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전공자들의 필독서
국내에 양질의 음악 서적이 흔치 않다. 이는 물론 출판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시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도 몇몇 출판사는 수준 높은 서적을 번역하여 내놓고 있는데 (특히 포노의 음악 서적들은 대부분 소장 가치가 뛰어나다), 그 와중에 본 책의 출간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쇼팽의 연주법에 관해 알고 싶다면 당연히 아이겔딩어의 본문을 제일 먼저 봐야 할 정도로 본문은 쇼팽 연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역작이다. 또한 단순히 쇼팽 곡을 연주할 때뿐 아니라 다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때도 유효한 조언들이 많이 담겨 있으니 쇼팽의 곡을 사랑하는 이뿐 아니라 피아노 전공자라면 무조건 읽어봐야 할 책이다. (단, 이 책은 초보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말해 둔다.)
쇼팽은 학생들이 둔감해지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내가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한다고 말하자, 그는 몹시 화를 내면서 세 시간 이상 연습 하는 것을 금지했다. - 뒤부아/닉스
54쪽
본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제1부는 쇼팽이 어떻게 피아노 연주의 기본 테크닉에 접근했는지, 그리고 제2부는 쇼팽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혹은 어떻게 연주되기를 원했는지를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자세히 알려준다. 이에 이어 부록으로 책의 꽤 많은 부분을 쇼팽이 제자들의 악보에 쓴 지시 사항을 알려주는데 할애하며, 쇼팽의 연주를 들은 동시대인들의 증언으로 마무리한다. 이 방대한 양의 부록은 제3부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쇼팽은 한 제자에게 이 <에튀드>[Op. 25 No. 1]의 분위기를 이렇게 환기시켰다. “상상해보게.” 그가 말했다. “어린 목동(牧童)이 폭풍이 다가오자 평화로운 동굴로 몸을 피하는 거야. 멀리서 비바람이 멀아치는 동안 목동은 갈대 피리로 조용히 어떤 멜로디를 불고 있다네.” - 클레친스키
121쪽
번역가인 김주원 교수는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매우 뛰어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쇼팽뿐 아니라 전반적인 클래식 음악과 피아노 연주에 조예가 깊은 만큼 본 번역의 질은 보장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번역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래 공피라 채널에 올라온 인터뷰를 보면 좋겠다.
[아마추어를 만나다 시즌2, Ep.1-2] 유럽문화학부 교수 김주원 편ㅣF.Chopin Trois Nouvelles Etudes No.2 in A-Flat Major
다만 아쉬운 점을 몇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저자의 이름의 발음을 두고 역자도 많은 고민을 한 것은 알고는 있지만, 필자가 저자의 지인인 로이 호왓(Roy Howat, 본 책의 영어판 번역가 중 한 명이자 편집자이다.)에게 질의한 결과 독일어에서처럼 아이겔딩어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2. 아이겔딩어의 본 책은 당연하게도 2018년 출간된 프리데리케 슈트라이허-뮐러(쇼팽의 <콘서트용 알레그로, 작품 번호 46>의 피헌정자이기도 하다.)의 방대한 편지는 참조할 수 없었다. (이 편지는 본 책의 324쪽에 언급되어 있다. “이 악보와 편지들은 빈의 공공 도서관 및 문헌 보관소도, 슈트라이허 가문의 후손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아이겔딩어의 서술과는 달리 이 편지들은 이후 빈 시립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슈트라이허는 쇼팽에게 받은 170회의(!) 레슨을 그 어떤 자료보다도 더 상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슈트라이허는 쇼팽 앞에서 탈베르크의 <모세 판타지>, 알캉의 <나를 사랑해줘요>, 리스트의 <니오베 판타지>, 그리고 <마제파>를 연주했다고 한다!) 본 편지는 아쉽게도 현재까지 독일어와 폴란드어로만 출간되었다.
3. 본 번역에 기초가 된 2006년 프랑스 판본에는 1986년에 출간된 영어판에 수록되어 있는 쇼팽의 피아노 교본 초고 전문이 빠져 있다. 어째서 이것이 프랑스 개정판에서는 빠져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이 교본에 대하여 같은 저자의 책이 이미 1993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한국판에서도 이를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교본은 코르토의 저서에 (아쉽게도 누락과 오류가 산재한) 전문이 실려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쇼팽을 찾아서(2019, 포노, 이세진 역)>나 혹은 영문판을 읽어 보면 좋겠다.
4. 다소 비싼 가격에도 소프트커버 책이라는 것은 조금 아쉽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도서출판 길이 잘 팔리지 않는 학술서를 주로 출간하는 영세 출판사인 터라 찍어 둔 책을 다 소진하면 증쇄를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본 책도 동 출판사에서 펴낸 카이에르스의 베토벤 전기처럼 웃돈 주고 중고를 사야 할 날이 곧 찾아올지 모르겠다. (그날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구입하기를!)
이런 사소한 문제를 뒤로 하고서 만약 필자에게 본 책을 구입해야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지금 당장 구매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