 쌓여 있나. 거인의 독서를 구경하다가 결국 제 빈약한 독서를 들여다보게 되는, 조금 뜨끔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거의 모든 칼럼이 '머스크가 옳았다'는 결론으로 수렴하다 보니, 그의 선택이 빚은 그늘이나 실패를 향한 균형 잡힌 시선은 다소 옅게 느껴졌어요. 다만 이 책의 목적이 평전이 아니라 '그의 사고가 어떤 책에서 자라났는가'를 추적하는 데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건 결을 다르게 읽으면 될 일이지 싶습니다.


이 책은 결국 무엇을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의 이야기입니다. 목록을 손에 쥐고 마흔 권을 정복하겠다는 마음으로 펼치면 조금 지칠 수 있어요. 그보다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SF와 물리학과 역사가 어떻게 한 가닥 사고로 엮였는지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훨씬 즐겁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책들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판단으로 모이는 과정을 보고 나면, 평소 책을 대하는 태도부터 조금 달라질 거예요. 새로운 기술의 흐름 앞에서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분이나, 일에서 늘 답만 찾다가 정작 질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분이라면 이 작은 책이 꽤 단단한 자극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본 책인데, 가벼운 부피와 달리 읽고 난 무게는 제법 단단했습니다. 여러 권을 살펴보는 서평 활동 중에도 이렇게 한 사람의 사고 경로를 따라 걷게 만드는 책은 흔치 않았어요.


장마를 앞둔 유월의 끝자락,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읽기에 이만한 책도 없겠다 싶었습니다. 짧은 호흡으로 끊어 읽기 좋고, 한 꼭지를 덮을 때마다 생각할 거리가 남으니까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손바닥만 한 이 책을 곁에 두어 보시길 권합니다.


머스크를 만든 건 천재성이 아니라 독서였고, 이 책은 그 독서가 어떻게 사고와 행동으로 자라났는지를 차분히 따라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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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튀
  • 사진이 왜 깨지는지 이유를 모르겠음
  • 2026-06-23 10:46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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