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황석영 작가의 작품은 워낙 유명해 교과서에서 여러 차례 접해 왔지만, 부끄럽게도 중·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거의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5년 만의 신작인 『할매』를 통해 마치 처음 만나는 작가처럼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주로 2000년대 이후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왔던 터라, 이 작품은 중고등학생 시절 교과서 속 문학으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을 주었다.
초반부에서 개똥지빠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할매 팽나무의 이야기는 2000년대 이전 한국 문학 특유의 서정성과 함께 조용히 주제를 쌓아 올린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전개되는 서사는 때로는 생생한 묘사로 인해 다소 느리게 느껴지기도 했고, 빠른 자극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자연에서 사람들의 삶으로 옮겨가며 서서히 중심을 잡자, 다시 작품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작품은 600여 년을 살아온 할매 팽나무를 통해 이 땅에서 살아온 민중의 삶과 우리 민족의 역사적 애환을 차분히 비춘다. 전쟁과 가난, 이별과 상실을 묵묵히 견뎌온 존재로서의 나무는 인간의 삶과 겹쳐지며, 개인의 고통이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후 이야기는 다시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나아가 생명의 순환과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절제된 문장과 담백한 서술 속에서 오히려 삶의 무게와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