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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전기

음악책 불모지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도 베토벤의 위대함이 통한 것일까? 국내에는 꽤 많은 베토벤 서적이 출간되었다. 전기만 살펴봐도 메이너드 솔로몬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에드먼드 모리스의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제러미 시프먼의 <베토벤>, 얀 카이에르스의 <베토벤>, 발터 리츨러의 <베토벤>, 로맹 롤랑의 <베토벤>, 앙드레 부쿠르슐리에브의 <베토벤>, 심지어는 안톤 쉰들러의 <베토벤의 생애>까지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물론 안타까운 점은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절판되어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새로 출간된 로라 턴브리지의 책은 매우 반갑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베토벤의 아홉 작품을 통해 베토벤의 삶을 조명한다. 이들 작품은 다음과 같다. <칠중주, Op. 20>,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Op. 47>, <교향곡 제3번 '영웅', Op. 55>, <합창 환상곡, Op. 80>, <연인에게, WoO 140>, <피델리오, Op. 72>,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함머클라비어', Op. 106>, <장엄 미사, Op. 123>, <현악 사중주, Op. 130> 그리고 <대 푸가, Op. 133>. 놀라운 선곡 중 베토벤의 숨은 명곡 <칠중주>은 몇몇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발견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 책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이 곡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저작물이지 않을까 한다.



책 서두의 "베토벤의 재정 상황에 대하여"라는 짤막한 글은 이 책이 조명하고자 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즉, 턴브리지는 위의 아홉 작품을 통하여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악성 베토벤'보다는 1800년도 초반, 독일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하나의 인간상을 구현하며 더 나아가 "코다"에서 저자는 베토벤 사후 세계가 베토벤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간략히 서술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분명 흥미롭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이 책은 우리를 당혹감에 빠뜨린다. 책의 "서문: 시작"에서부터 리스트와 쇼팽이 1841년 4월 합동연주회를 열었다는 당혹스러운 주장을 시작으로 우리는 수많은 오류와 싸워야 한다.


당대 가장 저명한 피아니스트 두 사람, 프레데리크 쇼팽과 프란츠 리스트는 1841년 4월 파리에서 함께 연주회를 열고, 그 수익금을 본 베토벤 기념비 협회에 기부했다. [...] 이 사업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리스트는 후원금을 아낌없이 내놓았을 뿐 아니라, 이 연주회를 위해 은퇴 생활에서 다시 무대로 복귀하기까지 했다.
15쪽



리스트는 쇼팽의 콘서트 하루 전인 1841년 4월 25일 베를리오즈의 지휘 아래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쇼팽은 다음날 26일 바이올리니스트인 하인리히 에른스트, 소프라노 로르 생티-다모로와 함께 연주회를 열었다. (Alan Walker, Frederyk Chopin: A Life and Times, Growing Fame, 1839-1843)



더욱이 1841년 영국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을 리스트가 "은퇴 생활"을 하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왜곡이다. 역자 역시 동일한 오류를 지적한다. 본 책의 한국어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는 역주이다. 141개에 달하는 역주를 통해 역자는 본 책에서 조금 소홀히 다루어진 내용을 보충할 뿐 아니라 40군데에 달하는 오류를 바로잡는다. 당연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런 수많은 오류를 가진 책을 굳이 번역하는 노력을 해야 했을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이런 오류들이 베토벤과 벗어난 사항에서만 나타나진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역자가 모든 오류들을 바로잡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책의 초반부터 역자의 감시망을 벗어난 오류가 눈에 띈다.


세 곡의 피아노 삼중주, Op. 1은 1794년 8월 런던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빈에 돌아온 하이든 앞에서 연주되었다. 하이든은 세 곡 가운데 처음 두 곡은 감탄했으나, 마지막 곡인 다단조 삼중주는 출판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이유에서였다. 격분한 베토벤은 악보 표지에 하이든의 제자였음을 밝히는 관례적 문구를 넣기를 거부했다.
29쪽


그러나 베리 쿠퍼는 자신의 저서 에서 예약자들에게 악보가 제공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2달 뒤에 일반 대중에게 판매가 시작됨을 알리는 공고와 10월 21일에 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베토벤이 "8월 21일에 [이 삼중주의] 첫 인쇄본을 받았을 것"(60쪽)이라 추정한다. 하이든이 빈으로 돌아온 것은 "악보가 인쇄된 직후인 9월 초 무렵"(61쪽)이었으니 턴브리지의 위와 같은 서술은 힘을 잃는다.



또한 턴브리지는 베토벤이 하이든에게 본에서 작곡한 작품들을 빈에서 작곡한 작품으로 속였다는 일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2쪽) 얀 카이에르스나 베리 쿠퍼가 이 작품들이 실제로는 대부분 빈에서 쓰였거나 대거 개정을 했음을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이다.

번역과 편집에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나타난 편집 실수(117쪽 쌍따옴표 방향 실수, 206쪽 번역자 주 위치 오류 등)와 번역자 주의 사소한 실수 (250쪽,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의 메트로놈 지시는 4분음표=138이 아니라 2분음표=138이다)등은 이 책에 아쉬움을 더한다.



앞서 언급했듯 베토벤의 삶을 다룬 책들의 한국판이 대부분 절판된 상황에서 이 책은 한줄기의 빛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오류들은 독자로 하여금 이 책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지 혼란에 빠뜨리며 그 빛을 잃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가장 실망스러웠던 책이다.



Laura Tunbridge 지음 | 김효진 & 최지영 옮김
364쪽 | 152*225*22mm | 소프트 커버 | 정가: 25,000원 | 마르코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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