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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위인전
브람스의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국내에 브람스 관련 서적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지금 당장 서점에서 구입 가능한 책 중 브람스의 삶에 대해 조명하는 것은 바로 작가 이성일의 <브람스 평전>이 전부이다. 연주회에 브람스의 곡이 상당히 자주 올라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매우 놀라운 상황이다.



풍월당에서 출간된 <브람스 평전>은 2001년 파파게노에서 출간된 동일 작가의 저서 <요하네스 브람스: 그의 생애와 예술>를 증보, 개정한 책이다. 대부분의 문장이 다듬어졌고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으니 이전의 책을 이미 읽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일 작가는 80년대부터 여러 지면에 다양한 글을 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주요 분야는 브람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이상의 정보를 찾아볼 수 없어 정확히 작가가 어떤 전공을 했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가 어느 정도의 전문 지식을 갖추었는지 적어도 그가 살아온 궤적을 통해 알 수는 없었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 간에 그가 브람스의 진득한 팬이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사실 수많은 자료들을 종합해 한 권의 평전을 써낸다는 것은 특정 주제를 전공한 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과연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이가 쓴 평전을 신뢰할 수 있을까? 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 초연된 장면을 살펴보자.


마침내 역사적인 순간, 1868년 4월 10일 성금요일이 되었다. 악보 한 단 뒤면 브람스가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게 되는 시점이었다. 연주회의 명칭은 언론의 보도대로 '징아카데미의 거룩한 콘서트(Ein geistliches Konzert der Singakademie)'였는데, 브람스가 자신의 《독일 레퀴엠》을 지휘하고 라인탈러가 그 밖의 프로그램 곡목들을 지휘하도록 되어 있었다. 브람스의 역사적인 공연이 시작될 브레멘의 하늘은 유난히 성스러웠고 아름다워 보였다.
[...]
청중석이 정리되고 연주 시간이 임박하자 브람스는 교회 문 앞까지 걸어 나가 클라라의 팔을 꼭 잡고 본당까지 안내했다. 두 사람은 너무 다정해 보여 마치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신부를 에스코트하는 것 같았다. 둘 사이의 관계를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청중들도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에 흐르는 각별한 정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중하게 클라라를 자리에 앉힌 브람스는 두벅두벅 걸어가 지휘대에 섰다. 입을 꼭 다문 브람스의 표정은 다소 심각해 보였다. 단원들을 주목하게 한 후 브람스는 다시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었다. 교회 안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 그 정적의 허공으로 이내 브람스의 지휘봉이 높이 올라섰다.
지속음를 타고 첼로와 비올라과 현 악기군의 어두운 선율이 울려서 정적을 파고들었다. 성도들은 슬픔에 잠겨있는 듯한 표정으로 레퀴엠의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성도들은 죽음의 합창곡이 노래하는 성경 말씀만도 잊을 수 없는 계시록의 성서 구절을 들었다. [...]
주위 사람들에게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클라라는 이 레퀴엠이 브람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과 추모의 정을 담고 있는 작품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
클라라는 브람스가 어머니를 얼마나 믿고 의지했으며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라의 눈물에는 남편 슈만의 영상도 맺혔다. 브람스가 이렇게 웅장하게 비상하는 모습을 봤다면 남편은 얼마나 대견해하며 좋아했을까? 꼭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그 뼈아프게 절절한 느낌은 그녀의 눈물샘을 한껏 자극했다. 클라라는 1853년 남편 슈만이 <신음악지>에 브람스를 위해 써 주었던 기사 「새로운 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
그날 성금요일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덕분에 온통 경외와 은총의 분위기로 충만했다. 브람스의 레퀴엠은 한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느끼는 깊고 진지한 고백이었고, 브레멘 교회의 청중들은 이 위대한 음악가의 진실한 마음을 들었다. 그들은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 중의 하나가 바로 북독일의 한 음악가에 의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음악회에 모인 청중들이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연주회장의 그 숙연한 분위기는 브레멘 교회 역사상 아주 드문 일이었다. 브레멘 교회의 그날 레퀴엠 초연은 한마디로 기념비적인 대성공이었다.
[...]
연주회가 끝나고 브람스의 아버지 요한 야코프는 교회 밖에서 코담배를 피우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아들의 연주회가 어땠냐고 묻자 그는 "그리 나쁘지 않았소"라며 북독일 특유의 무뚝뚝한 억양으로 대답했다. 오랫동안 부인과 별거 중이었고 결국 그 상태에서 부인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였다. 아들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런 대곡을 썼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대부분의 청중을 울린 아들의 연주회에 참석했던 요한 야코프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276-283쪽


<브람스 평전>에서 그리는 <독일 레퀴엠>의 초연 장면은 잰 스와포드의 <요하네스 브람스 전기>에서의 묘사와 상당히 유사하다.


