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별점별점별점별점
  • 읽고싶어요
  • 읽고있어요
  • 읽었어요
<그때 그 아이, 침묵을 깨다> 서점순, 긱
-
<그때 그 아이, 침묵을 깨다> 서점순, 긱




🕯️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면 대체로 사소한 장면들만 그려진다. 따스한 안방 냄새, 현관문 너머로 들려오던 가족의 목소리, 해 질 녘 자주 산책하던 골목길과도 같은 사소한 일상들 말이다. 그러나 서점순 작가의 『그때 그 아이, 침묵을 깨다』를 읽다 보면, 그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다는 사실조차 누군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종의 특권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이 책의 등장인물처럼 어떤 이에게는 유년 시절에 겪은 일이 너무 끔찍해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
열한 살 무렵, 작가는 가족과 강제로 헤어져 사찰과 수용 시설에서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학대를 겪은 뒤 프랑스로 해외 입양되었다. '납치', '감금', '폭행', '해외입양'과 같은 단어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 압축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충격적인 사건 자체를 독자들로 하여금 그저 소비하라고 쓰여진 글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무력한 아이가 그 참혹한 비극 이후의 아득한 시간들을 어떻게 버티고, 마주하며, 마침내 오늘까지 걸어왔는지를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주기 떄문이다.


🕯️
과거의 상흔은 결코 기승전결이 선명한 서사로 기억될 수는 없을 것이다. 특정한 냄새, 순간의 감각,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과 중간중간 끊어진 장면들이 느닷없이 플래시백처럼 튀어나와 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흔들고야 만다. 잊었다고 믿었던 안 좋은 기억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내뱉을 수 없는 비명이 되어 몸 어딘가에 깊이 봉인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침묵을 깨다'라는 행위는 단순히 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건의 진상을 세상에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오랫동안 외면하고 버려두어야만 했던, 상처 입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비로소 온전히 끌어안는 숭고한 수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성장한 저자는 자신의 뿌리와 소속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가족과 함께 있던 아이, 시설에 갇혀 있던 아이, 프랑스라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어른이 하나의 생 안에 어지럽게 공존하지만, 그 어떤 한 단어로도 자신을 완벽하게 설명해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책에 한국어와 영어가 나란히 수록된 구성 역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단 하나의 국적이나 언어의 틀 안에 갇히지 않는 저자의 외롭고도 단단한 정체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구성이랄까.


🕯️
이 소설 같은 실화는 되돌릴 수 없는 잔혹한 시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기록하여 스스로 삶의 정직한 증인이 되기로 결심한 한 인간의 존엄이 서려 있다. 얇은 분량임에도 결코 서둘러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책이었다. 타인의 거대한 고통을 자극적인 드라마처럼 소비하지 않도록, 몇 번이고 읽는 속도를 스스로 늦추려 노력했다.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감정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그때 그 아이'의 이름을 온전히 불러낸 한 사람의 담담하고도 위대한 용기라고 할 수 있겠다.






* 이 책은 모도님(@knitting79books)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 : 긱 출판사(@geek_publishing)




#그때그아이침묵을깨다 #서점순 #긱 #해외입양 #서평단

비밀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