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어떻게 우리 감정을 대신 표현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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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대신 말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욕을 듣고, 때로는 직접 내뱉어요. 그런데 같은 욕이 어떤 자리에서는 웃음이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깊은 상처가 되죠. 친밀함을 확인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잔인한 공격이 되기도 하고요.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해요. 한국어의 욕설과 비속어, 혐오 표현을 영화와 드라마 대사에 연결해서 살펴보는데, 욕설 사전도 교양서도 아니에요. 욕이라는 가장 노골적인 언어로 한국인의 감정과 욕망, 사회의 변화를 읽어 내는 인문학적 탐구에 가까워요.
저자는 욕을 불만감을 드러내는 욕, 모욕감을 주는 욕, 혐오감을 표출하는 욕으로 나눠요. 버스를 놓치고 혼잣말로 내뱉는 욕에는 공격할 상대가 없어요. 짜증과 좌절만 있을 뿐이죠. 반면 누군가에게 직접 퍼붓는 욕에는 상대의 자존심을 꺾고 내 우위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어요. 거기서 더 나아가면 특정 성별이나 세대, 집단을 통째로 깎아내리는 혐오가 되고요.
욕에는 분노만 있는 게 아니라 무기력, 질투, 수치심, 허세, 열등감까지 담겨요. 격렬한 감정 앞에서 오히려 말을 잃을 때, 그 감정을 몇 글자로 압축하는 게 욕의 힘인지도 몰라요. 다만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낸다고 해서 상대에게 상처 줄 권리까지 정당화되지는 않아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와 드라마로 욕을 풀어낸다는 점이에요. 기생충, 불한당, 응답하라 1988, 나의 아저씨 같은 작품이 욕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읽혀요.
읽고 나면 욕이 나오는 순간에 인물의 관계와 권력, 살아온 환경이 한꺼번에 드러난다는 걸 깨닫게 돼요. 더 글로리의 모욕적인 언어는 학교폭력의 잔혹함을 보여 주는 수단이고, 오래 함께한 사람들 사이의 투박한 말투는 친밀함의 표시죠. 결국 중요한 건 단어 자체보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관계에서 말하느냐예요.
'지랄'이라는 말에는 평가의 문제가 숨어 있어요.
상대의 행동을 지랄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말한 사람은 그 행동이 비이성적이라고 판단하는 위치에 서거든요.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항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란으로 보일 수 있고, 욕은 반론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상대를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둬 버려요.
언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해요. '미쳤다'는 예전엔 비난이었지만 지금은 '미친 실력', '미친 집중력'처럼 칭찬으로도 쓰이죠. 물론 그게 특정인을 향한 정신질환 비하까지 정당화하는 건 아니에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혐오를 표출하는 욕이에요. '아줌마'는 원래 평범한 호칭인데, 말하는 사람의 편견이 실리면 모욕이 돼요. '충'이라는 접미사는 사람을 벌레에 빗대어 존재를 낮추는 비인간화의 방식이고요. 한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과 집단 전체를 혐오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인데, 온라인에서는 그 경계가 쉽게 무너져요. 반대로 '따까리'에서는 뜻밖의 따뜻함을 발견해요.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이 말을 통해,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삶을 떠받치며 살아간다는 연대의 시선을 보여 줘요.
법적으로 보면 모욕죄(형법 제311조)는 욕설이 쓰였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 않아요. 발언의 상황과 관계, 공연성, 표현의 경멸 정도를 함께 따지고,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균형도 고려하죠. 그래도 법이 모든 말의 상처를 해결해 주지는 못해요. 처벌되지 않는 말도 오래 남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자가 영화 기자로 일하다 뉴욕으로 건너가 한국의 욕을 다시 바라봤다는 점도 흥미로워요.
한국어 욕을 영어 단어 하나로 옮기면 계층 관계, 분노의 강도, 친밀함과 조롱의 미묘한 차이가 얼마나 살아남을까요?
번역하기 어려운 건 욕이 아니라 감정이에요.
이 책을 읽는다고 욕을 더 잘하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대신 누군가의 욕을 들으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고, 내가 말을 내뱉기 전에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잠깐 고민하게 될 거예요. 욕을 알면 언어가 보이고, 언어를 알면 사람이 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