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씁쓸한 단면, 이것은 소설인가.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가사를 가진 노래가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힘들기만 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들곤 한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안전지대. 무조건 내 편인 가족들과 함께하는 이 공간의 의미는 단순히 ‘거주’라는 기능적인 것을 넘어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집이라는 공간에서조차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집은 불법 건축물로 규정되어 다른 이웃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이웃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편안함을 누리지도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으로, 누구도 부를 수도 없는 창피함을 느끼게 하는 집까지… 따스한 안식처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최전선이자 평범하고 멀쩡한 이들과는 다른 ‘계급’에 속해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서글픈 상징이기도 하다.
고은규 작가의 신간 《이것은 소설인가》은 책 제목처럼, 너무도 차가운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 허구라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집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담았다. 집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결핍, 상처, 소외라는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삶의 모양을 조명한다.
각각의 사연과 등장인물의 삶은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린 이웃들의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담아내면서 개운하지 않았던 그 찜찜한 감정을 끄집어낸다. 엇비슷한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그 하루가 얼마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였는지 깨닫게 한다.
주거의 불안정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양의 구성원, 해체된 가족과 깨진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고립시키는지 등 상처 입고 결핍된 여러 관계를 집이라는 테두리로 묶어 표현함으로써 삶의 끝까지 내몰린 이들의 결핍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학원 강사로 일하는 무명 소설가 관철의 이야기이다. 우연히 대학시절 친구를 통해 10년 넘게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 나미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 나미는 그를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장본인이자, 그의 글을 인정해 주고 몰래 투고까지 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블로그 글을 통해 대학 동기들을 저격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블로그에는 나미에게 술을 먹이고 성추행했던 선배, 그녀에게 성병을 옮긴 동기, 그리고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나미가 당한 불행을 떠벌리고 다녔던 동기를 고발한다.
그녀의 글을 보고 관철은 많은 생각에 빠진다. 자신 또한 그녀에게 저격당할 만한 찜찜한 마음의 빚이 남아있던 것. 관철은 대학 때 나미와 함께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며 가까워졌고, 그녀의 자취방에 갔다가 수북이 쌓인 책장 속의 책들 중 최인훈의 『광장』초판을 발견하곤 빌려달라 요청한다. 나미는 자기의 책이 아니라며 거절했지만 관철은 그 책을 자기 가방에 챙겨와버렸고, 이후 여러 가정사로 인해 그 책은 읽지도 돌려주지도 않은 채 가지고 있다가 그만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에게 뺏기다시피 빌려주었다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3일만 보고 돌려주겠다는 학생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신이 나미에게 그러했듯, 그 학생 역시 관철의 뜻을 어기고 억지로 그를 뜻을 억압하고 제 뜻대로 행동하며 관철이 나미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나미의 블로그를 보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던 찰나, 책을 돌려달라는 나미의 연락이 오고, “빌려 갔으면 제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나미의 블로그 글을 보고 나서야 여러 차례의 실랑이 끝에 책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돌려받은 책은 처음에 빌려주었던 초판이 아닌 새 책이다. 가져갔던 것을 온전하게 되돌려 받지 못하는 부조리. 그 책을 받아든 관철은 오랜 시간 쓰지 못했던 소설을 비로소 쓸 수 있겠다는 의지와 욕망을 느낀다.
이처럼 각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당사자에게는 목숨이 걸릴 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마 집이 너무 좁고 지저분하고 초라해 남자친구조차 데리고 올 수 없을 정도라 집에 대한 집착을 갖게 한다거나, 불법 건축물에 산다는 이유로 집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계단 통로를 막는 이웃들 그리고 이를 오로지 조회수를 끌기 위해 드론을 날려 촬영하는 이들 사이에서 기본권조차 침해받는 등. 누군가에게는 그저 웃음거리이지만 타인을 자기의 이해타산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하거나 그들의 불안과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꼭 ‘불법’인지 아닌지를 넘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만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이 취업도 잘 하고, 이름을 떨치기도 하며,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성공을 누린다. 각 이야기들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타인을 향한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꼬집고 추궁하며, 누군가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지금 모습보다 그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들여다볼 것을 이야기한다.
가족에게 받은 작은 거절이 쌓이고,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보편적인 사회에서의 밀려남, 타인의 시선과 규정 아래 상처받은 경험 등이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 그가 관계를 대하는 방식이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 뒤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했다.
불법 건축물에 터를 잡았다는 이유로 합법 공간의 주민들에게 저것들이라 불리며 멸시를 당하는 이들에게는 내 집 마련의 꿈은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사치이고, 이들에게 집은 불안과 고립, 차별을 감내해야만 하는 가혹한 현실이다. 그럴듯한 집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외곽의 신축 빌라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지만 텅 비어 유령도시 같은 건물 속에서 홀로 버티는 주인공에게 안전지대라 기대했던 집은 불안과 외로움, 이웃이나 사회와의 소통 없이 단절되며 더 큰 고립 속으로 밀어 넣는다.
취업이 되지 않아 부유층 가정의 베이비시터로 들어갔지만, 그들이 자는 동안 수많은 감시 카메라 사이에서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 적선하듯 자신이 15년 전에 들던 가방을 선물로 받지만 그조차도 너무도 큰 것이라 자존심도 없이 이에 빠져드는 모습. 하지만 그 단지 한편에서는 고양이가 차 지붕을 긁었다는 이유로 훨씬 어린 입주민에게 굽실거리며 사과를 해야 하는 경비원의 울부짖음과 뒤엉키며 누군가의 그저 열심히, 잘 살겠다는 일상이 어던 면에서는 트라우마를 만들어내고 윤리를 자연스레 무너뜨리는 것임을 꼬집으며 씁쓸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주거의 불안정이 사람을 어떻게 흔드는지, 결핍이 사람을 어디까지 내모는지를 느끼게 하는 이 이야기들이 책의 제목처럼 ‘이것은 소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그리고 이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삶의 막바지까지 내몰린 이들에게는 상처 입은 마음을 헤아리고 회복할 새도 없이 또 하루가 시작되고 매일이 반복된다. 이들의 결핍과 상처를 헤아리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우리가 되찾아야 할 윤리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책의 메시지를 통해 삶을 새로 일으키는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별생각 없이 타인에게 꽂힌 시선에도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까를 따지기에 앞서 왜 그런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리는 마음. 상처를 헤아리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 독서였다. ‘현실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애정의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책의 추천사처럼, 삶을 과장하지 않고 진실하게 이를 직시하고 공감하는 작가의 자세가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