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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4일 오후 9:05 공개
승리로 나아가기 위한 불계패

"저는 자유로워질 거예요. 설령 아주 불행해진다 해도 좋으니 자유롭게 저만의 인생을 살 거예요."


SNS의 대중화로 비교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온전히 '나'를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강하고 화려하고 반짝이는 듯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호구>는 세상이 부과하는 욕망이라는 파도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을,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이 될 것인지'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하는 십 대를 통해 교실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섬세하게 그려낸다.
주고받는 시선과 오가는 말 속에서 적당히 평범한 범주에 들지 않으면, 소심하고 어리숙한 면을 보이면 무시당하고 웃음거리가 되고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곳.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완벽하게 축소한 이 작은 정글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휘둘리다 보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 사이를 흘러가는 갖가지 복잡한 감정을 두 가지로 압축하면 '우월감'과 '열등감'일 것이다. 똑같은 것의 다른 이름. 우월감을 느끼려면 반드시 발 아래 깔리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늘 힘이라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은 아래로 흐른다. 자기보다 작고 여리고 어리숙해 보이는 이들을 때리고 깔보고 무시함으로써 자신은 작지 않고 여리지 않고 어리숙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그 뿌리는 열등감에 있다. 무시당하거나 짓밟히고 싶지 않다는 욕구는 열등감에서 싹튼다. 힘을 가진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을 수 있는 위치에 서면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열등감을 발판 삼아 얻은 우월감이란, 타인에 대한 무시와 폭력을 동반하는 강함이란 결국 나약함에 지나지 않는다. 겨우 작고 여리고 어리숙해 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세 보이고 싶어서 휘두르는 나약함.
우리는 이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어리석은 굴레 속에서 늘 우리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욕망에 휘둘리며 서로를 부러워하고 경멸하고 괴롭힌다. 가해자로, 피해자로, 조력자로, 방관자로 이따금 자리를 바꿔가면서. 그러다 문득 누군가는 생각에 잠긴다. 명예와 돈, 권력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는 행복은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불공평한 세상이, 불공평함이 낳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원동력 삼아 계속 굴러가기 위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불어넣는 욕망인가?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애초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세상이 보여주는 화려한 것들에 휩쓸리다가 ‘나'를 보면 너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화려한 것들을 걸친다고 내가 화려해지지는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기에, 어떻게 해도 다른 사람은 될 수 없기에 그냥 내가 되기로 한다. 타인의 기준, 타인의 시선, 타인의 말, 타인의 평가로 나를 짓누르려는 세상에서 나를 알아가고 나를 받아들이면서 나의 기준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로 삶을 채우며 살아가기로 한다. 마지막까지 온전히 내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나뿐이므로, 삶이란 결국 나로 향하는 여정이다.


"나는 호구다. 개자식이기도 하다. 겁쟁이에 위선자, 전부 나를 일컫는 말이다. 과격하고 음침하다. 그런 주제에 욕심은 더럽게 많다. 작은 것 하나에도 목숨을 건다. 쉽게 사는 법 따위는 모른다. 그렇게 살았는데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이제 내가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심호흡하고 돌을 둔다. 손끝에 힘을 실어 탕, 기세 좋게 둔다."


그렇기에 <호구>의 주인공 윤수가 힘과 돈, 욕망, 행복에 선언한 '불계패'는 오히려 승리를 향한 신의 한 수다. 끊임없이 우월한 위치에 서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부추기고 똑같은 삶의 모습을 행복이라는 이름의 욕망으로 불어넣는 세상에서, 나약함을 힘으로 착각하고 휘두르는 겁쟁이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불행하더라도 끝끝내 나로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은, 그렇게 살아낸 삶은 승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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