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나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거의 어느 지점을 자꾸 맴돌다보면, 그 끊임없는 복기가 신비한 파동을 만들어낸다. / p.15
이번 주말에 SNS를 보다가 독서 기록을 AI에 프롬프트로 입력하면 보고서처럼 써 주는 게시물을 보았다. 읽은 책이 워낙 많아 몇 차례 오류가 났지만, 결국 분석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많은 분석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그중 눈에 띈 것은 '로맨스를 즐겨 읽지 않는다'는 대목이었다. 인생 소설 중 하나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인 독자로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조금은 색다른 로맨스 장르를 다루는 듯한 이 책은 윤고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인데,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인 <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작품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 작가님의 소설들은 나름 재미있게 읽은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신작을 먼저 접하기로 마음을 먹고 선택하게 되었다. 푸릇푸릇한 표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아와 태오, 자동화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사람이다. 미아는 생존가방을 기획하고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며, 태오는 지하철 인턴이다. 두 사람은 러닝대회를 계기로, 업무로 만나 서로에게 감정을 키워간다. 테니스 나무처럼 푸릇푸릇한 사랑으로 펼쳐질 것만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태오의 게시글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조금씩 균열이 간다. 사랑은 과연 유지가 될 수 있을까.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로맨스 장르로 알고 시작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 SF 장르의 분위기를 느꼈다. 소설의 세계관이 처음에는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난 다음부터는 페이지가 쉽게 넘어갔다. 그래도 얇은 분량이라 부담이 없었고, 몰입감이 좋았던 소설이었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색다른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태오의 글로 벌어지는 사건이 인상적이었다. 지하철 K선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태오는 이를 발견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SNS에 게시했는데, 그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회사에서는 태오를 지켜 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 사건을 두고 악성 댓글을 달았다. 소설 속 허구의 세상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 유일한 장면이었다. 이게 지금 사회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게 내내 기억에 남는다.
나쁜 일을 겪고 나면 인간은 성장하기도 한다. 더욱 성숙해지고, 비슷한 일을 가볍게 넘기기도 한다. 태오와 미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들의 사랑보다는 각자의 발전을 더욱 응원하게 되었다. 이게 단순한 로맨스로 읽히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두고 보니 사랑의 결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로맨스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결이 다른 사랑 이야기를 기다려 온 독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