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 인류세』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패치 인류세』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 제니퍼 데거 · 올더 켈러먼 색세나 · 페이페이 저우 지음 | 해나무
인류세, 그리고 ‘패치 인류세’라는 개념부터 알아야 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지구는 하나이지만, 인류세는 하나의 얼굴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인류세를 말할 때 떠올리는 것은 지구 전체를 뒤덮은 인간의 영향이다. 기후변화, 오염, 생물다양성의 감소처럼 거대한 규모의 변화들이다. 정작 지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들은 말한다.
패치(patch)는 서로 다른 역사와 생태,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얽혀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현장이라고 한다. 숲과 농장, 도시와 하수구, 강과 습지, 식물과 동물, 인간의 노동과 기술이 각각의 방식으로 만나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면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류세를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로 봉합하지 않고, 오히려 잘게 나누어 바라본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인류세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궁금했다.
저자들은 빅데이터와 전 지구적 규모의 분석만으로는 인류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동시에, 한 장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오래 들여다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거대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쥐 한 마리, 강을 뒤덮은 부레옥잠, 멀리 날아온 방사성 물질, 특정 지역에 퍼진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들이 오히려 인류세의 작동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밌었던 것은 하노이의 하수도와 쥐 이야기였다.
근대적 도시와 위생이라는 인간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수도는 예상하지 못했던 쥐들의 번식지가 되었다. 인간이 만든 인프라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게도 새로운 삶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흥미롭기도 하고 또 놀랍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자연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문명의 질서 안에 숨어 있던 비인간 존재들이 오히려 그 질서의 허점을 드러내는 셈이다.
부레옥잠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어렸을 때 자연 교과서에서 만났던 부레옥잠은 내게 참 시닙로운 존재인데....
처음에는 아름답고 희귀해서 식물원들이 앞다투어 들여온 식물이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정착한 뒤에는 강과 호수와 운하를 뒤덮으며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더 흥미롭다.
인프라를 반드시 인간이 만든 것으로만 정의해야 할까?
부레옥잠의 군집도 물의 흐름을 바꾸고, 산소량을 변화시키고, 다른 생물들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생태적 인프라가 아닐까.
인간이 만든 도시와 도로만 인프라가 아니라, 식물과 동물과 미생물 역시 자신들의 방식으로 환경을 만들고 바꾼다. 인류세라는 이름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다는 선언처럼 들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반대의 장면들이 보인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다른 생명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점유하고 변형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인류세는 인간의 시대인 동시에 인간만의 시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이동하고, 식물과 균류가 그것을 흡수하고, 다시 그것을 먹은 생명체의 몸으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 연결망을 실감했다. 한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이 그곳에 머물지 않는다. 물질은 국경도, 인간이 그어놓은 지도도 모른다. 인간이 세계를 분절해서 이해하는 동안 지구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움직인다.
서로 다른 장소와 생명, 역사와 지식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 한 지역에서 얻은 설명을 다른 곳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 것. 각각의 패치가 가진 차이를 충분히 들여다본 뒤에야 비로소 전체를 생각하는 것.
어쩌면 이것은 인류세를 바라보는 태도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읽는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꾸 전체를 알고 싶어 한다. 특히 최근에 인공지능 시대에는 그런 현상이 가속화된다.
하나의 원인을 찾고,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하나의 숫자로 세계를 정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단정하게 생기지 않았다. 숲에는 숲의 시간이 있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시간이 있으며, 쥐와 부레옥잠과 균류에게는 또 다른 시간이 있다.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 장소에서 포개질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바로 하나의 ‘패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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