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페페페> 짐리원,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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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페페페> 짐리원,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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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요란하게 울리던 폭염 경보 재난문자가 무색하게도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한 가을이 찾아왔다. 올해 여름에는 한낮의 외출을 피하고, 약속 장소로 향할 때면 건물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길부터 먼저 가늠하곤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서던 여름날의 산책조차 이제는 기온과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레 첫발을 떼는 일이 되었다. 짐리원의 소설집 『펫페페페』를 읽으며 묘한 당혹감이 들었던 이유는, 책 속에 그려진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보다 오히려 지금 내가 매일 겪어내고 있는 오늘날의 계절이 낯설고 위태롭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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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기후위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엄청나게 요란한 폭발이나 비장미 넘치는 재난 영화의 문법으로 전시하지는 않는다. 기묘하게 변형된 생명체와 신체, 새로운 과학기술 같은 SF적 장치들이 흥미진진하게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 마음에 자리잡은 인상은 다소 소박한 것이었다. 세상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중에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누군가에게 서툰 호감을 품으며, 끼니를 챙겨 먹고, 산책을 나선다. 그리고 자기 삶의 반경 안에 들어온 작은 존재를 돌본다. 세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역설적으로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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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중 특히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이 아주 흥미로웠다. 이 단편을 읽고 나니 날씨가 참 좋다는 일상적인 감탄에 전혀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목적지 없이 천천히 발을 옮기는 일. 너무나 소박해서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민망했던 그 행위가,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만 겨우 누릴 수 있는 희귀한 사치가 된다는 설정이 마음에 묘하게 와닿았다. 아직 내 곁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대상을, 마치 이미 영영 사라져 버린 것처럼 애틋하게 응시하게 만드는 기묘한 감각. 아직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아득한 그리움이 차오르는 마음. 『펫페페페』의 행간을 흐르는 가장 짙은 정서는 일종의 노스탤지어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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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 비장미 넘치는 결의와 다짐보다는, 날씨가 좋은 날 문을 열고 조금 더 오래 걷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 차올랐다. 아직 나설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산책을 하고, 아직 내 곁에 온기를 품고 머무는 존재들을 조금 더 다정하고 세밀하게 눈에 담아두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먼 훗날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그리워하게 될 풍경은, 대단한 성취나 기적이 아니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오늘 하루의 맑은 바람과 평온한 햇살일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은 아작(@arzak.livre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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