공연 직전, 브람스는 성당 입구에서 클라라의 팔을 잡고 그녀와 함께 중앙 통로를 걸어 올라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백 명 중 많은 이들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통로를 함께 걸어가는 그 순간에는 마치 결혼식과도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 끝은 반지와 서약이 아니라 음악의 성스럽고 경건한 헌정으로 마무리되었다.
클라라를 자리에 앉힌 후, 브람스는 지휘대에 섰다. 정적이 흐르고, 브람스가 지휘봉을 올리자 베이스의 조용한 맥박이 시작되었고 첼로와 비올라의 부드러운 선율이 솟아오르고 내려앉았다. (브람스는 이 어두운 곡에서 밝은 음색의 바이올린을 배제하였다.) 청중들은 처음으로 이 레퀴엠의 목적이자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예고하는, 단순하고도 잊을 수 없는 합창단의 말을 들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성당의 메아리치는 공간 속에서 첫 악장은 고요하게 펼쳐졌다. 그 안에는 방대한 섬세함이 고귀한 단순함 속에 감싸여 있었다. 전적으로 브람스적이면서도, 이 곡이 갖춘 온화한 부드러움은 브람스의 그 어떤 작품과도 달랐다. 동시에 이 음악은 독일 종교음악의 전 역사를 머금고 있다. 베토벤의 장엄 미사를 지나, 모차르트와 하이든, 바흐와 헨델을 거쳐, 더 멀리는 한 세기 앞선 하인리히 쉬츠의 엄숙한 중후함까지, 그리고 다시 르네상스 시대 독일과 이탈리아의 다성 작곡가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청중들은 성금요일에 경외와 은총의 분위기 속에서 브레멘 대성당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들은 음악과 인류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무언가의 탄생에 함께했다는 생각을 품었을지 모르겠다. 좀 더 직접적인 반응은 한 관객으로부터 나왔다.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고, 클라라와 요아힘,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본 뒤였다. 그는 밖에서 코담배를 한 움큼 들이키고 있는 요한 야코프 브람스를 발견했다. 그가 요한 야코프에게 아들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물었다. “나쁘진 않더군." 노인은 코담배 탓인지 코를 훌쩍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Jan Swafford, , pp. 328-330


문제는 잰 스와포드의 브람스 전기가 그리 학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스와포드는 자신의 브람스 전기를 마치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는 길고 긴 <독일 레퀴엠>의 초연 장면에서 스와포드는 클라라의 다이어리를 인용하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그 어떤 참고 자료도 알려주지 않는다. 마거릿 노틀리는 미국 브람스 협회 뉴스레터(Vol. 18-1, 2001)에서 스와포드의 전기가 학문적인 면에서 "전반적으로 충분히 신중하거나 철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의견을 밝혔는데, 스와포드가 "자주 공상에 빠지"는 통에 "어떤 관점이 자료를 통해 뒷받침되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정확히 같은 지적을 <브람스 평전>에 내리고 싶다.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하지만 그것이 실제인지, 혹은 저자의 상상인지 독자의 입장에선 전혀 알 수가 없다. 결국엔 이 책의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 의심의 눈초리를 뗄 수가 없게 된다.



브람스의 키가 "기껏해야 153센티미터 정도"(485쪽)라는 증언은 누구의 것일까? 브람스의 친구 구스타프 오퓔스는 브람스의 키를 170 정도로 추정하였고, 플로렌스 메이는 브람스가 "평균 키보다 작다"라 썼으며 차이코프스키는 브람스가 "평균 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브람스의 키가 5피트라고 증언한 인물은 누구일까? 비록 책의 말미에 꽤나 충실한 참고문헌을 제시함에도 이 책의 본문에는 인용을 전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참고한 내용인지, 어디까지가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인지를 알 수 없다. 출처의 부재는 내용 검증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이 책을 학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몇몇 학위 논문에서 본 책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애석한 일이다.



