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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rca
  • 5월 16일 오후 7:17 공개
폭력적인 남성성을 낱낱이 해부한 걸작
실물 보고 두께에 기가 막혀서 웃음이 터진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
너무 흥미로워서 앉은 자리에서 400페이지를 읽었다.
다음은 예전에 기록해 두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인터뷰다.


​"The most dangerous animal in the world is man. Because other animals will hurt you if they are hungry or it's their nature of hunting. But man can turn into an animal in no time. All he needs is permission. As soon as permission is given from higher ups in the government, it accelerates. Even a hint of permission that it's ok to attack this group, or exclude this group, or shame that group. It's happening. It's never stopped."


​<남성 판타지>는 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통찰력을 그야말로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허락만 떨어지면, 윗선에서 허용하면, 그래도 된다는 '암시'만 있으면 끝도 없이 폭주하며 공격하고 차별하고 억압하는 남성들의 폭력성.' 이들에게 윗선이란 '무기, 조직, 군대, 검찰, 종교, 이념, 법률, 제도, 민족, 국가, 인터넷 커뮤니티' 등 자신들의 비루한 자아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총체성을 지닌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저자는 딱히 페미니즘 관점에서 폭력적인 남성들을 분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석하면서 결국 딸려 나오는 것은 이들에게서 잘려 나간 '원형적 여성성'이다. 권위적이고 위계적이며 획일화된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남성성과 정반대되는 것. 상호적이고 자유롭게 어울리며 화합하는 생명력 넘치는 흐름. 이러한 '원형적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들은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마음대로 행동하는 생명력 넘치는 여성을 두려워하고, 여성을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생명력 없는 '시체'로 만들고 싶어 한다. 저자의 탁월한 분석을 통해,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 같은 발언부터 '약물을 이용해 의식이 없는 상대에게 저지르는 성범죄와 N번방처럼 협박을 통한 노예화 및 성착취'까지, 남성들이 내뱉는 말과 저지르는 범죄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와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고 어울리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대신, 상대를 대꾸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시체 상태로 만들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불구와 다름없는 자아.


"이런 유형의 인간은 일찍이 없었던 적이 없다. 미처 다 태어나기도 전에 모성에서 뜯겨나가면서 생겨난 원형적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실패한 자아는 근원적이다. 덜된 인간의 비루하고 박살 난 자아는 언제나 겁에 질려 있다. 그래서 자신을 혹독하게 묶어서 유지해줄 갑옷을 밖에서 구한다. 무기, 조직, 군대, 검찰, 종교, 이념, 법률, 제도, 민족, 국가 등등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개개인으로 보잘것없는 인간들을 단단히 뭉쳐서 총체성과 위계성으로 우뚝 서게 만들어주면 된다. 하나가 되어 힘을 얻으면 이들은 반드시 폭력을 휘두른다. 이들의 언어는 욕설이다. 논리는 궤변이다. 권력은 버젓이 남용한다. 힘은 옳다. 희생자가 죄인이다. 이들은 폭력을 통해서 쾌락을 생산한다. 쾌락을 마약처럼 소비하면서 비루한 자아가 일으키는 고통을 잠시 잊는다. 망각이 사라질 때면 다음 폭력이 절실해진다. 이런 인간은 원래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이념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들이 급속도로 뭉치면서 발흥하게 하는 시대적 조건이 있을 뿐이다. 이들이 시대를 용케 잘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야 마는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남성 판타지>가 보여주는 보편성이자 현재성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극우 남성들을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지만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극우가 아닌 남성들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짚는다.


"이는 실로 놀라운 현상이다. 매춘과 여성 문제에 대해서 "반동적" 남성과 "혁명적" 남성이 특이하게도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들이 체화하고 있는 "남성성"이라는 공통성 때문에 극복 불가능한 정치적 차이와 계급적 모순이 극복 가능해진 것이다." 이들의 공통성은 공포에 기반하고 있다. 남성의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이다. 자신들을 지배해온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복수할까봐 두렵다.
...우리의 연구 대상인 남성들은 다른 남성들로부터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가부장제라는 빙산의 꼭대기를 구성하고 있다. 물 전체를 차갑게 만드는 것은 수면 아래의 대다수 남성이다."


<남성 판타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활동했던 우익 민병대 조직 자유군단의 남성들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폭력성을 드러낸 남성 가해자들을 연구함으로써 오히려 '폭력적인 남성성'이 특정한 성향의 남성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사실상 가부장적 마인드를 내재화한 모든 남성이 품고 있는 문제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가부장제와 파시즘은 별개가 아니다. 가부장제에는 늘 파시즘이 스며 있었다. 가부장제가 서서히 무너져가는 시점에 파시즘이 다시금 빳빳하게 고개를 쳐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를 발밑에 두고자 차별하며 억압하는 무리가 또 다른 집단에게도 차별과 억압을 가하는 것은, 다양성에 발작하는 것은, 해체되는 갑옷에 자유로워질 생각은커녕 억지로 부여잡고 세상을 폭력으로 물들이려고 하는 것은. 무려 50년 전에 쓰인 <남성 판타지>는 지금까지 가부장적 사회가 언급하기조차 꺼려했던 ‘남성의 폭력성’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지금까지 출간이 밀렸을지 모르는, 오히려 그래서 더욱 시의적절하게 출간된 이 가해자 남성들에 대한 연구서는 지금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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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자냥님도 <남성 판타지>를 재미있게 보고 리뷰를 남기셨네요. 리뷰를 읽어보시겠어요?
  • 2026-05-16 19:17 좋아요  l  좋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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