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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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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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가장 자주 머릿 속에 떠오른 질문은 "이 책은 대체 어느 시대, 어떤 공간을 설명하고 있는 걸까?"였다. 공장에서 제조되듯 태어나는 아이들, 여럿으로 나뉜 ‘나’, 희귀해진 남성이라는 성별, 그리고 인간을 묵묵히 관찰하는 시선들. 한 편의 호흡에 겨우 적응할 만하면 소설은 아무런 사전 설명도 없이 불쑥 수백 년, 수천 년 뒤의 낯선 시공간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연작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초반에는 길을 조금은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지점을 돌파하면 앞에서 스쳐 지나갔던 단어와 기묘한 설정들이 퍼즐처럼 맞물리기 시작하고, 그때야 비로소 이 소설이 품은 진짜 구조가 드러난다. 작가가 친절한 지도를 쥐여주지는 않지만, 흩어진 파편들을 독자가 직접 주워 맞추며 서서히 세계의 윤곽을 더듬어가도록 유도한 것은 틀림없다. 처음에 느꼈던 낯섦과 당혹감마저 꽤나 정교하게 계산된 장치였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쾌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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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인류의 멸망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다루는 방식은 대단히 독창적이었다. 대개 종말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하면 거대한 전쟁, 파괴적인 자연재해, 압도적인 폐허가 불러 일으키는 비장미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와카미 히로미의 종말에는 비명과 굉음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아이를 먹이고 돌보며, 누군가를 아끼거나 사소한 일로 질투하고 미워한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인류는 조용히, 아주 서서히 다른 존재로 변형되며 조금씩 스러져간다. 세계의 끝을 다루면서도 소설 전체가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숨소리로 가득 차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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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득한 시간을 건너오면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있었다. 바로 나와 닮은 것은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밀어내는 태도였다. 작품 속에서 인류는 멸종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질적인 집단들을 구성해 다양성을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통제된 조건 안에서조차 기어이 나와 다른 타자를 찾아내 경계하고 혐오를 싹틔운다. 자신이 알던 범주를 벗어난 존재를 마주했을 때 관찰자가 느끼는 공포와 배제의 선택은 인간의 밑바닥을 훤히 보여준다. 머리로는 타자와의 공존을 외치면서도, 막상 내 상식으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낯선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과연 나는 얼마나 의연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인물들의 이기심을 손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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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작가가 인간이라는 종을 차갑게 조롱하거나 세계를 염세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온기가 행간마다 배어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어 올리면서도 자신들의 손으로 더 많은 것을 부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면서도 잔인하게 상처를 입히며, 뻔한 실수를 지겹도록 되풀이한다. 하지만 인간의 곁을 지키며 그들을 기록해 온 인공지능과 관찰자들은,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는 혼돈과 비합리성 때문에 끝내 인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의 눈에 비친 인간은 얼마나 불가해하고 모순투성이였을까? 그러나 쓸데없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패배가 뻔한 싸움에 매달리며, 미워했던 사람을 다시 그리워하고 마는 그 비효율과 결함 속에야말로 기계가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의 본질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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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소설이 던지는 진짜 화두가 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질문의 핵심은 인류가 어떤 파국을 맞아 사라지는가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그 기나긴 궤적 속에서도 인간은 끝끝내 무엇이었는가에 닿아 있는 듯 했다. 우주적 시간의 잣대로 보면 인간은 반드시 영원히 살아남아야 할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타났다 스러질 무수한 종(種) 가운데 하나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멀찍이 물러선 채 조용히 저물어가는 인간의 역사를 관조하고 나면,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부대끼며 싸우고, 후회하고, 사랑하는 이 소란스러운 하루하루가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본 게시물은 아카(@aka_book_)님의 모집으로 디플롯(@dplotpress)에서 보내주시고 SF탐사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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