이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이 스와포드의 전기에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브람스가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유흥가에서 피아노를 치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눈에 띈다.


열세 살이 된 1846년부터 브람스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 떠들썩한 선원들과 실내를 가득 채운 취기로 북적대는 술집에서 열세 살 먹은 아이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돈벌이를 해야 했던 것이다. [...] 브람스는 밤만 되면 그렇게 취객들이 들끓는 유흥가를 전전하며 음악을 파는 소년에 불과했다.
[...] 소년이 일하는 술집에서는 불미스러운 일도 많이 벌어졌고, 돈벌이에 나선 매춘부들의 나쁜 유혹도 많았지만, 어린 브람스는 결코 중심을 잃지 않았다. 어렵고 아픈 현실 속에서도 그가 소신껏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 그의 순수한 영혼의 질감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58-59쪽


찰스 로젠은 1999년 자신의 아티클 Aimez-Vous Brahms? 에서 스와포드의 전기를 리뷰하며 브람스가 선원들이 자주 가던 술집에서 일했던 이야기는 명백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쿠르트 호프만의 저서 <요하네스 브람스와 함부르크>에서 반박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호프만의 책은 <브람스 평전>의 참고 문헌에도 실려있다. 작가는 이 반박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쉽게도 책에서 자세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으니 알 수가 없다.



여기에 덧붙여 이 책의 신뢰성을 다시 한번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을 꼽자면 클라라 슈만의 장례식 관련 내용을 들 수 있다. 461쪽에서 저자는 브람스가 열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결국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브람스는 실제로 열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본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참석하였다. (Thomas Synofzik, The Schumanns, , p. 21) 그런데 저자는 463쪽에서 "클라라의 장례식에서 노래하는 브람스"라는 사진을 소개한다. 그런데 저자는 브람스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두 쪽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책을 편집, 교정할 때 아무도 이걸 눈치채지 못한 걸까? (사실 이 사진은 클라라의 장례식에서 노래하는 브람스의 모습이 아니다. 이 사진은 클라라의 장례식 직후 근교 바트 호네프에서 찍힌 사진이다. 브람스는 장례를 치룬 후 그곳에서 며칠동안 머물렀다.)


작가는 이어 브람스가 무덤가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기민맥진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클라라를 위한 것이라며 노래 한 곡을 불렀다."(461쪽)고 썼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브람스가 추모의 노래를 부른 것은 장례식 다음날 하거호프 저택에서였다. (Heinz von Beckerath, Josef Eisinger (trans.), Remembering Johannes Brahms: Brahms and His Krefeld Friends, , p. 374)



책의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문제를 뒤로하고 본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두께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브람스를 "순수한 영혼"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브람스를 향한 사랑이 너무나도 컸던 탓일까? 저자는 브람스에게 불리한 내용들을 숨기곤 한다.



대표적으로 89-90쪽에 나오는 브람스와 리스트의 만남을 들 수 있다. 저자는 브람스와 리스트의 첫 만남을 대부분 알려진 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의 마무리에서 우리는 갑작스럽게 저자의 견해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일화는 그 현장에 있던 리스트의 미국인 제자 윌리엄 메이슨(William Mason)의 시각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즉 리스트 추종자의 시각에서 전해진 것이기 때문에 당시 브람스가 리스트의 음악을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고 어떤 말을 했는지를 공정하게 알기는 어렵다. 메이슨이 이 당시 상황을 브람스의 입장에서 서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 상황을 그려 보면, 리스트는 수줍어하는 브람스를 완전히 제압한 뒤, 브람스가 자신의 실력에 매료되어 제자로 받아 달라고 무릎이라도 꿇지 않을까 싶었을 것이다.
90쪽


여기서 작가는 메이슨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리스트의 마음을 너무나도 쉽게 지레짐작한다. 만약 메이슨의 증언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우리는 메이슨이 적어도 이 사건을 공정하게 바라보려고 자신의 기억을 다른 이에게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1853년의 브람스

