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망상해
도림.
한동안 나는 너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지.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거지. 네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이상.
성은 도 이름은 림.
소설 『도넛』은 사전 정보 없이 읽어 나갔어. 서점사가 나의 취향을 특별히 고려해 신간 목록에 너의 조물주 장진영의 신간이라고 올려놓았잖아. 이상하고 미친 사람들이 등장해 나만 미친 게 아니라 다 같이 미쳐 있구나 안심하게 해주는 장진영의 세계관을 나 역시 좋아하지. 그러니 『도넛』을 읽어야지. 혹시.
도넛도. 성은 도 이름은 넛?
썩은 표정 짓지 말아 줄래. 이런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도 알아. 내 정신 상태가 멘헤라인 걸. 그런 말은 어떻게 알았냐고. 말야. 무한한 비정형의 사이버(요즘 이런 말 안 쓰나)의 세계를 정신없이 탐닉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거지. 그런 거지.
(미친)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 영화, 드라마를 좋아해. 좋아해. 많이 좋아해. 《레이디 두아》도 《작은 아씨들》도 《구경이》도. 《도어락》도. 《낮과 밤이 다른 그녀》도. 잠깐 보다가 잠시 내려놓은 《가공 OL 일기》도. 뭔가에 미쳐 있다는 것. 뭔가에 미친 줄도 모르고 미쳐 있다는 것. 미쳐야 미친다도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영화 《드림》에서 아이유가 그랬잖아. 미친 세상에 미친 사람이면 그게 정상 아니냐고. 예쁜 사람이 말한 거니까 맞말이잖아.
미친 세상에 미쳐서 살아가니까 도림이 너도 나도 정상이야. 그러니 자아 비대와 자의식 과잉인 상태여도 괜찮은 거야.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니. 세상도 부모도 학교도 직장도 애인도 다 나를 버리고 버리려고 하는데.
도림아 왠지 있잖아. 나는 너를 활자로가 아닌 영상으로도 만날 것 같다. 그럼 소설가 선생 장진영의 가계는 좀 나아지겠지. 그렇겠지. 내가 뭘 알겠어. 빚쟁이인 주제에. 얼마 전에도 통장 만들러 갔다가 거절하지 못해서 신용카드 하나 만들고 온 내가. 은행은 내가 빚쟁이인 거 알고도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네. 부처님보다 더 자비롭단 말이지. 돈 더 많이 써서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건가. 그건 자신 있어.
낌새가 있었지만 설마 그렇겠어. 근데 내 예감이 맞는 거겠지. 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읽어가다가 같이 미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감탄브라랑 마리끌레르 하트플리스 후드 집업 결제했잖아. (그런 거 사지 말고 빚이나 갚으라고 말하지마라 제발.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니라 어차피 어떻게든 안돼. 그러니 후즐근하고 답답한 브라 정도는 버리게 해줘야지) 우리 다 같이 미치자. 너만 미쳐서야 되겠니. 그런 마음인 거지. 내 맘 알지.
또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러갔네. 도림아 조만간 너 넷플릭스 시리즈로 올라올 것 같아.(근데 내 넷플릭스 계정 자꾸 해킹 하는 놈 누구야. 진짜 세상이 말세다 말세야. 넷플릭스도 끊어야 빚 갚을 수 있다고 지랄 떨지 말아주라. 이번 생에 해결 안 된다니까) 주인공은 심은경이나 고아성 어때? 내 마음대로 캐스팅. 감독이 나라면.
내 망상은 누가 나를 죽였고 내 행세를 하고 다니면서 사고를 저지른다는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의 내 상황이 말이 돼???????????
도림의 망상은 도넛을 만들었는데.
나의 망상은 나를 죽이는 비생산 끝판왕을 달리네.
세상이 다 나를 억까 하는 와중에도 소비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내 돈 내산 『도넛』을 읽는다.
도림에게.
(다들 『도넛』 읽어봐. 내 머릿속의 미친년을 장진영에게 외주화했더니 근사한 작품으로 들고 온 거잖아. 나는 글렀어. 이제 아무것도 못 써. 서류에 이름 석 자만 적을 줄 알지. 일요일에 대출 이자 올리겠다는 톡은 왜 보내는 건데. 진짜 죽고 싶냐. 계약직으로 일하고 싶다고 두 번이나 지원했는데 면탈 시켰으면 그만 좀 해라. 미친 은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