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쌓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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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마스노슌묘 스님은단순한 필자를 넘어, 평생 '선의 정원'을 창작하며 공간과 마음의 본질을 탐구해 온 수행자입니다. 세계가인정한 정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과 조동종 대본산 소지지에서의 깊은 수행 경험이 만나, 그의 글은 더할나위 없이 간결하면서도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듯 현대인의 고민을 덜어내는그의 메시지는, 우리가 왜 그를 '세계가 존경하는 100인'으로 꼽았는지 새삼 깨닫게 합니다.
선행을 베풀고 나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을겁니다. 애써 도왔는데 알아주지 않을 때, 밀려오는 그 서운함. 이 감정의 정체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덕을 베푸는 나'를 은연중에 세워놓고, 그 나에게 돌아올 보상을 계산하고 있었던 겁니다. 《덕을 쌓는 삶》이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뻔한 훈계 대신, "왜 우리는 늘 대가를 계산하게 되는가"라는 더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답을 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불교의 오래된 가르침, '제법무아(諸法無我)'에 가닿게 됩니다. 세상모든 존재에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언뜻 덕을 쌓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개념이, 실은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꿰뚫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행 뒤에서운함을 느끼는 이유는, '덕을 베푼 나'라는 존재를 마치변치 않는 실체처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가 확고할수록, 그 나에게 돌아와야 할 몫도 확고해집니다. 그런데 제법무아의 시선으로 보면,애초에 그렇게 붙잡을 고정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베푸는나도, 받을 자격이 있는 나도, 실은 매 순간 인연 따라생겨나고 사라지는 흐름일 뿐입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달마 대사의 '무공덕' 일화도 결국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양 무제가 절을 짓고 경전을펴낸 공덕을 자랑하듯 물었을 때, 달마는 "공덕이랄것이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얼핏 매정하게 들리는이 대답은, 사실 '공덕을 쌓은 나'라는 상(相)을 세우지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자의식이 강할수록, 그행위는 순수한 베풂이 아니라 은밀한 거래가 되어버립니다. 제법무아를 체득한 사람에게는 '내가 덕을 쌓았다'는 문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덕은 그저 인연 따라 흘러간 마음의 작용이었을 뿐, 소유하거나 자랑할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책이 말하는 이시다 미쓰나리 소년의 일화도 다시 읽어볼 만합니다. 목마른손님에게 처음엔 미지근한 차를, 다음엔 조금 뜨거운 차를, 마지막엔진하고 뜨거운 차를 내어준 그 세심한 배려는, 사실 상대를 향한 관찰과 반응이지 '내가 좋은 인상을 남기겠다'는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자아가 끼어들 틈 없이, 그 순간 필요한 것에 온전히 응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아 없는 반응이, 훗날 그의 인생을 바꾼 인연으로이어졌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앞세우지 않았을 때 오히려 가장 단단한 신뢰가 쌓인 셈입니다.
이 지점에서 책의 메시지는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덕을 쌓는 일은 '좋은 사람인 나'라는 이미지를 완성해가는 자기실현의 서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나'라는 고정된 상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 그래서 베풂과 계산이 분리되는자리에 이르는 수행입니다. 남을 위한 선행처럼 보이지만, 실은나를 옭아매던 자아의 무게를 덜어내는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가장 자유로운 길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이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제법무아를 머리로 이해한다고 당장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여전히 매일 크고 작은 기대를 품고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이 책이 건네는 위안은 바로 그 지점에있습니다. 완벽하게 무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 다만오늘 하루, 계산하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 "아, 지금 내가 '나'를 세우고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알아차림이 쌓여갈 때, 우리는 조금씩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좋은 일이 있어서 좋은 날이 되는 게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살기로 했기에 오늘이 좋은 날이 된다"는이 책의 문장을 제법무아의 언어로 바꿔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결과를 얻은 '내'가 있어서 좋은 날이 되는 게 아니라, 결과를 붙잡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았기에 그 자체로 이미 좋은 날이라고.계산이 많아진 세상에서, 계산할 '나'조차 내려놓는 법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