1853년 6월 초 어느 날 저녁, 리스트가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큰 재능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요하네스 브람스라는 인물이 방문할 예정이라며, 다음 날 아침 알텐부르크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보냈다. 그는 에두아르트 레메니와 함께 올 예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클린트보르트와 함께 알텐부르크로 갔다. 그곳 접견실에는 이미 브람스와 레메니가 라프, 프루크너와 함께 있었다. 레메니의 명성은 이미 우리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나는 방 한쪽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악보들을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브람스의 아직 출판되지 않은 작품들이었고, 나는 가장 위에 놓인 악보의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아노 솔로곡인 "내림 마단조 스케르초, 작품 번호 4"였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글씨가 매우 알아보기 어려워서, 만약 이 곡을 공부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먼저 필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마침내 리스트가 내려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브람스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준비가 되고 연주하고 싶은 기분이 들면, 당신의 작품 몇 곡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리스트 앞에서 긴장하다

브람스는 매우 긴장되어 보였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는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리스트와 레메니가 간곡히 권유했음에도 브람스는 피아노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이야기에 진전이 없자 리스트는 테이블로 가서 가장 위에 있던 그 읽기 힘든 스케르초의 악보를 집어 들고 “그렇다면 내가 연주해야겠군.”이라고 말하며 그 자필본을 피아노 보면대에 올렸다.
우리는 리스트가 초견에 매우 능하다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고 이 분야에서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지만, 라프와 나는 이 사건이 뜻밖의 실수로 이어질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리스트가 악보를 피아노에 올려놓을 때 나는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몰라 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게 연주했다. 동시에 음악에 대한 비평을 곁들여가며 연주했기에 브람스는 감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라프는 브람스의 이 스케르초가 쇼팽의 "내림나단조 스케르초"를 연상시킨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만큼의 유사성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브람스는 자신이 쇼팽의 작품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리스트는 브람스의 "다장조 소나타, 작품 번호 1"의 일부도 연주했다.



리스트가 연주하는 동안 졸다

조금 후 누군가 리스트에게 자신의 소나타를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곡은 당시 리스트의 새로운 작품으로 그가 매우 아끼는 작품이었다. 리스트는 망설임 없이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가 진행되면서 매우 표현적인 부분에 이르렀다. 그 부분은 리스트가 항상 극도의 열의를 담아 연주했으며, 듣는 이들의 특별한 관심과 공감을 기대했던 곳이다. 이때 리스트가 브람스를 바라보았고, 그는 브람스가 의자에 기대 잠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아챘다. 리스트는 소나타의 끝까지 연주한 후 조용히 방을 나갔다. 나는 위치상 브람스가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레메니가 나중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다.
이상하게도 리스트–브람스 첫 만남에 대한 다양한 회고들 가운데, 이 사건을 정확히 기술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기록들은 실제와 거리가 멀었다. 나는 이 사건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나의 기억만을 신뢰하길 꺼려 당시 목격자들 가운데 살아있던 유일한 친구, 클린트보르트에게 편지를 보내 확인을 요청했다. 그는 내가 기억한 모든 내용을 사실로 확인해 주었다. 다만 클린트보르트는 브람스가 졸았던 사실을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었고, 브람스가 이 일이 있었던 당일 바이마르를 떠났었다는 내 기억과는 달리 클린트보르트는 브람스가 그다음 날 아침에 바이마르를 떠났다고 언급했다는 작은 차이가 있었다.
William Mason, , pp. 127-131


애석하게도 작가는 <브람스 평전>에서 리스트가 자신의 소나타를 연주하는 동안 브람스가 졸았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의 공정성은 브람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일까?



또 다른 예로 브람스와 바그너 사이의 일화가 있다.


한때 브람스는 바그너의 「탄호이저」친필 총보까지 입수했는데, 그 일로 인해 그의 음악 자료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친필 악보는 바그너의 승낙 없이 매매된 것이었다. 그런데 브람스는 그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작곡가에게 돌려주기를 몹시 꺼렸다. 이 일화는 그가 바그너의 작품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브람스의 음악 자료 수집 취미가 대단했으며, 일단 구한 자료에는 얼마나 강한 애착을 보였는가를 말해준다.
507쪽


<브람스 평전>에서의 내용만을 본다면 마치 브람스가 매우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장물임을 모른 채로 사비를 들여 구매했다면 당연히 돌려주기 싫을 것 아닌가?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리스트의 제자였던 타우지히가 바그너의 자필본을 브람스에게 무단으로 선물이랍시고 주었던 것이다. 물론 브람스에게도 억울한 일이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브람스는 페터 코르넬리우스와 코지마 리스트(당시엔 뷜로의 부인)에게 반환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았음에도 "타우지히가 선물로 주었다"라는 이유로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875년에 이르러서야 바그너가 브람스에게 다시 한번 자필악보의 반환을 요청했고, 브람스는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받아들이게 된다. 브람스는 바그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875년 6월

[...]
당신이 저의 보물과도 같은 자필 컬렉션을 훔치고 있으니, 제 장서에 당신의 또 다른 작품 하나를, 어쩌면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될 수 있겠네요, 추가할 수 있다면 매우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Styra Avins, , p. 477


바그너는 어쩔 수 없이 브람스에게 금박으로 장식된 가죽 커버를 가진 <라인의 황금>의 특별판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는 여기에 비꼬듯 다음과 같이 써넣었다. "존경하는 요하네스 브람스에게, 못생긴 자필 대신 보내는 상태 좋은 대체품. 1875년 6월 27일 바이로이트."



어느 인물이든 삶을 살아가면서 올바른 일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전'을 표방하는 책에서 좋지 않은 일들을 숨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그 책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에 대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슬그머니 넘어간다거나 [...] 하는 비전문가의 꼼수는 철저히 배제했다."(8쪽)고 밝혔는데, 브람스의 흠은 중요하지도 어렵지도 않으니 슬그머니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여기서 지적된 사실들을 몰랐다고 해도, 알았다고 해도 둘 모두 이 책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리라.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가장 읽을만한 부분은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작가의 수필이다. 작가가 브람스를 주제로 독일을 일주한 내용은 꽤나 흥미롭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이라면 그를 따라 브람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는 과연 어떤 책을 쓰려고 한 것일까? 평전일까, 아니면 위인전일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이 책은 위인전 내지는 브람스를 소재로 한 소설에 가깝다. 이 두꺼운 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에 읽을만한 브람스 서적이 없다는 것이 매우 애석하다. 가까운 시일 내 어느 출판사든 믿을만한 브람스 전기를 번역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거릿 노틀리가 스와포드의 전기를 리뷰하며 했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물론 노틀리는 이성일 작가의 책을 알지 못하겠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노틀리의 놀라운 관점은 이 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가가 가진] 주제에 대한 명백한 애정, 기본적인 문체의 우아함, 그리고 이따금 드러나는 독창적인 통찰력 때문에 이 책은 오히려 실망스러운 독서 경험을 안겨준다." 물론 <브람스 평전>은 풍월당의 다른 벽돌책들이 그러하듯 그 고급스러운 분위기 덕에 책장을 장식하는데 매우 적합하긴 할 것이다.



이성일 지음
752쪽 | 162*224*51mm | 양장본, 띠지 포함 | 정가: 45,000원 | 풍월당




  • brahms2017
  •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에 대해 과도하게 비난하신 글을 보니 조금 안타깝네요. 저는 이 책을 아마 10회 이상은 정독했을 거예요. 그만큼 좋아했고 많은 도움을 받은 책입니다.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제게는 특별한 책입니다.
    글을 워낙 길게 쓰셨기에 흥미로울 것 같아 자세히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감정이 많이 개입되어 있고, 몇몇 사례를 가지고 비판한 내용도 거의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저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아 외국 서적을 포함해 여러 책을 읽어왔고, 나름대로는 이 분야를 조금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 쓰신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이 책과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서인지 비판의 내용이 좀 옹색하고 어설퍼 보입니다. 개미가 고목나무를 흔들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나무를 흔들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어설픈 관점이나 몇몇 내용을 가지고 전문 작가가 쓴 책을 송두리째 무시하려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요. 혹시나 이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책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피해를 줄까 봐 댓글을 달아봅니다.
  • 2026-09-05 00:22 좋아요  l  좋아요 0
  • 김민규
  • 근거 없이 옹색하고 어설프게 무시하려는게 누군지 모르겠네요. 제 글에 동의하지 않는건 좋습니다만 반박을 하실거면 제가 했던 것처럼 근거를 밝히세요. 누가 감정적이라는건지 원…
  • 2026-09-05 12:52 좋아요  l  좋아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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